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기차역을 빠져나오다 뒤를 돌아보니 기차역은 황량하기 그지 없었어요.


중국 서부 기차역


"야, 빨리 가자."


친구가 재촉했어요. 류원역에서 둔황까지는 140km. 빵차를 타고 둔황까지 가야한대요. 14km 면 친구와 오기로라도 걸어보겠는데 140km는 무리였어요. 이건 그냥 불가능이었어요. 140km 면 3일을 짐 없이 이틀을 꼬박 걸어도 절대 못 가요. 아마 3일째에 반송장 되어서 둔황 입구에 도착할 수 있을 거에요. 이것도 짐이 없을 때 이야기고, 지금은 짐이 있으니 그보다 훨씬 많이 걸릴 거에요. 무슨 실크로드 환상에 미쳐서 삼장법사의 서유기, 혜초의 왕오천축국기를 뼈에 새기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런 짓은 할 짓이 아니었어요. 즉, 마지막 빵차도 놓치면 쓸 데 없이 류원역에서 노숙해야 하고, 다음날 아침에 둔황으로 가야 했어요.


기차역에서 나오는데 택시 기사가 택시를 타라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어요. 택시 기사는 60원을 부르고 있었어요.


"필요 없어요."


이미 빵차 타고 가면 싸게 갈 수 있다는 것을 다 알아보았어요. 승합차를 타고 가면 반값 조금 넘는 가격에 둔황까지 갈 수 있었어요.


甘肃省 柳园站


역에서 빠져나와 류원역을 바라보았어요. 진짜 위구르어는 하나도 없고 보기 싫은 중국어만 있었어요. 그래도 좋게 생각하자. 나 혼자 여행하는 거 아니잖아? 여기는 친구가 오고 싶다고 해서 온 곳. 아무리 한족의 중국, 실크로드 전부 개가 물어가든 새가 들고 가든 제 알 바 아니라지만 이 여행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했어요. 이것은 위구르 여행에 진지하게 임해준 친구에 대한 예의이자 의리였어요.


"예? 42원이요?"

"응. 차량이 더 좋은 것으로 바뀌면서 요금 올랐어."


제가 알아본 빵차 가격은 30위안 중반이었어요. 그런데 차량이 더 좋은 것으로 바뀌면서 이제 42위안으로 요금이 올랐다고 했어요. 이게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알 방법이 없었어요.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내는 방법이라고는 현지인들이 운전기사에게 돈을 얼마 내는지 살펴보는 것 뿐. 피로에 푹 절어 굴비 눈동자가 된 친구의 눈이 갑자기 먹이를 노려보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순식간에 바뀌었어요. 친구는 표 파는 직원이 현지인에게 얼마 받나 날카롭게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저와 친구가 탑승한 빵차는 7시 반 출발 예정. 차가 출발할 때까지 시간이 남아서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위구르어로 말을 걸어보았지만 당연히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았어요. 친구에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아졌어요. 이제 위구르는 진짜로 끝나버렸어요. 그것을 이 사람들을 통해 또 다시 확인했어요.


중국 당구


"야, 우리 당구나 칠까?"

"우리 한 판 칠 시간은 되나?"

"포켓 한 판이야 금방 치지."


친구와 포켓볼이나 치면서 시간을 보낼까 했지만 왠지 건들면 돈을 내라고 할 거 같아서 직접 치지는 않았어요.



이것이 저와 친구가 타고 갈 빵차였어요.


중국 유원


"내려요."

"예?"

"이 차 사람 적어서 안 가요."


표를 팔던 직원이 차 안에 탑승한 사람들에게 표를 회수하고 돈을 돌려주기 시작했어요. 이 차가 안 가는 이유는 별 거 없었어요. 탑승한 사람이 넷 밖에 없었기 때문에 안 간다는 것이었어요. 다음에 있는 막차인 9시 30분 차를 타고 가든가, 아니면 택시를 타든가 하라고 하며 무심하게 돈을 환불해주기 시작했어요. 한족의 중국에 다시 돌아오자마자 어이 상실의 시대가 시작되었어요.


"이거 뭐야?"


둘 다 어이없어 했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안 간다는 차를 가게 할 방법은 없었어요. 일단 짐을 다 챙긴 후 지금 둔황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친구가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택시 타고 가라고 했어요. 택시 요금이 얼마냐고 물어보자 1인당 70원이라고 했어요. 친구가 흥정을 시도해 보았지만 전혀 소용없었어요. 무조건 70원이라고 했어요. 친구가 류원에 뭐가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유원? 이게 다야."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왜 생각이 없냐하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진짜 욕나오는데 왜 욕이 나오냐하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9시 반까지 버티다 빵차를 타고 가느냐, 아니면 택시 타고 가느냐. 걸어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 140km는 삼장법사, 혜초대사가 빙의한다 해도 못 걸어가. 진지하게 수학적으로 접근해보자. 이놈들은 지금 사람 적다고 운행을 안 했어. 9시 반에 사람이 또 없다면 운행 또 안할 수 있다. 일단 오늘 이 황량한 곳에서 버티다 내일 아침 다시 빵차로 온다고 해도 또 첫차에 사람이 없으면 또 안 가겠지. 운행을 안 할 확률 x% 는 계속 붙어있다. 9시 반에 확실히 출발한다면 모르겠는데, 이것이 불확실하고, 9시 반 막차도 운행 안 한다고 하면 이때는 진짜로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만약 여기에서 밤을 지샌다면 명사산이야 어떻게든 보겠지만, 대신 충전 문제는 극단적으로 심해질 것이며, 육체적 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 버릴 것이었어요. 둔황에서 숙소에서 잠을 자지 못할 경우, 이게 단순히 하루 더 고생하는 수준이 아니라 시안 도착해서 밤이 찾아올 6월 11일 밤까지 버텨야 했어요. 참고로 오늘은 6월 6일. 원래 둔황에서 하루 숙소에서 머무르며 피로를 풀고 정비를 한 후 다시 고난의 행군을 하기로 계획했어요. 그게 바로 오늘. 만약 오늘 둔황에 가지 못하고 유원에서 텐트치고 노숙한다면 쿠차에서의 고난의 행군과 시안까지의 고난의 행군이 이어져 거대한 고난의 대행진이 될 것이었어요.


더욱이 이것은 2009년 발칸유럽, 중부유럽 7박 35일 여행보다도 훨씬 더 고역인 것이, 중국 기차 좌석은 가히 역대 최악이었거든요. 7박 35일 여행 중 야간 버스 이동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잠은 잘 잤어요. 왜냐하면 아무리 못난 버스라도 최소한 고개가 앞으로 쏠리지는 않았거든요. 중국 기차 좌석이 최악인 이유는 머리가 앞으로 쏠린다는 것이었어요. 이 말이 이해가 안 된다면 벽에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서 가만히 있어보세요. 그게 중국 기차 좌석이에요.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잠은 벽에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서 자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그런 수행을 6월 4일 밤부터 6월 11일 밤이 찾아올 때까지 해야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말 아니었어요. 삼장법사, 혜초대사가 빙의하고 실크로드 환상에 중독된다고 해도 그것은 할 짓이 아니었어요. 삼장법사, 혜초대사는 걸어서 갔겠지만, 밤에 바닥에 누워서는 잤겠죠.


"지금 택시 타자."

"택시?"

"우리 만약 이거 안 타고 9시 반까지 기다렸다가 그거도 또 사람 없다고 안 가봐. 우리 완전 죽는 거야. 우리 시안 갈 때까지 한 번도 못 쉬어."


방법이 없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기차역에서 60위안 부르는 거 그냥 탈 걸."

"뭐 이럴 줄 알았냐."


결국 1인당 70위안을 내고 택시를 탔어요.


창밖 풍경은 그냥 황량했어요. 마땅히 찍을 것도 없었고, 찍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막고굴 꼭 가야해?"

"둔황 와서 막고굴 안 볼 거면 왜 왔냐? 둔황이 막고굴 보러 오는 데인데."


여행 계획에 정말 무신경했던 친구가 아이폰으로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야, 거기 입장료 220위안이란다."

"응. 거기 정말 비싸."


솔직히 그따위 막고굴 왜 가야하는지 저도 몰랐어요. 실크로드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가볼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그런 거 전혀 없었거든요. 둔황 막고굴이니 천불동 계곡이니 하는 것은 제게 모두 무가치한 것들이었어요. 왜냐하면 현재의 위구르인들과 관련이 없으니까요. 현재의 중국을 아는 데에도 하나도 도움이 안 되구요. 오히려 위구르인들을 억압하는 한족의 중국 정부에 알아서 돈만 엄청 갖다 바치는 것이구요. 그래도 꼭 가려고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둔황에 왔으니까. 둔황에 가는 이유가 막고굴 보러 가는 건데 그거 안 보면 둔황에 온 이유가 없어져 버렸어요. 이러면 제 입장에서 정말 분통터질 수 밖에 없는 것이, 기껏 위구르 일정 희생해가며 둔황에 왔는데 둔황에 온 목적이 없어져버리니 저는 제 소중한 시간과 돈만 버린 셈이 되어버리는 것이었어요.


친구는 필사적으로 둔황 막고굴에 갈 필요가 없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어요.


'진짜 막고굴 가기 싫은가보구나.'


둔황 여행 정보도 제가 다 찾아본 것이었어요. 둔황은 유원역에서 빵차 타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 둔황 야시장이 재미있다는 것, 막고굴이 둔황에 있다는 것 모두 제가 찾은 정보였어요. 친구는 자유로운 영혼의 여행을 추구해서 여행 정보를 정말 거의 찾아보지 않았어요. 택시 안에서 이렇게 열심히 여행 정보를 찾는 친구의 모습은 기차표 예매하며 일정 짜던 첫날 밤 이후 처음이었어요.


"거기 동굴도 마음대로 못 들어가고 몇 개 밖에 못 들어간대. 게다가 사진도 못 찍는대."


친구가 이것저것 찾아서 제게 보여주었어요.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보니 정말 갈 가치가 하나도 없었어요. 솔직히 아무리 실크로드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막고굴은 둔황에 온 이상 가려고 했어요. 이게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둔황 와서 막고굴 안 보겠다는 것은 진짜 일산 호수공원 가서 호수 안 보겠다고 하는 것이랑 똑같은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찾아준 정보들을 보니 이것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 촬영 불가야 그렇다고 치지만, 볼 수 있는 석굴 갯수가 10개 되나마나 했어요. 아무리 일산 호수공원 놀러가서 호수 보러 가는 심정으로 가는 둔황 막고굴이라지만 이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참고로 220위안은 우리나라 돈으로 4만원 정도에 해당해요.


"안 가. 고작 굴 10개 보러 4만원 내냐."

"그것 봐. 거기 갈 필요 없대니까."


제가 막고굴에 안 가겠다고 하자 친구가 매우 좋아했어요. 막고굴에 안 가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거기가 지금도 절 기능을 하고 있다면 아쉬움이 남았겠지만, 그렇지 않았거든요. 어차피 중국의 유적이라면 시안에서 만날 친구 B 때문에 병마용을 갈 일정이 있었어요. 순간 이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고굴을 안 간다면 친구가 가고 싶어하는 명사산 월야천만 가면 끝이었어요. 긴장이 풀어졌어요.


친구가 숙소 주인과 통화하는 동안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어요. 막고굴에 가려면 갈 수 있었어요. 둔황에 가는 이유가 막고굴 때문이라는 말에 친구도 그것 자체에는 동의했거든요.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면 가기는 했을 거였어요. 그러나 저 자신도 가기 싫었어요. 그냥 일산 호수공원 가서 호수를 보아야 한다는 것 같은 의무감 때문에 가려고 했을 뿐이었어요. 의무감 때문에 가서 돌아오는 게 후회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가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었구요. 그런데 이렇게 막고굴을 안 가기로 하자 일정이 어린 아이 앞니 빠진 것처럼 뻥 뚫려버렸어요. 이 일정을 채울 것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어요. 기껏 해봐야 숙소에서 잠이나 늘어지게 자는 것, 아니면 시내에 뭐 있나 어슬렁어슬렁 기어나가보는 것 뿐이었어요. 아마 여기도 낮에는 상당히 더울 것이 분명하니 보나마나 저나 친구나 잠이나 자자고 할 것이 분명했어요. 긴장이 풀려버렸고, 생각을 해야할 이유도 찾을 수 없었어요. 만사 귀찮고 잠이나 자고 싶었어요. 잠이나 퍼질러 자도 어차피 시간 남아서 느긋하게 명사산 갈 테니까요.


버스터미널에서 택시가 멈추어섰어요. 친구와 택시에서 내렸어요. 잠시 후 숙소에서 보내준 택시가 왔어요. 택시 요금은 공짜였어요. 게다가 친구가 흥정을 잘 해서 숙박 요금도 몇 위안 할인받았어요. 방은 3인실이었는데 그냥 저와 친구 둘만 쓰라고 해주었어요.


"침대다!"


가방을 풀고 바로 드러누웠어요.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침대에 드러누우니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몸이 녹아버리는 것 같았어요.


"야시장 가자."

"야시장?"

"여기 야시장 재미있대. 어차피 막고굴 안 가면 우리 돈에 그렇게 쪼들리지도 않잖아? 내일 오전에 할 것도 없구."


액체가 된 몸을 억지로 다시 굳히며 침대에서 일어났어요.


"거기 어떻게 가?"

"글쎄? 물어봐야지."


친구에게 미안했어요. 정말 많이 미안했어요. 이제 한족의 중국. 저는 벙어리. 벙어리까지는 아니고, '메이요우', '메이야오', '쩌거쩐머마야', 이얼싼쓰우류치빠쥬슈 밖에 몰라요. 듣고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 게스트하우스에서 저 중국어 가지고 버텼어요. 사실 사람들 상상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외국어 능력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거든요. 돈 문제는 계산기를 사용하면 되고, 손님이 어리버리대고 있으면 가서 뭐든 해주면 되요. 사실 입만 나불나불대는 것보다 말 없이 가서 사이좋게 어버버하면서 손님 도와주는 것이 더 좋은 평을 받기도 하구요. 그래서 중국어를 공부할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그러다보니 중국인과 많이 접촉했음에도 중국어를 못했고, 이제 친구가 말로 처리해야 하는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만 했어요. 이것은 분명히 여행중 상당히 힘든 일. 친구에게 부담을 안겨주어야 해서 정말로 미안했어요.


친구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야시장 가는 방법을 물어보았어요. 숙소에서 큰 길로 걸어나가 버스를 타고 가면 되는데, 이제 곧 버스가 끊길 거라고 알려주었어요.


"여기 무슨 홍수 났어? 왜 이렇게 물이 한가득이야?"


숙소에서 나와 큰 길로 걸어가는데 길 일부분이 물바다였어요. 적당히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은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많이 고여 있었어요. 이 물 웅덩이를 피해서 돌아가고 싶었지만 길 전체가 물에 잠겨 있어서 어둠 속에서 얕아 보이는 부분으로 살살 걸어갔어요. 분명히 여기 건조기후지역인데 이렇게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와 길이 잠기고 있다니 조금 우스웠어요.


야시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어요. 친구가 운전기사가 이 차가 막차라고 말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버스는 사람을 꽉 채워서 출발했어요. 버스가 어떻게 가는지 계속 집중해서 살펴보았어요. 왜냐하면 돌아올 때에는 무조건 걸어와야 했거든요. 다음날 막고굴을 갈 거였다면 택시를 타고 체력을 아끼는 방법도 생각해보았을 거에요. 그러나 막고굴을 안 가고 오전 내내 쉴 건데 체력을 아낄 이유가 없었어요. 이렇게 된 이상 몇 위안 안 하더라도 돈을 아끼는 것이 나았어요. 게다가 택시비 140위안을 내어서 공금을 갖고 있는 친구에게 현금도 없었구요.


버스 기사가 야시장에 도착했다고 알려주었어요. 버스에 탄 사람들 다 야시장에 가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사람들을 따라가니 과일 시장이 나왔어요.


실크로드 과일



과일 시장을 따라 걸어가니 둔황 야시장이 나왔어요.



"일단 우리 저녁부터 먹자."


말이 좋아 저녁이지 이미 밤 10시 55분이었어요. 이 시각까지 둘 다 아무 것도 안 먹고 있었어요. 이러다가는 오늘 굶게 생겼어요. 오늘 굶으면 다음날 점심까지 계속 굶어야 했어요. 아침에는 피곤해서 일어날 리가 없었으니까요. 하루 종일 굶은 상태로 야시장을 구경하려고 하니 힘만 빠지고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었어요. 게다가 숙소까지 또 걸어가야 했어요. 상당히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 먹고 숙소로 돌아가서 배고파지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 될 것이었어요.


식당 거리가 있어서 일단 거기에서 먹을 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둔황 밤 풍경


"여기는 왜 죄다 사천 음식이지?"


식당들이 다 사천 음식점이었어요. 쓰촨성이 여기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고 하지만, 여기는 간쑤성. 이왕이면 간쑤성 음식을 먹고 싶었어요. 쓰촨성 음식은 사천성 가서 먹어야지, 간쑤성에서 먹고 싶지 않았어요. 쓰촨 음식을 제외하자 들어갈 수 있는 식당 수가 확 줄어버렸어요. 일단 '사천 음식'이라고 대놓고 간판에 걸어놓지 않은 식당으로 들어갔어요.


둘 다 현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친구가 위챗페이로 결제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어요. 식당에서 전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어요. 친구와 식당 주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었지만 눈치껏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식당 주인은 위챗 페이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로부터 바로 돈을 받을 수는 없으니 위챗 페이를 사용하는 자신의 지인이 돈을 대신 받아줄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어요. 식당 주인이 위챗 페이로 결제할 수 있다고 하자 음식을 주문했어요.


중국음식 궁보계정


먼저 궁보계정. 상하이에서 먹었던 궁보계정보다는 별로였어요. 맛있기는 했지만 상하이에서 먹었던 궁보계정보다는 맛이 떨어졌어요. 그래도 무난하게 잘 먹었어요.


중국요리 당콩볶음


그리고 친구가 좋아하는 당콩 볶음. 이것은 짭짤해서 딱 밥반찬, 아니면 맥주 안주였어요. 어찌 보면 중국에서 가장 일관된 맛을 내는 음식 아닐까 싶었어요. 이것은 한국에서 먹어도 거의 똑같은 맛이 났거든요.



차오판이 나오자 정말 실망했어요. 양이 너무 적었어요. 지금까지 먹어온 그 수북한 차오판이 아니었어요. 딱 밥공기에 고봉밥으로 들어 있었어요. 꽉꽉 눌러 담은 것도 아니었어요. 수북하고 양 많은 볶음밥을 기대했는데 이것이 나오자 많이 섭섭했어요. 맛은 흔하고 맛있는 중국의 볶음밥이었어요. 특별하다고 할 만한 점은 하나도 없었어요. 실패한 음식이라고 할 것은 아니었지만 성공이라고 할 선택도 아니었어요. 한국이었다면 보통. 그러나 여기가 중국이라는 것 때문에 아쉬움이 남았어요.


배를 채우고 나서 야시장 구경을 시작했어요.



나무판에 그림을 양각으로 새긴 기념품을 팔고 있었어요.


중국 둔황 나무 조각 기념품


이것들은 모두 현장에서 직접 일일이 제작된 것이었어요.



둔황답게 불교와 관련된 기념품도 이것저것 있었어요.


Dunhuang


"여기가 표주박이 유명한가?"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각 두꺼비도 있었어요.



등을 긁으면 개구리 소리가 나는데, 이것은 라오스, 태국에서 많이 보았던 것이었어요. 이것이 중국에서도 판매되고 있었어요. 원래 어디 것인지 정말 궁금해졌어요.


중국 기념품 도장



"슬슬 돌아가자."

"숙소까지 거리가 얼마나 돼?"

"5km 정도."

"그냥 걸어갈까?"

"그래도 되고."


평지로 5km 정도 걷는 것이라 걸어가도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 같았어요. 아마 한 시간 반 정도면 충분히 숙소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슬슬 시장에서 빠져나오는데 시장 중심에서 멀어지자 식당들이 보였어요.


"위구르어다!"


중국 둔황 양고기


식당 간판 위에 위구르어가 적혀 있었어요. 이역만리에서 고국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어요. 사람들이 양꼬치를 먹고 가라고 소리쳤어요. 아쉽게도 저와 친구 모두 양꼬치를 먹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게다가 여기에서 양꼬치를 보니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위구르인들이 팔던 큼지막한 고기 덩어리가 꽂혀 있던 카밥과 너무 비교되었어요. 거기에서 위구르인들이 팔던 양꼬치가 진품이고, 여기 것은 짝퉁처럼 느껴졌어요. 가격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비해 비쌌구요.



"우리 밀크티나 한 잔 사서 들고 갈까?"


긴 거리를 걸어야했기 때문에 카페에서 밀크티 한 잔 포장해서 가기로 했어요. 밀크티 한 잔은 10위안이었어요. 자정이 넘은 시각. 밀크티를 주문한 후, 자리에 앉아서 잠시 쉬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감상했어요. 당연히 중국어로 된 가요들이었어요. 여기는 이제 회족과 한족의 땅이니까요. 회족은 원래 한족과 다른 민족이었다고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한족과 똑같아요. 단지 회족은 이슬람을 믿을 뿐이에요. 이슬람을 믿는 한족이 회족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한족 문화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얼핏 보아서는 구분 자체가 불가능해요. 외모도 한족과 구분할 수 없을 뿐더러 사용하는 언어도 중국어이거든요.


"이 노래 괜찮은데?"



카페에 걸린 LCD TV에 곡명과 가수가 떴어요. 비록 중국어로 된 노래였지만 이번 여행의 주제곡으로 삼고 싶었어요. 잽싸게 카메라로 LCD TV 화면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친구에게 가수와 제목을 기억해달라고 할 수 없었거든요. 비록 흔들리기는 했지만 한자를 알아볼 수는 있었어요. 이 정도면 충분했어요. 네이버 및 다음 사전 서비스에서 필기인식 지원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 비슷하게 한 글자 한 글자 그려서 입력하고 복사해서 검색하는 식으로 노래를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확실히 디지털 카메라 때문에 많은 것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기록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밀크티가 나오자 숙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숙소로 돌아가는 길. 중국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석상이 보였어요.






석상 사진을 찍고 친구와 이런 저런 잡담을 하며 걸었어요. 저도 대단하고 친구도 대단했어요. 지쳐서 나가떨어져도 이상할 상황이 아닌데 둘 다 멀쩡하고 쌩쌩하게 잘 걷고 있었거든요. 여행 첫날 상하이를 돌아다닐 때가 생각났어요. 그때만 해도 밤에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내색을 안 했을 뿐이지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어요. 그러고보면 그때도 인천공항에서 밤을 새고 중국으로 넘어왔던 날이라 몸 상태가 좋은 상태는 아니었어요. 그때와 비교해보면 체력이 엄청나게 좋아졌어요. 매일 세 끼 고열량으로 꼬박꼬박 챙겨먹고 강행군을 해서 그런가? 스스로 여행에 적합한 체력이 되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은하수다!"


길을 걸어가는데 가로등이 다 꺼져버렸어요.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어요. 땅 위의 모든 불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킨 어둠은 밤하늘에 은하수를 토해내었어요. 조금전 가로등 불빛 밑으로 걸어갈 때만 해도 별이 많이 보이기는 했지만 은하수는 안 보였어요. 여기는 불빛이 있고 모래 먼지도 많아서 은하수가 보일 거라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가로등이 꺼지자 밤하늘에 은하수가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이거 완전 라오스 루앙프라방 아니야?'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이 친구와 라오스 여행을 한다면 어떨까? 그나저나 라오스 여행기는 대체 언제 다 쓰지? 아직도 그 여행기는 태국에 머물러 있는데. 은하수를 보자 지난해 라오스 여행을 갔던 것이 떠올랐고, 라오스는 고사하고 아직 라오스 전 일정인 태국 여행기조차 한참 남았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그러고보니 이 여행 끝나고 돌아가면 이제 중국 여행기도 써야 하는구나. 이거 대체 언제 다 쓰냐. 여행기 다 쓰기 전에 새로 외국 여행 안 간다고 결심하면 내년까지 외국 여행 안 가고 여행기만 열심히 쓰는 거 아니야?


숙소로 돌아오니 1시가 넘은 시각이었어요.


반응형

Posted by 좀좀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