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여행기를 쓰면서

좀좀이 2012. 10. 15.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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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타슈켄트 현지 시각 새벽 3시.


창밖에 가을비가 내린다. 지난 8월말에 가을을 알리는 비가 왔는데, 이번 비는 겨울을 알리는 비가 될까? 여름이 시작될 때부터 나의 밀린 여행기를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여름을 다 보내고 가을도 가려고 하는데 아직도 여행기를 쓰고 있다.


이 시각까지 내가 안 자고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낮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 또 여행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온 후, 내가 세운 목표 중 가장 먼저 끝낼 것 같은 것이 바로 '밀린 나의 여행기 작성 완료'다. 작년 10월말부터 좀좀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밀린 여행기를 후딱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냥 별 생각없이 올렸기 때문에 지금 내가 보고도 부끄러운 것들이 많다. 그리고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여행을 다니며 항상 여행기를 써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었다. 그러나 여행 다녀온 후,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여행기는 차차 멀어져갔다. 시간이 나서 여행기를 다시 쓰려고 하면 어떻게 써야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방치된 여행기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올해 초까지는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기억이 안 나는 것, 할 말이 없는 것을 만났을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쓴 여행기를 보면 사진만 덜렁 올려놓고 '여기 갔어요.' 라고 넘어가버린 것이 엄청 많다.


밀린 여행기를 여기에서 하나 둘 몰아서 쓰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사진. 한국에서 올릴 때에는 별 생각 없이 마구 올렸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그렇게 올린 글은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짜증나서 내 글을 못 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불펌 문제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예 작정하고 540x405 사이즈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니 사진 올리기도 편하고, 읽기도 편해졌다. 한국 돌아가면 예전에 쓴 글도 다 손을 대어야겠다. 내용도 틈틈이 추가하고, 사진도 작게 리사이즈해서 바꿔 올리고 말이다.


내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여행기를 잡고 쓰기 시작했을까? 그건 아마 올해 5월부터일 것이다. 타지키스탄 다녀온 후부터 여행기를 잡고 썼다. 타지키스탄 여행기를 쓸 때에는 정말로 즐거웠다. 아쉬움을 풀기 위해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여행기를 작성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깨달은 것은 여행 다녀와서 바로 여행기를 쓰기 시작할 것. 여행 다녀와서 시간이 지나고 충분히 음미한 후에 여행기를 작성하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내 경험상 그것은 전적으로 틀렸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일반인들은 그렇게 하면 여행기 쓰기 무지 어렵다. 아예 '여행기'를 목적으로 여행을 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여행기가 여행을 돌아와 자신의 돈벌이 수단이 되지 않는 한, 일반인이 여행 다녀온 후 한 달 뒤에 여행기 쓰기란 쉽지 않다. 여행 다녀와서 바로 여행기를 쓴 후, 한 달 뒤에 자기가 쓴 여행기를 다시 읽어보고 고친다면 모를까 말이다.


타지키스탄 여행기를 다 쓰고 작년에 다녀온 카프카스 여행기를 다시 또 쓰기 시작했다. 이건 내게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그 전까지는 여행기를 쓰며 크게 어렵다고 생각을 못했던 문제들이 여기에서 크게 문제로 등장했다. 가장 큰 원인이라면 당연히 이때 내가 기록을 하나도 안 해 놓았고, 사진도 잘 안 찍어놓은 날이 있었다는 것. 이 여행기는 정말 사진들을 보며 사건의 재구성을 해야 했다. 게다가 이 카프카스 여행기 전까지는 항상 '빠른 여행'을 즐겼다. 강력한 자극을 위해 진득하게 머물기보다는 일정을 힘들게, 이동을 많이 하는 방법을 좋아했다. 차라리 갔던 곳을 또 가더라도 숙소에서의 1박보다는 야간 이동으로의 1박을 선택했다. 그런데 카프카스 여행때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야간 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 도시에 며칠씩 머무는 '느린 여행'이었다. '빠른 여행'은 원래 자극 자체가 상당히 강력해서 굳이 내가 길게 쓰지 않아도 글이 그럭저럭 쉽게 나왔다. 하지만 한 도시에 며칠씩 머무르는 '느린 여행'은 자극이 약하다보니 좋은 기록이 없으면 쓸 말도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기록 자체는 무조건 중요하고, 기록을 할 때 자기의 감정, 느낌, 생각을 보다 많이 써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여행 중 사색에 잠기는 것을 안 좋아하는 나는 더더욱 이런 것에 중점을 두어서 메모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르크메니스탄 여행기와 아제르바이잔 여행기를 쓰며 깨달은 것은 내 여행기 분량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행은 16일 다녀왔는데 여행기 쓰는데 2달 걸렸다. 이 두 달 간 정말 여행기만 생각했다. 컴퓨터 켜놓고 멍하니 앉아서 '여행기 어떻게 써야하나' 고민한 시간도 꽤 많았다. 나중에는 여행기에 시달리다가 '여행기조차 메모를 조합하는 방법'으로 쓰기 시작했다. 사진을 집어넣지 않는 부분들과 이야기들은 학원 갈 때와 올 때 타는 버스에서 조금씩 작성하고, 나중에 남은 부분을 작성하며 시간에 맞게 이어주는 것이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즈베키스탄 여행 떠나기 전에 다 못 썼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즈베키스탄 국내 여행기를 쓰고 있다. 여행 돌아오자마자 쓰기 시작했는데 이제 여행 일정 절반까지 썼다. 여행기 쓴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매일 여행기에 시달리듯 살다 보니 이제는 여행기에서 제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스스로 목표를 세워 끝을 보는 것이 목적인데, 내 생각에 지금까지 써 온 여행기 가운데 가장 어려운 여행기이다. 게임에서 끝판왕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여행기를 쓰며 얻은 방법들을 다 동원하고 있는데도 끝이 날 기미가 안 보인다. 온통 그것에만 집중하면 뭔가 새로운 방법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아직까지 무엇인가 획기적인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부하라 편을 쓰며 정말 몇 달 만에 타지키스탄에서 사 온 타지크어-영어 사전을 펼쳤다. 건물 이름이 타지크어로 된 것이 많아 여행기를 쓰려니 사전을 찾아보아야 했다. 여기에서 살면서 이 나라를 돌아다닌 것이라 조금이라도 더 잘 쓰고 싶은데 욕심만 많고 실력은 형편없으니 그저 괴로울 뿐이다. 현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쓴 글이라는 냄새를 팍팍 풍기고 싶은데 그런 게 없고, 일반 여행자들이 쓴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 스스로 글재주가 없음에 한숨만 나온다.


달리면 끝날 것 같은 목표라 온통 머리 속에 이것 밖에 없다. 이것을 빨리 끝내야 다른 일을 집중해서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이게 도통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글을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잘 쓸 수 있는가 고민을 하는데 이번에는 아직까지 획기적인 방법은 떠오른 것이 없다. 이게 마지막이라서 레벨업도 안 되는 건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글은 영 만족스럽게 나오지를 않고, 진도는 하나도 나가는 것 같지 않아 불만이다. 이번주 운세를 보니 반쯤 간 길을 포기하지 않으면 성과가 있을 거라고 하던데 지난주까지 이번 여행기 전체에서 절반 조금 못 되게 썼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말자. 일단 하나라도 목표를 달성해야지.


2012. 9. 25 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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