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2014. 5. 10. 08:15

제목 그대로에요.


한자만 알면 된다는 전설의 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 중국어 시험을 아시나요?


물론 이 말을 읽고서 '중국어가 한자 쓰는데 그럼 한자만 알면 되었지, 뭐가 필요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계실 거에요.


하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답니다. 일단 우리나라 제2외국어 중국어에서는 중국 본토 (과거 중공)에서 사용하는 간자체를 사용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타이완 (과거 자유중국)의 번자체를 배우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모양이 크게 바뀐 간자체는 봐도 알기 어려워요. 그리고 성조는 아무리 듣기와 말하기 시험이 없다 해도 안 배우면 모르는 건 매한가지고, 아무리 한자를 쓰는 말이라 해도 아는 한자 몇 개로 때려맞출 수 있게 출제하지는 않아요.


수능 제2외국어에서 전설인 시험은 딱 하나 있는데, 이것은 정말 말 그대로 엄청난 '전설'이지만 그 당시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행으로 인해 잘 알려지지 않은 시험이지요. 수능 제2외국어 아랍어도 유명하지만 이번에 다룰 내용과는 비교할 수 없어요. 사실 수능 아랍어의 막장성(?)이 유명한 이유는 어차피 버리는 과목인 제2외국어에서 찍어서 1등급이 나오기도 하고, 진짜 점수 퍼주려고 내는 문제들도 있고 해서 그런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부 한 자도 안 하면 원점수 기준으로 고득점하기는 어렵거든요.


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00년에 실시된 수능이지요. 이때는 난이도가 너무 낮아서 학생들 성적이 대거 폭등해버리는 바람에 문제가 된 수능이었지요.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져서 또 문제가 된 수능이구요. 이렇게 2년 연속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능 난이도 조절에서 처참할 정도로 망쳐버리는 바람에 제2외국어 따위는 모두의 관심 밖에 있었지요.


2001학년도 수능에서 제2외국어 영역이 처음 등장했어요. 당연히 처음인데다 2001년도 수능 자체가 쉬웠기 때문에 이 시험의 난이도가 어떨 지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어요.


당시 제2외국어는 실제 대입에 영향을 거의 전혀 주지 못하는 과목이었기 때문에 모두의 관심 밖이기는 했지만, 특히 중국어가 하도 전설이다보니 어찌어찌 소식이 제가 살고 있는 고향 학교까지 전해졌어요. 그것은 다름 아닌...


한자만 알면 30점은 넘는다!


참고로 제2외국어 영역 만점은 40점. 그런데 중국어 하나도 공부하지 않고 한자 몇 자만 알면 30점을 넘긴다는 소식이 여러 경로로 전해졌어요.


학교 야간 자율학습 시간. 정말 궁금해서 친구들과 이 제2외국어 중국어 시험지를 구해서 풀어보았어요.


"어? 진짜 30점 넘네?"


중국어라고는 단 한 번도 공부해본 적도 없는데, 대충 한자 보고 찍었는데 진짜로 30점이 넘었어요. 이것은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 모두가 어이없어서 낄낄대었어요.


이왕 우리나라 제2외국어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번 같이 보도록 해요.


참고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지는 하단 링크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답니다.

수능 시험지 다운로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 http://suneung.re.kr/board.do?boardConfigNo=62&menuNo=238&sortName=boardEtc01





일단 1번은 평범해요. 이런 건 전설이 될 수가 없어요. 중국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공부 안 한 사람은 그냥 찍어야만 하지요. 그런데 점수 배점은 무려 1점이랍니다. 뒤에 나올 휘황찬란한 문제들이 2점인데 말이죠. 참고로 이 당시 제2외국어는 1점 문제와 2점 문제, 그리고 1.5점 문제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점수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1.5점이지요.





이 문제도 한자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그냥 풀 수 있는 문제에요. 중국어를 모르시는 분들께서는 무턱대고 중국어 모르니 못한다 하시지 마시고 한 번 한자를 읽어보세요. 일단 아는 한자들을 찾아보세요. 괜히 전설이 아니랍니다.





병 위에 있는 것을 불꽃으로 보면 참 그렇습니다...





보기에 있는 한자 중 '있다'를 나타내는 한자는 어쨌든 在 이죠. 설령 們을 몰라도 '나, 집, 북경' 이니 들어갈 말은 '있다'.





이 문제는 약간 난이도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일단 전부 有 로 끝나므로 앞글자만 보면 되는데 여기서 '없다'라는 말을 나타내는 건 沒 '몰' 이지요.





오오! 오오! 이것은 비싼 문제인 2점 짜리 문제! 그런데 다 몰라도 앉을 좌 坐 만 알면 그냥 풀 수 있는 문제이지요. 앉아 있는 그림은 하나 밖에 없으니까요.





이것은 뭔가 복잡해 보이지만...공 구 球를 알면 그냥 풀 수 있지요.





이 문제 역시 A가 뭘 말하는지 알 필요도 없어요. 이미 문제에서 A가 뭔 말을 했을지 충분히 알려주고 있어요. 역시나 보기 한자 읽기인데, 1번은 좋을 호 好.





역시나 똑같이 한자들을 읽어보면 4번에 있는 이를 조 早.


그리고 전설의 시험 중 전설의 문제...10년도 넘은 일이지만 이 문제 보고 진짜 어이없어했던 기억도 나요.





직접 풀어보세요. 몇 시인가요?





이건 어려워 보이지만...설령 영문, 중문을 영국 글자, 중국 글자로 해석한다 해도 그렇다면 답은 뻔하지요.





이것도 나, 중국, 학생, 20만 알면 그냥 풀 수 있는 문제.





지문 중 생일 보이시나요?


일본어를 공부했다면 쉽게 맞출 수 있는 문제들도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일본어를 모르면 어려울 수도 있어요.





23번의 경우는 어쨌든 하늘 천 天이 나오니 하늘과 관련된 날씨를 고를 수는 있어요. 물론 앞의 금천 今天은 '오늘'이라는 뜻이지만요. 한자만 아는 사람이라면 금천을 '오늘'로 해석하게 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문제이지요. 24번은 배울 학 學이 간자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일본어도 마찬가지. 맨 뒤의 글자는 어 語. 학과 어만 읽을 수 있으면 답은 뻔하지요.





이 문제는 얼핏 보면 어려울 수도 있지만, 보기 중 높이와 관련된 한자는 오직 하나 뿐이지요.





400 보이시나요? 다른 것을 생각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커요.





네 번째 '제제' 보이시나요? 마지막 '매매' 보이시나요?


1번을 제외한 - 즉 2, 3, 5, 6, 7, 10, 11, 12, 13, 17, 19, 20, 21, 23, 24, 25, 26, 30 번 문제만 맞추면 30문제 중 18문제를 맞춘 셈이고, 점수로는 24.5점이랍니다. 하지만 여기 나와 있는 것들보다 조금 더 어려운 문제들 - 예를 들면 '반가워!'에 대해 '반가워!'라고 말한다든가 '안녕!'에 '안녕!'이라고 똑같이 말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거든요.


과연 전설이라 불릴 만 하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아마 요즘 이렇게 수능이 나오면 큰일나겠지요.

Posted by 좀좀이

TAG ,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참말로 황당한 시험이네요.
    대충 찍어도 30점이 넘는다는게 이해가 가네요.
    요즘 이렇게 나오면 데모(?)하겠습니다.ㅎㅎ
    행복한 주말 되세요.^^

    2014.05.10 08: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괜히 전설의 시험이 아니지요. 이왕 생각난 김에 이것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다시 보았는데 역시나 황당하더라구요. ㅋㅋㅋ
      요즘 이렇게 나오면 진짜 시위 일어나지 않을까요?^^a;;;
      릴리밸리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ㅎㅎ

      2014.05.10 09:49 신고 [ ADDR : EDIT/ DEL ]
  2. 재밌네요, 저도 거의 다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자 실력이 별로인데도 말이죠^^

    2014.05.10 12: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예 ㅋㅋ 한자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도 어렸을 때 한자 몇 글자 배웟다면 일단 절반은 맞출 수 있어요^^

      2014.05.11 02:25 신고 [ ADDR : EDIT/ DEL ]
  3. 저 이거 기억나요. 이때 고등학생이어서, 화제가 되었지요. 특히 저 시계 문제 ㅎㅎ
    저 일본어 할줄알아서 그런지 다 맞췄어요 ㅎㅎ 정말 전설이라 불릴만하네요~

    2014.05.10 23: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capella님께서도 이거 기억하시는군요! 저는 이것 다 맞추지는 못했어요. 일단 1번은 찍었는데 틀렸던 기억이 나요 ㅋㅋ;; 이 시험지를 다 맞추셨었다니 대단하신데요?^^

      2014.05.11 02:26 신고 [ ADDR : EDIT/ DEL ]
  4. 중국어 까지?? 헉... 좀님 정체가 뭔가염...
    시험문제지를 말씀하실 정도면 거의 5개국어는 거뜬하신다는 증거죠???
    수상~~ㅎㅎ

    2014.05.11 01: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도 중국어는 몰라요. 그냥 이번에 대만 갈 때 익힌 몇 마디가 전부에요 ㅋㅋ;;; 이건 솔직히 중국어라는 생각 안 하고 한자 시험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의 시험이었답니다. 이후 것들은 저도 못 풀어요 ^^;

      2014.05.11 02:27 신고 [ ADDR : EDIT/ DEL ]
  5. 비밀댓글입니다

    2014.05.11 11:13 [ ADDR : EDIT/ DEL : REPLY ]
  6. 헐ㅋㅋㅋㅋㅋ 진짜 한자만 대충 아니깐 어느정도 풀리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전 일본어 한문을 공부하다보니 중국어는 책만 펴보고 바로 덮었던 기억이 있네요
    안그래도 일본어도 약체 써서 우리나라서 쓰는 한자랑 다른데 중국어는 또 달라..ㅋ..ㅋㅋ 이러면서
    차마 하나의 글자를 세개로 못 보겠어서 포기했던 중국어!
    지금 보니 다시 배우고 싶네요

    2014.05.11 11: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괜히 전설이 아니죠. 더욱이 2000년에 고교생이었다면 중학교때 한자를 의무적으로 배웠던 학생들이기도 하구요. 저도 중국어를 한 번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는데, 성조가 어렵네요. 한자도 예전처럼 잘 외워지지 않구요 ㅎㅎ;;

      2014.05.12 03:01 신고 [ ADDR : EDIT/ DEL ]
  7. 간자체인데 한자만 알면 못풀텐데.. 했는데....
    문제를 보니 정말 가능하군요 @.@
    한자 잘 몰라도 30점은 나오겠다능 ㅋㅋ

    2014.05.11 12: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2002년도 수능부터는 이보다는 훨씬 어려워졌어요 ㅎㅎ 소이나는님께서도 보고 황당하셨나요?^^

      2014.05.12 03:28 신고 [ ADDR : EDIT/ DEL ]
  8. 와~ 저도 다 맞았어요. ㅎㅎ
    웬만큼 눈치 있으면 고득점 문제 없었겠네요. ^^

    2014.05.11 20: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괜히 전설이 아니지요. 진짜 약간의 한자만 알고 눈치 조금 있으면 쉽게 고득점 할 수 있었던 시험이었답니다 ㅋㅋ

      2014.05.12 03:29 신고 [ ADDR : EDIT/ DEL ]
  9. 와...
    정말 전설이네요.

    대박.

    2014.05.11 22: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0. 잘 몰라도 풀 수도 있으니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ㅎㅎ

    그러다 없던 관심이 생길 수도 잇는 것이겠지요.

    2014.05.12 08: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ㅋㅋ 그런데 이때 이 시험이 하도 문제가 되어서 2002년도 수능부터는 난이도가 올라갔어요 ㅎㅎ;

      2014.05.13 05:20 신고 [ ADDR : EDIT/ DEL ]
  11. 황당하면서도 재밌네요.
    이렇게도 문제가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ㅎㅎ

    2014.05.17 16: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때는 제2외국어에 신경쓰는 사람이 없어서 저렇게 나왔지요. 요즘 저렇게 나오면 큰일나겠지만요 ㅋㅋㅋ

      2014.05.18 14:10 신고 [ ADDR : EDIT/ DEL ]
  12. ㅎㅎㅎ 완전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희 때는 아랍어를 선택하는게 유행이었지요.
    ........흡사 숨은그림찾기 같았습니다 -_ㅜ

    2014.05.21 18: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Qilin님께서는 수능 아랍어 있을 때였군요. 그때 아랍어 점수가 로또였다는 말은 종종 들었었어요 ㅎㅎ;; 그런데 아랍어는 모르면 못 풀지 않나요?^^a;

      2014.05.22 05:23 신고 [ ADDR : EDIT/ DEL ]
    • 잘 찍으면 2등급이란 소리가 있었고 따로 공부 한달 정도한 친구들은 1등급 받았습니다. 저도 뱀이랄까 지렁이랄까 예쁘게 생긴것 위주로 골랐더니 2등급이 나왔지요 ㅡㅡ;;;

      2014.05.23 01:59 신고 [ ADDR : EDIT/ DEL ]
    • 오오 아랍어를 모르고도 2등급 받으셨군요! 아랍어 시험지 자체는 아랍어 모르면 좋은 점수 받기는 어렵게 되어 있던데요 ㅎㅎ;; 저희때 아랍어가 있었다면 저도 아랍어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ㅋㅋ;;

      2014.05.24 05:33 신고 [ ADDR : EDIT/ DEL ]
  13. 제가 딱 저 시험 쳤던 세대였는데요
    오늘 이번 수능 제2외국어 시험 검색하다
    제가 쳤던 시험이 생각이 나서 검색해봤다가 들어오게 됐네요^^
    저 때 저도 다 맞아서 100점이었는데 백분위가 45%가 나왔던 기억이.. 45%가 다맞았던 거였죠 ㅋㅋ
    암튼 아직도 저 시계 문제는 잊혀 지지 않네요
    그에 비해 이번 수능문제 풀어보니 왜케 복수 답을 고르는 문제가 많던지 ㅠ 많이 어려워졌네요

    2015.11.13 14: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백분위 45%라면 현행 등급제에서는 4등급까지 만점을 받아버린 초유의 사태로군요 ㅋㅋ 저는 저때 직접 수능을 친 것은 아니라 만점의 백분위가 어떻게 되는지까지는 몰랐어요. 그나저나 저 시험지를 직접 수능에서 접하셨다니 그때 기분이 어떠셨을지 매우 궁금해요. 저는 그 다음해 2외국어 일본어를 쳤는데 시간 남아돌아서 펑펑 잤었던 기억이 나요 ㅎㅎ
      요즘 수능 2외국어는 예전에 비해 난이도가 많이 올라갔더라구요. 예전에는 수능 2외국어는 조금만 공부해도 만점이었던 과목들이었는데요^^;;

      2015.11.25 04:01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