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32 세르비아 니슈

좀좀이 2012. 1. 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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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슈티나행 버스 몇 시에 있어요?"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어요. 프리슈티나에 가기 위해서는 사실상 바로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기껏 니슈까지 왔는데 오자마자 다시 떠나게 생겼어요. 되도 않는 세르비아어와 불가리아어를 섞어가며 버스 시각 확인을 했어요. 매표소 직원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어요. 손짓 발짓 하고 펜으로 숫자를 써가며 알아낸 정보는 잠시 후 바로 프리슈티나행 버스를 타든가 16시에 있는 베오그라드행 버스를 타고 베오그라드로 돌아간 후 21시 30분 버스를 타고 프리슈티나에 가는 것이었어요.


당장 버스를 타면 프리슈티나에 정말 엄한 시각에 떨어질 것이 뻔했어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프리슈티나에서 1박을 하든가 아니면 베오그라드로 돌아가 프리슈티나행 버스를 타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2시간 반이면 대충 시내 중심가까지는 볼 수 있을 거야. 지금 프리슈티나 가면 보나마나 한밤중에 떨어질텐데 무슨 수로 거기에서 숙소를 찾아. 차라리 여기서 구경 조금 하다가 베오그라드 가자.'


만약 베오그라드를 안 간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아마 선택이 달라졌을 수도 있어요. 베오그라드는 정말로 교통의 요지. 발칸 유럽에서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길은 베오그라드로 통해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모든 길은 베오그라드로 통해요. 그 이유는 과거 공산권 시절로 돌아가서 보면 아주 쉬워요. 지금이야 발칸 유럽에 국가가 많지만 공산국가였을 당시 발칸 유럽국가는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밖에 없었어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코소보 모두 유고슬라비아라는 연방 국가에 속해 있었고, 이 유고슬라비아의 수도가 바로 베오그라드에요. 우리나라에서 어느 도시를 가든 서울행 버스가 있는 것처럼 베오그라드행 버스는 구 유고 연방 어디를 가도 있었어요. 기차도 마찬가지. 물론 베오그라드를 거치지 않고 가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중부유럽인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기차가 발칸유럽의 관문인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들어온 후 전 발칸 유럽으로 퍼져나가요. 예외라면 알바니아. 알바니아는 공산권 시절 유고슬라비아와의 관계가 극악으로 안 좋았기 때문에 베오그라드에서 길이 이어지지 않아요. 즉, 만약 베오그라드였다면 어쨌든 한 번은 또 올 수 있었어요. 제 여행의 종점은 프라하였고, 발칸 유럽에서 프라하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쨌든 베오그라드는 거쳐 가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여기는 니슈. 니슈도 교통의 요지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굳이 다시 올 이유가 없었어요. 간단히 비유하자면 서울에서 다른 지역 가는 버스를 탈지, 아니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 다시 대전에서 다른 지역 가는 버스를 탈지에 해당하는 문제에요.


망설일 시간이 없었어요. 베오그라드로 돌아간다고 해도 버스는 4시 버스. 이 다음 버스를 타면 프리슈티나행 버스를 탈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짐을 끌고 니슈를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니슈 버스터미널 근처에는 큰 시장이 있었어요.



여기도 고추와 마늘을 엮어서 널어놓고 팔고 있었어요. 아직 과일이 나올 철이 아니라 풍성한 과일과 다양한 식재료를 구경하기엔 무리였지만 그래도 볼 만 했어요. 여기는 아직도 추를 매달아 무게를 재서 팔고 있었어요.


아침은 고사하고 점심도 아직 안 먹었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거리에서 햄버거와 똑같이 생긴 샌드위치 파는 노점상을 찾았어요. 식당 가서 먹을까 하다가 짐도 많고 귀찮기도 해서 평소 그랬던 것처럼 거리에서 파는 샌드위치로 한 끼를 해결하기로 했어요.



저 무지막지하게 큰 패티의 압박!


패티를 고르고 소스도 골라서 원하는 맛의 샌드위치를 사먹을 수 있었어요. 아주머니 얼굴만한 패티를 구워주시는 것을 보자마자 감동받았어요. 제일 오른쪽 패티는 고추가 들어가서 매콤한 패티이고, 제일 왼쪽 패티는 안 매운 패티에요.



소스와 야채도 자기가 원하는대로 골라 넣을 수 있는데 저는 무조건 다 넣고 후배는 매운 것을 못 먹었기 때문에 고추는 넣지 않았어요. 이건 뭐 어려운 말 필요 없었어요. 넣는다면 '다' (yes), 안 넣는다면 '네' (no) 라고 하면 끝.



요새 옆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어요. 정말 크기에 감동 받았어요. 빵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푹신한 빵이 아니어서 매우 양이 많았어요. 거의 맥도날드 빅맥 2개 먹는 기분이었어요.


"이거 매워요."

"에...설마요."

"진짜 매워요."


후배가 자기 샌드위치가 맵다고 했어요. 분명 고추를 안 넣었는데 맵다고 했어요. 제꺼는 꽤 매콤했어요. 맛은 소박하고 담백했어요. 무언가 기억에 확 박힐 그런 강렬한 맛은 없었어요.


샌드위치를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니슈를 다 본다는 것은 확실히 무리. 더욱이 니슈 지도도 없었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니슈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실했어요. 혹시나 거리에 니슈 지도를 구할 수 있는 안내소나 지도가 나와 있는 간판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그런 것 역시 찾을 수 없었어요. 오직 직감에 의존해야 했어요.



그냥 계속 걸었어요.



1999년 3월 24일부터 6월 10일까지 진행된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비에요. 이건 글자만 따라 읽고 날짜를 보니 내용을 알 수 있었어요. 여기도 유고 내전의 흔적이 있었어요. 세르비아 본토에서 찾을 수 있는 유고 내전의 흔적은 주로 유고 내전 말기 나토 공습에 의한 피해와 관련된 것들이에요. 예전에 언급했듯이 다른 구 유고 연방 국가들이 감히 세르비아 본토로 진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거든요. 자기네 영토에 대한 유고 연방군과 세르비아 민병대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는데 감히 세르비아 영토로 진격할 여력 따위는 없었어요. 그래서 세르비아 본토에 남아있는 유고 내전의 흔적은 전쟁 말기, 나토가 전쟁을 강제로 끝내기 위해 세르비아에 대한 대대적 폭격을 감행했을 때의 흔적이 대부분이에요.



강가의 건물.



어떻게 하다보니 니슈 중심가까지 왔어요. 밀란왕 광장에 있는 밀란왕의 동상이에요. 그때는 뭔지도 모르고 그냥 넓은 광장에 동상이 있길래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 여행기를 쓰며 자료를 찾아보다 알게 되었어요.



여기는 CRKVA SV. TROJICE - SABORNI HRAM 래요. 영어로는 Trinity Church - Cathedral이구요. 이때는 뭔지도 몰랐어요. 그냥 뭔가 있어보여서 사진을 찍었어요.



여기는 CRKVA SV. ARHANĐELA MIHAILA - MALI SABORNI HRAM 래요. 영어로는 SV. ARCHANGEL MICHAEL - THE SMALL CATHEDRAL TEMPLE 이구요. 이것 역시 뭔가 있어보여서 그냥 찍은 사진이에요. 정말 직감에 의존해 다녔어요. 참고로 사진 왼쪽 아래에 있는 쌓여 있는 짐이 이때 저희가 끌고다니던 짐이에요.



길이 정말 꽉 막혔어요. 이렇게 길 막히는 것을 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아직도 산타클로스가 매달려 있다니! 이제 조금 있으면 4월이라구! 귀찮아서 안 떼어놓은 것인지 벌써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는 것인지...



강 이름이 니샤바 (Nishava) 강이었네요.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앞에 보이는 것이 바로 요새 입구.



너무 대충 날림으로 보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어요. 무언가 '우와! 끝내주는데!' 이런 것은 없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도시라고 생각했어요. 이 정도면 성공. 아무 정보도 없었고 아는 것이라고는 '니슈는 세르비아의 3대 도시 중 하나다' 이거 하나 알고 갔는데 이 정도라도 건졌다면 다행이었어요. 여기 역시 영어가 엄청나게 안 통했어요. 주어진 시간은 불과 2시간. 지금 이 여행기를 쓰면서 이런 최악의 조건 속에서 이 정도라도 건진 게 어디냐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어요.



요새를 들어갈까 말까 정말 고민되었어요. 한 바퀴 다 도는 것은 분명 시간 관계상 무리였어요. 본다면 안에 들어가서 내부가 어떻게 생겼나 휙 둘러보고 나와야 했어요. 이걸 꼭 둘러봐야하나 더욱 고민되었던 이유는 캐리어고 뭐고 모든 짐을 지금 다 끌고다니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며 요새 입구에 섰어요.


"어? 오르막이네? 우리 가지 말아요."

"예. 가지 말아요."


입구부터 오르막이었어요. 그래서 가지 말자고 했더니 후배가 매우 좋아했어요. 베오그라드에서 칼레메그단 요새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여기를 안 간다고 해서 큰 아쉬움은 없었어요.



다시 시장을 지나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어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버스였어요.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저는 바로 잠들었어요. 이렇게 잘 수 있을 때 얼른 자지 않으면 며칠씩 야간 이동하게 될 때 정말 힘들어요. 잘 수 있을 때 반드시 잠을 자고 씻을 수 있을 때 반드시 씻는 것이 저만의 야간 이동 요령이라면 요령이네요.


정말 깊게 잘 자고 있는데 후배가 저를 깨웠어요. 버스가 거리에서 멈추더니 30분이 지나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뭐 알아서 가겠죠."


딱 한 마디 하고 다시 잤어요. 잠시 후 후배가 또 깨웠어요. 버스가 1시간이 지나도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뭐 문제 생겼나?"


30분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1시간째 버스가 안 가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살짝 머리 속이 복잡해졌어요. 이러면 버스가 1시간 연착이에요. 프리슈티나행 버스는 21시 30분에 있고, 우리가 탄 버스는 오후 4시이며, 아침에 베오그라드에서 니슈까지 올 때 4시간 반 걸렸어요. 계산해보니 1시간 연착이면 베오그라드 도착 예정 시각은 9시 30분 근처? 안 돼!


이제 프리슈티나행 버스를 타냐 못 타냐의 문제가 되었어요. 물론 니슈 올 때도 예정 시간보다 버스가 연착했어요. 예정 도착 시간은 1시라고 했는데 30분 연착한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1시간 연착. 이제부터 달려도 9시 도착 예정. 9시에 도착한다면 크게 나쁘거나 좋거나 할 게 없었어요. 도착하자마자 표 사고 저녁 대신 먹을 것과 물 사면 딱 맞는 시간. 문제는 9시가 마지노선이라는 것이었어요. 9시를 넘어서 버스가 도착하면 무조건 달려가서 프리슈티나행 표 2장을 구입해서 바로 탑승해야 했고, 만약 9시 20분에 도착한다면 상황은 더 최악이었어요. 이렇게 되면 한 명은 빨리 프리슈티나행 버스로 가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버스를 잡고 한 명이 표를 사 와야 하는데 후배가 버스를 잡는 것이나 표를 사는 것이나 둘 다 할 수 없었어요. 말이 안 통했기 때문에 둘 다 제가 해야 했어요. 하지만 저는 분신술을 쓸 줄 몰라요. 그렇다고 해서 여기 현지어를 유창히 잘 해서 버스 기사에게 기다려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어요. 10분 정도라면 버스를 잡든 표를 사든 저 역시 1개만 가능한 시간.


갑자기 차장이 모두 내려서 버스를 옮겨타라고 했어요. 우리가 탄 베오그라드행 버스의 다음 버스 같았어요.


후배가 1시간 지연도 모자라 서서 가게 되었다고 화를 내었어요. 하지만 버스 안을 둘러보니 경찰도 서서 가고 있었어요. 경찰 아저씨도 서서 가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제발 버스가 빨리 베오그라드에 도착하기만을 빌었어요.


신기한 것은 버스가 예정 도착시간인 20시에 도착했다는 것이었어요. 마구 밟은 것인지 원래 베오그라드에서 니슈까지 3시간 밖에 안 걸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다행히 20시에 버스가 도착한 덕분에 간단히 저녁을 먹고 프리슈티행 버스를 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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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쓰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니슈 관광 안내 사이트가 있네요. (http://www.nistourism.org.rs/) 제가 들고 다니던 Rough Guide to Europe on a budget에는 니슈 지도가 없어서 뭔지도 모르고 막 돌아다녔거든요. 역시 정보력의 차이가 많은 걸 좌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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