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새벽, 길가에 앉아서

깊은 밤의 노래 - 뒷 이야기 (40km 걸은 이야기)

좀좀이 2013. 9. 2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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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km 조금 넘게 걸었지만 뭔가 아쉬움이 밀려왔어요. 이왕이면 40km, 50km도 걸어보고 싶었어요. 올림픽에서 최장거리 운동은 50km 경보이죠. 얼마나 걸었는지 정확히 재어보기 위해 네이버 지도에서 길이를 재며 40km, 50km 코스를 만들어보았어요. 하지만 출발지점을 의정부로 놓으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어요. 이렇게 긴 거리를 걸을 때에는 아무래도 사람 북적이는 곳보다는 아예 걸으라고 만든 산책로를 따라 혼자 걷는 게 나아요. 그런데 의정부에서 중량천을 따라 걷는 것을 시작으로 하면 마땅히 좋은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코스를 만들려고 한다면 못 만들 것도 없지만, 문제는 다 걷고 집에 돌아오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 게다가 이렇게 코스가 길어지면 웬만하면 제가 아는 길로 가는 게 좋았어요.


"이거 40km 되네?"


외대에서 큰 길을 따라 청량리, 제기동, 신설동, 동묘, 동대문, 종로5가, 종로3가, 종각, 광화문역을 거쳐 청계광장으로 가서 거기서 청계천을 따라 끝까지 가서 중량천을 타고 오면 40km 넘는 길이었어요. 처음부터 노리고 찾은 게 아니라 예전 친구랑 밤에 심심하면 이 길을 잘 걸었었는데, 그 길까지 다 하면 얼마나 되나 보니 40km가 조금 넘는 길이였어요.


하지만 이걸 굳이 일부러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일단 의정부에서 외대까지는 전철로 가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마침 9월 22일 일요일 저녁, 잠깐 외대에 갈 일이 생겼어요.


"도전할까?"


다리는 웬만큼 다 풀린 상태. 하지만 계속 고민되었어요. 그래서 카메라는 들고 가지 않았어요.


9월 22일 밤 8시 45분.


"걷자!"


일단 걷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청계광장에 도착한 이후에 생각해도 되는 문제. 어차피 외대에서 청계광장이라면 한때 심심하던 걷던 길이었고, 그 길이라면 아직도 매우 잘 알아요. 걷다가 돌아가고 싶어진다면 청계광장에서 종각역 가서 전철 타고 집에 돌아가도 되었구요. 일단 고민은 청계광장 가서 다시 하기로 했어요.


역시나 청계광장까지 가는 건 매우 쉬웠어요. 한 시간 반 만에 청계광장에 도착했어요. 중간에 인상 깊었던 것이라고는 오직 딱 두 가지 뿐이었어요.


첫 번째는 동대문 도착했을 때. 제가 걸어가던 길과 청계천이 만나는 지점이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확실히 걷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만약 걷기로 한다면 이곳을 다시 지나가야 했어요.


두 번째는 광화문 근처에 와서 옆에 청계천이 보이는데 거기로 가지 않고 일부러 빙 돌아서 5호선 광화문역 갔다가 청계광장에 갈 때. 옆길로 빠지면 바로 시작인데 일부러 뱅 돌아가고 있다보니 뭔가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걸을까?'


30km 걸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왕창 걸을 수 있는 날도 많지 않았어요. 일단 외대에서부터 시작할 일이 거의 없었어요. 굳이 일부러 걷겠다고 작정하고 외대까지 전철타고 가지 않는 한, 거기에서 시작할 일이 없었으니까요. 설령 외대 근처에 또 볼 일이 생겨서 간다 치더라도, 거기서 다음 날 쉴 수 있기 때문에 걸을 수 있는 날이 또 있을 지도 의문이었어요. 더욱이 이제 날이 추워지면 걷기도 나쁘구요.


청계광장 옆 편의점에 가서 이온음료를 하나 샀어요. 이것은 맨발의 아베베가 도쿄 올림픽에서 신발을 신고 뛰었던 것과 비슷한 기분. 아무리 약 25% 걸었다 해도 남은 거리를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참고로 이때는 이때가 10km 걸은 줄 알았지만, 지금 네이버 지도에서 확인해보니 8km 조금 넘는 거리였어요. 그래도 한 시간 반 만에 도착했으니 시속 5km 넘는 속도로 걸어온 셈. 중간에 신호등 같은 게 없었다면 아마 더 빨리 왔을 수도 있었겠지요.





이번에도 역시나 전체 길이만 잘 알고 있었지, 각 구간간 거리에 대해서는 전혀 숙지를 못하고 있었어요. 일단 전부 제가 한 번은 걸어본 길이다보니 출발할 때 각 구간의 거리에 대해 숙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500ml 짜리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청계광장에서 걷기를 시작했어요. 속력 내기에는 가장 최악의 난코스였어요. 사람들이 그 시각에도 많았거든요. 게다가 이때 사람들이 카톡을 제게 보내기 시작했구요. 지난번에는 '설마 그걸 걸을 수 있을까?' 이런 반응이었는데, 이번에는 '힘내세요, 화이팅!' 이런 반응이었어요. 어쨌든 별 무리 없이 완주는 하겠지 하는 반응들이었어요.


전체 구간 중 최악이 코스인 청계광장 근처를 벗어났어요. 여기는 사람도 많고 바닥도 울퉁불퉁한 편이라 제일 걷기에는 안 좋았어요. 종로 3가쯤 들어오자 그때부터 사람들이 확 줄어서 걸을 만 했어요.





오후 10시 40분. 동대문에 돌아왔어요. 9시 45분에 처음 동대문 도착했으니 약 한 시간 만에 다시 돌아온 셈이었어요. 이렇게 시간을 아는 이유는 간단해요. 걸으면서 어디 걷고 있다고 몇몇 친한 사람들에게 카톡을 보내었거든요. 굳이 일부러 기록하지 않아도 카톡 대화 시각을 보면 정확히 시간을 알 수 있지요.


청계천을 따라 계속 걸었어요. 점점 흔히 알려진 청계천과는 거리가 먼 풍경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어요.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는 것인데 오히려 상류 발원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여기 역시 큰 감흥 없었어요. 왜냐하면 전에 걸으며 청계천 하류는 그냥 수풀 속에 산책로 만든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한 번 보았거든요.


11시 50분. 드디어 청계천이 끝나고 중량천에 들어왔어요.


"기념 사진 찍어야지!"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려는데 초점이 도무지 잡히지 않았어요.


"아놔...이놈의 폰카는 어두우면 먹통이네."


더 열받게 하는 것은 초점을 잡으려고 해서 잡혔는데 갑자기 초점을 팍 놓아버리며 못 잡는 것. 아니면 아예 초점 놓친 상태를 계속 초점 잡혔다고 박박 우기거나요. 어쨌든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제대로 찍지 못했어요.



남산타워도 보이는데 사진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어요. 의정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중량천 산책로가 여기에서 끝난답니다.



"이제 절반 왔어요!"


카톡으로 대화하던 사람들에게 이제 중량천 진입했으니 절반 왔다고 알렸어요. 일단 다리 상태를 보아하니 20km 정도 남았는데 넉넉하게 시간당 4km 잡아서 5시면 충분할 거 같았어요.


'오늘 까짓거 50km도 도전해봐?"


중량천을 타고 가다 부용천으로 들어가서 의정부 경전철 송산역까지 갔다가 다시 부용천 타고 중량천 타고 돌아와 의정부역으로 가면 50km도 나와요. 일단 나중에 무지 힘들 것을 감안해서 5시쯤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빠르면 5시 전에 도착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까지는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거든요. 그렇다면 50km 를 걷는다고 해도 의정부역에 7시 반 정도면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렇게 '아직도 끔찍하게 많이 남았네'라는 생각과 '확실히 걸어본 길이니까 무지 쉽구나. 걷고 체력이랑 시간이 조금 남아 있으면 50km 도전해볼까?' 라는 생각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었어요. 게다가 이제부터는 중량천. 이게 제 머리 속 양립해서는 안 되는 두 생각이 양립하고 서로 엉킨 실타래처럼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게 문들고 있었어요. 일단 중량천에 진입했다는 것 때문에 벌써 20km 걸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두 번째로는 청계천보다 중량천이 걸어가기에 훨씬 더 좋은 길이었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절반 채 못 왔다는 것. 여태 걸은 거리는 16.5km 였어요. 약 40.8km 걸어야하니 대략 40% 정도 걸은 셈이었어요. 하지만 이건 지금 글을 쓰며 지도를 확인해서 아는 것이고, 걸을 때는 몰랐어요. 그냥 전체 길이는 약 40.8km 이고, 중량천 20km, 청계천 10km, 청계광장-외대 10km 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이번에는 중량천 아래에서 위로 걸어가는 것인데 힘들 거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어요. 지난 번 외대부터 힘들게 걸었던 기억도 있었고, 실제로 중량천이 한양대에서 의정부로 갈 수록 걷기 좋아지거든요.


하필이면 핸드폰 배터리도 40% 조금 넘게 남아있어서 핸드폰도 껐어요. 이때부터는 앉아서 쉴 때에만 잠시 켰다가 걸을 때에는 끄곤 했어요.


"아이구, 다리야!"


확실히 20km 넘어가니까 힘들구나. 그러고보니 나 오늘 새벽 2시 조금 넘어서 일어났었지? 전날 학원 자습 지도 갔다가 피곤해서 바로 씻자마자 잠들어서 새벽 2시에 일어나 할 거 하다 잠깐 저녁에 일 있어서 외대 간 것이었다는 게 떠올랐어요. 하지만 저때 20km 채 못 걸었다는 것이 문제. 그리고 그걸 몰랐다는 것이 더 문제였어요.


"앉아서 쉬어야겠다."


앉자마자 신발을 벗은 후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종아리를 시원한 의자 바닥에 대었어요. 그래도 냉찜질이 좋다는 것을 들은 적은 있거든요. 무리한 운동 후 냉찜질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주변에서 많이 듣고 읽어서 알고 있었어요. 당장 냉찜질을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하니 아주 약간 비슷한 효과는 나는 기분이었어요.


"얼마나 걸었지?"


위치를 확인해 보았어요. 아직 외대까지 많이 남아 있었어요.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의정부까지 반 밖에 못 왔잖아!


머리 속이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대충 눈짐작으로 보니 좋게 보아주어야 절반이고, 실제로는 절반 채 못 온 것처럼 보였어요. 거의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 공포스럽게 보이기까지 했어요.


'아놔...그냥 얌전히 외대에서 의정부로 걸어갈 걸 그랬나?'


하지만 후회막급. 시간이 시간인 만큼, 퇴로도 없었어요. 안 걸어간다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선택지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것들 두 개 뿐. 일단 전철역 근처까지 걸어간 후에 중량천에 앉아서 첫 차가 다닐 때까지 시간을 보내든가, 아니면 근처 PC방 가서 역시나 마찬가지로 첫 차가 다닐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 하는 게임도 없는데 PC방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량천에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저 최악.


"아이구...일어나자."


휘청휘청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새벽 1시 55분에 광운대역 근처에 도착했을 때까지 기억나는 게 거의 없어요. 중간중간 졸면서 걸었거든요. 일단 1시 10분경에 외대 근처에 도착했어요. 여기서 외대 도착했다고 카톡을 보냈고, 잠깐 쉬다가 다시 또 걸었어요. 일단 외대를 지나가면서부터 졸음이 조금씩 가시기는 했지만 중간중간 졸면서 가서 기억이 별로 없어요. 그냥 기억나는 거라고는 1시간 걸은 줄 알았는데 10분 걸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것. 그리고 정말로 힘들었고 졸렸다는 것. 이때부터 50분 걷고 10분 쉬기를 거의 규칙적으로 반복했어요. '아...힘들어...일단 쉬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꽉 차서 의자에 주저앉아 핸드폰을 켜면 신기하게 50분 정도 지나가 있었어요.


1시 55분. 광운대역 근처에 도착했어요. 다리가 너무 아파서 의자에 주저앉았어요. 이때가 26km 쯤 걸었을 때. 음료수를 마시고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정말 안 도와주네."


의정부쪽에서 중량천 하류 쪽으로 바람이 계속 불고 있었어요. 앉아 있으면 바람이 부니 시원해서 좋은데, 걸을 때에는 자꾸 목이 마르고 입을 텁텁하게 만들었어요. 남은 거리를 보니 힘이 솟는 게 아니라 막막함만 느껴졌어요. 아...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몸은 이제 거의 끝났다고 말하는데 남은 거리를 보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고통의 시작.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 뿐이었어요.


'아...집에 가고 싶다...'


밖에 돌아다니며 노는데 맨정신에 이렇게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거의 없어요. 기껏해야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 돌아가는 길에 어차피 노는 것은 끝났으니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정도. 하지만 이때는 진심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걸을 수 밖에 없는 상황. 밤이니까요. 정신력이니 성취감이니 그딴 거 하나 도움 안 되었어요. 밤이어서 집에 돌아가려면 어쨌든 걸어야 한다는 강제된 상황만이 힘을 쥐어짜낼 뿐.


계속 졸다 와서 그런가? 신기하게 잠이 날아갔어요. 그나마 한 가지 긍정적 변화. 졸음이 가셨다는 것 만으로도 일단 매우 좋았어요.


다시 일어났어요. 그리고 또 걷기 시작했어요.


뭔가 이상한데?


일단 졸음이 완벽히 가시고 머리가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지금 걷는 길은 며칠 전 걸었던 길. 자연스럽게 며칠 전 걸을 때 상황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하나하나 비교를 하며 생각을 해보니 그때와 지금 가장 큰 차이가 하나 있었어요.


흥이 전혀 나지 않아.


30km 걸을 때에는 정말 흥이 났어요. 노래를 들으니 흥이 나서 아무도 없는 중량천, 청계천을 노래를 따라부르고 덩실덩실 춤도 추며 걸었고, 그러다보면 다리의 고통도 싹 사라졌어요. 그러다 쉬면 통증이 한 번에 몰려왔고, 쉬면서 통증을 가라앉힌 후 다시 노래를 들으며 걸으면 또 흥이 나서 힘이 나고 통증은 없어졌어요. 그런데 이번은 아무리 노래를 들어도 흥이 나지 않았어요. 아무리 억지로 노래를 흥얼거려보고 춤을 추어보아도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와 의미없는 손짓.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 통증이 전부 그대로 머리로 전해지고 있었어요.


'확실히 무리하고 있는 건가?'


다리가 깔끔하지는 않아도 상태가 매우 괜찮아서 또 걸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물론 걷고는 있었죠. 하지만 몸이 전부 완벽히 회복된 것은 아닌 듯 했어요. 전혀 흥이 안 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는 점의 원인은 아무래도 저는 시작할 때 못 느꼈지만 몸이 아직 피곤했던 것 같았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이제 포기하기엔 늦었어요. 차도 없고, 걸어온 거리도 아까웠어요. 그래서 꾸역꾸역 걸었어요.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조금 상황이 개선되기는 했어요. 일단 육체적으로는 졸음이 가셨다는 것. 이것을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는 졸음까지 와서 졸면서 걸을 때에는 정말 극악으로 힘들었거든요. 잠깐 졸다가 눈을 뜨면 대체 이걸 왜 걷고 있지 하는 생각 뿐. 그런데 일단 졸음은 가셨어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길도 좋아졌어요. 희안하게 중량천은 청계천과 만나는 하류에서 의정부쪽으로 걸어갈 수록 산책로가 매우 좋아져요. 게다가 이제부터는 다리들이 구간 거리를 알려주고 있었어요. 다음 다리까지 얼마 남았다고 다리 표지판의 다리 이름 아래 적혀 있었기 때문에 '다음 다리까지 열심히 걷자!'라고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다리들의 간격은 길면 2km, 짧으면 800여 미터.


2시 36분. 표지판이 나왔어요. 의정부까지 5.5km 남아 있었어요.


"음료수 떨어져가잖아!"


쉴 때마다 두세 모금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는데 이제 음료수도 거의 바닥나고 있었어요.


"물 타야겠다."


그런데 식수대가 안 보였어요. 중량천을 따라 걷다 보면 식수대가 가끔 보이는데 이번 지점에서는 식수대가 보이지 않았어요.


"아...물 타야 하는데..."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어디서 들은 기억이 있어요. 시중에 나오는 이온 음료를 마시고 갈증이 잘 가시지 않는 이유는 맛 때문에 이온 음료가 너무 진하게 나온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진짜 갈증이 가시게 하려면 희석해서 먹어야한다고 들은 기억이 있어요. 이게 맞는 말인지 아닌지는 몰라요. 어쨌든 중량천 물을 섞는 것도 아니고 마시는 수돗물을 섞는다고 해서 크게 나쁠 것은 없었어요. 그냥 맛이 묽어지는 정도. 앞으로 의정부까지 5.5km 남았다면 실제 걸어야하는 거리는 약 10km. 지금 다리 상태로는 3시간 조금 안 걸릴 듯 싶었어요.


"음수대 보이면 물 섞어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또 걸었어요. 그냥 주구장창 걸었어요. 그렇게 한참 걸어서 도착한 방학역 근처 중량천. 1호선 노선을 생각해보면 아직 의정부까지도 한참 남았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그리고 계속 걸었어요. 도중에 음수대를 발견해서 이온 음료에 수돗물을 섞었고, 또 걸었어요. 드디어 어둠 속에서 의정부가 가까워졌다고 알려주는 산이 시커멓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제 도봉산 거의 다 와 간다!"


기운을 내 보려고 노래도 불러보고 했지만 전부 의미없는 짓. 오히려 노래를 흥얼거릴 때마다 입으로 체력이 쏟아져나가는 것 같아서 곧 관두었어요. 귀에서 들리는 노래는 그냥 의미없는 소리. 이미 노래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기능을 상살한 지 오래였어요. 그저 얼마나 걸었는지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 기능만 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여기가 서울인가?"


전에 보았던 길에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드디어 다시 마주하게 되었어요. 지도를 보았어요. 무언가 참 미묘하고 애매한 곳이었어요. 의정부-서울 경계라고 우기면 될 거 같기는 한데 확실히 의정부-서울 경계라고 딱 말하기에는 애매한 지점이었어요. 그리고 도로 표지판은 아직 서울이었구요. 지도를 확대해 보았어요. 확실히 서울을 벗어나는 곳은 바로 지하철 7호선 철도와 중량천이 만나는 지점이었어요.


의정부 다 와간다...

의정부 다 와간다...

의정부 다 와간다...


오직 이 생각 뿐이었어요. 그리고 새벽 3시 47분. 드디어 7호선 철도와 중량천이 만나는 지점을 확실히 자나왔어요. 이떄가 34.6km 정도.


"이제 한 시간만 걸으면 돼!"


이제부터 걷는 구간은 무려 두 번 걸어본 구간. 두 번 다 한 시간 정도 걸렸어요.


"국토대장정? 도보 여행? 내가 그딴 거 죽었다 깨어 나도 안 한다."


의정부에 들어와 중량천을 따라 걸으며 생각했어요. 이건 뭐 몸으로 느꼈어요. 아...역시 여행은 대중교통수단 잘 이용하며 편하게 이동하며 구경하고 적당히 돌아다니는 게 최고야. 저런 거 했다가는 몸 망가지는 건 일도 아니겠다. 진짜 평소에 꾸준히 제대로 운동하고 준비하지 않고 저런 거 하면 무조건 골병들겠네.


망월사역 근처에 도착해서 의자가 보이자 바로 주저앉았어요.


"아...죽겠네."


얼마 멀지도 않은 거리인데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찜질방 간판이 보이면 그 근처에서 중량천을 빠져나가야 했어요. 거기서 빠져나가서 송산 교차로를 지나 의정부역을 넘어 집에 가야 했거든요.


'50km 걷는다고 했다면 정말 뻗어버렸겠다.'


30km 걸었다고 40km 로 거리를 늘여본 것 자체도 썩 좋은 것은 아니었어요. 말이 좋아 10km이지, 한 시간에 5km 걸어야 2시간 추가. 50km 였다면 일단 평균 4km/h 로 걷는다 쳐도 12시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시작할 때 한 번에 10km 늘리는 것은 조금 무리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실제 걸어보니 10km 늘어났다는 게 매우 컸어요. 힘이 넘칠 때 10km가 아니라 힘이 다 빠질 때 추가로 10km이니까요.


발곡역, 그리고 백석천과 중량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금속 난간을 잡고 백석천을 바라보았어요. 이제 남은 거리는 약 2km. 평소 2km 라면 정말 별 것도 아닌 거리인데 이때 2km는 그냥 한숨 나오는 거리.


드디어 중량천에서 빠져나가야하는 지점이 나타났어요.


"이제 중량천 끝났구나..."


부용천은 무슨...집이나 빨리 가서 쉬고 싶다.


중량천에서 빠져나오자 마지막 남아있던 음료수를 다 마셔버렸어요. 이제 집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니 음료수는 없어도 돼. 음료수도 다 마셨고 남은 건 아직 깜깜한 거리를 걸어 집에 돌아가는 것.





의정부역 도착했을 때에는 5시 5분. 의정부역을 넘어서 집에 들어가는 그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가 정말 힘들었어요. 다 와서 그런 것인지, 의정부역 앞 큰 길을 건너기 위해 계단을 걸어서 내려갔다 올라가서인지는 모르겠어요. 휘청휘청 걸었어요.


새벽 5시 15분. 드디어 집에 도착했어요. 걸린 시간은 총 8시간 반.


"집이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어요. 집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앉아서 조금 쉬다가 냉장고에 있는 먹다 남은 비락식혜를 들이켜고 옥수수 수염차를 끓였어요. 화장실로 들어가서 물집을 하나하나 터트렸어요. 냉탕에 다리를 집어넣고 싶었지만 방에 욕조가 없어서 샤워기로 찬물을 다리에 뿌려주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어요. 찬물로 샤워를 하고 바로 방바닥에 드러누웠어요. 베개를 베고 눈을 감았어요.


'아, 졸려.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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