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2부 09 - 강원도 영월군 운탄고도 3길 망경대산 등산 코스 정상, 수라삼거리

좀좀이 2023. 3. 11. 17:17
728x90

바닥에 쭈그려 앉았어요. 이를 꽉 깨물었어요.

 

"장난하는 것도 아니구."

 

운탄고도1330 이정표 때문에 화가 났어요. 다리도 아팠고 발도 아팠어요. 신발이 발에 아직 길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무리가 많이 왔어요. 이래서 웬만하면 샛길로 안 빠지려고 했어요. 더욱이 거진 30분 정도 날렸어요. 아침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30분 날린 것 정도는 문제될 것 없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시간이었어요. 굉장히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오기는 했지만 원해서 본 건 아니었어요. 이상하게 되어 있는 이정표 보고 헷갈려서 잘못 들어갔다가 시간과 발과 다리의 통증 대신 멋진 풍경 감상으로 교환하고 왔어요.

 

이 정도도 제대로 표시 못 해놓은 것에 황당했어요. 갈림길이 끝없이 출몰하는 대도시도 아니고 갈림길 몇 개 없는 산길이었어요. 갈림길에서 리본 두세 개만 5m 간격으로 매달아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어요. 많은 돈 들여서 멋진 이정표 세울 필요도 없었어요. 리본 몇 개만 달아놓으면 끝날 간단한 것을 제대로 못 해놨어요. 이건 공무원이 귀찮아서 엉망으로 해놨다고 보기도 어려웠어요. 오히려 진짜 공무원이 귀찮아서 대충 했다면 오히려 귀찮으니까 갈림길에 리본이나 두어 개 묶어놓고 끝냈을 거에요. 그게 훨씬 일 적고 편하니까요.

 

"이 새끼들 정체가 뭐지?"

 

결국 이정표 때문에 산에서 잘못된 길 한 번 들어갔다 나와서 입에서 험한 표현이 나왔어요. 도저히 이해불가였어요. 게을러서 이 따위로 해놓은 거도 아니고 무슨 의도로 아 따위로 이정표를 해놨는지 알 수 없었어요. 싸리재 삼거리야 지도 제작 과정에서 실수했을 수 있지만, 운탄고도1330 3길 위에 있는 이정표와 안내 표식만큼은 절대 용서가 안 되었어요. 뭐 이해가 되어야 용서를 하든 말든 하죠. 차라리 개판쳐놨으면, 건성으로 대충 때웠다면 이것보다는 훨씬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머리가 두 배로 뜨거워졌어요.

 

이거 경험 없는 놈들이 했다.

이런 놈들은 올레길을 낮은 포복으로 종주시켜야 해.

 

뜨거워진 머리로 왜 운탄고도1330 3길 이정표와 안내 표식이 이렇게 설치되어 있는지 생각해봤어요. 제일 단순한 추측은 이거 만든 사람들이 경험이 없어요. 이런 길을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요령이 없었을 거에요. 뭔가 제대로 만들어야할 거 같기는 하고 예산도 확보했는데 정작 이런 길 만드는 방법을 모르니까 나름 열심히 했는데 결과물은 이 꼬라지가 나왔을 거에요. 안 그러면 진짜 악의적으로 산에서 한 번 길 좀 헤메어보라고 했을 건데 그건 아닐 거였어요. 산에서 길 헤메게 만들면 장난이 아니라 진짜 큰일나거든요.

 

 

다시 일어섰어요.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어요.

 

 

10분 넘게 걸어갔어요. 꽤 많이 걸었어요.

 

 

"씨발, 진짜 장난하는 것도 아니구!"

 

만경사 사거리 차단기에서부터 10분 넘게 걸어오자 운탄고도1330 표식 리본이 나왔어요. 더 어이없는 것은 여기는 표식 리본이 전혀 필요없는 곳이었어요. 길이 외줄기라서 아래 급경사로 굴러떨어지고 싶지나 않으면 누구나 외줄기 길 따라 걸어갈 거였거든요. 표식 리본을 매달아놓으려면 아까 만경사 사거리 차단기에 묶어놨었어야죠. 아니면 차단기 근처 나무에라도 묶어놓든가요. 차단기 지나서 10분 넘게 걸어와서야 운탄고도1330 표식 리본이 나오며 이 길이 맞다고 하고 있었어요.

 

 

이정표가 또 나왔어요. 여기는 망경대산밑삼거리였어요. 이정표를 보니 MTB 코스도 있었어요.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운탄고도를 달리는 것이 일종의 로망이라고 해요. 마치 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리산 종주, 백두대간 완주를 꿈꾸는 것처럼요.

 

 

이정표를 하나씩 봤어요.

 

 

위는 산꼬라데이길 이정표에요.

 

 

위는 운탄고도1330 이정표에요.

 

'산꼬라데이길은 이제 잊혀지는 건가?'

 

산꼬라데이길 이정표는 방치되어 있는 느낌이었어요.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어요. 한때 영월군에서 밀어보려고 노력했던 산꼬라데이길이었어요. 그러나 강원도 차원에서 밀어주는 운탄고도1330이 생겼어요. 운탄고도1330을 정비하는 동안 산꼬라데이길 이정표는 전혀 신경 안 쓰고 방치해놓아서 이정표 팻말 중 하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요.

 

"왔는데 정상은 찍고 가야겠지?"

 

망경대산 정상까지 멀지 않았어요.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자전거 타고 와서 자전거 끌고 망경대산 정상을 찍기도 한다고 했어요. 자전거 끌고도 올라가는 길인데 배낭 하나 짊어매고 두 발로 못 걸어올라갈 리 없었어요.

 

망경대산 정상을 가기로 했어요. 아까 만경사 다녀와서 발과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지만 온 김에 정상도 찍고 가고 싶었어요. 언제 운탄고도1330 3길을 또 올 지 모르니까요. 운탄고도1330 3길은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봄, 가을 산불 조심 기간에는 입산이 통제되거든요.

 

망경대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여기 길 너무 나쁜데?"

 

 

 

길은 흙길이었어요. 흙 사이에 돌이 박혀 있었어요. 돌은 누가 일부러 박아놓은 돌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원래 존재하던 돌이었어요. 돌은 땅에 꽉 박혀 있는 것도 있었지만 다음번에 비 한 번 좍 퍼부으면 돌돌돌 굴러갈 돌도 있었어요. 제가 갔을 때는 흙이 물을 많이 머금고 있었어요. 경사도 꽤 있었고, 흙도 물을 머금은 데다 돌이 흔들리는 것도 있고 잘 박혀 있는 것도 있었어요. 여기에 마른 솔잎이 바닥을 덮고 있어서 어디를 밟고 가야 하는지 잘 안 보였어요.

 

"정상이다!"

 

 

 

2022년 10월 20일 아침 9시 52분, 망경대산 정상에 올라왔어요.

 

 

"뭐야? 조망 별로잖아!"

 

망경대산 정상에서 전망을 바라봤어요. 매우 크게 실망했어요. 아까 만경사에서 본 전망은 매우 웅장하고 멋지고 아름다웠어요. 반면 망경대산 정상에서 본 전망은 앞에 풀과 잡목이 많이 자라서 볼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었어요. 잡목을 다 베어낸다고 해도 전망이 아까 만경사에서 본 전망보다 훨씬 못했어요.

 

 

'예전 발칸 유럽 갔을 때 생각나네.'

 

2009년 초봄이었어요. 발칸 유럽 여행을 다니고 있었어요. 그때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한국 교민분과 마주쳤어요. 그분께서 제게 일정을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그때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간다고 했어요. 그러자 그분께서 포드고리차는 가지 말라고 극구 말리셨어요. 몬테네그로가 아름다운 풍경 많은 국가이기는 하지만 포드고리차는 볼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곳이라고 했어요. 심지어 몬테네그로 사람들도 자기네 나라는 포드고리차 빼고 다 예쁜데 왜 한국인들은 꼭 포드고리차 가서 볼 거 없다고 툴툴대는지 이해를 못 한다고 했어요.

 

그래도 일국의 수도인데 궁금했어요. 세르비아 교민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포드고리차로 갔어요. 진짜 볼 거 없었어요. 당시 몬테네그로에서 포드고리차와 울친을 갔었어요. 울친이 훨씬 더 아름답고 볼 거 있었어요. 이때만 해도 몬테네그로 관광은 우리나라에 아예 안 알려져 있던 시기였어요. 코토르 조차도 안 알려져 있던 시기였고, 발칸유럽 간다고 하면 크로아티아만 가는 정도였어요. 울친도 가려고 간 것이 아니라 버스에서 잠자다 내려야하는 포드고리차를 지나치는 바람에 울친까지 간 거였어요. 어쨌든 울친은 관광도시였고, 포드고리차와 비교하면 볼 게 매우 많았어요.

 

https://zomzom.tistory.com/134

 

7박 35일 - 16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공화국 광장 Трг републике, 칼레메그단 요새 Београдс

"우와! 여긴 진짜 도시답다!" 시작부터 쏟아져나온 감탄사!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어요.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다 있나 싶었어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아름다움과 관련된 수

zomzom.tistory.com

https://zomzom.tistory.com/136

 

7박 35일 - 18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21시 20분, 베오그라드발 포드고리차행 버스에 올라탔어요. 굳이 포드고리차행 버스에 올라탄 이유는 그래도 왠지 한 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몬테네그로 들어갈 때에도 별 일 없겠지?'

zomzom.tistory.com

 

계속 포드고리차 갔을 때가 떠올랐어요. 포드고리차만 빼고 다 아름답다고 했는데 운탄고도1330 3길 망경대산 등산로는 망경대산 정상 빼고 다 아름다웠어요. 외국 여행 처음 갔을 때 일국의 수도는 가야하지 않겠냐는 묘한 의무감 같은 게 있는 것처럼 산에 가면 정상은 찍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묘한 의무감 같은 것이 있어요. 그 의무감 때문에 오는 것 아니라면 굳이 올 필요가 없었어요. 운탄고도1330 3길 걷는 중에 망경대산 정상과 만경사 둘 중 하나만 들릴 거라면 만경사로 가는 것이 비교도 안 되게 좋아요.

 

 

망경대산 정상에는 벤치가 있었어요. 벤치에 앉아서 쉬었어요. 스마트폰을 꺼냈어요. 완전히 통신불능 지역이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는 통신불가 지역 - 권외지역이었어요. 요즘도 권외지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춥다."

 

산 정상에서 앉아서 쉬는데 바람이 차가웠어요. 땀이 금방 식었어요. 몸이 으슬으슬했어요. 가만히 있다가는 감기 걸리게 생겼어요. 움직여야 했어요. 여기에 눌러붙어서 살려고 온 건 아니니까 아래로 내려가야 했어요. 다시 망경대산밑삼거리를 향해 내려갔어요.

 

2022년 10월 20일 오전 10시 3분, 다시 망경대산밑삼거리로 돌아왔어요.

 

 

 

"이제부터 내려가는 길이다."

 

드디어 망경대산 등산로 하산길로 접어들었어요. 힘든 오르막길은 끝났어요.

 

 

 

이정표 따위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외줄기 길인데 이정표 왜 봄?

 

 

산꼬라데이길 망경대산 코스 이정표는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고마운 존재였어요. 산꼬라데이길 이정표 아니었으면 엄청나게 헤메었을 거에요. 게다가 옥동납석광업소부터는 통화권 이탈지역이었어요. 카카오맵, 네이버지도 도움도 못 받는 길이었어요. 이런 길에서 한 줄기 불빛은 바로 산꼬라데이길 이정표였어요.

 

 

"여기 재미있다!"

 

적당한 경사의 내리막길이었어요. 위험하지는 않은데 걸을 때마다 고도가 쭉쭉 낮아졌어요. 올라온다면 진짜 힘든 고생길이겠지만 내려가는 길로 보면 매우 재미있는 길이었어요. 고도가 빠르게 낮아졌고, 고도가 낮아지는 게 보였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었어요. 한 걸음 내딛는 보람이 마구 느껴지는 길이었어요.

 

 

"풍경 봐!"

 

 

멋진 강원도 영월군 풍경이 등장했어요. 산이 5겹산도 아니고 6겹산이었어요. 배둘레햄 5겹살도 아니고 6겹살 지형이었어요. 땅이 뭘 얼마나 처먹었는지 고도비만을 뛰어넘었어요. 땅이 초고도비만이니까 지하 자원도 많았고, 석탄 및 각종 금속 채굴로 이 지역이 번성했을 거에요. 영월에는 석탄만 있지 않았어요. 한때 우리나라 수출 70%를 차지했던 중석 - 바로 텅스텐도 영월에서 생산되었어요. 나이 조금 있는 분들은 기억할 거에요. 태백산공업지역 배울 때 상동 텅스텐, 상동 중석이라고 배웠던 거요. 이때 상동이 바로 영월군 상동읍이에요.

 

6겹산이 일본 가서 놀랐던 일본인들이 너무나 사랑하는 그라데이션이었어요. 그냥 그라데이션이 아니라 너무나 귀한 내츄럴 그라데이션에 슈퍼 그라데이션, 울트라 그라데이션, 하이퍼 울트라 슈퍼 그라데이션이었어요. 일본 도쿄 국립과학박물관 가서 곤충 모형을 그라데이션을 만들어 전시해놓은 거 보고 이 나라는 그라데이션에 진심인 나라라고 감탄하며 웃었는데 영월군 운탄고도1330 3길 망경대산 하산길에 등장한 산세 풍경은 산이 그라데이션을 만들었어요. 스케일이 달랐어요.

 

'이런 풍경 사진을 내가 찍다니!'

 

감동이었어요. 운탄고도1330 3길 걸으며 망경대산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계속 감상했어요. 이건 인스타그램 풍경 사진 맛집 수준이 아니었어요. 인스타그램 풍경 사진 무한리필, 인스타그램 풍경 사진 무한 코스 요리, 뷔페라고 해야 했어요. 이정표 문제만 빼면 다 아름다웠고 다 좋았어요. 망경대산 정상에서 본 풍경 빼구요.

 

 

뒤를 돌아봤어요. 뒤로 돌아본 풍경도 아름다웠어요. 아름다워서 놀랐고, 순식간에 엄청나게 많이 내려왔다는 걸 보고 또 놀랐어요.

 

'망경대산이 왜 안 알려졌지?'

 

망경대산은 유명한 산이 아니에요. 운탄고도1330 개통 이전에는 하나도 안 유명한 산이었어요. 산이 많은 강원도에 있는 흔해빠진 산 중 하나에 불과했어요. 가끔 산꼬라데이길 걷는다고 가는 사람과 MTB 타러 가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인지도는 강원도에 있는 무수히 많은 잡산 중 하나 수준이었어요.

 

망경대산은 유명한 산이 아니라 너무 안 유명한 산이라 아무 기대도 안 했어요. 와서 보니 이게 왜 지금까지 관광자원으로 발굴되어 개발되지 않았는지 의문일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어요. 등산 코스도 이 정도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산이었어요. 물론 가볍다고 해서 여자들이 하이힐 신고 올라갈 수준은 아니지만요. 특별한 장비는 필요 없고 물이나 500mL 챙기고 음료수도 500mL 정도 챙기고 운동화 신고 가면 딱 좋은 산이었어요. 그러나 그렇게 가볍게 갈 수 있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풍경만큼은 명산 소리 들어도 될 수준이었어요. 설악산 급은 아니었지만, 지리산보다 여기가 훨씬 더 아름다웠어요. 지리산이 명산이면 망경대산은 명명산이었어요. 운탄고도1330 3길 망경대산 등산로는 정말 숨어 있던 비경, 숨겨져 있던 보물이었어요.

 

 

운탄고도 표식 리본이 예쁘게 매달려 있었어요. 여기에 매달려 있을 필요는 전혀 없었지만 예쁘기는 했어요. 주변 풍경 색과 매우 잘 어울렸어요.

 

 

 

2022년 10월 20일 오전 10시 17분, 수라삼거리에 도착했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