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48 중국 여행기 간쑤성 둔황 시내 풍경

좀좀이 2016. 10. 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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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자마자 할 일이 있었어요.


빨래.


빨래를 해야 했어요. 짐을 적게 들고 왔기 때문에 빨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어요. 아직 여행이 9일이나 남아 있었어요. 등에 메는 가방 2개만 가져왔기 때문에 옷 자체를 많이 가져오지 못했어요. 최대한 옷을 빨 수 있을 때 빨아야 했어요. 여기는 건조기후. 비가 올 일은 없을 것이고, 낮에도 꽤 더울 거에요. 모든 옷을 다 빨 수는 없었어요. 빨 수 있는 옷은 위의 셔츠와 양말, 신발 깔창 정도였어요. 이거라도 빨 수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빨래를 하고 밖으로 널러 나갔어요.


숙소 앞에 불을 켜놓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로 칠흑같은 밤이었어요. 밖에 빨래를 널어놓을 빨랫줄이 있을 리 없었어요. 문에서 나가자마자 바로 길이었으니까요. 문 앞에 나무 벤치가 하나 있었어요. 신발 깔창은 바닥에 놓고, 셔츠는 벤치에 널어놓았어요.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벤치에 사람이 앉을 리가 없었어요. 이 여름에, 싹싹 더운 날씨 속에 밖으로 바득바득 기어나가 벤치에 앉아 미라 되기 체험을 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더욱이 여기는 중국. 중국인들은 피부가 검게 타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해요. 이는 중국 뿐만 아니라 황인종에게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기는 해요. 하지만 중국인들은 한국인들보다 더 살갗이 검게 타는 것을 싫어해요. 어느 정도냐 하면 남들 선탠하러 가는 해변조차 절대 타지 않도록 꽁꽁 싸매고 양산 쓰고 갈 정도에요. 그런 중국인들이 햇볕 내리쬐는 벤치에 앉을 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았어요.


빨래를 널고 방으로 돌아와 친구와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우리 유원역 다시 돌아가야 할까?"

"갑자기 왜?"

"오늘 우리 빵차 운행 안 해서 택시 타고 왔잖아."

"응, 140위안."

"만약 우리 유원역으로 돌아갈 때 또 빵차 운행 안 하면 어떻게 해?"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어요. 오늘은 그래도 4명이 되어서 한 사람당 70위안에 해결할 수 있었어요. 만약 유원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빵차는 운행하지 않고, 거기로 가는 사람이 저와 친구 밖에 없다면? 이러면 어쩔 수 없이 택시 한 차를 둘이서 타야 했어요. 이때 가격은 280위안. 어떻게 흥정을 잘 한다고 한다 치더라도 한 사람당 100위안 넘게 내야 할 것은 분명했어요. 만약 이렇게 된다면 쿠차 신비대협곡을 안 보고 아낀 돈을 전부 이 둔황-유원 교통비로 다 날려버리는 것이었어요. 그 이전에, 설령 네 명이 모였다 하더라도 70위안이니 한 사람당 왕복 차비가 140위안. 이것은 너무 손해였어요. 70위안이 흥정을 못하고 바가지를 쓴 것도 아니었어요. 저희와 합승한 두 명은 중국인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은 둔황 사는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도 우리와 똑같이 70위안 지불했어요. 친구가 기분이 팍 상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어요. 평소대로라면 예상 교통비의 2배를 썼고, 그나마도 흥정이 되지 않아 바가지 썼다고 상당히 기분 상해 있었겠지만, 현지인도 그렇게 내는 거 보고 정상 요금 내고 왔다고 그러려니 하며 넘기고 있었거든요.


"만약 진짜 재수없어서 우리 둘만 덜렁 타고 유원역으로 돌아간다면 그 손해는 우리가 뭔 짓을 해도 못 메꿔. 너도 알잖아. 우리가 아무리 아껴봐야 한 끼 잘 아껴야 20위안 정도 나올 건데. B 왔을 때 우리 둔황에서 교통비로 돈 왕창 써서 진시왕릉 못 간다고 할래?"

"그렇네. 그러면 일정 바꿔? 우리 일정 바꾸면 기차표 또 바꿔야 해."

"한 번 알아보자."


친구와 기차표를 다시 알아보았어요.


"둔황에서 시안으로 바로 가?"

"아니. 도시 하나 들리면 되잖아. 둔황에서 시닝 안 가?"

"시닝 안 가."

"그런데 시닝 볼 거 뭐 있어?"

"거기 호수 있어."

"거기도 쿠차 천산신비대협곡 같은 거 아니야?"


친구와 저 모두 시닝에 대해 알아본 것이 없었어요. 시닝에서 볼 것이 무엇이 있나 찾아보니 호수가 볼 만 하다고 했어요.


"야, 여기도 호수가 시내에 있지는 않을 거 아냐? 차비 엄청 많이 나온다고 하면 너 호수 보러 갈 거야?"

"아니."


친구가 시닝에 호수 보러 간다고 하자 아주 중요한 것이 떠올랐어요. 그것은 바로 시간과 경비. 시닝에서 유명한 것은 칭하이 호수. 그런데 이 청해호가 과연 시내에서 가깝느냐가 문제였어요. 만약 시내에서 멀다면 이건 천산신비대협곡의 재림. 게다가 시닝에서 1박 하기로 한 것도 아니었어요. 시닝 일정은 당일치기로 둘러보고 나오는 일정이다보니 만약 청해호가 멀다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밖에 없었어요. 택시를 타고 많은 경비를 지출하며 청해호로 가든가, 아니면 청해호를 포기하든가요. 청해호를 포기한다면 시닝에 가는 이유가 없어져버린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제 말에 친구가 납득하고 새로운 노선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유원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둔황역에서 시안 방향으로 기차로 갈 수 있는 도시를 가야 했어요.


"란저우 간다."

"란저우?"


둔황역에서 시닝으로 가는 기차는 없었고, 대신 란저우로 가는 기차가 있었어요.


"란저우 가?"

"란저우 너가 가고 싶다고 했던 곳이잖아. 거기 뭐 있지?"

"글쎄? 나는 라면 먹으러 가는 건데?"

"란저우 라면?"

"응. 그거 완전 맛있어. 그래서 란저우에서 먹는 란저우 라면의 맛은 어떤지 가서 먹어보려구."


친구는 란저우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라고는 '란저우 라면' 밖에 없었어요.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어요. 둔황역과 시안 사이에 있는 곳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 중 그나마 친구가 가고 싶어했던 곳이 란저우였어요. 나머지는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둘 다 원래 계획했던 것에 없는 곳들이었어요. 이대로 다시 여행 계획을 고쳐서 란저우로 가야 하나?


"이제 늦었다. 란저우로 갈지, 유원으로 돌아갈지는 내일 생각하자."

"그래. 내일 일어나서 결정하자."


유원에서 시닝, 시닝에서 시안으로 가는 기차표 2장을 둔황에서 란저우, 란저우에서 시안으로 가는 기차표로 바꿀지는 해가 뜬 아침에 결정하기로 했어요.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거든요. 벌써 새벽 3시가 넘었어요. 친구는 대화를 마치고 얼마 안 가 잠들었어요. 저는 여행 기록을 작성한 후, 아까 들었던 음악을 찾아보았어요. 인터넷에 있었어요. 사진으로 찍어놓은 제목과 가수가 엉뚱한 제목과 가수가 아니라 제가 찾던 그 노래의 제목과 가수 맞았어요. 노래까지 찾은 후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잠이 영 오지 않았어요. 시계를 보았어요. 새벽 6시였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의자에 널어놓은 빨래를 확인해 보았어요. 웃옷은 이미 다 마른 상태. 신발 깔창과 양말도 조금만 더 말리면 다 마를 것 같았어요. 이미 다 마른 웃옷을 걷어서 안으로 들고온 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어요.


"야, 일어나!"


친구가 저를 깨웠어요. 가까스로 눈을 떴어요.


"몇 시야?"

"10시."


전날 폭음한 사람처럼 힘겹게 일어나 침대 위에 앉았어요.


"너 어제 몇 시에 잤냐?"

"6시."

"그때까지 뭐 했는데?"

"여행 기록 쓰고, 노래 찾아보고 했지."


4시간 채 자지 못했어요. 졸리고 피곤했어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제 슬슬 체크아웃 준비를 해야 했어요. 체크아웃 후 가방을 숙소에 맡기고 명사산, 월야천을 보고 시내로 나가서 시내 구경 조금 하다가 유원역 근처에서 캠핑을 하는 것이 원래 계획. 자리에서 일어나서 씻어야 하는데 침대가 말굽자석이 철가루 잡아당기는 것처럼 제 몸을 계속 잡아당기고 있었어요.


"아, 눕고 싶다. 침대에서 누워서 자니까 완전 천국 아니?"

"응. 이게 얼마만에 누워보는 침대냐?"

"우리 그냥 여기서 오늘 하루 더 머무를까? 피로도 좀 더 풀고."

"그러면 일정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냥 눈 감고 고개 숙이고 졸고 있어야 정상인 상황. 중국 기차 허리 파괴 직각 의자에 이틀 밤을 고문당하고 이제서야 누워서 4시간 채 자지 못했어요. 정신이 제정신일 리가 없었어요.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차린 것도 아니고, 친구가 깨워서 침대에 앉아 있는 것 뿐이었어요.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고 머리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그저 누워서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다는 생각 뿐이어야 정상이었어요. 그렇지만 순간 머리가 비행중인 보잉 747 비행기의 엔진처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하루 더 쉬려면 무조건 둔황역으로 가야 해. 오늘 저녁에 명사산 갔다가 쉬고 내일 기차를 타? 그러면 뭔가 또 날짜가 꼬이는데...둔황에서 란저우 가는 기차는 하루 세 대. 오늘 여기서 하루 더 자면 숙박비는 분명히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머리를 계속 굴리며 계산을 해보았어요. 6월 11일 아침에 시안에 도착해야 하고, 오늘은 6월 7일. 오늘 여기에서 자면 내일이 6월 8일. 내일 저녁에 둔황에서 출발한다면 6월 9일 아침에 란저우 도착. 시안 가는 기차는 6월 10일 밤에 타야 숙박 하나 아낄 수 있으니까 란저우에서 1박 해야 한다는 건데, 란저우가 과연 텐트 치고 자기 좋은 곳이 있을까? 차라리 조금만 나가면 다 시골인 여기가 하룻밤 텐트 치고 자기 더 좋지 않을건가?


일단 여기에서 쉬는 것부터 먼저 하자.


지금 중요한 것은 이 방 숙박 연장을 하는 것. 저나 친구나 모두 엄청나게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정은 조금 나중에 생각하고 먼저 숙박을 하루 더 연장하기로 했어요.


친구가 숙박비를 치르고 방으로 돌아왔어요.


이제 문제는 란저우에 몇 시에 가느냐는 것이었어요. 8일 오후에 가는 기차를 타면 란저우에 9일 아침에 도착. 이러면 란저우에서 1박을 또 해야 했어요. 이렇게 하면 B를 만나기 전에 한 번 더 숙소에서 쉬고 야간이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숙소비가 더 나간다는 단점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9일 아침 란저우 도착에 10일 밤 란저우발 시안행 기차를 타는 일정이다보니 란저우에서 낮을 2번 보내야 했어요. 이 더위 속에서 밖에서 낮을 두 번 보내는데 숙소에 안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반면 9일 아침에 란저우로 가는 기차를 타면 마지막이자 최고의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게 되는 상황이었어요. 8일 밤 둔황에서 노숙, 9일 주간 이동, 9일 밤 란저우에서 노숙 후 10일 아침에 란저우 구경하고 그날 밤 시안 가는 밤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었거든요. 이 일정의 장점은 딱 하나 뿐이었어요. 8일 오후에 란저우행 기차를 타는 것과 달리 숙박비가 추가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단점이라면 이것이 쉬워보이지만 정말 힘든 일정이라는 것. 중국의 기차 좌석은 직각 의자에 쓸 데 없이 등받이가 높아서 앉아서 가는 것 자체가 고문이에요. 얼핏 보면 낮에 기차에서 계속 쉬다가 밤에 란저우 도착해 텐트 치고 자는 것이니 쉬워 보이지만 이 기차에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역이었어요. 밖에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것이 차라리 이 기차 의자에 하루 종일 앉아서 가는 것보다 더 편했어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둘 다요.


"돈도 절약하고 아주 캠핑 질리게 해볼까?"

"그럴까? 그러면 네가 산 텐트 완전 본전 뽑을껄?"

"우리 하게!"


친구가 과감히 고난의 행군을 하자고 했어요. 같이 신나서 그렇게 하기로 하기는 했지만 긴장이 되었어요. 일정만 보면 7박 35일 발칸유럽 여행때 이것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강행군 일정이 있었어요. 이때 연속 6박을 야간 이동으로 해결한 일정이 있었거든요. 그러나 그때는 초봄이어서 샤워 문제에서 조금 더 자유로웠고, 야간 버스 의자조차 중국의 기차 좌석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어요. 중국 기차 좌석칸이 야간 이동 단 하루만에 그렇게 사람 진을 빼놓을 수 있다는 것을 겪고 나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어요. 무슨 100% 리얼 도시 서바이벌 프로젝트 찍는 것도 아니고, 란저우는 일단 '아주 힘듦'에서 시작할 것이 뻔했어요. 그래도 한편으로는 흥분되었어요. 이렇게 매우 모험적으로 여행할 기회는 정말 흔치 않거든요.


야간 이동이야 일정 때문에 연달아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같이 노숙하면서 여행하자고 할 수는 없어요. 야간 이동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엄두도 못 내는 것도 아니에요.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즉 아무리 '나는 약해요', '나는 그런 거 절대 못할 거에요'라고 해도 막상 상황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노숙은 달라요. 이것은 충분히 피할 수 있어요. 정 돈이 없다면 눈을 최대한 낮추어서 곰팡이 포자를 마시고 바퀴벌레와 동침하는 형편없는 숙소라도 들어가면 되니까요. 국내 여행이라면 최악의 경우 PC방이나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에서 밤을 보내는 방법도 있구요. 야간 이동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서 상황 닥치면 어떤 사람이든 누구나 모두 하게 되는 것이지만, 노숙은 순전히 '돈을 절약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 웬만해서는 할 일이 없어요.


당연히 제 주변에 '여행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노숙하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딱 이 친구 하나 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전부 경비 절약하기 위해 노숙하자고 하면 결사반대해요. 어쩌면 이것이 여행중 노숙을 하는 마지막 여행일 수도 있어요.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렇게 험한 여행은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게다가 지금 아끼려고 하는 돈은 한 사람당 약 만 원. 만 원 아끼자고 노숙하자고 하면 대부분 그냥 자기가 숙소비 내겠다고 할 거에요.


이제 기차표를 변경할 일만 남았어요.


"어? 기차표 변경 왜 안 되지?"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기차표 변경을 시도했지만 기차표가 변경이 되지 않았어요. 몇 번을 시도해보았지만 계속 에러 메시지만 떴어요. 친구가 전화를 해 보았어요.


"48시간 이내에는 기차표 변경 안 된대!"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어요. 방법은 오직 하나. 지금 시닝 가는 기차표를 취소하면 취소 수수료가 1인당 28위안인데 이것을 물고 취소를 한 후 다시 발권을 하든가, 아니면 숙소비 낸 거 환불받고 지금 당장 명사산으로 달려가야 했어요. 숙소비 낸 것이야 아직 체크아웃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니 미안하다고 하며 환불받으면 될 일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명사산과 월야천을 아직 못 보았다는 것이었어요. 이 땡볕 아래에서 명사산을 기어올라가는 것은 그 자체가 고역일 것이 뻔했고, 이렇게 명사산을 다녀온 후 씻지도 못하고 또 노숙을 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이것으로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유원-시닝-시안까지 전부 야간 이동이라는 점이었어요. 이것은 상상만 해도 그냥 지옥 그 자체였어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유원에서 시닝 가는 기차는 6월 9일 새벽 2시 53분 기차. 무조건 오늘 유원으로 넘어가야 했어요. 기차역에 가서 사정해보아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취소 수수료 28위안이 사라질 리는 없었어요. 지금 당장 명사산으로 달려가든가 아니면 28위안 물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어요. 그 외에는 그 어떤 방법도 없었어요.


"그냥 28위안 물자. 오늘 식비 아끼면 28위안은 메꿀 수 있잖아."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요. 28위안은 오늘 하루 아껴쓰면 충분히 메울 수 있는 돈. 한 사람당 한 끼에 15~20위안씩 쓰고 있었으니 오늘 하루 점심과 저녁을 10위안짜리 차오판만 먹으면 20위안은 메꿀 수 있고, 목마른 것 꾹 참고 버티면 음료수 값으로 8위안 정도는 메꿀 수 있었어요.


"이거 표 왜 또 예약이 안 돼?"


친구가 다시 한 번 분통을 터뜨렸어요. 표를 취소하고 28위안 위약금을 물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이 표가 환불 처리 끝날 때까지 표를 예약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어요. 표를 하나만 예매한 상황이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지만 저와 친구는 전구간 다 예약해놓은 상황이었거든요. 유원-시닝, 시닝-시안, 시안-상해를 모두 예약해놓았기 때문에 표를 취소하지 않으면 더 이상 예약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떴어요. 유원-시닝, 시닝-시안 표를 취소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아직 환불 처리가 되지 않아 예약칸에 그대로 살아있었어요. 이것들이 안 없어지니 예약칸에 자리가 없다고 새로 예약이 안 되는 것이었어요.


표를 구하는 방법은 이제 기차역 가는 것. 친구가 주인 아주머니께 기차역을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기차역은 3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간 후, 거기에서 또 어떻게 가서 새로 버스를 타고 가야 했어요.


"지금 기차역부터 가?"

"아, 짜증나! 내가 지금 돈을 안 낸 것도 아니고, 지들이 환불 처리 늦게 해주는 거면서 왜 표가 예약이 안 돼?"


친구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어요. 정말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기는 했어요. 예약 취소를 하고 새로 예매했는데 예약 취소 절차가 안 끝났다고 새로 표 예매가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단순히 이 표 저 표 잔뜩 잡아놓고 있는 상황에서 예약이 안 된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은 표를 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환불을 아직 안 해주었기 때문에 예약 슬롯이 남아 있지 않아서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일단 친구와 밖으로 나왔어요. 점심을 먹어야 했거든요. 숙소가 명사산 코 앞에 있었기 때문에 시내로 나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어요. 점심을 먹으면서 기차역을 다녀올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지 고민해보기로 했어요.


오후 2시 30분. 숙소에서 나왔어요.



숙소는 정말로 명사산 근처였어요. 그냥 명사산에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명사산과 매우 가까웠어요.


중국 둔황


일단 3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어요.



전날밤 야시장으로 가던 그 길로 갔어요.


중국 해바라기씨


중국 국민 간식


아시아 대륙 사람들이 상당히 좋아하는 해바라기씨를 수북히 쌓아놓고 팔고 있었어요. 이것은 볼 때마다 왜 우리나라만 해바라기씨를 안 먹을까 궁금해져요. 동쪽 중국부터 시작해서 저 멀리 터키, 발칸 유럽까지 해바라기씨를 간식으로 잘 먹거든요. 이 해바라기씨가 희안하게 황해와 압록강을 못 넘어왔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씨앗을 까먹는 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에요. 호박씨도 까먹고 해바라기씨도 까먹고 하거든요. 이것은 최근에 중국에서 들어온 문화가 아니라 나이 많으신 분들도 알고 드시는 것이에요. 단지 즐겨서 먹지 않을 뿐이지요.



일단 시장을 쭉 관통해서 맞은편으로 나갔어요.



시장을 빠져나가며 이것저것 가볍게 둘러보았어요.


둔황 빵


둔황 과일가게



둔황의 상징 같은 조각상이 보였어요.



둔황 상징


길을 가는데 서점이 보였어요.


"서점 있다."

"서점? 서점 가고 싶어? 위구르어 교과서 없잖아."

"서점 이제 안 가. 여기에서 살 책이 뭐가 있겠냐? 상하이에도 없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여기에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거 원하면 내가 타오바오에서 짝퉁 하나 구해줄께."

"짝퉁은 필요없어. 중국 애들이 아마 그거 파일은 인터넷에 다 올려놓았을 건데."


저작권 개념이 없는 중국인 만큼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중국 간체판이 당연히 인터넷에 파일로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중국 인터넷 환경이 워낙 폐쇄적이라 그들만의 인터넷 세계로 들어가 찾을 수 있냐가 문제일 뿐이죠. 이것은 이미 전날 노래를 찾으면서 한 번 경험해 보았어요.


"야, 저기 디코스 있다."


dicos


"디코스? 그게 뭔데?"

"중국판 롯데리아? 그런데 맛 진짜 없어. 그냥 중국 체험한다 치고 한 번 먹어봐도 되고. 그런데 나는 추천 안 한다."

"안 먹어."


친구가 먹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입맛 자체가 까다로운 편은 아니에요. 음식 맛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편. 물론 친구가 진짜 맛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정말로 맛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맛 가지고 까탈스럽게 구는 것은 아니에요. 말 그대로 같이 밥먹기 참 좋은 친구에요. 개인적으로, 자기가 무난히 잘 먹는다고 하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에요. 하나는 진짜로 무난히 잘 먹고 맛있어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먹는 자리라면 어디를 가도 대환영을 받아요.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까탈스러워서 뭘 먹어도 체념하고 먹는데 자기 입맛이 진짜 무난하다고 박박 우기는 사람. 이런 사람이랑 밥 같이 먹으면 정말 돈 아깝고 심지어는 밥상 엎어버리고 싶어지기까지 해요. 여기에 집밥이 맛있다 노래까지 불러대면 아무리 인성이 좋아도 밥 먹는 시간에만큼은 절대 상종하고 싶지 않고 꼴 보기 싫어지는 최악의 인간. 친구는 전자에 속해요. 어지간한 것은 다 맛있게 잘 먹어요. 제가 기겁하면서 썩은 빙초산 같다고 기피하는 중국의 식초조차도 좋아해요. 그런 친구가 맛없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로 맛이 형편없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친구도 인간인 만큼, 자신의 절대적 기준에서 맛이 쓰레기일 수도 있고, 저 돈 주고 저거 먹을 바에는 그 돈으로 다른 거 사서 먹는 것이 훨씬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는 상대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친구 입에서 맛 진짜 없다고 나왔다면 그냥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좋았어요.





만만해보이는 식당을 찾아서 걸어다녔어요. 오늘 점심 메뉴는 차오판. 오직 차오판. 양을 많이 줄 것 같은 곳을 찾아야 했어요. 그러려면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나서 살짝 후줄근한 느낌이 있는 식당에 가야 했어요. 오후 3시 반이 되어서야 그런 식당을 찾아내었어요.



"뭐 시킬까?"

"우리 취소수수료 메꾸려면 차오판만 먹어야 된다니까."

"진짜?"

"뭐 별 수 있냐. 여기 말고 공금 구멍난 거 메꿀 곳이 없는데."


친구가 한숨을 푹 내쉬며 차오판 2개만 시켰어요.


차오판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어요.




식당 벽에는 음식 낭비하지 말자는 계몽 포스터가 붙어 있었어요. 중국인들은 식당에서 많이 시키고 많이 먹고 많이 버려요. 한때 우리나라 고기부페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바로 중국인들이었어요. 중국인은 정말로 많이 고기를 떠가서 고기를 많이 먹어요. 확실히 기름진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먹어본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고기를 상당히 잘 먹어요. 단순히 고기만 많이 먹으면 좋은데, 문제는 중국인들은 반드시 고기를 산더미처럼 퍼가서 엄청나게 남겨놓는다는 것이에요. 삼겹살 1~2인분 남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접시에 수북히 쌓아놓고 남겨서 굽지도 않고 가버려요. 굳이 고기부페 뿐만이 아니라 중국인들 문화가 그래요. 이것은 상당히 유명하고 잘 알려진 중국인들의 문화. 중국 정부도 이 문화가 문제가 있다고 인지했는지 음식 낭비하지 말자는 포스터가 식당 벽에 붙어 있었어요.


"저거 잘 지켜질까?"

"글쎄...그렇게 쉽게 안 바뀔걸?"


친구와 잡담을 하는데 주문한 중국의 볶음밥인 차오판이 나왔어요.



친구 얼굴이 굳었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딱 볶음밥 2개만 덜렁 나왔거든요.


"야, 너 내가 요리 하나 시키면 먹을래?"

"우리 공금 메꿔야한다니까."

"내가 내 돈으로 산다구. 너 먹을 거야?"

"너가 사면 먹지."


친구는 자기가 산다면서 가지 볶음을 주문했어요.


'아, 얘 분노했구나.'


그제서야 딱 떠올랐어요. 카슈가르의 인민공원에서 텐트 치고 노숙하던 날, 친구가 중국에서 매우 고생했을 때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그때 자기가 돈 없어서 점심에 매일 제일 싼 계란 볶음밥만 하나 시켜서 먹었다고 말했었어요. 지금 볶음밥만 먹는 것이 하필 그 이유가 돈 때문이었어요. 차라리 속이 안 좋다든가, 볶음밥 말고 다른 것에 전부 질려버렸다든가 하면 모르겠지만, 이것이 돈 없어서 먹는 볶음밥이었어요. 친구가 제일 싼 계란 볶음밥 두 개 덜렁 나오자 화가 날 만 했어요. 이 친구의 지금 이 분노가 이해되는 것이, 저 역시 이 여행에서 인스턴트 라면은 아예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봉지 라면, 컵라면 모두 돈 아끼려고 하도 먹어대어서 이 즐겁고 재미있는 여행에서만큼은 그것들을 돈 아끼려는 목적으로 만큼은 절대, 아예 먹고 싶지 않았어요. 만약 지금 볶음밥 대신 컵라면을 끓여먹고 있었다면 친구가 분노한 것이 아니라 제가 분노했을 거에요.


친구가 주문한 가지 볶음이 나왔어요.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밖으로 나왔어요.


"우리 기차역 안 가도 돼?"

"거기 안 가도 돼. 내가 알아서 해볼께."


친구가 자기가 알아서 기차표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했어요. 날씨는 불 땐 아궁이 앞에 바짝 다가가 쭈그려 앉아 있는 것 마냥 뜨거웠어요. 마땅히 할 것도 없었어요.



둔황 시내는 예뻤어요. 그러나 이렇게 조성한지 그다지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았어요.


'20년 지나면 보다 자연스럽게 아름답지 않을 건가?'


급조해서 만든 관광타운 느낌이 많이 나서 솔직히 아직은 짝퉁 느낌이 강했어요. 게다가 여기는 오직 관광만을 위한 도시 같았어요. 이런 것은 아마 시간이 많이 흐르면 자연스러워지면서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


다시 3번 버스를 탔어요.



명사산에 도착하니 오후 4시 40분이었어요.



중국 둔황 명사산 입구


선이 참 고운 모래 언덕이 저와 친구를 부르고 있었어요.


"여기에 모래로 뭐 만들어 놓았다."



예, 실크로드는 낭만 따위 없어요. 대상들이 목숨 걸고 돈 벌려고 지나가던 길이었어요.


위험한 실크로드


이렇게요.


모래로 상을 만들어놓기는 했는데 관리를 잘 안 한 것인지,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꾸 건드려대서 이렇게 된 것인지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았어요.



아직 날이 매우 뜨거웠기 때문에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이 되면 슬슬 다시 나오기로 했어요.



전날 숙소로 가는 길에 고여 있던 물은 이제 많이 줄어들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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