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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 식당에서 따판지 팔겠지?"

"따판지? 글쎄."

"그거 여기서 꼭 먹어보라고 했대메. 너 엄청 먹고 싶어했고."

"너 그거 먹고 싶어? 나는 별 생각 없는데."

"야, 여기가 마지막 위구르 지역이야.


친구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여행하는 동안 자기가 그렇게 따판지를 강조했으면서 마지막에 오자 시큰둥해졌어요. 만약 다음날 또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머무를 거라면 다음날 먹어도 되었어요. 그러나 오늘이 위구르인들이 사는 지역에서의 마지막 여행. 다음날은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빠져나가 한족과 회족의 중국으로 들어갈 것이었어요. 거기도 찾아보면 어떻게 따판지를 파는 곳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것은 엄연히 짝퉁.


"어쨌든 저녁에는 무조건 따판지 먹어야 해. 오늘 못 먹으면 우리 따판지 영원히 못 먹어."


솔직히 저나 친구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다시 올 확률은 거의 없었어요. 0이라 보아도 아마 괜찮을 거에요. 일단 우리나라에서 이 지역으로 가는 직항 노선이 없어요. 설령 있다고 해도 저렴하지 않을 거에요. 여기는 기차로 오기도 힘든 지역. 뭐가 어쨌든 기차로 오면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리니까요. 교과서를 구하러 다시 신장 위구르 자치구로 오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오직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아까 그 보아놓은 식당에서 따판지를 팔기만을 바래야 했어요.


따판지는 중국말로 大盘鸡 인데, 大盘 은 큰 접시, 鸡 는 닭이라는 뜻이에요. 음식 이름 자체가 닭 큰 접시. 우루무치에서 살아본 적이 있는 친구 말로는 이것이 일단 크기가 커서 놀라고, 한국인들 입맛에 매우 잘 맞는 음식이었어요. 맛은 닭도리탕 맛이라고 했어요. 감탄하며 먹을 정도로 아주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익숙하고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맛이랬어요. 우루무치 가는 기차에서 만난 한족들은 따판지와 피따이멘을 먹어보라고 추천했다고 했구요.


중국 쿠차 식당


식당에 도착했어요.


위구르 건물 내부 장식


내부는 은은한 색을 자랑하는 화려한 벽이었어요. 조명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너무 강해서 사진으로는 내부가 아주 어두컴컴하게 나왔어요. 비록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파리만 날리는 식당 같지는 않았어요. 오늘이 일요일이기도 하고, 여기 사람들이 저녁을 늦게 먹는 편이기도 했어요. 사진 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는 남녀 한 쌍은 꼬챙이에 양꼬치를 꿰고 있는 중이었어요. 손님이 아니라 여기 가게 사람으로, 저녁 장사를 준비중이었어요.


"여기 따판지 팔아요?"

"예, 팔아요."


따판지를 파는지 확인한 후 자리로 가서 앉았어요. 탁자 유리와 탁자 사이에 메뉴가 끼어 있었어요.



"따판지 있다!"



따판지는 위구르어로 토쿠 코루므스 toxu qorumisi 라고 해요. 그런데 여기는 dapanji 라고 적혀 있었어요. 가격은 47위안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 아래 적혀 있는 것은 라즈지로, 이것의 가격은 57위안이었어요.


"따판지가 47위안이라고? 여기 엄청 싼데?"


우루무치, 카슈가르에서 47위안은 쭝판지 中盘鸡 가격이었어요. 따판지와 쭝판지의 차이는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크기 차이에요. 쭝판지는 중자, 따판지는 대자로 나와요. 여기는 쭝판지는 없고 따판지만 있다고 했어요.


"따판지에 뭐 먹으라고 했었지?"

"피따이멘."


친구가 중국어로 피따이멘 2개를 주문했어요. 피따이멘은 하나에 5위안이었어요.


요리를 시키자마자 친구의 스마트폰을 충전시키기 시작했어요. 저도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시키기 시작했어요. 정말 여기에서 최대한 많이 충전해야 했어요. 여기에서 충전한 것으로 다음날 밤까지 버텨야 했거든요. 다음날 일정은 류위안 도착해야 알게 되겠지만, 웬만하면 둔황에서 밤에 볼 만한 것을 보러 나갈 생각이었어요. 둔황 일정이 상당히 빠듯해서 야시장은 첫날에 보는 것이 좋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배터리 충전을 최대한 많이 해야 했어요. 한 번 충전 문제가 발생하면 시안 도착할 때까지 이것을 제대로 시원하게 해결할 기회가 마땅히 없었어요.


음식을 주문한 후 기다리는데 뭔가 하나 먹고 싶어졌어요. 탁자 아래 메뉴를 다시 살펴보았어요.



카밥은 전부 5위안. 뒤를 보니 입구에 닭튀김을 쌓아놓고 팔고 있었어요. 가서 얼마냐고 물어보았어요. 5위안이었어요. 하나 들고왔어요.


중국 닭꼬치


"평범하네."


진짜 생긴 것 보며 예상한 맛과 맛이 아주 똑같았어요. 한 치의 오차도 없었어요. 맛이 없지는 않았어요. 식당에서 닭고기를 튀김옷 입혀서 튀겼는데 그거 맛없게 하면 그것도 나름 진기명기. 특별한 맛이 전혀 없었어요. 먹자마자 '아, 이거 닭튀김' 이라는 말이 0.05초 안에 튀어나오는 맛있어요. 냄새도, 맛도 전부 그냥 너무나 흔해빠진 닭튀김의 것이었어요.


"음식 왜 이렇게 안 나오지?"

"글쎄."

"주문 까먹은 거 아니야?"

"기다려 봐. 어차피 우리는 음식 빨리 나오는 것보다 아주 늦게 나오는 게 좋잖아? 여기서 충전 오래 하면 할 수록 우리한테 이득인데 음식 후다닥 먹어치우고 멍하니 충전 때문에 앉아 있는 거보다 낫잖아."


음식을 주문한지 30분이 되었는데도 음식이 나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친구는 혹시 우리 주문 잊어버린 것 아니냐고 하면서 확인해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제게 물어보았어요. 그러나 저는 오히려 아주 잘 된 일이니 얌전히 있자고 말했어요. 지금 저녁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친구 스마트폰과 제 카메라 배터리 충전이었어요. 사실 밥을 후다닥 먹었다 하더라도 기계가 충분히 충전될 때까지 어떻게든 뭉쓰며 버텨야 했어요. 이렇게 음식이 안 나와주는 것이야말로 지금 저와 친구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었어요.


Uyghur


식당은 정말 한가했어요. 아직까지는 식사하러 들어오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어요.


"나왔다!"


주문한지 40분이 넘어서야 드디어 따판지와 피따이멘이 나왔어요.


大盘鸡


"이거 뭐냐?"


저나 친구나 그 위용에 기겁했어요. 이 따판지가 얼마나 크냐 하면 이렇게 커요.


위구르_음식_따판지


저 접시 위에 있는 스마트폰이 아이폰이니 얼마나 큰 지 감이 올 거에요.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저와 친구가 앉은 탁자는 아주 살짝 기울어져 있었어요. 깔끔한 수평이 아니라 왼쪽이 오른쪽보다 미묘하게 낮았어요. 저 커다란 그릇에 음식이 수북히 쌓여서 나온 것도 충격인데, 국물이 콸콸콸 옆으로 쏟아지고 있었어요. 이러니 이 크기가 주는 충격이 두 배였어요. 졸졸졸도 아니고 줄줄줄도 아니고 진짜 좔좔좔 콸콸콸 옆으로 국물이 쏟아지고 있었어요. 접시 자체도 이미 커서 둘이 이거 어떻게 다 먹을지 진지하게 걱정되는데, 이 그릇에 음식이 넘칠 정도로 주어서 국물이 콸콸 쏟아지니 둘 다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음식을 많이 주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쏟아지게 많이 주는 경우는 처음이었거든요. 제 아무리 탁자가 아주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하더라도 이 미묘한 어긋남에 국물이 콸콸 쏟아져 흘러나온다는 것은 양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니까요.


결국 식당 직원을 불러서 휴지를 달라고 해서 휴지로 탁자 위에 쏟아진 국물을 엄청나게 닦아내야 했어요.


"그런데 피따이멘은 왜 안 나와?"

"그게 피따이멘이야. 면이 혁대처럼 두껍다고 피따이멘 皮带面 이라고 하는 거야."


皮带面


친구 말에 의하면 따판지 국물을 피따이멘에 비벼먹는 것이라고 했어요. 친구 말대로 국물과 닭고기 등을 퍼서 피따이멘에 비벼먹었어요.


"이거 엄청 맛있는데?"


정말로 한국인이 좋아할 맛이었어요. 너무나 친숙하면서 살짝 이질적인 맛이었어요. 어떤 맛이었냐 하면 카레 가루 팍팍 들어간 닭도리탕 맛이었어요. 친구도 맛있다고 매우 좋아했어요. 서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정신없이 먹었어요. 매워서 땀을 흘린 것이 아니었어요. 정말 열심히 열광하며 먹었기 때문에 땀이 났어요. 땀을 닦으며 얼마나 남았는지 보았어요.


"이거 왜 이렇게 줄지 않냐?"


둘 다 배부르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따판지는 많이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어요.


"야, 너 힘내."

"나도 힘내고 있어."


처음에는 고추도 먹고 다른 야채도 건져 먹고 했어요. 그러나 가면 갈 수록 배가 너무 불러서 이것저것 먹을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가서는 고기와 감자만 골라먹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많았어요. 너무 많아서 먹다 쉬다 먹다 쉬다를 반복했어요. 빨리 먹을 필요는 전혀 없었어요. 오래 먹을 수록 전자기기들을 눈치 안 보고 충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일부러 늦게 먹지도 않았어요. 너무 많은데 남기기는 싫어서 배가 너무 부르면 쉬고, 그러다 조금 더 먹을 수 있을 거 같으면 또 한 두 조각 먹기를 반복했어요. 그렇게 먹다 보니 자잘한 야채는 남기고 감자와 닭고기만 다 건져먹는데 한 시간이 걸렸어요.


이거 정말 47위안일까? 이렇게 크고 양이 많은데? 다른 곳에서는 이 가격이면 다 쭝판지 가격이었는데?


공금으로 계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친구가 계산했어요. 가격은 68위안. 따판지 47위안, 피따이멘 2개에 10위안, 닭고기 꼬치 5위안, 콜라 2개 6위안이었어요. 게다가 주인 아저씨는 이것보다 훨씬 큰 '특대 따판지'도 있다고 했어요. 이것은 진짜 4인 이상이 먹는 것으로, 68위안이라고 했어요. 이 가게에서는 쭝판지는 없고 따판지만 있다고 했는데, 아마 그 특대 따판지가 진짜 따판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사실 저것도 따판지가 맞기는 한 것이 저와 친구 둘이서 어떻게 닭고기와 감자를 다 건져먹기는 했지만 4인용 요리였거든요. 둘이서 억지로 우겨넣다시피하며 얼추 다 먹은 것 뿐이었어요.


전자기기 충전도 상당히 많이 했고, 정말 배부르게 먹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어요.


"우리 이제 뭐하지?"

"야시장 하면 야시장이나 구경하고 버스 타고 가자."

"야시장? 나 지금 배부른데..."

"뭐 거기서 특별히 먹자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 가자구."


점심 먹기 직전 위구르 빙수인 도그를 먹었던 가게가 있는 쪽으로 갔어요. 분명히 야시장이 열릴 시간이 되었어요. 저녁 8시 반이었거든요. 그러나 야시장 준비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분위기는 시장이 파하는 분위기였어요.


"야시장 해요?"

"오늘 일요일이라 야시장 안 해요."


아까 오늘 야시장 열린다고 한 사람들 다 뭐야?


지금까지 여기에서 야시장이 열릴 거라는 말을 믿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어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오늘이 일요일이라 야시장이 안 열린다고 알려주었어요. 그렇다면 여기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어요. 여기는 이제 정말 샅샅이 다 돌아보았어요. 하다못해 공동묘지까지 보았어요. 여기에서는 정말 할 것이 없었어요.


"이제 어쩌지?"


버스 타고 기차역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 그렇다고 여기에 있을 수도 없었어요. 여기는 아무 것도 없고, 이제 시간이 늦어서 버스가 언제 끊길지 몰랐거든요. 기차역 가면 정말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새벽에 거기 아무 것도 없어서 허공에 대고 마구 욕하면서 걸어간 그곳이거든요. 게다가 거기는 한족 거주 지역. 쿠차에서 한족 거주 지역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제게 진정한 신장 위구르 여행은 끝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어요. 한족 거주 지역에 들어가는 순간 한족과 회족 문화권에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거든요. 다음날 기차로 하미역을 지나가기 전까지 몸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겠지만, 위구르인들의 삶을 보는 것은 사실상 끝이었어요. 기차에서 내려서 잠시 어디를 들려서 위구르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보고 갈 것이 아니라 주구장창 기차를 타고 류위안까지 쭉 가는 것이었으니까요.


일단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다리 건너 시장쪽으로 걸어갔어요.



다리 건너편에 있는 시장도 이제 파장 분위기였어요.



이 아주머니들은 호박과 오디를 팔고 있었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오디


"너 오디 먹을래?"

"아니, 괜찮아."


친구에게 오디를 사서 먹겠냐고 물어보자 바로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이 위구르인들은 오디에서 나온 물만 따로 모아놓고 있었어요.


실크로드 뽕나무 열매


비록 시장이 파장 분위기이기는 했지만 사람들로 북적였어요. 오히려 낮에 왔을 때보다 더 정신없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오토바이 수레, 그리고 안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어요.


실크로드 시장


실크로드 농업


실크로드 위구르인


중앙아시아 바자르


'이제 위구르인들이 사는 곳 여행도 끝이구나.'


시장을 둘러보며 정말 매우 아쉬웠어요. 이제야 이쪽 말이 되기 시작하는데 떠나야만 했어요. 비록 위구르인들이 중국 공산당 정부의 폭정과 탄압, 차별에 고통받고 신음하는 것이 느껴져서 괴롭기도 했지만, 여기 문화가 너무 우즈베크 문화와 비슷해서 시큰둥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구르인들과 그들의 문화를 접할수록 정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어요. 게다가 이 여행에서 친구가 되었다고 할 만한 위구르인은 오직 한 명 뿐. 물론 이것은 제가 중국 심카드를 만들지 않아 위챗 아이디 교환을 못한 것이 크기는 하지만, 어떻게 서로 교류할 만한 친분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기도 했어요. 말 몇 마디 하고는 '위챗 있어요? 우리 아이디 교환해요'라고 다짜고짜 위챗 아이디 교환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어쨌든 이제 기차역을 향해 갈 때가 되었어요. 일단 시장을 지나 걸어가는데 둘 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어요. 아까 그 의류 시장 맞은편에 공공화장실이 하나 있었어요. 친구가 아직 별로 급한 것은 아니라고 해서 저부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어요.


아...이것이 말로만 듣던 대륙의 화장실이구나.


화장실은 작지 않았어요. 꽤 컸고, 칸도 많았어요. 그런데...


문이 없었다.


양 옆으로만 낮은 벽이 있었고, 정면으로는 문이 없었어요. 예전 중국에서 화장실에는 문이 없어서 서로 마주보며 볼 일 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어요. 그거 보고 황당해하면서 설마 진짜 그러겠냐고 생각했어요. 이건 지독하게 감시하려는 용도거나, 아니면 기자가 거짓말이나 심한 과장을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추측했어요. 간이 화장실이거나 공사중인 화장실이라면 문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는 멀쩡한 화장실이었어요. 진짜로 문이 없었고, 양 옆에만 낮은 벽이 있었는데, 일어서면 옆 칸을 시원하게 볼 수 있을 정도였어요. 사람 앉은 키보다 조금 더 높은 정도였어요. 게다가 우리나라 푸세식 변소처럼 한 칸마다 구멍이 하나 있는 것이 아니라 긴 일자형 수로가 있고, 그 위에 볼 일을 보는 방식이었어요. 수로에 물이 세차게 흐르지 않아서 옆사람이 어떤 볼 일을 보셨는지 확인할 정도는 아니었지만요. 이 화장실에 비하면 우리나라 시골에 간혹 남아 있는 그 푸세식 변소는 최첨단 현대식 화장실이었어요. 화장실에 문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확실한 인류 문명의 진일보에요.


배가 싸르르 아팠기 때문에 남이 보든 말든 신경쓸 때가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들어와서 다 아무렇지 않게 볼 일을 보고 있었어요. 저도 그나마 깨끗한 칸에 들어가서 공개된 상태로 볼 일을 보고 나왔어요. 제 맞은편으로 사람이 들어갔어요. 여기에서 민망해하면 진짜 민망해지기 때문에 오직 제 일에만 신경썼어요. 맞은편 사람도 자신의 맞은편에 사람이 있다는 것에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았어요. 제 볼 일에만 집중한 후, 밖으로 나왔어요.


"화장실 안에 어때?"

"너가 들어가봐. 진짜 대박이다."


친구가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동안 저는 가방에서 비누와 수건을 꺼내 세면대에서 세수를 했어요. 세수를 하니 한결 더 상쾌해졌어요. 잠시 후 친구가 나왔어요.


"어때?"

"여기는...좀 높네."


친구와 다시 가방을 짊어매고 화장실에서 나가려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저와 친구에게 뭐라고 말했어요. 친구는 못 알아들었지만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 화장실 사용료로 한 사람당 1위안씩 내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몇 사람이 계속 나갔는데 돈을 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이 아주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도망을 간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일부러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라고 말했어요. 당연히 알아들을 리가 없었어요. 아주머니가 제 영어에 당황해하는 동안 친구를 잡아끌고 나왔어요.


"빨리 가자."

"왜?"

"다른 사람들 다 그냥 나가는 거 놔두면서 우리한테 화장실 사용료 1위안씩 내라더라."


긴 설명이 필요 없었어요. 상황 파악을 한 친구도 공공화장실에서 멀어지기 위해 열심히 걸었어요.


"우리 오늘 엄청 많이 걸었네."

"얼마나 걸었는데?"

"벌써 16km 걸었다."

"그래?"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걸은 거리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어요.


"우리 조금만 더 걸으면 신기록 세우겠는데?"

"얼마?"

"전에 걸은 것 중 제일 많이 걸은 게 몇인데?"

"18km."

"조금 욕심나기는 하네."

"우리 기차역까지 걸어갈까?"

"기차역이 얼마인데?"

"8km."

"너 걸어질래?"

"응."


친구는 자신있게 기차역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대답했어요. 어차피 이제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지금 당장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도 문제였어요. 기차역에서 정말 할 것이 없었거든요. 거기에서 돗자리 깔고 누워 있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게 생긴 곳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새벽에 나오면서 확인했어요. 돗자리 깔고 드러누우면 바로 쫓겨나게 생긴 역이 쿠차 기차역이었어요. 왜 그 작은 역을 심하게 감시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시간은 많았어요. 아주 흘러넘쳤어요. 쉬지 않고 2시간 안에 가야 한다고 한다면 분명히 무리였어요. 제 아무리 직진이라고 해도 이게 산책로도 아닌 데다 둘 다 모든 짐을 다 짊어메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4시간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어요. 4시간 안에만 도착하면 된다고 한다면 한 시간에 2km 만 걸어도 충분했어요. 새벽 1시 45분 기차였으므로 1시까지만 도착하면 되었거든요.


"길 쉬워?"

"어. 이 길 따라서 쭉 걸어가다가 우회전하면 돼."

"걸어가자! 까짓거 기록 한 번 세워보지."


길이 어렵다면 조금 망설였을 거에요. 모르는 길을 걸을 때 평소보다 오래 걸리는 이유는 길을 찾는 데에, 그리고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약해서 무턱대고 빨리 걸을 수 없기 때문이거든요. 이 위구르인 거주 지역에서 기차역까지 가는 길은 매우 단순했어요. 친구가 보여준 지도를 보니 길을 찾을 일이 단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직진하면 되었어요. 쭉 직진하다 보면 새벽에 본 곳이 나오게 되어 있었어요.


사이좋게 열심히 걷기 시작했어요.



계속 걸어갔어요.



"우리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서 조금 쉬자."


다시 찾아온 허리 통증과 어깨의 고통. 허리를 앞으로 굽힐 수 없으니 둘 다 상당히 아팠어요. 마침 거리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이 보여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구입해 거리에 쭈그려앉아 먹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가방을 풀고 쭈그려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어요. 가방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그냥 쉬는 것도 아니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구요.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저거 시장 아니야?"

"그냥 가게. 우리 시간 없어."

"뭐가 시간이 없어. 어차피 지금 우리 시간 많이 남았잖아. 저거 빨리 보고 가자."


친구는 이러다가 기차역에 늦겠다고 그냥 가자고 했지만 그것은 친구가 지나치게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었어요. 8km라면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어요. 기차표 발권도 마쳤기 때문에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안으로 들어가면 되었어요. 즉 1시까지만 기차역에 도착하면 되는 상황. 아무리 게으름을 부린다 해도 1시 전에는 기차역에 도착할 자신이 있었어요. 실상 아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고, 사진을 찍을 것도 없었어요.


게다가 이것은 제게 진짜로 마지막 위구르인의 문화를 볼 수 있는 순간이었어요. 사실 이 시장이 있을 것이라고 전혀 기대도 안 했기 때문에 일종의 숨겨져 있던 보너스 게임을 찾아낸 듯한 기분이었어요. 진심으로 중국 한족들의 문화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었어요. 친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실상 이것으로 제 여행이 끝이었어요. 제 여행의 목적은 위구르인들이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으니까요. 친구에게는 다음날 둔황 일정부터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는 일정이지만, 저는 반대로 이 순간까지가 제가 진정으로 보고 싶어하던 것을 보는 순간이었어요.


불만에 가득찬 친구를 잡아끌고 시장으로 들어갔어요.


위구르인 야시장


입구에서는 견과류를 팔고 있었어요.


실크로드 견과류


중앙아시아 견과류


견과류 파는 곳을 대충 둘러보고 시장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어요.


위구르인 야시장 문화


"야시장 여기네!"


시장 안쪽은 식당가였어요. 여기는 파장 분위기도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계속 와서 음식을 먹고 있었어요. 쿠차 야시장을 못 봐서 아쉬웠는데, 드디어 제대로 된 쿠차 야시장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이 장면을 보자 갑자기 흥분되기 시작했어요. 마지막 승부의 마지막 배팅에서 갑자기 대승을 거둔 기분이었어요. 여기에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만약 진작 알았다면 보다 일찍 여기로 걸어왔든가, 버스를 타고 여기로 넘어왔을 거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시장이 열려 있길래 그냥 들어가본 것이었어요. 그 속에 아까 그렇게 기다리다 허탕치고 못 본 쿠차 야시장이 있었어요.


위구르인 음식 문화


양머리뼈가 수북히 쌓여 있었어요.


uyghur style kebab


요리사가 커다란 닭다리를 열심히 굽고 있었어요.


치킨


통닭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어요.


"야, 이제 가자. 10시 되어 간다."


친구가 빨리 역으로 가자고 재촉하기 시작했어요. 시장을 조금 더 자세히 구경하고 싶었어요. 아까 먹은 따판지 때문에 배가 부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뭐라도 하나 사먹고 싶었어요. 만약 제가 심카드를 구입해서 바이두 지도를 깔았다면 그것을 보고 친구에게 아직 시간 많다고 확실히 반박했을 거에요. 그러나 저는 심카드를 구입하지 않았고, 그래서 정확히 얼마나 남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10시에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이 안전하기는 했어요. 막판에 달릴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지금 몸 상태로 막판에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할 수 없었어요. 이 속도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어요.


'얘 왜 이렇게 재촉해대냐. 진짜 중국에서 너무 오래 있었던 거 아니야?'


흔히 선진국 국민일 수록 부지런하고 후진국 국민일 수록 게으르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 지내보고 겪어보면 후진국 사는 사람들이 미리미리 하는 것은 더 잘 해요. 왜냐하면 예상대로 되는 경우가 별로 없거든요. '이대로 하면 딱 이 시간에 되겠지'라고 생각하면 꼭 뭔가 하나 생겨서 그 시간에 안 끝나요. 행정절차든, 사소한 약속에 나가든 간에요. 그래서 시간을 오히려 넉넉하게 잡고 일을 착수해야 해요. 멀쩡했던 길이 갑자기 엉망이 되어 있을 수도 있고, 재수없게 평소에는 절대 없던 교통체증이 생길 수도 있어요. 평소대로 준비한 서류가 위의 지시로 서류미비가 된다든가, 직원이 휴가갔다고 아주 한참 뒤에 다시 오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다보니 후진국 살 때는 모든 일을 선진국에서 살 때보다 훨씬 긴 시간을 갖고 들어가야 해요. 중국도 말이 좋아 15억 인구로 밀어붙여서 G2지, 그 내부는 당연히 후진국. 당연히 긴 시간을 갖고 일을 들어가야 해요. 공항에 마중나올 때부터 엄청 일찍 나오더니 지금도 마찬가지였어요.


슬슬 10시가 되어가고 있어서 시장에서 나오려는 순간.


"우리 저거 먹자!"

"또 뭐?"

"노란 수박! 노란 수박 잘라서 판다!"



너가 수박을 거부할 리가 없다.


친구는 착하고 아주 솔직해요. 친구가 수박에 열광하는 모습은 이번 여행 중 매우 많이 보았어요. 이 친구가 아무리 지금 역에 늦을 거 같아서 심리적으로 혼자 쫓기고 있다지만 수박 한 쪽 먹는 것을 거부할 만큼은 아니었어요. 수박 한 쪽 먹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배가 부르다 해도 수박 한 쪽 들어갈 공간조차 없을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이 친구는 수박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수박을 거부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야, 이거 이제 여기서 먹는 마지막 수박이야."


당연히 친구는 먹자고 했어요. 이왕 먹는 거, 처음 보는 노란 수박으로 먹었어요. 노란 수박은 1.5위안이었어요.


"그냥 수박이랑 똑같네."


노란 수박을 잘라서 파는 것은 여기가 처음이었어요. 속이 노란 수박을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잘라서 파는 곳을 보지는 못했거든요. 속이 노란 수박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러나 그냥 수박이었어요. 속이 빨간 수박과 맛과 향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어요. 빨간 거나 노란 거나 다 똑같은 수박이었어요.


또 열심히 걸었어요. 이 야시장을 넘어가자 한족 거주 지역이었어요. 한족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위구르인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가게가 나오자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가게에서는 왕라오지를 팔고 있었어요. 위구르인들 사는 곳에서는 왕라오지를 볼 수 없었어요. 게다가 가게에서 맥주도 팔고 있었어요. 위구르인들 사는 곳에서는 맥주도 볼 수 없었어요. 이것은 바로 이제 제가 한족 거주 지구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가게 주인도 중국어만 아는 한족이었어요. 기분이 나빴어요. 결국 위구르인 문화에서 벗어났구나.


음료수를 사서 버스 정거장 의자에 앉아 마셨어요. 이제 정말로 깜깜하고 어두웠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또 걷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아침에 방향을 꺾었던 그 자리가 나왔어요. 거기에서 다시 앉아서 쉬다가 일어나 새벽에 걸어서 너무나 익숙한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거리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양꼬치를 먹고 있었어요. 이제 위구르인은 정말로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술을 마시며 양꼬치를 먹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한족. 고기를 굽는 사람도 거의 다 회족들이었어요. 회족들은 얇은 천으로 된 흰 모자를 써요. 이 모자를 보고 한족과 회족을 구분할 수 있어요. 위구르인과는 외모가 아예 달라서 바로 구분 가능하구요. 한족인데 얇은 천으로 된 흰 모자를 썼다면 그게 회족이에요.



계속 걸어갔어요. 다시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또 펑펑 소리가 들렸어요. 똥배가 튀어나와 자기가 자기 무릎을 못 볼 거 같이 생긴 한족 아저씨가 하얀 러닝 셔츠 속옷 바람으로 길다란 채찍으로 쇠팽이를 돌리고 있었어요. 옛날에 채찍을 무기로 사용하는 장수들도 있었다고 해요. 이 한족 아저씨가 채찍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니 채찍으로 충분히 사람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 한가운데에서 쇠팽이를 돌리고 있다가 저와 친구가 지나가야 하자 채찍질을 멈추었어요. 한족 아저씨가 채찍질을 멈추자 후다닥 지나갔어요.


"우리 좀 쉬자."


이제 기차역까지 거의 다 왔어요. 시계를 보니 12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어요. 이제는 가다가 사고만 나지 않으면 무조건 기차 시간 전까지 기차역에 도착할 것이었어요. 짐을 내려놓고 인도와 차도를 가르는 턱 위에 주저앉았어요. 이대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 여행이 끝나는구나. 이제부터는 친구의 여행. 친구가 들으면 그런 것이 어디 있겠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그랬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여행을 하는 전반부에서 일정은 제가 담당했어요. 한족이 사는 곳을 여행할 곳에서의 일정은 친구가 짤 차례. 물론 같이 준비하기는 하겠지만 계획의 중심은 친구였어요. 친구가 보고 싶다는 것이 무조건 우선이었어요. 이것은 이미 중국 출국 전에 정해진 것이었어요. 이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는 정말로 한족의 중국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거든요. 한족 문화를 볼 거라면 타이완에 가지, 중국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문화대혁명으로 다 파괴해버린 중국과 그 기간 중화문명부흥운동을 일으킨 타이완. 한족 문화를 볼 거라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미 답은 나와 있어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쿠차 기차역이 보였어요.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공안이 지키고 있었어요. 당연히 사진을 찍을 수 없었어요. 새벽에 기차역에서 나오며 사진을 찍어놓기를 정말 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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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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