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30 헝가리 부다페스트 중앙시장, 부다페스트 야경

좀좀이 2012. 1. 8.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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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을 보고 나니 슬슬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길을 걷다 공예 박물관 앞을 지나가게 되었어요. 지붕은 그 유명한 졸나이에서 만든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어요. 이건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주변 건물들과 안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사진에서 화려하다기 보다는 지저분하게 보이는 이유는 찍는 사람이 실력이 없어서...사진이 안 나오면 기계 탓 할 게 아니라 제 능력을 탓해야죠.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중앙시장에 가서 밥을 먹자!


무엇을 먹을지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오늘 식사는 무조건 구야쉬. 전에 왔을 때에는 제대로 된 식당에서 구야쉬를 먹었어요. 그러니 이번에는 진짜 시장에서 파는 구야쉬를 먹기로 했어요.


"우리 이렇게 무작정 걸을 게 아니라 전철 타고 가요."


지도를 보니 우리는 국회의사당에서 중앙시장으로 가는 길을 지나쳐서 한참 걸었어요. 슬슬 무언가 먹어야할 것 같은데 이 길을 다시 걸어가자니 온 길 되돌아가는 거라 걷고 싶지 않았어요. 게다가 1일권을 샀기 때문에 전철은 무제한으로 타도 상관 없었어요. 공예 박물관 근처 전철역에서 중앙시장 근처의 전철역까지는 지하철 한 정거장이었어요.



전철에서 내려 조금 걷자 중앙 시장이 나타났어요. 중앙시장 앞도 두 번째 오는 것.


"오빠, 아까 카드 잃어버렸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거 해외사용 신청 안 한 체크카드라 별 문제 없지 않을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카드 분실 신고는 해 놓아요."


후배 말대로 해외 사용을 신청하지 않아서 해외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체크 카드였지만 확실히 분실 신고를 해서 사용을 아예 금지시켜 버리는 것이 좋을 거 같았어요. 아침에는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나고 당장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이제는 지갑 일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었어요. 급히 분실신고를 해야한다는 것보다 한국 가서 잃어버린 주민등록증과 카드를 모두 다시 재발급 받아야한다는 귀찮음 뿐이었어요. 


그래서 근처 슈퍼마켓에 가서 국제 전화카드를 구입한 후, 가장 친하고 믿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시계를 보니 한국은 얼추 새벽 1시. 설마 벌써 잠들지는 않았겠지? 이 친구는 잠귀가 밝으니 아마 전화를 받을 거야.


"여보세요."

"응. 나야!"

친구가 전화를 받았어요.


"너 어디? 지금 여행중?"

"응. 지금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부럽다!"

친구와 간단한 인삿말을 아주 짧게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어요. 국제 전화카드의 금액이 언제 다 될 지 몰랐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어요.


"나 지갑 도둑맞았어."

"정말? 괜찮아? 집에 올 때 어떻게 올 건데?"

"돈은 있어. 지갑에 카드하고 신분증만 있었거든."

"여권은 있어?"

"응. 지갑에 체크 카드 2장이랑 직불 카드 1장 있었어."

"분실신고 해야할 거 아니?"


눈치가 매우 빠른 친구. 그래서 친구에게 은행과 주민등록번호와 카드 비밀번호를 알려 주었어요. 친구가 계좌 번호와 카드 번호도 불러달라고 했는데 그것은 모르겠다고 했어요. 진짜로 몰랐거든요. 친구는 자기가 대신 분실신고를 해 주겠다고 했어요. 그거 때문에 전화한 것이었는데 친구가 먼저 알아서 해주겠다고 해서 정말 고마웠어요.


"이거 돈 남았는데요? 집에 전화나 걸어요. 집에서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친구에게 확인 전화 안 걸어봐도 되요?"

"걔라면 잘 할 거에요."


그래서 후배가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어요. 돈이 정말 조금 남아서인지 몇 마디 하자 전화가 바로 끊겼어요. 후배는 제게 카드를 하나 더 사서라도 친구에게 다시 확인 전화 하는 게 어떻겠냐고 재차 물어보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 친구를 믿었어요. 한 두 해 겪어본 친구도 아니고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든 계좌 비밀번호를 알려주든 무엇을 알려줘도 괜찮은 친구였고 일도 꼼꼼히 잘 하는 친구라 당연히 잘 처리해줄 거라고 믿었어요.


한국 돌아와서 친구 블로그에 접속해보니 친구가 제가 확인전화 다시 안 걸어서 그때 제대로 화가 났었더라구요...제가 당연히 확인 전화 걸 줄 알고 밤 늦게까지 전화를 기다렸대요. 제가 하도 전화를 안 해서 자기가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당연히 공중전화로 걸었기 때문에...결국 제가 연락을 안 해서 기다리다가 스카이프로 메세지를 남겨놓고 잤대요. 그런데 여행 중 스카이프 접속을 단 한 번도 안 했기 때문에 그 메세지는 그 친구에게 잘 귀국했다고 전화한 후 한참 뒤에야 보게 되었어요.


전화를 끊고 시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고추, 마늘, 향신료 파는 가게. 빨간 고추와 마늘을 엮어서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이 신기했어요.



이렇게 고추와 마늘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파는 가게는 많이 있었어요. 재미있는 것은 마늘 냄새가 한국의 마늘 냄새와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말로 표현을 못 하겠는데 냄새를 딱 맡으면 마늘 냄새라는 것은 알겠지만 우리나라 마늘 냄새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여기는 청과문, 야채 파는 곳.



햄, 소시지 파는 가게.



저는 살라미를 안 좋아해서 신기하기는 했지만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시지는 우리나라 비엔나 소세지, 후랑크 소세지, 야채 소세지, 김밥햄이에요.



1층은 식료품 시장이었고 2층은 의류 및 기념품, 공산품 파는 시장이었어요. '시장'이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매우 적었어요. 혹시 문 닫을 시각이 다가와서 그런가? 2층으로 올라가 구야쉬를 먹었어요. 가격은 저렴하고 맛도 좋았지만 건더기는 거의 없었어요. 전날 먹은 집에서는 건더기가 매우 많았는데 여기는 그냥 국물을 후루룩 마셔도 상관 없을 정도였어요. 확실히 식사로는 별로였어요. 아무리 맛있어도 국물만 마시니 배가 찰 리가 없었어요. 그래도 요기는 되었어요.


구야쉬를 한 그릇씩 비우고 2층을 돌아다녔어요. 여러 가지 예쁜 기념품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나 가격도 예쁘지는 않았어요.



"이거 진짜 예쁘다!"


정말 구입하고 싶었어요. 구입해서 친구에게 선물로 줄까 고민했어요. 하지만 가격이 정말 너무 안 예뻤어요. 수중에 남아있는 헝가리 현지화 포린트로는 택도 없는 가격이었어요. 그리고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아 있는데 들고 다니기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어차피 헝가리는 또 와야 하니까 그때 다시 생각해 봐야지."


적당히 구경을 하다 시장 문을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밖으로 나왔어요.



중앙시장 바로 옆에는 다리가 있었어요.



그러나 공사중.



멀리 겔레르트 언덕과 언덕 정상에 있는 여신상이 보였어요.


"우리 저기 갈까요?"

"가지 말아요. 저기 또 한참 올라가야 하잖아요."


후배가 가기 싫다고 했어요. 그래서 겔레르트 언덕은 가지 않기로 했어요.



이것은 에르제베트 다리에요. 정말 다리처럼 생겼어요.


기차 시각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어요.




퇴근 시간 길이 막히는 것은 부다페스트나 서울이나 똑같았어요. 거리를 걷다가 배가 살짝 고파서 가게에 들어갔어요. 음료수와 빵을 집어들고 가게를 구경하는데 구야쉬 가루도 팔고 있었어요.


"이거 하나 사 가서 한국서 해먹어야지!"


가루를 흔들어 보았어요. 건더기가 들어있지는 않았어요. 뒤의 설명을 보았는데 전부 헝가리어라서 알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대충 야채랑 고기를 넣고 볶다가 물 붓고 가루 부으면 될 거 같았어요. 그래서 후배 것도 2개 사 주고 제 것도 2개 샀어요.



거리를 걷다 보니 노천 가게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가게 되었어요.



이것 저것 많이 팔고 있었고, 음식을 사서 자리에 앉아 바로 먹을 수도 있었어요. 자리에 앉아서 먹는다고 자리세를 받지는 않았어요.


"우리 여기서 저녁 먹고 가요."


음식을 만들어 파는 가게에 가서 양배추와 소시지를 볶은 음식을 시켰어요. 생긴 것과 냄새는 매우 맛있어 보였어요.


"오빠, 입에 잘 맞아요?"

"음...참 묘한 맛이네요."


먹을만 하기는 했지만 입에 맞는 음식은 아니었어요. 양이라도 적으면 대충 먹어 치울텐데 인심은 후해서 양을 엄청나게 많이 주었어요. 결국 소시지만 골라 먹었어요. 둘이서 소시지만 열심히 골라먹었는데도 배가 불렀어요.


"구야쉬는 입에 잘 맞던데 이건 좀 많이 어렵네요."


맛이 아쉽기는 했지만 배는 채웠기 때문에 나름 만족했어요.



날이 많이 어두워졌어요. 그러나 기차를 타러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었어요.


"저 정말 가고 싶은 곳 하나 있는데..."

"어디요?"


후배가 꽤 피곤해했기 때문에 겔레르트 언덕 가는 것은 취소했어요. 그러나 정말 꼭 가고 싶은 곳, 그리고 꼭 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어요.


"같이 갈 거죠?"

"겔레르트 언덕만 아니라면요."

"야경 보러 가요!"


부다페스트는 야경이 유명해요. 낮의 모습은 프라하가 더 아름답다고 해요. 이제 두 도시 다 보았기 때문에 저만의 비교도 가능해요. 낮의 모습은 프라하가 부다페스트보다는 괜찮아요. 그 이유는 바로 밀도. 프라하는 볼 것이 한 곳에 모여 있어요. 볼 것이 거의 다 카를교를 중심으로 모여 있어요. 그래서 1일권을 살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부다페스트는 엄청나게 크고 볼 것이 여기 저기 산재해 있어요. 1일권 안 사고 걸어 다닌다면 엄청나게 힘들어요. 전철을 타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하루에 다 볼 수 있는 도시도 아니에요. 이동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리기 때문에 하루에 다 보려고 든다면 왕궁의 언덕과 그 근처 밖에 못 봐요. 볼 것 사이는 그냥 평범한 도시의 모습. 그래서 낮의 모습은 프라하가 더 아름답다는 말이 이해는 되어요. 하지만 프라하의 미친 날씨를 겪고 체코 기차에서 지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절대 다시 가고 싶지 않았어요. 문제는 출국하러 또 가야 한다는 사실.


하지만 야경은 몰라요. 프라하의 야경이 유명하다는 말은 많이 못 들었지만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너무나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눈부시다는 극찬은 많이 들었어요. 예상컨데 부다페스트는 분명히 한 번 더 올 예정이었어요. 유로존은 정말 가기 싫었기 때문에 유로존을 피해 다닌다면 결국 프라하로 가는 방법은 부다페스트를 거쳐 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정말 이날 야경을 보고 싶었어요. 다음에 왔을 때 이렇게 날씨가 도와줄지 아니면 프라하처럼 날씨가 저주를 퍼부을지 예측할 수 없었거든요.



시작부터 황홀한 부다페스트의 야경.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하며 세체니 다리를 건넜어요.



"우리 여기서 그냥 올라가죠."


지난번 왔을 때 세체니 다리에서 바로 왕궁의 언덕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케이블카 쪽으로 갔더니 표지판에 왕궁의 언덕 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나왔어요. 문제는...


터널을 지나가야 해!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 한 바로 올라가는 길은 없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터널을 지나갔어요. 바로 옆에서 수많은 차가 매연을 뿜어대며 빠른 속도로 달렸어요. 터널 안은 시끄럽고 공기도 정말 안 좋았어요.


터널을 지나가자 왕궁의 언덕 정상으로 가는 길이 나왔어요. 잘 포장된 길이라기 보다는 무슨 동네 언덕 산책로에 가까웠어요.


"아이구...담배를 끊든가 해야지."

"오빠, 제발 담배 좀 끊어요!"


언덕을 기어올라가는데 숨이 너무 찼어요. 진짜 평소 운동은 안하고 담배만 열심히 태워댔더니 완전 저질 체력이 되었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후배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 후배는 담배는 안 태우니까 운동부족 때문에?! 동네 언덕 산책로를 무슨 한라산 등산하듯 올라갔어요.



역시 부다페스트 야경!



확실히 왕궁의 언덕까지 올라온 보람이 있었어요. 낮의 모습은 프라하한테 떨어질지 몰라도 야경은 프라하가 게임이 안 되네요.


여기서 잠깐 비교를 위해 다시 보는 프라하 야경 사진.



안 돼! 안 돼! 이건 비교가 안 돼!


야경 만큼은 진짜 부다페스트의 압승이었어요. 후배도 야경을 보며 매우 좋아했어요. 사람들이 야경을 보러 많이 올라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말고 딱 두 명 봤어요. 이것이 바로 비수기의 힘.


이 : "응?"

트 : "응."


아 다. 지...


힘들게 다시 내려왔어요. 왕궁의 언덕에서 야경까지 봤는데도 기차 시간까지 한참 남았어요. 이제는 시간을 보낼 마땅한 것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어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이드북을 뒤져 보았어요.


"영웅광장?"

"거기 또 막 기어올라가는 곳 아니에요?"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요? 가서 그냥 보고만 와요. 올라오는 거든 아니든 그냥 딱 보기만 하고 와요."

"그렇다면 좋아요.


무조건 쉬고 싶어하는 후배. 그래서 무조건 보기만 하고 오기로 했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걷거나, 특히 오르막을 걸어야 한다면 바로 돌아오기로 했어요.


영웅광장은 지하철 1호선 Hősök tere역에서 내리면 갈 수 있다고 했어요. 지도를 보니 거의 붙어 있었어요. 큰 건물이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역에서 나와서 어떻게 생겼는지 휙 보고 다시 지하철을 타러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디어 부다페스트 지하철 1호선을 타러 디아크 페렌츠 테르 역으로 갔어요. 부다페스트 지하철 1호선은 유럽 대륙 최초의 지하철. 전철은 노란색이고 매우 오래 전 전철처럼 생겼어요. 그리고 역과 전철 모두 규모가 매우 작고, 역을 매우 아름답게 꾸며놓았어요. 단, 전철 문도 옛날 전철처럼 '탕'하고 닫혔어요. 우리나라 전철 문 닫히듯 부드럽고 천천히 닫히는 거?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쾅'하고 닫혔어요. 그런 것까지 복원해놓지는 않아도 되는데...



Hősök tere 역 입출구는 매우 낮은 계단 한 개가 전부였어요. 밤이라서 그런지 그냥 여기는 놔두는 건지 모든 역에서 꼼꼼하게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표검사 하시는 할머니들도 안 계셨어요. 전철 승강장에서 나오는 작은 계단 한 개만 오르면 바로 지하철 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구조였어요.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주 밝은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땅 위로 머리가 나왔을 때 굉장한 기념물이 보였어요. 영웅광장이었어요. 정말 웅장함과 힘이 느껴졌어요. 전철역에서 밖을 보는 순간 웅장한 광장의 기념물과 마주하니 그 힘이 우루루 밀려오는 느낌이었어요.


후배도 매우 좋아했어요. 밤에 와서 보니 너무 멋있는데다 얼마 걷지 않아도 되었거든요.


영웅광장을 보고 기차역으로 돌아가 짐을 찾고 또 기차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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