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35 알바니아 티라나 인공 호수 Liqeni artificial i Tiranёs

좀좀이 2012. 1. 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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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입국 심사를 받고 잠을 자고 있는데 후배가 저를 깨웠어요.


"오빠, 일어나요!"

"예? 왜요? 뭐 일 터졌어요?"

"저 자리로 옮겨 앉으래요."


버스 기사가 왼쪽에 앉아 있는 승객들 모두 일어나서 오른쪽에 가라고 했어요. 버스가 텅 빈 버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오른쪽에 앉을 자리가 없었어요.


"아...다른 승객들 또 태우려고 그러나! 거 참 짜증나게 하네."


서로 연락하고 자리를 비워주어야 하는데 연락이 잘못 가서 우리에게 자리를 비키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가뜩이나 졸린데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니 짜증이 확 났어요. 그래도 다 옆으로 가기에 저도 같이 갔어요.


옆에서 혼자 궁시렁대며 서 있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어요. 버스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어요.


"오빠, 길에 집채만한 바위 떨어져 있어요!"


정말 길에 집채만한 바위가 떨어져 있었어요. 얼마나 컸냐 하면 구멍가게 크기는 되어 보였어요. 그런 바위가 산에서 굴러떨어져 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버스는 후진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잘 하면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 승객을 모두 오른쪽으로 몰아넣어 차 무게가 오른쪽으로 쏠리게 해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었어요.


다행히 바위를 잘 피해 갔어요. 진짜 여행 와서 별 진기명기를 다 본다 싶었어요. 운전 기사는 바위를 피해 버스가 지나가자 승객들에게 다시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했어요.


새벽 5시 30분. 드디어 버스가 티라나에 도착했어요.


"숙소 찾아요."


일단 '미친 방' 숙소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 방에서 하룻밤 보내며 진짜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 이번에는 다른 숙소에서 잘 생각이었어요.


티라나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숙박비가 너무 비싼 곳을 제외하고 적당한 곳만 찾아서 방을 둘러보았어요. 여관과 호텔에서는 아침 9시가 되어야 방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러면 방을 일단 보기만 하겠다고 했어요. 


그 이 라!


방 안 돼!


전에 왔을 때 몰랐던 것이었어요. 전에 왔을 때에는 그냥 급히 자느라 정신이 없어서 몰랐던 문제였는데 여관과 호텔을 돌아다니며 방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플러그 모양이 다르고 난방이 안 된다는 것은 매우 큰 문제였어요.


"어떻게 하죠?"


이건 참 골치아픈 문제였어요. 여기에서 일박을 하자니 잠만 자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어요. 정비는 할 수 없었어요. 그러면 다른 도시로 나가야 하나? 다른 나라로 나가는 방법은 오직 프리슈티나로 가는 방법밖에 몰랐어요.


"하..."


한숨만 나왔어요. 그러나 한숨만 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빠른 결정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결단을 내렸어요. 프리슈티나로 돌아가서 부드바를 가고, 다시 부드바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가는 것이었어요. 후배는 별 말 없었어요. 후배도 매우 쉬고 싶어했지만 티라나에서 충전도 못하고 난방도 안 되는 방에서 자야하는데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나가는 방법은 프리슈티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땅히 내놓을 대안이 없었어요.



거리에 차도 거의 없고 사람도 거의 없는 새벽 6시. 차도 한가운데 서서 사진을 찍어도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일단 우리가 간 곳은 티라나 대학교. 이 대학교를 다시 온 이유는 별 것 없었어요. 스칸데르베그 광장에서 티라나 대학교까지의 직선 도로 근처에 티라나에서 보아야할 것 대부분이 모여있기 때문이었어요.


이 건물은 제게 나름의 의미가 있는 건물이에요. 어렸을 적 제가 제일 좋아하던 계몽사 '학습그림사회' (전 15권) 라는 책이 있었어요. 이웃집 형네 집에 있어서 심심하면 빌려와서 읽곤 했는데 그 중 가장 좋아했던 것은 '동유럽'편과 '아프리카'편이었어요. 이 책을 지금도 구하기 위해 알아보고 있지만 구하기 정말 어려워서 이제 포기 상태. 헌책방을 돌아다녀보니 이후에 나온 '최신학습그림사회' (전 18권)는 있는데 이건 없더라구요. 학습그림사회는 재미있는 것이 공산권 국가 - 즉 당시 적성국가편은 국기와 정식 국명이 안 나와 있었어요. 그래서 동유럽편에는 국기도 하나도 안 나와있고 정식 국명도 하나도 안 나와 있었어요. 이 책을 지금 구하려고 하는 이유는 '소련', '동독',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중공', '자유중국' 편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정말 추억의 단어가 된 국가 이름들이에요.


동유럽편 제일 마지막 국가가 알바니아였는데 아마 제일 마지막 장에 티라나 대학교 사진이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 티라나 대학교 사진 위에는 엄청나게 큰 붉은 별이 달려 있었어요. 그래서 맨 마지막 장에 있다는 이유로 이 건물 사진은 꼭 그 책에 나왔던 구도로 찍어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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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알바니아 올 때 차에서 들었던 Anila Mimani 의 E ta dish sa shume te dua 를 떠올리며 티라나 대학교 앞으로 갔어요.



오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계신 테레사 수녀님. 한적하고 상쾌한 아침.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어요.

...라고 쓰고 '망했어요'라고 읽습니다.


티라나에서 한나절 보내는 것은 스코페나 프리슈티나에서 한나절 보내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도시가 작고 별 거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물가도 매우 저렴하고 사람들도 친절해요. 말이 안 통하지만 이건 뭐 대충 적응했어요. 무거운 짐을 하루 종일 끌고 다녀야 하지만 괜찮아요.


진짜 문제는 또 야간 이동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버스로 야간 이동이었어요.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기차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재미있어요. 버스로 이동하며 보는 것이 기차로 이동하며 보는 것보다 훨씬 많으니까요. 하지만 야간 이동이라면 이야기가 좀 많이 달라져요. 눕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재수 없으면 국경 심사 때문에 버스에서 내려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런다고 창밖이 잘 보이는 것도 아니에요. 도시 들어갈 때를 제외하면 버스나 기차나 창밖이 시커먼 것은 똑같았어요. 오늘 프리슈티나로 야간 이동 한 번은 기본이고, 여기서 포드고리차로 야간 이동 또 한 번. 벌써 야간 이동만 2번이었어요. 이미 야간 이동만 7일째. 사라예보에서 잔 것이 마지막이었어요. 아무리 야간 이동을 좋아하고 다음날 다른 나라 다른 언어 속에서 맞는 아침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건 정말 무리였어요. 더욱이 앞으로의 야간 이동은 버스 이동.


티라나 대학교 앞 계단에 주저앉아 담배만 뻑뻑 태웠어요. 후배도 계단에 주저앉아 한숨만 푹푹 내쉬었어요.


여행을 시작했을 때부터 티라나가 가장 따뜻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였어요. 전날 스코페보다 새벽의 티라나가 훨씬 더 따뜻했어요. 계단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신발 벗으면 완전 썩은 냄새 나겠네.'


그래도 신발을 벗었어요. 신발 속과 양말을 조금 말리고 냄새도 뺄 생각이었어요. 신발을 벗는 것만으로 기분이 조금 좋아졌어요. 예상대로 발냄새는 장난 아니었어요.


"이제 일어나죠."


신발을 다시 신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아침 7시인데 벌써 청과물 가게는 문을 열었어요.



걷다 보니 어느 호수에 도착했어요.



호수 뒤편은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었어요.



알바니아 전통 가옥도 보였어요.


짐만 없다면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어요. 문제는 짐을 끌고 다녀야 한다는 것.


호수 벤치에 앉아서 또 쉬기 시작했어요. 가끔 호수 주위를 걸으며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이탈리아 여행 정보를 보면 알바니아인 조심하라는 말이 많은데 정작 알바니아에서는 그렇게 큰 위험을 느끼지 못했어요.


호수에서 후배와 사이좋게 꾸벅꾸벅 졸았어요. 햇살이 너무 좋았어요. 게다가 환전을 못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환전소가 문을 열 때까지는 그냥 이렇게 시간이나 죽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둘이서 벤치에 앉아 사이좋게 졸다가 일어났어요.


"그래도 햇살 쬐며 눈 좀 붙이니 살 거 같네요."

"여기서 1박만 할 수 있었으면 딱이었는데요..."


아침 10시. 다시 티라나 대학 근처로 돌아왔어요. 환전도 했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말 그대로 '먹고 마시고 놀기'였어요. 비록 잠은 여기서 못 자지만 최대한 여기서 먹고 마셔대서 체력을 보충할 생각이었어요.



4월 중순의 햇볕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따스했어요. 이날 무슨 축구 경기가 있는지 거리에서 아이들이 응원 도구와 알바니아 깃발을 팔고 있었어요. 이 애들 외에도 거리에서 솜사탕이나 음료수 같은 것을 파는 노점상도 많이 나와 있었고, 사람들도 많이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어요. 정말 따스한 봄날이었어요.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일단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사기로 했어요.



다시 돌아온 스칸데르베그 광장.



정말 봄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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