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건물에 들어가니 6월 6일 0시 15분쯤 되었어요. 친구와 일단 앉아서 쉴 만한 자리를 찾아보았어요. 앉아 있을 자리는 그럭저럭 있었어요. 이 아주 야심한 밤에, 딱 시골 기차역 같은 곳에 앉을 자리가 남아도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사람이 앉아 있어서 그냥 앉아 있을 자리만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일단 자리를 잡고 짐을 내려놓고 세면도구를 챙겨 화장실로 갔어요. 화장실로 가면서 혹시 친구의 스마트폰을 충전할 콘센트가 있나 살펴보았어요.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는 없었어요. 화장실에서 양치와 세수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어요.
사람들이 개찰구 앞에 줄을 섰어요.
"이 시각에 어디 가는 사람들이지?"
"왜?"
"저 사람들 어디 가는 사람들인지 궁금해서. 잠깐 보고 올께."
피로에 푹 절은 친구는 의자에 그냥 앉아 있었고, 저 혼자 개찰구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어디 가는 사람들인지 살펴보았어요. 그 사람들은 우루무치 가는 사람들이었어요.
"우리 기차 한참 남았네."
"멀었지, 뭐."
저와 친구가 타고 갈 기차는 1시 45분 기차였어요. 아직도 한 시간 넘게 남았어요. 아마 여기도 30분 전쯤에는 줄을 서야 할테지만요.
대합실 안은 거의 다 한족이었어요. 왜 한족이 거의 대부분인지는 몰라요. 투르판에서부터 쿠차까지 기차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전부 한족들이었어요. 이것이 우연이라면 운이 아주 지지리 없는 것. 이번 역 또한 마찬가지로 농민공들이 많이 보였어요. 이들의 특징은 하얗고 큰 페인트통 처럼 생긴 통과 커다란 마대 자루를 들고 있다는 것. 그나마 다행이라면 처음 역에 들어왔을 때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이 우루무치행 기차를 타러 줄을 섰다는 것이었어요.
대합실 안은 조용했어요. 중국인들이 모이면 상당히 시끄러운데 워낙 야심한 시각이다보니 조용했어요. 이 고요함을 깨는 것은 역무원의 우렁찬 호통 소리. 역무원이 대합실 안을 돌아다니며 의자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호통치며 눕지 말라고 외쳐대었어요. 돌아다니다 의자에 누워 있는 사람이 보이면 달려가서 큰 소리로 마구 뭐라고 외쳐대었어요. 그러면 사람이 일어나 의자에 앉았어요. 역무원이 뒤돌아서서 다섯 걸음 쯤 가면 다시 의자에 드러누웠어요. 그래도 이렇게 역무원이 자꾸 의자에 누워 있지 못하게 해서 대부분은 앉아 있었어요.
"역무원 진짜 뭐라 해대네."
"자리도 아주 텅텅 비어있구만."
친구도 저도 의자에 조금 누워 있고 싶었어요. 오래 눕는 것은 안 되었어요. 둘 다 상당히 피곤한 상태라 오래 누우면 무조건 깊게 골아떨어질 수밖에 없었거든요. 지금 오래 누웠다가 깊게 잠들 것이라는 것은 마치 지구에서 동전을 떨어뜨렸을 때 이것이 땅으로 향해 떨어질 것이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어요. 기록을 세우겠다고 기차역까지 걸어온 것은 좋았어요. 그 다음이 문제였어요. 미칠 듯이 피곤했어요. 바로 전 야간 이동에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어요. 누운 것이라고는 아까 그 왕궁 앞에서 누운 것, 그리고 공원 벤치에 잠깐 누웠던 것이 전부였어요. 기차에서 어떻게 잠을 자기야 하겠지만 자세가 너무 불편해서 계속 고통스러워 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어요. 정말 딱 1분이라도 눕고 싶었어요. 그러나 역무원이 눕는 사람을 발견하면 바로 달려가서 마구 호통쳤기 때문에 그 잠깐조차 의자에 누울 수 없었어요.
역무원이 왜 의자에 눕지 못하게 그렇게 소리쳐대었는지 몰라요. 어쩌면 진짜 누워 있다 잠들어서 기차 못 타는 상황이 발생할까봐 더욱 그랬을 수도 있어요. 또는 기차역에서는 특히 공공질서를 지키게 해서 통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구요. 대합실 의자에 드러눕는 것이 썩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사람도 별로 없고 시간도 야심한 시각인데 그것에 과도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겠죠.
슬슬 시간이 되자 줄을 서러 갔어요. 어떤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기차를 타나 살펴보았어요. 마대자루와 흰색 페인트통. 상당수가 가난한 농민공들이었어요. 개찰구를 통과하자 역무원이 승객들을 줄세우고 마구 호통치듯 소리질러대었어요. 뭐라고 말한 것인지는 몰라요. 저는 중국어를 모르니까요. 친구에게 무슨 말 하냐고 물어볼까 했지만 피곤해서 물어보는 것도 귀찮았어요. 친구가 쌩쌩했다면 그래도 없는 기운 쥐어짜서 물어볼텐데, 친구도 저 못지 않게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어요.
'제발 우리 자리에 엉뚱한 놈들 앉아서 자고 있지 말아라.'
쿠차역이 종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승객들이 기차 안에 타고 있을 것이었어요. 정말 만사 다 때려치우고 드러누워 자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더욱 간절하게 제발 좀 편히 자리에 앉아서 가기를 바랬어요. 큰 거 바라지 않았어요. 그냥 저와 친구가 앉을 자리가 비어 있고, 짐 놓을 자리가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어요. 이것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중국에서 기차를 타보니 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이 매우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누군가 저와 친구 자리에서 자고 있다면 흔들어 깨워서 비키라고 해야할 것이고, 누군가 마대 자루와 페인트통으로 짐칸을 다 차지해 짐 놓을 자리가 없다면 짐을 껴안고 자야 했어요. 인체 파괴 의자까지는 참는다. 그런데 가방을 발 아래 내려놓고 어정쩡하게 앉은 것도 쭈그려 앉은 것도 아닌 자세로 자야 한다면 정말 짜증날 거야. 쿠차에서 유원 가는 기차 좌석칸 가격은 163.5위안. 단 1마오도 할인받지 않고 저 돈을 똑바로 다 내었어요. 그런데 내게 지정된 공간이 멀쩡히 있기를 바래야하는지 의문. 그러나 이상하지 않았어요. 여기는 중국이니까요.
기차가 역으로 진입했어요. 저와 친구 앞으로 기관차가 지나갔어요. 그리고 '2'라고 적힌 객차가 보였어요. 이 2가 적힌 객차가 바로 저와 친구가 타야 할 2호차였어요. 2호차는 뚝심있게 앞으로 쭉쭉 나아갔어요. 속으로 제발 멈추라고 피를 토하도록 외쳐대었지만 그것은 들리지 않는 메아리였어요. 2호차는 정말로 까마득해 보일만한 곳까지 가버렸어요.
'지금 뛸 필요가 있을까?'
탁자를 점령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이 기차는 이미 다른 역들을 거쳐오는 기차. 이미 안에 사람들이 타고 있어요. 어차피 저도 한 자리, 친구도 한 자리. 옆에 있는 좌석에 누군가 앉아 있는 상태라면 그 사람이 이미 탁자를 점령했을 거에요. 여섯 자리가 통째로 비어있을 확률은? 이게 과연 가능성이 있을까? 가능성이 없다면 힘든데 뛰어야 할 필요가 없었어요.
역무원이 기차에 타라고 했어요.
"뛰어!"
왜 뛰었는지 몰라요. 그냥 다 뛰니까 뛰었어요. 꼴뚜기들이 뛰니까 망둥이도 뛴달까요. 전부 자신의 객차를 향해 전력질주하자 그냥 저도 달리게 되었어요. 마지막에 그렇게 걸어서 어깨와 허리가 많이 아팠는데 가볍게 사람들을 다 제쳐가며 마구 달렸어요. 왜 열심히 달렸는지도 몰라요. 그냥 이 깜깜한 밤 어둠 속을 힘차게 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무조건 달려서 1등으로 객차를 타야한다고만 생각했어요.
사람들을 마구 제치고 치고 달려나가 2호차에 1등으로 탔어요. 제 자리는 001번이었어요. 좌석 번호를 보며 자리를 찾는데 001번이 보이지 않았어요.
'101번이 내 자리인가?'
101번에 짐을 내려놓고 있는데 친구가 기차 안으로 들어왔어요. 친구도 5위 안에 들어왔어요.
"너 엉뚱한 자리에서 뭐해?"
"여기 아니야? 001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데."
"거기 101번이잖아."
친구를 따라 맨 앞쪽으로 가보니 거기가 001번이었어요.
001번은 2인석이었어요. 제 친구는 제 바로 옆 좌석이었어요. 다행히 저와 친구의 자리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어요. 느긋하게 탁자를 점령했어요. 잠시 후, 위구르인 남성 한 명이 제 앞에 앉았어요. 그리고 기차가 출발했어요. 위구르인 남성은 다른 자리에 앉아 있던 부인을 불러서 자기 옆에 앉으라고 했어요. 그리하여 저와 친구 맞은편 3인석에는 위구르인 부부가 앉았어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와서 앉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위구르 땅을 벗어나는 기차에서는 한족이 아니라 위구르인들이 우리 맞은편에 앉는구나.
이 위구르인들은 중국어를 정말로 잘 몰랐어요. 친구가 몇 마디 걸어보더니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아 포기했어요. 그 사람들에게 우즈베크어로 물어보자 제게 위구르어로 대답해주었어요. 이 부부는 쿠차 사람들로, 기차로 쿠차에서 3시간 걸리는 곳에 가는 중이라고 했어요. 이 사람들에게 우즈베크인과 위구르인이 다르냐고 물어보자 바로 다르다고 대답했어요. 그러면서 쿠차에 우즈베크인들도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위구르인과 우즈베크인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어보았어요. 아쉽게도 이 질문은 서로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렇게 몇 마디 나누다 전부 졸기 시작했어요.
누군가 저를 툭툭 쳤어요. 눈을 떠서 누가 제 어깨를 쳤는지 고개를 돌려 살펴보았어요. 제 앞에 있던 위구르인 아저씨였어요. 이제 자기들이 내린다면서 제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저를 깨운 것이었어요. 위구르인 아저씨,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그분들이 내린 것을 확인한 후 친구를 깨웠어요.
"야, 그분들 내리셨어."
"어...응?"
"우리 누워서 자자. 뭐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지."
친구가 3인석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여기가 자리 주인인 사람이 타면 깨워서 비키라고 하든가 다른 자리 가서 앉든가 하겠지. 친구는 3인석에, 저는 2인석에 드러누웠어요. 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었어요. 기차 안이 온통 농민공이었기 때문에 신발을 벗어도 그 어떤 쪽팔림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태반이 신발을 벗고 있었거든요. 신발 벗고 의자에 드러누우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어요. 163.5위안 내고 숙소 들어가서 자는 기분이었어요.
2인석에 누워서 자는 것이 조금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앉아서 자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어요. 2인석에 누워서 자는 것은 누운 자세가 불편한 것이고, 앉아서 자는 것은 그냥 고문이었거든요. 안정적인 자세로 누워있다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이었어요. 최소한 앞으로 머리가 쏠리고 흔들려서 잠에서 깨어날 일은 없었으니까요. 옆으로 몸을 틀 수 없다는 것이 답답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앉아서 자는 것에 비하면 허리 안마 받는 수준이었어요.
그렇게 한참 잤어요. 어느덧 아침이 찾아왔어요.
창밖으로 풍력발전소가 보였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쭉 폈어요. 개운하지는 않지만 잠을 무사히 잤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있다가 다시 의자에 드러누웠어요.
"기차 왜 안 가지?"
잘 가던 기차가 갑자기 철로 한가운데에서 정차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잠깐 서 있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계속 기차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혹시 기차역에 도착한 건가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어요. 기차는 철로 한가운데에 있었어요. 역은 고사하고 특별한 시설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승무원이 화장실 문을 잠가버렸어요. 그렇게 30분 정도 정차하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뭐 신호 걸렸나? 이제야 가네.'
하지만 승무원은 화장실 문을 열어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기차가 또 정차했어요. 또 한참동안 기차가 그렇게 멍때리며 정차했어요.
기차가 다시 움직여서 얼마 가지 않아 기차역에 도착했어요.
아침 9시 50분. 투르판역에 도착했어요.
"나 좀 내렸다가 올께."
"왜?"
"바람 좀 쐬게. 너무 답답해서."
"다녀와."
"가방 잘 봐."
"알았어."
친구에게 가방을 부탁한 후 기차에서 내렸어요.
투르판답게 멜론도 팔고 있었어요.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멜론은 칼이 없었기 때문에 아예 먹을 방법이 없었어요. 그냥 바람 쐬고 기차역 잠깐 구경하며 몇 걸음 걸어본 것에 만족하며 다시 기차를 탔어요. 다행히 제 자리에는 그 누구도 앉아 있지 않았어요.
'여기라면 위구르 라디오 방송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순간 제 핸드폰으로 위구르어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제 핸드폰은 갤럭시 S3 3GS. 핸드폰을 교체해야 해서 이런 저런 기기를 알아보았을 때 이 모델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이 모델에는 라디오 수신 기능이 있다는 점이었어요. 이어폰을 꽂아야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 당시 이미 스마트폰에서 라디오 청취 기능을 없앤 모델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어요. 외국 여행 가서 외국어로 된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도 하나의 재미. 게다가 이것은 심카드와 상관 없어요. FM라디오 수신 기능이 내장되어 있는 모델이라 이어폰만 꽂으면 FM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거든요. 왜 지금까지 이 생각을 못 했지? 바로 가방에서 제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었어요.
"어? 들린다!"
위구르어 라디오 방송이 들렸어요. 그러나 오래 들을 수 없었어요. 기차가 빨리 달려서 주파수가 바뀌는 건지, FM 특성상 장거리 떨어진 곳에서의 청취가 어려운 것인지, 방송이 조금만 나오다 금방 꺼져버렸어요. 위구르어 몇 마디가 들리는가 싶으면 바로 치치치 소리가 위구르어를 덮쳐버렸어요. 조심스럽게 주파수를 바꾸어가며 위구르어 방송을 계속 듣기 위해 노력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어요. 몇 마디 들린다 싶으면 치치치 잡음이 위구르어를 꿀꺽 삼켜버렸어요.
"못 듣겠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 안에서 위구르어 방송을 듣는 것은 무리였어요. 핸드폰과 이어폰을 가방에 집어넣은 후, 다시 의자에 누워 가방을 베고 잤어요.
그렇게 또 한참 잤어요. 누운 자세가 불편해 다시 일어나기 전까지 계속 누워서 적극적으로 잤어요. 몇 번 앉아 있어보려고 시도해보았지만 제대로 누워서 쉰 것이 아닌데다 마땅히 할 것도 없어서 얼마 못 가 다시 드러누워 자게 되었어요. 그렇게 자다 깨어나서 잠깐 앉아 있다 다시 자다 깨어나서 잠깐 앉아 있다를 반복하다 보니 슬슬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어요.
"여기 시설 진짜 안 좋네."
기차 자체가 후즐근하기는 했지만, 화장실 상태를 보니 정말로 열악했어요. 기차 변기는 쭈그려 앉아 볼 일을 보게 되어 있었어요. 중국인의 위생관념을 생각하면 이것이 좌변기보다 차라리 낫기는 했어요. 오히려 좌변기였다면 엉덩이 닿는 부분을 휴지로 박박 닦아내고도 앉을 때 상당히 찝찝했을테니까요. 그렇다고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기마 자세로 볼 일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쭈그려 앉아 볼 일 보는 변기까지는 좋았어요. 그런데 볼 일을 본 후 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변기 구멍은 그냥 열려 있어서 철로 바닥이 그대로 보였어요. 발로 버튼을 밟으면 세면대에 물이 나오게 되어 있었어요. 아무리 꽉꽉 밟아대고 으스러뜨리듯 짓밟아도 물은 나오지 않았어요. 단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았어요.
화장실에 다녀와서 보니 친구가 앉아 있었어요.
"너 뭐 안 먹냐?"
"별로. 너는?"
"나도 별로. 너 이따 또 막 배고프다고 하는 거 아니야?"
"이따 배고프면 컵라면 끓여먹으면 돼."
친구가 전혀 배고프지 않다고 했어요. 친구에게는 컵라면이 하나 있었어요. 상하이에서 투르판 갈 때 기차에서 먹으려고 구입했던 컵라면 2개 중 하나를 아직도 안 먹고 들고 다니고 있었어요. 그 라면까지 친구가 다 먹은 상태라면 친구가 기차 안에서 배고프다고 할까봐 조금 걱정되었겠지만 그 라면이 남아 있는 상태였어요. 친구가 배고프다고 하면 그 라면 끓여먹으라고 하면 되었어요. 친구의 컵라면이 생명보험처럼 느껴졌어요.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여행 기록을 작성하기 시작했어요.
"너 뭐해?"
"여행 기록 적고 있어."
"나도 이번에 여행기 쓸 거."
"오! 막 기대되는데?"
친구도 여행 기록을 자신의 아이폰에 입력했어요. 아주 간단하게 몇 줄 적더니 여행 기록 입력을 끝냈어요. 저는 계속 열심히 타이핑을 치며 입력하고 있었어요.
"너 여행기 쓰고 있어?"
"여행 기록 쓰고 있어."
"여행 기록 쓰는데 그렇게 많이 써?"
"이거 자세히 적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여행기 못 써."
여행 기록을 작성하고 있는데 승무원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 특산물을 판매하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신장 지역 선물을 제대로 산 게 없네?'
처음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간 사람이라면 선물로 사올 것이 이것저것 많을 거에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흔해 빠진 한족들의 것이 아니라 아직은 보기 힘든 위구르인들의 것을 선물로 구입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나는...
우즈베키스탄 다녀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본 기념품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본 기념품 차이는 솔직히 말해서 없었어요. 심지어는 '우즈베키스탄' 떡 하니 적혀 있는 기념품도 막 뒤섞여서 판매되고 있었어요. 친구는 신기하다고 위구르인 전통 모자인 돕브를 구입했지만,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정말 많이 본 것이었어요. 그나마 여기에서 선물로 구입할만한 것이라면 위구르인의 칼인데, 칼은 기차에 들고 탈 수가 없어요. 흉기로 썼다가는 제 손가락 잘라먹게 생긴 짝퉁 맥가이버칼도 빼앗는 곳이 바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기차역들이니까요. 선물로 구입한 것이라고는 우루무치에서 구입한 우수 맥주가 전부. 선물을 주어야하는 사람들 모두 위구르 지역에 관심이 있지, 한족 지역에는 관심 없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이 사람들 전부 우즈베키스탄에 머무르고 있던 때에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들. 제가 흥미없어도 선물 받을 사람들이 우즈베키스탄에 대해 잘 모른다면 적당한 걸로 몇 개 골랐을 거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제가 우즈베키스탄 있을 때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당연히 우즈베키스탄 것과 비슷한 것을 주면 반응이 그다지 좋을 리 없었어요.
승무원을 불러세웠어요. 혹시 시식 가능하냐고 물어보자 시식 가능하다며 매실 설탕 절임을 주었어요.
"이거 맛있네!"
매실이라 엄청 시고 고통스러울 줄 알았는데 새콤달콤하고 매우 맛있었어요. 혹시 다른 것 무엇이 있냐고 물어보자 이것저것 보여주었어요. 제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 위안화가 그렇게 풍족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건과일 3종류를 구입했어요. 말린 멜론은 15위안이었고, 나머지 것들은 10위안이었어요. 이것이라도 들고 가야지, 이것조차 구입하지 않으면 진짜로 특별한 선물을 준비할 수 없으니까요.
한 번에 세 봉지나 구입하자 역무원은 몇 개 남지 않은 매실 설탕 절임을 봉지째 제게 먹으라고 주었어요.
"이 캐릭터 예쁘다!"
봉지 앞뒤로 이 캐릭터가 인쇄되어 있었어요. 정말로 마음에 들었어요. 진짜, 이런 것을 기념품으로 만들란 말이야! 이런 것이 엽서나 우표, 스티커, 교통 카드로 나와 있었다면 내가 무조건 샀다. 이 캐릭터가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 이유는 이 그림체가 동양적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사실 외모로 위구르인과 우즈베크인을 구분하기 정말 어려워요. 그래도 굳이 둘의 차이점을 들자면 위구르인들 중에는 보다 동양인에 가깝게 생긴 얼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에요. 우즈베크인들은 인도인과 동양인을 섞어놓은 듯한 외관이구요. 그래서 이 캐릭터는 보자마자 '위구르인 소녀'라는 느낌이 확 와닿았어요.
내 기념품은 이걸로 해야겠다.
내 자신을 위해 구입한 것이라고는 위구르어로 된 음식책과 전래동화 뿐. 그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구입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책 외에 빈손으로 떠나는 것도 처음이었어요. 여행 기념품으로 전통 복장 인형 및 사진 엽서, 음식 문화와 관련된 냉장고 자석 등을 구입하곤 하는데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이런 것을 하나도 구입하지 않았어요. 바로 전에 말한 것처럼 전동 복장 인형은 우즈베키스탄 기념품과 죄다 똑같았어요. 사진 엽서는 제대로 판매하는 곳을 보지 못했어요. 진짜 뒤돌아보니 오직 책 뿐이었어요. 그래서 이 그림이 더더욱 갖고 싶었어요.
잘만 뜯으면 2개를 가질 수 있었어요. 칼이 있다면 칼로 잘 잘라내면 되는데, 칼이 없어서 이빨로 봉지를 찢어야 했어요.
"헉! 잘못 잘랐다!"
쓸모없는 부분을 조금 남긴다고 한 것이 실수로 캐릭터까지 찢어버리고 말았어요. 다행히 이 캐릭터 그림이 하나 더 남아 있었어요. 정말 신경써서 조심조심 찢어내었어요. 다행히 두 번째 것은 성공했어요. 잃어버리거나 구겨지지 않도록 지갑에 집어넣었어요. 그래요, 이렇게라도 위구르인의 땅을 다녀온 기념품을 하나 갖고 싶었어요. 이렇게 위구르인 및 그들의 문화와 작별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슬펐어요.
창밖으로 황량한 풍경이 계속 이어졌어요.
왜 중국은 위구르인의 땅으로 한족을 계속 대거 이주시키고 있을까?
문득 이 생각이 떠올랐어요. 독립 운동이 활발하다고 하는데 그게 솔직히 얼마나 활발한지 잘 모르겠어요. 단순히 영구 점령을 위해서? 티베트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달라이 라마에 감성적으로 빠져들어서 티베트 독립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많으니까요. 중국 정부와 한족들이 티베트인들을 철저히 박해하고 탄압하는 것에 서양인들이 주목하는 것은 비참한 티베트인들의 현실을 목도하고 반인륜적 패악질에 분노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달라이 라마에 정신적으로 감화되어서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요. 중국 정부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독립 운동을 활발히 일으킬 민족으로 위구르인들을 꼽기는 하지만, 이들의 독립 운동에 신경쓰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기껏해야 터키 및 튀르크 국가들에 있는 범 튀르크 민족주의자들 정도랄까요.
민족 말살 정책? 공산중화사상에 취해서 아예 민족을 말살해버리기 위해? 그런데 그렇게 꼭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중국은 한족이 90% 넘게 차지하고 있는 나라인데. 이 나라 인권 의식이라면 한족 외의 모든 소수 민족을 몰살시키고 박멸해도 멀쩡할 건데? 어차피 15억 인구수에서 별로 티도 안 나니 말이다. 그리고 이것으로는 왜 거기로 그렇게 많은 한족을 이주시켰는지 설명이 안 된다.
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으면 자원만 캐가면 되지. 무언가 거창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아주 단순히 생각해보면, 중국은 엄연한 한족의 나라다. 소련과 달리 중국에서 소수민족이 자신들의 나라를 세워 독립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이유는 15억 가운데 한족이 9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족들이 자기들끼리 분열해서 춘추전국시대의 강림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냉정히 이야기해서 소수민족이 독립할 확률은 0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국제적으로 미국이나 러시아가 중국을 찢어발기려 들 확률 또한 거의 없다고 봐야하고 말이다. 그 나라들이 뭐가 좋아서 무력으로 중국을 찢어발기려 할까?
그러니 독립 저지, 자원 개발 등의 이유만으로 점령중인 위구르인과 티베트인의 땅에 한족을 마구 보낼 이유가 별로 없다는 거다. 이것이 목적이라면 인권 의식이 아주 형편없는 중국의 한족들은 귀찮게 사람들 이주시키고 삐까번쩍 건물들 세우고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인간 사냥, 인간 학살 벌이면 된다. 그런 선택을 거리낌없이 해대어왔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나는 중국을 안다'라고 하면 중국을 모르는 사람 증명하는 것이 되는 것이기도 하구.
친구와 이 주제로 살짝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지만 그렇게 딱 '이거다!' 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어요. 그냥 뻔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어요. 독립운동을 원천적으로 분쇄시키고 자원이 많아서 포기할 수 없는 땅이라는 정도의 이야기만 나왔어요. 그러나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매우 부족했어요.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아주 쉽게 '그것이 중국'이라고 하면 되기는 하지만, 무언가 보다 더 그럴싸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어요. 그 '무엇'이 잡힐 것 같은데 영 잡히지 않았어요.
오후 3시 10분.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마지막 기차역인 하미역에 도착해버렸어요. 중간에 기차가 철로 한가운데에서 정차해 있었던 바람에 한 시간 넘게 연착되었어요. 연착 덕분에 한 시간 더 위구르 지역에 머무른 셈이 되었어요.
"나 위구르의 마지막 공기를 들이마시고 와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어요.
기차 안에서도 담배를 태울 수 있는데 사람들 모두 기차 안에 있는 것이 답답한지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태우고 있었어요.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아마 없을 거다. 내 돈 내고 여기를 다시 오는 일은 아마 영원히 없지 않을까 싶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어 교과서인 til-edebiyat 를 못 구한 것이 정말로 아쉽기는 해. 그러나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제 그 교과서를 구할 방법은 없겠지. 그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다시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것은 진짜로 나의 마지막 신장 위구르 자치구. 8월부터 교과서를 판매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때 못 와. 거창한 이유 아니야. 돈 없어.
허파와 배에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마지막 공기를 최대한 집어넣고 기차 안으로 돌아왔어요. 자리에 앉아 있는데 한족 농민공 아주머니들이 와서 저와 친구 옆에 앉았어요. 이제부터는 한족 농민공 아주머니들과 같이 앉아서 류위안까지 가야 했어요.
"야, 이 사람들 쓰는 말 보통화 아냐."
친구가 이 한족 아주머니들이 말하는 것을 몇 마디 듣더니 바로 제게 이 사람들 위구르어 사용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았어요. 당연히 위구르어가 아니었어요. 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은 이쪽 지역에서 사용하는 중국어 사투리일 거에요. 일단 이 사람들의 말에 성조가 있었거든요. 게다가 외모가 딱 한족이었구요. 친구는 한참 듣더니 중국어 사투리로 이야기해서 자기가 진짜 잘 못 알아듣겠다고 말했어요. 사실 저는 이 아주머니들이 뭐라고 말하든 별 상관이 없었어요. 중국어를 몰라서 느리게 이야기하든 크게 이야기하든 느리고 크게 이야기하든 못 알아듣거든요. 착한 친구에게는 문제였지만요. 아주머니들이 딱 봐도 외국인인 저와 친구에게 관심을 갖는다 해도 저야 말이 안 통하니 멀뚱멀뚱 바라보다 창밖 바라보며 무시하면 되요. 물론 제가 대화를 나누고 싶다 하더라도 말이 통하지 않아 멀뚱멀뚱 바라볼 수 밖에 없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친구는 정말로 착해서 호기심에 물어보는 말을 알아들으면 다 대답해주고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해주려고 해요. 친구도 이 아주머니들과 그다지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고 있었는데, 만약 이 아주머니들의 말을 잘 알아듣고 이 아주머니들이 말을 걸어왔다면 일일이 다 친절하게 대답해주었을 거에요. 그런데 친구에게 다행히도, 친구는 그 아주머니들이 사용하는 사투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다시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서 위구르어 방송을 듣기 위해 노력했어요. 하미역에서는 매우 깔끔하게 잘 잡혔어요.
기차가 출발했어요.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아주머니들은 흰색 페인트통을 열었어요. 속에는 컵라면이 몇 개 들어 있었어요. 아주머니들은 소풍간 기분이었나봐요. 아주 신나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컵라면을 꺼내서 뜯었어요. 뚜껑을 뜯었어요. 스프를 꺼내었어요. 분말 스프 봉지를 찢었어요. 분말 가루를 면 위에 뿌렸어요. 건더기 스프 봉지를 찢었어요. 건더기 스프를 면 위에 뿌렸어요. 기름 봉지를 찢었어요. 면 위에 던져넣었어요.
어?
아주머니들이 뜨거운 물을 받아왔어요.
"어?"
"어?"
친구와 저는 아주머니들의 컵라면을 바라보고는 서로를 쳐다보았어요. 둘 다 충격받아서 서로가 뭔가 답을 말해주기를 바라며 바라보았어요. 그러나 둘 다 말이 없었어요.
잠시 후. 아주머니들이 컵라면 뚜껑을 열었어요. 그리고 기름 스프 봉지를 꺼내서 버렸어요.
"어?"
"어?"
한동안 둘 다 할 말을 잃어버렸어요.
중국 라면은 스프가 3종류인 경우가 종종 있어요. 우리나라 짜파게티처럼 라면 안에 들어 있는 스프가 분말스프, 건더기스프, 기름스프 - 이렇게 세 종류에요. 여기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기름 스프에요. 우리나라 기름 스프는 액체 상태에요. 중국 기름 스프는 고체에 가까운 상태에요. 삼겹살 찍어먹는 소금 기름과 비슷해요. 소금과 참기름을 비벼서 굳히면 아마 비슷하게 될 거에요. 그래서 우리나라 라면의 기름 스프는 쉽게 봉지에서 짜낼 수 있지만, 중국 것의 기름 스프는 깔끔하게 짜기 상당히 어려워요.
이 문제를 이 아주머니들은 너무나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했어요. 중국 라면의 기름 스프를 깔끔하게 짜내는 것은 어떻게 해도 어려우니까 아예 봉지를 찢은 후 끓는 물에 집어넣어서 같이 익혀버리는 것. 무릎 탁 치며 감탄하면서 절대 따라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었어요.
"역시 대륙은 넓고 사람은 많구나."
"저거 환경 호르몬 맛 제대로 나겠는데?"
"진짜 저건 창의력 대박이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냐?"
"나도 나중에 한 번 해볼까? 환경 호르몬맛 제대로 느껴보게."
둘 다 이 엄청난 창의력 앞에 경탄을 감출 수 없었어요. 대한민국에서는 이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을 아마 10년 내에 절대 볼 수 없을 거에요.
하미역에서 멀어지자 방송 질이 다시 떨어졌어요. 이어폰을 빼고 스마트폰에 저장한 위구르어 교재를 읽어보았어요. 이제야 우즈베크어 감이 살아나서 책 내용이 기차가 유원역 달려가는 속도로 눈에 쏙쏙 들어왔어요. 그러면 뭐해. 이미 위구르 지역을 떠나버렸는데. 확 기차에서 내릴까? 진심으로 쿠차 구시가지에서 며칠 더 머무르며 제대로 위구르어를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좋게 생각하자. 여우가 먹지 못한 포도를 보고 욕한 것처럼. 여기 중국이잖아. 중국은 쓸 데 없이 외국인 투숙 가능 숙소가 따로 있는데 그 구시가지 안에는 외국인 투숙 가능 숙소가 없을 거야. 있다고 해도 엄청 비싸서 1박조차 못 할 거구.
스마트폰을 끄고 친구와 이런 저런 잡담을 하다 둔황 숙소를 예약했어요. 친구와 같에 친구 스마트폰으로 숙박 예약 사이트에서 괜찮은 저렴한 숙소를 찾아낸 후, 친구가 전화를 걸어 외국인 투숙 가능 숙소 확답을 받았어요. 현장 결제로 하면 숙박비를 깎아줄 수 있냐고 물어보자 숙소 주인은 그것은 와서 이야기하자고 대답했어요.
2016년 6월 6일 오후 6시 46분. 드디어 유원역에 도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