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쿠레슈티 발 베오그라드 행 기차 안은 조용했어요. 확실히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복도에서는 사람들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어요. 보통은 열차에서 흡연은 절대 금지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항상 그래왔다는 듯이 복도에서 창문을 열고 담배를 뻑뻑 태워댔어요.
"여기서 담배 태워도 되요?"
"예. 되요."
그래서 저도 그 사람들과 같이 창문을 열어놓고 복도에서 담배를 태웠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을 보며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 경찰이 오더니 표를 내놓으라고 했어요.
"여기서 담배 태우면 안 되나요?"
"안 되요. 표 내놔요!"
"잘못했어요!"
표를 주지는 않았어요. 왠지 표를 주면 표를 압수당하고 다음 역에서 쫓겨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어요. 그럼 그렇지...모로코, 튀니지에서도 기차 내부에서 흡연 불가였는데 설마 루마니아 기차 안에서 될 리가 없죠. 그런데 그러면 아까 그 놈들은 뭐야? 진짜 흡연 구역에서 당당히 흡연하듯 태워대던데...무조건 잘못 했다고 싹싹 빌자 금연 구역이니 태우지 말라고 경고한 후 갔어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하여간 현지인 말이라고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일이었어요.
기차는 정말 낡고 허름했어요. 그래도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면 객실 문을 잠글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어차피 기차에 사람들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한 칸을 다 차지해도 문제가 없었어요. 문을 잠그고 불을 끈 후 눈을 붙였어요.
쾅쾅쾅! 쾅쾅쾅!
거칠게 문들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국경 심사인가?'
눈을 비비며 불을 켜고 문을 열었어요. 역무원이 우리에게 내리라고 했어요.
"티미쇼아라! 기차 갈아타세요!"
"예?"
표에는 부쿠레슈티발 베오그라드행 티켓이라고만 적혀 있었을 뿐 환승이라고는 적혀 있지 않았어요. 혹시 이 역무원 아저씨께서 뭔가 착각하신 것 아닌가 하고 표를 보여드리자 역무원 아저씨께서는 맞으니 내리라고 했어요.
"일어나요! 여기서 기차 갈아타래요!"
"예?"
후배도 자다가 일어나더니 깜짝 놀랐어요. 졸려서 정신 못 차리고 있는 후배에게 내려서 베오그라드행 기차를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 알아보라고 시킨 후 짐을 챙기기 시작했어요. 꺼내놓았던 짐을 전부 가방에 우겨넣고 가방을 전부 메고 들고 나오는데 후배가 기차를 알아보고 돌아왔어요. 베오그라드를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갈아타는 것이 맞았어요. 정말 3월 추운 밤에서 한바탕 난리를 겪고 기차를 갈아탔어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세르비아는 입국후 반드시 거주지등록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코소보 입국 기록이 있으면 입국 거부된다고 했어요. 우리나라 국민은 세르비아도 무비자. 거주지 등록은 크게 문제가 될 것 없었어요. 매일 국제 이동을 하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르비아에서의 거주지 등록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코소보 입국 기록. 여권 맨 뒷 장에 당당히 찍혀 있는 코소보 입국 및 출국 도장. 이게 걸리면 100% 문제였어요. 한 가지 다행이라면 하늘색으로 흐릿하게 찍혀 있다는 것이었어요.
루마니아 출국 심사는 별 일 없이 끝났어요. 드디어 세르비아 입국 심사. 속으로 정말 긴장되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어요. 무표정하고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여권 2개를 건넸어요. 국경 사무소 직원은 여권을 휙휙 넘겨보았어요.
철컹!
도장을 찍고 여권을 주었어요. 다행히 잘 넘어갔어요. 맨 마지막장까지 보았는데도 그냥 넘어갔어요. 참고로 세르비아 도장은 다른 국가들과는 다르게 매우 투박했어요. 그리고 기차에서 받는 국경 심사는 내릴 필요도 없었고 버스를 타고 갈 때 국경에서 직접 받는 국경 심사보다 훨씬 덜 까다로웠어요.
드디어 세르비아에 들어왔어요. 기차는 세르비아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돌변했어요.
간다!
어어...서네?
간다!
어어...서네?
간다!
어어...또 서?
무슨 기차가 30분을 못 가 계속 멈추었어요. 가다 서다 가다 서다...역이라고 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멈추었어요. 다시 불을 끄고 의자에 드러누웠는데 기차가 설 때마다 잠에서 깨어났어요. 나중에는 기차가 서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어요.
"베오그라드 다 왔다!"
정말 실컷 자고 일어나보니 드디어 기차가 강을 넘어 대도시로 들어가고 있었어요. 시계를 보았어요. 아침 9시 10분이었어요. 분명 기차는 아침 8시 반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밤새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엄청나게 연착해 버렸어요. 그래요. 이게 발칸 유럽스럽죠. 무언가 칼 같이 맞으면 이건 발칸 유럽이 아니에요. 연착, 지연 정도는 당연히 생각해야 열을 덜 받아요. 여기도 칼 같이 계획 세워서 움직이려고 하면 분통 터지는 동네에요.
"다 왔다!"
기차가 드디어 베오그라드 역에 도착했어요. 이때가 아침 10시.
"아닌가? 베오그라드에 기차역이 2개인가?"
분명히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베오그라드역이라고 했고, 표지판에도 베오그라드라고 적혀 있었는데 기차는 막 앞으로 달려갔어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후진했어요. 기차는 뒤로 후진하더니 드디어 베오그라드역에 멈추어 섰어요. 기차에 탄 모든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요. 아까 지나친 역이 바로 베오그라드역.
내려보니 아침 10시 30분. 여기는 불가리아랑 1시간 시차가 또 있었어요. 불가리아, 루마니아는 한국과 7시간 시차, 세르비아는 한국과 8시간 시차. 기차표에 현지 시각으로 도착시간을 적어주는 것을 고려하면 2시간 연착했어요.
짐을 들고 베오그라드 버스 터미널을 찾기 위해 기차역에서 나왔어요. 기차역 바로 옆에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었어요.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헝가리 부다페스트행 버스는 어디에서 탈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나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은 영어를 전혀 몰랐어요.
"그데 에 아브또가르?"
제 말에 직원은 손가락으로 옆을 기리키며 나가서 옆으로 가라고 알려 주었어요. 알고보니 베오그라드역과 베오그라드 버스 터미널은 사실상 붙어 있었어요. 기차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바로 버스터미널.
버스 터미널에 가서 시간표를 보았어요. 시간표에 부다페스트행 버스가 있기는 있었는데 시간은 없었어요. 그래서 매표소 창구로 갔어요.
"아이 원트 투 바이 티켓 투 부다페스트."
직원이 인상을 쓰며 세르비아어로 뭐라고 말했어요.
"아즈 이스깜 다 꾸뺘 드바 빌레띠 도 부다페스트!"
불가리아어로 해도 대충 알아듣길래 불가리아어로 말했어요. 직원은 인상을 팍 쓰면서 구석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그래서 인포메이션 센터로 갔어요. 그러나 인포메이션 센터 직원도 영어를 못 알아들었어요. 그래서 또 불가리아어로 위에서 말한 대로 말했어요. 그랬더니 없다고 했어요.
어쩔 수 없이 기차역으로 돌아갔어요. 일단 베오그라드까지 올라오기는 했는데 바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올라갈지 아니면 구 유고 연방 국가들을 돌아보고 갈지 고민이 되었어요. 여행을 시작하기 얼마 전, 우크라이나가 우리나라 국민들에 대해 일방적으로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는 글을 보았어요. 그래서 마음 한 쪽에는 우크라이나를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우크라이나 가게 된다면 여기로 돌아오기는 매우 고약하겠지? 그냥 구 유고 연방 국가들부터 돌아봐야겠다.'
베오그라드는 발칸 유럽 교통의 요지에요.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발칸 유럽 국가들로 이동이 가능하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와도 바로 이어져요. 구 유고 연방 국가들을 돌아다니려면 지금 결정을 해야 했어요. 혹시나 부다페스트를 간 후 구 유고 연방 국가들을 돌아다니고 싶어진다면 결국 여기로 돌아와야 했어요. 이건 시간적으로 보나 금전적으로 보나 매우 불합리한 일이었어요.
일단 환전을 하고 짐을 베오그라드역 수하물 관리 센터에 맡긴 후 버스 터미널로 다시 돌아왔어요.
너도 모르냐? 나도 모른다? 어쩔래?
아래 적힌 것은 '인포르마찌예'. '인포메이션 센터'라는 뜻인데 둘 다 몰라요. 진짜 발칸 유럽 돌아다니며 정말 가슴에 와닿았던 표지판이었어요. 제가 다닐 때에만 유독 그랬던 것인지, 원래 영어를 잘 모르는 것인지 영어를 아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툭하면 서로 의사소통 불가.
영어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말 다 통해!
우리나라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에요. 영어는 국제어이므로 반드시 잘 해야 한다며 영어만 알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는 말이 통한다고 하는데 제가 다녀본 결과 저 말은 정말 구라에요. 제가 이 여행을 하는 동안 발칸 유럽은 영어로부터의 청정지역이었어요. 영어가 정말 지지리 안 통하는 동네였어요. 물론 지금은 다르겠죠. 이 여행을 할 때는 2009년. 하지만 이때는 비수기여서 그랬는지 이 지역 사람들이 영어에 관심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영어가 정말 안 통했어요. 후배의 유창한 영어보다 저의 초 저급 저질 불가리아어가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버스터미널로 돌아갔어요. 베오그라드에서 구 유고 연방 각지로 가는 버스는 밤 늦게까지 많이 있었어요. 세르비아와 철천지 원수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로 가는 버스도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버스 막차 시간만 확인한 후 시내로 나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