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바람은 남서쪽으로 (2014)

바람은 남서쪽으로 - 10 베트남 후에 황성 Hoàng thành Huế

좀좀이 2016. 7. 14.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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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조건 사진 똑바로 찍어간다.'


10만 5천동이나 내고 들어가는 후에 황성. 사진을 또 망칠 수는 없었어요. 전날 사진은 너무 심각할 정도로 망쳤어요. 사진을 예쁘고 아름답게 찍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사진을 찍고 대충 확인한 것이 문제였어요. 흔들렸는지 안 흔들렸는지 정확히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이 다시 성에 들어가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무조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진을 찍은 후 흔들렸는지 똑바로 확인하기로 결심했어요.


가이드는 사진을 찍으며 넓게 퍼져서 다니던 관광객들을 한 곳으로 모았어요. 사람들 모두 오문 앞에 섰어요.



가이드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이 성채에서 동문은 여자만, 서문은 남자만 다닐 수 있다고 했어요.



해자를 건너 입장료를 내야 하는 오문 앞으로 갔어요.




오문은 수리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어요. 입구에서 베트남인과 외국인이 갈라져서 다른 입구로 들어갔어요. 가이드는 관리인과 함께 들어가는 인원을 하나하나 센 후, 관리인에게 입장료를 지불했어요.



"이 문에서 왼쪽은 무관들, 오른쪽은 문관들, 가운데는 코끼리가 지나갔어요."


가운데로 코끼리가 지나갔다는 말을 듣자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어요.


"지금도 베트남에 코끼리 살아요?"

"아마 정글에 살고 있을 거에요."


코끼리로 유명한 나라는 태국. 베트남에서 코끼리가 유명하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어요. 베트남에서 유명한 동물은 코끼리보다는 물소였어요. 그래서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더니 가이드도 잘 모르겠다면 아마 정글에 가면 있을 거라고 대답했어요.




날씨가 따뜻하지 않은데 붉은 반팔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친구가 겨울에는 추워서 아오자이를 입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베트남 와서 아오자이 입은 여성은 보지 못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는 관광지라서 그런지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성들이 있었어요. 너무나 강렬하게 아름다운 아오자이는 눈길을 확 잡아당겼어요.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들을 바라보는 것은 저 뿐이 아니었어요. 모두가 바라보고 있었어요.



오문을 뒤로 하고 앞으로 갔어요.



이 건물은 바로 디엔 타이 호아 Điện Thái Hòa 였어요. 우리말로 하면 태화전, 베트남식으로 쓰면 전태화. 베트남어는 수식어가 뒤로 가기 때문에 저렇게 되요. 태화전을 베트남식으로 읽으면 타이 호아 디엔이 되는데, 베트남어에서는 수식어가 피수식어 뒤에 가기 때문에 '전태화'라고 쓰고, '디엔 타이 호아' 라고 읽어요. 베트남 역시 한자문화권인데, 한자 읽는 법 및 단어를 만드는 법이 베트남어 특성상 우리와 많이 달라요. 예를 들어 베트남의 정식 명칭인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역시 한자에서 온 말로, 共和社會主義越南 (공화사회주의월남) 을 베트남식으로 읽은 말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분명 피수식어 뒤에 수식어가 오는데 사회주의는 主義社會 chủ nghĩa xã hội 가 아니라 우리말과 똑같이 社會主義 xã hội chủ nghĩa 라는 점이에요.


디엔 타이 호아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였기 때문에 밖에서 망원렌즈로 옥좌를 찍었어요.


후에 왕궁 옥좌


디엔 타이 호아 건물 바로 앞에서 오문을 보니 오문의 위압감이 느껴졌어요.



가이드를 따라 디엔 타이 호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요. 가이드는 옥좌에 대해 재미있는 것을 설명해주었어요.


"이 의자는 1802년 응우옌 왕조 초대 황제인 지롱 황제때부터 사용된 진짜에요. 중국 자금성의 옥좌는 가짜지만 이것은 진짜에요."


가이드는 이 태화전 안에 있는 옥좌가 진짜 옥좌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재미있는 설명을 덧붙였어요.


"베트남인들은 중국인들과 옛날부터 경쟁심이 있어서 중국인들에게 지기 싫어했어요. 그래서 이 궁궐은 자금성을 모델로 지었지만 자금성보다 조금 더 크게 지었어요. 이 옥좌도 자금성의 옥좌보다 조금 더 높아요."


베트남인들이 중국인들을 상당히 싫어한다는 것은 베트남 관련 여러 자료를 통해 알고 있었어요. 현대로 와서, 사회주의자인 호치민이 가장 경계했던 것은 중공으로, 프랑스와의 해방 전쟁 승리 후 중공의 간섭과 개입을 막기 위해 미국과 손잡으려고까지 했었어요. 베트남 통일 후, 베트남인들은 화교들에게 많은 탄압을 가하고 이들을 추방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보트 피플 대부분은 순수한 베트남인들이 아니라 베트남의 중국 화교라고 해요. 여기에 친중 성향의 폴 포트의 킬링필드 캄보디아를 공격한 베트남에 대해 응징을 가하려고 중국군이 1979년 2월 17일 대대적으로 베트남을 침략해 전쟁을 벌인 적도 있어요. 이 전쟁에서 베트남에게 사실상 처참히 패배한 중국은 이 결과에 크게 충격받았다고 해요. 베트남을 침략한 중국군은 주력 부대였지만, 이에 맞서 싸운 베트남군은 민병과 소수의 국경수비대이었거든요.


이런 역사적 사실 외에, 예전부터 경쟁심리가 있었다는 것이 옥좌에도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디엔 타이 호아를 나오자 거대한 솥이 나왔어요.



전날 본 거대한 옥새 모형도 나왔어요.



가이드는 후에 왕궁 모형이 있는 곳으로 관광객들을 데려갔어요.



"후에 왕궁은 현재 25% 정도만 남아 있어요. 그리고 복원을 하고 있는데, 베트남 기후가 워낙 덥고 습하다보니 목재로 복원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어요."


후에 고성에 결정적 타격을 입힌 것은 베트남 전쟁 중 테트 공세 때에요. 1968년 1월 31일 테트 공세때 잠시 베트콩이 후에를 점령했었고, 미군이 이곳을 탈환하기 위해 엄청나게 폭격을 퍼부으면서 성 대부분이 파괴되었어요. 그 이전에도 많이 파괴가 된 상태였지만, 지금처럼 허허벌판처럼 되어버린 것은 베트남 전쟁 때에요.



"이제부터 자유시간 20분 드릴께요. 왕궁은 매우 크니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가이드는 자유시간을 20분 주었어요.


뛰자!


전날 사진을 제대로 못 찍은 북문을 향해 달렸어요. 이 왕궁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날 와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었어요. 정말 아름다운 북문만큼은 다시 가서 보고 싶었어요.


후에 왕궁터



북문 가는 길에 왕궁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었어요. 여기에서 먼저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을 찍은 후 계속 앞으로 나아갔어요. 왕궁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전날 돌아다니며 알게 되었기 때문에 느긋하게 걸어갈 수가 없었어요.



북문이 보였어요.


"빨리 사진 찍어야지!"


이 문을 다시 찍기 위해 달려온 것이었어요. 일단 호흡을 가라앉히고 카메라를 들었어요.


베트남 왕궁


후에 왕궁


"찍었다!"


시간을 보니 자유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이제부터 널널하게 구경하며 내려가도 될 시간적 여유가 있었어요.



이 건물은 왕궁 건물 중 유일한 서양식 건물이라고 해요. 유일한 서양식 건물인데 다행히 전쟁의 포화 속에서 멀쩡히 남아 있었어요.



초대 황제인 자롱 황제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꿍 지엔 토 Cung Diên Thọ가 나왔어요.



Vietnam


Hue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가며 사진을 찍었어요.





왕실 보물 박물관이 나왔어요.


베트남 후에 왕궁 왕실 보물 박물관



한 번 들아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어요. 여기는 정말 저와 인연이 아니었나 봐요. 후에 왕궁을 이틀에 걸쳐 두 번 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했어요.


약속 장소로 돌아왔어요. 멀리 갔다왔지만 시간은 잘 맞추어서 돌아왔어요. 모두 돌아오자 가이드는 어제 갔었던 동문으로 관광객을 인솔했어요.



사진을 많이 찍었고, 전날 본 것을 다시 보아서 신기하다는 놀라운 감정 없이 자세히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성을 나서는데 아쉬움이 남았어요. 10만 5천동을 다시 내고 들어온 왕궁이었지만,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그 돈보다 훨씬 많은 것을 구경했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전날 볼 때 몰랐던 것들을 알 수 있었어요. 만약 안 들어갔다면 후에 왕궁에 대해서는 친구와 왕궁을 돌아다녔다는 기억 외에는 남은 것이 거의 없었을 거에요.



사람들이 버스가 주차해있는 남문쪽으로 성벽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때였어요.


동문 사진을 더 찍고 싶어!


마음에 드는 구도가 떠올라 사람들을 따라가다 혼자 뒤로 돌아갔어요.





촬영한 사진을 보니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사람들은 멀리 가고 있었어요.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갔어요. 가이드와 관광객들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숨이 찰 정도로 걸었어요. 다행히 꽝뜩문에 도착하기 전에 가이드와 관광객 무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어요.



도착하자마자 대포 사진을 제대로 한 장 찍었어요.



이제 성에서 나갈 시간.



사진을 하나씩 다 확인하며 찍었고, 전날 보지 못한 곳도 가보았기 때문에 아쉬움 없이 성문을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베트남 후에 황성 주차장에서 생선을 팔고 계신 아주머니가 보였어요. 말린 생선이 아니라 생물이었어요.


'여기에서 저 물고기를 구입하는 사람이 있을까?'


건어물이라면 간식으로라도 구입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것은 생물이었어요. 주변에 특별히 주택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아무리 보아도 여기에서는 저 생선을 구입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어요.


10시 42분. 버스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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