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휴게소에 들어갔어요.
여기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잠들었어요.
"오빠, 일어나요. 국경심사요."
여권을 꺼냈어요. 검문소 직원이 버스에 타서 여권을 전부 걷어갔어요. 세르비아와 코소보 사이는 국경이 아니라 검문소에요. 세르비아가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고 있지 않거든요.
잠시 후. 여권을 돌려주었어요. 세르비아 출국 도장은 당연히 없었고, 여권 사이에 무슨 카드가 하나 끼워져 있었어요.
"도장은 안 찍어주고...이 카드는 뭐지?"
당연히 국경이 아니라 검문소였기 때문에 도장은 안 찍어주었어요. 카드가 뭔지 살펴보았어요.
이건 제가 받은 카드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구한 사진이에요. 이렇게 생긴 카드를 한 장 여권에 끼워줘요. 제가 받은 것도 이것과 똑같이 생겼어요.
"아놔...이놈들 완전 엉터리로 써 놓았네?"
국적을 보니 'Kina'라고 적어 놓았어요. 동양인이라고 여권 확인도 제대로 안하고 국적을 무조건 '중국'이라고 적어놓은 것이었어요. 따질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말았어요. 나머지 부분은 제대로 적혀 있었는데 필체를 보니 정말 귀찮아서 지지박박 갈겨 쓴 게 딱 보였어요.
카드를 여권 속에 잘 끼워넣고 다시 잤어요.
05시. 프리슈티나에 도착했어요. 티라나행 버스를 바로 타기 위해 버스를 알아보았는데 티라나로 가는 버스가 17시에 있다고 했어요.
'어떻하지? 여기는 정말 볼 것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도시인데...더욱이 돈도 유로를 쓰잖아.'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까지 뭘 해야할지 고민하는데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매표소 앞에서 가만히 서서 고민하는데 창구 직원이 한 가지 조언을 해 주었어요.
"스코페 가면 티라나행 버스 많을 거에요."
그래서 6시 프리슈티나발 마케도니아 스코페행 버스를 타고 스코페에 가서 티라나로 들어가기로 결정했어요. 아무 것도 없는 프리슈티나에서 11시간 넘게 시간을 보내다 티라나행 버스를 타느니 차라리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스코페 가서 버스를 갈아타는 것이 훨씬 나아 보였어요.
프리슈티나 오자마자 스코페행 버스에 올라탔어요. 이럴 줄 알았다면 베오그라드에서 바로 스코페행 버스를 탔을 거에요. 하지만 이미 늦었어요.
다시 국경심사. 이번에는 코소보-마케도니아 국경. 여기는 엄연한 국경이에요. 오직 세르비아-코소보 경계만 국경이 아니에요. 여권을 싹 걷어갔어요. 잠시 후, 다시 여권을 돌려주었어요.
"응? 왜 내 카드는 안 가져갔지?"
후배의 코소보 입국 카드는 다시 가져갔는데 제 코소보 입국 카드는 안 가져갔어요. 이걸 횡재했다고 좋아해야 할지 사고가 난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내려서 카드를 제출해야 할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바로 마케도니아 입국 심사 때문에 버스 기사가 여권을 싹 걷어갔어요.
갑자기 차장이 제게 나와보라고 손짓했어요. 그래서 심사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생각하며 급히 짐을 주섬주섬 꾸려서 나갔어요. 사람들이 그런 저를 보며 웃었어요. 영문도 모른 채 밖에 나가보니 짐검사 때문이었어요. 짐을 휙 둘러보고 끝내는데 하필 후배 가방을 검사해 보고 싶다고 국경 직원이 부른 것이었어요. 당연히 후배 가방은 잠겨 있었고, 후배 가방 열쇠는 후배가 가지고 있었어요.
버스에 다시 올라타서 후배를 불렀어요.
"왜요?"
"짐검사요. 가방 열래요."
후배도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버스에 탄 승객들이 그 모습을 보고 또 웃었어요. 후배는 툴툴대며 밖으로 나와 가방을 열었어요. 국경 직원은 후배가 가방을 여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었어요. 저는 옆에서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 불을 붙였어요. 후배가 가방을 열자 국경 직원은 휙 보더니 대충 적당히 짐을 뒤져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되었다고 했어요. 후배는 바로 버스에 올라탔고, 저는 태우던 담배를 마저 다 태우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아침 9시. 마케도니아 스코페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오늘 바로 티라나 들어가겠는데요? 아무리 버스가 미친 듯 돌고 돌아서 알바니아 들어간다고 해도 저녁이면 들어가겠죠."
아침 9시에 도착했으니 아무리 늦어도 저녁에는 알바니아 티라나 도착할테고, 그러면 바로 환전하고 숙소 잡아서 푹 쉬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도 다 정해져 있었어요. 숙소를 잡고 나와 티라나 대학 근처의 짝퉁 맥도날드에 가서 피자를 시켜먹을 생각이었어요. 피자 한 판 먹고 바로 들어와서 정비하고 푹 잘 생각에 너무 행복했어요.
꿈도 야무지세요.
티라나행 버스 시각을 알아보자마자 좌절했어요. 스코페에서 티라나행 버스는 하루에 오직 1대, 19시 출발이었어요.
"아놔...알려주려면 똑바로 알고 알려주든가!"
하지만 후회막급. 스코페에서 다시 프리슈티나 돌아가서 17시 티라나행 버스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좋든 싫든 이제 스코페에서 버스 시각까지 버텨야 했어요.
"날씨는 눈물 나게 좋네."
하늘은 푸르렀어요. 너무나 맑은 날씨였어요. 한 가지 흠이라면 바람이 슁슁 불었다는 것.
버스 터미널에서 나오는데 우체국이 보였어요.
'다시 시작할까?'
지갑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발칸 유럽에서 기념으로 구입한 모든 우표를 잃어버렸어요. 말이 안 통하는 이 동네에서 보통 우표를 사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 여기까지 오는데 다시 우표를 사지 않고 있었어요. 하지만 여기는 마케도니아. 오늘 떠난다면 다시 올 나라는 절대 아니었어요. 게다가 시간은 아주 철철 흘러 넘치는 상황에 우체국이 보였어요.
'다시 시작하자!'
여행 경로를 생각해보니 코소보는 어쨌든 다시 가야 했어요. 하지만 마케도니아는 사실상 마지막이었어요. 비록 앞으로의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어떻게 될 지 모르기는 했지만, 마케도니아를 또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았어요. 마케도니아를 또 들어온다는 것은 여기서 불가리아나 이스탄불로 간다는 이야기. 일단 티라나에서 마케도니아 스코페로 나오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여기는 어떻게 해도 다시 올 일이 없어 보였어요. 불가리아를 다시 가게 된다 하더라도 힘들게 스코페까지 와서 갈 필요도 없었어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베오그라드에서 기차를 타고 소피아로 들어가고 말죠.
그래서 우체국에 갔어요. 지난번에 왔고 분명 그 직원이 창구에 앉아 있었는데도 보통 우표 몇 장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이래서 다시 시작하려고 안 했어!'
그래도 굳게 결심했으므로 포기하지 않고 우표를 샀어요. 우표를 구입하고 스코페 시내를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참 무섭게 무너진 건물. '습곡은 이렇게 생겼습니다'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설계를 잘못하면 이렇게 됩니다'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가운데가 폭삭 주저앉아 있었어요.
강 건너편에는 장터가 열렸어요. 바로 가서 구경할까 했지만 헤엄쳐서 건너가거나 강물 위를 걸어 넘어갈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다리가 나올 때까지 계속 걸었어요.
강을 따라 걷다 힘들어서 잠시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어요. 공원에 있던 무슨 교회 모형.
기념으로 가져가고 싶을 만큼 예뻤어요. 그리고 꽃! 이제 봄이라고 믿어도 되겠죠? 이제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일이 없겠죠? 추위 때문에 오들오들 떨면서 다닐 필요가 점점 없어져가고 있다는 매우 긍정적인 상징이었어요.
물이 졸졸 흘러나와서 세수를 했어요. 그리고 시장을 향해 갔어요.
'베라 요칙'이라는 인민영웅이래요. 사망년도를 보니 2차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군에 저항하다 사살된 파르티잔을 기리는 석상 같았어요.
드디어 시장에 도착했어요.
정말 말 그대로 시장이었어요.
정말 특별하고 신기한 것을 파는 시장보다는 일상 생활 용품 및 잡동사니를 파는 평범한 시장이었어요. 크게 구입할만한 것은 없었어요.
개를 팔러 나온 사람도 있었고
이렇게 감자를 파는 사람도 있었어요. 무슨 특색 있는 장터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자연 발생적 시장이었어요. 사람은 매우 많아서 북적거리는데 특별히 살 만한 것이나 눈에 띄는 것은 전혀 없었어요.
입구는 아직 수동이었어요. 차가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막대기를 손으로 들어주고 있었어요.
시장에서 나와 계단을 따라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위에서 내려다 본 스코페의 시장. 벼룩 시장이라고 해야할지 그냥 시장이라고 해야할지...아마 벼룩시장이 맞겠죠. 전에 왔을 때는 왜 없었지?
조금 더 올라갔어요. 이제 다시 내려가서 강가로 가기엔 너무 많이 올라왔어요. 그래서 계속 올라갔어요.
뒤돌아보니 엄청나게 올라왔다는 것을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