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바람은 남서쪽으로 (2014)

바람은 남서쪽으로 - 31 베트남 하노이 레닌 동상, 호치민 영묘

좀좀이 2025. 4. 18.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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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었어요. 아침이 되자 일찍 일어났어요.

 

'이건 전혀 나 답지 않아!'

 

저는 원래 야행성 인간이에요. 밤에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낮에 활동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단순히 취향 문제가 아니에요. 별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생활 리듬이 야행성 인간이 되어 있어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야행성 인간이 되어서 그 생활 패턴이 그대로 이어져요. 이건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안 고쳐지는 문제였어요. 습관 수준을 넘어선 거였어요.

 

이런 저의 특징은 여행 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여행 일정 중 아침 일찍 시작한 적이 별로 없었어요. 여행을 가도 아침 지나서 일어나곤 했어요. 아침 9시에 일어나서 그제서야 나갈 준비하고 10시쯤 나와요. 심할 때는 정오 거의 다 되어서야 나와요. 대신에 진짜 밤 늦게까지 열심히 돌아다녀요. 거의 자정까지 돌아다니는 일도 꽤 있었어요. 늦게 나온 대신 늦게까지 돌아다니며 야행성 인간에 최대한 가깝게 여행하는 것이 제 여행 스타일이에요.

 

하지만 베트남 오자 아침에 참 일찍 일어나야 했어요. 이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쩔 수 없었어요. 하노이는 그래도 야시장이 있어서 밤에까지 놀 수 있기는 하지만, 후에는 밤에 놀 만한 게 별로 없었어요. 게다가 길거리 쌀국수라도 한 그릇 먹으려면 정말 새벽에 일어나야 했구요. 그리고 베트남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활동하는 소리가 모닝콜처럼 울려퍼졌어요. 자연스럽게 잠에서 깨어났어요.

 

일찍 일어나서 다음날인 2014년 12월 25일 일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어요.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어요.

 

'퍼퓸 파고다 투어 가자.'

 

결심했어요. 다음 날 일정은 제일 좋은 것이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 낮에 퍼퓸 파고다 투어를 다녀온 후에 호스텔에서 쉬다가 밤에 콜택시를 불러서 노이바이 공항으로 가는 거였어요.

 

1층으로 내려갔어요. 호스텔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어요.

 

 

아침은 라면이었어요.

 

'스프는 버리네?'

 

재미있는 점은 봉지 라면을 사와서 스프는 버리고 자체적으로 국물과 건더기 등을 넣고 라면을 끓이고 있었어요.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신라면을 사와서 신라면 스프는 모두 버리고 면만 따로 조리된 국물로 끓이는 셈이었어요.

 

 

라면과 과일을 먹었어요. 용과를 집어먹었어요.

 

'이건 대체 무슨 맛으로 먹지?'

 

한국에서 용과를 먹었을 때는 아무 맛도 향도 못 느꼈어요. 그때는 한국에서는 수입산이고, 게다가 냉동이니 향이 없는 것일 거라고 추측했어요. 동남아시아 가서 용과를 가면 분명히 향이 진하고 맛도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베트남 와서 먹어도 그게 그거였어요. 한국에서 먹는 냉동 용과나 베트남에서 먹는 싱싱한 용과나 맛과 향이 딱히 안 느껴지는 건 똑같았어요. 식감만 달랐어요. 한국은 주로 냉동 용과이니까요. 냉동과 싱싱한 것에서 오는 식감 차이 말고는 식감조차 같았어요. 씨가 으직으직 씹히는 식감도 똑같았어요.

 

식사를 마쳤어요. 이제 호스텔을 통해서 다음날 퍼퓸 파고다 투어를 예매할 차례였어요.

 

"내일 퍼퓸 파고다 투어 예약하고 싶어요. 그런데 내일 체크아웃이거든요. 여기에 짐 맡기고 투어 갔다와도 되나요?"

"예, 당연히 되죠!"

 

퍼퓸 파고다 투어 경비를 지불했어요. 다음날 아침 8시에서 8시 15분 사이에 투어 버스가 올 거라고 했어요.

 

"내일 제 비행기가 매우 늦은 밤에 있거든요. 혹시 밤까지 여기에 짐을 맡기고 투어 돌아와서 여기에서 콜택시 불러서 노이바이 공항 갈 수 있나요?"

"예, 되요. 내일 돌아와서 택시 이야기해주세요."

"예, 감사합니다."

 

노이바이 공항 가는 것도 간단히 해결되었어요. 퍼퓸 파고다 투어를 갔다 온 후 적당히 남은 시간을 보내다가 호스텔에 콜택시를 불러달라고 해서 콜택시 타고 한밤중에 노이바이 공항으로 가면 되었어요.

 

"오늘은 일정이 어떻게 되세요?"

"오늘은 하노이 돌아보려구요. 여기 좋은 곳 있나요?"

"호아로 수용소 가보세요. 거기 진짜 재미있어요."

"호아로 수용소요?"

"예, 거기는 하노이 왔으면 꼭 가봐야 하는 곳이에요."

 

직원은 호아로 수용소 감옥 박물관을 꼭 가보라고 추천했어요.

 

아침 일정은 먼저 탕롱 수상인형극장 가서 저녁 공연 표를 예매하는 것이었어요. 탕롱 수상인형극장으로 갔어요.

 

좋은 좌석은 다 팔렸다

 

탕롱 수상인형극장은 오후 3시 반과 6시 반에 공연이 있었어요. 이 중 오후 6시 반 공연은 이미 좋은 자리가 다 팔렸고 뒷좌석만 남아 있었어요. 게다가 분명히 2등석인데 가격이 10만동이었어요. 가이드북에는 10만동, 2등석 6만동이라고 나와 있었지만 요금 차이는 없었어요.

 

"3시 30분 공연은 좋은 자리 있어요. 그걸로 보세요."

 

탕롱 수상인형극장 직원이 오후 3시 30분 공연은 좋은 좌석이 있으니 그걸 보라고 추천했어요. 하지만 오후 3시 30분 공연을 보려면 이날 하노이 일정이 꼬일 거였어요. 탕롱 수상인형극장에서 가깝지 않은 쪽으로 갈 거였고, 당장 하노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이날 다 봐야 했거든요. 다음날 투어가 몇 시에 끝날 지도 모르고, 투어에서 돌아온 후에 또 멀리 가는 건 영 내키지 않았어요.

 

"6시 30분 좌석 주세요."

 

탕롱 수상인형극장 오후 6시 30분 공연을 예매했어요. 예매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왔어요.

 

 

"이거 베트남 전통 담뱃대 아니야?"

 

호스텔 한쪽 벽에 긴 나무통이 서 있었어요. 베트남 전통 담뱃대였어요. 호스텔 직원에게 저 담뱃대가 장식이 아니라 진짜 담배 태우는 담뱃대냐고 물어봤어요. 직원이 맞다고 했어요. 남자 직원이 가끔 저 담뱃대로 담배를 태운다고 했어요. 그때 남자 직원이 왔어요.

 

"한 번 해볼래요?"

"예!"

 

남자 직원의 도움으로 베트남 전통 담뱃대로 담배를 피워봤어요.

 

이거 진짜 힘들다

 

베트남 전통 담뱃대로 담배 태우기 진짜 힘들었어요. 연기가 독한 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진짜 열심히 힘껏 빨아야 했어요. 연기가 독한데 이걸 세게 들이마시지 않으면 연기가 안 마셔졌어요. 숨을 깊이 들이마셔야 담배 연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데, 이렇게 깊이 숨을 들이마셔서 담배 연기를 마시면 연기가 상당히 독했어요. 궐련 담배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진짜 어색하고 특이한 경험이었어요.

 

참고로 저 통이 지름이 어지간한 성인 남자 입보다 더 커요. 완전히 입을 파묻고 연기를 깊이 빨아마시는 방식이었어요.

 

남자 직원분께 고맙다고 인사한 후에 이번에는 근처 마트로 갔어요. 근처 마트에서는 관광객을 겨냥한 상품들이 있었어요.

 

"이건 진짜 우표를 집어넣었네?"

 

 

기념품 초콜렛 중 눈에 확 띄는 것이 있었어요. 눈에 띈 이유는 바로 우표 때문이었어요. 포장지 속에는 진짜 베트남 우표가 들어 있었어요. 심지어 오른쪽 우표는 국명이 Việt Nam Dân chủ Cộng hòa 라고 적혀 있었어요. Việt Nam Dân chủ Cộng hòa 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이에요. 북베트남이 과거 Việt Nam Dân chủ Cộng hòa 였어요. 남베트남은 Việt Nam Cộng hòa 였구요.

 

"이거 사야겠다!"

 

아무리 기념품이라지만 기념품 초콜렛 상자에 진짜 사용제 우표를 집어넣은 것은 처음 봤어요. 우표 수집을 하기 때문에 더욱 이 초콜렛이 마음에 들었어요. 물론 선물로 줄 거라서 선물로 받는 사람은 우표에 별 관심이 없을 수 있겠지만요.

 

그래도 진짜 사용제 우표가 들어간 관광 기념품은 꽤 보기 어려운 편이에요. 그래서 선물로 주기 위해 구입했어요.

 

초콜렛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숙소에 초콜렛을 두고 길거리로 다시 나왔어요.

 

 

일정의 본격적인 시작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어요. 2014년 12월 24일 10시 49분, 드디어 제대로 된 이날 일정이 시작되었어요.

 

 

"여기가 하노이 철길 사진 찍는 곳 아니야?"

 

 

베트남 하노이에 철길 사진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고 했어요. 철길 양 옆으로 가옥이 매우 근접해 있고, 사람들이 생활하고 장사도 하다가 기차가 지나갈 때가 되면 부리나케 다 치우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에요.

 

"여기 같은데?"

 

사람들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그 사진을 찍고 돌아올 거 같지 않았어요. 아무리 봐도 이쪽 같았어요.

 

"철도가 좁기는 좁다."

 

베트남 하노이 철도는 협궤에요. 철도 폭이 한국의 철도에 비해 좁아 보였어요.

 

 

"여기는 진짜 사회주의 국가네. 무슨 구소련 지역보다 포스터가 훨씬 많아?"

 

 

 

 

 

 

하노이에 오자 확실히 공산당 관련 포스터가 많이 보였어요. 제대로 된 사회주의 국가는 베트남이 처음이었어요. 사회주의 국가가 거의 다 없어진 지 오래이지만,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인 나라가 몇 국가 있어요. 베트남이 바로 그 중 하나에요. 사회주의였던 나라들은 여러 나라 가봤지만, 지금도 사회주의인 나라는 베트남이 처음이었어요.

 

과거 공산권의 맹주라면 소련. 제가 구소련 지역은 나름 돌아다녔어요. 소련의 중심이었던 러시아는 못 가봤지만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는 여행했어요. 우즈베키스탄은 아예 1년간 살면서 우즈베크어를 공부했었구요. 구소련 지역은 구소련 특유의 문화가 아직도 꽤 남아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바로 포스터와 슬로건. 이건 구소련 국가들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소련 문화의 잔재에요.

 

하지만 아무리 구소련 문화의 정통 후계자들인 구소련 지역의 국가들이라 해도 베트남 정도는 아니었어요. 베트남은 곳곳에 공산당과 사회주의 관련 포스터와 슬로건이 보였어요. 누가 보면 베트남이 구소련의 정통 계승자인 줄 알게 생겼어요.

 

비록 구소련 지역 국가들인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를 여행한 적이 있고 구소련 지역 국가에서 살아본 경험도 있기는 했지만 매우 신기했어요. 박물관에서도 잘 느끼기 어려운 공산권 문화가 베트남에서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어요. 구소련 지역에서 체험한 소련 문화의 잔재가 동물원의 호랑이라면 베트남의 공산권 문화는 살아 있는 호랑이였어요.

 

 

"와, 레닌 동상도 있어!"

 

구소련 지역을 여행할 때 레닌 동상은 제 기억에 딱 한 번 봤어요. 타지키스탄에서 본 적이 있었어요. 구소련이 붕괴될 때 가장 먼저 철거된 것이 바로 레닌 동상이에요. 스탈린 동상이야 아주 오래 전에 소련 제20차전당대회에서 스탈린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스탈린 우상화가 철폐되며 거의 사라졌지만, 레닌 동상은 소련 붕괴까지 계속 소련 각지에 있었어요. 그러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소련의 상징인 레닌 동상도 같이 철거되었어요. 이 때문에 제가 가본 구소련 국가들에서는 레닌 동상이 없었어요. 타지키스탄에서 딱 한 번 본 것이 전부였어요. 과거 레닌 동상이 있던 자리에는 각국의 위인들 동상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그런데 베트남에는 레닌 동상이 있었어요. 구소련 지역에서 그렇게 보기 어려운 레닌 동상이 하노이에 있었어요. 이러면 정말 구소련의 정통 후계자는 러시아나 그 외 구소련 국가들이었던 국가들이 아니라 베트남이라 해도 될 정도였어요.

 

 

레닌 동상에는 V.I. LÉ-NIN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어요. V.I.야 '블라디미르 일리치'의 약자. 이건 똑같았어요. 하지만 그 다음이 달랐어요. Lenin이 아니라 LÉ-NIN 이었어요. 베트남에서는 모든 음절을 다 띄어쓰기 때문에 베트남어로 레닌은 LÉ-NIN인 모양이었어요.

 

 

하노이 시타델이 보였어요.

 

 

 

 

 

 

 

 

길을 따라서 계속 걸어갔어요.

 

 

멀리 호치민 영묘가 보였어요.

 

 

붉은 빛이 섞인 매우 진한 노랑색 건물이 등장했어요.

 

 

 

 

 

베트남 주석궁이었어요.

 

"여기는 오토바이 별로 없네."

 

호안끼엠 호수 쪽과는 달리 오토바이가 별로 없었어요. 걷기 매우 쾌적했어요.

 

 

2014년 12월 24일 11시 30분, 드디어 호치민 영묘에 도착했어요.

 

 

호치민 영묘는 하노이의 상징 같은 곳이에요. 하노이를 소개하는 사진에 매우 잘 등장하는 곳이에요.

 

 

"여기까지 왔으니까 되었다."

 

호치민 영묘에는 방부 처리 된 호치민 시신이 안치되어 있어요.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실제 들어가서 볼 수 있다고 해요. 호치민은 사후에 자신을 화장시켜서 재를 삼등분한 후 북부와 중부와 남부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어요. 하지만 베트남 공산당에서는 소련의 사례를 따라서 호치민 시신을 방부 처리해서 영묘에 안치했어요. 이때 소련의 전문가들을 불러서 방부 처리했다고 해요. 호치민은 사후 자신의 몸이 흔적도 없이 베트남의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지만, 공산당은 역시 소련의 레닌 사례를 그대로 따라서 거대한 영묘를 지어 방부 처리한 호치민 시신을 안치했어요.

 

'동아시아 문화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좋은 건 아닐 건데...'

 

베트남 사람들에게 호치민은 해방 지도자이자 건국의 아버지이니 그렇게 영원히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싶었을 거에요. 하지만 베트남이 동북아시아 문화권이라면 이는 참 안 좋은 결정이기는 해요.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시신이 잘 부패해서 흙으로 잘 돌아가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시신이 안 썩고 미라가 되는 걸 진짜 나쁘게 여겨요.

 

'호치민이 지금 자신의 시신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호치민이 공산주의 지도자였기는 하지만, 그분도 기본적으로 유학을 공부한 분이고 베트남 전통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분이에요. 호치민도 베트남 전통문화가 속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시신이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구 보존중인 걸 보면 기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트남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상당히 기분나빠하겠지만요.

 

'등신불도 있으니까.'

 

베트남은 불교 문화권. 그리고 불교 문화권에서는 흔하지는 않지만 등신불이 있어요. 이렇게 보면 호치민의 유언과 상관없이 베트남 공산당이 호치민 시신을 방부 처리해서 영구 보존하고 있는 것을 이해 못 할 것도 없었어요.

 

 

 

 

호치민 영묘에는 들어가지 않았어요. 원래 들어갈 생각이 딱히 없었던 데다 시간도 늦었어요. 호치민 영묘는 앞에서 건물을 보는 것으로 충분했어요. 오는 길에 베트남 주석궁도 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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