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의 길 2부 07 - 강원도 트래킹 코스 운탄고도1330 3길 옥동 납석 광업소, 싸리재 삼거리, 만봉사, 낙엽송 삼거리

"이거 오르막 있네?"

 

오르막길이 펼쳐졌어요. 얼굴에서 웃음기 사라지고 진지해질 정도는 아니었어요. 산길이 아니라 '산에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걸으면 무난한 오르막길이었어요. 그래도 경사가 있어서 몸에서 열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어요. 경사가 심한 것은 아닌데 숨이 살짝 가빠지려고 했어요. 등에서 땀이 날까 말까 하고 있었어요. 힘들지는 않지만 운동은 많이 되는 길이었어요.

 

"여기 좋은데?"

 

매우 아름다운 영월 망경대산을 감상하며 윗쪽을 향해 계속 걸어올라갔어요. 길은 외줄기였어요. 길을 찾기 위해 고민할 일이 없었어요. 머리 텅 비우고 경치 감상하며 길을 따라갔어요.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계속 눈에 들어왔어요.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머리가 시원해지고 눈도 시원해졌어요. 산길을 걸으며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고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은 참 오랜만이었어요.

 

'그래, 이제 아무 문제 없을 거야.'

 

강원도 영월 와서 사람들과 엮인 일은 모두 좋았어요. 사람들은 친절했어요. 찜질방 아주머니도 친절하셨고, 버스기사분도 친절하셨어요. 모운동에서 길을 알려주신 할머니도 친절했어요. 모운동 입구에 있는 정자에는 방문객을 위해 정수기와 커피 믹스가 비치되어 있었어요. 영월 도착해서 사람들의 따스한 태도에 마음은 매우 따뜻해졌어요. 단지 저 혼자 삽질해서 난리를 피웠을 뿐이었어요. 찜질방에서 찜질방 아주머니 말씀대로 담요를 빌렸으면 따스하게 잘 잤을 거였고, 버스를 다른 사람들 타러 가는 터미널 쪽으로 가서 탔다면 너무 무난하고 좋은 일만 가득한 시작이었어요. 찜질방에서 담요 안 빌려서 덜덜 떨다가 온탕 옆 벽에 드러누워서 간신히 눈 붙였고, 영월교통차고지로 갔다가 그 근방 버스 정류장 찾아 달려야 했어요. 다 제 잘못 때문에 시작이 꼬였을 뿐이었어요.

 

 

"많이 올라왔네?"

 

나무 사이로 모운동이 보였어요. 꽤 많이 올라왔어요.

 

 

내리막길이 나왔어요. 내리막길을 쭐쭐쭐 내려갔어요.

 

 

산꼬라데이길 이정표와 운탄고도1330 이정표가 나왔어요. 운탄고도1330 이정표를 보니 싸리재로 가라고 하고 있었어요.

 

"왜 올라오라고 했어!"

 

운탄고도1330 3길 시작은 모운동을 외곽으로 한 바퀴 돌면서 옥동광업소, 황금폭포, 동발제작소터, 광부의 샘을 보도록 하고 있었어요. 이것들을 다 보면 오르막길이 나왔고,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위와 같은 이정표가 나왔어요. 모운동 외곽을 반바퀴 돌고 나서 망경대산 등산로로 들어가도록 길이 나 있었어요. 이제 다시 오르막길로 올라가야 했어요.

 

 

길이 잘 조성되어 있었어요. 즐겁게 위로 올라갔어요.

 

 

'모운동은 이번에는 잘 될까?'

 

모운동을 바라봤어요. 과연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리 모운동은 강원도 영월군 관광산업에 있어서 영원한 유망주 같은 존재에요. 모운동에 있던 옥동광업소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게 큰 민영 탄광이었어요.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면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리 모운동에 있었던 옥동광업소가 1970~80년대 국내 최대 민영탄광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것은 아마 틀린 말일 거에요. 왜냐하면 강원도 정선군 사북에 있는 동원탄좌가 국내 최대 민영탄광이거든요. 결정적으로 초거대 탄광에만 존재했던 수갱이 동원탄좌에는 있지만 옥동광업소에는 없어요. 그래도 국내 수위권에 들던 상당히 큰 탄광이었고, 한창 번성할 때는 영월 읍내에도 없던 극장이 모운동에 '옥광회관'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고 해요. 우체국, 병원, 시장, 술집, 양복집, 요릿집 등 없는 것이 없었다고 해요.

 

모운동이 한창 잘 나가던 때에는 모운동으로 시집오는 처녀들이 모운동에서 네 번 놀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해요. 처음 버스 타고 올 때 너무 험하고 꼬불꼬불하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에 처음 놀란대요. 이렇게 험한 길을 오다가 저녁에 사치재를 넘으며 보이는 휘황찬란한 모운동 풍경을 보고 두 번 놀란대요. 아침이 오고 동이 트면 밤에 봤던 휘황찬란했던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함석집만 바글거리는 풍경에 또 놀라고, 마지막으로 화장실 다녀오더니 집들이 다 똑같이 생겨서 자기 집이 어디인지 못 찾아 놀란다는 이야기에요.

 

모운동은 옥동광업소가 폐광한 1989년 이후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며 소멸 위기 동네가 되었어요. 무수히 많은 탄광촌이 그랬듯 역사 속에 이름만 등장하고 흔적조차 완벽히 사라진 동네가 될 위기에 처했어요. 한때 강원도 영월군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다는 모운동이었지만 폐광으로 인한 동네 소멸을 넘어선 동네 붕괴는 피할 수 없었어요.

 

2007년에 모운동은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사업을 신청해서 2000만원을 지원받았어요. 모운동 사람들은 2천만원으로 벽화를 그리려고 했지만, 2천만원은 벽화 제작을 외주로 맡기려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어요. 여기에 이정표도 세우려고 하니 벽화와 이정표만으로 2천만원이 고스란히 다 소모될 상황이었어요.

 

일반적인 방법으로 아름다운 마을을 조성하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동네를 만들기에는 2천만원은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어요. 그래서 모운동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찾은 방법은 모운동 사람들이 스스로 벽화를 그리고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상당히 큰 성과를 내었어요. 동네 주민들이 직접 벽화를 그리고 이정표를 세우자 천편일률적인 타지역 벽화, 이정표와는 아주 다른 이색적인 벽화, 이정표가 되었어요.

 

모운동의 노력은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관광객들도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해요. 강원도 영월군도 이에 크게 감명받았던 모양이에요. 2011년에는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인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산꼬라데이길 조성 사업을 시작했어요. 산꼬라데이길 조성 사업은 2011년 11월 9일에 완료되었어요. 산꼬라데이길은 김삿갓면 예밀1리에서 주문2리, 주문1리를 연결하는 27km의 길이에요.

 

그러나 그 이후 딱히 보이는 것이 없어요.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멘트가 들어간 기사 몇 개가 전부에요. 기사에서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고 적혀 있었지만 인터넷 검색 결과를 보면 그다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마치 주식 판떼기에서 거래량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명언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터넷에서는 글 갯수는 거짓말을 못 한다는 법칙이 있거든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는 명품 관광지가 되었다면 글도 엄청나게 많아야 하고 영월군 버스 노선 및 배차 시간도 달라졌을 거에요. 그리고 마을 지리도 달라졌을 거에요. 어딘가 아주 거대한 공영주차장이라도 하나 들어섰을 거에요. 제대로 된 민박, 펜션도 여러 곳 있었을 거구요. 아무리 역병 사태로 국내 많은 소소한 관광지와 관광업이 초토화당했다고 하더라두요.

 

사실 벽화 사업, 도보여행길 사업이 2000년대 말에 불어닥친 테마주 광풍 같은 사업이었어요. 여행기에 주식에 비유하는 부분이 간간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게 진짜 보면 주식 판떼기나 이런 것들이나 돌아가는 꼴이 똑같아요. 2020년 역병 사태 당시 마스크 소리만 나오면 주가가 몇 배를 뛰었고, 키트주 마찬가지로 몇 배를 뛰었고, 백신 개발한다고 말만 해도 몇 배를 뛰었어요. 궁예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라고 하고서는 철퇴로 후두려치는데 저 당시 마스크, 진단키트, 백신 소리만 나오면 일단 기본 상한가 찍고 시작이었어요. 진짜 하는 게 아니라 소리만 나와도요.

 

2000년대 말에 불어닥친 전국적인 벽화 사업 열풍, 도보여행길 사업 열풍도 마찬가지에요. 벽화 사업은 서울 이화 벽화마을, 경상남도 통영 동피랑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도처에서 벽화 사업이 진행되었어요. 도보여행길 조성 사업은 제주 올레길이 무지막지하게 성공하면서 다른 시도 지자체도 다 따라서 도보 여행 코스를 조성하기 시작했어요. 마스크, 진단키트, 백신 소리만 나와도 기본 상한가부터 시작했던 2020년 증시처럼 2000년대 말 한국 관광개발은 벽화마을, 도보여행길 조성 열풍이 불었어요. 벽화가 그려졌다 하면 우루루 몰려가며 관광지가 되었고, 도보여행길 조성이 되면 우루루 몰려가며 관광지가 되었어요.

 

하지만 급등 테마주의 끝은 대폭락이에요. 끄어어어 떡쉴쉰 수준이 아니라 이게 주식인지 개씹잡코인인지 분간도 안 될 정도로 주가만 보면 반토막에 심하면 마이너스 90% 찍고 난리도 아니에요. 이런 유행 타는 사업의 끝도 똑같아요. 몰락은 순식간이에요. 처음에는 독창적이고 이색적이라 흥미를 끌지만 우후죽순 생기면서 희소성이 사라지고 매우 식상해져요. 특히 이놈이 벽화 사업은 어디를 가나 그놈의 날개 벽화는 왜 빠지지 않고 다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러니 밑천 드러나며 순식간에 잊혀져요.

 

지금 벽화마을 사업은 제발 좀 하지 말라는 수준까지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서울로 한정해서 보면 벽화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절대 접근하면 안 되는 위험지역을 표시하는 독버섯의 화려한 외관 같은 역할로 전락했어요. 도보여행길은 아예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도보여행코스가 태반이에요. 산꼬라데이길 아는 국민이 전국민 중 몇 퍼센트나 되겠어요.

 

벽화마을 조성 사업과 도보여행 코스 조성 사업으로 잠깐 반등했던 모운동은 또 사라졌어요. 벽화마을, 도보여행코스에 대한 관심이 확 식어버렸으니까요. 이건 마치 주식 판떼기에서 그눔의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데드캣 바운스 - 기술적 반등, 설거지 차트 같은 거였어요. 본질적 가치는 계속 무너지고 하방 압력이 너무 강하니까 잠깐 테마 타고 뜰 수는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어요.

 

 

갈림길에서 이쪽으로 가지 말라고 바위 세 개를 세워놨어요. 이정표나 리본 같은 안내 표식이 없어도 이 길로는 가면 안 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여기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모운동은 나름 사람들이 간간이 오기는 했던 거 같아요. 영월군 입장으로 보면 영원한 유망주, 영원한 황금바닥주 같은 존재였을 거에요. 뭔가 될 거 같아보이는 동네이고, 주민들 의지도 크니까요. 한편으로는 반드시 살려야한다는 절박함도 있었을 거에요. 영월군 입장에서 보면 띄우기만 하면 되는데 띄우는 게 영 잘 안 되고, 그렇다고 포기하자니 포기할 수도 없는 곳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모운동을 살려야하는 이유는 단순히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리 문제가 아니에요. 모운동을 살리는 문제는 강원도 남부 몰락하고 붕괴된 탄광지대 전역을 살리기 위한 문제이기도 해요. 강원도 남부 탄전지대 서쪽 입구가 영월군이고, 그 영월군에서도 입구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모운동이거든요. 모운동부터 어떻게든 살려놔야 부활의 기운이 서쪽으로 흘러가며 정선 남부, 태백시, 삼척시 내륙지역으로 확산되니까요.

 

모운동 입구 정자에 있던 정수기와 커피 믹스에서 주민들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읽었어요. 아무리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노력하는 동네라 해도 이렇게 마을에서 외지인들에게 마음껏 마시고 쉬다 가라고 정수기와 커피 믹스를 준비해놓지는 않아요. 버스기사분, 동네 할머니에게서도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절박함과 간절함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친절함은 평범한 친절함과 달랐어요.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같은 친절함이었어요.

 

그간 작게 형성된 도보 여행 코스와 달리 운탄고도1330은 강원도가 작정하고 제대로 조성하는 도보 여행길이에요. 만약 잘만 된다면 모운동도 다시 살아날 거고, 더 나아가 강원도 남부 지역도 생기가 찾아올 거에요. 운탄고도1330 8길 걸을 때는 거기가 아직 미개통 지역이었기 때문에 못 느꼈지만, 정식 개통 구간인 3길 오니 간절함과 절박함이 매우 크게 느껴졌어요.

 

강원도 정선군 함백, 삼척시 도계의 기억과 영월군 영월읍내와 모운동의 기억 때문에 더욱 운탄고도1330이 아주 크게 성공하기를 바랬어요. 진짜 저 정도로 절박하고 간절하면 하늘도 한 번은 들어줘야죠.

 

오르막길을 쭉 올라갔어요. 평평하고 전망 조망하기 좋은 곳이 나왔어요.

 

 

"운탄고도1330에서 3길을 가장 추천한 이유가 있었구나!"

 

풍경 보며 감탄했어요. 이른 아침에 모운동 도착해서 본 산 사이에 구름이 모여 있는 풍경과는 또 다른 구름이 모여 있는 풍경이었어요. 모운동에서 본 풍경이 거대한 호수 같은 풍경이었다면 지금 풍경은 땅에서 구름이 뿅 솟아올라와 있는 것 같은 풍경이었어요.

 

"진짜 명품이네!"

 

사진을 찍으며 감탄했어요. 이 정도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라면 진짜 명품 여행길, 명품 여행 코스라고 해도 되요. 새파란 하늘 아래에 뾰족한 산이 5겹으로 겹쳐 있었어요. 첩첩 산중 속에 구름도 운탄고도1330 구경하러 놀러왔어요. '영월의 가을산'이라고 보여줘도 손색 없을 풍경이었어요. 달력 사진으로 써먹어도 될 사진이 갤럭시노트10+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나왔어요.

 

 

제가 전화기로 사용하고 있는 갤럭시노트5로 사진을 찍어서 강원도 친구에게 보내줬어요.

 

"여기 어디야? 운탄고도?"

"어. 풍경 어때?"

"진짜 멋있다!"

 

강원도 친구도 인정했어요. 타지역 산 보면 뭐 저렇게 밋밋하면서 저런 건 산이 아니야 앞동산 뒷동산이라고 하는 강원도 친구도 정말 멋지다고 감탄했어요.

 

"카메라 제대로 챙겨올 걸 그랬나?"

 

아직까지는 특별히 어려운 것 없는 코스였어요. 이 정도 풍경이라면 제가 사용하는 디지털 카메라인 캐논 PowerShot SX70 HS을 챙겨와도 후회 안 했을 거에요. 이 풍경 사진 한 장만 찍어도 카메라 잘 가져왔다고 엄청나게 만족했을 거에요. 아침에 모운동에서 본 운해도 있었으니 안 가져왔으면 어쩔 번 했냐고 했을 수도 있어요. 짐 늘리면 걸을 때 많이 힘들고 산길 가는 거니까 편하게 가려고 카메라를 안 챙겨왔어요. 갤럭시노트10+도 사진이 매우 잘 나왔지만 디지털 카메라 챙겨와서 제대로 찍었으면 어땠을지 조금 아쉬웠어요.

 

 

조금 더 걸어가자 폐석이 쌓여 있는 곳이 나왔어요.

 

 

 

폐석 쌓여 있는 곳은 조금 무섭게 생겼어요. 저 위로 절대 안 올라가고 싶었어요. 다행히 길은 저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길로 계속 걸어가도록 되어 있었어요.

 

 

2022년 10월 20일 오전 8시 10분, (구)옥동납석광업소 표지판까지 왔어요.

 

 

(구)옥동납석광업소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문이 있었어요.

 

(구)옥동납석광업소

Okdong Mine

 

1950년대부터 이곳은 흙을 조금만 걷어내도 탄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노천탄광이었으나, 1989년 폐광되었다. 옥동납석광업소의 또 다른 생산품인 납석은 곱돌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조각재, 타일, 유약, 농약 등에 사용된다. 납석채굴은 석탄광산이 폐광된 후 2009년까지 생산하다가 다시 폐광되었다.

 

옥동납석광업소 터로 갔어요.

 

 

옥동납석광업소 터는 우리나라 도처에서 보이는 석회석 광산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갱도를 만들어 파고 들어간 것이 아니라 산을 깎아내고 채굴한 광산이었어요.

 

'저거 폐광하면서 모운동이 완전히 쇠락했나?'

 

설명문을 보면 옥동납석광업소는 2009년까지 가행되었어요. 옥동납석광업소가 있었을 때는 모운동에 옥동납석광업소 근로자들이 거주했을 수 있어요. 옥동납석광업소가 폐광하면서 광산에서 일하던 마지막 사람까지 전부 마을을 떠났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었어요.

 

"여기 지도상 위치 어디이지?"

 

스마트폰을 꺼냈어요. 지도상 정확한 위치를 보고 싶었어요.

 

"어? 왜 폰 안 터져?"

 

스마트폰이 제대로 터지지 않았어요. 안테나가 아예 없었어요.

 

"폰에 문제 생겼나?"

 

폰을 껐다가 다시 켰어요. 안테나가 들어왔어요. 카카오톡 메세지를 보내봤어요. 문자만 간신히 전송되었고, 사진은 아예 전송되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카카오맵을 켜봤어요. 카카오맵은 신호가 없다고 화면에 체크무늬만 뜨고 지도가 나오지 않았어요.

 

'폰 슬슬 수명 다 되어가나?'

 

폰 문제는 나중에 망경대산을 내려가서 생각하기로 했어요.

 

 

옥동납석광업소에서 조금 더 걸어가자 차단기가 나왔어요. 차단기는 열려 있었어요. 열려 있는 차단기를 지나가는 길만 있었어요. 차단기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갔어요.

 

 

이정표가 여러 개 서 있는 갈림길이 나왔어요. 산꼬라데이길 이정표에는 '싸리재 삼거리'라고 나와 있었어요.

 

"어디로 가라는 거야?"

 

그 동안 좋았지?

이제부터 본게임 시작이다.

어금니 꽉 깨물어라.

 

운탄고도1330 3길 지도를 보면 싸리재로 가라고 나와 있었어요. 지금 이곳은 싸리재가 아니라 싸리재 삼거리였어요. 운탄고도1330 이정표는 망경산사 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산꼬라데이길 이정표를 보면 운탄고도1330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망경산사 가는 방향이었고, 싸리재 가는 방향은 따로 있었어요. 스마트폰을 꺼냈어요. 스마트폰은 안테나가 없었어요. 스마트폰에 의지할 수도 없었어요.

 

'운탄고도1330 표지판 방향을 믿어야해, 아니면 운탄고도1330 3길 지도를 믿어야해?'

 

운탄고도1330 3길 지도대로라면 산꼬라데이길 이정표가 알려주고 있는 싸리재 방향으로 가야 했고, 운탄고도1330 이정표 방향을 믿으면 만봉사 갈림길 방향으로 가야 했어요. 운탄고도1330 3길 오기 전에 본 글을 떠올렸어요. 운탄고도 느리게 걷기 행사는 수라삼거리까지 갔다가 거기에서 만경산사 주차장으로 돌아갔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운탄고도1330 지도에 나와 있는 싸리재로 갈 게 아니라 운탄고도1330 3길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만봉사 갈림길로 가야 했어요.

 

'만봉사 갈림길로 가야 맞을 거야.'

 

상당히 찝찝했지만 운탄고도1330 3길 이정표를 믿어보기로 했어요.

 

 

찝찝한 마음과 함께 표지판을 지나 열심히 걸어갔어요. 폐석이 쌓여 있는 곳을 지나가자 운탄고도1330 표식 리본이 나왔어요.

 

 

"이걸 왜 여기에다 달아놨어?"

 

운탄고도1330 표식 리본을 보자 순간 짜증났어요.

 

"얘네 일 할 줄 모르나?"

 

싸리재 삼거리 이정표 방향은 맞았지만 지도에 나와 있는 지명 믿고 간다면 산꼬라데이길 싸리재 방향으로 가야 했어요. 싸리재와 싸리재삼거리는 다른 곳이에요. 그런데 운탄고도1330 3길 지도는 싸리재삼거리가 아니라 싸리재라고 써놨어요.

 

표식 리본을 달아놓을 거면 갈림길에 달아놓고 대충 5m 간격으로 한 개나 두 개 더 매달아서 이 방향이 맞다고만 알려주면 되는데 이정표가 있는 곳에는 운탄고도1330 표식 리본이 아예 없었어요. 싸리재 삼거리를 지나서 꽤 가니까 드디어 이렇게 리본 표식이 나왔어요. 찝찝한 마음은 가셨지만 리본을 왜 선택지가 없는 외길에 매달아놓고 정작 정확히 방향을 알려줘야하는 갈림길에는 안 달아놨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어쨌든 마음이 편해졌어요. 계속 길을 걸어갔어요.

 

 

운탄고도1330 표식이 나왔어요.

 

"대체 왜 외길에 이런 걸 박아놨지?"

 

여기는 운탄고도1330 표식이 전혀 필요 없는 곳이었어요. 바로 위 사진처럼 길이 한 줄기 뿐이었어요. 앞으로도 길이 한 줄기, 뒤로도 길이 한 줄기였어요. 선택지가 아예 없었어요.

 

 

응, 아니야, 응, 아니아니야.

선택지 있어.

 

산꼬라데이길 이정표는 길도 없는 비탈을 향해 '망경대산 정상(등산로)'라고 가리키고 있었어요.

 

"설마 이걸 기어올라가라고?"

 

길이 없어진 게 아니라 아예 길이 없었어요. 길이 있었던 흔적조차 안 보였어요. 이건 누가 기어올라가라고 시켜도 안 기어올라가게 생겼어요. 그런데 산꼬라데이길은 수풀 헤치며 비탈을 치고 올라가야 하는 방향을 망경대산 정상 가는 등산로라고 알려주고 있었어요.

 

'설마 망경대산 정상 가려면 저기로 가야 해?'

 

운탄고도1330 3길은 망경대산 등산로이기도 해요. 운탄고도1330 3길 걷는 중에 망경대산 정상도 들릴 수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산꼬라데이길 이정표를 보며 설마 망경대산 정상 간 사람들이 다 저 길로 갔을지 의문이 들었어요. 운탄고도1330 3길은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가던 길이에요. 저 비탈을 산악자전거 타고 내려오는 건 불가능했어요. 내려오는 건 고사하고 끌고 가기도 엄청 어려운 곳이었어요. 산악자전거 끌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 맨몸으로 기어올라가려고 해도 상당히 위험한 비탈이었어요.

 

'뭐지?'

 

점점 이정표에 대한 불신이 쌓여가기 시작했어요.

 

 

평범한 길을 계속 걸어갔어요.

 

 

조금 더 걸어가자 또 차단기가 나왔어요.

 

 

차단기에는 운탄고도1330 3길 표식 리본이 묶여 있었어요.

 

 

"왜?"

 

여기도 마찬가지로 샛길조차 없는 길이었어요. 다른 길로 가고 싶어도 길이 없어서 못 가는 곳이었어요. 아까 싸리재 삼거리가 떠오르며 더 황당했어요. 이런 곳에 매달아놓을 게 아니라 싸리재 삼거리에서 잘 보이게 리본 2개쯤 매달아놨으면 지도에 나와 있는 지명이 틀렸어도 별로 신경 날카로워지지 않았을 거였어요. 싸리재삼거리에서 쓸 데 없이 사람 신경 날카로워지게 만들더니 길이 외줄기라서 선택지가 오직 하나 뿐인 길에 리본은 벌써 두 개나 묶여 있었어요.

 

 

만경산사, 만봉사 입구가 나왔어요.

 

 

 

200m만 잠시 샛길로 빠지면 만경산사, 만봉사로 갈 수 있었어요. 만봉사에는 만봉불화박물관이 있어요. 만봉불화박물관에는 중요무형문화제 제48호로 지정되신 만봉스님의 불화가 전시되어 있다고 해요.

 

"그냥 가자."

 

만봉사는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어요.

 

 

만봉사를 지나서 계속 걸어갔어요.

 

2022년 10월 20일 오전 8시 34분, 낙엽송 삼거리에 도착했어요.

 

 

 

"여기도 이정표가 사람 약올리네?"

 

역시나 삼거리. 운탄고도1330 표지판은 방향 세 곳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하나는 제가 걸어온 방향이니 선택지에서 제외. 남은 것은 2개였어요.

 

'설마 모운동으로 가라고 하겠어.'

 

산꼬라데이길 이정표를 보면 평평한 흙길은 모운동으로 이어진다고 나와 있었어요. 경사 꽤 있는 포장된 비탈길은 만경사로 가는 길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상식적으로 운탄고도1330 3길이 순환코스가 아닌데 다시 모운동으로 돌아가라고 할 리가 없었어요.

 

이딴 거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산에서 길 한 번 헤메봐야 제대로 일 하시겠습니까?

 

산에서 선택지 나오고 찍어야 하는 상황과 마주치게 되면 재미있는 게 아니라 진심 짜증나요. 평지에서도 길 한 번 잘못 들어가면 짜증나는데 산에서는 평지 대비 짜증 100배에요. 산은 오르막과 내리막 투성이인데다 현재 위치 파악하기도 어려워요. 산에서 길 잘못 들어갔다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했을 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많이 가서 되돌아갈 엄두가 안 날 수 있어요. 설령 조금 잘못 갔다가 바로 잘못 가고 있음을 파악했다고 해도 평지가 아니라서 체력 부담이 엄청 커져요.

 

역시나 여기도 리본은 없었어요. 운탄고도1330 이정표에서 모운동 방향은 왜 이정표를 붙여놨는지 알 수 없었어요. 낙엽송 삼거리에서 모운동으로 내려가는 방향은 운탄고도1330 3길 코스가 아니에요. 여러 표지판 보고 추리해서 가야 하는 길. 이런 건 일반 평지에서 나와도 짜증나는데 여기는 산길이었어요. 여기까지 갈림길 몇 개 없는데 왜 갈림길에는 리본을 안 매달아놓고 아무 것도 없는 외줄기 길에 리본을 매달아놨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여기는 싸리재 삼거리보다는 덜 찝찝했어요. 싸리재삼거리는 운탄고도1330 3길 지도에 '싸리재'라고 나와 있었기 때문에 이정표대로 걷는 동안 계속 찝찝했지만, 낙엽송 삼거리에서는 운탄고도1330 3길 이정표가 세 방향 모두 가리키고 있기는 했지만 최소한 시작점인 모운동으로 돌아가는 환형코스가 아니라는 점만 알고 있으면 모운동으로 내려갈 일은 없었거든요.

 

시멘트로 포장된 비탈길을 올라가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