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11 불가리아 소피아

좀좀이 2011. 12. 3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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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표를 산 후 버스 사무실 2층 대합실로 올라갔어요.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몸을 녹이고 있는데 동양인 여성 두 명이 들어왔어요.


'중국인인가?'


순간 경계를 하기 시작했어요. 중국인과 엮이는 것은 무조건 최악. 특히 이런 동유럽에서는 특히 안 엮이는 것이 정신 건강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좋아요. 아랍과 동구권에서 중국인은 최악이에요. 과장 하나 안 보태고 거의 바퀴벌레 대하는 수준이에요. 문제는 얘네들이 동양인은 무조건 '일본인' 아니면 '중국인'으로 생각하는데 일본인은 부자이고 중국인은 불법체류자라고 아주 편협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어요. 단적으로, 러시아 스킨헤드들의 주요 공격 대상은 중국인들이에요. 그런데 얘네들이 동양인을 구분하는 능력이 너무 떨어져서 동양인은 무조건 공격한다고 해요. 아제르바이잔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져서 한국인들이 공격받는 일도 있었어요. 정말 아쉬운 것은 한국에 대해서는 2002 월드컵과 삼성 밖에 모른다는 것.


중국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은 여행 전부터 이때까지 계속 보고 있었어요. 이건 민족 차별이니 고정관념이니 뭐니 하는 탁상공론적 문제가 아니었어요. 당장 저의 여행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문제였어요. 이때는 더욱이 비수기라서 관광객도 별로 없었어요. 여담이지만 이 여행에서 '너 중국인이지?'라고 말하며 시비 걸러 오는 사람들을 질리도록 겪었어요. 물론 '아니, 나 한국인이야'라고 말하면 별 일 없이 가거나 '삼성!'이라고 외치고 갔어요.


"한국인이세요?"

"한국인이세요?"


경계와 긴장을 풀었어요. 알고보니 둘은 이스탄불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했어요.


"불가리아에 대해 잘 아세요?"

"아니요. 저희는 츠크쉬하러 가요."


'츠크쉬'란 터키에 머무는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용어에요. 우리나라 국민은 터키에 무비자로 90일 머무를 수 있어요. 원래 장기간 터키에 머물기 위해서는 비자를 받아야 하지만, 비자 받기 번거롭고 귀찮기 때문에 적당히 머물다가 다른 나라로 넘어갔다 와요. 그러면 다시 재입국일로부터 90일까지 머무를 수 있어요. 이렇게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넘어갔다 오는 걸 터키에 머무르는 한국인들은 '츠크쉬'라고 해요. 터키어로는 çıkış, 의미는 '나감'. 터키 출국 도장에 저렇게 찍혀 있어요.


둘은 우리에게 같이 다니자고 했어요. 그 이유는 후배가 앙카라에서 챙겨온 한국어로 된 '동유럽 6개국' 가이드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이 네 명의 한국인 중 불가리아에서 글자라도 읽고 아주 기초적인 회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밖에 없었어요. 저와 후배는 곰곰이 생각했어요.


'저 사람들과 같이 다닐까?'


둘이 다니는 것보다는 넷이 다니는 것이 아무래도 나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같이 다니기로 했어요.


버스에 올라탔어요. 국경까지는 금방이었어요. 터키쪽 국경 심사는 별 것 없었지만 불가리아쪽 국경에서는 제 여권 속 사진과제  얼굴을 계속 번갈아 쳐다보며 이것 저것 물어 보았어요. 여권 사진과 제 얼굴이 달라 보였나 봐요.


아침. 불가리아 소피아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저는 루마니아는 정말 가고 싶지 않았어요. 후배가 가져온 여행 책자를 정독했는데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는 큰 매력도 없는데다 정말 위험하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했어요. 부쿠레슈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인민궁전. 그거 하나 보러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버스로 소피아에서 베오그라드로 가는 것은 분명 무리였어요. 버스 막차가 오후 4시에 있었어요. 기차는 아예 알아보지 않았어요.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버스로만 다니고 싶었어요. 아무리 버스를 알아본다고 해도 없는 버스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어요. 결국 밤 0시 30분에 소피아에서 출발하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행 버스를 타기로 하고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지만 영어를 아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의 초 저급 불가리아어로 길을 물어보고 트램 표를 구입했어요. 일단 우리가 갈 곳은 스베타 네델랴 광장. 제가 불가리아어로 트램 표를 구입하는 것을 본 일행 세 명은 저를 매우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어요. 저를 대단한 인물로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정말 민망하기도 했어요. 제가 불가리아어를 유창히 하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저도 불가리아어를 정말 못했거든요. 불가리아어로 숫자 셀 줄 알고 '얼마입니까', '고맙습니다' 같은 거 말할 수 있는 정도였어요. 즉, 여행을 위한 최소한 중 최소한의 회화만 가능했는데 셋은 제가 불가리아어를 잘 한다고 했어요. 생각해보면 그때 표지판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저 밖에 없었어요.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트램은 자기가 자기 표에 개찰을 해야 해요. 이 노란색 통이 바로 개찰하는 기구에요. 절대 '기계'가 아니에요. 이 통에 포를 집어넣고 아래에서 위로 힘껏 올리면 '드드득' 소리와 함께 개찰이 되요.



스베타 네델랴 광장에 있는 동상. 검은 옷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세련되어 보였어요.


스베타 네델랴 광장에 있는 구 공산당 청사.



터키에서 만난 일행들이 소피아 대학교에 가 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같이 가기로 했어요. 지도상으로 소피아 대학교는 먼 것 같아 보였지만 축척을 확인해 보니 그다지 먼 길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일단 걸어가 보기로 했어요.



스베타 네델랴 광장에서 직진하면 러시아 교회도 나오고 알렉산드르 넵스키 교회도 나온다고 했어요. 그래서 무조건 직진.



조금 걷자 알렉산드르 넵스키 사원이 보였어요.



"우와...아름답다!"


둥글둥글하고 푸근한 느낌과 화려한 느낌을 전부 가지고 있는 건물이 보였어요. 뚱뚱한 귀족 부인의 이미지랄까요? 당장 가고 싶었지만 일단 지금은 소피아 대학교에 가는 길. 그래서 소피아 대학교를 갔다 온 후 가기로 했어요.



"이거 키릴과 메토디 국립 도서관이네요."

일행을 위해 건물명을 읽어주고 해석을 해 주었어요. 벽에 적혀 있는 것은 Народна Библиотака Кирил и Методий. 직역하면 '키릴과 메토디 인민 도서관'.



도서관 앞에는 키릴 문자를 만들어 동유럽에 보급한 키릴과 메토디 형제 동상이 있었어요. 이 사람들이 불가리아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스 문자를 토대로 슬라브인들이 쓰는 슬라브어에 맞게 알파벳을 만들어 보급했는데 이게 바로 오늘날 동유럽에서 사용하는 키릴 문자. 라틴 알파벳과 비슷하지만 달라요. 아니, 라틴 알파벳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전혀 엉뚱한 소리를 내게 되요. p는 라틴 알파벳에서는 'ㅍ'이지만 키릴 알파벳에서는 'ㄹ'에요. n은 라틴 알파벳에서는 'ㄴ'이지만 키릴 알파벳에서는 'ㅍ'에요. 뭐 이런 식이에요. 그나마 불가리아어는 적힌 대로 읽으면 되지...



소피아 대학교 가서 찍은 사진은 이것 뿐이에요. 무언가 특별히 찍을 사진이 없었어요. 잘 보이지는 않지만 뒤에 보면 비토샤 산이 보여요. 불가리아어를 공부할 때 교재에 나와서 기억하는 것 중 하나에요. 나머지 하나는 벨리코 터르노보.


다른 일행들은 소피아 대학교를 보며 좋아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어요. 솔직히 좀 낡고 시설이 불편한 대학교라는 생각 뿐이었어요.


대학교 도서관도 갔어요. 책은 많지 않았는데 정말 오래된 책이 많이 보였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1888년 발행된 오스만어-불가리아어 사전이었어요. 이때면 터키어가 라틴 알파벳으로 문자개혁을 하기 전이었어요. 세 명이 터키어를 할 줄 알았는데 전부 읽지를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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