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18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 - 투르크멘바쉬 기차

좀좀이 2012. 8. 2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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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타서 정해진 좌석으로 갔어요. 설마 우즈베키스탄 기차랑 비슷할 건데 침대가 세 개 있겠어? 세 개 있다면 그건 진짜 폐급 기차다. 말이 3층 침대이지 실제로는 2개만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기차 안으로 들어갔어요.


당신은 정확히 틀리셨습니다.


일단 기차가 우즈베키스탄 기차와는 비교도 안 되는 최신식 기차였어요. 내부는 꽤 깨끗했어요. 그리고 방은 정확히 침대가 3층으로 2개 있는 6인실이었어요.


꽤 재미있었던 것은 방문을 잠글 수 없게 되어 있었다는 것. 그냥 문을 잠그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문이 없었어요. 아주 예전에 다녀오신 여행자분들 글을 보면 문을 잠그고 안에서 해바라기씨 까먹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문이 아예 없으므로 잠그고 나발이고 없어요. 일단 가방은 1층 침대 아래와 3층 수납 공간에 집어넣고, 카메라 가방은 품에 껴안고 자기로 했어요.


'설마 아무도 안 타나?'


우리 칸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혹시 우리끼리 이 칸을 다 이용하는 행복한 상상도 해 보았어요. 하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었어요. 우리가 이 방에서 표를 제일 늦게 산 승객들이었거든요. 우리가 3층 침대인 이유는 별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3층 침대만 남아 있었기 때문.


잠시 후. 아주머니 한 분과 청년 한 명이 기차에 올라탔어요. 두 분은 자신들이 안쪽에 들어가도 되겠냐고 물어보았고, 우리는 그러시라고 했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사다리는 문쪽에 있었거든요. 언제든 졸리면 올라가 잘 수 있는 바깥 쪽 문 쪽 자리가 안 쪽 창문 쪽 자리보다 편했어요. 어차피 이제 저녁 8시 10분. 잠시 후면 기차가 출발할테고, 길어야 두어 시간 후 잠을 청할 것이 뻔했거든요. 빠르면 9시, 안 자고 버텨 봐야 10시. 그래서 안쪽 자리에 미련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우리가 안쪽 자리에 미련을 가지면 서로 불편할 뿐이었으니까요. 창문이야 복도에 나가서 보면 되는 것이구요. 이건 문도 없으니 객실과 복도가 나누어진 공간이라는 느낌도 크게 들지 않았어요.




기차가 아슈하바트 시내를 빠져나오자 들판이 나타났어요.






아슈하바트로 올 때 본 풍경과 마찬가지로 매우 단조로운 풍경.



하지만 안은 단조로운 창 밖 풍경과 달리 북적북적했어요. 복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입석 표를 산 사람이 아니에요. 이 기차가 좋은 점이 복도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창밖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어요. 안에 있으면 좁고 갑갑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복도로 나와 의자에 앉아 잡담도 하고 창 밖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멀리 거대한 모스크가 보였어요.


"뭐지?"



엄청나게 큰 모스크. 저것이 바로 급작 Gypjak 의 투르크멘바쉬 루흐 모스크 Türkmenbaşy Ruhy Metjidi 였어요. 설명을 보면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모스크로 10000명이 예배를 볼 수 있는 모스크라고 해요. 1만명이 들어가서 예배를 볼 수 있는 곳이라면 그 규모는 말할 필요가 없죠. 물론 이슬람에서 예배를 볼 때에는 다닥다닥 붙어서 보기 때문에 모스크에 생각보다 정말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있지만 10000명이면 어쨌든 넓어요. (이슬람에서는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고 예배를 봅니다. 틈이 있으면 그 사이로 악마가 들어온다고 해요.)


여기는 다르바자에 못 가고 시간이 남았을 경우 가려고 했던 곳. 물론 친구가 모스크 가는 걸 질려 하기 때문에 갔을 확률은 거의 없었지만요. 그래도 기차를 타고 가며 멀리서라도 이것까지 보고 가서 아직 운이 따라주고 있는 것 같았어요. 어둡고 멀리 있는 것을 당겨 찍어야해서 사진에서는 별로에요. 하지만 기차를 타고 가며 본 투르크멘바쉬 루흐 모스크는 꽤 괜찮았어요. 황금 돔을 지으려면 정말 저렇게 지어야죠. 물론 저 모스크도 우리가 상상하고 많이 보던 모스크와는 매우 다른 희안한 모습이지만요. 마치 건물은 없고 황금돔만 있고 그 주변에 또 이상하게 높은 미나렛만 4개 세워 놓은 것처럼 보였어요.


창밖이 너무 어두워져서 이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안으로 들어왔어요. 안에서는 투르크멘인 세 명이 이야기를 하며 놀고 있었어요. 한 명은 나중에 늦게 우리 방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방 안에는 다섯 명. 아주머니께서 빵과 사탕, 과자를 꺼내 객실 안 탁자 위에 올려놓고 우리에게도 권하셨어요. 그리고 아들에게 찻주전자를 주더니 뭐라고 시켰어요. 아들은 찻주전자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돌아왔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찻주전자에 차 티백을 집어넣으셨어요. 아들은 뜨거운 물을 받아오기 위해 주전자를 들고 나갔던 것이었어요. 여행 다닐 때 빵 들고 타는 경우는 많이 보았는데 찻주전자까지 들고 다니는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아주머니께서 주신 차와 과자, 사탕을 먹으며 앉아 있었어요. 어떻게 대화를 하고는 싶은데 투르크멘어는 알아들을 것 같은데 알 수가 없었어요. 글로 쓴 거를 보면 대충 이해할 수 있는데 들으면 알아듣기 어려웠어요. 그리고 제가 우즈벡어 안다고 하자 우즈벡어는 투르크멘어와 비슷해서 알아듣는다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사실 우즈벡어가 투르크멘어, 아제르바이잔어와는 많이 다르거든요. 글로 적어놓은 것을 보고 이해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듣고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 관계에요.


친구는 터키어와 아제르바이잔어로 어떻게 대화하는데 저는 아제르바이잔어는 거의 다 까먹어서 그냥 듣고 있었어요. 뭔가 좀 투박한 듯 한 언어. '응' 발음 때문에 유독 투박하게 느껴졌어요. 투르크멘어는 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응' 발음이에요. 게다가 튀르크어는 강세가 마지막 발음에 들어가서 이거 둘이 합쳐져 다른 언어들보다 투박했어요. 물론 카자흐어와 키르기즈어에 비할 바는 아니구요. 거기는 튀르크 언어들 중에서 이미 투박함으로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세계에서 독보적인 1,2위를 다투는 언어이고, 나머지 언어들 중 투르크멘어가 제일 투박하게 들린다는 거에요.




객실 내부는 이렇게 생겼어요.


'이 여름에 왠 두꺼운 털이불?'


게을러서 그런가, 귀찮아서 그런가? 지금은 밤도 엄청 더운 한여름인데 안에는 아주 두꺼운 털이불이 있었어요. 건조 기후라 일교차가 크네 어쩌네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새벽에 서리 내리고 얼음 얼고 얼어죽을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이런 여름에는 낮에는 정말 활동 불가능할 정도로 덥고, 깊은 밤에서 새벽이 되어야 선선하고 활동하기 좋은 온도가 되요. 물론 20도 정도 왔다 갔다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게 여름에는 0도에서 20도가 아니라 20도에서 40도, 또는 그 이상이에요. 최저 기온이 10도대로 떨어지는 일은 없어요.


3층 침대로 올라가서 잠을 청했어요. 이제 눈을 뜨면 투르크멘바쉬에 도착해 있겠구나. 제발 내일 일도 잘 풀려야 할텐데...


눈을 떴어요.


"아! 추워!"


당연히 투르크멘바쉬에 도착하려면 한참 남은 야심한 시각. 정말 추워서 깨었어요.


"털이불 놓지 말고 에어컨을 약하게 틀라구!"


털이불이 왜 놓여 있었는지 깨달았어요. 에어컨을 하도 세게 틀어서 추우면 덮으라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제 자리는 3층. 기차 에어컨 바람이 바로 윙윙 나오는 자리였어요. 원래 더위는 별로 안 타고 추위는 많이 타는데 이건 상대적으로 추운 게 아니라 정말로 추웠어요. 찬 바람이 슝슝 나와서 이불을 덮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불을 뒤집어 덮었어요. 그래도 추웠어요.


"뭐 하자는 짓이야!"


두꺼운 털이불을 덥고 잠을 청해보려 했으나 도저히 추워서 잘 수가 없었어요. 불판 위에 올려놓은 오징어 몸통마냥 몸을 있는대로 웅크리고 잠을 청했어요.


몇 번을 추워서 깨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어요. 어느덧 동이 텄고, 도저히 안에서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어서 복도로 나왔어요.



황량한 들판과 카스피해. 추위에 시달려 머리가 지끈거리고 코를 훌쩍거리는데 하필이면 황량한 풍경.


밤새 추위와 싸우다 지치다 맞이하는 아침. 옆에 소주...아니, 나는 술 못 마시니까 옆에 맹물 가득 든 1.5리터 패트병 놓고 바닥에 주저 앉아 멍하니 바다를 보며 지난 날을 안주 삼아 물을 한 모금 들이켜며 이제 어디로 갈지 생각한다. 저 바다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오늘은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할까.


이런 장면 찍으면 딱이겠네. 하지만 저는 걸을 일도 없고, 이 기차는 목적지 정해져 있고, 저 바다 건너가면 아제르바이잔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요. 게다가 외로울 것도 없는 것이 친구와 같이 여행중이었거든요. 심심하기는 했어요. 친구가 쿨쿨 자고 있고 혼자 깨어 있어서요. 말상대가 없었어요. 그냥 아침에 황량한 풍경 보고 괜히 영화 속 장면 떠올려보며 엉뚱한 상상 해본 것이었어요.





"이제 투르크멘바쉬에 들어온 건가?"


어느덧 아침 7시 반이 되어 가고 있었어요. 투르크멘바쉬 도착 예정 시각은 얼추 아침 8시. 이제쯤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어요. 사람들도 하나 둘 일어나 짐을 싸는 것 같았어요. 친구도 일어나서 짐을 싸고 있었어요. 저는 이미 짐도 다 쌌고 세수도 다 했기 때문에 계속 창가에 들러붙어 창밖을 바라보았어요.





"여기서 하루 머물게 되면 뭐하냐..."


정말 아무 것도 없게 생긴 곳. 이 나라에서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느낄 것이 하나라도 있기를 바랬어요. 그런데 보고 느낄 것은 고사하고 당장 하루 머물게 된다면 잠은 어디에서 자야 하나 고민이 되게 만드는 풍경.



기차는 계속 달려갔어요. 아슈하바트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고, 투르크멘바쉬로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오늘 배나 있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아제르바이잔이나 빨리 들어가는 게 낫겠어. 여기 있어보아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거 같아. 어차피 마나트도 거의 다 썼구. 이 도시에서 하루 머물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물론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이 도시에 대해 많이 알고 가는 것도 좋겠지만, 사실 그게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었어요. 이 나라를 정해진 기간 내에 무사히 빠져나가느냐가 문제였죠. 아제르바이잔 비자는 이미 개시된 상태. 물론 한 달 짜리라 이미 며칠 전에 개시되었어도 문제가 없긴 했어요. 오늘 배를 타고 내일 아제르바이잔에 들어가든, 내일 배를 타고 모레 아제르바이잔에 들어가든 비자 문제는 없었어요. 기껏 힘들게 얻은 투르크메니스탄 비자였지만 정말 느낌이 없었어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제르바이잔 가서 빨리 일을 처리하고 돈도 절약할 겸 해서 비행기표를 앞당겨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즉, 이날 투르크메니스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었죠. 하나 하나 제 자신에게 매우 그럴 듯한 이유를 제공하는 원인들이 뭉쳐 투르크멘바쉬에 도착하자마자 아제르바이잔행 배에 올라타고 싶게 만든 것이었어요.






저건 가스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건가? 아무리 보아도 연료를 저장한 탱크들이었어요.



이제 드디어 투르크멘바쉬 항구.


"저거 아제르바이잔 배 아니야?"



파랑, 빨강, 초록색 띠는 아제르바이잔 국기 색깔이었어요. 배가 없으면 화물선이라도 타고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었어요. 저 배는 아마 아제르바이잔 가는 배겠지? 설마 투르크메니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러시아, 이란 배가 배에 아제르바이잔 국기를 나타내는 파랑, 빨강, 초록색 띠를 그려놓았을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이 나라를 빠져나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어요. 무언가 될 거 같았어요.







"도착했다. 나가자!"


사람들이 짐을 들고 복도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친구도 저를 불러 이제 짐을 들고 복도로 나가야 한다고 했어요. 어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신 아주머니와 그 아들은 벌써 짐을 들고 복도로 나갔어요. 이제 객실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우리들. 혹시 빠진 짐이 없나 마지막으로 확인을 했어요.


아침 7시 50분. 드디어 기차가 투르크멘바쉬 역에 도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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