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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옷을 홀라당 벗고 샤워하러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이제 체크아웃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어요. 지금 샤워를 못 하면 내일 점심때나 샤워를 할 수 있었어요. 실상 24시간은 못 씻는다고 보아야 했어요. 이 숙소를 벗어나서 잘 씻어봐야 얼굴과 목, 팔까지 씻는 것. 샤워를 꼭 해야할 정도로 땀이 난 것은 아니었지만, 이때문에 샤워를 해야만 했어요. 그런데 어물쩍거리면 시간이 없어서 샤워를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후다닥 옷을 벗고 샤워부터 하러 간 것이었어요.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은 후 체크아웃하러 리셉션으로 갔어요.


"안녕!"

"어? 와 있었구나!"


친구는 이미 와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짐을 숙소에 맡기고 밖으로 나왔어요.



버스를 타고 칼리우랑 거리 Jl. Kaliurang 으로 갔어요.



친구와 버스에서 내려서 친구를 따라갔어요.


JL. Kaliurang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될 건가?'


그냥 평범한 거리였기 때문에 여기가 친구가 말한 칼리우랑 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걸어가면 학생들도 많고 재미있는 가게가 많이 있는 거리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 설마 여기가 칼리우랑 거리인가?"




"이건 사진 찍어가야겠다."


인도네시아 식당



인도네시아 음식을 파는 식당이었어요. 입구에 크게 음식 사진과 가격이 적혀 있었어요. 거리의 노천 음식점에는 이렇게 자세하게 음식마다 사진이 걸려 있지는 않았어요. 인도네시아 음식이 맛있고 매우 다양하지만 실제로 많이 못 먹어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요. 뭔가 메뉴는 많은데 이게 당최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직접 거리에서 만들고 있는 음식들 중에서 골라먹어야 했어요. 비록 제대로 하나하나 찍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찍어놓으면 없는 것보다는 나았어요.



우리나라 뻥튀기 같은 것을 들고 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코코넛 판다!"


코코넛


코코넛. 딱 한 번 먹어본 적이 있었어요. 2007년 튀니지 여행할 때 두 주먹만한 코코넛을 먹어보았어요. 우리나라에서 코코넛이 들어간 과자나 음료는 상당히 달콤했어요. 코코넛과 관련된 과자로 '빠다코코넛', 음료로는 '코코팜'이 있지요. 그것들을 먹을 때마다 진짜 코코넛을 먹으면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을까 상상했어요. 빠다코코넛과 코코팜의 맛이 갖고 있는 공통분모라면 사실 '단 맛' 외에는 마땅히 없었어요. 바나나맛 과자, 바나나 우유의 공통분모는 단 맛과 바나나향. 이렇게 가공 식품들 맛에서 교집합에 속하는 원소들을 찾아내 머리 속에서 실제 재료의 맛을 유추해 보았어요. 코코넛 관련 가공 식품들의 공통된 맛이라고는 오직 단 맛 뿐이었기 때문에 코코넛은 매우 달 것 같았어요. TV에서 나오는 코코넛을 보면 정말 사람 머리통만한 것 속에 물이 가득 들어있었고, 거기에 빨대를 꽂아 맛있게 쪽쪽 빨아먹는 관광객의 모습. 그래서 머리 속 상상의 세계에서 코코넛은 언제나 달콤한 맛이었어요.


그런데 튀니지에서 먹어보았던 코코넛은 정말 별로였어요. 일단 크기도 두 주먹만 했어요. 일단 TV에서 보던 그 머리통만한 코코넛이 아니었어요. 크기에서 크게 실망하고, 속의 물을 마셔보니 그냥 밍밍했어요. 입안이 마를 때 삼다수의 맛을 음미하는 기분이었어요. 아니, 목마를 때 음미하는 삼다수의 맛이 훨씬 더 맛있었어요. 목마를 때 삼다수의 맛을 음미해보면 혀뿌리쪽에서 단 맛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게다가 그건 원래 맹물이니 깔끔했구요. 하지만 코코넛의 물맛은 그런 맛은 아니었어요. 뭔가 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맛이 느껴질락 말락 있으면서 밍밍한 맛. 상점 주인이 과육이 정력에 그렇게 좋다고 해서 과육을 다 뜯어먹었는데, 과육은 생밤 맛이었어요. 딱딱하고 오히려 목마르게 하는 것이었어요. 상상 속의 코코넛 맛과는 컬러 사진과 흑백 사진의 차이만큼의 차이가 있었어요.


이건 튀니지 야자 열매라 그런 것일 거야!


상상과 비슷한 구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상상과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고작 속에 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는 것. 가게 주인 아저씨가 칼로 잘라주는데 물이 넘쳐서 팍 튀었다는 것 외에는 TV에서 보던 그 코코넛과 닮은 점이 단 하나도 없었어요. 게다가 제가 튀니지를 갔을 때는 겨울. 겨울이다보니 마땅히 제철과일이라고 할 게 오렌지 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나름 북아프리카 지중해 오렌지라 맛은 좋았기 때문에 여행 내내 오렌지만 까먹던 때였어요. 원래 제철과일이 아니면 맛이 없기 마련이니 이것도 아마 좋은 건 다 팔리고 저품만 남은 거 아닌가 싶었어요. 아니면 정말로 북아프리카의 야자라서 TV에서 나오는 코코넛의 맛이 아니었거나요.


인도네시아 오니 예상대로 코코넛은 많이 팔고 있었어요. 코코넛 역시 흥정을 해야 했어요. 관광지 가면 파는데 코코넛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고, 이게 얼마를 주는 것이 맞는지 아예 감도 잡을 수 없어서 계속 안 먹고 있었어요. 지금은 친구가 옆에 있었어요. 제가 흥정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눈 앞에 보이는 것은 TV에서 보았던 그 코코넛이었어요. 어른 머리통만하고 초록 빛깔의 바로 그것이었어요. 게다가 여기는 동남아시아. 상상속 그 코코넛이 바로 눈 앞에 있었어요.


"코코넛 먹을래?"

"응!"


친구가 흥정을 해주었어요.


"과육 많이? 적게?"

"적게요."


주인이 과육을 많이 긁어줄지 조금만 긁어줄지 물어보자 조금만 긁어달라고 했어요.




코코넛을 구입하자 주인이 바닥에 코코넛을 내려놓고 정글도로 코코넛 윗부분을 내리쳤어요. 정글도로 코코넛을 자르는 모습이 매우 신기했어요. 처음 정글도를 쓰는 사람들이 칼을 잘못 휘둘러서 정글도가 자기 무릎에 박히는 사고를 겪는 경우도 은근히 잘 일어난다고 읽은 적이 있어요. 이 칼은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내려치는 게 아니라 사선으로 내려쳐야 하는데, 처음 쓰는 사람들이 수직으로 내려치면 저런 사고를 겪을 수 있대요. 대체 뭘 어떻게 휘두르면 자기 무릎에 칼이 박히나 싶었는데, 야자를 정글도로 쪼개는 것을 보니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서 건네주자 받아서 한 모금 쭉 빨았어요.


내 동심이 산산조각났다.


그래요. 얼마 남아 있지 않던 순수한 동심이 산산조각나는 맛이었어요. 달콤한 물이 가득할 거라는 상상. 어렸을 때부터 조금 전, 코코넛 즙이 빨대에서 제 구강으로 넘어오기 바로 전. 거기까지. 딱 거기에서 끝냈어야 했어요. 코코넛 즙이 빨대에서 제 구강으로 들어오는 순간 어렸을 적부터 상상해왔던 그 아름다운 장면은 완벽히 깨져버렸어요. 바닥에 뒹굴고 있는 코코넛 뚜껑은 코코넛 뚜껑이 아니야. 그건 바로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간직해왔던 나의 몇 안 되는 순수한 상상. 이 아저씨가 칼로 내리친 건 그냥 야자 열매가 아니야. 바로 내가 갖고 있던 코코넛에 대한 환상.


야자즙 맛은 튀니지에서 먹었던 그 야자와 거의 똑같았어요. 그냥 물 대신 마셔도 되는 맛. 약간의 향이 있기는 했지만 무시해도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은 그런 너무나 약한 맛. 솔직히 단맛이 있는지 느낄 수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좋은 향이 진하게 풍겨나오는 것도 아니었어요. 과육은 씹는 맛이 조금 있기는 했어요. 과육의 맛과 식감은 튀니지 것과 달랐어요. 그러나 역시 그걸로 끝. 야자즙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원주민 아이들, 해변에서 우아하게 야자즙을 빨아먹는 관광객들. 그리고 코코넛 이름을 달고 나온 과자와 음료들. 이 모든 것들을 보며 상상해왔던 그 맛과는 아주 동떨어진 맛이었어요.


상상과 일치하는 점이라면 딱 외관. 그것 뿐이었어요. 초록색의 커다란 열매와 그 속에 한가득 들어 있는 물. 인도는 비포장에 좁고, 옆으로는 차와 오토바이가 바글바글 씽씽 달리고 있었어요. 무거운 코코넛을 들고 여유롭게 돌아다니며 마실 상황도 아니라 그 자리에서 다 마셔야 했어요. 물 500ml를 그 자리에서 빨대로 쪽쪽 빨아먹는 기분이었어요. 이 잔인한 현실을 목도한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코코넛 물은 아무리 빨아도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어요. TV에서 원주민 아이들이 코코넛 물을 마실 때 질질 흘려대는 이유가 있었어요. 코코넛에 입 대고 마시면 그렇게 흘리게 생겼거든요.


코코넛 물을 다 마시고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여기 말고 다른 곳 갈까?"


이 길 자체가 제가 상상하던 그런 곳이 아니었어요. 친구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그 '칼리우랑 거리'가 맞다고 했어요. 무언가 대학교 근처 번화가를 상상했는데 그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풍경이었어요. 학생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학생들과 관련된 물품을 파는 것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우리 다른 곳 가자."

"어디?"

"그라메디아 서점."

"응. 그런데 조금 걸어야 해."

"괜찮아."


칼리우랑 거리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딱 이거 하나 밖에 없었어요.



두리안을 주스로 만들어서 먹기도 하나보구나.


만약 장사를 하고 있었다면 사먹어보았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문을 닫아서 먹어보지는 못 했어요.




이렇게 하천을 건너가자 가자마자 대학교 Universitas Gadjah Mada 가 나왔어요.




가자마자 대학교 Gadjah Mada University 는 인도네세아에서 가장 큰 대학교 중 하나로, 약자로는 UGM 이에요. 1946년에 첫 강의가 시작되었고, 공식적인 개교는 1949년에에 이루어졌어요. 문과에서는 인도네시아 대학교와 더불어 인도네시아에서 최고의 명문 대학교로 손꼽히는 대학교이지요.  이과에서는 이 두 대학교에 반둥 공과대학까지 포함되구요. 친구 말로는 족자카르타가 인도네시아에서 교육과 학문의 도시로도 유명한 곳이래요. 그래서 그 드넓고 무수히 많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족자카르타로 공부하러 유학을 온대요.


가자마자 대학교는 규모가 정말 컸어요. 건물들 사이로 시원하게 차도가 뚫려 있었어요.


족자카르타 간다 마자 대학교




한참 걸어서 가자마자 대학교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버스를 타고 그라메디아 서점이 있는 곳으로 갔어요.



"여기에는 책 많지?"

"응. 그런데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사지 마. 내꺼 줄께."

"알았어."


Gramedia bookstore


서점 내부는 사진 촬영 불가였어요.


"인도네시아 전래동화 책 있을 건가?"

"응. 있어."


친구는 저를 인도네시아 전래동화 부스로 데려갔어요.


인도네시아 전래동화


"우와! 예쁘다!"


왼쪽 것을 보니 삽화가 너무 예뻤어요. 그런데 오른쪽 것을 보니 정말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어요.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왼쪽 것. 그러나 이성을 자극하는 것은 오른쪽 것. 둘 다 사면 인도네시아 루피아가 부족해져서 환전을 또 하러 가야 했어요. 오른쪽 책의 특징은 설화 자체도 많이 수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 전래동화인지 지역이 정확히 분류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인도네시아어를 잘 모르지만, 나중에 인도네시아어를 그럭저럭 하게 되어서 인도네시아 문화를 공부할 때에 필요한 것은 분명히 오른쪽 책이었어요. 그러나 왼쪽 책의 그림을 포기할 수도 없었어요.


'어쩌지?'


한참동안 두 책을 번갈아 펼쳐보며 고민했어요. 결론은 간단했어요.


그냥 둘 다 산다.


까짓거 조금 더 걷고 말지. 언제 인도네시아 다시 올 지도 모르는데 지금 안 사고 후회하면 나중에 배송료 붙어서 몇 배로 비싸진다.


여행가서 정말 마음에 드는 그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구입하는 게 답이더라구요. 돈 아낀답시고 안 사고 돌아오면 두고두고 후회되요. 그리고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고통은 더욱 커지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문하는 순간 물건값보다 비싼 배송료를 번뇌에서 벗어나는 대가로 치루어야 하구요. 특히 책은 인터넷으로도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이 더욱 커요. 어느 날 문득 떠올라서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하고 엔터를 치는 순간, 겨우 진정시켰던 고통이 다시 화끈하게 불타오르지요.


자바어 교재도 있나 살펴보았어요. 그런데 자바어 교재는 마땅히 괜찮은 게 없어 보였어요. 일단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 자바어 문자가 나와 있는 책이 아예 보이지 않았어요.


서점에서 책을 구입한 후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일단 서점 옆에 있는 카페로 갔어요.


Jawa tea


자바 차를 주문하자 설탕이 같이 나왔어요.


"이거 왜 이렇게 단단해?"

"이거 인도네시아 특산물이야."


친구가 차와 같이 나온 설탕은 인도네시아 특산물이라고 알려주었어요. 인도네시아어로는 Gula batu '굴라 바뚜' 라고 한대요. 우리말로는 '얼음 사탕'이라고 하며, 기원은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중동에 있는 이란이라고 해요. 우리가 흔히 먹는 각설탕과 달리 이것은 쉽게 녹지 않았어요. 예전 아제르바이잔 갔을 때가 생각났어요.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입에 사탕이나 각설탕을 물고 차를 마셔요. 저도 흉내를 내보려고 했는데 각설탕은 너무 쉽게 녹아서 차 한 모금에 각설탕 한 알이었고, 사탕을 입에 물고 마시니 사탕이 쉽게 잘 녹는 게 아니라서 차와 사탕이 따로 노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설탕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녹지 않아서 입에 물고 차를 마시기 딱 좋았어요. 인도네시아는 입에 설탕을 물고 차를 마시는 문화가 아닌데 정작 설탕은 그렇게 먹기 딱 좋다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여기는 몇 월에 낮이 길어?"

"응?"

"언제 낮시간이 제일 길어?"

"응?"


인도네시아 와서 깜짝 놀란 것은 낮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 6시면 실상 밤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언제 낮시간이 가장 긴지 물어보았어요. 남반구이니 12월 동지때 낮시간이 가장 길 건가? 그런데 친구는 제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내 영어가 정말 형편없는 건가? 제 발음이 문제인가 싶어서 글로 써서 보여주었지만 역시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손짓 발짓 해가며 설명하려 했지만 결국 포기했어요.


나중에야 알게 되었어요. 친구가 저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은 친구가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었어요. 인도네시아는 적도 및 그 주변에 위치한 국가이다보니 위도상 저위도 지역에 속해요. 낮과 밤의 시간 차이는 고위도 지역으로 갈 수록 변화가 커지고, 저위도 지역으로 갈 수록 변화가 작아져요. 그리고 몇 시에 진짜 어두워지는지는 어떤 표준시간대를 사용하고, 그 표준시간대를 사용하는 지역의 오른쪽에 있는지 왼쪽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져요. 인도네시아 자바섬이 6시가 되면 어두컴컴해지는 이유는 자바섬이 적도 근처에 위치한 데다 자바섬은 인도네시아 및 동남아시아에서 사용하는 표준시간대에서 동쪽에 위치해 있어요. 이러니 해가 일찍 지는 것. 즉 제가 엉터리 질문을 한 것이었어요.


친구는 족자카르타가 교육 도시로 유명하다는 점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해 주었어요. 인도네시아는 공부만 잘 하면 고등학교, 대학교를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대요. 아예 섬에서 섬을 뛰어넘는 것 역시 가능하대요. 그러다보니 많은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족자카르타로 유학을 온다고 했어요.


"이리안자야에서 오는 학생들도 있어?"

"응. 있기는 있어. 그런데 매우 적어. 이리안자야에서 여기 오려면 성적이 그곳에서 최상위여야 해. 왜냐하면 거기는 학업성취수준이 매우 떨어지거든."


참고로 이리안자야는 뉴기니섬 서부에요. 뉴기니섬 동부는 '파푸아뉴기니'라는 나라이고, 서부는 인도네시아 영토인 이리안자야이지요.


"나 이리안자야 가보고 싶어."

"이리안자야?"

"응."

"왜?"


친구가 재미있어하면서 당황해하며 물어보았어요.


"음...그냥. TV에서 보았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사실 이리안자야와 파푸아뉴기니를 가보고 싶은 이유는 아주 오래전까지 거슬러가요. 초등학생 시절, 제주 조각공원으로 현장학습을 갔어요. 당시 거기에서 뉴기니섬 사진들을 상설 전시하고 사진도 판매하고 있었어요. 뭔가 아프리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모습은 너무나 충격이었어요. 흑인들은 자기들끼리 자기들 외모를 보고 민족 구분도 한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그냥 다 검은 사람. 진짜 실제 '흑인'을 본 게 대학교 와서였으니, 그 당시에는 그냥 다 시커먼 사람들일 뿐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찍혀 있는 사진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자극. 말초신경부터 중추신경까지 온통 그쪽으로 관심이 쏠렸어요. 당시 천 원인가 하는 사진 두 장을 사와서 한동안 시간날 때마다 그 사진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꼭 이곳에 가서 저 사람들을 만나보겠다고 다짐했어요. 여기에 초등학교 6학년때 해군아파트에서 살던 친구가 파푸아뉴기니 우표 세 장을 주었는데, 그 중 두 장이 독특한 머리장식을 한 검은 사람이 그려진 우표였어요.


"거기 가지 마."

"왜?"

"먼저 거기는 비행기표가 비싸. 물가도 비싸. 게다가 거기 가면 너는 무조건 말라리아 걸릴 거야."


친구에게 몇 번 자카르타 및 족자카르타에 말라리아가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인도네시아 여행 가기 전에 진지하게 말라리아약을 구입해서 매일 먹어야하나 고민도 했었어요. 말라리아 검색해보면 동남아시아는 말라리아 위험지역이거든요. 그래서 꼭 말라리아약을 복용하라고 해요. 그렇지만 동남아시아 다녀오는 사람들 중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하며 다니는 사람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고,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했던 사람들의 후기는 한결같이 차라리 그냥 걸리고 만다는 것이었어요. 멀리 갈 것 없이 한때 우리나라 최전방에서는 말라리아 예방약을 지급해서 의무적으로 먹게 했는데, 이게 너무 독해서 몰래 안 먹고 버렸다는 이야기가 꽤 많았어요. 친구는 자카르타, 욕야카르타는 말라리아가 거의 없으니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그 말을 믿고 모기기피제도, 말라리아 예방약도 하나도 준비하지 않고 동남아시아 여행을 떠났어요.


친구가 진지하게 이리안자야는 가지 말라고 말려서 웃었어요. 그리고 친구에게 대답해주었어요. 자바섬, 수마트라섬, 발리섬, 보르네오섬, 술라웨시섬을 완벽히 다 보고 나서 가겠다구요. 저 섬들 하나하나 제대로 보려면 각 섬마다 한 달은 잡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인도네시아만 반년 넘게 여행한 후에 갈 거라구요. 실상 인도네시아 여행의 마지막이 이리안자야가 될 거라고 말해주었어요.


"10월에는 인도네시아에 비가 엄청나게 내려. 그러니 10월은 피해서 와."


친구는 인도네시아, 그리고 그 중에서도 족자카르타에 꼭 다시 오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어요. 친구가 이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정말 다시 오고 싶었어요. 제가 봐도 제가 본 족자카르타는 족자카르타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친구는 제게 선물을 주었어요.


alchemist


이것이 바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인도네시아어 버전.



그리고 제가 Good day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종류별로 2개씩 구해주었어요. 맨 위에 있는 것은 인도네시아 삼발 소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자리에서 일어나 환전을 하고 짐을 찾으러 숙소로 돌아갔어요. 짐을 찾아서 버스를 타고 말리오보로 거리 입구로 간 후, 친구와 다시 만났어요.


친구와 기차역으로 걸어갔어요.




이제 여기를 떠나는구나.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어요.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았어요. 인도네시아 일정을 조금 더 길게 잡을걸. 과연 태국이 이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워낙 태국이 볼 것도 많고 음식도 맛있다고 해서 일정을 길게 잡았는데 과연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지 궁금해졌어요. 모레 이 시각, 나는 방콕에 있겠지. 방콕에서 저녁을 먹으며 어떤 기분이 들까? 방콕에 와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인도네시아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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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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