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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인도네시아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내일 뭐 해?"

"내일 오전에는 파쿠알라만 크라톤을 갈 거야."

"오후에는?"

"글쎄..."

"나 내일 쉬는 날이야. 내일 만날까?"


인도네시아인 친구는 다음날 아르바이트를 쉬는데 만나지 않겠냐고 물어보았어요. 오후에 친구와 같이 시간을 보내다 야간 기차를 타는 것도 괜찮은 일정같았어요. 사실 오후에 무엇을 할 지 그 어떤 계획도 세워놓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오후에는 막연히 어느 카페 들어가서 적당히 시간이나 때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더욱이 인도네시아를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니 친구를 한 번 더 보고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구요.


"내일 정오에 만나자. 오전에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할 거거든."

"알았어."

"그런데 투구역에 짐 맡기는 곳 있어?"

"아니. 짐은 숙소에 맡겨야 해."


짐을 숙소에 맡길까 역에 맡길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둘 다 일장일단이 있었어요. 숙소에 맡긴다면 돈을 낼 필요는 없었어요. 대신 돌아다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야한다는 단점이 있었어요. 숙소가 말리오보로에서 가까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숙소에 짐을 맡기면 천상 버스를 타고 다시 파쿠알라만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이것은 다음날 아무리 오후에 느적느적 시간을 보낸다 해도 귀찮은 일. 기차역에 맡기면 돈은 내야 하지만 굳이 짐을 찾으러 마지막에 숙소가 있는 파쿠알라만 지역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었어요. 말리오보로 쪽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저녁 먹고 기차역으로 가면 되었기 때문에 귀찮거나 번거로울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친구 말로는 투구역에 수하물 보관소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짐을 무조건 숙소에 맡겨야 했어요.


"내일 가고 싶은 곳 있어?"

"족자카르타에서 번화가가 어디야?"

"말리오보로 거리."

"말리오보로 말고 다른 곳. 말리오보로는 매일 갔어."

"말리오보로 말고 다른 곳?"

"응. 대학생들 많이 가는 거리 없어?"

"아! 있어. 칼리우랑 거리."

"그러면 거기 가자."


친구와 내일 어디를 갈 지 정하고 나서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어요.


"너 므라삐 화산 폭발 기억해?"

"응."

"그 당시 어땠어?"

"그때 요그야카르타는 죽은 도시 같았어."


2010년 gunung merapi 므라삐 화산 폭발때 욕야카르타는 죽은 도시 같았다고 했어요. 모든 건물이 회색이었고, 하늘에서 화산재가 엄청나게 쏟아졌대요. 친구는 그 당시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그때 정말 무서웠다고 했어요. 거리에 있는 회색 모래는 전부 화산재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리고 이 당시, 보로부두르 사원과 프람바난 사원은 전면 폐쇄되었다고 말했어요.


'도심에서 화산탄이 안 보이는 게 어디야.'


사람들은 화산탄이라고 하면 흔히 고구마 모양의 화산탄을 떠올려요. 박물관이나 과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화산탄을 보면 어른 팔뚝만해요. 이것도 고공자유낙하를 한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위험한 것이기는 해요. 화산이 터지며 하늘로 튀어오를 때의 운동에너지, 그리고 화산 자체 높이가 가지고 있는 위치에너지가 있으니까요. 이것은 중학교 과학에서 배우는 내용. 그런데 화산탄이 전부 고구마 모양에 어른 팔뚝만한 것은 아니에요. 진짜 바위만한 화산탄도 있어요. 물론 그렇게 큰 화산탄이 떨어질 만큼 족자카르타 시내가 므라삐 화산과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요.


하루 일정을 정리하니 자정을 넘겨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 되었어요.


'여행 다니며 매일 여행기 올리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글을 쓰는 걸까?'


이번은 여행을 한 달 정도 다니는 것이었기 때문에 귀국하고나서부터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다면 상당히 여행기 쓰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노트북을 들고 왔고, 어떻게든 여행중 여행기를 써볼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 매일 여행 기록 정리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이것도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어요. 밤에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여행 기록 준비하고 일정 짜고 하다보면 언제나 자정을 넘기고 있었어요.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여행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불가능이었어요. 가끔 차 마시면서 쉬는 시간에 조금씩 써나가는 것일까? 그런데 예전에 손으로 여행 기록을 남길 때를 떠올려보면 차 마시며 쉬는 시간에는 기록을 남기기도 빠듯했어요. 그때는 여행 중 손목시계를 차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바로바로 시간을 체크해서 기록을 남기곤 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는 개화한 상태. 카메라 시각 설정을 잘 맞추어놓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진을 남기는 식으로 시간을 기록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몇 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방법 때문이지요.


2015년 6월 5일 아침 9시.


아침밥도 포기하고 푹 잤어요. 이번 여행 중 가장 오래 잔 것이었어요. 그래봐야 6시간 좀 넘게 잔 것이었지만요. 눈을 감을 때 무조건 푹 잔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어요. 이번만큼은 잠을 위해서라면 아침도 포기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잠을 자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을 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 부담없이 푹 잘 수 있었어요. 푹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몸이 매우 개운했어요.


윽...


몸은 개운한데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로 달려갔어요. 역시나 설사. 전날 설사하고 또 설사였어요. 이것은 분명히 뭔가 잘못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대체 무엇을 잘못 먹은 것인지 추척이 쉽지 않았어요.


'보로부두르 갔던 날 저녁이 잘못되었던 건가?'


보로부두르를 갔던 날 저녁으로 어묵 비슷한 것을 먹었어요. 그것 말고는 특별히 탈이 날 음식이 전혀 없었어요. 전날 설사까지 포함해서 본다면 이 어묵 비슷한 것이 문제일 확률이 높았어요. 하지만 상한 것을 먹어서 하는 설사 치고는 빈도가 너무 적었어요. 겨우 어제 한 번, 오늘 한 번. 배탈이 나서 설사를 하는 것이라면 무시무시한 빈도로 자주 설사를 해야 하는데 그냥 하루 한 번 화장실 가서 설사한 것 뿐이었어요. 만약 상한 것을 먹어서 설사를 하는 것이라면 일단 상한 것을 매우 적게 먹었다는 이야기. 매우 적게 먹지 않았다면 잠깐 배에 통증이 오고 이렇게 어쩌다 한 번 설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베란다로 가서 전날 빨아놓은 옷을 만져보았어요. 옷은 덜 말라 있었어요. 적도 지역은 일교차가 연교차보다 큰 지역이라 하던데 그래서 그런 건가? 확실히 일교차가 크기는 했어요. 낮에는 정말로 매우 푹푹 찌는 날씨였지만, 자정이 넘어가면 선선한 날씨였어요. 선선하고 습도가 높다보니 빨래가 잘 마르지 않은 것. 빨래가 햇볕을 쬐도록 위치를 조금 옮긴 후, 아침을 먹으러 갔어요. 일단 아침에 가벼운 복통과 함께 설사를 했기 때문에 토스트에 파인애플 잼을 발라서 먹는 것으로 식사를 끝냈어요. 나시 고렝도 먹고 싶었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기름지고 약간 자극적인 맛을 가진 음식. 그것 먹었다가는 진정되어가던 속이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질 것 같아 먹을 수 없었어요.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보니 옷이 거의 말라 있었어요.


"해 뜨니까 금방 마르네."


다행히 옷이 거의 말라서 그냥 입어도 상관없을 정도였어요. 샤워를 하고 나와서 짐을 쌌어요. 어차피 지금 볼 것은 파쿠알라만 크라톤 하나였어요. 급할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옷이 더 마를 때까지 기다리다 10시 반에 파쿠알라만 크라톤을 보러 나왔어요.



"어? 이거였어?"


지도를 보며 찾아간 곳은 바로 이곳. 이곳이 파쿠알라만 크라톤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어요. 무슨 호텔이나 레스토랑 같은 거라고 추측하며 그 앞을 지나다녔는데 이게 족자카르타에서 전날 마지막까지 가지 못했던 그곳이었어요. 참고로 인도네시아어로 keraton 은 '왕궁' 이라는 뜻이에요. 이곳의 정식 명칭은 Pura Paku Alaman 인데, 여기에서 pura 는 인도네시아어로 '궁궐'이라는 뜻이에요. 왕궁이든 궁궐이든 간에 둘 다 왕과 관련된 곳이니 이것도 무언가 상당히 볼만하고 클 거라 생각했어요. 안에는 볼 게 많을 거라고 추측했어요. 그러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고급 식당일 거라 추측했던 그곳.


안으로 들어가는데 문 뒤에서 인도네시아인 직원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어요. 직원들의 복장은 크라톤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족자카르타 전통 의상이었어요.


"어디에서 왔어요?"

"한국이요."

"오! 한국!"


입장료는 없었어요.



'설마 저거 하나 있는 건가?'


pakualaman


천천히 둘러보려는데 직원 아저씨께서 다가오셨어요. 그리고 무언가 설명해주시기 시작하셨어요.


아저씨,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인도네시아 와서 매일 밤 조금씩 인도네시아어 교재를 읽었어요. 예전에 공부했었던 적이 있고, 인도네시아인 친구에게 조금 배웠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말은 할 수 있었어요. 처음 대문에서 직원 아저씨와 만났을 때 인도네시아어로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이분께서는 제가 인도네시아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하시고는 인도네시아어로 궁전에 대해 설명해주시기 시작하셨어요.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영어를 아시냐고 물어보자 아주 조금 안다고 대답하셨어요. 그때부터는 영어 단어 한 두 단어에 인도네시아어 설명. 영어 단어가 조금 가미된 아저씨의 인도네시아어 설명 중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는 많이 잡아야 20%.


직원 아저씨께서는 입구에서 입장객 명부에 이름과 국적을 기입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명부를 작성했어요. 그 다음에는 저를 박물관으로 인도하셨어요. 여기서 또 명부에 이름을 기입해야 했어요. 직원 아저씨께서는 기념품이라고 파쿠알라만 궁전 스티커를 주셨어요. 그리고는 원한다면 기부함에 돈을 집어넣고 싶은 만큼 돈을 집어넣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2천 루피아를 기부함에 집어넣었어요.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사용했던 일상 용품들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인도네시아 다기 세트





한 전시실에는 마차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인도네시아 마차


박물관을 쭉 둘러보고 입장했던 곳으로 돌아갔어요.




직원 아저씨께서는 박물관 입구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따라와요."


직원 아저씨의 설명 중 알아들은 것은 이곳이 원래는 재상의 궁전이었다는 것이었어요. 술탄이 기거하는 궁전은 흔히 말하는 그 '크라톤'이고, 여기는 재상이 기거하던 궁전. 일단 규모에서부터 그 크라톤과 동급이 아니었어요. 파쿠알라만 Pakualaman 이 원래는 요그야카르타 술탄국 내에 있는 '공작령' 같은 곳이고, 이 공작령 같은 파쿠 알라만을 다스리던 사람이 살던 궁전이 바로 이곳이었어요.


그리고 이곳은 한 번에 지어진 곳은 아니라고 했어요.


"이 건물 사진 찍어요."



족자카르타 궁전


이 건물은 1884년에 지어진 건물. 가장 큰 건물인 이 건물 왼편에 있는 건물은 1894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알려주셨어요.


1894년에 지어진 가장 큰 건물이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그 건물로 갔어요.



파쿠알라만 크라톤


건물 한쪽에는 악기들이 진열되어 있었어요.


전통 악기


instruments in jogjakarta


들어갈 때 시각은 10시 45분이었는데, 관람을 마치고 시각을 확인해보니 11시 10분이었어요. 만약 박물관을 보지 않았다면 정말 금방 보고 나올 곳이었어요. 반드시 찾아가서 볼만한 곳까지는 아니었어요. 이것은 프람바난 사원과 보로부두르 사원 중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 문제보다 더 한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크라톤과 파쿠알라만 크라톤은 정말로 규모의 차이이지, 아예 다른 건축이 아니었거든요.



문 위에 적혀 있는 글자는 자바어였어요.



아저씨께 읽어달라고 부탁드리자 읽어주셨어요. 하지만 제가 자바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니 들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직원 아저씨께서는 제게 잘 가라고 하셨어요. 자세히 설명해주셨지만 돈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직원 아저씨께서는 제가 오자 정말 방문객이 반가워서 설명을 해 주신 것이었어요. 제가 와서 보고 나가는 동안 그 어떤 방문자도 이곳으로 오지 않았어요.


숙소가 있는 파쿠알라만 지역에도 볼 것이 몇 가지 있기는 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관광객들이 정말 안 오는 동네 같았어요. 숙소로 오는 사람들 외에는 외국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고 보면 저 역시 비록 시간이 없어서 못 간 것이기는 하지만, 근처에 있는 자연 박물관에 갈 생각이 거의 없었어요. 보통 이렇게 하나 빠뜨리면 매우 아쉬운 기분이 드는데, 자연 박물관은 못 갔다고 해서 아쉬운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왜 그곳을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어요.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파쿠알라만 모스크도 보고 가야겠다.'


파쿠알라만 모스크 Masjid Besar Pakualaman 는 족자카르타에 온 이후 매일 지나치던 모스크였어요. 한 번 들어가본 적이 있기는 했어요. 그때는 문도 잠겨 있었고, 깜깜한 밤이라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아직 체크아웃 시간까지 여유가 있었어요. 12시 체크아웃인데 파쿠알라만 모스크는 어차피 숙소 가는 길에 있었어요. 짐도 이미 다 싸놓았기 때문에 들어가서 물이나 한 번 끼얹지고 바로 짐들고 나오면 되었어요. 파쿠알라만 모스크는 큰 모스크가 아니었기 때문에 숙소 돌아가는 길에 한 번 쓰윽 보고 가기로 했어요.


Masjid Besar Pakualaman




여기까지는 별 특별한 인상이 없었어요. 밤에 본 거나 크게 다를 것은 없었거든요.


Pakualaman mosque in jogjakarta


어? 뭐지?


인도네시아 모스크 내부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었어요. 저 카페트는 그냥 예쁘라고 깔아놓는 것이 아니에요. 무슬림들이 예배를 드릴 때 예배 방향인 키블라를 알려주는 역할도 하고, 각자 줄을 맞추어 설 때 도움을 주는 역할도 해요. 사진 속 카페트를 보면 안에 모스크가 그려진 직사각형이 반복되는데, 이 안에 모스크가 그려진 직사각형이 예배시 한 명이 차지하는 공간이라고 보면 되요. 무슬림들은 동시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할 때에는 다닥다닥 붙어서 예배를 드려요. 어깨가 떨어져 있으면 그 사이로 악마가 들어온다고 하지요. 그러나 띄엄띄엄 왔을 경우에는 그냥 따로따로 예배를 드려요. 각자 개별적으로 다른 시각에 예배를 시작했기 때문에 일부러 어깨 짝 붙이고 동시에 예배를 진행할 수 없으니까요. 뒤에 사람 왔으니 어깨 붙여야 한다고 이미 예배 드리던 사람이 처음부터 새로 예배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나중에 온 사람이 이미 예배 드리고 있는 사람에게 어깨를 붙여야 한다고 이미 예배드리는 사람에 맞추어 중간부터 예배를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모스크 바닥에 있는 직사각형 무늬 갯수를 보면 몇 명 수용할 수 있는 모스크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답니다. 물론 예배 시간에 맞추어 동시에 사람들이 들어간다면 이 사람들이 모두 어깨를 찰싹 붙이기 때문에 직사각형 무늬 갯수보다 조금 더 들어갈 수 있지요.


이 직사각형 무늬는 예배를 돕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당연히 예배 방향인 키블라에 맞추어져 있어요. 그런데 파쿠알라만 모스크 건물 구조와 카페트가 깔린 방향을 보면 매우 삐딱하게 되어 있어요. 모스크 건물 기본 구조와 예배 방향이 전혀 맞아들지 않았어요.


'설마 예배도 저렇게 할 건가?'



헐!


정말 예배 방향이 카페트의 직사각형 방향과 일치했어요. 무언가 매우 입체적인 느낌이었어요. 하나여야 하는 공간이 두 개로 분리되어서 하나가 틀어져 있는 느낌이랄까요.


키블라 방향과 건물 방향의 엄청난 불일치를 보고 꽤 놀랐어요. 얼핏 보면 상당히 삐딱한 방향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파쿠알라만 모스크까지 보고 나서 숙소로 돌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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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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