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20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카우만 모스크 Kauman Great Mosque

좀좀이 2015. 8. 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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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더는 못 걷겠다."


나는 지금 덥다. 더워서 땀이 난다. 땀이 나서 덥다. 그래서 땀이 난다. 그래서 덥다. 그래서 땀이 난다. 그래서 덥다...


아주 안 좋은 현상의 무한 궤도였어요. 가뜩이나 덥고 습한데, 땀이 비오듯 쏟아지니 옷 속은 한증막. 정말 웃통을 홀라당 다 벗고 돌아다니고 싶었어요. 차마 웃통을 벗어버릴 수는 없어서 가끔 옷 속으로 바람을 불어넣는 수밖에 없었어요. 바람이라도 불면 좋을텐데 바람은 하나도 불지 않았어요. 몸은 딱 두 가지 상태 중 하나를 반복하고 있었어요. 땀 때문에 미끌거리거나, 아니면 땀이 말라서 찐득거리거나요.


이제 남은 것은 카우만 모스크 - 정식 명칭이 masjid gedhe kauman 이고, masjid besar 라고도 부르는 모스크였어요. 따만 사리에서 걸어가야하는 거리는 약 1km. 시각을 확인해보니 이미 오후 1시가 넘어 있었어요. 아는 길을 1km 걸어간다면 15분쯤 걸려요. 문제는 지금 여기 길을 모르는 상황. 지도에 의존하며 가야 했어요. 게다가 덥고 체력도 많이 떨어졌어요. 모르는 길을 걸으면 길을 찾아가며 걷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고, 주변까지 둘러보며 걷는다면 그보다 또 더 많은 시간이 걸려요. 흔히 한 시간에 걸으면 4~5km 간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잘 아는 길을 걸을 때 이야기. 잘 모르는 길을 걸으면 한 시간에 2km 조금 넘게 간다고 보면 얼추 맞아요. 한국에서야 말이 잘 통하니까 빨리빨리 아무나 잡고 길을 물어가며 가면 되지만, 여기는 인도네시아. 길을 물어보는 거야 할 수 있지만 길을 알려주는 것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실상 무리였어요. 지금 상태에서 카우만 모스크까지 걸어간다면 최소 30분이었어요. 이러다 재수없으면 프람바난 사원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것 같았어요. 일단 프람바난 사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는데, 못해도 2시에는 버스를 타기는 해야할 것 같았어요.


"여기에서 카우만 모스크 멀어요?"

"1km 쯤 되요."

"베짝으로는 얼마에요?"

"글쎄요..."


인도네시아인 직원에게 베짝으로 카우만 모스크까지 얼마냐고 물어보았더니 대답을 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인도네시아인에게 물어보았어요.


"뭐 얼마나 잘 흥정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한 2만 루피아 정도?"

"감사합니다!"


2만 루피아? 알았어!


흥정은 어찌 보면 정말 쉽지만 어찌 보면 정말 어려워요. 흥정의 포인트는 바로 '현지 가격'. 현지 시세만 제대로 알고 있으면 흥정이 어려울 게 없어요. 그러나 현지 시세를 모르면 흥정만큼 어려운 것도 없지요. 현지 가격을 모르면 깎기는 깎았는데 이게 맞게 잘 깎은 것인지 아닌지 그 당시로는 알 방법이 없으니까요. 흥정이 어려운 이유는 솔직히 이 '찝찝함' 때문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흥정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바가지를 썼든 제 가격에 지불했든 그저 내가 그 가격이 제대로 된 가격이라고 믿는다면 그걸로 된 거에요. 그렇지만 이게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요. 현지 가격만 알면 그 가격을 부르든가 그거보다 조금 낮게 부르든가 하면 되요. 제대로 된 현지 가격만 안다면 흥정할 필요가 사실 없어요. 제대로 된 가격 불러서 싫다고 하면 그냥 가버리면 되거든요. 그러면 떠나가는 나를 잡든가, 아니면 누군가 분명히 그 가격에 상품을 팔게 되어 있어요.


어차피 사람들의 행동이 100% 일치할 리는 없어요. 같은 가격을 부르더라도 '나는 반드시 더 받아먹어야겠다'는 사람도 있고, '뭐 그 가격이면 되었다'는 사람도 있지요. 무턱대고 한 방에 좋다고 했다 해서 그보다 더 깎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내가 처음 부른 값이 진짜 운좋게 현지 가격에 딱 맞추었을 수도 있어요. 문제는 설령 이렇게 한 방에 맞추었다 할 지라도 '더 깎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심을 하게 되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는 찝찝함에 빠져버린다는 것이지요.


당장 베짝을 타야 했어요. 문제는 베짝을 타본 적이 없다는 것. 흥정의 시작을 어디에서 잡아야할지부터가 문제였어요. 계속 물어보고 거절당하면서 가격을 알아보면 대충 현지 가격을 가늠해볼 수 있겠지만,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짓 할 시간이 충분했다면 그냥 걸어가버렸겠죠. 이제는 시간에 쫓기고 체력도 후달리는 상황. 어떻게든 빨리 베짝을 타고 카우만 모스크를 본 후 프람바난 사원으로 가야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얼추 따만 사리에서 카우만 모스크까지 베짝 가격이 2만 루피아라는 정보는 석 달 가뭄만에 만난 가랑비 같은 존재였어요.


따만 사리 앞에 주차되어 있는 베짝으로 갔어요.


"카우만 모스크, 15000루피아."

"3만 루피아."

"15000 루피아."

"안 돼. 3만 루피아."

"안 타."


베짝 기사가 3만 루피아에서 가격을 내려주지 않자 바로 다른 베짝 기사에게 갔어요. 역시나 3만 루피아에서 깎아주지 않았어요. 제가 이렇게 흥정을 시도하자 베짝 기사들끼리 뒤에서 뭐라고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저를 삐쩍 마른 나이 드신 할아버지 베짝 기사에게 인도해주었어요.


"어디?"

"카우만 모스크요. 15000 루피아요."

"타."

"예? 15000루피아 맞죠?"

"응."


제가 15,000루피아를 부른 이유는 20,000루피아까지 깎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베짝 기사 할아버지께서는 알았다고 하시며 타라고 하셨어요.


'어? 이건 뭐지? 무슨 손님 몰아주기인가? 자기들 일하기 싫어서 이 할아버지께 나를 넘긴 거야?'


뭔가 심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15000 루피아에 해준다기에 올라탔어요. 제가 올라타자 베짝 기사 할아버지께서 앞에 올라타셨어요. 그 순간 왜 15000 루피아인지 알게 되었어요.


3만 루피아에서 절대 안 깎아주던 베짝 기사들은 동력 제공 장치가 오토바이였어요. 하지만 이 할아버지의 동력 제공 장치는 자전거였어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새 시장


bird market


베짝을 타고 새 시장을 지나갔어요.




이렇게 골목길을 지나가자




아까 걸었던 그 길이 나왔어요.


'이거 은근히 잘 가는데?'


자전거로 이동하는 거라 속도가 나와봐야 얼마나 나올까 생각했어요. 그러나 의외로 속도는 괜찮은 편이었어요. 일단 걷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좋았구요. 잠깐이라도 쉰다는 것 자체가 좋았는데, 쉬면서 이렇게 계속 카우만 모스크를 향해 가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께서 과연 베짝을 잘 모실 수 있으실까' 라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어요. 비록 아주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느린 것도 아니었어요.



"다 왔어요."


할아버지께 15000 루피아를 드리고 내렸어요.


시각을 확인해보니 1시 25분. 걸어왔으면 의외로 꽤 걸렸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짝으로 나름 달리는 것처럼 왔는데 도착시간이 이랬어요. 만약 걸어왔다면 절대 1시 반까지는 도착 못 했을 거에요. 아마 잘 와야 1시 40분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베짝을 타고 온 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어요. 1km 라고 했지만 그게 가까운 1km 도 아니었고, 그늘이 많은 길도 아니었어요.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면 오자마자 물부터 찾았을 거에요.


이 모스크는 하므우부워노 1세 Hamengkubuwono I 와 Kraton 의 초대 촌장인 Kyai Faqih Ibrahim Diponingrat, 그리고 Kyai Wiryokusumo 가 건축가로 참여해서 1773년 5월 29일에 지어졌다고 해요.


족자카르타


"이거 왜 이렇게 특이하게 생겼어?"


지붕에 allah 표시도 없었고, 미나렛도 보이지 않았어요. 보통 모스크라고 하면 돔형 지붕을 떠올릴 정도로 일반적으로는 돔형 지붕을 위에 올리는데 이것은 삼각형 모양의 지붕. 모스크라기보다는 남쪽의 동아시아문화권 건축물처럼 보였어요. 적당히 중국이나 일본 건물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어요. 아무리 보아도 이게 모스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외관이었어요.


"아까 박물관에서 보았던 자바 양식 모스크를 크게 지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이 모스크는 전형적인 자바 모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에요. 이런 건물을 족로 joglo 라고 해요. 이런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삼각 지붕을 갖고 있고, 미나렛이 없어요. 그리고 자바 건축 양식의 특징 중 하나인 serambi 라고 부르는 지붕으로 덮힌 큰 베란다가 모스크에 있어요.



이것이 바로 스람비 serambi 에요. 실제 모스크 건물 본당은 사진 속에서 뒤에 벽처럼 보이는 곳이에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처럼 신발을 벗고 올라갔어요.


"노! 노!"

"와이?"


모스크지기 아저씨께서 계단 위로 올라가던 저를 부르더니 안 된다고 하셨어요. 이교도는 모스크 출입 금지? 여기는 신성한 곳이라 이교도는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인가?


"발 씻고 들어가."


아저씨는 우두 하는 곳으로 가서 발을 씻고 올라가라고 하셨어요. 제게 가지 말라고 한 이유는 신발만 벗고 양말은 안 벗고 발도 안 씻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면 그렇지...저는 남자이기 때문에 모스크로 들어갈 때 제약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예배 시간 피해서 조용히 들어가는 것은 어지간한 모스크는 다 허용해주어요. 만약 모스크 관리인이 있다면 허락을 받고 들어가면 되구요.


발을 씻으러 가보니 바닥이 달구어져 있었어요. 하긴, 이 날씨에 바닥이 안 달구워져 있으면 그게 미스테리지. 그래도 센스 있게 우두 장소에서 모스크 건물까지 검은색 발받침을 깔아 놓았어요. 양말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발을 씻고 검은색 발받침 위로 올라갔어요.


전립선이 강해진다!


발바닥에서 열이 쫙 올라왔어요. 아주 뜨거워 펄쩍펄쩍 뛸 정도는 아니었지만, 순간 발 아래부터 긴장이 쫙 올라왔어요. 피곤에 절어 있던 육체에 힘이 빡 들어왔어요. 힘차게 후다닥 계단을 걸어올라갔어요. 지붕 아래로 들어가니 시원한 바닥이 느껴졌어요. 발바닥이 뜨거워서 순간 깜짝 놀란 제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웃겼어요. 경건한 자리라 깔깔 웃지는 못하고 미소 지으며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인도네시아 목조 건물



"여기도 사람들 누워 있네."


마루에 누워서 자고 있는 사람들. 적응이 되지 않았어요. 아무리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바닥에 주저앉고 드러눕는 것을 잘 한다 하더라도 여기는 모스크. 그들에게 매우 경건한 장소. 가뜩이나 이 건물 양식이 그저 신기하기만 해서 스람비도 건물 내부로 느껴지는 제게 이 드러누워 자는 사람들의 모습은 적응이 되지 않는 풍경이었어요. 이것이 남국의 이슬람인가? 모스크 건물 안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쉬는 사람은 많이 보았어요. 그러나 이렇게 드러누워서 쉬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었어요. 이 사람들에게 모스크는 다른 나라 무슬림들보다 더 친근한 존재 같았어요.




스람비의 천장. 아라베스크 문양이 없어서 궁전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어요.


'어떻게 된 게 모스크가 궁전보다 더 화려하고 멋지냐.'



이것이 바로 모스크 본당.


인도네시아 카우만 모스크


왼편에 벽이 있는데, 이것은 여자 기도실을 분리해놓은 것이에요. 정면에 있는 것은 메카 방향을 알려주는 미흐랍. 저쪽을 향해 기도를 드리지요. 무슬림을 배려하는 숙소에는 미흐랍 방향이 표시되어 있어요. 인도네시아는 메카보다 동쪽에 위치한 국가이기 때문에 미흐랍은 서쪽을 가리키고 있어요. 이 본당 역시 일반적인 모스크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어요. 붉은 빛 실내와 지붕과 벽 사이의 광창이 만들어내는 묘한 분위기.


'왜 왕궁은 이렇게 안 지었지?'


이 건물은 모스크. 하지만 전세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모스크와는 확실히 달랐어요. 심지어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다른 모스크들과도 매우 다른 모습이었어요. 모스크로 사용하고 있으니 모스크라고는 하지만, 왕궁이라고 보면 왕궁으로 봐도 될 정도였어요. 크라톤에는 이렇게 높고 큰 건물이 없었어요. 저 미흐랍 자리에 왕좌가 있다면 '요그야카르타 술탄의 궁전'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어요.


모스크 본당 외벽에는 자바어로 적힌 장식들이 있었어요.


javanese language



모스크의 스람비에 주저앉았어요.



serambi


나도 드러눕고 싶다.


바닥은 시원했어요. 지붕이 햇볕을 가려주어서 꽤 시원했어요. 한숨 자고 일어나면 딱 좋을 것 같았어요. 아무렇지 않게 누워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도 좀 누워있다가 일어나도 별 문제가 되거나 결례가 될 것 같지는 않았어요. 문제는 시간. 이제 진짜로 시간이 없었어요. 파쿠알라만 크라톤은 포기했어요. 점심도 제꼈어요. '그깟 점심, 안 먹어도 안 죽어!' 라고 생각하며 점심도 굶기로 했어요. 그렇게 쥐어짜낸 시간도 이제 거의 다 떨어졌어요. 여기서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다가 잠이라도 들면 오늘 프람바난 사원 가는 것은 아예 끝나는 것이었어요.


"일어나자."


잠깐 앉아있다가 일어났어요.


모스크 여자 기도실


"여기는 여자 기도실이 꽤 넓네?"


모스크에서 여자 기도실은 대체로 폐쇄적이고 매우 좁았어요. 심지어는 본당에 있는 게 아니라 별당으로 따로 조그맣게 만드는 경우도 꽤 있어요. 그런데 여기는 본당의 큰 부분이 여자 기도실이었고, 밖에서 여자 기도 공간을 볼 수 있었어요. 한 건물에 여자 입구, 남자 입구가 있는 구조였어요. 오른쪽 입구는 남자용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 입구는 여자용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였어요. 이렇게 개방적인 여자 기도실의 구조에 깜짝 놀랐어요.


Kauman Great Mosque in indonesia


모스크에서 나왔어요. 드디어 이제 프람바난 사원으로 갈 때가 되었어요.






골목길을 걸어나오자 큰 길이 나왔어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자.


터덜터덜 걸어갔어요. 더워서 정신이 없는데 차는 쌩쌩 달리고 있었어요.


'그냥 차 타고 여기서 바로 프람바난까지 가면 좋을텐데...'


그러나 그건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일이었어요. 쌩쌩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별 수 없었어요. 뻔히 아는 길을 걷는 것이었기 때문에 별 감흥도 없었어요. 마땅히 사진을 찍을 것이 보이지 않았고, 설령 있다 해도 햇볕이 너무 강해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지루한 길을 계속 걸어갔어요. 돌아버릴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머리가 뱅뱅 도는 것 같았어요.


'여행 오기 전에 매일 중량천이라도 조금씩 걸을걸...'


하지만 후회막급. 저질 체력인 상태로 여행을 시작한 것을 아무리 후회해봐야 바뀌는 건 없었어요. 그저 땀을 뻘뻘 흘리며 걸을 뿐이었어요.



오후 2시 10분. 드디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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