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23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

좀좀이 2012. 1. 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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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느낌을 정리하기 위해 버스에 머리를 기댔다는 것은 솔직히 제가 써놓고도 찔려요. 사실 조금이라도 잠을 자기 위해 머리를 의자에 기댄 것이었어요. 오늘부터 다시 야간 이동의 연속이 시작되므로 틈만 있으면 부지런히 자고 씻어야 했어요.


버스가 모스타르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일단 버스 시각을 확인했어요. 자정 즈음에 크로아티아 스플리트행 버스가 한 대 있었어요.


"이거 타고 가면 되겠네요."


스플리트행 막차를 타면 굳이 모스타르에서 1박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래서 스플리트행 버스표를 구입한 후 밖으로 나왔어요.



모스타르 지도. 모스타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다리. 이 다리가 있는 구시가지를 찾아가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어요.


다리를 찾아 걷기 시작하는데 알 수 없는 건물이 나왔어요.




뭔지 모를 폐허. 보수 공사 중인 것 같은데 무슨 건물인지 알 수 없었어요. 외관을 보니 예전에는 무언가 중요한 건물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쨌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어요.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은 스타리 다리 (Stari most). 표지판을 보며 길을 걸었어요.



역시나 여기도 내전의 흔적.



번화가라기 보다는 한적한 마을 같았어요. 푸른 강물이 흐르는 것을 직접 본다는 것 외에는 무언가 강렬한 인상은 없었어요.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았어요.



정말 조용하게 생긴 마을. 거리에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왠지 쓸쓸했어요. 건물에 보이는 점들은 컴퓨터 모니터나 디카 CCD의 얼룩이 아니라 전쟁의 흔적.



"이게 스타리 모스트인가?"


방향을 잘 잡아 걷는 것 같았는데 다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더욱이 아무 준비 없이 온 거라 스타리 다리가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어요. 분명 다리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눈 앞에 나타난 다리는 이거 뿐이었어요.




"여긴 더 심하네..."


동사라예보 버스터미널 근처는 약과였어요. 여기는 전쟁 때문에 무너진 건물 투성이였어요. 동사라예보 버스터미널 근처의 집들은 총탄 자국은 있었어도 무너진 건물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나 여기는 진짜로 전쟁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 투성이.



황량한 거리. 간혹 지나가는 차 외에는 거리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요. 사진 속 높은 건물도 전쟁으로 부서진 건물.



하늘에는 점점 구름이 끼기 시작했어요.


"대체 여기를 왜 아름답다고 한 거야?"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쓸쓸한 거리와 부서진 건물들. 아무리 봐도 황량한 폐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여기가 왜 아름다운 곳인지 이해된다면 그게 신기한 것. 날씨까지 이런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었어요. 구경은 고사하고 당장 비를 피해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서 시간을 보내야하나 걱정되었어요. 하지만 스플리트행 막차 외에는 마땅한 선택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더 돌아다녀 보기로 했어요.



"에휴...사라예보도 그 모양이던데 여기서 뭘 바라냐..."


수도인 사라예보도 구시가지만 복구되었지 외곽 지역은 대충 보수해서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도시가 제대로 보수되고 정비되어 있을 리 없었어요.



표지판을 보니 무슨 교회가 있었어요. 지어진 지 조금 오래된 교회라 한 번 가보기로 했어요.



어휴...이 도시에서 뭔가 기대하는 게 바보이지...


그냥 큰 교회였어요. 첨탑이 매우 높다는 것 외엔 별로 인상적일 것이 없었어요.



가다보니 계곡이 나왔고



드디어 구시가지에 도착했어요. 스타리 다리도 보였어요.



너무 기대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별로였어요. 개인적인 소감은



저 돌멩이 - Don't Forget '93 이라고 적힌 돌멩이 보러 온 것 같았어요. 가뜩이나 캐리어 끌고 다니는데 여기는 정말 최악의 다리였어요. 경사도 생각보다 급한데다 계단처럼 되어 있어서 캐리어 끌고 다리를 건너는데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1993년, 크로아티아계가 무슬림계에게 전쟁을 선포하면서 모스타르도 전쟁터로 돌변했어요. 크로아티아계는 전쟁의 시작과 동시에 이 모스타르 다리를 포격으로 끊어버렸어요. 그러나 앞에서 말한 대로 둘 사이의 전쟁은 생각만큼 오래 가지 않았고, 다리만 부셔놓은 꼴이 되어 버렸어요. 전쟁이 끝나고 이 다리를 다시 이어놓았고, 이 다리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평화의 상징'이 되었어요.


이런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다리에요. 그러나 다리 외관만 놓고 보면...글쎄요...솔직히 외관만 놓고 보면 평범한 다리였어요. 무언가 크게 특이하거나 아름답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특이한 거라면 우리나라 충청북도 진천에 있는 농다리가 훨씬 더 특이하고 인상적이었어요.






제게 모스타르는 그냥 한적하고 작고 예쁜 마을일 뿐이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비수기 + 토요일 + 우중충한 날씨!


유럽 여행에서 이거 세 개 겹치면 답이 없어요. 사실 더 최악의 조합도 있어요. 저 정도면 정말 최악의 조합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한 도시에 대한 인상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릴 힘이 있어요. 이때 어땠냐하면 구시가지 가게에서조차 제대로 문을 연 곳이 거의 없었어요. 조금 과장하자면 관광객이 우리밖에 없었어요.



다리가 경사가 심해서 턱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 놓았어요.



이 휑함과 한가함이 보이시나요? 이런데 무슨 아름답고 활기찬 도시에요. 이 정도면 처음 온 사람이라면 그저 한적한 마을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이렇게 편하게 다리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도 아무도 없고 가게도 거의 다 문을 닫았기 때문이었어요. 노천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거리와 풍경을 감상한다? 카페가 문을 다 닫아버렸고 눈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였어요. 오히려 이런 날씨 속에서 노천에서 차를 마시는 것이 이상한 사람이에요. 괜히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오전까지 머물렀던 사라예보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여기는 말 그대로 정말 초봄.



정말 휑하고 썰렁한 거리. 아예 문을 닫은 가게가 태반이었어요. 이 상황이 모스타르에 대한 저의 인식을 더 크게 왜곡시켰을 수도 있어요.


모스타르 버스 터미널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본 것은 거의 다 전쟁의 흔적이었어요. 총탄 자국 정도가 아니라 온통 부서진 건물 투성이. 거기에 사람들도 없어요. 이러면 처음 온 사람은 당연히 '활기차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생각을 갖기 어려워요. 진짜 사람들이 피난가서 휑한 거라고 해도 믿었을 거에요. 더욱이 이 구시가지가 큰 것도 아니에요. 사라예보 구시가지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담해요. 굳이 비유하자면 사라예보는 자두에 비유할 수 있어요. 과육부분은 폐허, 씨앗 부분은 아름다운 핵심. 이 비유 방법을 모스타르에 적용하면 모스타르는 사과에 비유할 수 있어요.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부분은 사과 씨앗만 해요. 이 아름다운 지역 바깥은 전부 폐허. 그 크기의 차이는 사과 씨앗과 사과 과육의 차이.



모스타르 시내에 있는 '유명한 모스크'래요. 그런데 실제 보면 그냥 평범한 모스크. 이런 모스크는 100만 개 보여줘도 감흥이 없어요. 불과 몇 시간 대충 훑어본 이스탄불에도 이 정도 모스크라면 쌓이고 쌓였어요. 최소한 이스탄불의 '예니 자미' 정도는 되어야 '괜찮은 모스크구나...' 이러죠. 사실 모로코 카사블랑카 핫산 2세 모스크 본 이후로 모스크에 대한 눈이 너무 높아져 버렸어요. 핫산 2세 모스크 보고 나면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도 시시해져요.



모스크 내부. 그냥 허름했어요.


정말 한적한 토요일 오후 거리를 걷다 보니 밤이 되었어요.




"야경이나 찍으러 가요!"


사람이 너무 없을 뿐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그리고 일단 두 명. 혼자라면 꽤 망설여졌겠지만 두 명이라 이 정도 분위기면 야경 보고 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아무도 없는 거리. 아까는 조금의 과장이 필요했지만 지금만큼은 전혀 과장이 필요 없었어요. 정말 진실을 말하는 거에요. 거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확실히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웠어요.



"어? 사람이다!"


거리에 사람 한 명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어요. 가서 왠지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보스니아어는 몰랐기 때문에 말을 못 걸었어요.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러 근처...라고 하기엔 정말 민망할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식당에 갔어요. 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식당을 찾아 보았지만 문을 연 식당이 없어서 식당을 찾다보니 좀 멀리 떨어진 거리의 식당까지 가게 되었어요.



저녁은 뷰렉. 뷰렉은 확실히 고기 들어간 뷰렉이 진리였어요.


다 먹고 계산하려는데 주인이 유로는 받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어쩌지?"


가게 주인은 끝까지 유로를 안 받겠다고 했어요. 사라예보에서는 유로도 카엠과 같이 통용되었는데 여기는 통용이 안 되는 건지 아니면 이 집만 유로를 안 받는 건지...주머니를 다 뒤져보았어요. 그러나 돈이 부족했어요.


"아...기념으로 빼놓은 동전이 있었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동전 중 가장 큰 동전은 5KM 이에요. 5KM이면 약 2.4유로.



이 동전은 직경 3cm 에요. 다른 동전들보다 크기도 훨씬 크고 묵직해요. 그리고 실제 보면 매우 예뻐서 기념으로 하나 챙겨 놓았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돈을 지불하는 것. 그래서 가방을 열고 기념으로 챙겨 놓은 이 동전을 꺼내 지불했어요.


기념으로 챙겨 놓은 동전으로 밥값을 지불하고 버스 터미널로 돌아갔어요. 밤이 아주 깊어지자 매표소도 문을 닫았고, 버스 터미널에는 우리와 다른 청년 한 명 뿐이었어요. 건물 밖에는 빗방울이 투둑 투둑 떨어지고 있었어요.


고요한 버스 터미널. 후배와 번갈아가며 꾸벅꾸벅 졸다가 버스가 오자 버스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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