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새벽, 길가에 앉아서

깊은 밤의 노래 - 04 중량천을 따라 한국외대에서 한양대까지 가기

좀좀이 2013. 9. 2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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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이제야 외대네."




의정부까지 11.9km

외대역앞 0.5km

서울숲 9.1km


서울숲은 중량천 끝. 그러나 저는 서울숲을 갈 것은 아니었어요. 어쨌든 서울숲까지의 거리보다는 훨씬 더 걸어야 했고, 의정부까지 11.9km 보다는 훨씬 더 걸어왔어요.


"이제 반 정도 왔나?"


일단 쉬기로 했어요. 의정부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앉아서 쉬지 않았어요. 잠깐 사진 찍으려고 멈추어 선 것이 전부. 벤치에 앉으니 발바닥이 얼얼했어요.


"반도 못 온 거 같은데..."


실제로는 절반을 넘겼지만 절반을 채 못 넘겼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진짜 무지막지한 거리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때 외대까지가 전체 거리의 절반보다는 안 되는 거리라고 판단을 한 이유는 이 주변 구간은 걸어본 적이 여러 번 있었고, 1호선 타고 워낙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다보니 먼 곳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어요.


그에 비해 앞으로 남은 구간은 전에 친구랑 걷다가 그만둔 구간이었어요. 길이가 긴 것도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친구와 이야기하고 사진 찍으며 걷다보니 지금처럼 빠르게 걷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그때 한참 걷다가 친구가 목마르고 배고프다고 편의점 가서 뭐 먹고 다시 걷자고 해서 장한평 즈음에서 중량천에서 나와 편의점을 찾았는데 주변에 편의점이 없어서 한참 걸어갔어요. 그리고 편의점 찾는다고 걸어간 길이 꼬여서 장한평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 흔한 편의점을 장한평역까지 가는 동안 단 한 곳도 발견하지 못했죠. 당연히 장한평역 근처에는 삐끼들이 득시글했고, 자꾸 잡아대는 삐끼들 뜯어내고 건대를 가자 어린이 대공원을 가자 올림픽 공원을 가자 우왕좌왕하며 오락가락하며 길을 걷다 천호대교를 건너 한강에서 해 뜨는 거 사진 찍고 올림픽 공원 보고 돌아가기로 하고 천호대교를 건넜는데 하필 지독하게 흐린 날이라 해 뜨는 건 보지도 못해서 완벽히 의욕을 상실해버려서 올림픽 공원은 보지도 않고 전철 타고 집으로 돌아갔었어요. 만약 그때 지금처럼 지도 보는 방법이 있었다면 둘이 사이좋게 길 헤매지는 않았을 거에요. 아마 정말로 가까운 편의점을 찾아서 대충 뭐 먹고 중량천으로 돌아갔거나, 빠르게 올림픽 공원으로 갔겠죠. 하지만 지금은 모두 지나간 이야기. 그리고 친구와 같이 걸었던 길 가운데 단연코 가장 최악의 길이었어요.


중량천 하류로 가는 길은 그래서 딱 한 번 가 보았고, 그나마도 한양대까지 가보지도 못했어요. 그날 무지 힘들었다는 기억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어요. 그럴 만도 한 게 한 시간 넘게 방향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며 걸었으니 안 피곤할 수가 없었지요.


준비를 하고 나왔다고 하지만 철저한 준비를 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어요. 준비라고는 그냥 편한 옷으로 입고, 잠시동안 핸드폰과 mp3을 충전하고, 쉬면서 끝까지 가 보기로 결심한 게 전부였어요. 하천 산책로 따라 그냥 걷는 것인데 길을 알아보고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거리가 30km 넘는다는 것은 알지만, 세세히 구간 따져가며 재어본 거리는 아니었어요. 이러니 이미 절반은 넘게 왔는데 절반 채 못 왔다고 생각했고, 남은 중량천 구간이 앞의 구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 거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었어요.


"여기 못 찾아서 친구랑 여러 번 헤매었었는데."


친구랑 중량천을 걸어보자고 한 후, 둘이서 중량천 입구를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어요. 몇 번 실패하고 나서야 중량교에서 내려가는 길을 찾았고, 외대쪽 중량천 입구는 아주 나중에 발견했어요.


"일어나야지!"


10분간 앉아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중량천에서 나가서 동대문으로 갈까? 지금 그 길로 가면 청량리 야시장도 보고 새벽에 청계광장 도착해 24시간 하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새벽을 만끽할 수 있을텐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지점에서 중량천에서 나가서 외대앞까지 간 후, 큰 길을 따라 쭉 걸으면 청계광장까지 금방 갈 수 있었어요.


'아니야. 이 길을 나중에 어떻게 다시 또 걸어?'


중량천-청계천-청계광장까지 걷기 위해 여기까지 나중에 또 걸어올 것 같았어요. 지금이야 편하고 쉽겠지만 집에 돌아가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무지 후회될 것 같았어요. 아니, 빠르면 청계광장 도착하자마자 후회될 것 같았어요. 그런다고 청계광장에서 의정부까지 걸어서 돌아가는 것은 정말로 무리. 왕복으로 하면 50km가 넘는 엄청난 거리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감히 엄두를 낼 길이 아니었어요.


'3시 반에 청계천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할 수 있을 건가?'


지금까지 걸어온 것처럼 열심히 걸으면 한 시간 반 후에 청계천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하지만 슬슬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정신없이 걸었어요. 슬슬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잠도 밀려왔어요. 괜히 박수도 쳐보고, 노래를 따라 흥얼거려보기도 했어요. 꾸벅꾸벅 졸지는 않았지만 어디 앉아서 눈을 감고 있으면 바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청계천 2.7km!"


드디어 표지판에 청계천이 떴어요. 그것도 2.7km. 전혀 먼 거리가 아니었어요.


"빨리 걸으면 30분 안에 어떻게 되지 않을까?"


조금씩 밀려오던 잠도 확 깨었고, 다리가 아픈 것도 깔끔하게 없어졌어요. 청계천이야 그까짓 거 길어봐야 얼마나 되겠어. 그러고보니 청계천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걷는 것이었지? 이거는 그냥 인터넷에 청계천 길이 검색해보면 알 수 있겠다.


10.84 km

이것도 길잖아...


약 11km. 이건 한 시간에 4km 걷는다고 해도 거의 3시간 걸리는 길. 이러다 진짜 동튼 후에 청계 광장 도착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왠지 매우 김빠질 것 같은데...일단 목표는 동트기 전에 청계 광장에 도착하는 것이었어요. 요즘은 그래도 해 뜨는 시간이 늦어졌으니 열심히만 걸으면 어떻게든 동트기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해뜨기 전에 도착해서 동트는 것을 보는 것 : 도착했다! - 해 뜬다! - 드디어 하루가 시작되는군. 집에 가자. 정말 보람찼어.

해뜬 후 도착하는 것 -> 겨우 도착했다 - 하아...이제 돌아가자...


이런 차이였어요.




보기에는 참 예쁜 풍경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앞에 있는 다리는 바로...




우왁! 군자교!


저 다리는 절대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바로 이 즈음에서 친구랑 걷다가 중량천을 빠져나갔거든요. 그리고 이 다리 위도 그때 지나갔어요. 여기까지가 바로 예전에 친구와 걸었던 지점. 다리 생김새는 잘 떠오르지 않아서 멀리서 보았을 때에는 몰랐어요. 하지만 저 이름만은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서 이제 동대문구도 끝이었어요.


이제 중량천도 끝이 보이는구나!


다시 힘을 내었어요. 열심히 걸었어요.


"왜 길이 갑자기 위로 올라가지?"


산책로가 위쪽으로 나 있어서 위로 올라갔어요. 산책로는 끊어져 있었어요.


대체 뭐지?


길을 따라 걸어가 보는데 다리 하나가 나왔어요.




"지도에 길이 끊어져 있다고 나와 있지는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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