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49 중국 기행 둔황 명사산, 월아천 鸣沙山, 月牙泉

좀좀이 2016. 10. 23.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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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샤워를 했어요. 숙소에서 1박을 더 하니 이런 좋은 점이 있었어요. 뙤약볕에 달구어진 몸을 찬물로 샤워해서 식힐 수 있었거든요. 건물 안은 햇볕이 바로 들어오지 않는데다 에어컨까지 틀어놓아서 매우 시원했어요. 샤워를 하고 나서 소파에 걸터앉았어요. 이제 이 더위가 적응이 될 만한데도 더웠어요.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어요.


친구와 숙소에서 그렇게 밍기적거렸어요. 명사산 입장은 밤 늦게까지 가능했기 때문에 급할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여기도 베이징 시각과는 시차가 상당히 나는 곳이었어요. 저녁 6시라는데 전혀 저녁 6시 같지 않았어요. 더욱이 슬슬 하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일몰 시간은 나날이 더 늦어지고 있었어요. 단지 저와 친구가 멀고 먼 카슈가르에서 계속 동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몰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못 느끼고 있을 뿐이었어요.


"이제 가자."


저녁 7시 20분. 숙소에서 어슬렁어슬렁 기어나왔어요. 명사산은 숙소 바로 옆이나 마찬가지라 지금 출발해도 늦을 리 없었어요.



입장료 120위안을 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우리 모래 방지 패드 빌릴까?"

"그거 얼마인데?"

"15위안."

"빌리지 말자."


명사산은 전부 고운 모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모래 방지 패드를 빌려줘요. 이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주황색 비닐봉지처럼 생긴 길다란 자루에요. 이것을 빌리는 것이 15위안. 명사산과 월아천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아직 판단 보류.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면 꽤 멋있는 풍경이기는 했어요. 물론 사진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지만요. 사진 자체가 빛과 구도에 따라 멀쩡한 인간을 괴물부터 천사까지 바꿀 수 있는데 여기에 후보정까지 더해지거든요. 별 것도 아닌 것을 구도 잘 잡고 찍은 후 후보정 떡칠을 하면 보자마자 '헉! 나 저기 꼭 가야 돼!' 하게 만들 수 있어요. 이런 것을 한두 번 당해본 것도 아니라 인터넷에서 본 사진이 멋있다고 해서 그곳이 진짜 굉장할 것이라고 기대를 하지는 않아요. 어쨌든 모두가 좋다고 하는데다 막고굴과 더불어 둔황의 상징이다보니 명사산이 120위안의 가치를 할 지는 일단 판단을 미루었어요. 하지만 모래 방지 패드는 아무리 보아도 15위안의 가치를 할 거 같지가 않았어요. 게다가 이것은 파는 것도 아니고 빌리는 것이 15위안이었어요. 신발에 모래 들어가면 벗어서 탁탁 털어내면 되는 일. 그래서 모래 방지 패드는 빌리지 않기로 했어요.


둔황 명사산 입구


녹지로 꾸며진 입구를 관통하자마자 사막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어요.


"야, 여기 대박이다!"


둔황 명사산 낙타 투어


인해전술의 긍정적인 사례.



중국 낙타


푸른 녹지가 있는 마을에서 갑자기 사막으로 변한 것도 재미있는데, 낙타떼가 줄지어서 가고 있었어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낙타를 타고 돌아다니다보니 이게 엄청난 광경이었어요. 낙타가 줄지어서 계속 지나갔어요. 관광지에 사람 많으면 별로인 경우가 많지만,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또 다른 장관이 연출되고 있었어요. 느그적 느그적 걸어가는 낙타떼를 보면서 둘 다 신났어요.



사람들이 줄지어서 산 위로 올라가고 있었어요. 진짜 개미떼가 일렬로 줄 서서 가는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도 주말에 북한산, 도봉산, 한라산 가보면 일렬로 나란히 줄서서 개미떼처럼 줄지어 산을 오르내려요. 차이라면 우리나라의 산은 나무가 울창하고 바위가 단색이 아니다보니 멀리서 보면 사람들이 줄지어 가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데, 여기는 누런 모래산이라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가는 것이 너무 잘 보인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사진 속에서 사람들이 형광 주황색 장화 같은 것을 신고 있는데 이게 바로 모래 방지 패드에요.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라 주황색 자루에 위에 고무줄을 달아놓은 것처럼 생겼어요.


"우리 진짜 모래 방지 패드 안 빌려도 돼?"

"신발에 모래 들어가면 그냥 털어. 우리 돈 없어."


모래 방지 패드를 신는다고 모래 위를 경공술 쓰듯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진짜로 신발에 모래 들어가는 것을 막아줄 뿐. 게다가 아까 기차표 취소 수수료가 있었기 때문에 돈을 아껴야했어요. 단순히 모래가 신발에 안 들어오는 용도로 발에 뒤집어쓰는 자루를 15위안 주고 대여할 여유는 없었어요. 친구가 계속 모래 방지 패드를 빌려야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 이유는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었어요. 저거 뒤집어쓰면 뭔가 특수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물어보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저것을 뒤집어쓰나 안 쓰나 사람들 발이 모래에 푹푹 빠지는 것이 보였어요. 게다가 중국인들이 다 빌려서 착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구요.


아까 숙소로 돌아올 때만 해도 사람들이 별로 안 보였는데 확실히 저녁 무렵이 되자 사람들이 엄청 많아졌어요.


명사산, 월아천 입장료 120위안


"월아천이다!"


잘 정비되어서 발 빠질 일 없이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얼마 안 가서 월아천이 등장했어요.



"우리 내려가보자!"



일몰 시간이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홍보용 사진 구도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어요. 그 구도로 찍으려 하면 바로 역광에 걸렸거든요.


'이게 왜 벌써 나오지? 한참 걸어가야 나오는 거 아니었나?'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이 사막길을 한참 걸어가야 볼 수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실제 가보니 입구에서 월아천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어요. 시계를 보니 30분 조금 넘게 걷기는 했지만 포장된 길 위를 걸어서 도착한 것이었어요. 굴곡이라고 할 것도 없는 평탄한 산책로 같은 길이었기 때문에 주변 풍경 보면서 걸어오다보니 정말 금방 도착했어요. 말이 좋아 30분 넘게 걸은 것이지, 친구와 사진 찍고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어기적 어기적 걸어왔기 때문에 실제 거리로는 그만큼이 채 되지 않는 것 같았어요.


'무언가 조금 이상한데?'


월아천이 아름답기는 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월아천이 이렇게 보기 쉬운 것이었나? 사진으로 보면서 월아천 가면 옛날 대상들이 목숨 걸고 사막 건널 때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 그 살았다는 안도감에서 밀려오는 감탄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그런데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너무 편하게 와서 동네 구경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조금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만약 월아천 보러 가는 길을 조금 더 뱅 돌아가게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때의 감동이란 그 풍경을 보기 위한 고통과 비례해요. 이것은 제가 제주도 출신이기 때문에 잘 알아요. 관광객들이 제주도에 와서 그 풍경에 감탄하는 이유는 제주도로 오기까지 고통이 따랐기 때문이에요. 제주도로 여행가기 위해 돈을 모으는 고통, 제주도로 여행가기 위해 시간을 만들어내야 하는 고통, 그리고 제주도까지 오는 고통, 마지막으로 제주도 와서 어느 풍경을 보러 갈 때의 고통이 따랐기 때문에 그 풍경이 아름다워보이는 것이에요. 저처럼 거기에서 살면서 넌절머리날 정도로 질리게 보아온 사람에게는 바다는 바다고 오름은 오름일 뿐이에요. 물론 저도 제주도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곳이 있기는 한데, 물찻오름, 한라산 영실기암과 삼각봉처럼 정말로 특별하고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르는 곳들이에요.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어느 동네든 그 동네 풍경만의 아름다움이 있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그 동네에서 계속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거의 못 느껴요. 단적으로, 아파트촌에서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가 삭막하고 숨이 막힌다고들 많이 말해요. 하지만 그것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파트촌이 갖고 있는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느껴요. 동네 속사정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도 있지만, 쉽게 얻은 것에 대해서는 그만큼 가치가 낮다고 여기는 일반적인 착각이 상당히 크게 작용해요.


차라리 이 월아천을 보기 위해 모래 언덕을 뱅 돌아오게 하든가 넘어오게 하든가 했다면 보다 이 월아천을 보았을 때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설악산 대청봉처럼 혀 빼물게 어렵게 만들라는 것이 아니었어요. 만약 모래 언덕을 넘고 모래밭에 발이 푹푹 빠져가면서 90분 걷고 나서 여기를 보게 된다면 적당히 힘들고 월아천을 보았을 때의 감동이 훨씬 더 커질 것이었어요. 그런데 월아천까지 워낙에 잘 정비가 되어 있어서 동네 산책하듯 룰루랄라 걷다보니 금방 월아천에 도착해버렸어요. 이것은 마치 코스 요리 시켰는데 에피타이저 다 먹기도 전에 메인 디쉬가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중국 관광명소 월아천


그래도 어쨌든 실제 보니 상당히 아름답기는 했어요. 너무 빨리 등장해서 얼떨떨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아름다웠어요.


중국 둔황 관광지 월아천


가장 유명한 구도에서는 역광이었기 때문에 서쪽으로 걸어갔어요.



여기부터는 발이 푹푹 빠지며 신발로 모래가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몇 번 벗어서 털었지만 어차피 계속 발이 모래에 빠져서 신발로 모래가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너무 많이 들어가지만 않으면 모래를 털지 않고 그냥 앞으로 걸어갔어요.


月牙泉


"여기서 봐도 진짜 멋있다."


입구부터 여기까지 워낙 쉽게 왔기 때문에 자칫하면 실망하기 딱 좋게 되어 있었지만 매우 아름다워서 60위안의 가치는 하고 있었어요.



월아천을 한 바퀴 돌아 월아천 옆 건물을 향해 걸어갔어요.



"이 표지판에 적힌 한국어 뭐지?"



- 산체 이동 바라오르지 마십시오.


이건 대체 무슨 말이야? 어느 나라 한국어야?


앞에 있는 '산체 이동'은 영어를 보니 대충 사람들이 올라가면 이 산이 자꾸 월아천쪽으로 이동한다는 말 같았어요. 말이 좋아 산이지 오직 모래로 된 언덕이다보니 사람들이 올라가면 무너져서 점점 월아천쪽으로 올 수밖에 없거든요. 중요한 것은 '바라오르지 마십시오' 였어요. 이유야 어쨌든 올라가지 말라는 말은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데 바라오른다는 것이 뭘 어떻게 올라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영어는 no climbing, 일본어는 登らないでください 라고 잘 적혀 있었는데 한국어만 저 모양이었어요. 나중에 네이버 국어 사전을 찾아보니 '바라오르다'는 북한말로 '기어오르다' 라는 말이래요.


둔황 아름다운 곳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요.






갑자기 영화 동사서독이 떠올랐어요. 숭실대에서 살 때, 지금 여행 같이 하는 친구 말고 다른 친구가 제게 보여준 영화였어요. 그동안 보아왔던 무협 영화와 상당히 달랐고, 내용의 전개도 꽤 독특했어요.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영화를 다 본 후 상당히 아귀가 맞지 않아서 다시 보아야 하는데 다행히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끝까지 집중해서 다 보았어요. 그 영화의 배경이 사막이었어요. 모래먼지 투성이가 떠오르는 영화인데, 이 건물을 보니 자연스럽게 동사서독으로 생각이 이어졌어요.


이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어요.



모래산 위로는 사람들이 열심히 줄지어 올라가고 있었어요.



"우리도 저기 이제 올라가자."


친구가 명사산을 올라가자고 했어요.


명사산


올라가는 길은 딱 하나였어요. 폭이 좁아서 일렬로 걸어올라가야 했어요.




정상에 올라오니 해가 맞은편 모래산 뒤로 넘어가 있었어요.


鸣沙山, 月牙泉


멀리 월아천에 조명이 들어왔어요.


'이거 대륙의 스케일로 크게 꾸며놓은 사막 테마파크 아닐까?'


모래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니 입구에서 월아천까지 매우 시원하게 잘 보였어요. 게다가 이 월아천 뒤에 있는 모래산 뒤로는 녹지였어요. 사막을 여기까지 몰아낸 것에 감탄해야하기는 하지만, 얼핏 보아서는 이것이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중국답게 대규모로 조성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월아천이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하지만 이렇게 정상에서 보면 저것이 왜 오아시스인지 전혀 와닿지 않았어요.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현재로는 저것을 본다고 사막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모래밭에 발 몇 번 빠진 것으로 호들갑떨지 않는다면요.


'진짜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월아천은 진짜에요. 물론 현재 이 연못에 계속 인공적으로 물을 공급해주어서 저렇게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모래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진짜 아무리 보아도 오아시스가 아니라 짝퉁 같아 보였어요. 오른쪽에 보이는 입구 면적 만큼 더 뒤로 물러서 입구를 만들어 놓았다면 훨씬 괜찮았을 거에요. 멋진 풍광을 쉽게 볼 수 있게 정비를 잘 해놓은 것은 좋지만, 이것은 정말 일부러 억지로 모래 퍼다 만든 사막 테마파크처럼 보이게 정비해 놓았어요. 사실 정품과 짝퉁의 차이는 미묘한 차이지요. 나이키와 나이스처럼요. 정품조차 짝퉁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도 어찌 보면 능력이에요.



뒤로는 끝없는 모래언덕이었어요.


중국 사막


언덕 꼭대기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있었어요. 모두 일몰을 감상하고 있었어요.



친구와 모래 바닥에 앉아서 일몰을 구경했어요.


월아천 일몰




"이제 내려가자."


그런데 내려갈 길이 없었어요. 길은 외줄기였고, 딱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폭이었는데 사람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거든요. 어떻게 내려가야하나 보다가 그냥 모래 언덕을 달려서 내려가기로 했어요.


이거 진짜 재미있다! 이게 60위안 가치 하네!


꼭대기에서 아래까지 달려내려오는데 발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졌어요. 급경사를 달려 내려가는 것이니 당연히 속도가 상당히 붙는데,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발이 부드럽게 땅 속으로 빨려들어갔어요. 평지에서 발이 푹푹 빠지면 발을 빼내기 힘들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려가는 것이라 발을 빼는 것이 어렵지 않았어요. 게다가 발이 땅 속으로 빨려들어가니 다리에 충격도 별로 오지 않았어요. 물 속에서 걷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모래 언덕에서 달려내려온 후 신발 속 모래를 털어내며 친구와 깔깔 웃었어요. 이렇게 높은 모래 언덕을 뛰어내려오는 체험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120위안의 가치가 있었어요. 이것은 진짜로 재미있었어요. 모래언덕에서 신나게 달려내려오기 위해 월아천을 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어요. 부력에 의해 둥실둥실 뜨는 것도 아니고 중력에 의해 땅에 그대로 들이박는 것도 아니고 독특한 느낌이었어요. 둘 다 이거 뛰어내려온 것만으로도 120위안 가치는 했다고 좋아했어요.


중국 둔황 야경


"우리 야시장 가자."

"지금?"

"거기 가야 저녁 먹지."

"버스 있겠지?"

"막차 타고 가자."


친구와 부지런히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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