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떠나는 날이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어요. 정확히는 마지막 날이 아니었어요. 비행기가 다음날 새벽에 출발하니까요. 자정을 기준으로 보면 베트남 떠나기 전날이었지만, 사실상 마지막 날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밤에 공항에 가서 비행기 탑승 시각까지 공항에서만 있어야 했으니까요.
"짐 싸야겠다."
2014년 12월 25일 새벽 6시. 일어나서 씻고 나와서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짐을 쌀 것은 별로 없었어요. 짐을 마구 풀어헤쳐놓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가방에 넣을 거라고는 기념품 사왔던 것과 세면 도구 정도였어요. 그리고 잠잘 때 입었던 옷가지를 집어넣어야 했구요. 그거 말고는 특별히 짐을 꾸릴 게 없었어요. 돌아가면 선물을 줘야 할 사람들이 조금 있어서 기념품을 이것저것 사기는 했지만, 애초에 들고 온 짐이 별로 없고 캐리어에 공간은 많았기 때문에 대충 집어넣고 닫아버리니 끝났어요.
그래도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어요. 왜냐하면 졸려서 정신을 차리는 데에 시간이 걸렸거든요. 짐 꾸릴 것은 없지만 몸이 무겁고 의욕도 없었어요. 몇 시간 못 잤어요. 숙소에 자정 넘어서 들어왔기 때문이었어요. 아예 안 자는 것보다는 낫지만 잠기운이 하나도 안 가셨어요. 씻고 나왔는데도 졸려서 손가락 까딱하기도 싫었어요. 게다가 전날 열심히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 피로가 그대로 다 남아 있었어요.
짐을 다 싼 후 짐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갔어요.
호스텔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을 먹었어요. 이날도 라면이었어요.
아침을 다 먹은 후 짐을 호스텔에 맡기고 체크아웃했어요.
"투어 마치고 돌아오면 저는 없을 거에요. 그러니 미리 인사할께요. 잘 가요."
"예, 안녕히계세요."
호스텔 스텝은 투어를 돌아오면 자기가 없을 거니 미리 작별 인사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작별 인사를 했어요. 이때가 거의 8시가 되어 가고 있을 때였어요. 제가 이날 다녀올 퍼퓸 파고다 투어는 버스가 아침 8시에서 8시 15분쯤 올 예정이었어요.
아침 8시가 넘었어요. 버스가 안 왔어요. 이건 이상할 것 없었어요. 베트남 여행 와서 숙소를 통해 예약을 하고 버스를 탄 적이 몇 번 있었어요. 투어도 다녀왔고, 버스표도 숙소에서 구입하면 버스가 알아서 데리러 왔어요. 그때마다 숙소 직원이 말한 시각에 버스가 딱 맞춰서 온 일이 한 번도 없었어요. 약간씩은 늦었어요. 그러니 아침 8시가 되어서 버스가 안 온다고 놀랄 것은 없었어요. 게다가 아침 8시 정각에 맞춰서 온다고 한 것이 아니라 8시에서 8시 15분에 올 거라고 했구요.
아침 8시 15분이 넘었어요. 여전히 버스가 안 왔어요. 놀라지 않았어요. 10분 정도는 늦을 수도 있으니까요.
'버스 왜 안 오지?'
아침 8시 30분을 훌쩍 넘겼어요. 버스는 여전히 안 오고 있었어요. 체크아웃까지 했기 때문에 방에 들어가 있을 수도 없었어요. 버스가 언제 올 지 몰라서 가볍게 산책할 수도 없었어요. 계속 로비에서 이미 작별인사를 한 호스텔 스텝과 마주보며 앉아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어요.
'엄청 뻘쭘하네.'
호스텔 스텝과는 이미 작별 인사까지 한 상황. 그런데 계속 마주보고 있었어요. 작별 인사라도 안 했다면 잡담하면서 시간을 보낼텐데 작별인사까지 했으니 다시 말 걸기도 매우 이상했어요. 그렇게 아주 뻘쭘한 상황이 계속 되었어요.
"버스 왔다!"
버스는 9시가 다 되어서야 왔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잠을 조금 더 잘 걸 그랬어요. 30분은 충분히 더 잘 수 있었어요. 30분만 더 잤어도 훨씬 더 개운한 아침이 되었을 거였어요.
버스에 올라탔어요. 빈 좌석이 맨 뒷자리 뿐이었어요.
'내가 머문 호스텔이 제일 마지막 순서였구나!'
왜 버스가 매우 늦게 왔는지 이해되었어요. 맨 뒷좌석만 남아 있는 이 상황이 모든 걸 다 알려주고 있었어요. 베트남은 숙소마다 버스표, 투어를 판매해요. 그러면 각 사무실에서 시간이 되면 예약자가 있는 숙소를 쭉 돌면서 예약자들을 수거해 가요. 버스나 승합차가 예약자들이 있는 숙소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태워가기 때문에 여기에서 시간이 꽤 많이 걸려요. 그리고 맨 마지막 숙소라면 한 시간 늦어질 수도 있어요. 과장이 아니라 바로 이때 제가 타야 하는 투어 버스가 한 시간이나 늦게 왔으니 진짜 경험담이에요.
남아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어요. 가이드가 자기 소개를 하고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먼저 하노이 시내에서 퍼퓸 파고다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어요.
그 다음에는 베트남에 오토바이가 많은 이유에 대해 설명해줬어요. 베트남은 주차 공간이 없으면 자동차를 구입할 수 없다고 했어요. 이 때문에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많이 구입한다고 했어요.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는 1000달러면 구입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하노이에 좁고 높은 건물이 많은 이유도 설명해줬어요. 베트남 사람들은 대가족이 모여 사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하노이는 인구가 많고 땅값이 비싸서 대가족이 모여서 살 수 있는 집을 지으려면 어쩔 수 없이 좁고 높게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했어요.
버스가 하노이 시내에서 벗어났어요.
내 머리가 내 머리가 아닙니다
내가 풍선인형이 된 기분입니다
버스가 하노이 시내에서 벗어나자 버스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머리가 정신없이 흔들렸어요. 전에 훼에서 투어를 할 때도 그랬는데 이번도 마찬가지였어요. 목을 가누고 싶었지만 버스가 워낙 흔들려서 불가능했어요. 머리가 마구 흔들렸어요. 멀미를 하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너무 흔들려서 정신이 없었어요. 목에 힘을 줘도 버스가 워낙 크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소용 없었어요.
1시간 쯤 가다가 버스가 정차했어요.
버스가 정차한 곳은 NGO가 운영하는 일종의 공방이자 휴게소와 기념품점을 겸하는 곳이었어요.
'이 버스는 2시간 쯤 달렸겠지?'
저는 버스를 탄 지 1시간 만에 버스에서 내리는 것이었지만, 처음 탄 사람들은 아마 2시간 만에 내리는 것일 거였어요. 저는 제일 마지막에 탔고, 이 버스는 예약자가 있는 모든 숙소를 다 돌아다니며 예약자를 태우고 왔을 거니까요. 호스텔에서는 아침 8시에 버스가 올 거라고 했으니 이 버스 출발 시각은 아마 8시쯤일 거였어요. 그러니 처음 탄 사람들 기준으로 본다면 2시간째 버스를 타고 있는 것이니 버스에서 내려서 한 번 쉴 때가 되었어요.
공방 주변에는 밭이 있었어요.
닭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공방으로 돌아왔어요. 공방에 돌아와서 놀란 점은 베트남에서 판매하고 있던 기념품들이 일일이 손으로 만든 거라는 점이었어요.
여기에서 내린 투어 참가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기념품을 구입했어요. NGO가 운영한다는 사실 보다 이렇게 사람이 직접 만드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구입한 것일 거였어요. 공장제가 아니라 진짜 수공예니까요. 아무리 같은 품질이라도 수공예라면 공장제보다 더 사고 싶기 마련이에요.
다시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멀리 카르스트 지형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2014년 12월 25일 11시 24분, 드디어 보트 선착장에 도착했어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이 보트에 탑승하기 시작했어요.
"진짜 사람이 노를 저어서 가는 보트네?"
퍼퓸 파고다까지 가기 위해서는 옌강을 따라 올라가야 했어요. 보트로 이동하는 구간이 있다고 안내를 받아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이 직접 노를 저어서 가는 배를 타고 갈 거라고 상상하지는 못 했어요. 모터 보트로 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진짜 사람이 노를 저어서 가는 배였어요.
보트 선착장으로 투어 신청자들을 태워갈 보트가 계속 들어오고 있었어요.
보트에 타기 전에 잠시 보트 선착장 주변을 둘러봤어요.
보트 대기 줄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이제 제가 보트에 탈 차례였어요.
보트에 올라탔어요. 보트가 출발했어요.
"강에 도로표지판도 있어!"
보트를 타고 얼마 가지 않았는데 도로표지판이 등장했어요. 강에도 도로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어서 신기했어요.
무려 갈림길도 있었어요.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제가 가야 하는 퍼퓸 파고다였고, 방향을 꺾으면 롱반 사찰로 간다고 나와 있었어요.
"여기는 무덤이 강에 붙어 있네?"
깜짝 놀랐어요. 옌강 강가에 무덤이 있었어요. 말이 좋아 강변이지, 물 바로 옆에 무덤이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저렇게 무덤 만들면 난리날 건데?'
한국에서 절대 무덤을 만들면 안 되는 자리가 바로 물이 매우 많은 자리에요. 강변, 해변은 당연하고, 일반적인 땅이라 해도 수맥이 흐르는 곳에 묘지를 만들면 안 된다고 해요. 한국 공포 이야기에서 무덤 관련된 이야기를 보면 조상님이나 부모님 귀신이 자꾸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이 유형에서 특히 꽤 많은 유형이 바로 이렇게 조상님이나 부모님 귀신이 자꾸 나타나서 이유를 알아봤더니 무덤을 한 번 파보라는 조언을 받아서 무덤을 파봤더니 묫자리가 하필 수맥이 흐르는 자리였고, 시신은 물에 둥둥 떠 있거나 심한 경우에는 머리가 발 아래에 내려가 있었다는 유형이구요. 조상님이나 부모님 귀신이 어떤 모습으로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흠뻑 젖어 있었다는 이야기부터 추워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등 여러 모습이 있어요.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는 묫자리가 물에 가까우면 안 되요. 묘지가 물에 잠긴다? 큰일나요. 물에 잠기는 게 아니라 수맥이 흘러도 안 되는데요. 그런데 베트남 옌강을 보트를 타고 가면서 강물 바로 옆에 있는 무덤을 여러 기 봤어요.
'여기 무슨 수몰지구야?'
처음에는 여기가 무슨 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구인 줄 알았어요. 수몰지구라면 가능해요. 원래는 강물 바로 옆에 무덤을 만든 게 아니라 멀쩡한 곳에 무덤을 만들었는데 댐이 생기며 수위가 높아지는 바람에 무덤이 강물 바로 옆에 위치하게 되었다면요.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무덤을 그냥 강물 바로 옆에 만들어놨어요.
'이건 너무 문화 차이가 큰데?'
제 고향은 제주도에요. 그래서 무덤은 정말 많이 봤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무덤이 도처에 있었어요. 제주도 옛날 매장 문화는 좋은 터에 일단 무덤을 만든 후 땅주인에게 보상해주는 문화였어요. 그래서 밭에도 무덤이 있고, 오름에도 무덤이 있고, 여기저기 무덤이 많았어요. 타지역 사람들은 이런 제주도 전통 매장 문화만 봐도 경악해요. 그런데 베트남 옌강에서 본 무덤은 제주도 전통 매장 문화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여기에 사람 숨으면 찾을 방법이 있을까?"
배는 점점 더 깊은 밀림으로 들어가고 있었어요. 여기 어디에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저런 풀숲에 숨어 있으면 아예 못 찾을 거였어요.
'이런 데에서 어떻게 게릴라를 찾아?'
땅굴이 아니더라도 이런 자연 환경에서 베트콩 찾기란 짚단 속에서 바늘 찾는 것보다 어려울 거였어요. 게다가 여기는 북부였어요. 날이 더 더운 중부와 남부는 더 심할 거였어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보트에서 계속 사진을 촬영했어요.
"DSCF9999네?"
제가 사진을 촬영하던 카메라인 후지필름 FinePix HS10 카메라의 파일명이 DSCF9999가 되었어요.
사진을 한 장 더 찍었어요.
파일명이 DSCF0001이 되었어요.
"이 카메라 진짜 열심히 썼다."
후지필름 FinePix HS10 카메라는 저의 네 번째 디지털 카메라였어요. 이 카메라를 구입한 후, 이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나간 적은 별로 없었어요. 24mm 화각 때문에 구입하기는 했지만, 색감이 저와 안 맞았어요. 빨강색이 크게 강조되는 색감이었는데, 색감에 대한 감을 잡기가 어려웠어요. 게다가 예전에 사용했던 코닥 이지쉐어 P880은 색감이 매우 마음에 들었지만, HS10은 색감이 참 마음에 안 들었어요.
게다가 HS10은 카메라가 크다 보니 정말 잘 안 들고 나갔어요. 들고 나가도 귀찮아서 사진을 잘 안 찍었구요. 그래서 대부분 여행 갈 때에만 들고 가서 사진을 찍었어요. 대신에 여행 가서 정말 많이 찍었어요.
HS10은 저와 2012년에 우즈베키스탄도 같이 다녀온 카메라였어요. 그 직전 해였던 2011년에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터키 여행을 갔을 때도 저와 함께 한 카메라였구요. 그러니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참 많은 여행 길을 함께 한 카메라였어요.
보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러면 나중에 사진 정리할 때 순서 바뀌는 거 아니야?'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어요. 파일명이 DSCF9999에서 DSCF0001로 리셋되었어요.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 사진을 컴퓨터에 옮기면 파일명 순서대로 들어갈 거였어요.
'여행기 쓸 때 머리 아프겠네.'
여행기 쓸 때 사진 파일을 보면서 기억을 다시 살리곤 해요. 그런데 그대로 옮기면 뒤에 촬영한 파일이 앞으로 갈 거였어요. 폴더를 따로 만들어서 뒤에 찍은 사진만 따로 보관해놓으면 되기는 하지만, 이러면 그 부분을 쓸 때 회상이 끊길 거였어요. 회상이 끊기면 여행기 쓸 때 매우 힘들어져요. 돌아가서 여행기 쓸 때 바로 이 순간이 고비가 될 거 같았어요.
보트는 이런 저의 속마음과 달리 매우 평화롭게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어요. 노 젓는 소리가 찌익찌익 울려퍼지고 있었어요.
"연꽃이 피어 있네?"
분홍색 연꽃이 피고 있었어요. 12월인데 연꽃을 보고 있었어요. 역시 동남아시아였어요.
카르스트 지형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어요.
옌강은 여기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어요. 물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들이 보였어요.
"여기에 가로등도 있어!"
그냥 보면 아무 것도 없는 밀림 속 옌강이었지만, 무려 가로등도 있었어요.
게다가 교통 표지판까지 있었어요. 옌강은 매우 신기한 강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