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바람은 남서쪽으로 (2014)

바람은 남서쪽으로 - 08 베트남 후에 야시장

좀좀이 2015. 5. 22. 07:25
728x90

원래 제 생각은 베트남 친구와 저녁까지 같이 먹고 야시장을 같이 둘러보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친구는 돌아갔고, 날은 이제 어두웠어요. 이렇게 어두워진 날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저녁을 먹고 야시장이나 구경하는 것 정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왕궁 구경을 마치니까 비가 싹 그쳤다는 것이었어요. 진작에 좀 그칠 것이지. 진작에 그쳤다면 조금 더 재미있게 구경하고 사진도 많이 찍고 했을 텐데 친구랑 구경 다 끝나고 날도 깜깜해져서 사진 찍을 것도 별로 없어지니까 그때 되어서야 그치네. 진짜 날씨가 얄미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베트남 친구 말로는 동바 시장은 이 시각에 문을 닫았고, 야시장은 저녁 7시나 되어야 슬슬 문을 열 거라고 했어요. 지금 시각은 저녁 6시. 한 시간 동안 무언가 다른 것을 해야 했는데, 그 시간 동안 할 만한 것이 뾰족히 없었어요. 지도를 보니 야시장은 응안문에서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어요.


'우리나라보다 남위도인데 해는 왜 이렇게 똑같이 일찍 저물어?'


비록 여름이기는 했지만, 예전 카프카스 지역으로 여행을 갔을 때에는 해가 9시 즈음 되어야 저물기 시작했어요. 그것을 보며 '위도차란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했었어요. 이번에 베트남은 그 지역보다도 훨씬 남위도이니 당연히 해가 더 길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어요. 해가 길다는 것은 그만큼 더 잘 보고 사진도 많이 찍을 수 있다는 말이니까요.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는 시각은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그게 그거였어요.


"뭐하지?"

"일단 저녁이나 먹을까?"

"어디에서?"

"글쎄...그냥 보이는 데에서 대충 먹자."


응안문을 나와 흐엉강 쪽으로 걸어가는데 작은 골목 하나가 보였어요. 고개를 돌려보니 딱 느낌이 왔어요.


'여기 먹자 골목이다.'


어두침침하고 좁은 골목에 들어가서 조금 안으로 걸어가자 식당들이 나왔어요. 장사가 잘 되는 집도 있고, 안 되는 집도 있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당연히 장사가 잘 되는 집에서 먹고 싶었지만, 장사가 잘 되는 집은 빈 자리가 아예 없었어요. 그렇다고 손님이 없는 집에서 먹자니 그것은 또 아닌 것 같았어요. 어디에서 먹을지 결정하기 위해 좁은 거리를 왔다 갔다 하다가 마침 사람들이 바글바글 앉아 있던 가게에서 한 자리가 나자 바로 자리에 앉았어요.


"쇠고기 볶음이랑 맥주 한 병 주세요."


비록 베트남어로 적혀 있는 메뉴판이었지만, 메뉴판을 보니 대충 뭐가 뭔지 알아볼 수 있었어요. 필수 베트남 여행 어휘 중 하나가 바로 xao (싸오) 에요. 뭐든 간에 음식 뒤에 이게 적혀 있으면 볶은 요리라는 뜻이에요. 쌀국수는 아침에 먹는 것이라는 친구의 말에 쌀국수도 된다고 했지만 쌀국수를 주문하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이 무슨 탕 같은 것을 끓여 먹고 있었는데, 그것은 왠지 끌리지 않았구요. 쌀국수 빼고, 그 탕 같은 것을 빼고 남는 것은 쇠고기 볶음. 평소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지만 베트남에 왔으니 가볍게 맥주 한 병 마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맥주도 시켰어요.



베트남 후에의 맥주인 후다 맥주 Bia Huda 는 차갑게 식혀져 있었어요. 여름이었다면 이 차가운 맥주병을 뺨에 대며 그 시원함을 느껴보았겠지만, 날이 은근히 쌀쌀해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어요. 참고로 Bia Huda 는 후에게 메인 공장이 있어요. 다른 지역에도 공장이 있기는 하지만, 후에에 있는 공장이 메인 공장이고, 다른 공장에서 만든 후다 맥주는 맛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므로 후에에 왔으면 당연히 후다 맥주를 한 번은 마셔보는 것이 좋지요. 후에에서 만든 후다 맥주와 다른 공장에서 만든 후다 맥주가 맛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후에에서는 흐엉강 (Sông Hương, Hương Giang) 물로 맥주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해요.


송 흐엉을 한자로 읽으면 향강 香江, 영어로 읽으면 Perfume River. 즉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강이라는 뜻이에요. 후에에 흐르는 이 강을 '향기로운 강'이라고 부르는 이유에는 전설이 하나 있는데, 옛날에 강의 원류에 thạch xương bồ 이라는 나무가 있었대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석창포' 라는 식물이에요. 이 나무가 크게 자라자 강물 전체에 이 나무의 향기가 베어들어 강물 전체에서 향기가 났다고 해서 이 강을 '향기로운 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그래서 다른 강에 비해 물맛도 다르고, 이 물로 만든 맥주 맛도 달라진다고 하나봐요.



주문한 쇠고기 볶음도 나왔어요. 위에 고수 잎이 풍성하게 올라가 있었어요. 고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 걷어내지 않고 그냥 놔두었어요. 동남아시아 고수의 악명을 하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혹시 이건 진짜 독한 놈인가 싶어서 하나 집어서 먹어보았어요.


뭐지?


분명히 동남아시아의 고수향은 한국의 고수향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한국에서 먹었던 그 고수랑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았어요. 향이 조금 더 강한 것 같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별 차이 없었어요. 고수를 많이 먹어서 적응이 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저냥 '독특한 풍미'라고 넘어가도 될 수준이었어요. 오히려 미나리보다는 먹기 나았어요. 아직까지도 미나리 냄새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서 미나리는 정말로 잘 먹지 못하거든요. 하여간 아직까지 고수는 제게 실망만 안겨줄 뿐이었어요. 뭔가 깊은 분노를 느끼게 해주어야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이야기해주고 여행기에 쓸 거리도 하나 생기는데, 이건 솔직히 너무 평범했거든요. 이 정도 수준 가지고 '으악! 동남아시아 고수는 진짜 먹을 수가 없어요!' 라고 과장되게 말할 수는 없었어요. 옛날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고수를 맛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정말 맛있다! 그냥 맛있다!


맥주를 홀짝이며 먹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무언가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베트남의 숨겨진 소스를 쓴다거나 한국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매력적인 맛이 나는 것은 아니었어요. 말 그대로 그냥 맛있었어요. 평범한 쇠고기 볶음이었는데 맛있었어요. 맥주와 너무 잘 어울렸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양이 적었다는 것. 아무 것도 안 시키고 이 쇠고기 볶음 하나만 먹으니 배가 부르지는 않았어요. 맛도 깔끔했고, 양은 너무 깔끔했어요. 그냥 딱 뭔가 먹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를 쑤시면서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어! 잘 먹었다!' 라고 외치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양이었어요. 그냥 '허기는 가셨다'라고 하면 딱 좋을 양이었어요.


다 먹고 나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어요.


'그날 먹었던 그 맛은 무엇이었을까?'


의정부에 있는 베트남인이 하는 쌀국수집에서 쌀국수를 먹었었는데, 그때 느꼈던 그 충격적인 맛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것이 처음에는 고수 향이라고 생각했지만 절대 고수 향기가 아니었어요. 현지의 고수는 한국의 고수와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현지 고수를 가져다 썼나?'라고 생각도 해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먹은 음식들은 그냥 현지인도 먹는 음식. 한국인을 배려해준 음식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그 향기가 나지 않았어요.


그 향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어요. 이것은 맛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너무나 이질적이고 달라서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향이었어요. 정말 국물을 한 모금 마시자마자 '쑈킹 아시아' 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향기가 확 올라왔어요. 이건 어메이징 아시아가 아니었어요. 샴푸를 한 통 마시는 느낌. 국물에서 나는 향이 너무 강해서 국물을 몇 숟가락 먹지도 못하고 내려놓았는데 뱃속에서 끊이지 않고 올라오는 그 향기.


'내가 잘못 되었나?'


일부러 트림을 해 보았지만 그 향기는 올라오지 않았어요.


'내 기억이 잘못 되었나?'


그러나 기억이 잘못 된 것은 아니었어요. 그 충격은 절대 잊을 수가 없었거든요. 여행도 여러 번 다니고, 이것 저것 먹어본 것도 여러 가지였지만 그런 것은 처음이었어요. 어메이징 아시아로 표현할 수 없는 쑈킹 아시아 급 향기. 뱃속에서부터 몇 시간 동안 샴푸, 스킨 냄새가 올라오게 하는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어요. 그 가게는 대체 무엇을 집어넣었던 것이었을까?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혹시 문자가 온 것이 있나 확인해 보았어요.


- 나 내일 체육 수업 있는 것 잊고 있었어. 미안해.


원래 친구와 다음날도 같이 후에를 돌아다니기로 했었는데 친구가 체육 수업이 있어서 같이 돌아다닐 수 없다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어요.


어? 나 얘 믿고 왕궁 하나만 봤는데?


볼 것이 많은 후에. 하지만 볼 것은 왕궁에만 있지는 않았어요. 볼 것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고, 이것을 다 보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하루. 친구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이동하며 보려고 했지만 친구가 체육 수업이 있어서 같이 가 줄 수 없다고 하자 당황스러웠어요.


'어쩌지? 남은 곳들 다 둘러보려면 시간 꽤 걸릴텐데...'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어요. 바로 숙소로 가서 여행 상품을 구입하는 것. 그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시계를 보니 이제 7시 채 되지 않았어요. 친구 말에 의하면 후에 야시장은 7시에서 8시에 개시한다고 했어요.


'먹은 것 소화시킬 겸 천천히 걸어서 야시장부터 가야겠다. 숙소 갔다가 여기로 다시 나오려고 하면 아마 꽤 귀찮아서 못 나올 거야.'



천천히 길을 걸어다니기 시작했어요.



베트남도 당구를 치는구나! 이 사람들은 어떤 당구를 치나 살펴보니 쓰리쿠션을 치고 있었어요.







일부러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아다녀 보았어요. 다행히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있었어요. 아쉬운 점이라면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지만 볼 것도 그다지 없다는 점이었어요.


볼 것이 별로 없어서 대충 거리를 둘러보고 야시장으로 갔어요.






야시장은 이제 개장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상인들은 바닥에 물건을 깔아놓기 시작하고 있었어요. 아직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어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구경하기에는 쾌적했지만, 대신 크게 볼 것이 없었어요.


"저것은 무슨 과자인가?"



어떤 남자가 떡인지 과자인지 애매해보이는 무언가를 굽고 있었어요.


'저거나 한 번 먹어볼까?'


저녁을 배부르게 먹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먹을 배가 남아 있었어요. 어차피 시장 구경은 결국 먹거리 구경.


"얼마에요?"

"4개에 1만동."



4개에 1만동이라니 그다지 비싼 것 같지 않아서 먹어보기로 했어요.


으직으직으직으직


이 구워서 파는 것 속에는 코코넛 과육을 채썰어놓은 것이 들어 있었어요. 먹을 때마다 느끼지만 코코넛 식감은 상당히 취향 많이 탈 것 같아요. 딱딱하고 씹을 때마다 으직으직거렸어요. 사각거리는 느낌도 아니고, 딱딱하다고 하기도 그렇고...하여간 으직으직. 그에 비해서 특별한 맛은 없었어요. 구워서 매우 고소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도 않았어요. 코코넛을 먹을 때마다 '동남아시아 가서 먹으면 분명히 달고 맛있을 거야' 라고 상상했어요. 그러나 베트남에서 코코넛 과육으로 만든 것을 먹어보았지만 역시나 코코넛은 별 맛이 없었어요.


시장이 제대로 안 열려 있었기 때문에 후에성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 오기로 했어요.



이번에는 다른 문인 꽝뜩 문으로 가보기로 했어요.


"어? 또 비오네?"


다리를 건너는데 빗방울이 얼굴과 카메라 렌즈를 덮쳤어요. 다행이게도 많이 내리는 비는 아니고 이슬비라 우산을 쓸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이번에는 꽝뜩 문으로 갔어요.



꽝뜩 문은 응안 문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차이점이라면 꽝뜩 문의 조명은 노란색.



이것은 꽝뜩 문에서 본 국기게양대.


꽝뜩 문까지는 왔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어요. 꽝뜩 문에서 후에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모두 막혀 있었어요. 성을 한 바퀴 도는 것은 매우 긴 거리를 걷는 것이라 포기했어요. 막상 꽝뜩 문까지 걸어서 왔지만 갈 만한 곳이라고는 응안 문 쪽에 있는 야시장 아니면 숙소 뿐이었어요.


"아까 야시장 쪽에 카페 있던데 거기서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다."



응안문은 하얀 조명이었고, 꽝뜩문은 노란 조명이었어요. 낮에 볼 때에는 그게 그거 같아 보였는데 밤에 이렇게 조명을 해놓으니 금으로 만든 문과 은으로 만든 문 같아 보였어요. 확실히 야간 조명에 조금만 신경을 써도 전혀 다른 모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큰 나무에 작은 나무가 엉겨 붙어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이렇게 향이 꽂혀 있는 것도 꽤 신기했어요.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여서 종교와 관련된 것은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후에에 와서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어요.


다시 다리를 건너 야시장으로 돌아왔어요.









물건도 많이 나왔고 구경나온 사람들도 많았어요. 아기자기한 여행기념품들이 나와 있었고, 생활용품도 나와 있었어요.


시장을 눈으로 쓰윽 구경한 후,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숙소로 돌아갔어요. 더 많이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당장 다음날 시티투어를 예약해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런데 왜 먹거리가 별로 없지?'


야시장 내부에는 먹거리가 별로 없었어요. 이런 곳이라면 간식을 파는 사람들이 꽤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에 비해 먹거리는 별로 없었어요.



야시장 안에는 먹을 거리가 별로 없었지만, 야시장 뒷편 길가에 거대한 노천 식당가가 열려 있었어요.


"옥수수다"




군옥수수를 팔고 있는 상인이 보였어요. 베트남인들은 이 구운 옥수수에 무슨 소스 같은 것을 뿌려 먹는 것 같았어요. 옥수수만 팔고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고구마, 말린 오징어, 쥐포 등도 구워서 팔고 있었고, 베트남인들은 이 구운 것을 구입해서 식탁에 앉아 소스에 찍어먹고 있었어요.


"베트남 옥수수는 무슨 맛일까?"

"글쎄..."


입이 심심해서 간식거리를 찾던 차에 딱 나타난 군옥수수. 망설일 것 없이 하나 구입했어요. 아주머니께서 옥수수 위에 무언가를 치려고 하셨는데 치지 말라고 하고 그냥 구워진 옥수수만 받아들었어요.


"맛있겠다!"


맛있겠다...


한 입 베어물은 순간...


"단 맛은 어디 도망간 거지?"


밍밍했어요. 알은 푸석거렸고, 단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어요. 제가 상상했던 그 옥수수의 맛이 아니었어요. 생긴 것은 분명히 옥수수인데...구워놓았기 때문에 구운 맛 때문에 먹을만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어요. 알이 탱글탱글하지도 않아서 깨끗하게 알을 쏙쏙 빼먹을 수도 없었어요. 이에도 많이 끼고, 매우 지저분하게 먹었어요. 먹은 부분을 보면 어렸을 때 옥수수 대충 먹는다고 혼나던 그때 먹고 버리던 그 옥수수 자루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깔끔하게 먹으려고 이를 밀어넣으면 이에 옥수수 껍질만 끼고 깨끗하게 먹어지지는 않았어요.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방에 내려놓고 리셉션으로 내려갔어요.


"내일 시티투어 예약하려고 하는데 지금 되나요?"

"예, 되요."

"가격은 얼마에요?"

"20만동이에요."


20만동?


이거 왜 이렇게 저렴하지?


후에에서 중요한 곳은 전부 들리고 마지막에는 드래곤 보트까지 타는데 고작 20만동이었어요. 왕궁 입장료가 10만 5천동이었는데 20만동이면 정말 거저 수준이었어요.


'신카페 찾아가기도 귀찮은데 호이안 버스표까지 예약해버릴까?'


"호이안 버스표는 얼마에요?"

"5달러에요."


신카페로 직접 가서 예약하면 이보다 저렴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신카페까지 걸어갔다 오는 것이 정말로 귀찮았어요. 더욱이 후에 시장을 구경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날에는 후에 시장도 구경해야 했어요. 시티 투어가 오후 4시에 끝날 예정이었으므로 끝나자마자 빨리 시장으로 달려간다면 후에 시장을 구경할 수 있었어요. 후에 시장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으면 얼추 7시는 될 것 같았는데, 이때 버스표를 예약하러 또 신카페를 찾으러 돌아다니기는 싫었어요.


"호이안 버스표도 예약할께요."


신카페 가서 구입하는 것보다 가격이 비싸기는 했지만 그냥 호텔에서 버스표를 구입하기로 했어요.


다음날 시티투어와 다다음날 호이안행 버스표를 예약한 후 방으로 돌아와 오늘 찍은 사진들을 컴퓨터로 확인해 보았어요.


"어? 망했다!"


왕궁 가서 제대로 찍은 사진이 거의 없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보니 감을 잃어버려서 사진이 전부 엉망이었어요. 대부분 너무 어둡게 찍혔고, 흔들린 것도 너무 많았어요.


'이 사진들 가지고 여행기 대체 어떻게 써야 하지?'


왕궁 입장료가 10만5천동이었기 때문에 왕궁만 안 들어가도 다음날 쓸 돈의 상당 부분을 절약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오늘 왕궁에서 찍은 사진 중 건질 만한 사진이 거의 없다보니 이대로 왕궁을 다시 가지 않는다면 순전히 기억 속에서만 왕궁이 존재할 것이었어요. 기억 속에만 남는 것까지는 좋았어요. 하지만 여행기는? 문학에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사진 없이 여행기를 쓸 자신이 없었어요. 보이지 않는 것을 실감나게 묘사해낼 능력은 없었거든요. 물론 다음날 시티투어를 가서 찍은 왕궁 사진은 당연히 다음날 여행기에 들어가겠지만, 다음날 이야기에서 사진을 보여준다는 것과 그렇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차이가 컸어요.


"왕궁 꼭 들어가야 하나?"


10만 5천동이면 작지는 않은 돈이었어요. 쌀국수를 세 그릇은 먹을 수 있는 돈이었어요. 쌀국수 세 그릇이면 하루 식비.


다시 사진을 찍기 위해 왕궁을 들어가야할까? 아니면 그냥 돈을 아낄까?


망해버린 사진들을 보며 고민에 휩싸인 밤이었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