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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빨리 일어나!"


친구가 다급한 목소리로 저를 깨웠어요. 2시에 침대에 누웠는데 아마 4시가 되어서야 잠들었을 거에요. 잠을 조금 자나 싶었는데 친구는 저를 흔들어 깨웠어요.


"왜!"

"택시기사 왔어!"

"몇 시인데?"

"8시!"


전날. 우리는 택시기사에게 아침 11시 25분 비행기이니 호스텔에 8시에 와 달라고 부탁했어요. 택시기사는 공항까지 금방 가니 아침 9시에 오겠다고 했어요.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을 들어보니 9시에 바로 출발하면 2시간 즈음 전에 공항에 도착할 것이고, 그 정도면 충분했어요. 그래서 9시에 가자고 했는데 택시기사가 아무 말 없이 아침 8시에 왔어요.


택시기사는 자기는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짐 끌고 그쪽으로 오라고 말하고 호스텔에서 나갔어요. 친구가 빨리 준비하라고 재촉해서 화장실 들어가 대충 세수하고 머리만 감고 나왔어요. 잠도 덜 깨었는데 무거운 짐을 들고 좁은 철제 계단을 내려갔어요.


가방과 짐을 모두 차에 싣고 공항을 향해 출발했어요.




이게 마지막으로 보는 카스피해구나...


"아...돌아가기 싫다!"


하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꿈 속에서 꾸고 있는 행복한 꿈은 이제 끝나가고 있었어요. 저는 그 행복한 꿈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더더욱 아쉬움이 크게 남았어요. 전날 마지막으로 바쿠를 돌아다니며 아쉬움을 달래기는 커녕 비가 와서 아무 것도 못 했어요.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컸어요. 마지막 날을 비 때문에 망칠 것을 알았다면 조금 더 부지런히 돌아다녔을텐데...



이것이 바로 바쿠 항구. Dəniz Vağzalı. 직역하면 '바다 역'. 오늘도 누군가는 저기로 카자흐스탄 악타우 가는 배가 있나 확인하러 가겠지?


우리가 돌아가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딱 하루만 더 머물고 월요일날 같이 놀러다니자는 주인 누나의 부탁을 거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거주지 등록. 우즈베키스탄 비자를 여기에서 받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거주지 등록이었어요. 비자를 받는 것과 함께 거주지 등록도 다시 받아야 하는데, 거주지 등록 하는 것이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거든요. 꿈 속의 꿈에서 깨어나 꿈을 꾸는 것 역시 즐거울 거에요. 지금까지 즐거웠고 앞으로도 현실보다는 즐겁지 않을까 막연한 상상을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이전에, '거주지 등록'이라는 즐겁지 않은 사건이 꿈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돌아가자마자 거주지 등록 준비해야 되네...한동안 짜증 대박 나겠다."



차는 낯익은 거리로 들어갔어요.



"이거 작년에 걸었던 거리잖아!"


차는 우리가 작년에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와서 걸었던 그 거리를 달리고 있었어요. 길을 보니 작년에 묵었던 호텔, 그리고 지하철 하타이 역을 다시 찾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건물 아직도 다 못 지었다!"


작년에 걸었던 길. 지하철 하타이 역 가려고, 그리고 호텔에 가려고 몇 번 걸었던 길이에요. 저 길을 걷다가 하도 더워서 쉬었다 가곤 했어요. 올해는 작년에 비해 너무나 선선했구요. 만약 올해 저 길을 걸었다면 쉬지 않고 한 번에 갔을 거에요. 저 길을 보며 떠오른 것은 해바라기씨 껍질. 앉아서 쉴 만한 곳은 여지 없이 해바라기씨 껍질이 수북히 쌓여 있었어요. 그거 보고 어이없어했던 것이 떠올랐어요.




제가 차에서 연신 창밖 사진을 찍자 기사 아저씨가 저를 신기하게 쳐다보았어요. 그렇다고 택시 속도를 줄여주지는 않았어요.



아침 8시 25분, 온도 24도. 정말 선선한 아침이구나.


순식간에 공항에 도착했어요. 공항도 작년에 왔을 때와 달라졌어요.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왠지 찍으면 안 될 것 같아 찍지 않았어요. 군사 시설도 공항과 같이 있었거든요.


택시에서 내렸어요. 그냥 가려니 많이 아쉬웠어요.


"공항은 못 찍겠지만 주변 풍경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친구가 경찰에게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았어요. 경찰은 원래 찍으면 안 되는데 빨리 찍고 가라고 허락해 주었어요. 그래서 이걸 찍었어요.



공항 근처에 있는 모스크. 저거는 나름 예쁘게 생겼는데 무슨 모스크일까? 바쿠 시내에서 가기 고약한 위치인 공항 근처에 있어서 더욱 궁금했어요.


짐을 끌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어요. 보안 검색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공항에 너무 일찍 와서 할 일이 없었어요.


"저기 커피 자판기 있다!"


친구와 아제르바이잔 개픽 동전을 모았어요. 둘이 마실 두 잔의 커피값이 되었어요. 정말 아제르바이잔 마나트는 너무나 깔끔하게 다 써버렸어요. 커피를 마시니 아제르바이잔 마나트는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드디어 우즈베키스탄 항공이 티켓팅을 시작했어요. 가서 줄을 섰어요. 조금 기다리니 금방 우리 차례가 되었어요. 짐을 올려놓았어요.


"오버 차지 안 물잖아!"


수하물 초과에 걸리지 않았어요. 정말 다행이었어요. 즐거운 마음과 무거운 가방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어요. 바쿠 공항 면세점은 그렇게 크게 구경할 것까지는 없었어요. 그리고 비행기를 타기 전에 보안 검색을 한 차례 더 해야 했어요. 이것을 대비해서 저는 카메라에 쓰는 AA배터리 4개를 수하물로 부쳐버렸어요. 작년에 한 번 배터리 빼앗긴 적 있었거든요. 올해도 여지없이 배터리는 반입금지. 그리고 새로 늘어난 것이 있었으니...그것은 바로 가스 라이터. 라이터가 수북히 쌓여 있었고, 계속 라이터를 압수하고 있었어요. 올해는 작년보다 더 까다로워졌구나...작년에는 그래도 라이터는 압수하지 않았는데...


우즈베키스탄 항공은 꽤 괜찮았어요. 기내식도 매우 맛있었고, 서비스도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창가에 앉겠다고 말하는 것을 둘 다 까먹어서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사진과 공항 사진을 하나도 못 찍었다는 것.


타슈켄트 공항에 도착했어요. 역시나 공항 안에서 수하물을 찾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과 구석에서 흡연하는 사람들, 그리고 세관 심사 앞에 늘어선 줄. 그리고 몇 명 없는 줄을 길게 만드는 엄청난 수하물들.


"야, 이거 봐봐!"


친구가 핸드폰을 가리켰어요.


"뭔데?"



타슈켄트 공항에서 무료 와이파이가 되다니!


이건 정말 깜짝 놀랄 일. 작년만 해도 우리나라 김포 공항과 제주 공항에서조차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무료 와이파이라고는 정말 찾기 어려운 나라에서...그것도 공항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고 있었어요. 신호가 매우 약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와이파이였어요.


수하물을 찾고, 세관 심사를 받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왔어요.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고, 책은 책장에 꼽고, 서류와 종이뭉치들을 정리하기 위해 하나 하나 확인했어요.


"악!"


아제르바이잔에서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 하나 있었어요. 그것을 잊고 안 했어요.


우즈베키스탄은 입국할 때 세관신고서에 기입한 달러보다 적은 액수의 달러만 들고 출국할 수 있어요. 혹시 한 번 더 외국 여행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최소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쓴 달러만큼은 아제르바이잔에서 마나트를 인출해 달러로 환전한 후 들고 와야 했어요. 안 그러면 달러를 밀반출하든가, 남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잊고 안 했어요. 제가 입국할 때 세관신고서에 적은 달러는 고작 미화 200불. 이 말은 앞으로 저 혼자 우즈베키스탄에서 다른 나라로 갈 때 200불 밖에 못 들고간다는 이야기. 200불 이상 들고가려면 무조건 밀반출하든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즉, 귀국 말고 혼자 다른 나라 여행가는 것은 이제 사실상 매우 어려워졌어요. 만약 여기에서 앞으로 혼자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첫 번째 방문지는 100% 확정이에요. 그곳은 바로 A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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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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