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2022)2023. 1. 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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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하네."

 

찜질방에서 자다가 살짝 추워서 잠에서 깨었어요. 몇 시인지 봤어요. 2022년 10월 6일 새벽 1시 반이었어요. 스마트폰 옆에서 자려고 하니 창가쪽에서 자야 했어요. 창가쪽은 조금 쌀쌀했어요. 스마트폰 옆에서 자는 것을 포기하면 따스한 안쪽에서 잘 수 있었어요. 스마트폰 옆에서 자는 것을 포기하자니 많이 신경쓰였어요. 스마트폰 도난당할 위험은 없었지만 진동 알람 못 듣고 완전히 골아떨어져버리면 하루 일정이 엉망이 될 거였어요.

 

운탄고도 8길만 걷는다면 급할 거 없이 느긋하게 자도 되었어요. 하지만 제 여행 일정은 운탄고도 8길을 다 걷고 동해시로 넘어가서 동해시에서 또 돌아다니는 일정이 있었어요. 이것까지도 어떻게 될 수 있었어요. 깜깜할 때 돌아다니면 어떻게 되기는 할 거였어요. 제 2022년 10월 6일 일정은 이렇게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로 넘어가서 운탄고도 8길을 걷고, 운탄고도 8길 종점인 신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동해시로 이동해 동해시를 돌아다니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운탄고도 8길을 걷기 위해 태백시 황지동에서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로 넘어가기 전에 일정이 또 있었어요. 바로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24시간 카페인 티타임커피와 24시간 식당인 부래실비식당에 가는 일정이 이날 일정의 시작이었어요. 깜깜한 새벽에 식당 가서 밥도 먹고 카페 가서 음료도 한 잔 한 후에 태백버스터미널 가서 도계 가는 첫 차를 타고 도계버스터미널로 넘어가야 했어요.

 

24시간 식당과 24시간 카페는 당연히 깜깜할 때 가야 글 쓸 가치가 있다.

 

24시간 식당과 24시간 카페를 찾아다닐 때 저만의 원칙이 있어요. 바로 24시간 영업이 매우 중요할 때 가서 진짜 심야시간에 영업하는지 확인하는 거에요. 2017년에 24시간 카페를 찾아다닐 때였어요. 24시간 카페가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조금 늦게까지 영업한다고 24시간 카페라고 써놓은 블로그 글이 꽤 많았어요. 아예 영업시간 알아보지 않고 막연히 조금 늦게까지 영업한다고 24시간 카페라고 써놓은 글, 블로그 유입 끌려고 낚시성으로 키워드 집어넣은 글 등 엉터리 글이 꽤 있었어요. 실제로 그런 블로그 글 믿고 갔다가 심야시간에 허탕쳐서 완전히 낭패였던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이게 낮시간이면 열받기는 하지만 괜찮아요. 다른 선택지가 많으니까요. 문제는 심야시간이에요. 심야시간에는 선택지가 별로 없어요. 근처에 아예 없는 경우가 매우 많아요.

 

한편으로는 카페에서 영업시간을 변경하면서 과거에는 24시간 영업했지만 더 이상 24시간 영업 안 하는 곳들도 있었어요. 낮시간이야 장사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카페들이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문을 열고 영업하지만, 심야시간은 꼭 그렇지 않아요. 어느 순간부터 24시간 영업을 안 하고 심야시간에 닫아버리는 곳도 있고, 특정 요일에만 24시간 영업하는 곳들도 있어요. 그래서 24시간 카페 돌아다니며 돌아다니기 전에 무조건 24시간 영업하는지 확인해보고 반드시 심야시간에 가서 재차 확인한 후에 글을 썼어요.

 

여기에 24시간 카페, 24시간 식당 글을 쓸 때 반드시 깜깜할 때 가야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어요. 낮과 밤은 전혀 다른 세계에요. 똑같은 공간이라 해도 낮시간의 공간과 밤시간의 공간은 전혀 달라요. 공간이 낮과 밤에 따라 완전히 바뀌는 모습을 심야시간에 돌아다니면서 정말 많이 봤어요. 24시간 카페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대낮에는 괜찮은 카페인데 심야시간이 되면 이상한 사람, 가출 청소년들이 기어들어와서 버티는 장소로 돌변하는 곳들도 있었어요. 그러니 심야시간에는 어떤 곳인지도 직접 봐야 했어요. 그래야 진짜 의미있는 24시간 카페, 24시간 식당 글이 되니까요.

 

강원도 태백시 24시간 식당인 부래실비식당과 강원도 태백시 24시간 카페인 티타임커피를 야심한 시각에 갔다가 태백시에서 도계 가는 첫 번째 버스를 타고 도계버스터미널에 가는 것이 1차 미션이었어요. 태백시에서 삼척시 도게버스터미널 가는 첫 차는 새벽 5시 50분에 있었어요. 새벽 5시 50분에 태백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는 태백시 통리, 삼척시 도계버스터미널, 신기버스터미널, 삼척종합버스터미널, 동해종합버스터미널을 경유해 강릉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였어요. 이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는 아침 7시에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는지 봤어요. 담요를 빌려서 덮고 자는 사람도 있었고, 매트리스를 가져와서 담요 삼아서 덮고 자는 사람도 있었어요. 찜질방에서 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한 사람당 매트리스 하나를 바닥에 깔고 하나를 담요 삼아서 덮고 자도 매트리스가 많이 남아 있었어요.

 

'동해시 숙소나 예약하자.'

 

일정이 어떻게 될 지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동해시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왔어요. 동해시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이유는 운탄고도1330 8길을 다 걸은 후 신기역에서 바로 서울로 돌아갈지 조금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못 걷겠거나 날씨가 너무 나빠서 도저히 일정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 등도 고려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신기역에서 기차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것도 나름 가치있어 보이기도 했구요.

 

그러나 결정했어요.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동해시 일정도 완주하기로 결심했어요. 폭우가 쏟아지든 태풍이 몰아치든 동해시에서 돌아다니기로 계획한 것을 전부 다 돌아다닐 거에요.

 

여행 떠나기 전에 강원도 동해시 묵호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를 찾아놨어요. 도미토리 1박에 2만원이었어요. 저야 잠을 매우 잘 자기 때문에 도미토리고 뭐고 상관없었어요. 누워서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어요. 야놀자로 들어가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어요. 이로써 이날은 운탄고도1330 8길 다 걷고 동해시 발한동도 탐험하는 일정이 확정되었어요. 바로 당일 숙박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취소하는 순간 위약금 물어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위약금 아까워서라도 무조건 동해시 가서 동해시 발한동 탐험하고 게스트하우스 가서 자기로 했어요.

 

'기차표도 예매할까?'

 

신기역에서 동해역 가는 기차도 예매 안 하고 왔어요. 이 또한 신기역에서 서울로 돌아갈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이었어요.

 

시간이 남아도 문제, 시간이 부족해도 문제

 

신기역에서 동해역으로 가는 기차는 12시 01분, 15시 12분, 17시 10분, 17시 45분, 21시 09분에 있었어요. 이 중 17시 10분 열차는 동해산타열차로 요금이 일반 무궁화호 열차에 비해 2배 넘는 고급 열차였어요. 배차 간격이 매우 길었어요.

 

기차표 예매는 아직 이릅니다.

타임어택으로 다니고 싶습니까?

 

운탄고도 8길을 걷고 동해시로 넘어가서 발한동 대탐험을 할 계획이기는 했지만 운탄고도 8길이 어떻게 될 지 몰랐어요. 길이 쉽다는 거야 카카오맵과 카카오맵 로드뷰로 파악하고 왔어요. 그러나 길이 쉽다고 해서 무조건 빨리 끝낼 길은 아니었어요. 중간에 샛길로 빠질 수도 있고, 시작 자체를 늦게 할 수도 있었어요. 어떻게 진행할지는 저도 가봐야 알았어요. 동해시에서 1박할지는 분명히 결정해야 했지만, 신기역에서 몇 시 기차를 타고 넘어갈 지는 상황 봐서 결정해도 충분했어요.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은 거 다 돌아다니고 보고 싶은 거 다 보고 사진 찍고 싶은 거 다 찍으면서 걸을 건데 운탄고도 8길이 얼마나 저를 유혹하고 잡아끌지 몰랐어요. 이론적으로는 너댓시간이면 충분한 길이었지만 오직 주파에 목표를 둘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동해시 발한동 돌아다녀야 한다고 일부러 엄청 빨리 갈 필요도 없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억지로 시간 질질 끌면서 걸을 것도 없었어요. 진행 속도는 마음 가는 대로 할 계획이었어요.

 

신기역에서 동해역 가는 기차표는 예매하지 않기로 했어요. 신기역에서 동해역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면 운탄고도1330 8길 걷는 여행이 자유로운 진행에서 시간을 반드시 엄수해야 하는 진행으로 바뀌었어요. 동해시 발한동 탐험은 동해시 가기만 하면 깜깜해지더라도 돌아다니면 되니까 어떻게든 진행할 수 있었어요. 동해시 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신기역에서 동해역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면 기차표 시간까지 무조건 신기역으로 가야 했어요. 12시 1분 열차로 표를 끊으면 도계 도착하자마자 바로 부지런히 운탄고도 8길을 걸어야 했어요. 15시 12분 열차로 표를 끊는 것이 제일 무난하기는 했지만 운탄고도 8길은 어려운 길이 아니기 때문에 훨씬 빨리 끝날 수도 있었어요. 그러면 역에서 멍때리고 기다려야 했어요.

 

'다시 자야지.'

 

눈을 감았어요.

 

'엄청 신경쓰이네.'

 

몇 시인지 자꾸 신경쓰여서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어요. 5시 50분 도계행 버스를 타기 전에 24시간 카페와 24시간 식당을 가기 위해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씻고 나갈 계획이었어요.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사우나 가서 다시 온탕에서 몸 좀 지지고 사우나 즐기고 잘 씻은 후 4시에 나올 계획이었어요. 새벽 4시에 나오면 버스 시간까지 2시간 조금 안 되게 여유가 있었어요. 이 정도 시간이라면 여유롭게 아침밥 먹고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만약 깊게 잠들어버리면 모든 게 엉망이 될 거였어요. 3시 반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어요. 저는 한 번 제대로 잠들면 알람이 울려도 절대 못 일어나요. 여행 다닐 때마다 깊게 잠들면 절대 못 일어나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어서 항상 제 시각에 일어나는 것이 제일 스트레스에요. 스스로 한 번 깊게 잠드는 순간 일정이 통째로 망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만약 이제 깊게 잠들면 눈 떴을 때는 아침 9시쯤에 일어나야 잘 일어난 거일 거였어요. 전날도 잠을 별로 못 자고 왔기 때문에 한 번 깊게 잠들면 완전히 골아떨어질 거였기 때문이었어요.

 

'아주 조금만 자야 해.'

 

절대 깊게 자면 안 되고 반드시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자 도저히 잠이 안 왔어요. 눈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눈 뜨고 몇 시인지 확인하기를 반복했어요. 아주 살짝 선잠 들었다가 바로 깨어나서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고 몇 시인지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기를 반복했어요. 10분 정도 잠들기도 하고 5분도 안 되어서 또 눈을 뜨기도 했어요.

 

'내일 이 짓을 또 해야 해?'

 

동해시 일정은 발한동 대탐험으로 끝이 아니었어요. 동해시에도 24시간 카페가 한 곳 있었어요. 동해시 24시간 카페는 묵호항에서 산 너머 바닷가 동네인 어달항 쪽에 있었어요. 이왕 동해시 또 가는 김에 새벽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서 동해시 어달항 옆 어달해수욕장 24시간 카페도 정복할 작정이었어요. 제가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어달해수욕장 24시간 카페까지 거리는 지도상 2.6km 였어요. '지도상으로' 2.6km였어요. 말이 좋아 2.6km이지, 언덕에 위치한 산제골 마을 꼭대기로 기어올라가 묵호동 주민센터를 넘어가서 언덕을 기어내려가서 더 걸어가는 길이었어요. 안 그러면 논골담길을 다 기어올라가서 마찬가지로 묵호동 주민센터를 넘어서 언덕을 기어내려가서 더 걸어가야 했어요.

 

묵호동 주민센터에서 어달동으로 가본 적은 없었어요. 이번에 동해시 가면 동해시를 두 번째 가는 거였고, 지난 번 동해시를 처음 갔을 때는 도째비골 해랑전망대까지만 갔어요. 그래도 산제골 마을, 논골 마을은 다 가봤기 때문에 묵호동 주민센터까지 가는 길이 언덕 올라가는 길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어요. 2.6km니까 새벽 5시 전에 도착하려면 결국 또 새벽 4시에는 나와야 했어요.

 

이따 또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다가 새벽 4시에 기어나올 생각을 하자 한숨이 나왔어요. 혼자 다니니까 이렇게 강행군으로 밀어부칠 수 있기는 한데, 남들이 제 이번 여행 이야기를 들으면 '여행 코스 엄청 빡세게 짜는 인간'이라는 시뻘건 악명에 진홍색이 더 추가될 거였어요.

 

'어달은 대체 뭐가 있길래 24시간 카페가 있어?'

 

갑자기 밀려오는 의문과 분노.

 

대체 어달리에 뭐가 있길래 내 일정을 이렇게 빡세게 만드는가?

 

강원도 동해시는 한 번 여행을 간 곳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여행기를 쓴 동네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동해시 서부 삼화동 등 산지 지역을 제외한 동부 해안가는 크게 남쪽 북평과 북쪽 묵호로 나뉘어요. 이 구분은 동해시가 북쪽 명주군 묵호읍과 남쪽 삼척군 북평읍을 합쳐서 1980년에 탄생한 도시이기 때문이에요. 여기에서 다시 보다 세분화하면 남쪽부터 추암, 북평, 천곡, 묵호, 망상으로 나눠볼 수 있어요. 동해시 여행 계획 짤 때 서부 해안 지역은 이렇게 다섯 구역으로 나눠서 접근하면 일정 짜기 매우 편해요.

 

어달동은 묵호와 망상 사이에 있어요. 묵호도 아니고 망상도 아니었어요. 묵호에서 해안가 따라 더 올라가면 어달이 나오고, 어달에서 더 올라가면 대진이 나오고, 대진에서 더 올라가야 망상이 나와요.

 

어달동과 대진동은 하나도 안 유명한 곳이었어요. 추암은 추암 촛대바위와 러시아 대개타운이 있어요. 북평은 북평5일장과 동해역, 동해항이 있어요. 천곡은 천곡황금박쥐동굴이 있는 동해시 중심지에요. 발한동과 묵호동을 합친 묵호는 묵호항, 묵호역, 논골담길이 있어요. 망상은 망상해수욕장이 있어요. 하지만 어달, 대진은 포구와 작은 해수욕장이 있다고 지도에 나오기는 했지만 거기 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았어요. 추암, 북평, 천곡, 묵호, 망상 중 한 곳에 24시간 카페가 있었다면 인정해요. 하지만 하필 어달에 24시간 카페가 있었어요.

 

'추암이나 북평, 망상 아닌 게 어디야.'

 

왜 하필 있을 거 같은 묵호, 천곡 같은 곳에 없고 동해시 여행기 다 쓰도록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어달에 24시간 카페가 있는지 의문이었어요. 묵호에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게스트하우스에서 슬슬 기어나와서 잠깐 다녀오면 딱인데요. 깜깜한 어둠 속에서 꼭 언덕 등산까지 해야 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하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나마 어달에 있으니까 갈 엄두라도 내지, 나머지 추암, 북평, 천곡, 망상에 있었으면 묵호에서 1박하면서 깜깜한 심야시간에 갈 엄두 자체를 못 냈을 거였어요.

 

 

찜질방 불은 꺼져 있었어요. 사람들은 누워서 자고 있었어요. 사람이 없는 쪽으로 누워서 태백시 24시간 찜질방인 성지사우나 찜질방 내부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2022년 10월 6일 새벽 2시 55분이었어요.

 

'조금이라도 더 자야 하는데...'

 

시간이 갈 수록 반드시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더 심해졌어요. 강박이 더 심해질 수록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잠은 자야 하지만 깊게 잠드는 순간 끝이었어요. 새벽 3시 반에는 무조건 일어나야 했어요. 스마트폰 알람을 소리로 하고 자면 새벽 3시 반에 일어날 수는 있을 거였어요.

 

'새벽 3시 반에 알람 맞춰놓으면 미친 거지.'

 

혼자 집에서 자고 있다면 새벽 3시 반에 알람 맞춰도 상관 없어요. 그러나 여기는 찜질방이었어요. 찜질방에서는 아예 다 자라고 불까지 꺼놨어요. 사람들 모두 곤히 자고 있었어요. 이런데 새벽 3시 반에 알람 울려봐요. 세상에 이런 민폐도 없을 거고 짜증에 욕이 사방에서 들려올 거였어요. 누가 새벽 3시 반에 기상 알람 맞춰놔요.

 

스마트폰 알람을 소리로 하지 않고 진동으로 맞춰놓고 베개 바로 옆에 놓기는 했지만 진동 따위야 깊게 잠들면 전혀 몰랐어요. 결국 3시 반에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야 했어요. 3시 반에 그 어떤 도움 없이 자력으로 기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잠을 잘 수 없었어요.

 

'4시간 조금 넘게 잤으니까 오늘은 괜찮아.'

 

다행히 아까 찜질방 들어와서 얼마 안 가서 바로 골아떨어졌어요. 꽤 깊게 잤어요. 4시간 조금 넘게 잤으니 동해시 게스트하우스 들어갈 때까지는 안 자고 버틸 수 있었어요. 그 정도야 '아까 한 번 잤잖아'라고 자기최면 걸며 버틸 수 있었어요. 너무 피곤하면 기차에서 잠깐 눈을 붙일 수도 있었구요.

 

이게 더 돌아버리겠다.

 

3시가 넘어가자 이제 진짜 돌아버릴 지경이 되었어요. 일어나야 하는 시각까지 30분 채 안 남았어요. 찜질방이 시끄럽거나 추워서 못 자는 것이 아니었어요. 순수하게 반드시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도저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어요. 무슨 물고기가 잠을 자는 것처럼 아주 잠깐 눈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건지 선잠 자는 건지 분간 안 되게 있다가 바로 눈 뜨기를 반복했어요.

 

"아, 그냥 일어나야지."

 

새벽 3시 20분 조금 넘었어요. 혼자 잠 자기 위한 사투도 아니고 잠 안 자려는 사투도 아니고 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를 사투를 끝냈어요.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매트리스와 베개를 정리했어요. 베란다가 있어서 잠시 문 열고 나가봤어요. 베란다는 창으로 막혀 있었어요.

 

'어우, 역시 태백이라 춥네.'

 

엄청 쌀쌀했어요. 반바지에 반팔을 걸치고 있어서 옷을 얇게 입은 것도 있었지만 정말로 태백의 가을 새벽 공기는 의정부와 비교할 수 없이 차가웠어요.

 

사우나로 내려갔어요. 새벽 3시 반 조금 안 된 시각이라 사우나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탕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어요. 물이 매우 깨끗했어요. 샤워하고 온탕에 들어갔어요.

 

녹는다.

사르르 녹는다.

내가 물이 된다.

물아일체에 빠져든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따뜻한 물에 온몸을 담그자 뼛속까지 풀리는 기분이었어요. 온탕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었어요. 사우나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머리를 온탕 벽에 대고 누운 채 열중쉬어 자세로 두 손을 등 뒤에 댄 후 몸을 둥둥 띄웠어요. 골수 속 피로까지 쫘악 빠져나오는 느낌이었어요. 두 눈을 감았어요. 지상낙원 그 자체였어요.

 

온탕을 즐기다 이번에는 냉탕에 들어갔어요.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가며 다리를 냉찜질과 온찜질을 번갈아가며 해줬어요. 엄청나게 시원했어요. 근육 속 젖산이 아주 쫙쫙 빠져나가고 근육이 목화솜처럼 부드러워지는 느낌이었어요. 한 번 할 때마다 피로가 화끈하게 풀리는 게 느껴졌어요.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가며 다리 냉찜질과 온찜질을 하다가 다시 온탕에 몸을 담갔어요.

 

"허어어어어."

 

너무 시원해서 폐부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숨이 부드럽게 쑤욱 빠져나왔어요.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허파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이었어요.

 

도저히 못 나가겠습니다.

나는 이미 물이 되었습니다.

 

아주 그냥 온탕 따뜻한 물에 온몸이 녹아들어갔어요. 24시간 카페고 식당이고 나발이고 온탕에 계속 있고 싶었어요. 사카린, 아스파탐 따위와 비교가 안 되는 달콤한 시간이었어요. 운탄고도 8길 같은 거 다 버리고 오늘 하루 종일 여기에서 냉탕과 온탕 왔다갔다 하면서 찜질이나 실컷 하고 싶었어요.

 

원래 계획은 새벽 4시에 성지사우나에서 출발하는 거였어요.

 

'아, 몰라. 까짓거 좀 후딱 먹고 튀어나오면 되지.'

 

태백시 24시간 카페와 태백시 24시간 식당 앞만 찍고 바로 태백버스터미널로 가지는 않을 거였어요. 당연히 24시간 카페 가서 음료 한 잔 마실 거고, 24시간 카페 가서 아침밥 먹을 거였어요. 그까짓 음료 한 컵이야 쭉 들이켜면 그만이고, 밥이야 부지런히 삼켜대면 그만이었어요. 혀로 음료 원재료 하나하나 다 찾아내며 마실 것도 아니고, 밥을 밥알 한 알 한 알 맛의 차이를 분간해가며 먹을 것도 아니었어요. 카페 갔으니 음료 한 잔 하고 식당 갔으니 밥 먹기는 하겠지만 음료를 마시면 되었고, 밥을 먹으면 되었어요. 산업스파이 빙의해서 무슨 비법 알아내기 위해 가는 게 아니라 진짜 이용할 수 있는지 직접 이용해서 확인하기 위해 가는 거였어요.

 

새벽 4시가 되었어요.

 

"이제 진짜 나가야겠다."

 

탕에서 나왔어요. 샤워를 했어요. 아주 박박 씻었어요. 샴푸를 안 챙겨갔기 때문에 비누로 머리를 감았어요. 세숫비누로 머리를 감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군대 전역 후 처음이었어요. 군대 전역 후 샴푸를 비누 겸 바디워시 삼아서 샤워를 한 적은 있었지만 비누로 머리를 감은 적은 없었어요. 너무 오랜만이었어요. 비누로 머리를 감자 바로 머리가 뻣뻣해졌어요.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옷을 입었어요. 배낭을 메고 마스크를 썼어요. 신발을 신었어요. 신발이 전날보다 발에 아주 조금 더 잘 맞았어요.

 

입실할 때 카운터 직원에게 들은 대로 카운터에 키를 올려놓고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금계길 35에 있는 24시간 찜질방인 성지24시찜질방에서 나왔어요.

 

 

2022년 10월 6일 새벽 4시 22분, 새로운 하루 일정이 시작되었어요. 박목월은 시 '나그네'에서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라고 읊었어요. 저는 지금 당장은 '길은 여러 줄기 남동 1.4킬로'였어요.

 

"아, 개운해!"

 

온몸에 힘이 넘쳤어요.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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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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