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16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

좀좀이 2012. 8. 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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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나왔어요. 걸어서 돌아다니기에는 아직도 많이 더웠어요.


"어디 가지?"

"설마 또 대통령궁?"


당연히 거기는 안 가지.


하지만 대통령궁은 멀지 않았어요.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 그렇다고 지금 갈 필요는 없었어요. 이따 야경 보러 나와서 갈 곳이 바로 저 대통령궁과 그 주변이었으니까요. 아슈하바트에 왔는데 당연히 야경은 보고 가야죠.


어디를 갈까 곰곰이 생각하다 이상하게 생긴 탑이 생각났어요. 거기 가면 위로 올라가서 아슈하바트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한 말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이름을 몰라.


그 건물 이름이 뭔지 이름을 몰랐어요. 하지만 방법은 있었어요. 아까 친구가 산 엽서를 달라고 한 후, 엽서를 하나하나 뒤져보았어요.


"이거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건물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 사진이 있으니 건물 이름 쯤은 금방 알아낼 수 있었어요. 건물 이름은 Üç oýok. 우리말로 하면 '다리 세 개'. 번역하고 나니 왠지 이름이 너무 웃기네요. 택시 기사에게 '다리 세 개 가주세요'...이건 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그런데 진짜 건물 이름이 저거에요. Üç oýok. 투르크멘어 발음으로 읽으면 위츠 오욕. 위츠 오욕이나 다리 세 개나 써놓고 보니 이상한 것은 매한가지네요.


택시를 타고 갔어요. 흥정을 하는데 5마나트에 가기로 했어요. 싸게 가는 것인지 비싸게 가는 것인지 저도 몰라요. 기차역에서 대통령궁 가는 길에서 저 공원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갔어요. 여기도 아무 승용차나 잡아타는 건 똑같았어요.


택시를 타고 한참 가서야 우츠 오욕에 도착했어요. 5마나트를 꺼내 택시기사에게 건네려는 순간 촉감이 이상했어요. 그래서 엄지와 검지로 지폐를 밀어보니 6마나트였어요. 택시기사는 제가 돈을 건네는 줄 알고 돈을 잡은 상황. 1마나트를 빼고 5마나트라고 드렸어요. 택시 기사가 2명인데 6마나트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를 했어요. 하지만 처음 흥정할 때 5마나트였기 때문에 당연히 딱 5마나트를 드리고 내렸어요.




이것이 그 유명한 위츠 오욕. 세 개의 다리. 세 개의 다리인 이유는 사진 보면 아실 수 있어요. 정말 다리가 세 개에요.



올라갈 수는 없었지만 실제 보니 택시비 들여서 와서 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어요.



이렇게 보면 로켓 같이 생겼어요.



만세 부르는 니야조프 전 대통령. 이 탑 꼭대기에 보이는 황금빛 무언가가 바로 니야조프 전 대통령의 동상이었어요.


이 탑의 맞은편 저 멀리 길 끝에는 이런 것이 있었어요.



나도 정말 모르겠다.


저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 왜 저렇게 생긴 거지? 저건 아무리 보아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저렇게 이상하게 생긴 것은 아직 본 적이 없었어요. 나의 우즈베키스탄 5개월 체류 경험과 타지키스탄 여행 경험으로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란 말인가!


그리고 주변 풍경.





이쪽이 볼 것이 이것 저것 모여있는 곳이라 걸어서 다 둘러보기로 했어요.



위츠 오욕을 뒤로 하고 내려가는 길. 이제 갈 곳은 저기다!


그런데 엄청 머네...


걸어가려고 했지만 너무 멀어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사진만 찍고 버스 타고 호텔로 돌아가서 다시 쉬기로 했어요.







북한 같아 보이나요?


저는 북한을 가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북한이 어떻게 생긴지 잘 몰라요. 뉴스에서 나오는 북한 사진 외에는 북한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북한의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요. 제 머리 속의 북한 모습은 그저 뉴스를 통해 본 사진들 뿐. 그런데 저게 북한 같아 보이나요? 제가 본 북한 사진과 비교하면 천만의 말씀이에요. 북한은 본 적이 없지만, 북한을 따라했다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인민궁전과 그 주변은 직접 가본 적이 있어요. 7박 35일 여행 중 2번 갔어요. 그것과 비교해도 닮은 점이 전혀 없었어요.


대체 왜 이런 풍경이 북한 같다고 하는지 오히려 제가 물어보고 싶어요. 단순히 하얗고 삐까번쩍해서? 그저 크게만 지어놓아서?


제 감상은 북한 같은 도시가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도시'였어요.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우스꽝스러운 도시였어요.


이건 애들이 자기 좋아하는 거 생각 없이 마구 가져다놓은 거야.


정말 배가 고파서 부페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마구 집어오다보면 그 어떤 통일성도 없어요. 샐러드를 먼저 먹고, 그 다음에는 가벼운 음식을 먹고, 그 다음 고기를 먹고, 그 다음에 과일을 먹고, 마지막으로 과자와 커피로 마무리해야지...라는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자기 좋아하는 거 마구 퍼온 그런 접시. 접시 하나에 마구 담다보니 양념은 섞이고 뒤죽박죽 음식이 섞이고 쌓인 그런 접시.


균형도, 조화도, 통일도 없었어요. 통일이라면 하나 있었네요. 건물들이 군인들 옷에 양초 바르고 다려서 칼각 잡는 것처럼 각이 딱딱 잡혀 있는 거요. 이건 계획하고 도시를 세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균형도, 조화도, 통일도 다 무시된 풍경. 거기에 황량함은 덤.


앞서 본 곳부터 시작해볼까요? 다 고만고만한데 쓸 데 없이 대학교가 무식하게 커요. 누가 보면 진짜 무슨 국회의사당이나 주석궁인 줄 알게 생겼는데 알고 보면 대학교. 대통령궁도 마찬가지. 호위 무사를 거느린 대장의 모습이 아니라 그냥 두서가 없어요. 대통령궁 길 건너 바로 옆은 그냥 별 볼 일 없는 건물들이고 공원이에요. 솔직히 황금돔이 눈에 그렇게 띄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반짝이는 누런 것이죠. 워낙 하얀 대리석으로 건물 외부를 도배질해 놓아서 누런 황금돔이 번쩍거리는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여기도 마찬가지. 위츠 오욕 말고 희안하게 생긴 탑이 바로 옆 건물들과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왼쪽 건물과 가운데 탑, 오른쪽 건물이 잘 어울리는 것 같나요? 사진에서 잘 나타나지는 않지만 무수히 많은 하얀 건물들이 무언가 풍경을 이루는 것이 아니에요. 실제 보면 그냥 하얀 레고 블럭 쏟아놓은 꼴이에요. 그냥 난잡하게 지어놓은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고 욕하는 아파트 단지들이 저거 보다는 훨씬 균형, 조화, 통일이 있어서 볼 만 해요. 우리나라 아파트도 가까이서 보면 별로이지만 멀리서 보면 볼 만 해요.


온통 하얗게 지어놓은 것? 그건 중앙아시아에서 사실 흔한 거에요. 타슈켄트도 하얀 건물들 세우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별로 새로 짓는 건물들이 많지 않아서 그렇지, 나보이 거리 입구를 보면 조금 있어요. 벽을 하얀 대리석으로 바르는 건 이 지역 공통된 취향이에요. 투르크메니스탄은 돈이 넘치고 대통령이 막 건물들을 새로 지어대서 그런 하얀 건물이 넘쳐나는 것이고, 나머지 국가들은 돈이 별로 없고 건물 새로 많이 짓는 것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건물이 조금 보이는 것 뿐이죠.


걸어서 숙소까지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요리책이 너무 무겁기도 하고 어마어마한 거리를 걸어가야 해서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말 동상.


이 나라는 비자부터 시작해서 경마장에 말 동상에 말 우표에...말을 정말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이 나라가 목화 생산도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는데 목화 관련된 것은 거의 못 보고 본 거라면 온통 말이었어요. 그래서 질주 본능이 있어서 운전을 그렇게 하던 건가? 투르크메나바트에서 아슈하바트 올 때 그 길이 생각나서 혼자 웃었어요. 정말 무슨 레이싱 게임하는 것도 아니고 정신없는 추월과 추월. 무게는 속력에 부담이 되는 거라고 꽁초까지도 밖에 휙휙 버리는 사람들. 그런데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종일 타슈켄트에서 흔히 보는 운전 문화인 꼬리물기와 역주행은 못 보았어요. 타슈켄트에서는 자동차 꼬리물기는 그냥 고유 문화 아닌가 싶을 지경인데 아슈하바트에서의 첫날에 꼬리물기는 의외로 못 본 것이 신기했어요. 아슈하바트 중심가는 특별히 관리해서 그런 건가? 혹시 모르죠. 지방 도시 가면 타슈켄트와 마찬가지로 역주행에 꼬리물기가 난무하고 있을지도요.




응?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인데 경찰 뒤통수를 찍어버렸어요. 사진 찍기 고약한 아슈하바트에서 버스에 타서 작은 카메라로 눈치껏 사진을 찍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숙소에서 내릴 수도 있었는데 버스 종점인 테케 바자르 Teke Bazary 까지 가서 내렸어요.




테케 바자르는 늦었기 때문에 다음날 할 일 없으면 가기로 하고 음료수를 하나 사서 숙소에 들어가 쉬기로 했어요.


여기 물가 정말 싸구나!


우즈베키스탄이랑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우즈베키스탄보다 훨씬 싼 것도 많았어요. 가장 충격적인 것은


식빵 한 덩어리가 20텡게!


1마나트는 100텡게이고, 2.8~2.85마나트가 1달러에요. 1달러를 1150원으로 잡고, 2.8마나트를 1달러로 잡았을 때 식빵 한 덩어리는 82원. 물론 이건 당연히 매우 비싸게 계산하기 위해 이렇게 계산한 것이죠. 어쨌든 식빵 한 덩어리가 80원. 정말 굶어죽는 사람은 없게 생겼구나. 다른 여행자들이 여기 물가 싸다고 한 것이 괜히 한 말이 아니었어요.


더욱이 여기는 우즈베키스탄처럼 2중 가격도 아니기 때문에 정말로 싼 것. 우즈베키스탄에 환율이 공식 환율과 암시장 환율이 있다는 것은 여러 번 이야기했죠. 우즈베키스탄은 특히 수입 공산품 가격이 매우 비싼 편인데, 암시장 환율로 계산해보면 투르크메니스탄의 물가와 어느 정도 비슷해요. 하지만 공식 환율로 계산하면 매우 비싸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수입 공산품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즈베키스탄이 리히텐슈타인과 더불어 세계에서 둘 밖에 없는 2중 내륙국 - 즉 주변국도 모두 내륙국인 나라라서 운송료가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것 때문이죠.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은 일반인들도 공식 환율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무조건 암시장 환율로 계산해보니 투르크메니스탄과 비슷하다고 해서 무조건 투르크메니스탄과 물가가 비슷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랍니다.


간식 거리와 음료수를 사서 호텔로 돌아와서 또 쇼파에 기대어 앉았어요. 쇼파에서 오늘 하루 일정을 정리해 쓰기 시작했어요.



쓸 내용은 많고 수첩은 조그마해서 깨알 같이 내용을 종이에 우겨넣었어요. 글자를 작게 쓰면 쓸 때 손가락이 저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신경 써서 써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 읽기는 오히려 편하더라구요. 큼직큼직하게 쓰면 제 글자는 모두 태풍에 미친 듯 춤추다 뻗어버린 풀들처럼 글자가 다 날아다니거든요. 게다가 하루 일정을 한 번에 주욱 보고 쓰는 게 넘겨 가며 보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글 쓸 때 좀 더 글이 잘 나와서 이렇게 작은 수첩에 억지로 꾸역꾸역 내용을 다 쑤셔 집어넣었어요. 이상하게 여행기 쓸 때 수첩 넘겨가며 쓰면 글 쓸 내용에 대한 생각이 자꾸 끊기더라구요.


하루의 일과를 대충 정리해 수첩에 적고 과자와 음료수를 마시며 쉬었어요.


"야경 보러 나가야지."


날이 깜깜해지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오늘 아니면 아슈하바트의 야경을 볼 수가 없었어요. 피곤해도 오늘 반드시 끝내야하는 일. 오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교과서를 못 구했기 때문에 다음날 다르바자 갔다 오는 건 이제 물 건너 갔어요. 남은 거라고는 아슈하바트의 야경이나 감상하는 정도.


택시 타고 멀리 가기는 그래서 대통령궁 근처나 다녀오기로 했어요.



지름길로 가는데 레닌 동상이 나왔어요. 동상 아래에는 아랍 문자로 له نين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읽으면 '레닌'. 구 소련 지역 돌며 레닌 동상 본 것은 이제 두 번째. 이 지역에서 철거하는 것을 잊어버려서 놔두었을 수도 있으나, 이 지역에서 레닌에 대한 인식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에요. 폭압적인 압제자 러시아로부터 말 뿐이기는 하나 다른 민족들에게 자유와 해방, 그리고 그들의 나라 - SSR을 세워준 사람이거든요. 물론 카프카스 지역에서는 이런 인식이 없답니다. 소련에 대한 카프카스 지역 사람들의 인식은 '알리와 니노'라는 소설을 읽어보시면 되요. 거기에서는 소련이 말 그대로 해방자가 아니라 점령자. 중앙아시아에서는 해방자 겸 점령자.



대통령궁 가는 길.



행인이 없어서 경찰 찾는 게 더 쉬웠어요. 그 반대로 그들이 저를 찾는 것도 더 쉬웠구요. 그래서 멀리서 대통령궁만 한 장 찍었어요. 황금돔은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해 밤에는 오히려 별 볼 일 없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황금돔은 낮이든 밤이든 정말 다른 하얀 대리석들에 비해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어요.


조형물이 있는 사거리까지 왔어요. 밤이라 카메라를 그냥 들고 찍기에는 사진이 너무 흔들려서 몰래 찍을 수가 없었어요. 낮이야 워낙 햇볕이 강해서 걸으면서 후다닥 한 장 찍고 갈 수 있었지만, 밤에는 그렇게 하기 어려웠거든요.


할 수 없이 경찰에게 조형물만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았어요. 경찰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다른 경찰에게 물어보고 돌아왔어요.


"안 돼요. 대신 이 건물 찍어요."



대학교만 찍고 다시 돌아갔어요.


"차라리 10마나트에 사진 자유 촬영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네!"


솔직히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가장 볼만하고 가장 사진 찍을만한 곳은 전부 사진 촬영 금지 구역. 사진 촬영 금지 구역 빼면 사진 찍을 만한 곳이 없었어요. 끽해야 기차역과 대학교? 야경은 확실히 아주 멋있게 잘 꾸며놓았어요. 하얀 대리석이 조명에 반사되며 만드는 야경은 보자마자 사진을 찍고 싶게 만들었어요. 게다가 두서 없이 지어놓은 건물들과 달리 조명은 나름 무언가 생각하고 한 듯 해서 오히려 야경이 낮의 풍경보다 훨씬 나아 보였어요. 그런데 그러면 뭐하나요. 조명이 제대로 잘 된 곳은 대부분 사진 촬영 금지 구역. 진짜 10마나트, 아니 10달러 내고 아슈하바트 사진 자유 촬영권을 살 수만 있다면 1시간에 10달러라도 좋으니 사서 마음껏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딴 것은 없었어요.



그리고 또 대학교를 찍었어요. 대학교를 찍고 호텔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한 후 잠을 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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