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24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이스티크랄 모스크

좀좀이 2015. 8. 19. 08:10
728x90

기차역 안에 들어서서 기차 시각이 될 때까지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족자카르타를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만큼 친구도 제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어요. 대화를 하는 동안 꼭 족자카르타 돌아와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저는 친구에게 꼭 한국으로 여행이나 유학을 오라고 말했어요. 친구의 사촌은 한국에서 유학중이라고 했거든요.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기차를 탈 시간이 되었어요.


제가 타고 가는 족자카르타발 자카르타행 기차는 밤 10시 출발이었어요. 9시 45분이 되자 개찰구 안으로 들어갔어요. 기차에 짐을 놓고 밖으로 나오니 친구가 밖에서 계속 서 있었어요.


"잘 가!"

"어서 들어가!"


친구에게 손을 흔들자 친구가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어요. 족자카르타, 친구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밖에 계속 나와서 서 있었어요. 친구는 시간이 되었으니 기차에 들어가라고 알려주었어요.



기차 안으로 돌아가서 자리에 앉았어요.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오기 전, 인도네시아 기차는 혼잡 그 자체일 거라 상상했어요. 정해진 좌석도 없고, 위생도 안 좋고, '서비스'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그런 기차일 줄 알았어요. 사람들이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많이 햇갈려해요. 국명은 구분하는 사람이 많지만, 둘의 문화가 실상 똑같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저 역시 인도와 인도네시아 문화가 다르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두 나라의 문화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었어요. 특히 '기차' 에 관해서만큼은 인도나 인도네시아나 그게 그거일 거라 생각했어요. 인도네시아 기차 시스템이 인도 여행기를 읽다 보면 반드시 나오는 환장의 인도 기차 시스템과 거의 비슷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실제 자카르타 - 족자카르타 구간 기차를 타보니 인도네시아 기차는 매우 괜찮았어요. 내부도 청결한 편이었고, 에어컨도 적당히 틀어주었고, 전부 자기 좌석을 찾아서 앉고 있었어요.


사실 족자카르타에서 자카르타로 돌아갈 때에는 버스를 타고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친구가 그건 위험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니 하지 말라고 말려서 돌아가는 것 역시 기차로 가는 것이었어요.


'여기는 다음에 꼭 다시 와야지.'


족자카르타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준 선물은 교통체증. 숙소 갔다가 버스로 투구역 앞으로 오는데 엄청난 교통체증과 마주하게 되었어요. 트랜스족자 버스 시스템에서 중앙우체국에서 말리오보로 거리로 바로 올라갈 수 없어요. 그래서 파쿠알라만에서 말리오보로 거리로 가려면 버스를 환승해 돌아가서 투구역 앞쪽으로 가야 했어요. 이때 름뿌양안역 stasiun Lempuyangan 을 거쳐서 투구역으로 버스가 와요. 름뿌양안역에서 투구역까지는 1.4km 정도. 직선거리로는 1km 조금 안 되는 거리에요.



위의 지도속 경로를 버스도 그대로 따라가요. 걸어서 약 20분 걸리는 거리라고 해요. 실제 보면 거의 직진이에요. 버스를 타고 가다 름뿌양안 기차역이 나오자 말리오보로 거리까지 다 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름뿌양안 기차역에서 말리오보로 거리 입구까지 30분 걸렸어요. 지도상 걸어가느니 못했어요. 오토바이와 차가 뒤엉키고, 그게 그냥 꽉 막혀버리니 대책이 없었어요. 인도네시아도 나름 교통체증으로 악명이 높은 나라인데, 자카르타 뿐만 아니라 족자카르타에서도 그 교통체증을 확실히 느꼈어요. 교통체증만큼은 베트남이 인도네시아에 명함을 내밀 수준이 아니었어요.


아까 교통체증을 겪을 당시에는 어벙하게 '지금 이게 뭔가' 싶었어요. 그때는 웃을 상황이 아니었어요. 친구는 오토바이 타고 바로 와서 기다리고 있을 건데 버스는 아예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 상황이 다 지나가고 기차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는 상황. 걸어가는 것만도 못한 속도로 버스와 오토바이가 가던 상황이 떠오르자 웃음이 나왔어요. 그게 진짜 앞으로 가는 건지, 고장 안 났다고 어쩌다 한 번 꾸물꾸물 움직여서 거기까지 간 건지도 모를 상황이었으니까요.


'아, 나 아직 저녁 안 먹었지!'


도시락 파는 직원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저녁을 먹기는 해야 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기차 도시락의 맛도 볼 겸 저녁도 먹을 겸 해서 나시 고렝 도시락을 구입했어요. 가격은 3만 루피아.



이건 도시락이 맛있는 게 아니야. 나시 고렝 자체가 워낙 훌륭한 음식이라 먹을만 한 거야.


나시 고렝 자체는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건 나시 고렝 자체가 워낙 아름다운 맛을 가진 음식이라 그런 것이었지, 이 도시락 자체가 훌륭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연애인이 쓰레기 넝마 걸레를 주워 입어도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 건 쓰레기 넝마 걸레가 예뻐서 멋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연애인 외모가 예쁘고 멋있으니까 쓰레기 넝마 걸레도 패션처럼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였어요. 먹어본 나시 고렝 중에서는 가장 맛없는 나시 고렝이었어요. 그렇지만 워낙 나시 고렝이 맛있는 음식이다보니 아무리 맛이 없는 나시 고렝이라 해도 맛이 있었어요. 이렇게 기차 도시락의 나시 고렝에 혹평을 가하게 만든 주범은 다름아닌 샐러드였어요. 샐러드의 식초 냄새가 너무 강했어요. 샐러드만 시큼한 냄새가 나면 상관이 없는데, 이 시큼한 냄새가 뚜껑이 닫힌 도시락 안을 돌아다니며 나시 고렝까지 오염시켜 놓았어요. 그러다보니 가뜩이나 뜨거운 나시 고렝을 넣고 바로 뚜껑을 닫아놓아서 습기찬 나시 고렝 자체의 질도 떨어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맛을 떨어뜨려 놓은 것이었어요.


이렇게 먹으며 인상을 쓰고 폭언을 기록으로 남겨놓기는 했지만, 도시락의 맛 자체는 맛있었어요. 한국 도시락과 비교했을 때에는 어쨌든 상위권에 드는 맛이었어요. 원래 맛이라는 게 비교 대상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달리는 기차 안. 앞쪽에 TV가 있었지만 영상만 보일 뿐,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요.


'뒷자리도 소리 좀 들리게 만들어주지.'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로 오는 기차 안에서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의 가요를 들었어요. 매우 이상한 노래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꽤 괜찮은 노래들도 여럿 있었어요. 그래서 인도네시아 노래를 계속 들으며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가 있는 자리까지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어요. 가수와 노래 이름을 보고 적은 후 나중에 검색해서 다시 듣고 싶은데 화면이 멀어서 글자를 볼 수도 없었어요.


"에어컨 진짜 빵빵하게 트네."


족자카르타로 오는 기차에서는 에어컨을 그렇게 세게 틀지 않았어요. 흔히 말하는 건강에 좋은 에어컨 사용법에 맞는 강도였어요. 그에 비해 지금 에어컨은 너무 세게 나오고 있었어요. 대체 얼마나 빵빵하게 틀어대는지 기차 객실 내부 전체가 쌀쌀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냥 있으면 다음날 아침에 감기 걸린 상태로 기차에서 내릴 것 같아 담요를 덮었어요.


'할 것도 없는데 여행 기록이나 정리해야겠다.'


가방에서 노트북과 핸드폰을 꺼냈어요.


왜 이렇게 졸리고 만사 귀찮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기고, 노트북으로 여행 기록을 정리해야 했어요. 그런데 만사 귀찮고 잠만 자고 싶었어요. 핸드폰에 케이블을 연결하는 것조차 너무나 귀찮았어요. 일단 오늘 있었던 일을 노트북에 정리해놓고 사진은 조금 뒤에 옮기기로 했어요. txt 파일 편집기인 em editor 프로그램을 실행시킨 후, 토닥토닥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어요.


'아...졸려.'


몇 글자 쓰고 졸다가 또 몇 글자 쓰다가 조는 것을 반복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짐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이불을 덮고 잤어요.


눈을 떠보니 5시. 5시 29분 도착 예정이었어요. 아직 30분 정도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자려는데 직원이 담요를 걷어가기 시작했어요. 담요를 직원에게 건네주고 자리를 정리한 후,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어차피 자리 정리는 다 했고, 기차 안에서 마땅히 할 것은 없었어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고, 노트북을 꺼내서 여행 기록을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했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어요. 멍하니 앞에 있는 TV만 주시했어요. 잠시 후, 기차가 감비르역에 도착했어요.


인도네시아 기차


"오늘이 드디어 인도네시아 마지막 날이구나."

Gambir station in Jakarta


드디어 2015년 6월 6일, 인도네시아에서의 마지막 여행 일정이 시작되었어요.


오늘 일정은 이스티크랄 모스크를 보고, 코타 지구를 보는 것이었어요. 자카르타에도 알고 지내던 인도네시아인이 하나 있었는데 연락이 너무 잘 안 되어서 약속을 잡지 못했어요. 가이드북과 공항에서 감비르역으로 갈 때 본 것을 종합해본 결과, 자카르타는 그냥 난개발로 성장한 도시. 자바섬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20세기에, 자카르타는 자바섬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이촌향도 현상까지 겹쳤어요. 그러다보니 순식간에 초거대도시로 성장했고, 이 성장과정에서 무슨 뚜렷한 계획을 가지고 도시를 확장해나간 게 아니라 계획 없는 난개발로 도시가 확장되어버렸어요. 가이드북의 자카르타 항목을 아무리 몇 번 정독을 해도 자카르타 일정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어요. 그냥 해방 후 우리나라 서울의 인구 증가와 서울의 도시 확장 및 성장 과정을 생각하면 들어맞아요.


자카르타 여행 일정을 짜는 것은 서울 여행 일정 짜는 것과 비슷한 점이 꽤 많았어요. 일단 도시 규모 자체는 상당히 컸어요. 버스 환승 시스템을 이용할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어디를 가야할지 딱 보이는 게 없다는 게 문제였어요. 서울 여행이라 하면 대체로 맨 처음 가는 구간이 동대문에서 종로, 광화문을 지나 명동, 남대문으로 빠지는 구간. 그러나 관광 정보를 보면 신촌, 강남, 여의도, 이태원 등도 추천하고, 조금 돌아다녀본 사람이라면 여기에 여기저기 더 추가를 해요. 그런데 사실 서울 여기저기 다녀보면 그렇게 매우 특별하게 개성이 드러나는 곳도 별로 없어요. 관악산, 북한산, 도봉산 등 서울 최외곽지역을 제외하면 그냥 유명해서 가는 거지, 진짜 특별한 분위기가 있는 '권역'을 방문하는 것은 아니에요.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있던 개성들도 다 사라져가고 있지요. 번화한 곳은 많지만 '다양한 자극'을 주는 경로를 짜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 자카르타도 마찬가지였어요. 유명한 곳은 여기저기 있는데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그렇게 서로 개성이 강해보이지도 않았어요.


가이드북 자카르타 부분을 몇 번 정독하고 내린 결론은 코타 지구를 가는 것이었어요. 여기는 자카르타의 구시가지. 므르데까 광장을 보고 상당히 실망했기 때문에 코타 지구 정도 보는 것으로 자카르타 여행을 마치기로 했어요. 교통체증을 제대로 경험해보았고 해도 길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에 여러 곳을 무리하게 돌아디니는 것은 그다지 좋은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damri bus in jakarta


감비르역에서 공항으로 가는 Damri bus 타는 곳을 확인한 후 숙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숙소는 처음 자카르타 왔을 때 머물렀던 바로 그 숙소였어요.



"므르데카 광장 열렸다!"


새벽 6시. 이른 시각이라 므르데카 광장 문이 잠겨 있을 줄 알았는데 문이 열려 있었어요. 광장을 관통해서 지나가면 숙소까지 가는 길이 상당히 단축되었어요.


새벽 6시 15분.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물어보니 빨리 체크인해야 11시라고 알려주었어요. 예약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전에 돌아다니고 싶으면 짐은 맡아주겠다고 했어요.


"조금 쉬다가 이스티크랄 모스크나 보고 와야겠다."


오전에 이스티크랄 모스크를 보고 돌아와서 체크인하고 샤워한 후, 나가서 코타 지구 구경하면 오늘 하루 알차게 보낼 수 있겠다!


체크인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로비에 앉아서 쉬며 와이파이를 이용해 인터넷이나 하며 쉬기로 했어요. 그래서 가방을 열어보았어요.


"어? 핸드폰!"


가방에 있어야할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어요.


내가 지금 졸려서 핸드폰을 못 찾는 거지? 가방 어딘가에 처박혀 있겠지?


다른 것은 다 있는데 핸드폰만 없었어요. 가방과 캐리어를 전부 풀어서 싹싹 뒤져보았지만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어요.


"핸드폰 어디 갔지?"


가방과 캐리어를 몇 번이고 뒤져보았지만 핸드폰만 보이지 않았어요.


"미치겠네!"


처음에는 도둑맞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라진 것은 핸드폰 뿐이었어요. 기차에서 내릴 때 자리를 한 번 확인하고 내렸는데 그때 핸드폰은 의자 위에 없었어요. 전날 밤 어떤 일이 있었나 계속 추적하다보니 황당한 결론이 나왔어요. 저는 복도쪽에 앉아 있었고, 저와 같이 여행하던 친구는 창가쪽에 앉아 있었어요. 제 핸드폰은 저와 친구 사이에 있었구요. 제가 노트북을 켜놓고 졸고 있는 동안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고, 친구는 그것을 주워서 제게 알려주지 않고 어딘가 대충 던져놓은 것이었어요. 그리고 친구는 자기가 제 핸드폰을 어딘가 대충 던져둔 것을 까먹었어요. 그 상태로 기차에서 내려서 숙소까지 걸어온 것이었어요.


이 무슨 쓰레기같은 상황이야!


기차에서 드러누워 자다가 지갑을 도둑맞아본 적도 있고, 소매치기가 면도칼로 옷을 그어서 옷을 버려야했던 적도 있어요. 차를 타려는데 트럭이 뒤에서 문을 들이받아서 하마터면 손이 잘릴 뻔한 적도 있었어요. 이런 건 정말 상대가 악의적 목적을 가지고 일으켜서 당한 사고들. 그런데 이건 정작 여행 같이 다니던 친구가 핸드폰을 제멋대로 대충 던져놓는 바람에 발생한 일. 일단 친구가 제 핸드폰을 대충 자기쪽 어딘가에 던져놓은 것까지는 확실했는데, 그 다음 언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는 불명확했어요. 친구는 기차 안에서 친구는 이불을 안 덮고 옆에다 놓았는데, 기차에서 담요를 걷어갈 때 담요와 같이 제 핸드폰을 집어넣어버린 것 같다고 했어요. 더욱 문제는 이게 친구의 추측이라는 것. 대충 좌석 어딘가에 제 핸드폰을 던져놓은 것까지는 사실인데, 그 다음에는 이 친구도 자버려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여행 다니며 이런저런 사고를 당해 보았지만, 친구가 나한테 사고를 일으키는 이런 거지같은 경우는 또 처음이네.


핸드폰 잃어버린 것도 열받는 일인데, 그 발단이 친구가 제 핸드폰을 대충 좌석 어딘가에 던져놓은 것이라는 것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어요. 숙소까지 다 걸어와서야 핸드폰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분명히 제 잘못. 여행중 딱 한 번 - 바로 이날 새벽 기차에서 평소와 달리 대충 짐 확인하고 자리 확인한 후 내린 것인데, 바로 이때 이 문제가 발생한 것. 친구가 제 핸드폰을 버려버린 이 사건. 그냥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이미 희망은 없었어요. 이미 7시가 되어 가고 있었어요. 핸드폰을 잃어버린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요.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리셉션에 기차역에 전화해서 혹시 족자카르타에서 들어온 열차 유실물 중 핸드폰 있지 않냐고 물어보아달라고 했어요. 호텔 카운터 직원은 감비르역으로 전화했지만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 이렇게 죽치고 있어봐야 될 것이 하나도 없겠다 싶어서 감비르역으로 다시 갔어요.


감비르역으로 걸어가며 계속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핸드폰 잃어버리면 찾을 확률이 거의 없는데, 이게 인도네시아, 그것도 기차 안에 놓고 나온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제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랬어요. 역대 최악의 거지같은 상황. 이런 식으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는 전혀 예상도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뭘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감도 안 왔어요. 친구가 내 핸드폰을 버려버렸다. 진짜 이런 일도 발생할 수 있구나. 그냥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있었고, 앞으로 어찌할지 생각해보면 눈앞이 깜깜했어요.


기차역으로 가서 직원에게 핸드폰을 분실했다고 하자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았어요. 여기서 더욱 좌절적인 상황 발생. 인도네시아 심카드를 구입하지 않아서 전화가 되지 않았고, 한국 심카드는 접속만 안 되도록 헐렁하게 끼워놓았다는 것이었어요. 기차는 이미 코타역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안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어요. 자신들끼리 전화와 무전을 주고 받더니 개찰구 내부에 있는 분실물 신고 센터로 데려갔고, 신고확인서를 발급해달라고 했더니 역내 간이 파출소로 데려갔어요. 역내 간이 파출소에서 외국인이 신고확인서를 받기 위해서는 시내 중심가에 있는 경찰청으로 가야 한다고 알려주었어요.


어차피 신고확인서 받아봐야 소용도 없잖아.


제가 여행자보험을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고확인서를 받아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어요. 신고확인서를 받으러 시내 중심가에 있는 경찰청으로 가봐야 결국 차비와 시간만 낭비하는 셈이었어요.


핸드폰을 찾든 못 찾든 나중에 숙소로 연락을 주겠다는 말만 듣고 기차역에서 나오니 아침 9시였어요. 일정은 이미 망했어요. 다음날 새벽에 공항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혹시나 기적이 일어나 핸드폰이 발견된다면 바로 역으로 달려가야 했어요. 사실 포기하는 게 맞아요.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절대 찾을 수 없는 상황. 이미 다 끝났어요. 그러나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하루 종일 할 거라고는 숙소에서 기차역으로부터 연락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 뿐. 전화가 올 지 안 올 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적을 기다려야만 했어요. 자카르타 여행 일정은 이제 다 사라져 버렸어요.


'그래도 숙소 가는 길에 있는 이스티크랄 모스크는 보고 가자.'


어차피 당장 전화가 올 것은 아니었어요. 이스티크랄 모스크는 코타 가는 곳과 방향이 전혀 다른 곳이었기 때문에 지금 보고 싶든 보고 싶지 않든 보아야만 했어요.




이스티크랄 모스크 masjid istiqlal 로 들어갔어요. 이곳은 22만명이 동시에 예배를 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 최대 모스크. 아침부터 여기저기에서 관광객들이 모스크로 오고 있었어요. 입구로 들어가자 외국인은 바로 들어갈 수 없고, 외국인 전용 창구로 먼저 가라고 알려주었어요.



외국인 전용 창구로 가니 안에는 외국인 관광객 몇 명이 앉아있었어요. 안내인은 신발을 맡기라고 했어요. 신발을 맡기자 몇 명 더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어요. 잠시 후, 외국인 관광객 몇 명이 더 오자 이제 안내를 해주겠다고 하며, 관람 후에는 2만 루피아를 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1층은 금요일에만 관광객에게 개방해요."


이스티크랄 모스크


동남아시아 최대 모스크


istiqlal 은 아랍어원의 단어로, '독립'이라는 뜻이에요. 이 모스크 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독립 모스크'이지요. 안내원은 돔의 높이가 45m 인데, 그 이유는 인도네시아가 1945년에 독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모스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어요.


사람 크기와 기둥의 굵기를 비교해보면 이 모스크 예배당이 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masjid istiqlal



사진을 찍고 있는데 자기 할 말을 마친 안내인은 따라오라고 했어요.



1층 예배당으로 직접 들어가볼 수는 없었지만, 1층 예배당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동안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었어요.




진짜 싼 값 하네.


이 모스크는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모스크에요. 그래서 각 부분의 치수는 상징성이 있어요. 무턱대고 감상하려 하면 그냥 큰 모스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이었어요. 무슨 깊은 역사가 담겨 있는 모스크도 아니고, 사람을 압도하는 엄청난 규모도 아니었거든요. 크기는 했는데 이건 1층 예배당 들어가서 돌아다녀야 느낄 수 있는 것이지, 윗층 베란다에서 멀찍이 내려다보며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즉 설명이 매우 중요했어요.


이스티크랄 모스크에는 입구가 7개 있어요. 입구가 7개인 이유는 이슬람 우주관에서 천국이 7개 있기 때문이에요.


예배당에 있는 돔 천장 높이는 45m에요. 돔 천장 높이가 45m인 이유는 1945년 인도네시아 독립 선언을 상징하기 위해서에요.


예배당에는 커다란 12개 기둥이 있어요. 기둥이 12개 있는 이유는 이슬람력 3월 12일 사도 무함마드의 생일을 나타내기 위해서에요.


예배당은 1층과 베란다 4층으로 구성된 5층 구조에요. 5층 구조인 이유는 이슬람의 5대 의무 (신앙고백 - 샤하다, 예배 - 살라, 적선 - 자카트, 금식 - 사움, 메카 순례 - 하지)와 인도네시아 건국 5원칙인 판차실라 Pancasila 를 의미해요. 판차실라는 '유일신에 대한 믿음, 정의와 문명화된 인간성, 인도네시아의 단결, 합의제와 대의제를 통한 민주주의의 지혜로운 길잡이, 모든 인도네시아인을 위한 사회 정의' - 이렇게 5개 조항이에요.


예배당은 8m 돔으로 덮혀 있는 입구로 이어져 있어요. 여기서 8은 8월 -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달을 의미해요.


이 모스크는 다른 아랍, 터키 등지에 있는 모스크와 달리 미나렛이 하나만 있어요. 그 이유는 이 하나만 있는 미나렛이 유일신 사상을 의미하기 때문이에요.


미나렛 높이는 66.66m에요. 높이가 66.66m 인 이유는 코란이 총 6666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단, 이 6666절은 고전적 관점에서 보는 코란의 구절 수에요. 미나렛 위에는 뾰족한 30m 짜리 침이 있는데, 이 침 높이가 30m 인 이유는 코란은 30개의 주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참고로 '주즈' (juz') 는 쿠란 전체를 똑같은 길이로 30개로 나눈 것을 말해요. 코란은 6342구절 (6342아야), 114장 (114수라)로 구성되어 있는데, 6342구절을 30부분으로 나눈 것을 주즈라고 하지요.


이런 것을 모르고 보면 그냥 커다란 현대식 모스크에 불과해요. 모스크 한두 개 보는 것도 아니고, 당장 인도네시아만 해도 지천이 모스크인데, 이 모스크는 외관부터 내부까지 크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인상을 주지는 못하는 모스크에요. 문제는 안내원이 이런 설명을 대충 빨리 하고 지나갔다는 것. 설명을 대충할 거면 감상하고 사진 찍을 시간이라도 충분히 주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어요. 자기 할 말만 대충 후다닥 한 다음 다음 곳으로 가자고 따라오라고 했어요.


설명을 들으면 감상도 못하고 사진도 못 찍는데, 설명을 안 들으면 특별히 인상적일 것이 없는 곳.


가뜩이나 핸드폰 때문에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안내원이 이러고 다니니 머리카락 끝까지 짜증이 솟구쳤어요.


"저놈이 떠들든 말든 알아서 하라지. 저따위로 설명할 거면 차라리 안 듣고 사진이나 찍겠다."


안내원을 따라다니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았어요. 설명을 자세히 해주는 것도 아니고, 볼 시간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바퀴 같이 빨리 걸어가자는 꼴이었어요. 그러면서 최소 2만 루피아 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강조했어요. 인도네시아인들 착하고 친절했는데 이놈만큼은 예외였어요.




이때부터 안내원을 대놓고 무시했어요. 안내원이 설명하든 가든 별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안내원은 이제 이슬람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 설명은 진짜로 들을 필요가 없었거든요. 게다가 너무나 뻔한 내용만 말하고 있어서 제가 가이드해도 될 지경이었어요.



"저것은 메카 모형이에요."


야, 그거 보면 몰라?


안내원에게 다가가 아랍어로 물어보았어요.


"너 아랍어 알아?"


안내원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었어요. 그래서 영어로 물어보았어요.


"너 아랍어로 말할 수 있어?"

"아니."


안내원에게 하찮다는 듯한 표정을 살짝 지어보였어요. 이거 안내원 기분 확 상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물어본 것이었어요. 이슬람에서 쿠란은 번역할 수 없어요. 다른 말로 번역된 것은 쿠란 해설서이지, 절대 '쿠란'이라고 하지 않아요. 이슬람을 믿으면 쿠란을 읽어야 하는데, 쿠란은 아랍어로 적혀 있어요. 즉, 무슬림인데 아랍어를 모르면 쿠란을 스스로 읽고 이해할 수 없다는 말. 그러다보니 아랍어가 모국어가 아닌 무슬림들은 '아랍어'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고,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좋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뒤집어 말하자면, 아랍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아랍어를 모르는 무슬림에게 '아랍어 모르냐? 쿠란 못 읽어?' 라고 하면 이들의 신경을 확 긁어버릴 수 있어요. 아무리 자기가 독실하고 율법을 잘 지키는 무슬림이라고 외쳐봐야 '그래서 뭐? 너 쿠란 못 읽잖아?'라고 해 버리면 할 말이 없거든요. 더욱이 무슬림끼리 이러는 거라면 서로 얼마나 독실하지 못하고 율법을 잘 어기는지를 놓고 싸우겠지만, 비무슬림이 이래버리면 뭔 말을 하든, 무슨 변호를 하든 소용이 없지요. 그래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에요. 하지만 이때는 안내원의 무성의하고 2만 루피아만 밝히는 행동에 진짜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기 때문에 딱 저렇게 했어요.




정작 제대로 잘 보아야하는 예배당은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적당히 사진을 찍으며 안내원을 따라가는데 그렇게 크게 뒤쳐지지는 않았어요. 모로코 하산 2세 모스크는 입장료가 비싸기는 했지만, 1층의 넓은 예배당을 모두 볼 수 있었고, 사진 찍을 시간도 넉넉하게 주었어요. 심지어는 함맘 같은 장소까지 모두 보여주었어요. 설명도 매우 친절하게 잘 해주었구요. 비싸기는 했지만 정말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관람이었어요. 그에 비해 여기는 솔직히 볼 것도 없는 주제에 무려 2만 루피아를 내라고 강조했어요. 이건 guide 가 아니라 guard 였어요. 안내원이랍시고 관광객들 데리고 다니는데, 말이 좋아 안내원이지 실상은 감시원이나 마찬가지였어요. 2만 루피아면 큰 돈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정말로 2만 루피아를 내기에는 돈이 아까웠어요. 제대로 본 것도,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설명을 들으며 이 모스크에 대해 잘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모스크가 크기는 컸는데, 가이드를 따라 둘러보는 데에 걸린 시간은 10분이었어요.


다시 외국인 전용 창구 역할을 하는 방으로 돌아왔어요. 안내원은 각자 신발을 챙기라고 하더니 최소 2만 루피아씩 내고 나가라고 했어요.


너 한 번 나가서 10분에 2천원 벌어와봐.


이놈은 대체 무슨 돈독이 올랐기에 자꾸 최소 2만 루피아를 강조하지? 10분 걸어주고 2만 루피아? 싼 게 비지떡이라지만 이건 진짜 비지떡급도 못 되었어요. 지금껏 보아왔던 무수히 많은 모스크들과 너무 비교되었어요. 모로코 카사블랑카 하산2세 모스크처럼 제대로 입장료 받고 화끈하게 고객만족 서비스를 해주든가, 아니면 돈 받지 말고 알아서 대충 밖에서 둘러보고 가라고 하든가. 2만 루피아는 큰 돈이 아니었어요. 2만 루피아면 우리 돈으로 1800원 정도였는데, 계산하기 귀찮아서 대충 0 하나 지우는 것으로 환율을 계산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때 2만 루피아는 대충 2천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못낼 것은 없었어요. 단지 이 안내원의 태도가 심히 불쾌해서 그걸 다 낼 생각은 전혀 없었을 뿐이었죠. 아예 안 내면 분명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싸울 게 뻔했어요.


모두가 보고 있는데 15000 루피아를 통에 넣었어요. 그리고 딱 굳은 표정으로 안내원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어요. 그러자 그 순간 안내원이 움찔했어요.


"아...15000 루피아도 좋아요."


고개 빳빳하게 세우고 명령조로 2만 루피아 내라고 강요하다가 제 행동을 보고는 15000 루피아를 내도 좋다고 꼬리를 말았어요. 그 안내원의 행동이 꽤 웃겼어요. 그래도 10분 일하고 성금 몇만 루피아 뜯어내었으면 수지타산 맞는 일이잖아? 시급으로 치면 대체 이게 얼마야.



솔직히 큰 감동을 주거나 볼 게 많은 모스크는 아니었어요. 그저 '동남아시아 최대 모스크를 가보았다'는 상징성 때문에 한 번 가보는 것이지, 그런 상징성이 없다면 갈 필요가 없는 곳이었어요. 안 간다고 아쉬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곳이었어요.



모스크 건물 뒷편 호수까지 쭈욱 둘러본 후, 원래는 입구로 돌아가야 했어요. 그런데 마침 그쪽에 있던 인도네시아인 직원이 호수가 있는 쪽 문을 열어주어서 그쪽으로 나갔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