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14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

좀좀이 2012. 8. 2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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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서점 찾아가는 길. 사람들에게 서점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서점은 대통령궁 가는 큰 길에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우리 아무 것도 안 먹어도 되나?"


기차역 주변에서 이것 저것 팔고 있어서 대충 아무 거나 가볍게 사 먹는 것으로 점심을 때울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무언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아침에 설사 한 번 한 후, 속은 다 나은 것 같았지만 식사를 챙겨먹어야 한다는 배고픔이 안 느껴졌어요. 평소에도 식사를 잘 챙겨 먹지 않는 데다, 너무 더웠거든요. 더워서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저 물이나 마시고 시원하게 샤워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친구도 마찬가지. 먹는 것을 밝히는 친구가 아닌데다 친구도 덥고 아침에 설사를 했기 때문에 그냥 가자고 했어요.


"이따 저녁에 푸지게 먹든가 하지 뭐. 귀찮다."


밥 먹는 것도 귀찮았어요. 어차피 항상 잘 챙겨 먹는 것도 아니라 이것이 굶는 것이라는 인식조차 없었어요.




이 동네는 사람 두 배로 덥게 만드는 동네. 아니, 타슈켄트에 비하면 4배 더 덥게 느끼게 하는 동네.


일단 습해요. 이유는 몰라요. 하여간 엄청 습해요. 당연히 한국보다야 건조하지만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비하면 정말로 많이 습한 동네. 이걸로 일단 타슈켄트보다 체감 2배. 기온 자체가 타슈켄트보다 높으니 이것까지 같이 계산해서 일단은 2배.


그리고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나무가 전부 비리비리해요. 건조하다고 해서 안 더운 게 아니라 건조한 곳에서는 그늘에 들어가면 안 더운 것인데, 여기는 길에 그늘이 없어요. 이렇게 때문에 타슈켄트에 비해 2배 더 더워요. 솔직히 타슈켄트도 큰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이 없다면 많이 덥죠. 하지만 타슈켄트는 정말로 나무가 많아요. 멀리서 보면 정말 푸르른 도시에요. 그리고 그 나무들이 그늘을 많이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에 여름에 밖에서 돌아다녀도 생각만큼 덥지 않은 것이죠. 중요한 것은 그늘의 유무인데 아슈하바트 거리는 제대로 된 그늘이 없었기 때문에 체감 온도는 물론이고, 실제 온도도 훨씬 더 높았어요.



거리에 이런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있었어요.


"들어가도 될 건가?"


맞은편을 보니 사람들이 안에 들어가기도 하고 있었어요. 무슨 특수 시설은 아닌 것 같았어요.



"더운데 일단 더위 좀 피하고 가자."


더 걸었다가는 책 사기도 전에 관부터 사야할 것 같았어요. 정말 너무 더위를 참기 어려워서 일단 하얀 무언가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 에어컨도 있어!"


작동은 하지 않지만 벽걸이 TV도 안에 달려 있었어요. 에어컨은 시원하게 가동중. 알고 보니 이게 버스 정거장이었어요.


"무슨 버스 정거장이 이렇게 최신식이야?"


지금까지 보아 온 무수히 많은 다양한 버스 정거장 중 이렇게 좋은 버스 정거장은 없었어요. 아무리 좋은 버스 정거장이라 해도 에어컨에 벽걸이 TV까지 달려 있는 곳은 본 적이 없었어요. 게다가 그냥 장식을 위해 설치한 에어컨이 아니라 진짜 가동되고 있었어요.


"여기 너무 시원하고 좋은데?"


물을 마시며 밖을 보았어요. 밖은 불지옥. 여기는 돈이 넘치니까 이 거리는 특별히 아주 신경써서 꾸몄구나! 에어컨 강도를 조절할 수는 없었지만 에어컨이 틀어져 있고 그늘이 졌다는 것 만으로도 엄청나게 시원하고 살 거 같았어요.


그렇게 10분 정도 앉아 있었어요.


"이제 나가야겠지...?"


나가기 싫었지만 해가 질 때까지 버스 정거장 안에서 죽치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정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제 손을 잡고 끌고 가는 시간에 끌려 나갔어요.


"으아악!"


나오자마자 입에서 나오는 절규. 시원한 곳에 있다가 나오니 맥반석 위에서 오그라드는 오징어가 된 듯 했어요. 뼈가 없었으면 진짜 그 자리에서 오징어처럼 마구 오그라들었을 거에요. 다시 안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


"빨리 교과서나 구하자."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 홍보 표지판들. 이 동네는 원래 도적의 땅이에요. 실크로드 대상들 털어먹으며 살던 동네가 두 곳 있었으니 하나는 카자흐스탄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투르크메니스탄. 그래도 투르크메니스탄은 카자흐스탄보다 나은 것이 셀주크 튀르크가 투르크메니스탄의 역사거든요. 비록 우리 나라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잠깐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는 셀주크 튀르크이지만 여기도 세계사에서는 나름 중요한 국가. 그리고 교과서에 셀주크 튀르크보다 많이 나오는 오스만 튀르크도 그 출발은 투르크메니스탄이에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서쪽으로 계속 간 거죠. 빈에서 뒤통수 맞고 물러나기 전까지요.



멀리 보이는 건물을 약간 주의 깊게 보아둘 필요가 있어요. 저기가 여행자에게 의외로 중요한 곳이거든요.



공원도 불볕을 피할 곳이 마땅찮은 것은 마찬가지였어요. 이것은 2차세계대전 전승기념비.


저기까지 고행의 길을 가며 그분들의 고통을 느끼라는 거야?


어떻게 길에서 저 기념비까지 그늘이 하나도 없을 수 있지? 저기까지 가는 건 정말 고행을 하러 가는 길. 대체 저기 디자인은 누구가 했는지 의문이었어요. 이렇게 여름에는 뜨거운 나라에서 저기까지 가는데 그늘이 하나도 없게 디자인한 건 사람들에게 고생 좀 하라는 이야기.


공원을 맞은편은 대학교.



"일단 이 길 끝까지 다 갔다가 서점 가자."


서점이 보였는데 서점을 들려 책을 다 산 후에 이 길을 다 걸을 생각을 하니 참 안 좋은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땡볕 아래를 걸어야 하는데 책이라는 짐까지 끌어안고 저 길을 걷는 건 참 아니었어요.


땡볕에 무거운 거 들고 저기까지 행군해야 할 이유 따위는?


어차피 지금 가나 조금 뒤에 가나 있을 책이라면 있고 없을 책이라면 없을 거니까요. 제가 일단 구하려고 하는 책은 교과서. 교과서 사는 것이 무슨 경매도 아니고 촌각을 다투어야할 일까지는 아니었어요. 게다가 서점에 가서 교과서 말고 다른 책도 있으면 최대한 사야 하는데 책 짐은 일단 시작부터 부담스러움이었어요.


이미 책 짐은 많이 날라보았거든.


제 짐은 언제나 별 거 없어요. 자취할 때도 마찬가지고, 여행중에도 마찬가지에요. 평소 자취할 때에도 제 모든 짐을 다 합쳐 보아야 얼마 나오지도 않아요. 거의 여행 떠날 때와 비슷한 수준의 옷 몇 벌, 거기에 몇 안 되는 살림 도구. 문제는 언제나 책. 항상 책 짐이 많아서 이거 처리하는 게 일이에요. 집을 구하고 이사할 때에도, 여행중에도요. 선물이나 기념품은 작고 안 부서지는 것으로 골라서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아요. 여행갈 때 짐 자체를 얼마 들고 가지도 않구요. 하지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책. 여행 다니며 이런 저런 책을 사서 모으다 보면 결국 널널했던 공간 전부 책으로 꽉 차고 무게는 엄청나게 늘어나 버려요. 책이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짐 무게 맞출 때 한 권 넣고 빼고로 적은 부피에 큰 무게 차이를 낼 수 있어요. 하여간 책 짐에 시달린 게 벌써 몇 년째라 책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고행이라는 것 정도는 체득해서 알고 있었어요.


"여기 못 걸어!"


앞으로 계속 걸어가서 횡단보도를 건너 길을 건너가려는데 군인이 이 길은 못 걸어간다고 길 건너 가라고 우리를 쫓아냈어요. 그 지점이 바로 다섯 번째 사진에 나오는 하얀 건물이에요.


어차피 건널 거였거든?


서점이 맞은편에 있었기 때문에 군인이 인상 박박 쓰며 우리를 쫓아내지 않아도 마침 횡단보도를 건널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군인은 휘파람으로 우리를 불러서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길을 건너가라고 손짓했어요.


길을 걸어가서 다시 직진.



오른쪽 길은 도보 통행 금지지역. 왼쪽 길로만 걸어 다닐 수 있었어요. 게다가 오른쪽을 찍어볼까 하고 보니 군인과 경찰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정면을 찍었어요. 앞에 있는 기념물은 나름 볼만한 것 같았어요.


"우리 어디까지 걸어야 돼?"


친구가 덥고 힘들다며 어디까지 걸을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일단 저 기념물까지 가 보자."



대학교를 지나가자 교차로가 나왔어요.


이 교차로야말로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일 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사진 촬영 금지 구역. 정작 아름다운 쪽은 정확히 사진 촬영 금지 구역으로 묶여 있었어요.


어떻게 사진을 찍을까 곰곰이 고민하다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우리 저기 가서 쉬자!"


우리가 걷고 있던 길 끝에 마그틈굴르 투르크멘 국립 대학교 Martymguly Adyndaky Türkmen Döwlet Uniwersiteti 가 있었어요. 마침 이 대학교 앞 계단에는 앉아서 쉬기 좋게 그늘이 져 있었어요. 그래서 계단에 가서 앉아 일단 물을 몇 모금 들이켰어요. 물을 마시고 쉬다가 경찰을 확인했어요. 경찰은 우리가 있는 쪽에서 잘 안 보이는 쪽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어요. 정말 아무렇지 않게 계단에 앉아 카메라를 무릎 위에 놓았어요. 마치 무슨 사진을 찍었나 확인하는 듯한 모습으로 액정을 보며 슬쩍 한 장 찍었어요. DSLR이 아니라 편한 점은 바로 액정을 보며 찍을 수 있다는 것. 만약 카메라를 눈에 대었다면 당장 저를 불렀을 거에요. 그런데 고개를 숙이고 액정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보고 있는데 그냥 넘어갔어요.



오른쪽에 보이는 황금돔이 대통령 궁전이에요. 저 황금 지붕은 진짜 황금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리고 왼쪽에 보이는 둥근 지붕의 건물들은 전부 정부 부처 건물. 이곳이야말로 아슈하바트에서 가장 아름답고 잘 꾸민 곳. 그리고 그나마 조화, 균형, 통일을 볼 수 있는 곳. 그런데 여기를 못 찍어요. 여기서 함부로 카메라 들고 깝죽대면 바로 경찰과 군인의 제재를 받아요.


대통령궁 옆길은 아예 통행 금지였기 때문에 관공서 앞을 걸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지하도로 들어가 대각선으로 지하도를 지나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안 돼! 돌아가!"


군인이 바로 우리를 쫓아냈어요.


"걷는 거 안 되요?"

"안 돼! 여기 못 걷는 거리야!"


못 걷는 거리면 인도는 왜 만들었어?


군인이 안 된다고 해서 바로 지하도로 들어갔어요.


맞은편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볼까?


맞은편 사진을 찍고 갈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으나 이것은 매우 안 좋은 짓일 것 같았어요.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을 막 찍고 나왔기 때문에 오히려 물어보았다가 카메라 보자고 하면 더 골치 아플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별 말 하지 않고 순순히 다시 지하도를 건너 대학교 앞으로 가서 서점을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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