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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악산 - 10 설악산

정상에서 조금 쉬다 오색으로 정신없이 내려갔어요. 빨리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정말 꽤 많이 내려간 것 같았는데 한참 남았어요. 경사가 매우 급해서 확확 내려가는 것 같은데 기껏 많이 내려갔다 싶으면 다시 올라가는 길이 나타났어요. “악!” 물 먹은 돌을 잘못 밟아서 미끄러졌어요. 미끄러진 것 까지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장딴지가 미치도록 아팠어요. ‘근육 끊어졌나?’ 아무리 허벅지를 주물러 주어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어요. 다리를 꽉 움켜쥐고 걸으면 통증이 덜한데 그런 자세로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어요. 18시 15분. 드디어 오색으로 내려왔어요. 오색으로 내려오며 별로 인상 깊게 느껴지는 풍경도 없었고 다리도 아팠기 때문에 그냥 정신없이 내려왔어요. 그러다보니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했어요..

삼대악산 - 09 설악산

“으악! 이거 뭐야!” 아마 소청봉이었을 거에요. 하여간 무슨 언덕 비슷한 것 올라가는데 갑자기 엄청난 바람이 사정없이 온몸을 때렸어요. 어린 아이는 충분히 날려 보낼 듯한 바람이었어요. 일단 날아가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어요. 고향에서 바람을 많이 맞아보았지만 이 정도로 센 바람은 거의 맞아보지 못했어요. 더욱이 산에서는 맞아본 적이 없었어요. 수난이 시작되었어요. 두 다리가 후들거렸어요. “야, 조심해!” “너도 조심해!” 모자를 손에 움켜쥐고 난간에 매달렸어요. 어떻게 언덕을 넘어갔어요. 그러자 바람이 없어졌어요. “응?” “응?” 언덕 하나 넘었는데 바람이 사라져서 둘 다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어요. 바람도 없고 경사도 심하지 않아서 빨리 걸을 수 있었어요. 또 한참을 걷자 드디어 중청..

삼대악산 - 08 설악산

정신없이 올라갔어요. 계속 소시지와 초콜릿을 먹으며 가서 많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체력 자체가 저나 친구나 저질이라서 숨이 자꾸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12시. 드디어 공룡능선에 도착했어요. 공룡능선 옆에는 헬리콥터 착륙장이 설치되어 있었어요. 공룡능선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기 위해 헬리콥터 착륙장에 올라갔어요. 위이잉 “야! 이게 뭔 바람이냐!” “바람 엄청 센데?” 헬리콥터 착륙장에 올라갔더니 바람이 장난 아니게 불고 있었어요. 사람 날아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강한 바람. “이곳 기후가 이상한가 본데?” “그러게. 왜 헬기 착륙장에만 바람이 심하게 불지?”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내려오니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어요. 둘이서 왜 바람이 헬리콥터 착륙장 위에만 심하게 부는지 투덜거리며 다시 걸었..

삼대악산 - 07 설악산

눈부신 천당폭포를 뒤로하고 또 걸었어요. 목표는 대청봉. 천당폭포에서 너무 오래 놀 수 없었어요. 천당폭포를 넘어가자 슬슬 길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아직은 여유만만. 다람쥐 사진도 찍고 앉아서 쉬기도 하고 계곡물 받아 마시기도 하면서 갔어요. 꽤 올라와서 만난 다람쥐였는데도 우리가 뭔가 먹으면 우리 주변으로 쪼르르 달려와 우리를 바라보았어요. 혼자 먹기 미안해 소시지를 조금 잘라서 던져주어 보았더니 잘 받아먹었어요. 그리고 사람을 별로 무서워하지 않아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어요. “길이 슬슬 험해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한심하고 바보 같은 소리. 길이 험해지는 것은 당연했어요. 천불동 계곡까지 많이 올라가지 못하고 올라간 만큼 내려가고 내려간 만큼 올라가는 일의 반복. 해발고도가 많이 ..

삼대악산 - 06 설악산

아름다운 천불동 계곡. 천불동 계곡을 걸으며 뭔가 불안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조금 올라간다 싶으면 올라온 만큼 다시 내려갔어요. 다시 올라간다 싶으면 또 올라간 만큼 내려갔어요. 산을 올라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올라간다’는 것인데 올라간 만큼 계속 내려가니 고도는 얼마 높아지지 않은 거 같았어요. 예전에는 정말 힘들었다고 하는데 계단을 잘 만들어 놓아서 산책로 같았어요. 거기에 적당히 걷다 쉬고 다시 걷다 쉬고 쉬면서 계속 소시지와 초콜릿을 뜯어 먹었어요. 등산을 하는 건지 계곡에 놀러와 계속 먹고 뒹굴거리는지 분간이 안 되는 산행이었어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말 그대로 천국이었어요. 소시지와 초콜릿은 잔뜩 남아있어서 먹어도 먹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날은 시원하고 공기는 상쾌했어요. 진짜..

삼대악산 - 05 설악산

“우와, 계곡 진짜 예쁘다!” 감탄이 끝날 줄 몰랐어요. 아니, 끝날 수가 없었어요. 길 옆으로 계곡이 흐르고 있었어요. 비취색의 물결. 너무나 맑아서 바닥이 투명하게 다 보였어요. 안 뛰어들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 뛰어들면 과태료 부과 참았어요. 정말 뛰어들어 물장난을 치고 싶었지만 참아야만 했어요. 상수도원이라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해서 바라보기만 했어요. 시작부터 너무 아름다워 앞으로 어떤 비경이 펼쳐질지 알고 싶었어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앞으로 나올 비경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계속 걸었어요.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비선대로 가서 대청봉을 가는 코스였어요. 비선대는 수학여행때 가 보았던 곳. 하지만 정확히 비선대까지만 갔어요. 그 이후는 어떻게 생겼는지 전..

삼대악산 - 04 설악산

시. 친구가 깨웠어요. 씻고 나가서 6시부터 등산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하지만 다시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놀다가 5시 반에 나와 근처 편의점에 갔어요. “아침 먹어야지.” “나는 괜찮아.” 그다지 아침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그래도 굶으면 등산이 힘드니 삼각김밥으로 때우기로 했어요. 친구가 냉동 짬뽕면을 골라 전자렌지에 돌리는 동안 편의점에서 짐을 다시 꾸렸어요. 편의점에서 구입한 물과 스포츠 음료, 점심으로 먹을 김밥까지 다 챙겼어요. 빠트린 것은 없었어요. 한 사람당 이온 음료 500ml 한 통, 물 500ml 3통, 참외 2개, 김밥 1줄, 캔커피를 준비했어요. 그리고 같이 먹을 간식으로는 초콜릿 한 봉지와 소시지 한 봉지, 제과점에서 구입한 미니 갈릭 소보로 한 봉지가 있..

삼대악산 - 03 설악산

버스는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어요. 밤 11시가 조금 넘었어요. 숙소는 찜질방. 찜질방을 미리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설마 하나도 없겠냐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속초‘시’인데 찜질방이 몇 개는 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과 함께 무작정 걷기 시작했어요. 버스 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걷다 길을 건너 계속 걸었어요. 등대공원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등대공원에 가서 속초 야경을 한 번 보기로 했어요. 전에 와서 길이 기억날 줄 알았지만 길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고 계속 걷다보니 큰 호수가 나타났어요. “우리 왠지 길 잘못 가는 거 같은데?” “그러게. 어떻게 된 게 찜질방이 하나도 안 보이냐?” 버스 터미널에서 가져온 지도를 펼쳐보며 현재 위치를 찾아보았어요. 왠지 상당히 잘못 가고 있는 것 같았어요. 마침 우리 ..

삼대악산 - 02 설악산

친구집에서 동서울터미널로 출발해 표를 끊었어요. “속초 2명이요.” 날이 날이어서 그런지 표가 별로 없었어요. 맨 뒷자리에서도 구석 두 자리를 받았어요. 역시 여름. 7월 중순이라 그런지 속초행 버스는 계속 매진이 되고 있었어요. 일단 가볍게 저녁을 자장면으로 해치우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가방 아래 넣으세요.” 차장 아저씨께서 가방을 버스 아래 짐칸에 넣으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우리는 짐이라고 해봐야 한 사람당 배낭 1개가 전부였어요. “저희는 그냥 탈게요.” “배낭 들고 타시면 매우 좁아요. 배낭은 아래 넣고 타세요.” 거의 강권. 그래서 버스에서 마실 물 2통만 빼고 배낭을 아래에 넣고 올라탔어요. “뭐야! 배낭을 아래 넣을 필요 없었잖아! 자리 무지 넓네.” 이건 뭐 비행기의 비즈니스석만큼 넓은 ..

삼대악산 - 01 설악산

설악산 국립공원 : http://seorak.knps.or.kr/ 개인적으로 속초를 매우 좋아해요. 2009년, 친구와 함께 속초로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원래 속초에 갈 계획은 없었지만 강릉에서 차 없이 여행하기 너무 불편하고 크게 볼 것이 없었어요. 더욱이 둘이 조용히 맥주를 마시러 들어간 호프집 안주가 생긴 것은 참 맛있어 보였는데 맛이 아무 맛이 없었어요. 웬만하면 맛있는 소시지도 맛이 없었고 스파게티는 색은 참 그럴싸한데 편의점에서 파는 냉동 스파게티를 전자레인지에 돌린 것보다도 맛이 없었어요. 사이좋게 대분노. 당장 강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강원도 왔으면 설악산 정상을 가 봐야하지 않겠어?’라는 친구 말에 무작정 속초로 떠나 울산바위 정상을 올라갔어요. 하지만 울산바..

삼대악산 - 프롤로그

인터넷을 뒤져보면 우리나라에서 험한 산으로 설악산, 치악산, 월악산이 나와요. 이 세 산을 묶어서 ‘3악산’이라고도 하구요. 나름 등산을 좋아하지만 등산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에요. 오히려 취미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등산은 거의 안 가요. 1년에 한 두 번 가는 것이 등산이에요. 그나마도 지금까지 정상을 다녀온 산이 한라산, 속리산, 관악산, 남해 금산 정도에요. 그나마 속리산도 정상만 다녀오고 정상보다 더 유명한 문장대는 가보지도 못했어요. “야, 여행가자.” 친구 K군의 전화. 하지만 저는 갈 수가 없었어요. 6월말은 중학교 기말고사 기간. 그래서 6월은 정신이 없었어요. 애들 보강도 해 주어야 하고 자습 지도도 해 주어야 했어요. 가뜩이나 애들이 중간고사 때보다 공부를 안 하고 학생들의 중간고사보..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7 (마지막화)

새벽 2시 52분 단양 출발 청량리 도착 무궁화 열차의 특징은 바로 이 기차가 중앙선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영동선을 타고 내려온 기차가 중앙선으로 갈아타고 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단양에서 타면 큰 차이는 없다. 단양에서 청량리까지는 중앙선을 타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좌석에 앉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H군이 잤는지 자지 않았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밖은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맑은 날 밤에도 창밖은 열차 안의 불빛으로 인해 거의 보이는 것이 없는데, 비까지 내리니 보이는 것은 창밖에 맺힌 빗방울 뿐이었다. 정신없이 잠을 잤다. 도중에 딱 한 번 깨어났다. 내가 깨어났을 때, 기차는 무슨 강 비슷한 것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강을 ..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6 충청북도 단양

덜커덩 덜커덩 풍기에서 청량리로 가는 막차가 움직였다. 풍기에 대한 아쉬움과 안동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뒤로 하고, 일단은 북서쪽을 향해 몸을 맡겼다. "날씨 좋겠지?" "좋을 거야." 이 짧은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기차 창문에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점 세게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표는 단양까지만 끊었다. 평일 막차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타지는 않을 것이다. 이대로 쪽팔림을 무릅쓰고 청량리에 갈까? 풍기역에서 청량리행으로 표를 끊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풍기만 해도 날씨가 다시 개고 있었지만, 딱 기차에 타자마자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가 단양까지만 표를 끊었기 때문에 단양 이후부터 우리 좌석은 ..

나의 정말 정신나간 여행기 - 05 경상북도 풍기

풍기에 드디어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풍기에 딱 하나 있는 농협으로 달려갔다. 정말 내가 아는 모든 신이라는 신의 이름은 다 부르며 은행에 뛰어가서 잔액을 확인해 보았다. 과연 끝나지 않는 고난의 행군은 계속될 것인가? 그 결과는 바로 '오늘만은 고난 끝, 행복 시작'이었다! 드디어 매달 들어오기로 되어 있으나, 학교 파업으로 인해 들어오지 않던 봉급이 들어온 것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전날, 학교 직원 앞에서 한 푸닥거리를 한 효과가 바로 나타난 것이었다. H군에게 빌린 돈을 단번에 청산하고, 집에서 빌렸던 돈 역시 모두 갚자 내 수중에는 돈이 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이것이 어디냐...돈 500원을 아끼기 위해 고시원에서 제공되는 김치를 볶아서 매일 밥을 비벼먹다가, 그것도 질려서 나중에는..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4 경상북도 풍기

풍기에서 부석사까지 오는데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는 내가 버스비를 2천원 넘게 냈다는 사실 뿐이었다. 버스에서 바로 골아떨어졌기 때문에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풍기로 가는 길 중간에 소수서원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이 났다. 버스가 소수서원에 도착했을 때, 잠시 잠에서 깨어났다. 그때 내가 본 것은 소수서원이 아니라 소수서원 매표소였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돈 내고 들어가는지 돈을 내지 않고 들어가는지만 보였다. 돈을 내고 들어간다고 하면 그 다음부터는 눈에 마땅히 보이는 것이 없었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밤에 몰래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버스비가 비쌌기 때문에 걸어내려가기로 했다. 20km가 조금 넘는 거리였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인간이 한 시간에 도보로 걸을 수..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3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

돌발상황이란 다름아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시간이 많이 남았는지 벌써부터 시간을 보낼 생각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불과 30분만에 시장을 거진 다 둘러볼 수 있었다. 골목골목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그 '풍기 인삼시장'이라는 곳만은 얼추 본 셈이었다. 이제 무엇을 하지? 무엇을 하지? 돈만 있다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내게 돈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은 아무리 탈탈 털어보아야 H군에게서 빌린 3만원 가운데 차비를 제하고 받은 7천원과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2천원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벌써 약간 써서 슬슬 위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나 혼자라면 왕복 차비가 있고, 돈 7천원 정도 있으면 최소 이틀간은 실컷..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2 경상북도 풍기

H군이 나를 깨웠다. 너무 피곤해서 다시 자려는데, H군이 말했다. "이제 거의 다 완."(이제 거의 다 왔어) "어디?"(어디인데?) "단양." "풍기 도착함 깨워. 나 넘 피곤행 눈 좀 붙여사켜."(풍기 도착하면 깨워. 나 너무 피곤해서 눈 좀 붙여야겠다) 얼마 후, H군이 나를 다시 깨웠다. "어디?" "풍기." 창밖을 보았다. 풍기역이 보였다. 부리나케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에서 나와 검표원에게 기념으로 표를 가지겠다고 말한 후, 표를 들고 역 밖으로 나왔다. 풍기역 앞에서 H군은 속이 조금 좋지 않다며 화장실에 갔고, 그 사이에 나는 느긋하게 풍기역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운 후, 풍기역 사진을 찍었다. 풍기역은 그냥 평범했다. 특별한 것은 전혀 없는 역이었다. 처음 와보는 곳이기 ..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1 청량리역에서 기차 타고 경북 풍기 가기

H군의 전화로 인해 새벽 한 시에 잠을 깨버리고 말았다. 땡전 한 푼 없어 굶주림을 잊기 위해 일찍 잠이 들었는데, H군의 전화가 나에게 굶주림을 되돌려주고 말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한 번 도망간 잠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6월 9일에는 시험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이래저래 쉽게 집중이 되지 않았고, 결국 새벽 6시, H군과 나는 당일치기 기차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H군이 전날, 내게 함께 새병열차를 타고 여행을 갈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나는 전날 저녁에 영월에 가서 동강까지 걸어간 후,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도 보고 동강 및 영월을 구경하다가 점심때쯤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H군은 피곤하다고 아침에 여행을..

뭐라카네 - 07 (마지막화) 경상남도 사천

사천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해서 시내만 돌아다닐 수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확실한 목표인 ‘대곡숲’이 있었거든요. 사실 너무 즉흥적으로 찾아낸 곳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의 머리 속에 확실한 이 여행의 목적으로 확고히 자리 잡아 버렸어요. 문제는 대곡숲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분명 여기는 한국. 말은 잘 통해요. 길을 물어보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대곡숲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었어요. 더욱이 여행이 꼬이려고 작정했는지 대곡숲 가는 길을 물어보기 위해 말을 건 행인들 전부 외지에서 사천으로 온 지 얼마 안 되신 분들. 목적지는 있는데 길을 못 찾아서 점점 우리의 길은 여행에서 방랑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었어요. 친구와 방향 없이 걷다가 마침 봄이다..

뭐라카네 - 06 경상남도 사천

진주-하동-구례-진주-남해-진주-사천-제주 아침 10시. 오른쪽 무릎 안쪽의 아랫부분이 심하게 아파서 잠에서 깨었습니다. 누군가 있는 힘껏 꽉 누르는 느낌이었어요. 얼마나 아픈지 엄지손가락으로 눌러보자마자 이제 보통 자다가 잘못 되어서 아프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꾸르륵 오른쪽 무릎이 아파서 계속 누워 있는데 뱃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절대 ‘꼬르륵’이 아니었어요. ‘꾸르륵’이었어요. ‘오’와 ‘우’의 미묘한 차이. 두 개가 단지 모음만 차이날 뿐인데, ‘아’와 ‘오’의 차이만큼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아닌데 ‘꼬르륵’과 ‘꾸르륵’은 아주 다른 의미에요. ‘꼬르륵’은 몸 안으로 무언가를 초대하고 싶은 의미이고 ‘꾸르륵’은 몸 밖으로 무언가를 내쫓고 싶은 의미. 하지만 무릎이 너무..

뭐라카네 - 05 경상남도 남해 금산

내용은 별 거 없지만 사진 대방출이라 이날 하루 이야기를 2부로 나누었습니다. 조금 가자 산장이 나왔고, 정말 아름다운 경치들이 계속 나와서 한참 갔다가 타이밍의 여왕님을 부르러 갔습니다. 그리고 보리암부터 간 후, 보리암에서 이성계가 기도할 때 일어섰다는 바위들을 보았어요. 보리암의 모습이에요. 진짜 멀리서 보기만 해도 너무나 아름다운 절이었어요. 하얀 불상이 바로 금산 보리암의 해수관음상이랍니다. 경치 좋고 절도 예쁘고 정말 아는 말을 다 가져다 붙여도 뭐라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어요. 보리암과 보리암 근처에 있는 세 명의 바위를 구경한 후, 정상을 향해 출발했어요. 정상에 가는 길은 몇 개 있는데 그 중 보리암에서 올라가는 길도 있었습니다. 아침 버스기사 아저씨 말 대로..

뭐라카네 - 04 경상남도 남해 금산

하동에서의 쓰디쓴 추억. 생각하면 허탈한 웃음만 나오는 하동에서의 추억. 나의 4사자 3층 석탑이여~! 하동-구례 여행까지 계속 일정이 틀어졌습니다. 차라리 한 시간 늦으면 좋으련만 10분 이내의 차이로 차를 놓쳤습니다. 특히 하동-구례 여행에서는 눈앞에서 버스가 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어요. ▶◀지못미 이 대사가 나와야할 자리는 아닌 것 같군요. 저희가 버스를 탔다고 해서 버스를 우리가 지키는 것이고, 우리가 버스를 못 타서 버스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할 상황은 아니니까요. 어쨌든 우리는 하동-구례 여행에서의 문제를 떨쳐내고자 용병을 긴급 투입했습니다. 타이밍의 제왕! 친구의 여자친구는 타이밍의 제왕. 아무리 늦어도 10분 이내의 타이밍을 만들어 차를 놓치지 않는 마이더스의 손? 하여간 이상한 ..

뭐라카네 - 03 경상남도 진주

어제 계획이 크게 뒤틀리는 바람에 진주 올 때 들고 온 여비를 모두 소진해버렸어요. 다리는 알이 배었지만 친구를 향해 괜찮다고 웃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을 참아야했죠. 전날 지리산을 보고 친구는 지리산에 꼭 올라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 국립공원에 전화를 해 보았어요. “지리산이 어제 폭설이 내렸어요. 그래서 아이젠과 스틱, 고글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아이젠만 있으면 된다고 하면 아이젠을 구입해서 가려고 했어요. 그러나 아이젠에 스틱, 고글이라면 돈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 가는 것은 포기했어요. “내일 어디 가지?” “나 산이 너무 좋아졌다.” 친구가 산에 대한 열정을 토로했습니다. 사실 4일간 친구 방에서 뒹굴거리고 하루 여행갔다가 내려갈 ..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프롤로그

2006년 초여름. 처음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했어요. 여행답다는 표현을 쓰니 매우 이상하네요. 하지만 기껏해야 지방에 사는 친구집 놀러가는 수준이었던 제가 처음 '여행'으로 생각하고 여행을 갔어요. 이때만 해도 나름 부지런해서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여행기를 썼어요. 지금 여기 올리는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는 2006년 여행 다녀오자마자 쓴 글이에요. 그래서 말투도 상당히 투박하답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겨우 글을 찾았는데 글을 올린 곳의 이미지 서버가 날아가서 사진은 하나도 없더군요. 별도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사진을 정리해 놓은 것도 아니라서 부랴부랴 사진을 찾았어요. 즉, 예전에 쓴 여행기를 다시 복구하는 작업을 했어요. 저의 첫 여행,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뭐라카네 - 02 경상남도 하동, 지리산 화엄사

아침 8시 반. 눈을 떴어요. 친구가 자는 것을 보고 저도 다시 잤어요. 그리고 아침 9시. 친구와 사이좋게 기상했습니다. -끗이라능- 정말 끝이었어요. 아침 첫차를 타겠다는 계획은 완전 다 날아갔어요. 하얗게 백지가 되어 버렸어요. 첫차는 9시 20분인가 40분. 그런데 그 차를 타려면 지금 당장 뛰쳐나가도 모자랄 판인데 머리는 완전 초사이어인 머리. 밤새 까치 한 다스가 제 머리를 방문했는지 아주 난리가 났어요. 머리를 감지 않고 나갔다가는 노숙자로 몰릴 지경으로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머리. 이런 머리 스타일은 2300세기가 올 때까지 단 한 번도 유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 하여간 첫차는 무조건 못 타게 되었어요. 씻고 아침 먹고 2번째 차를 타러 갔어요. 두 번째 차는 10시 50분. 그..

뭐라카네 - 01 경상남도 진주

졸업식 때문에 서울에 와서 졸업식을 참석하고 백수의 세계로 진입했습니다. 아직 백수라는 것이 체감이 안 되었어요. 왠지 개학날 학교에 등교해야 할 것 같다는 묘한 의무감이 남아있었어요. 가족들 모두 누나들이 청주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바로 청주로 내려갔어요. 청주에 내려가서 함께 졸업한 공군 위탁장교분께서 직접 공군사관학교를 누나들과 함께 견학시켜주시고, 온 가족이 함께 청남대를 구경하기도 하며 뒹굴뒹굴 거리다가 졸업식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진주에 사는 친구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나 이번에 졸업식 끝나면 진주 갈까 생각중이다.” 저는 사실 계획을 그다지 잘 짜는 편이 아니에요. 계획을 짜기 보다는 무심코 던진 말이 계획이 되고 목적이 되는 편이 많은 편이에요. 이번에도 ..

무계획이 계획 - 마지막화

드디어 그 날이 찾아왔어요. 말 그대로 소심한 복수. 어차피 더 짤릴 월차도 없어요. 8월에 때려치니까요. 눈은 일찍 떴어요. 그러나 오늘 하루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다보니 아침 9시가 되었어요. 친구는 곤히 자고 있었어요. 슬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뭐라고 이야기해야 정말 약오르고 화나게 할 수 있을까? 사실 무단결근 자체가 열받는 일이겠지만 어설픈듯 하면서 그럴싸한 거짓말을 해야 더 열받게 되는 법. 오늘 하루 무엇을 해야 보람찰지 생각하고 무슨 말로 열받게 할까 생각하다보니 드디어 전화를 할 시간이 되었어요. 아침 10시 반. 오전 작업 지시 및 회의가 아무리 길어져도 오전 10시 반 이전에는 끝났어요. 즉 지금이 전화를 걸 타이밍. 뚜루루루 "여보세요." "파트장님, 저에요." "왜 안 오세..

무계획이 계획 - 06 (2008.08.10)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에는 새벽이었어요. 이미 전철도 끊이고 버스도 끊겨서 이동하려면 무조건 택시를 타야 했어요. 꾸벅꾸벅 졸면서 비틀비틀 걸어나오다 마주친 것은 택시기사들. 하지만 그 아저씨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동서울터미널에서 인사동까지 3만원을 부르고 있었어요. 가볍게 무시하고 가려는데 택시기사 두 명이 일본인 여자 관광객 두 명에게 5만원을 불렀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보아 그 일본 관광객들은 한국에 온 지 얼마 된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 시각에 인사동을 간다고 했겠죠. 새벽의 인사동은 제가 밤에 돌아다녀본 서울에서 가장 추한 지역 중 하나.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날 뿐, 그 어떤 활기도 안 보이는 곳. 사회 시간에 배우는 인구 공동화 현..

무계획이 계획 - 05 (2008.08.08~09) 강원도 속초

사이좋게 분노해서 강릉을 떠나기로는 했는데 어디 갈 지 결정은 못했어요. "서울을 그냥 일찍 들어가 버릴까?" "거기 일찍 가봐야 할 거 없어." 가뜩이나 서울에서 5년간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불필요하게 오래 머무는 것은 내키지 않았어요. "어디 가지?" 일단 술값을 계산한 후 밖으로 나왔어요. "PC방가서 한 번 찾아보자." PC방에 들어갔어요. 그래도 일단 강원도에서 하나라도 더 보고 가고 싶었기 때문에 강원도 전 지역을 찾아보았어요. "동해 어때?" 지도를 보았어요. 강릉처럼 차 없이 돌아다니기에는 최악의 조건. "영월 어때? 동강 있잖아." 영월도 마찬가지. "춘천 어때?" 춘천도 마찬가지. "아...진짜 어디 가지?" 어디를 가든 차 없이 돌아다니기에는 다 최악. 아무리 검색해도 답이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