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에필로그

좀좀이 2012. 10. 10.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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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여행은 쉽다면 아주 쉽고 어렵다면 아주 어려운 여행이었어요. 최소한 적당히 행운과 불운이 겹쳐서 난이도가 너무 어려워지지 않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여행 계획, 비자 문제, 투르크메니스탄 국경까지는 혀 빼물 정도로 어려웠어요. 단 한 번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처음부터 하도 일이 꼬여서 때려치기엔 너무 억울했거든요. 적당히 꼬여야 포기하든 할텐데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꼬이기만 엄청 꼬여서 오기로 버텼어요.


7박35일 때에도 별 다른 준비와 정보 없이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어요. 그때도 정보 없이 가기는 했지만 이 여행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해요. 그때는 제가 정보를 찾을 노력도 안 기울이고 그냥 가서 원래 제 머리 속에 들어 있던 것으로 여행을 풀어간 거고, 이번은 정보를 찾으려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냥 제대로 된 정보 없이 간 거구요.


투르크메니스탄에 입국했을 때까지는 온 정신이 모두 여행에 쏠려 있었어요. 불운도 고농축 액기스의 강도였구요. 아직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재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은 물론이고 그 근처조차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아요. 2012년 6월을 생각해보면 온통 아제르바이잔 대사관과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 찾아갔던 거랑 퇴짜맞던 기억, 그리고 엉터리 정보 및 너무 오래된 정보 밖에 없어서 막막했던 기억 뿐이에요. 지금껏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여행을 준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아슈하바트부터는 사방에 행운이 날아다녔어요. 아슈하바트를 기점으로 그 전은 그렇게 지독한 악은만 잔뜩 따라준 여행도 없었고, 그때부터는 그렇게 행운만 충만한 여행도 없었어요. 셰키와 바쿠에서의 두 차례 비만 빼구요.


이번 여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여행이었어요. 여행 준비시 정보를 찾는 법부터 언어와 인간의 관계까지요. 7박 35일에서처럼 하루하루 변하는 박진감은 없었지만, 그 대신 이것저것 생각해볼 것이 많았어요. 우즈베키스탄에 와서 다른 사람들이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고 쓴 글을 보고 '푸하하! 이것은 1달러가 시장에서 1800숨 할 때 이야기를 쓴 거잖아!' 뭐 이런 식으로 웃으며 넘어갔어요. 별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냥 남의 여행기를 읽는다는 재미 정도였어요. 그러나 막상 제가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을 준비하며 남의 여행기를 읽으며 정보를 찾는 입장이 되자 저 자신도 많이 달라졌어요. 그리고 그때 느꼈던 것들을 가지고 제 여행기 역시 바꾸려고 노력을 했어요. 그 결과물이 좋게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이 여행을 통해 제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어요. 그동안 '구 소련 지역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그게 당연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거든요.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어요.


마지막으로 이 여행기 작성.


'두 개의 장벽'은 2012년 7월 1일부터 2012년 7월 16일까지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을 여행한 이야기. 여행기는 5월말 여행 준비 단계부터 시작해요.


처음에는 제목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대충 '난관', '벽' 이런 단어를 제목에 넣고 싶었어요. 워낙 다른 사람들도 비자 받기 어려워하는 나라들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제목 - '두 개의 장벽'으로 쓰기로는 6월에 결정했어요. 비자 문제 때문에 낑낑대다 투르크메니스탄에 가게 된다면 반드시 '두 개의 장벽'이라는 제목으로 써야겠다는 결심이 섰거든요. 이때 투르크메니스탄을 못 갔더라도 이 제목을 쓸 계획이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들어가는 국경은 너무나 장벽처럼 높고 올라가기 험해서 저는 비행기타고 넘어버렸다고 쓸 생각이었거든요.


이 여행기를 쓰기 전에 쓰고 있던 여행기가 있었어요. 바로 2011년 7월에 다녀온 '뜨거운 마음'이었죠. 2011년 7월에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를 다녀온 여행기를 이때 쓰게 된 이유는 끝내야할 때 끝내지 못했기 때문. 우즈베키스탄에 오기 직전, 그동안 밀린 여행기를 다 쓰고 '뜨거운 마음'을 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오면서 또 안 쓰기 시작했어요. 우즈베키스탄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 없었으니까요. 우즈베키스탄 생활에 적응하고 이것을 다시 쓰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타지키스탄 여행을 갔다 오게 되었어요. 타지키스탄 여행의 마지막이 너무 아쉬움을 많이 남겨버리는 바람에 이때 모든 것을 제쳐놓고 타지키스탄 여행기인 '월요일에 가자'를 썼어요. 타지키스탄에서 돌아오자마자 작성한 이 여행기는 매우 빨리 완결을 짓기는 했지만, 그래도 진하게 남는 여행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우즈베키스탄 오기 전 '기회 되면 한 번 갔다 오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가끔 별 의욕없이 막연히 생각해보던 투르크메니스탄와 아제르바이잔 여행을 강력히 밀어붙이기 시작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 와서조차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은 여행할 생각이 별로 없었거든요.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 받기 매우 어렵다는 것은 다른 여행자들의 글을 읽고 여기에서도 간간이 들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어요. 이게 문제였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문제를 해결 못하면 아제르바이잔까지 비행기로 갔다 와야 하는데, 아제르바이잔도 비자가 필요한 나라라서 비행기 타고 아제르바이잔만 다녀오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진한 아쉬움에 시달리며 하루 하루를 보내다보니 그때까지 상상도 못했던 추진력이 생겼어요.


그 추진력, 그리고 계속 꼬이는 바람에 나날이 커지는 오기 때문에 비자 받기까지는 성공했지만, 대신 모든 신경이 오직 새로운 여행에 쏠려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일은 거의 다 제쳐두었어요. '뜨거운 마음' 작성은 당연히 우선순위에서 훨씬 더 뒤로 밀려버렸죠.


비자도 받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으려고 하는 짓이 부질없음을 깨달았을 때에야 '뜨거운 마음' 문제가 생각났어요. 이것을 언제까지 한 없이 제쳐둘 수는 없는 문제였어요. 새로운 여행기를 또 써야할테니까요. 그래서 여행 떠나기 직전에야 '뜨거운 마음'을 열심히 작성하려고 했으나...잘 써지지 않았어요. 그때 '사진만 많이 찍으면 기록을 대체할 수 있다'는 희안한 생각에 빠져서 기록을 제대로 남겨두지 않았고, 그게 결정적 문제가 되었거든요. 여행기를 쓰려고 하는데 떠오르는 말이 없는 거야 매일 겪는 일이지만, 그날 무엇을 했는지 사진만 보아서는 당최 기억이 잘 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사진만 잔뜩 올리고 '나 오늘 이런 곳 갔다 왔다. 예뻤다. 좋았다.' 이렇게만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구요.


'뜨거운 마음'을 쓰면서 간간이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 비자 받기 위해 노력했던 이야기를 적었어요. 그 황당함과 분노를 다른 분들께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른 분들 여행기 보면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나 아제르바이잔 비자 받기 위해 그렇게 고생하지도 않는데, 저는 희안하게 고생을 많이 했어요. 좋지 않지만 편한 방법과 좋지만 불편한 방법을 놓고 선택하는 문제에서의 고민이 아니라 그냥 '이대로 해야 합니다'라는 선택지 없는 길에서 일이 계속 꼬였던 것이니까요.


원래 목표는 여행을 시작하는 6월 30일 저녁 전까지 '뜨거운 마음'을 전부 쓰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실패했어요. 망했어요. 글을 결국은 다 쓰지 못했어요. 쥐어짠다고 글이 나오지 않더라구요.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잡고 있었지만 컴퓨터만 잡고 있었을 뿐. 지난 여행기 다 못 썼다고 여행을 안 갈 것은 아니라 시간이 되자 집에서 나왔어요.


여행에 돌아오자마자 한 것은 이번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난 여행기 쓰기. 빨리 이번에 다녀온 여행기를 쓰고 싶은 마음 뿐이었는데 써지지도 않는 지난 여행기를 쓰려니 고역 그 자체였어요. 조바심은 나지만 머리 속을 긁어내도 나오지 않는 글. 시간이 갈 수록 이번 여행의 맛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애만 탈 뿐이었어요.


어떻게 '뜨거운 마음'을 다 쓰기는 했어요. 그 후부터는 바로 이 '두 개의 장벽' 여행기 쓰기. 처음에는 쓰기 정말 쉬웠어요. 여행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워낙 처음에 많은 사건이 있어서 그 사건만 가지고도 충분히 쓸 수 있었거든요. 굳이 '이것을 어떻게 써야 하지?'라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워낙 소재들이 좋았거든요. 오히려 이래서 고작 4일 다녀온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우 이야기가 엄청나게 길어졌어요. 그 길어지는 것을 자르는 것도 일이었어요.


그러나 아제르바이잔 여행 이야기를 쓸 때부터는 많이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아제르바이잔 여행의 대부분은 바쿠에서 머무른 이야기. 이틀간 셰키를 다녀온 이야기 외에는 계속 바쿠에 있었어요. 여행기를 쓰다 보면 뒷심이 빠져서 점점 쓰기 어려워지기 마련인데 여기는 투르크메니스탄까지의 일보다 사건 자체도 매우 밋밋하기 그지없었어요. 사실 뒷목 잡을 만큼 정말 화가 나거나 그런 일은 여행 초반에 다 몰려 있었거든요.


게다가 뒤로 갈 수록 여행기를 쓰는 시간이 줄어들었어요. 여행기를 쓰는 것도 중요했지만 다른 것도 중요했거든요. 여행기 쓰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여행기 진도가 안 나가고 쓰기 어려워지는 것도 당연한 일. 작정하고 여행기 쓰기로 마음 먹은 주말에 여행기 쓰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이 안 나와 인터넷으로 딴 짓하다가 주말이 끝나면 왜 그것밖에 못 썼을까 후회하는 일의 반복이었어요.


스스로 세운 목표였기 때문에, 그리고 '뜨거운 마음'에서 제대로 혼나보았기 때문에 반드시 빨리 끝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머리 속에 맴도는 생각은 '어서 여행기 다 쓰자'. 그러고보면 5월부터는 계속 여행을 하거나 여행기를 써 왔어요. 5월부터 여행기 작성과 함께 살았어요. 이제 단 하루라도 밀린 여행기 생각을 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싶을 지경. 그런데 시간은 계속 흘러, 다음 여행을 할 때가 코 앞까지 찾아왔어요.


그래도 오늘, 이 에필로그를 마지막으로 '두 개의 장벽' 여행기는 끝났어요. 오늘은 2012년 9월 21일. 지금 타슈켄트는 오후 5시 40분. 여행기 본문은 어제 다 끝냈어요. 그리고 기분좋게 어제 에필로그를 다 완성해서 혼자 세운 목표인 '여행기 다 쓰기'에 쫓기지 않는 하루를 보내려고 했지만...어제 일이 있어서 작성을 못해 결국 오늘 끝내게 되었어요. 그리고 내일 - 2012년 9월 22일부터는 또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구요. '여행기를 다 써서 여행기 쓸 것이 없는 하루'는 또 무한정 미루어졌어요.


이로써 서쪽으로 튀니지, 모로코에서 시작된 저의 여행은 유라시아 횡단을 한 셈이 되었어요. 중국은 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서 처음 외국여행을 나갈 때부터 '나의 유라시아 횡단은 동쪽 끝으로는 타지키스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왜 나는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부터 점점 동쪽으로만 여행을 갈까?


제가 원래 정말 가고 싶어했던 곳은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서아프리카였어요. 첫 여행의 시작은 분명 제가 진심으로 가고 싶어하고 갈망하던 서아프리카 근처였어요. 그런데 여행을 할 때마다 점점 동쪽으로 와서 이제는 중앙아시아까지 와 버렸어요. 왜 내가 원하는 방향과 전혀 반대쪽 방향으로 계속 여행했을까? 저만의 유라시아 횡단은 제가 무언가 계획하고 차근차근 한 것이 아니에요. 여행하는 것을 항상 갈망하고 준비하다 기회가 왔을 때 간 것인데, 어느새 뒤돌아보니 그게 이루어져 있었던 것. 애초에 의도해서 단계적으로 유라시아 횡단을 한 것이 아니라 여행을 할 수 있을 때 갈 수 있는 곳을 간 것이 이렇게 된 것이에요. 정작 제가 정말 여행가고 싶은 곳은 서아프리카인데요. 이것은 풀리지 않는 저 만의 의문.


지금까지 저의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여행기인 '두 개의 장벽'을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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