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36 알바니아 티라나

좀좀이 2012. 1. 1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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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열심히 다닐 필요 없지 않나요?"

"예?"


후배가 힘들게 우체국까지 한 번에 가지 말고 느긋하게 스칸데르베그 광장에서 푹 쉬다가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스칸데르베그 광장 안쪽 벤치에서 쉬기로 했어요.



"어이쿠! 괜히 내려왔네요!"


바닥이 자갈이라 가방이 끌리지 않았어요. 둘이 사이좋게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벤치에 가서 앉았어요.


"이런 게 여행이지, 오빠는 무슨 훈련하는 거 같아요!"

벤치에 앉은 후배가 툴툴댔어요.

"오늘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요."

후배를 달랬어요.


다시 일어나서 가방을 들고 스칸데르베그 광장에서 나왔어요. 가게에 가서 후배 손에 아이스크림 하나 들려주고 우체국에 갔어요. 크게 심호흡을 했어요. 여기도 우표를 사려면 한참 옥신각신해야 하는 것은 보나마나 뻔한 일. 이미 한 번 했던 일이었지만 또 하려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어요.


제 차례가 왔어요.


"포슈타! (poshta)"


우표라고 말했어요. 직원 아주머니께서는 고개를 끄덕거리시더니 안으로 들어가서 무언가 들고 나오셨어요. 들고 나오신 것은 우편엽서였어요.


"요! 요! 뽀슈따!"


알바니아어에서 예는 '뽀' (po), 아니오는 '요' (jo) 에요. 이것과 숫자만 알아도 대충 돌아다닐 수 있어요. 나머지는 손짓 발짓 그림 그리기로 해결하면 되요.


"뽀슈따!"


직원 아주머니께서 우편 엽서를 보여주시며 이게 '뽀슈따'라고 하셨어요. 원하는 것은 우표인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때 마침 벽에 걸려 있는 우표 사진이 보였어요.


"저거! 저거! 뽀슈따!"

"아...보스타! (bosta)"


아주머니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마케도니아 어쩌구 하시며 우표를 들고 나오셨어요. 추측컨데 마케도니아 알바니아인들은 우표를 포슈타라고 하고 여기 알바니아인들은 우표를 보스타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우표를 구입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점심을 먹으러 티라나 대학교 근처 짝퉁 맥도날드에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어떤 할아버지께서 거리에서 전통 백파이프를 연주하고 계셨어요. 처음 왔을 때에는 안 계셨는데 날이 따뜻해져서 나오셨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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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유투브에서 찾은 알바니아 백파이프 연주 장면이에요. 매우 묘한 소리가 났어요. 저음이 하나 깔려 있고 그 위에서 고음의 선율이 춤추고 있었어요. 왠지 몽환적인 느낌이었어요.


할아버지 연주 장면을 찍고 10레크 짜리 동전 하나를 드렸어요.



"집시구나!"


할아버지만 보았을 때에는 긴가민가 했어요. 그런데 뒤에 있는 젊은 남성을 보니 딱 봐도 집시였어요. 드디어 집시를 만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건이었어요.


앞으로 집시 주의할 것!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는 집시. 실제 집시는 대부분 정착 생활하는데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거지, 소매치기의 상징.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이 아니라 범죄의 상징이 바로 집시에요. 여행자의 입장에서 집시란 상당히 위험한 존재였어요. 지갑을 이미 털렸기 때문에 털릴 지갑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욱 소매치기 주의를 할 필요가 있었어요.


짝퉁 맥도날드에서 피자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햇볕을 쬐고 있는데 꼬마 거지가 와서 구걸을 했어요. 돈을 안 준다고 했는데 끈질기게 따라붙었어요. 유럽에서 거지에게 돈을 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모로코에서 거지에게 함부로 돈을 주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어요. 거지에게 돈 주면 그 거지가 다른 거지들 다 불러와서 돈 다 털리는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돈을 안 주고 가라고 했는데 계속 따라붙었어요.


"저리 가!"


한 알바니아인 가족이 거지를 쫓아내 주더니 우리에게 왔어요.


"중국인이세요?"


영어로 물어보았어요.


"아니요. 한국인이에요."

"한국이요?"

"예. 남한이요."

"어디 있어요?"

"중국 옆이요."

"중국 10억 인구 중 여기까지 오셨다면 대단한 분이실텐데 우리 집에서 하루 머무르시겠어요?"


알바니아인이 자기 집에서 하루 머무르고 가라고 했어요. 그분은 우리가 아무리 한국인이라고 해도 중국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예 모르고 '동양인 = 중국인'이며 여기까지 온 중국인이니 중국에서 매우 잘 나가는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순간 그냥 하루 신세질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발냄새 어쩔거야!


"저희 오늘 프리슈티나로 떠나요."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이분은 동양인에 대해 매우 좋게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았는데 제 발냄새로 환상을 깨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양말을 기차에서 대충 빨아서 말려 다음날 다시 신다가 버스로 이동하면서 아예 못 갈아신고 있었기 때문에 신발 위로 발냄새가 살금살금 기어나오고 있었어요. 진짜 발냄새 때문에 현지인 집에서 신세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정중히 거절해야만 했어요.


알바니아인 가족과 헤어져 다시 길을 걷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발칸 유럽 전체에서 여기만 동양인이라고 시비걸거나 '치나', '칭쳉총'이라고 놀리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역사적으로 공산 알바니아는 아주 잠깐 친중 국가였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아니면 중국인들도 여기는 안 들어와서 동양인에 대한 이미지가 아직도 좋은가? 참 궁금했어요. 다른 발칸 유럽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었는데 여기만 유독 예외였어요. 여행기에 일일이 다 쓰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중국인인줄 알고 멸시하다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대우가 달라지는 일은 발칸 유럽 다니며 아주 흔히 겪는 일이었어요.



애들이 건물 경사를 기어 올라가서 미끄럼틀 타듯 내려오고 있었어요. 애들끼리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시합도 하고 있었어요.



거리에서 터키에서 온 공연단이 거리에서 전통 춤 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알바니아는 정보를 구해 읽으면 읽을수록 매우 흥미롭고 독특한 나라에요. 발칸 유럽에서 유일하게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좋아하는 나라에요. 알바니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란 '찢어죽일 원수'에요. 하지만 알바니아인들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서 재상도 하고 여러 중요한 위인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에 후에 기회가 오자마자 서로 독립 먼저 하려고 난리를 쳤던 다른 발칸 국가들과 달리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분열될 때 가장 마지막까지 오스만 제국에 남아 있으려고 하다가 독립을 해요. 언어도 다른 발칸 국가의 슬라브어족과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공산 알바니아는 주변 다른 동구권과 모두 사이가 극악으로 안 좋았고 엉뚱한 중국과 잠시 친하게 지내는 등 매우 독특한 나라와 민족이에요.


스칸데르베그 광장으로 돌아와 프리슈티나행 버스표를 사러 갔어요. 버스표를 사고 버스에 짐을 맡길 생각이었어요.


"이따 5시에 다시 와요."


5시에 표를 파니 그때 다시 오라고 했어요. 게다가 사무실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짐을 맡길 수도 없었어요.


"프리슈티나? 택시! 택시!"

"아니요, 괜찮아요."


아저씨가 프리슈티나까지 택시로 금방 간다고 택시를 타라고 했지만 괜찮다고 거절했어요. 지금 프리슈티나로 빨리 넘어가면 프리슈티나에서 1박 해야 하는데 그걸 피하기 위해 전날 일부러 마케도니아까지 간 거였거든요.


스칸데르베그 광장에서 타바케 다리를 넘어 다른 쪽으로 갔어요.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고 티라나에 기차역이 있다길래 기차역을 찾아 걷기 시작했어요.



기차역을 찾아가는데 시장이 나왔어요.



올리브를 '바께쓰'에 잔뜩 담아 팔고 있었어요. 치즈도 팔고 있었는데 치즈 냄새를 안 좋아해서 사진만 찍고 바로 지나갔어요.



여기는 식당.



사람이 붐빌 법도 했는데 붐비지 않았어요. 사람이 없어서 짐 끌고 다니기엔 좋았어요.



이건 생선 가게.



제가 좋아하는 견과류를 파는 가게. 사서 먹고 들고 가고 싶었지만 혹시 국경에서 걸려서 다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구입은 안 했어요.



저울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한적한 시장 거리.



정말 평범한 하루였어요.



"응?"


조용하고 평범한 시장 거리를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건 양머리 구이. 눈도 그냥 같이 구워주네...



정육점. 머리라도 잘라놓으면 좀 괜찮을텐데 정말 죽이고 가죽만 벗겨 놓았어요. 눈이 있으니까 왠지 꺼름찍했어요.



거리를 걷다가 스칸데르베그 광장에 있는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셨어요. 원래 기차역을 찾아 돌아다닌 것이었는데 기차역은 결국 찾지 못했어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돈을 세어 보았어요. 버스비를 빼니 레크화가 애매하게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우체국에 갔어요.


"보스타!"

그러자 직원이 다른 우체국에 가라고 했어요. 이유인즉 수집 우표는 이 우체국에서 안 팔고 다른 우체국에서 파니 거기 가보라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은 보통 우표라고 했는데 계속 다른 우체국 가라고 했어요. 이번에는 옆에 쌓여 있는 우표가 보여서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그렇게 해서 우표를 몇 장 더 샀어요.


티라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실 스칸데르베그 광장도 모자이크도 티라나 대학도 호수도 아니었어요. 진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어요.



이 크고 아름다운 전신주!


전신주 밑에 있는 사람은 전신주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 키에 비교해보면 이 전신주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알 수 있어요. 주변 건물 중 이 전신주보다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었어요. 정말 크고 우람하고 아름다운 전신주였어요. 무슨 이유로 저렇게 큰 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에는 전기도 있다!'라고 자랑하려고 저렇게 크게 만든 건가?


오후 5시가 되자 코소보행 버스표를 파는 곳으로 갔어요. 아저씨께서는 낮에 본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어요. 택시 기사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어요. 아저씨께서는 우리를 코소보행 버스 타는 곳으로 데려가 주셨어요. 돈을 지불하고 버스에 짐을 실었어요.


시간도 돈도 애매하게 남아서 주변 가게에서 물이나 사서 오기로 했어요.



나무에 꽃을 매달아 놓았어요.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녁은 휴게소에서 먹기로 하고 물만 사온 후 버스에 올라탔어요. 18시, 버스가 출발했어요. 버스는 프리슈티나로 바로 가지 않고 두러스로 갔어요. 두러스 버스 정거장에 버스가 멈추자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우루루 내린 이유는 담배를 태우기 위해서였어요. 저도 같이 내려서 담배를 태웠어요.


어둠 속에서 본 두러스였지만 두러스가 티라나보다 더 잘 정돈된 것 같았어요. 알바니아 제1의 항구 도시 두러스에 제대로 가서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어요. 두러스의 항구와 바다는 처음 알바니아 올 때 보았기 때문에 반은 본 셈이었어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버스는 휴게소에 들렸어요. 저녁은 알바니아식 볶음밥인 필라프와 구야쉬. 필라프는 꽤 맛있었어요. 구야쉬도 그럭저럭 먹을만 했어요.


"윽! 이거 무슨 맛이야!"


구야쉬의 마지막 고기를 입에 넣고 씹었는데 비릿한 맛이 입에 확 퍼졌어요.


"고기 설익었네!"


삼키기는 했지만 입안에 설익은 고기 비린내가 진동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콜라를 하나 사서 마시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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