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07 알바니아 티라나 스칸데르베그 광장, 엣헴 베우트 모스크

좀좀이 2011. 12. 2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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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님, 우리 내일 반드시 오전 9시 차 알아봐야 해요."

"예."


이렇게 서로 약속을 하고 잤어요. 그러나 눈을 떠보니 8시 반이었어요. 부리나케 씻고 후배 방 방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어요.

"설마 아직도 자나?"

어제 빨래한 것은 전혀 마르지 않았어요. 히터가 없어서 밤새 오들오들 떨면서 잤어요. 온몸이 언 것 같았어요. 일단 짐을 다 챙기고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50분이었어요.


복도에 나오니 청소가 시작되었어요. 후배 방 방문도 열려있길래 가 보았어요.

"저 아까 일어나서 잠깐 아래 내려가 둘러보고 왔어요. 그런데 아직도 회사 문 안 열었어요."

"예."


설마 버스가 아침 9시 버스만 있겠어요. 정말 편하게 생각하고 일단 밖으로 나왔어요.


밖은 눈부시게 맑았어요. 밤새 오들오들 떨고 자서 옷을 두껍게 입고 나왔는데 너무 더웠어요. 버스 회사들을 찾아다니는데 문을 제대로 연 곳도 없고 그리스 가는 버스는 더더욱 없었어요.

"스칸데르베그 광장으로 가요."


일단 스칸데르베그 광장 앞에 있는 유명한 모자이크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짐이 너무 무거워...

도저히 끌고 다닐 수 없어...


길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짐이 너무 무거웠어요. 저는 갑자기 터키로 나와 여행을 시작하게 되어서 짐을 하나도 한국으로 부치지 못했어요. 더욱이 후배를 통해 터키에서 부치는 방법을 알아보았더니 운송비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그 돈이면 여행을 보다 풍족하게 다닐 수 있었어요. 더욱이 체코까지 간 후에는 프랑스에 들어갈 계획이라 돈을 무조건 아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운송비에 돈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팔 끊어질 것 같아...

가방 끄는 것 자체가 너무 무거워서 힘든데 위에 올려놓은 난민가방 비슷한 가방은 툭하면 아래로 떨어졌어요. 그것도 부족해 땅이 울퉁불퉁해 그 진동이 전부 팔로 전해졌어요. 터키와 그리스에서는...아니,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후배님 앞에서 짐 끄느라 힘든 척 하기 싫어서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끌고 다녔지만 이것은 거의 한계상황이었어요. 더욱이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산보조차 전혀 하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걸은 걸음이 100보가 될지나 모르겠어요. 그랬던 제가 갑자기 운동을 하다보니 팔이 끊어질 것 같았어요. 더욱이 등에 맨 가방도 무거워서 어깨도 아프고 숨도 쉬기 어려웠어요. 어깨에 맨 가방과 끌고 다니는 가방 사이에 제가 끼여서 납작해지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아침 일찍 나와서 아직은 약간 한산했어요.



티라나 와서 이 사진 안 찍으면 인증샷이 없는 것임. 이건 반드시 찍어주어야 해요. 후배가 이 건물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는데 저도 몰라서 모르겠다고 대답했어요.


버스표를 알아보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어차피 스칸데르베그 광장 근처였어요.



이런 골목길 비슷한 길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 정도 길이면 티라나에서 보통 길은 되요. 절대 작은 길이 아니에요.

"테살로니카행 있어요?"

"마ㅓㅇㄴㄹ;ㅓㄴ;ㄹ"

역시나 오늘도 영어 안 통해요. 그래도 버스회사에 지도가 걸려 있고 '버스'는 알아들어서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어요. 서로 음성만으로는 대화불능이라 종이에 썼어요. 10시 반에 그리스행 버스가 있었어요.


우리 나온지 이제야 한 시간?

티라나를 본 것이 없었어요. 스칸데르베그 광장 하나 본 것...그것도 밤에 본 것이 전부였어요. 아무리 티라나가 볼 곳 없는 곳이라고 해도 너무 아쉬웠어요.

"어떻게 할까요?"

"글쎄요..."

"아 몰라, 짐부터 다시 싸야겠어요."

짐을 다시 꾸리기 시작했어요. 짐을 가장 무겁게 만드는 것은 정장과 사전, 그리고 그 외 책이었어요. 마침 눈에 띈 것이 있었어요.


한아사전

저는 이 사전 안 써요. 포켓 영아사전도 있고 제대로 된 불아사전도 있어서 이것은 쓸 일이 많지 않아요. 일할 때에는 요긴하게 썼지만 아마 더 이상 쓸 일이 없을 거에요. 그리고 저자가 사전을 너무 안 좋게 만들었어요. 아한사전은 정말 잘 만들었어요. 이것은 정확히 뜻과 단어가 일치해서 별로 손 대고 생각하고 할 것 없이 바로 사전을 이용해 번역하면 되요. 하지만 한아사전은 꽤 엉망이에요. 마침 후배가 복수전공으로 아랍어를 하신다기에...


"선물이에요."

한아사전을 드렸어요. 아랍의 먼지가 뭍은 한아사전이었어요. 전임자도 한아사전은 다른 사람 주고 나왔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으로 귀여운 여자후배가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데 같이 여행다녀서 선물해줄 것도 없던 차에 참 좋은 것이 등장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실용아랍어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한 권을 주었어요. 책이 빠지니 약간 가벼워진 것 같았어요. 앉아서 콜라 마시고 담배 태우며 아픈 팔을 달래주다보니 시간은 10시 반이 거의 다 되었어요.

"어떻게든 되겠죠."

아주 늘어터진 근성. 아랍에서 배운 '어떻게든 돼', '내일 되겠지' 정신으로 이 상황에 대처하고 있었어요. 설마 걸어나가기야 하겠어요. 만약 정말 버스가 없다면 1박 더 하고 그냥 아침 일찍 나와 버스 타고 내일 떠나면 되는 것이죠.



정말 맑은 티라나. 거리에 사람들도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보니 밤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작고 볼 것 없어 보이는 모스크와 시계탑. 시계탑은 고장나서 시계가 아예 움직이지 않아요. 이 모스크는 엣헴 베우트 모스크 Xhamia e Et'hem Beut 로, 티라나에서 상당히 유명한 모스크에요.


광장에서 일단 왔던 길로 돌아갔어요. 숙소~스칸데르베그 광장쪽에 여행사들이 몰려 있었거든요. 가는 길에 가판대 앞에 코소보행 버스가 서 있었어요.


"이거 언제 가요?"
"오늘 밤 6시요."


영어 하는 사람을 또 만났어요. 이 사람은 택시로 가면 오후 2시에 갈 수 있고, 거기에서 국경을 넘어가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냥 버스에서 자고 갈 생각이어서 무작정 코소보를 가기로 했어요. 문제는...


비자!


코소보 비자도 없고 마케도니아 비자도 없어요. 말 그대로 비자 문제로 걸리는 두 곳을 한 번에 다 통과해야 해요.


"국경에서 자면 되죠."


해맑게 웃으며 말씀하시는 후배님. 아직 상황이 와닿지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말이 국경에서 자는 것이지 국경에서 돌아나오는 것 자체가 일이었어요. 더욱이 제 짐을 끌고 그러는 것은...날도 추워서 밖에서 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당일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조건 코소보를 가는 방법 외에는 없었어요.


"그러면 코소보 가요."


너무나 쉽게 결정. 사실 절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단순. 쫓겨나면 어떻게든 또 될 거라는 엄청난 알 수 없는 자신감과 믿음이 있었어요.



스칸데르베그 동상이 있는 쪽에 서 있었어요. 스칸데르베그 동상과 알바니아 국기가 정말 눈에 확 띄어요.


스칸데르베그 광장에서 사원 옆길로 가면 광장이 나와요.



티라나 해방 기념비라고 적혀 있었어요. 알바니아는 2차세계대전 중 빨치산이 이탈리아군을 물리쳤어요. 그런데 동상 얼굴이 많이 눈에 익었어요.


요 아저씨...


전설의 '엔베르 호자' 아저씨에요. 알바니아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전설의 독재자에요. 빨치산을 이끌어 알바니아를 해방시킨 후 사망 직전까지 철권통치를 휘두르고 주변 국가들 및 강대국과의 관계가 언제나 안 좋았던 알바니아 정부를 이끌었어요. 이 아저씨랑 얼굴이 너무 닮았어요.



이 동상이 있는 광장이에요. 여기에서 길이 또 갈라져요.



정말 따뜻한 봄날의 티라나. 공기가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었어요. 차가 안 좋아서인지 길에서 먼지가 날려서인지 둘 다 때문인지 공기는 썩 좋지 않았어요. 그래도 걸어다닐 만 했어요.



차만 좀 없다면 너무나 돌아다니기 좋은 날. 그러나 짐은 절대 돌아다니는 데에 적합하지 않았어요.


"잠깐만!"


도저히 짐을 끌고 다닐 수 없었어요. 도로가 울퉁불퉁했어요. 그냥 가방을 끌고 다녀도 무거워서 힘든데 이건 무거운게 덜덜덜 떨리니까 훨씬 더 힘들었어요.


"버릴 건 버려야지."

하지만 버릴 것이 많지 않았어요. 마침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어요.

"슬리퍼 따위 필요 없어. 그냥 신발 신고 버티면 돼."

진짜 10g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발악했어요. 도저히 짐이 무거워서 돌아다닐 수 없었어요. 이것 저것 다 버리고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후배한테 이것 저것 떠넘긴 후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수도라지만 아직도 이렇게 허름한 건물도 남아 있었어요. 일반 주택가도 돌아다녔는데 확실히 허름했어요.



큰 길가에는 알록달록하고 예쁘게 꾸민 곳도 있었어요. 여기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단, 차가 너무 많았어요.


거리에서 조각피자 하나 사 먹었어요. 가격은 너무 착했어요. 조각 피자 하나가 워낙 커서 한 끼로 충분했어요. 조각 피자를 하나 사 먹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었어요.


"이제 뭐 할까요?"

마땅히 할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스칸데르베그 광장으로 돌아가서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고 카페에서 차나 마시며 6시까지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요.



타바케 다리. Ura e tabakavë 에요. 유명한 다리라는데 실제 보니 그냥 평범한 다리. 엽서에는 완전 아름답게 나와 있던데 거짓말이었어요. 그냥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평범한 다리였어요. 여기를 건너려다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어졌어요.


"우리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짐 다 끌고 저 다리 건너기로 해요!"


진짜 가위바위보 지면 대박. 저렇게 울퉁불퉁한 다리를 짐을 끌고 건너면 팔이 엄청나게 얼얼해요. 그래서 진지하게 가위바위보를 했어요. 제가 이겼어요.


"잘 끌고 와요!"


짐을 후배에게 넘기고 다리를 건넜어요. 후배는 낑낑거리며 제 짐을 끌고 오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을 본 한 알바니아 청년이 후배의 짐을 들어주었어요. 정말 민망했어요.


스칸데르베그 광장으로 돌아왔어요.



"왜 모스크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지?"



생각해보니 오늘은 금요일. 금요일은 무슬림들이 예배 보는 날이에요. 모스크가 작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까지 예배를 보고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엔베르 호자 시절 숨어서 믿던 사람들일까요? 이 장면을 보자 알바니아가 이슬람 국가라는 사실이 확 와닿았어요.


우체국에 갔어요. 우체국은 좁은데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아서 미어 터지는 것 같았어요.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

사람들이 편지를 부치기 위해 많은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대체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나 살펴 보았어요. 사람들은 무슨 조그만 카드를 들고 와서 은행에 돈을 내고 있었어요. 왠지 전화요금 납부하러 온 것 같았어요. 말이 안 통해서 보통 우표 사는데 한참 걸렸어요. 사람들이 제게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도와주려 했는데 그 사람들과도 말이 한 마디도 안 통해서 정말 어려웠어요. 손가락으로 우표를 가르키고 보여달라고 했는데 그쪽에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서 서로 우왕좌왕. 어쨌든 우표를 간신히 사고 카페에 갔어요.


홍차 두 잔을 시켜 마시는데 역시나 말이 안 통했어요. 어떻게 손짓 발짓 하며 알아낸 알바니아어는 'Sa lek është'. '얼마에요?'라는 말이었어요. '사 렠 어슈트'.


코소보행 버스표를 구입하고 홍차까지 먹고 이제 할 일도 없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남은 돈을 환전하러 환전소에 갔어요. 100달러를 환전했는데 둘이 숙박비 (호텔방 2개)에 버스비, 그 외 모든 비용을 다 합쳐도 2000레크 넘게 남았어요. 두 명이 쓴 돈 모두 제 돈 100달러 환전해서 사용했는데도 이 정도였어요. 환전을 해야 하는데 돈을 계산하기 귀찮아서 있는 레크화 전부를 꺼내 달러로 바꾸어달라고 했어요.

"더 없어요?"

"예."

환전소 주인 표정이 밝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자투리가 애매해서 1달러를 주기도 그렇고 안 주기도 그랬기 때문이었어요. 환전소 주인 아저씨께서는 레크화를 다 가져가고 1달러를 더 주셨어요. 정말 친절하고 물가 저렴한 알바니아.


정말 말이 하나도 안 통해서 고생했지만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18시. 코소보행 버스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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