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21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프람바난 사원 Prambanan temple

좀좀이 2015. 8. 1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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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오보로 버스 정거장으로 1A 버스가 왔어요. 프람바난 사원은 1A 버스 종점에서 조금 걸어가면 있어요. 버스 요금은 3600 루피아. 보로부두르 사원과 달리 혼자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곳. 1A 버스를 탔어요.


'종점까지 금방 갈건가?'


버스 노선도를 보면 왠지 금방 도착할 것 같았어요.


'잠깐만 잠 좀 자야겠다.'


너무 피곤했어요. 아침 일찍 나와서 뙤약볕 아래를 쉬지 않고 계속 걷거나 서 있었어요. 앉아서 쉰 적은 거의 없었어요. 그나마 쉬었다고 할만한 것이라고는 따만 사리 거의 다 와서 음료수 먹으며 쉬었던 것과 카우만 모스크 베란다에 잠깐 앉아 있었던 것 정도였어요. 이것은 이제 의지 문제를 떠났어요. 처음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버스 창밖을 보고 싶었어요. 이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꺼풀은 계속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어요. 가방을 꼭 껴안았어요.


긴장이 풀어졌어요. 도중에 내려야한다면 마지막까지 정신줄을 부여잡기 위해 노력을 했을 거에요. 그러나 제 목적지는 버스 종점. 도중에 내려야할 일이 전혀 없었어요. 종점에 도착하면 알아서 깨워주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억지로 잠을 참아야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노트북 가방이라 어설프게 면도날로 긋는 정도로는 도난을 당할 일도 없었고, 크기도 커서 드러누워 자지 않는 이상 이것을 빼가는 것을 모를 수도 없었어요.


으음...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떴어요. 버스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내리고 있었어요.


"프람바난?"

"프람바난."


저도 따라서 내렸어요. 잠이 덜 깨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버스에서 잠을 청해 깊이 잔 것 같았지만 피로가 확 풀린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이 버스가 왜 벌써 도착했는지 짜증이 났어요. 딱 10분만 더 자면 개운할 거 같은데 그 10분을 더 못자고 일찍 일어나버린 기분이었어요. 버스에서 내리니 역시나 더웠어요. 비록 정오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더운 건 더운 것이었어요. 졸리고 더워서 미간을 있는 힘껏 찌푸렸어요. 베짝 기사들이 다가와서 프람바난 가자고 했지만 싫다고 했어요. 종점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베짝을 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인상을 팍 쓰고 있는 것은 베짝 기사들이 성가셔서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베짝 기사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어요. 덥고 잠이 덜 깨어서 이렇게 인상 팍 써야 그나마 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베짝 기사들은 제 표정이 매우 안 좋은 것을 보고 제가 안 탄다고 하자 그냥 갔어요.


"커피나 한 잔 마시고 가야겠다."


버스 정거장에 있는 식당으로 갔어요.


"굿데이 쿨린 한 잔 주세요."


커피를 시키고 점심도 여기서 먹고 갈까 싶어서 뭐가 있나 살펴보았어요.




날아다니는 파리. 그리고 언제 튀기고 구웠는지 모를 닭다리. 먹으면 탈이 날 것 같았어요. 굿데이 커피 쿨린이 나오자 홀짝이며 마시기 시작했어요.


"하아...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네."


프람바난 버스정류장


Prambanan bus stop


오후 3시. 현재 내 위치는 Trans Jogja 1A 버스 종점. 이제 1km 정도 걸어서 프람바난 사원만 가면 오늘 일정은 끝이구나. 이거 분명히 나중에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면 내가 매우 힘들게 강행군했다고 생각하겠지? 실제로는 내가 저질 체력이라 힘들게 다닌 거지, 별로 힘든 일정까지는 아닌데 말이야. 그러고보니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부지런히 돌아다닌 날이구나. 여행다닐 때 항상 늦잠 퍼질러 자다가 점심 즈음 일어나서 어기적어기적 기어나와 돌아다녔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잘 돌아다녔단 말이야. 오늘은 계획한 일정대로 다녔는데 시간에 쫓긴 특이한 날. 어쨌든 이제 이것 보고 내일 아침 일찍 나와서 파쿠알라만 크라톤만 보면 여기에서 꼭 보아야하는 건 다 보는 셈이네.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나려는데 아랫배가 갑자기 쓰렸어요.


"화장실 어디에요?"

"저기."


화장실로 걸어갔어요. 화장실 이용 요금은 2천 루피아였어요.


설사를 했어요. 설사를 하고 나니 다시 속이 진정되었어요. 왜 갑자기 설사가 나왔지? 쪼그려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먹은 게 문제인가? 그런데 먹은 게 문제였다면 이렇게 단발성 설사가 아니라 쉴 새 없이 설사하고 배가 아파야 했어요. 그렇다고 물을 과도하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어요. 일단 먹은 것 때문에 생긴 건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남는 경우는 두 개. 전날밤 이불을 얇게 덮고 잔 것이 문제이거나, 가볍게 더위를 먹어서이거나요. 이 둘 중 무엇이 더 가능성이 있는가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예전 예비군 훈련 받다가 제대로 더위를 먹은 적이 있었어요. 당시 예비군 훈련장에 정제 소금이 비치되어 있었고 혹시 더위 먹은 것 같으면 달라고 해서 먹으라고 했어요. 훈련장 갈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훈련받는 중 계속 몸이 안 좋다고 느꼈어요.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갈 때 멀미하듯 어지러웠고 식은땀이 계속 흘렀어요. 그리고 집에 가서 설사를 했어요. 그때를 떠올려보면 더위 먹은 것 치고는 너무 증세가 가벼웠고 식은땀과 현기증도 없었어요. 결론은 전날 이불을 너무 얇게 덮고 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었어요. 이게 이 당시 중요했던 이유는 만약 더위 먹은 것이었다면 식당으로 돌아가서 소금 한 티스푼 달라고 부탁하고 물 한 통 사서 소금 먹고 물을 들이켜야 했거든요.


인도네시아 화장실


화장실 안에는 역시나 휴지가 없었어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뒷처리를 했어요. 인도네시아 여행 필수품은 바로 화장지.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인도네시아에서는 원래 왼손으로 물로 닦아내고 저 바가지로 물을 떠서 손을 씻거든요. 어쩌면 이 방법이 공중화장실의 위생 상태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인도네시아인들이라면 자기가 물을 부어서 내리니 변기 물 안 내리고 가는 경우는 없을테니까요. 어쨌든 볼 일을 보고 나서 저 옆에 있는 물통에서 물을 떠서 부어주면 되요.


화장실을 다녀오니 몸이 매우 좋아졌어요. 드디어 피로가 풀린 느낌도 들었고, 정신도 말짱하게 돌아왔어요.


기념비


정류장에서 나와 오른쪽을 보니 이런 기념비가 있었어요. 이 방향으로 쭉 걸어갔어요.



요그야카르타 경계를 알려주는 문이 나왔어요.


Mosque in jogja


"저건 왜 이렇게 모로코의 모스크처럼 생겼지? 모로코 사람들이 지었나?"


눈 앞에 있는 모스크 모습은 모로코, 튀니지에서 보았던 모스크 양식과 매우 비슷했어요. 정말 다양한 모스크 양식이 존재하는 인도네시아였어요.


모로코 카사블랑카 모스크


위의 사진은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있는 하산2세 모스크에요. 모로코, 튀니지 모스크와 다른 점은 이 모스크의 미나렛(첨탑)은 원기둥형이고, 모로코, 튀니지 모스크의 미나렛은 사각기둥이라는 점이에요.



작은 동네 예배당 수준의 모스크가 나왔어요. 이 맞은편은 바로 프람바난 사원이었어요.


"어? 여기는 입장료 매우 저렴하네? 왜 이렇게 저렴하지?"


매표소 앞으로 가서 줄을 섰어요.


"안녕하세요."

"인도네시아인이에요?"

"아니요, 한국인이요."

"그러면 저기 돌아가서 표 구입하세요."


입장료가 저렴하다고 좋아했는데, 그것은 인도네시아인들을 위한 매표소였어요. 직원이 알려준대로 돌아가서 외국인용 매표소로 갔어요.


프람바난 사원 입장 티켓


프람바난 사원 입장료는 22만 5천 루피아였어요. 보로부두르 사원 입장료가 25만 루피아였으니 여기는 거기보다 입장료가 2달러 정도 더 저렴한 셈이었어요.



"와! 여기 와이파이도 되잖아!"


프람바난 사원 매표소에서는 와이파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어요.



입장료가 비싼 대신 서비스로 차나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었어요. 한 잔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어요. 보로부두르 사원에서도 이런 서비스가 있었어요.


'이런 건 우리나라도 좀 따라해보아도 좋지 않을까?'


사실 우리나라 관광지 요금 체계와 다른 나라의 관광지 요금 체계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에게 너무 굽신거리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다른 나라는 자국민들은 저렴하고 외국인들에게는 비싸게 받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나라는 자국민, 외국인 구분 않고 똑같이 돈을 받지요. 심지어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만 특혜를 줄 때도 있구요.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외국인들에게 어떻게든 홍보해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조금 바꾸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적인 것도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예전에는 닥치고 '두 유 노우 김치?'라고 물어보고 어떻게든 외국인 입에 김치를 우겨넣으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두 유 노우 막걸리?'라고도 물어보고 이것 저것 물어보며 권해볼 생각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외국인들에게는 돈을 조금 더 받고, 그 대신 지역 특산물로 이루어진 간단한 다과를 제공하는 아이디어는 분명 진지하게 검토해볼 문제에요. 어찌 보면 강매이지만, 먹고 좋으면 자기들이 구입해가겠지요. 그냥 맛만 보고 가도 어쨌든 판매한 셈이니 손해볼 것도 없구요. 홍보도 하고 판매도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죠.



표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한국인이에요?"

"예."

"가이드 안 필요해요? 1만원이에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런데 어떻게 한국어 아세요?"

"한국에 있었어요."


인도네시아인이 한국어로 가이드가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래서 괜찮다고 대답했어요. 한국어를 꽤 유창히 잘 해서 어떻게 한국어를 아냐고 물어보자 한국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고 대답해 주셨어요.


"얼마전까지는 한국인들이 왔어요. 대구에서도 왔고, 부산에서도 왔어요. 그런데 요즘은 거의 안 와요."

"아...6월은 한국인들이 여행하기 나쁜 달이에요. 대학생들은 시험을 치루고,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는 시험준비기간이거든요. 그래서 부모님들도 움직일 수가 없어요."

"아하!"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가려는데 아저씨께서 저를 다시 부르셨어요.


"왼쪽으로 가요. 거기가 사진 잘 나와요."


아저씨 말씀대로 입구쪽으로 바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갔어요.



"멋지다!"





프람바난은 꼭 오전에 가세요.


진심이에요. 프람바난은 꼭 오전으로 가야 해요.





말리오보로에서 1A 버스를 타고 가면 얼추 30분에서 1시간 걸려요. 점심 먹고 쉬다 2시쯤 출발하면 3시 조금 넘어서 프람바난 사원 종점에 도착해요. 바로 이때 프람바난 사원은 정확히 역광에 걸리는 시간이에요. 인도네시아는 햇빛이 강하기 때문에 역광에 걸려버리면 사실 답이 없어요. 사진은 실상 포기해야 해요. 커다란 건축물에 플래시를 터칠 것도 아니고, 워낙 하늘과 건물의 대비가 강하다보니 어떻게 사진을 찍을 방법이 없어요. 게다가 보로부두르, 프람바난은 짙은 회색빛이라 역광 상황에서 사진찍기 더욱 나빠요. 역광 상황에서는 하늘과 피사체 둘 중 하나를 취사선택해서 사진을 찍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 두 유적은 진한 회색이다보니 정말로 밝게 찍어도 사진이 바보같이 나와요. 무슨 말이냐하면 진한 회색 건물이 잘 나오게 찍으면 하늘이 과다한 노출로 찍히기 때문에 하늘의 밝은 빛이 건물까지 뭉개버려요.



제대로 찍을 수 있는 것은 이 프람바난 사원 복원 작업을 알리는 간판이 전부였어요.


정문으로 갔어요.



Candi Prambanan


여기는 이렇구나.


멋지기는 했어요. 문제는 제가 전날 보로부두르 사원을 보았기 때문에 프람바난 사원도 보로부두르 사원 정도로 굉장할 거라 기대했다는 것이었어요. 프람바난 사원도 멋지기는 했지만 보로부두르 사원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보로부두르 사원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고, 여기는 아무리 악마들이 하룻밤에 세웠다는 전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까지 신기한 곳은 아니에요. 그냥 멋지게 잘 지었다는 정도. 만약 여기부터 보았다면 입 쩍 벌어지고 멋있다고 흥분했을 거에요. 그러나 여기를 나중에 왔기 때문에 가슴 벅찬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게다가 하필이면...



Prambanan and Merapi


멀리 므라삐 화산이 매우 잘 보였어요.


프람바난 유적군


이렇게 무너져있는 돌들을 보니 이거 언제 다 복원하나 싶었어요. 만약 이것들이 다 멀쩡히 있었다면 여기도 보로부두르에 뒤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곳이었을 거에요. 그리고 이곳을 이렇게 돌무더기 폐허로 만든 것이 바로 므라삐 화산. 보로부두르를 파뭍어버리고 여기도 다 무너뜨려버린 그 엄청난 화산이 너무나 잘 보였어요. 시선이 프람바난 사원으로 가야 하는데 자꾸 므라삐 화산으로 갔어요. 프람바난 사원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경탄하게 되는 게 아니라, 므라삐 화산을 보며 이 거대한 유적을 파괴시켜버린 그 위력에 놀랐어요. 오전에 보았던 요그야카르타 크라톤 근처 화산재도 전부 므라삐 화산의 작품. 족자카르타를 알아갈 때 므라삐 화산을 빼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 므라삐 화산이 너무 잘 보였어요.


므라삐 화산은 성층화산으로, 순상화산인 한라산과는 모습이 달랐어요. 비록 같은 화산이기는 하지만, 순상화산인 한라산이 푸근하게 생겼다면, 성층화산인 므라삐 화산은 딱 봐도 사납게 생겼어요. 게다가 한라산은 휴화산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화산 같은 느낌이에요. 최소한 대한민국 광복 이후에는 화산 활동이 일어났던 적이 없어요.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시대 목종때 마지막으로 화산 활동이 있었다고 해요. 반면, 므라삐 화산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활화산 중 하나.




프람바난 사원 건물 안으로 올라가서 들어가볼 수 있었어요.





힌두교 유적





프람바난 사원은 사실 '파람바난 사원 유적군'이라고 하는 게 맞아요. 이 유적지에서 가장 유명하고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유적은 프람바난 사원. 그러나 그 외에도 사원 유적이 몇 곳 더 있어요.


이제 문 닫을 시간이 거의 되었기 때문에 나머지 유적을 후딱 보고 돌아가야 했어요.





프람바난 사원 유적을 뒤로 하고 다른 유적들도 둘러보았어요.



Candi Lumbung


위의 사진들은 룸붕 사원 Lumbung temple 이에요. 참고로 candi 가 인도네시아어로 '사원'이라는 뜻이에요.


Lumbung temple


Sewu temple


candi sewu


위의 사진들은 세우 사원 Sewu temple 이에요. 프람바난 사원 유적군에서 프람바난 사원 다음으로 볼만한 곳이지요. 그리고 프람바난 사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원 유적이기도 해요.


세우 사원과 프람바난 사원 사이에도 사원 유적이 하나 있었어요. 하지만 너무 처참히 파괴되어서 도저히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어요.





프람바난 사원을 제외하면 그저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정도였어요. 인간이 이렇게 유적을 파괴했다면 상당히 강한 비난을 가했을 거에요.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파괴한 게 아니라 므라삐 화산이 저지른 일이었어요. 인간이 만든 것을 자연이 자연으로 되돌려버린 것. 복원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완벽히 무너져서 과연 복구가 가능할지 의문이었어요. 만약 기적적으로 복구가 된다면 여기도 둘러보는 데에 정말로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복원 과정 자체가 인류 역사의 미스테리로 손꼽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만약 이곳이 파괴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보로부두르 사원이 더 멋진지 프람바난 사원이 더 멋진지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겠죠.




구경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출구는 프람바난 사원쪽 입구 근처라서 다시 프람바난 사원으로 돌아갔어요. 이제 날이 저물어서 더 보고 싶어도 특별히 볼 게 없었어요.


프람바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어요.



"드디어 다 봤구나!"


오늘 목표한 것을 전부 끝냈어요. 이제 남은 것은 파쿠알라만 크라톤. 그것 하나만 보면 끝이었어요. 성취감보다는 해방감이 느껴졌어요. 내일 밤 기차이고 내일 체크아웃도 해야 하니까 뭔 짓을 하더라도 파쿠알라만 크라톤 하나 정도는 충분히 보겠지. 파쿠알라만 크라톤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찝찝해야겠지만, 이런 이유로 찝찝한 기분은 하나도 없었어요. 물을 마시며 버스를 기다리다 1A 버스가 오자 버스를 탔어요. 버스는 족자카르타 공항을 거쳤고, Gramedia 서점 앞도 지나갔어요. Gramedia 서점은 욕야카르타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고 해요.


저녁을 먹기 위해 투구역에서 내렸어요. 버스에서 내리니 저녁 6시 50분이었어요.


'오늘은 사떼 먹어야지.'


인도네시아 음식 중 가장 유명한 것 세 가지를 들라고 한다면 나시 고렝, 른당, 그리고 사떼에요. '사떼' sate 는 인도네시아식 꼬치 구이에요. 사떼에 꽂혀 있는 고기는 얼추 10cm 정도 크기에요. 사떼를 거리에서 사먹는다면 인도네시아인들이 저녁을 먹는 시간에 맞추어서 사먹는 것이 좋아요. 이유는 한 번 구워놓은 사떼를 다시 굽거나 데워서 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초벌구이를 해놓고 손님이 고르면 재벌구이를 해주는 것이 아니에요. 이러니 어정쩡한 시간에는 길거리에서 사떼를 사먹는 것이 꺼려지는 것이 사실. 사떼도 인도네시아에서 유명한 음식이니 한 번 먹어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저녁 시간에 투구역에 도착했어요.


말리오보로 거리 말고 투구역 너머에 있는 음식점들은 맛이 어떨건가?


투구역 너머에도 노천 음식점이 주욱 있었어요. 그러나 밤에 그쪽으로 가본 적은 없었어요. 어차피 남는 것은 시간. 가서 뭐가 있나 일단 보고 오기로 했어요. 정 없으면 다시 말리오보로 거리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어요. 거리상으로는 매우 가까운 거리. 단지 차도와 철로를 건너야할 뿐이었어요. 특히 이 철로 앞 차도에는 오토바이도 많고 자동차도 많았어요.


"여기가 사떼 전문점인가 보구나!"


sate


말리오보로 거리와 달리 여기는 사떼 종류 자체가 많았어요. 말리오보로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는 사떼 종류가 이렇게 많지 않았어요. 거리에서 조그맣게 숯불 피우고 사떼를 구워 파는 여자들도 있기는 했어요. 거리에서 사떼를 구워 파는 여자들이 다양하고 많은 사떼를 구워 팔 리가 없었어요. 이 여자들을 보며 '인도네시아에서 사떼는 길거리 간식인가?'라고 생각해보기까지 했어요. 사떼 크기는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파는 닭꼬치의 절반 정도에요. 우리나라에서 닭꼬치는 간식인데, 인도네시아 사떼는 이것의 절반 크기이니 '요리' 보다는 '간식'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어요.



이것이 사떼 가게 메뉴판이에요.


인도네시아 노천 식당


자리에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현지인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맛집이라는 증거. 재미있는 점은 말리오보로 거리에 있는 식당들은 한산했는데, 투구역 너머에 있는 사떼 파는 가게 두 곳에는 사람들이 정말 바글바글하다는 것이었어요. 다행히 한 자리가 나와서 그 자리로 재빨리 앉았어요. 일단 자리를 잡은 후, 사떼를 골라서 먹었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나나 튀김. 정말 달고 맛있었어요. 그 외 고기로 만든 사떼들도 맛있었구요.


사떼를 먹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말리오보로 거리로 갔어요.


Malioboro street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세탁 서비스를 맡긴 옷을 찾은 후, 방으로 돌아와 오늘 입은 옷을 빨아서 밖에 널어놓았어요.


정말 떠나기 싫다...


내일 족자카르타를 떠나야 했어요. 아직 여기를 다 보지도 못했는데 떠나야하다니 너무 아쉬웠어요. 좀 더 여기에 오래 머무르고 라오스 및 태국 일정을 줄이고 싶었지만 에어아시아 비행기표를 이미 결제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일정을 바꾸려면 돈이 많이 들었어요. 6월 7일 자카르타발 방콕 도착 비행기표 덕분에 인도네시아 일정은 늘리지도 줄이지도 못하는 상황.


인도네시아를 갈지 마지막까지 망설였던 이유가 둘 있었어요. 그 중 하나는 라마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도네시아가 볼 건 많은데 엄청 크다는 것이었어요. 제대로 잘 보려면 한 달 잡아야 자바섬 하나 다 보지 않을까 싶었어요. 자바섬이 섬이라서 작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에요. 자바섬 면적은 12만 6700 제곱 킬로미터. 우리나라 면적은 9만 9720 제곱 킬로미터. 우리나라는 몇 년 전 인구 5천만 겨우 넘겼는데, 인도네시아 자바섬 인구는 1억을 가뿐히 넘겨요. 지도로 보면 인도네시아가 적도에 위치한 나라다보니 상대적으로 면적이 작게 나와요. 여기에 바로 옆 서쪽에는 자바섬보다 훨씬 큰 수마트라섬이 있고, 동쪽으로 조금 멀리 보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섬인 뉴기니섬이 있어요. 그래서 작아보일 뿐, 실제로는 상당히 큰 섬이에요. 그렇다고 덜렁 버려져 있던 섬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해상무역로의 요지였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중요한 곳이자 문화가 발달한 곳이었어요. 일주일 가지고는 자바섬도 제대로 볼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고, 더욱이 라마단도 6월 말에 시작될 예정이었어요. 라마단 문제는 6월초에 인도네시아를 가는 것으로 어떻게 해결했지만, 여행 일정 모두를 인도네시아에 쏟아부을 수도 없었어요.


'방콕이 그렇게 볼 게 많을까?'


뭐가 어찌 되었든 인도네시아 일정은 손댈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하도 방콕이 볼 것이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다고 해서 방콕 일정을 꽤 길게 잡았어요. 인도네시아 일정의 아쉬움을 방콕이 달래주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어요. 최근 태국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쏟아져들어가고 있다는 보도를 몇 번 보았어요. 중국인들 쏟아져 들어오면 어떤 꼴 나는지 서울과 제주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예전에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만큼 방콕이 매우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여행자들 사이에서 방콕은 거의 성지급인 곳.


'썩어도 준치랬으니 중국인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해도 굉장할 거야.'


내일 밤 족자카르타를 떠나야하는 것에서 오는 아쉬움을 저 생각으로 달래었어요.


족자카르타는 우리나라 경주쯤 되는 곳이었어요. 깊이 들여다볼수록 볼 것이 계속 끝도 없이 나오는 것 같았어요. 과연 방콕이 이런 매력을 줄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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