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44 아제르바이잔 바쿠

좀좀이 2012. 10. 8. 12:30
728x90

오늘은 뭐하지?


아직 실내는 어두웠어요. 돌아갈 날이 내일이라 일찍 일어나지는구나. 짐 싸는 거야 금방 싸겠지? 짐을 한 두 번 싸본 것도 아니니까. 여행 가기 전에도 짐은 후다닥 싸는데 이 정도 쯤이야. 무게를 맞추기 위해 친구 짐과 섞어서 싸긴 해야 하지만 정 안 되면 친구 짐까지 내가 싸 버려야지. 둘 다 부서질 것은 없으니 책만 잘 나누어 넣고 나머지는 다 쑤셔박고 때려박아도 돼.


짐 싸고 나서 무엇을 할까? 그냥 시내나 돌아다닐까? 아니면 바쿠 외곽에 있는 예쁜 모스크? 세데렉 시장?


전날 오늘은 푹 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오늘이 되자 그냥 얌전히 집에서 쉬기는 뭔가 아쉬웠어요. 여기를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초청장 받는 것도 문제고 비자 받는 것도 문제이지만, 결정적으로 여기는 심심하면 갈 정도로 우즈베키스탄에서 가까운 나라가 아니에요. 여기는 혹시 우즈베키스탄 돌아간 후 정말 또 가고 싶어 미칠 거 같더라도 섣불리 갈 수 없는 나라. 비행기 타고 가야 하거든요. 그 비행기 값이 절대 싸지 않아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떻게 생활비를 줄여도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액수. 한국에서 가는 건 말할 필요도 없죠. 결국 초청장이든 비자든 다 떠나서 여기 올 돈이 없어서 또 올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어요.


"일어나서 할 일 하고 나가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마지막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 하니까요. 한없이 늦장부릴 수 없었어요. 오늘은 정말 알차게 보내야지! 특별한 계획이라고는 짐 싸고 돌아갈 준비하는 것 밖에 없었지만 의욕 하나만은 충만했어요.


"일어났어?"


친구가 방으로 들어왔어요. 친구도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일찍 일어났구나. 오늘은 후딱 짐 싸고 나가서 하루 종일 놀아야지!


"지금 몇 시야?"

"12시 다 되어 가."

"12시?"

"그런데 왜 이렇게 어두워?"


시각을 확인해보니 슬슬 정오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제가 일찍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기 와서 항상 그랬듯 늦잠 펑펑 잤는데 그냥 날이 어두워서 착각한 것 뿐이었어요. 그러면 그렇지...


"밖에 비 와."

"뭐?!"


정말 최악의 소식. 침대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갔어요.


후두둑 후두둑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약올리듯 부슬비가 내리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빗방울이 정상적으로 떨어지고 있었어요.


"아우..."


하늘을 보니 욕이 저절로 나왔어요. 이 거지 같은 비는 왜 내리고 있는 거야. 이 쓰레기같은 비는 꼭 시간도 잘도 맞추어서 내려요. 원래부터 비와 눈은 무조건 끔찍하게 싫어하는데 이게 또 절묘한 타이밍. 이 나라가 지금 비가 많이 퍼부을 때도 아닌데 벌써 두 번째 비. 셰키에서도, 바쿠에서도 정말 어떻게 알고 내리는지 꼭 마지막으로 그 도시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정리하며 돌아다니려고 할 때 비가 퍼부었어요.


하늘을 보니 금방 그치게 생긴 비도 아니었어요. 차라리 무섭게 퍼붓는 소나기라면 비가 그치기를 기대라도 해 볼텐데 이건 그냥 좍좍 내리는 비. 모든 의욕이 사라졌어요. 짐을 빨리 싸야겠다는 의욕도, 오늘은 정말 알차게 보내겠다는 의욕도 전부 비에 씻겨 내려갔어요.


"이따 4시에 같이 나가자. 너희가 가고 싶은 곳 데려다 줄게."


주인 누나가 이따 오후 4시에 같이 나가자고 하셨어요. 둘째 딸의 대입 시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따 4시에 같이 돌아다니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이 비가 4시에는 그쳐줄까?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방에 들어가서 차라리 드러누워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혹시라도 비가 그친다면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갈 생각이었어요. 빗줄기가 가늘어졌어요. 혹시 그치나? 조금 있으면 다시 맑은 하늘이 나타날까? 맑은 하늘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그냥 비가 그쳐주기만 하면 돼. 그러나 빗줄기는 다시 굵어졌어요.


우산도 없는데 참 고약한 상황이잖아! 오늘도 메르신 카페에서 터키 방송 들으며 탄투니 먹고, 내일 돌아간다고 인사하고 돌아오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여기는 사람들이 터키 방송을 많이 보았어요. 구 소련 지역 답지 않게 러시아어도 거의 들리지 않았어요. 러시아어는 여기 와서 한 번도 못 들어보았어요.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러시아어를 단 한 번도 안 듣고 하루를 넘기는 게 거의 불가능한데, 여기에 와서는 러시아어를 한 번도 못 들어보았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어요. 이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무리 정확한 우즈벡어로 말해도 러시아어로 대답해주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 여기는 엉성한 아제리어로 말했다고 러시아어로 말해주는 경우가 없었어요. 아제르바이잔어로 이야기해 주거나, 영어로 이야기해 주려고 했으면 했지, 러시아어로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못 만났어요. 친구가 터키어로 무언가를 물어보고 대화할 때에는 사람들이 터키어로 말해주었구요.


그러고 보면 이 나라는 제가 가 본 구 소련 국가들 -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중 러시아어의 영향에서 가장 빠르게 벗어나고 있는 나라. 그리고 그것은 러시아의 영향에서도 가장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 언어는 국력, 국가간 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요. 우리나라가 영어에 목을 매고, 중국어와 일본어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만 러시아어 공부하거나 아랍어 공부하는 사람은 정말 희귀한 것처럼요.


아제르바이잔인들의 말대로, 이 나라는 터키와 같은 민족, 두 국가라는 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어요. 이 나라와 관련된 자료들을 읽어보면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정말로 거의 혈연 관계 급이에요. 이렇게 글을 통해 알게 되는 것 외에도 여기 와서 아제르바이잔이 터키와 같은 민족, 두 국가라는 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크게 느끼게 한 것이 있었어요.


아타튀르크 사진과 헤이데르 알리예프 사진.


아제르바이잔에서 헤이데르 알리예프 사진을 보는 건 정말로 쉬워요. 오히려 일함 알리예프 현재 대통령 사진 보는게 헤이데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 사진 보는 것보다 난이도가 살짝 높다고 느껴질 정도.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대통령이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 헤이데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의 아들이거든요. 아버지 사진 다 치우고 없애버리고 자기 사진으로 전국을 도배하면 그건 천하의 불효 자식. 그래도 지금 대통령이 누구인지 알리는 것이 중요해서인지 헤이데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과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을 같이 찍은 사진이 정말 많이 보여요. 중요한 것은 헤이데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을 아제르바이잔의 국부로 추앙하도록 하는 작업이 끊임없이 진행중이라는 것. 그리고 아타튀르크 사진도 간간이 보여요. 헤이데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 사진과 나란히 걸려 있는 터키 국부 아타튀르크 사진. 이 장면을 보는 것이 의외로 어렵지 않았어요.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의 우호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아제르바이잔이 아타튀르크를 롤모델로 삼아서 헤이데르 알리예프의 국부화 작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했어요. 헤이데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은 절대 아제르바이잔의 첫 번째 대통령이 아니에요. 헤이데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의 세 번째 대통령. 하지만 앞서 두 대통령 집권 시절 워낙 아제르바이잔이 혼란스러웠고, 헤이데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며 아제르바이잔이 안정을 찾고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에요. 헤이데르 알리예프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지만,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거든요. 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 지도자였을 때에도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고도 성장시켰어요. 헤이데르 알리예프 집권 시절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경제가 소련 전체에서도 매우 빠르게 성장해 브레즈네프가 세 차례 바쿠를 공식 방문했을 정도니까요. 어쨌든, 소련 붕괴 후 혼란스럽던 아제르바이잔을 안정시키고 경제 발전을 이루어낸 것은 헤이데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의 업적. 터키 공화국을 수립한 아타튀르크의 사진과 지금의 아제르바이잔을 있게 한 헤이데르 알리예프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헤이데르 알리예프의 국부화 작업이 무사히 잘 끝난다면 그 결과물은 터키 사회 전 분야에서 아타튀르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안으로 들어가서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친구에게 친구의 짐도 다 가져오라고 했어요.


"추가 요금 나오면 카드로 긁어버려야겠다."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추가 요금 나온다고 책을 버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일단 수하물 무게를 그나마 줄이기 위해 백팩에 책을 최대한 우겨넣어야 했어요. 여기서 단순히 무게만을 고려할 수도 없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은 또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아예 없다.


제가 타고 갈 비행기는 우즈베키스탄 항공. 이 항공사 비행기를 믿어도 될 지 말 지 몰랐어요.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한때 아에로플로트가 짐 사라지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어요. 우즈베키스탄 항공 비행기도 수하물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몰랐어요. 혹시나 수하물을 분실하게 된다면? 이 가정이 중요했어요. 수하물을 잃어버려 아예 못 찾게 되어서 기껏 구입한 책을 날렸을 때, 아제르바이잔에서 구입한 책은 그래도 어떻게 다시 구할 방법이 있기는 했어요. 아제르바이잔에 다시 오면 되니까요. 물론 상당히 돈이 많이 들기는 하겠지만 필요한 책들이 없어졌다면 울며 겨자먹기로 가서 다시 구해와야죠. 그런데 투르크메니스탄은? 이건 정말 보장이 없었어요. 또 비자 받기 위해 그 고생을 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 이전에, 투르크메니스탄 경유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그 나라가 오직 두 나라 - 아제르바이잔 아니면 이란이었어요. 아제르바이잔에서 구입한 도서들은 만약 수하물 분실로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면 한국 돌아가기 전에 다시 가서 구해올 수라도 있었지만,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구입한 도서들은 한 번 잃어버리면 끝장이었어요.


그래서 친구와 제 가방에 먼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구입한 책을 모두 우겨넣었어요. 그리고 남는 공간에는 각자가 가장 아끼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아제르바이잔 책을 집어넣었어요. 나머지는 별 수 없었어요. 책가방이 꽉 찼으니 들어갈 곳이라고는 뻔한 것. 짐을 다 싸는 데에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어요.


짐을 다 싸고 밖으로 나왔어요. 여전히 망할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어요. 주인 할머니, 주인 아저씨는 결혼식 때문에 친척집으로 가셨어요. 남은 것은 주인 누나와 주인 누나의 여동생, 주인 누나의 두 딸. 오후 4시가 되었는데도 비는 그칠 줄 몰랐어요.


"너희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요."

"그러면 잠깐 여기 있어 봐."


주인 누나는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가셨어요. 저는 다시 방으로 들어왔어요. 방에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얘들아, 이쪽으로 건너와!"


주인 누나가 저와 친구에게 주인집으로 오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주인집으로 건너갔어요.


"비가 와서 같이 나가지는 못하고, 대신 저녁 같이 먹자."


주인 누나는 우리를 위해 여러 샐러드와 음식들을 사오셨어요. 주인 누나와 이야기하며 먹는데 주인 누나가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하기 참 힘들다고 말씀하셨어요. 큰 딸은 종종 친구집에서 놀다 늦게 들어오고, 둘째 딸은 살찔까봐 조금만 먹고 살 찌는 것은 잘 안 먹는다고 했어요.


"큰 딸도 있었어요?"

"응. 왜?"

"큰 딸은 한 번도 못 보았는데요?"


주인 누나가 큰 딸을 불렀어요.


"왜요?"

"얘들이 너 한 번도 못 보았대."


응? 얘 왠지 호스텔에서 많이 봤던 거 같은데?


"지금 많이 봐요."


큰 딸이 웃으며 밖으로 나갔어요. 그제서야 생각났어요. 종종 둘째 딸과 비슷하게 생긴 애가 호스텔 주인집에 들락날락거렸어요. 주인집에 종종 둘째 딸 친구들이 놀러왔기 때문에 볼 때마다 둘째 딸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은 와서 주인 집에 들어가 거기에서 재잘대며 놀다가 가곤 했어요. 여행자들이 머무르는 방에는 아예 들어오지 않구요. 그래서 둘째 딸 친구들이 오면 '쟤네들 놀러왔구나'라고만 생각했어요. 둘째 딸 친구들도 여행자들을 보며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구요. 둘째 딸 친구들은 고사하고 둘째 딸과도 말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그 애는 아주 자주 놀러 오는 둘째 딸 친구라고 짐작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걔는 주인 누나의 큰 딸. 걔 입장에서는 아마 엄청 어이없었을 거에요. 툭하면 보았는데 실컷 서로 마주쳐놓고 '나 그 사람 얼굴도 몰라요'라고 했으니까요. 그것도 주인 누나와 데면데면한 사이도 아니고 주인 누나와 잘 지내면서요.


주인 누나가 저녁 식사 대접을 받고, 주인 누나와 같이 주인 누나와 그 가족들의 사진들을 보며 놀다 다시 방으로 건너왔어요.


여기 오는 여행자들이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모두가 꽤 즐거웠을 텐데...


이 호스텔에 와서 만난 여행자 대부분이 마음에 여유가 정말 없었어요.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는 여행자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시간에 쫓기는 경우는 대부분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가는 자전거 여행자들. 이들은 하루 일과의 시작이 항구로 가는 것이었어요. 카자흐스탄 악타우로 가는 배가 없으면 허탕치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어요. 여기 머무는 동안 악타우로 가는 배는 딱 두 번 떴어요. 그리고 배가 안 떠서 체류 기간 초과 때문에 벌금 물고 나가는 여행자를 한 명 보았구요. 애써 짜증을 참는 것이 보였고, 배를 타고 바쿠에서 떠나는 날이면 한결같이 복권 당첨된 듯 좋아했어요.


그리고 주변 국가 - 이란, 아르메니아, 조지아 중 하나라도 둘러보고 온 여행자들은 입만 열면 바쿠는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기에 바빴어요. 그저 최대한 바쿠에서 빨리 탈출하기 위해 혈안이 된 듯한 여행자들이 차지하는 비율도 높았구요. 자전거 여행자들은 당연히 이 범주에 전부 들어가죠.


그래서 더욱 다른 투숙객들과 어울릴 일도 별로 없었어요. 셰키에서 돌아온 후에 만난 프랑스 자전거 여행자 청년 외에는 크게 친하게 지낸 여행자도 없었어요. 호스텔이 일반 가정집이라 밤 늦게까지 떠들지 말라고 하는 것도 있었지만, 여행자들 자체도 여유롭기 보다는 쫓기는 분위기였어요. 비자를 받으러, 배가 있나 확인하러, 다른 도시로 빨리 떠나려고. 물론 그 덕분에 방 안은 항상 조용했고, 푹 쉬기 좋았어요.


밤 10시 넘어서야 비가 그쳤어요.


"우리 나갔다 올까?"

"이 시각에?"

"응. 그냥 가기에는 너무 아쉽잖아."


그래서 이체리 셰헤르와 그 주변을 걸었어요.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이제 월요일이 시작된 것에 비가 밤 늦게 내려서이겠죠.




아무도 없는 이체리 셰헤르. 친구와 이체리 셰헤르 밖으로 걸어갔어요. 아무도 없었어요. 성벽을 따라 돌다가 이체리 셰헤르 입구로 갔어요.


"우리 커피나 한 잔씩 마시고 가자. 타슈켄트에 없는 커피 자판기다."


커피를 마시며 하늘을 쳐다보았어요. 아까 진작 멈출 것이지, 왜 지금이야 멈추는 거야? 네놈이 오늘 비를 뿌렸든 안 뿌렸든 아마 오늘 하루를 나와 내 친구는 이렇게 마무리했을 거야. 주인 누나가 저녁 차려준 거? 네놈이 비만 안 뿌렸다면 오늘 주인 누나와 가족들과 재미있게 놀러 갔다 왔겠지. 이제라도 그쳐서 고마워할 줄 알았냐?


이제 바쿠에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밤새 자판기에서 커피나 뽑아 마시며 밤을 샐까 생각도 했어요. 그러나 그만 두었어요. 아침은 모레 타슈켄트에서 또 찾아올테니까요.


커피를 마시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갔어요.



호스텔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 친구는 금방 잠이 들어어요. 그러나 저는 잠이 오지 않았어요. 밖에 나가 조용히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어요.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들어가서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불러냈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