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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친구가 도계역에 가기 위해 타야 할 열차가 청량리역 전광판에 떠 있었어요.

 

 

저와 친구가 타고 가는 열차는 19시 10분에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1639 열차였어요. 이 열차는 원주, 제천을 거쳐 영월, 예미, 민둥산, 사북, 고한, 태백을 거쳐 도계역으로 가는 노선이었어요. 종점은 동해역이었어요. 제천부터는 태백선을 타고 가고, 태백역에서 영동선으로 갈아타는 철도 노선이었어요.

 

"이제 타러 가자."

 

2022년 8월 29일 오후 6시 56분, 개찰구를 통과했어요. 무궁화호 1639 열차를 타러 플랫폼으로 내려갔어요.

 

 

"이거 기차 예쁜데?"

"그건 우리 거 아냐."

 

플랫폼에는 연한 청색 기차가 정차해 있었어요. 매우 날렵하게 생겼어요. 표면이 번쩍였어요. 누가 봐도 너무 타고 싶게 생겼어요. 제가 기차를 보며 매우 예쁘다고 하자 친구는 그건 우리가 타고 갈 열차가 아니라고 했어요. 저도 알고 있었어요. 도계까지 무슨 이렇게 좋은 기차를 타고 가요. 이 기차는 KTX 이음 열차였어요. KTX라 외관부터 고급스러운 열차였어요.

 

"왔다."

"어, 타자."

 

저와 친구가 타고 갈 무궁화호 1639 열차가 맞은편 선로에 있었어요.

 

 

하아...

나 지금 화물차에 짐짝으로 실려가는 거야?

 

무궁화 열차가 이렇게 생긴 건 알고 있었지만 KTX 열차를 보고 나서 무궁화 열차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한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조금 서글퍼졌어요. KTX는 아주 고급스럽고 늘씬하고 멋지게 생겼어요. KTX 이음 열차는 색상도 매우 우아한 색으로 골라서 칠해놨어요. 이런 KTX 이음 열차를 보고 제가 타고 가야 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보자 이건 완전 화물칸이었어요.

 

영화를 보면 가끔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가는 사람들이 나와요. 딱 그 기분이었어요. 객실이 아니라 건초 지푸라기 날리고 보기만 해도 악취 풍기게 생긴 나무로 만든 화물칸에 실려서 어디론가 끌려가는 장면 속 인물이 된 기분이었어요. 화물칸에 화물로 실린 건지 가축 수송 열차에 가축처럼 실린 건지 분간 안 되는 기분. 어쨌든 인간 고객님께서 타시는 '객차'가 아니라 '화물 수송 열차'에 던져진 것 같았어요.

 

KTX이음 열차만 안 봤어도 이런 졸지에 영화에 나오는 화물칸에 실려가는 장면 속에 빨려들어가 나도 화물칸에 실려서 어디론가 끌려가는 기묘한 기분은 안 들었을 거에요. 제가 무궁화호 열차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무궁화호 열차는 꽤 많이 봤어요. KTX이음 열차를 보고나서 제가 타고 가야 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보니까 순간 이런 기분이 들어버렸어요.

 

"완전 화물차에 실려가는 오징어 된 기분이네."

 

한숨 뒤에 피식 나오는 헛웃음. 열차에 올라탔어요.

 

 

다시 한 번 풉 하고 웃음을 참았어요.

 

좌석 뒤에 달려 있는 그물망.

 

KTX 열차는 좌석 뒤에 무선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어요. 스마트폰을 집어넣으면 저절로 충전되요. 그러나 그건 KTX 이야기구요. 무궁화호에 그딴 게 있을 리 없잖아요. 무궁화호니까 당연히 음료수, 간식 같은 거 집어넣을 수 있는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었어요.

 

그물망 상태가 깔끔해서 감사합니다.

이거 상태도 나빴으면 어쩔 뻔 했어.

 

다행히 그물망 상태는 매우 좋았어요. 그물망 상태가 좋은 것에 감사했어요. 내가 선택한 무궁화호지만 KTX열차 보고나서 무궁화호에 타니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고 헛웃음 터져나와버렸어요.

 

"무궁화는 이게 안 좋아. 무궁화도 무선충전기 설치해주면 안 되나?"

 

기차 타는 것 좋아하는 친구도 KTX 이음 열차 본 후 무궁화호 타니까 무궁화호가 KTX에 비교도 안 되게 후져서 당연한 거고 너무 잘 아는 건데도 살짝 충격받고 KTX가 무지 부러워보였던 거 같았어요. 좌석 상태와 외관은 그러려니 하지만 솔직히 KTX 좌석마다 설치되어 있는 무선 충전기는 정말 부러웠어요.

 

2022년 8월 29일 7시 12분, 기차가 출발했어요.

 

이제 되돌릴 수 없다.

무조건 도계 간다.

 

기차가 출발해버렸어요. 이제 되돌릴 수 없었어요. 이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비싼 기차표 비용 싹 다 날릴 거에요. 이대로 도계읍 도계역으로 가야 했어요. 창밖을 봤어요. 음침한 청량리역 철로변 풍경. 날도 깜깜해져서 무서운 곳으로 가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어요. 날이 깜깜했지만 이 동네가 어떤 분위기이고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 보여도 보였어요. 너무 암울한 창밖 풍경까지 더해지자 기분이 진짜 화물차에 실려 가는 기분이었어요. 기차 타기 전에 KTX 이음 열차만 안 봤어도 이런 기분이 안 들었을 건데 하필 KTX 이음 열차를 봐버리는 바람에 제 꼴이 영화에서 나오는 화차에 실려가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분명히 가고 싶어서 가는 여행인데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런 기분 처음이었어요.

 

'이번에는 반드시 카카오톡으로 기록 남기면서 다녀야겠어.'

 

강원도 남부 쇠락한 탄광지역은 가기 쉬운 곳이 아니에요. 이번에 가면 나중에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몰랐어요. 청량리역에서 도계역까지 기차로 4시간이었어요. 게다가 이쪽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다니기 쉬운 동네들은 절대 아닐 거였어요.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고 여행 자체가 엄청 스릴있고 재미있겠지만,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흥분이 전혀 안 될 거였어요.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강원도 남부 쇠락한 탄광지역, 강원도 친구가 여행가본 곳 중 가장 부러웠던 예미리에 가는 여행이었어요. 이건 무조건 여행기를 쓸 거였어요.

 

뭐라도 기록 남기면서 다닐 겁니다.

 

왜냐구요?

쓰고 있는 여행기 망했기 때문이오.

 

강원도 동해시 여행기인 '망상 속의 동해'를 계속 쓰고 있는 중이었어요. 강원도 동해시 여행을 갈 때, 그 어떤 기록도 하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여행기가 완전히 망해버렸어요. 여행 가서 남긴 기록이 없다보니 여행기 쓰는 것이 매우 힘들었어요. 여행기는 다른 글보다는 쓰기 수월한 편이에요. 여행 진행대로 글을 쭉 쓰면 되기 때문에 여행 일정이 개요에요. 그런데 기록해놓은 게 없고 즉흥적으로 쓰다 보니 사진에 표현되지 않은 사건들이 누락되는 일이 자꾸 생겼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이상해졌어요. 사건이 발생했을 때를 쓸 때 빼먹고 나중에 그 사건을 언급하는 내용이 등장해서 완전히 뜬금없어지는 일도 생겼고, 아예 통째로 빠져버리는 일도 생겼어요. 기록이 있으면 기록 보면서 쓰면 되기 때문에 여행기 쓰기 참 쉬운데 기록해놓은 게 없으니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써야해서 글 쓰기 어려웠어요.

 

그렇지 않아도 여행기 쓰는 감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인데 기록도 없으니 완전히 뒤죽박죽인 여행기처럼 되어버렸어요. 더욱이 저는 원래 글을 즉흥적으로 써요. 퇴고 따위 없어요. 쓸 때 쭉 쓰고 그걸로 끝이에요. 꼼꼼하게 글 쓰는 스타일과는 아주 정반대에요.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의식의 흐름 스타일이에요. 이렇게 글을 쓰고 나중에 퇴고하고 고치는 게 아니라 한 번 글을 쓰면 그걸로 영원히 끝이에요. 고치는 일은 오타 보이면 오타 고치는 것 뿐이에요. 글을 한 번에 쭉 다 쓰면 그걸 고칠 생각도 없고 고치고 싶지도 않아요. 동해시 여행기인 망상 속의 동해는 정말 문제가 심각한데 이걸 고칠 일은 영원히 없을 거였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동해시 여행기야 어쩔 수 없어요. 동해시 여행기인 망상 속의 동해가 엉망인 것 자체가 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해요. 너무 오랫동안 여행기를 안 써서 여행기 쓰는 감을 잃은 모습이니까요. 그래서 동해시 여행기는 쓰던 대로 계속 써서 완결짓기는 하겠지만 이번 강원도 남부 몰락한 탄광지역 여행기는 그렇게 써서는 안 되었어요. 여행기를 엉망으로 쓰는 게 저 자신에게 용납되는 건 동해시 여행기 딱 하나 뿐이었어요.

 

'기록할 수 있는 건 다 기록해야겠다.'

 

여행 다니면서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다 기록하기로 했어요. 카카오톡에서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 기능을 이용해서 조금이라도 기록하기로 했어요.

 

"우리 일정 어떻게 할 거?"

"내일 도계 돌아다니다가 예미 넘어가서 자자."

"예미?"

"어. 나 거기 꼭 가보고 싶어. 강원도 친구가 여행갔던 곳 중 예미리가 제일 부러워."

"거기 뭐 있는데?"

"걔가 예미는 아무 것도 없대."

 

친구가 아주 잠시 할 말을 잃었어요.

 

"이거 노선 보니까 민둥산역 있더라. 거기도 가보자."

"민둥산은 뭐 있는데?"

"몰라."

 

저도 민둥산역에 뭐가 있는지 몰랐어요. 역 이름이 민둥산이라니 너무하잖아요. 그래서 가보고 싶었어요. 그 뿐이었어요.

 

"너는 어디 가보고 싶은 곳 있어?"

"사북 한 번 가야하지 않겠어?"

"사북? 강원랜드 가게?"

"거기까지 가는데 강원랜드 한 번 가봐야하지 않아?"

 

친구는 강원랜드 가기 위해 사북에 한 번 가자고 했어요.

 

"야, 강원랜드 가서 뭐 할 건데? 한 판 땡겨보게?"

"어, 야, 한 번 땡겨보자. 갔는데 땡겨봐야지."

"아...그건 좀...주식도 하고 있는데 도박까지 하라고?"

 

진심이었어요. 3월부터 시작해서 7월까지 주식 단타를 엄청 열심히 했어요. 다행히 소소하게 재미 좀 보고 나왔어요. 8월부터는 주식 단타를 안 하고 있었고, 앞으로 아주 긴 시간 동안 절대 주식 단타 손 안 대겠다고 하고 있었지만 주식 단타를 평생 안 할 리는 없었어요. 언젠가 또 나를 위한 타이밍이라는 느낌이 온다면 그때 또 하게 될 거에요. 이렇게 주식 단타질도 간간이 하고 있는데 여기에 도박까지 하는 건 미친 짓이었어요. 그 이전에 원래 도박을 안 좋아해요.

 

그래도 친구가 사북역 가서 정선 강원랜드 가자고 했어요. 이게 친구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가 진심이라면 가야 했어요. 같이 여행가는데 제가 좋아하는 코스만 다 집어넣고 친구 가고 싶은 곳은 하나도 안 넣으면 안 되니까요.

 

"그러면 일정 어떻게 해야 하는데?"

"사북이 숙소 많을 거니까 둘째날 사북 넘어가자. 도계 보고 거기 봐서 내일 사북 가서 자든가 태백 가서 자든가 하게."

"난 예미는 꼭 가고 싶다."

"그건 내일 봐서 결정하자. 사북 들렸다가 빨리 예미로 넘어갈지, 아니면 사북에서 잘 지."

 

친구와 이튿날 잠잘 곳을 어디로 정할지는 이튿날 상황 봐서 결정하기로 했어요. 사북역에서 내려서 잠깐 강원랜드 갔다가 예미역으로 넘어가서 예미리에서 1박 할 수도 있었고, 사북역에서 1박하고 다음날 예미역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어요.

 

암울한 청량리역 풍경은 예전에 끝났어요. 이제 다시 여행 가는 즐거운 기분으로 돌아왔어요.

 

이 찝찝한 기분은 무엇일까.

 

계속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어요.

 

'뭐 빠뜨리고 온 거 있나?'

 

찜찜한 기분이 계속 드는 이유는 짐 꾸릴 때 뭔가 빼놓고 온 거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뭘 빼놓고 왔는지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분명히 짐을 다 챙겼어요. 잘 챙겼는데 찝찝한 기분이 떠나지 않았어요.

 

'가방 한 번 봐봐야겠다.'

 

가방을 열었어요. 백팩에서 짐칸에는 모든 게 잘 들어 있었어요. 그렇게 뒤에서 앞으로 순서대로 열어봤어요. 백팩 맨 앞을 열었을 때였어요. 이게 마지막 칸이었어요.

 

다이어리!

 

원래 기차역 스탬프 모으려고 다이어리를 가져오려고 했어요. 다이어리 챙기는 것을 깜빡했어요. 백팩 속에는 종이가 하나도 없었어요. 기차역 스탬프 받을 종이를 단 한 장도 안 챙겨왔어요. 빼먹고 온 게 없을 리 없었어요. 그나마 충전기 같은 게 아니라 다행이기는 했지만, 여행 기념품 대신 모을 기차역 스탬프를 모을 방법이 없어졌어요. 종이가 없는데 기차역 도장을 어떻게 받아와요.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어요. 양평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루루 내렸어요. 양평부터는 빈 자리가 많았어요. 그래도 제가 타고 있는 객차에서 좌석 절반은 차 있었어요. 용문역에서도 여러 명이 내렸어요.

 

지평역에 도착했어요. 지평역에서 강릉역으로 가는 KTX 먼저 보내준다고 열차가 잠시 더 정차했어요.

 

창가에 앉은 친구는 눈을 감고 잠을 자기 시작했어요. 저는 계속 깨어 있었어요. 창밖은 깜깜해졌어요. 터널 통과할 때마다 3G가 끊겼어요. 버스 타고 다닐 때는 3G가 끊기는 일이 없었어요. 이건 기차가 버스보다 훨씬 불편한 점이었어요.

 

청량리역에서 영월역까지가 2시간 걸리는데 영월역에서 도계역까지가 또 2시간이었어요. 거리상으로는 청량리역에서 영월역이 훨씬 먼데 시간은 둘이 같았어요. 대체 얼마나 험지로 들어가는지 거리를 무시하고 청량리~영월 구간과 영월~도계 구간이 같은 시간이 걸렸어요.

 

기차는 가면 갈 수록 탑승객이 확확 줄어들었어요. 타는 사람은 갈 수록 줄어들고 내리는 사람만 계속 있었어요.

 

 

2022년 8월 29일 밤 9시 32분. 기차가 영월역에 도착했어요. 강원도에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어요.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원주역을 지나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제천역으로 간 후, 다시 강원도로 들어와서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영월역으로 왔어요.

 

'여기 진짜 오랜만이네.'

 

지금 같이 여행 가고 있는 친구와 아주 오래 전인 2009년에 영월 여행을 갔었어요. 이때가 친구가 처음 해외취업으로 중국 갈 때였어요. 영월 여행은 솔직히 별로 재미없었어요. 막연히 시골 같은 곳 가자고 간 영월군이었어요. 밤 늦게 영월 도착해서 모텔급이 아니라 장급 여관에 들어갔어요. 방은 조금 넓었고, 이불에서는 눅눅한 냄새가 났어요. 밤에 조금 돌아다니다가 돌아와서 잤고, 다음날은 장릉과 청령포를 간 후, 점심시간에만 보리밥을 파는 영월에서 매우 유명한 보리밥 식당에 가서 점심 먹고 돌아왔어요. 친구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 여행을 잊을 수 없는 것이 그 여행이 독보적으로 재미없는 여행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오죽했으면 여행기는 고사하고 그때 여행과 관련해서 쓴 글 자체가 블로그에 아예 없어요. 이건 진짜 너무 재미없어서 글을 안 쓴 거에요.

 

강원도 영월군에 대해서는 지금 같이 여행 가는 친구와 내 인생 최고로 재미없었던 여행을 했다는 기억이 있는 곳이에요.

 

 

기차가 출발했어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첩첩산중 강원도 남부 몰락한 탄광 지역으로 들어가는 길이었어요. 기차는 태백선으로 노선을 갈아타서 달리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기차는 열심히 달렸어요. 곧 예미역에 도착할 거였어요.

 

'잠깐 내려서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탈까?'

 

강원도 친구가 여행가본 곳 중 가장 부러웠던 곳 예미. 드디어 예미리에 있는 예미역 도착이었어요. 기차 출입구로 갔어요. 기차가 예미리에 정차할 예정이라는 방송이 나왔어요.

 

2022년 8월 29일 밤 9시 52분, 기차가 예미역에 도착했어요.

 

"여기에서 내려요?"

 

기차에서 내리려는데 차장님이 제게 예미역에서 내리냐고 물어봤어요.

 

"아뇨. 빨리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탈께요."

 

기차가 멈추자마자 재빨리 기차에서 내렸어요.

 

 

'예미역'이라는 글자라도 찍고 싶었는데 제가 내린 곳에서는 예미역 건물은 고사하고 예미역 글자도 안 보였어요. 제가 타고 온 기차 맞은편 플랫폼 쪽은 깜깜하고 아무 것도 없었어요. 사진 찍을 게 없었어요. 그래도 예미에 왔다는 인증 사진을 남기기 위해 제가 타고 온 기차 사진을 찍었어요.

 

아, 기차 괜히 내렸나.

갑자기 아까 화물차에 끌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다시 몰려온다.

 

제가 타고 온 기차가 KTX 이음처럼 아주 고급스러운 외관을 자랑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이건 너무했어요. 열차 차량 윗부분 도색이 다 떠서 뜯어지게 생겼어요. 비단옷까지는 안 바라니까 멀쩡한 옷이면 된다는 마음이었는데 현실은 다 헤어진 넝마 조각. 딱 이런 기분이었어요.

 

예미역에서 제가 타고 온 무궁화호 열차 사진을 찍자마자 바로 뛰어서 기차 안으로 들어갔어요. 제가 타자마자 차장님이 바로 탑승했고 열차가 출발했어요.

 

 

2022년 8월 29일 22시 11분, 민둥산역에 도착했어요. 민둥산역 사진은 열차 안에서 촬영했어요.

 

"와, 아직도 도착하려면 한 시간 남았네."

 

7시 12분에 열차가 출발했어요. 민둥산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 11분. 기차를 3시간째 타고 있었어요. 세 시간째 기차를 타고 있었지만 아직도 한 시간 더 타고 가야 도계역에 도착할 예정이었어요.

 

"도계는 대체 얼마나 외진 곳이야?"

 

청량리역에서 영월역까지의 거리와 영월역에서 도계역까지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에요. 이걸 기차이동을 통해 몸으로 느끼니 도계가 대체 얼마나 첩첩산중 외진 곳인지 점점 확실히 와닿았어요.

 

 

2022년 8월 29일 22시 44분, 드디어 태백역에 도착했어요. 영월역에서 태백역까지 오는 동안 사북역에서 사람들이 조금 많이 내렸어요. 그 외 역에서는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태백역 도착하자 객차에 있던 승객들이 전부 내렸어요. 이제 객차에 남은 사람은 저와 친구 뿐이었어요.

 

기차가 다시 출발했어요. 태백역 다음 역은 드디어 도계역이었어요.

 

응, 도계역까지 또 30분이란다.

 

태백역 바로 다음역이 도계역. 그러나 도계역까지 기차를 30분 더 타야 했어요. 태백역까지는 태백선을 타고 왔지만, 이제부터는 영동선으로 갈아타서 가는 길이었어요.

 

"이제 드디어 다음역 도계네."

 

친구도 기차 이동 4시간은 지루하고 질리는 이동이었나 봐요.

 

 

2022년 8월 29일 밤 11시 13분, 드디어 목적지인 도계역에 도착했어요.

 

'우리 말고도 여기에서 내리는 사람이 있네?'

 

저와 친구가 타고 온 객차는 태백역에서 그나마 있던 사람들이 다 내려서 도계역에 왔을 때는 저와 친구 뿐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객차에 탄 승객들 중 도계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몇 명 있었어요. 도계역에서 저와 친구만 내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도계역은 매우 고요했어요.

 

 

제가 타고 온 기차와 작별인사할 시간이었어요. 도계 도착 기념 사진을 찍었어요.

 

 

도계역 바깥으로 나왔어요. 도계역은 작은 기차역이었어요. 안에 눈여겨볼 만한 것은 딱히 없었어요.

 

 

도계역에서 나오자 독특하게 생긴 조형물이 저와 친구를 반겨줬어요.

 

"저거 뭐지?"

"몰라. 뭐지?"

 

조형물이 무엇을 모티브로 만든 건지 몰랐어요. 무슨 성냥 같기도 하고 나무 같기도 했어요. 나무를 모티브로 만든 조형물일 거였어요. 그러나 제 눈에는 영락없는 포자 달린 곰팡이 모양 조형물이었어요.

 

 

"우리 숙소는 어떻게 하지?"

"여기에 숙소 세 곳 있더라."

"유리게스트하우스 가볼까?"

"어. 거기 괜찮아 보이던데? 가격도 저렴하구."

 

친구와 유리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 하기로 했어요. 만약 유리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이 안 된다면 A1모텔에서 하룻밤 숙박하기로 했어요.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어요. 차도 없었어요.

 

길을 걷는데 불이 켜진 식당이 있었어요. 치킨집이었어요.

 

"갑자기 치킨 먹고 싶네."

"치킨?"

 

친구가 치킨 한 마리 뜯고 싶다고 했어요. 치킨집을 봤어요. 문 닫는 중이었어요.

 

"내일 비 안 올 수도 있겠는데?"

 

밤하늘을 쳐다봤어요. 구름이 끼기는 했지만 진한 비구름은 아니었어요. 비는 아주 살짝 내리고 있었어요. 이게 비인지 아주 입자 굵은 안개인지 분간 어려울 정도로 살살 내리고 있었어요.

 

"지난 번 동해 여행 때도 일기예보에서 강수확률 80%라고 하고 날만 좋았잖아. 어쩌면 진짜 비 안 내릴 수도 있겠다."

 

다음날 비가 별로 안 내릴 거 같아 보이는 밤하늘이었어요.

 

 

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파출소가 나왔어요.

 

 

계속 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저게 유리 게스트하우스인가?"

 

오르막길 끄트머리에 매우 긴 단층 건물이 줄지어 서 있었어요. 지도를 보니 도계 유리 게스트하우스가 맞았어요. 친구와 오르막길을 기어올라갔어요.

 

"여기 리셉션 어디지?"

 

도계 유리 게스트하우스는 리셉션으로 보이는 곳이 안 보였어요. 불도 다 꺼져 있었어요.

 

"여기 영업 안 하는 거 아냐?"

 

뭔가 이상했어요. 시간이 조금 많이 늦기는 했지만 도계역에서 시간 질질 끌지 않고 바로 왔어요. 그런데 불 켜져 있는 곳이 딱 한 곳 있고 나머지는 전부 불이 꺼져 있었어요. 친구와 불이 켜져 있는 방으로 갔어요. 방 안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어요.

 

문을 두드렸어요. 안에서는 반응이 없었어요. 유리창을 톡톡 두드렸어요. 아주머니 두 분께서 저와 친구를 보자 매우 당황해하셨어요. 고개를 가볍게 숙여서 인사했어요. 아주머니 한 분께서 문을 열었어요.

 

"여기에서 1박 하고 싶은데요."

"아, 저희도 여기 투숙객이에요."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던 방은 리셉션이 아니라 객실이었어요. 아주머니 두 분은 도계 유리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아니라 이쪽으로 놀러와서 투숙중인 사람들이었어요.

 

"저, 여기 리셉션 어디 있나요?"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저희는 골프장 통해서 예약했어요."

"아...예...알겠습니다."

 

망했어요. 처음 숙박할 곳으로 정한 도계 유리 게스트하우스는 숙박 실패였어요. 골프장 통해서 예약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예약해야 할 지 몰랐어요. 밤 11시 반이 되어 가고 있는데 이제 어느 골프장을 통해서 예약할지 찾아보고 언제 예약해요. 예약이 아니라 지금 당장 체크인해야 하는데요.

 

"A1모텔 가자."

"그러자."

 

A1모텔마저 체크인할 수 없는 상황은 아예 생각하기도 싫었어요. 그러면 다시 도계역으로 돌아가서 도계역 근처에 있는 숙박업소로 가야 했고, 거기마저 닫아버린다면 노숙 확정이었어요.

 

빗줄기가 아주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야경 사진을 찍었어요.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길에 정자가 하나 있었어요.

 

 

정자에는 의자가 여러 개 있었어요. 마을 주민들이 의자에 앉아서 잡담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인 것 같았어요.

 

A1 모텔로 갔어요. 다행히 체크인할 수 있었어요.

 

"나 왜 이렇게 출출하지?"

 

친구는 배고프다고 했어요.

 

"나가서 뭐 먹어?"

 

친구에게 나가서 뭐 먹냐고 물어봤어요. 친구가 그러자고 했어요. 방에 짐을 던져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어요. 숙소에서 조금 걸어가자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하나 있었어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어요.

 

친구는 컵라면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갔어요. 저도 가볍게 컵라면이나 하나 먹기로 했어요. 저는 팔도 왕뚜껑을 집어들었어요. 친구는 2000원이 넘는 컵라면을 들고 고민하고 있었어요.

 

"너 그거 먹게?"

"이거 유명한데 평이 좀 극단적이네. 이거 먹을까?"

"그러든가."

 

친구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어요.

 

"너는 골랐어?"

"팔도 왕뚜껑이나 먹으려고. 너는?"

"이거 먹을까?"

 

친구는 더미식 장인라면 컵라면을 들고 고민하고 있었어요.

 

"너 그거 고르면 나도 그거 먹어야겠다."

 

마침 더미식 장인라면 컵라면은 2+1 행사중이었어요. 저도 친구가 더미식 장인라면 먹을지 고민하자 팔도 왕뚜껑을 내려놓고 장인라면 컵라면을 집어들었어요. 그러자 친구도 장인라면 컵라면을 선택했어요. 계산하고 테이블로 와서 컵라면을 뜯고 스프를 부은 후 전자렌지에 돌려서 컵라면을 익혔어요. 컵라면이 다 익자 자리로 들고 와서 하림 장인라면을 먹기 시작했어요.

 

이거 면발은 맛있는데 이게 1개에 2800원?

 

친구와 저의 공통된 의견이었어요. 면발은 맛있었어요. 국물은 그렇게 맛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저는 컵라면 먹을 때 팔도 왕뚜껑처럼 고소한 맛 강한 라면을 좋아해요. 이건 개인 취향이니 넘어갈 수 있었어요. 문제는 건더기가 부실해도 너무 부실했어요. 이게 2800원짜리라니 용서가 안 되었어요. 이거 사먹을 돈이면 팔도 왕뚜껑을 2개 사먹어요. 팔도 왕뚜껑 2개 사서 하나는 생라면으로 부셔먹고, 남은 하나에 건더기 스프 몰아주고 끓여먹는 게 만족도가 훨씬 더 비교할 수 없이 높을 거였어요.

 

"이건 정말 여행 왔으니까 사먹는 거지."

"또 사먹을 일은 없을 거 닮다."

 

컵라면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조금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왔어요.

 

 

"여기 방 너무 좋은데?"

 

방이 매우 넓었어요. 성인 3명이 투숙한다고 해도 널널한 편이고 성인 4명이 투숙한다고 해도 될 방이었어요. 짐 바리바리 많고 쓰레기도 산더미처럼 방에 쌓아놓는 중국 보따리상 투숙객만 아니라면 4명도 잘 수 있는 면적이었어요. 이건 누가 봐도 2인실 크기가 아니었어요. 2인실보다 훨씬 더 컸어요. 온돌 2인실인데 방이 서울 기준으로 2인실 면적이 아니었어요. 서울이었으면 방 크기가 이 정도 되면 무조건 패밀리룸으로 빼요. 과장이 아니라 진짜에요. 서울이었으면 최소 트리플룸이었어요. 침대 넣으면 트리플룸, 안 넣으면 패밀리룸으로 팔았을 거에요. 서울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라면 1000% 벙크 베드 2개 넣어서 패밀리룸으로 만들었을 거구요.

 

방은 매우 좋은 방이었어요. 참 마음에 들었어요. 콘센트 꽂는 자리도 충분했어요. 단점이랄 게 없었어요.

 

"빨리 자자."

 

친구와 이불을 펴고 드러누웠어요. 도계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잠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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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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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비밀댓글입니다

    2022.09.23 10:10 [ ADDR : EDIT/ DEL : REPLY ]
    • 나름 예쁘게 만들려고 한 거 같았는데 진짜 포자 달린 곰팡이 같았어요 ㅋㅋ 아, 저게 거의 마지막 무궁화군요. 로이는 다녀와서 글 썼는데 1974는 못 갔어요;; 저때 너무 안 알아보고 가서 놓친 것들이 꽤 있을 거에요. 제 여행기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09.23 17:21 신고 [ ADDR : EDIT/ DEL ]
  2. 포스팅 잘 보고 공감누르고 갑니다

    2022.09.23 11: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글 솜씨가 뛰어나시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다음에도 놀러올게요 :)

    2022.09.23 12:4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