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바람은 남서쪽으로 (2014)

바람은 남서쪽으로 - 09 베트남 쌀국수 향기의 비밀

좀좀이 2016. 7. 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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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쌀국수에서 나던 그 샴푸 같은 냄새는 무엇이었을까?

후에 왕궁은 또 들어가야하는 걸까?


저 두 가지를 생각하다 잠이 들었어요.


베트남의 하루는 매우 일찍 시작되었어요. 베트남 친구와 채팅을 하며 베트남인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어요. 그래도 베트남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침 일찍 하루가 시작된다고 해서 굳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할 필요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날 후에 도착했을 때 한산한 거리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이번 여행에서 볼거리 상당수를 놓쳐버릴 수도 있었어요. 아침과 점심 사이에 후에에 도착했으니 애매한 시각이기는 했지만, 거리에서 쌀국수 파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아침에 정말 거리에서 베트남 쌀국수 파는 거 맞아?"

"응. 그런데 늦어도 아침 9시면 끝나."


우리나라에서 여행할 때에는 굳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돌아다녀야 할 필요가 없었어요. 인문 환경 구경만 놓고 보면 출근하는 사람들, 학교 가는 학생들을 보며 '나는 이렇게 쉬고 있다'는 만족감을 얻는 것 말고는 특별하다고 할 게 없었어요. 아침에 문을 열었다면 10시에 나가도 문은 열려 있으니까요. 그래서 국내여행할 때에는 일정이 정말 빡빡하거나 교통수단 시간이 도저히 맞지 않아서, 또는 일출 볼 것 아니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 없었어요. 그러나 여기는 베트남. 전날 도착해서 본 것과 친구 말을 종합해서 보면 새벽에 일어나서 나가야 했어요. 다시 돌아와서 아침 9시부터 자는 일이 있더라도요.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어요. 이렇게 일찍 일어난 이유는 시티투어 버스가 아침 8시 15분에 호텔 앞으로 온다고 했기 때문이었어요. 씻고 나갈 준비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길게 잡아야 30분. 온수만 멀쩡히 잘 나와준다면 샤워부터 옷 입고 신발신고 현관 앞에 서기까지 15분이면 충분했어요. 아침 7시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어지간하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설령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난다 해도 아침밥만 포기한다면 버스를 놓칠 일이 없었어요. 그러나 여기는 베트남. 구경을 하거나 쌀국수를 사먹으려면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야 했어요.


잠이 덜 깨어서 바람을 쐬려고 창문을 열었어요.


부아아앙


아침부터 울려퍼지는 오토바이 소리. 많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벌써부터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그래도 우리나라 아침 6시 거리 풍경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기후가 다르면 하루 생활 리듬도 달라진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모습이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것. 일어났으니 정신차리고 씻어야 하는데 너무 졸렸어요. 머리 속은 멍했고, 눈은 제대로 떠지지 않았어요. 그냥 침대에 다시 드러누워 자고만 싶었어요. 야간버스에서 정말 깊게 자기는 했지만 피곤한 것은 피곤한 것이었어요. 전날 후에 도착하자마자 짐 풀고 샤워한 후 바로 나가서 계속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왔고, 숙소 돌아와서 사진 정리하고 여행중 있었던 것들 기록으로 남기다보니 자정을 넘겨서 침대에 누웠어요. 차라리 야간이동하고 버스에서 내려서 잠이 안 깨는 거라면 바로 세수 한 번 하고 커피 한 잔 사먹으면 정신이 돌아오는데, 이것은 침대에 너무 편하게 누워서 잔 것이라 그냥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누우니까 신경쓰이네...


도저히 잠에서 깨어날 수가 없어서 다시 침대에 누웠어요. 그런데 누우니까 슬슬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이러다 완전 골아떨어져서 8시까지 못 일어나는 거 아니야? 지금 잠들면 절대 못 일어날 텐데...


지금 한 번 잠들면 못 일어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다보니 눈 붙이는 것이 계속 망설여졌어요. 그래도 피곤해서 조금 더 자기는 해야겠고, 더 자자니 아예 못 일어날 것 같고...그래서 10분 마다 자다가 깨어나서 시계를 보는 짓을 반복하다 결국 6시 40분이 되어서 일어났어요.


일어나서 양치하고 세수하고 샤워를 하고 옷을 입으니 7시였어요. 2014년 12월 20일. 드디어 베트남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이 시작되었어요.


베트남의 아침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 호텔 밖으로 나왔어요.


베트남 길거리 쌀국수 가게


"진짜로 거리에서 쌀국수를 파네?"


친구가 말했던 그 길가에서 쌀국수를 파는 가게가 보였어요.



"저기서 아침 먹어야겠다!"


이 가게에서 파는 메뉴는 벽에 걸려 있었어요.



제가 맛보고 싶은 것은 분 보. 분 보는 후에의 대표적인 쌀국수. 후에에 왔으니 당연히 분 보 후에를 먹어볼 생각이었어요. 가격은 3만동이었어요.


"분 보 후에 하나 주세요!"


목욕탕 의자에 주저앉아 분 보 후에 하나를 달라고 했어요. 높이가 너무 낮은 목욕탕 의자에 앉으니 쭈그려 앉는 기분이었어요. 자세가 영 불편하기는 했지만, 빈 자리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어요. 사람들이 계속 와서 자리에 앉아 쌀국수를 주문하고 있었거든요. 친구 말대로 아침 일찍부터 베트남 사람들은 쌀국수를 먹고 있었어요. 분명 전날 도착했을 때만 해도 없었던 거리 쌀국수집이었어요. 진짜 베트남 사람들이 먹는 쌀국수를 먹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야한다는 사실을 직접 보게 되었어요.


주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분 보 후에가 나왔어요.


베트남 쌀국수


한 입 먹어보았어요.


"이거 진짜 맛있다!"


한국에서 먹은 베트남 쌀국수 모두를 부정하는 맛이었어요. 의정부에서 베트남인이 하고, 베트남인들이 많이 와서 먹는 베트남 쌀국수집에서도 분 보를 먹어보았지만 이 맛이 아니었어요. 베트남을 다녀온 사람들이 왜 한국에서 진짜 베트남에서 먹는 것과 똑같은 맛의 베트남 쌀국수가 없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일단 그냥 몇 입 먹다가 상 위에 있는 쥐똥고추 조각을 세 개 집어넣고 면을 휘휘 저었어요.


"이거 왜 이렇게 매워!"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은 단순한 속담이 아니라 진짜 맞는 말이었어요. 쥐똥고추 하나를 다 넣은 것도 아니고 딱 세 조각 집어넣었을 뿐인데 화끈하게 매워졌어요. 우리나라에서 고추 양념을 집어넣듯 푹 집어넣었다면 너무 매워서 도저히 손도 못 대었을 거에요. 다행히 딱 세 조각만 넣었기 때문에 아주 매운 맛이 되었어요. 이것이 고추인지 캡사이신 덩어리인지 궁금할 정도였어요.


쌀국수를 다 먹고 국물을 마시다 탁자 위에 놓인 작고 까맣게 초록빛이 나는 나무 열매가 보였어요. 속은 귤처럼 생겼어요. 말로만 듣던 라임이었어요. 이 열매의 존재는 처음 의자에 앉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일부러 외면하며 절대 건드리지 않고 있었어요. 의정부에 있는 베트남인이 하는 베트남 쌀국수 가게 가운데에서 한 곳은 국물에서 샴푸 냄새가 났어요. 처음에는 설거지를 잘못해서 세제 냄새가 들어간 것 아닌가 추측했어요. 그러나 그 다음에 주문했을 때 또 똑같은 냄새가 났어요. 이 샴푸 냄새 같은 냄새가 나는 국물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어요. 고수까지는 참고 먹겠는데, 샴푸 냄새만큼은 입에 집어넣을 수가 없었어요.


어차피 국물은 얼마 남아있지 않았어요. 이제 남은 국물을 버려도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을 정도였어요. 라임을 뿌리면 향기로운 냄새가 나며 더욱 맛있어진다는 말을 여러 번 듣고 읽었지만, 그 베트남 쌀국수 가게에서의 기억 때문에 일부러 탁자 위의 괴상한 열매에 손대지 않고 있었어요. 베트남 사람들도 반드시 쌀국수에 나무 열매 즙을 짜서 넣고 먹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탁자 위의 그 열매를 건드리는 사람이 얼마 없었어요.


나무 열매 조각 하나를 집어서 국물에 즙을 짜넣고 젓가락으로 저었어요.


"이게 범인이네!"


그 샴푸 향기는 바로 라임 냄새였어요. 이것은 저와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냄새였어요. 이 냄새가 옷이나 머리에서 난다면 매우 좋겠지만, 음식 속에서 나는 이 라임 냄새는 영원히 저와 한 자리에 설 수 없는 존재였어요. 딱 한 입 먹자마자 얼굴이 굳어버렸어요. 지금까지 먹었던 맛있는 국물은 어디 가고, 샴푸 냄새 나는 국물이 그릇 속에 남아 있었어요. 이것은 도저히 억지로 마실 수 없었어요.


그릇을 내려놓고 3만동을 주인에게 드린 후, 거리를 돌아다녀보기 시작했어요.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후에 아침 거리 모습을 구경하며 계속 걷고 싶었지만 시티투어는 8시 15분에 호텔에서 출발할 예정이었어요. 시계를 보니 슬슬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어요. 다시 호텔로 돌아갔어요.


"어디 다녀왔어요?"

"그냥 거리 좀 걸었어요."

"차 한 잔 마시면서 투어 기다리세요."


호텔 직원이 차 한 잔을 주었어요. 차를 홀짝이고 있는데 버스가 왔어요. 시계를 보니 8시 10분이었어요.


'저 버스구나.'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러자 직원이 아니라며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래서 자리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오지 않았어요. 8시 20분이 넘었는데도 버스는 오지 않았어요.


'버스 오기는 오는 거야? 설마 일방적으로 취소된 것은 아니겠지?'


최악의 경우는 바로 투어가 일방적으로 취소되어 버리는 것. 그리고 그 다음으로 최악은 투어가 너무 늦게 시작해서 어떤 곳은 생략하고 어떤 곳은 대충 차 타고 지나가 버리는 것이었어요. 시간을 칼 같이 지킬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8시 15분을 넘긴 후부터는 오늘 일정에 최악 또는 차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어요.


8시 30분. 분홍색 버스가 왔어요.


'에이, 설마 저거겠어? 8시 15분에 온다고 했는데 여태 안 왔으면 한참 뒤에 오겠지.'


버스가 왔는데도 그냥 자리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았어요. 그러자 직원은 제게 다가와 분홍색 버스에 올라타라고 알려주었어요. 버스에 올라타자 바로 버스가 출발했어요.






버스가 늦게 왔기 때문에 제가 있는 호텔이 마지막 픽업 장소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어요. 버스는 후에 시내의 여러 호텔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을 태우러 다녔어요. 창밖 풍경을 보며 곰곰이 생각했어요.


'후에 성을 다시 들어가야하나?'


후에 성 - 즉 후에 왕궁 입장료는 10만 5천동이었어요. 대충 5천원 정도였어요. 입장료가 아주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들어가려니 돈이 아까웠어요. 전날 베트남 친구와 왕궁 안을 열심히 돌아다녔거든요. 들어가는 것도 나쁠 것은 없었어요. 전날 후에 왕궁에서 찍은 사진 중 건질만한 것이 거의 없었어요. 예쁘게 찍고 못 찍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 대부분이 흔들려서 알아보기 어려울 수준인 사진이 대부분이었어요. 아름다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록 차원의 문제였어요. 오늘은 날씨가 나쁘지 않으니 후에 왕궁에 다시 들어가면 사진은 제대로 건질 수 있어 보였어요. 아무리 손을 벌벌 떨어댄다고 해도 안 흔들리게 찍힐 것 같았거든요.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었어요. 심지어는 베트남인들도 타고 있었어요. 보통 투어를 이용한다고 하면 말 안 통하는 외국인들이 이용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베트남인들이 타고 있는 것을 보니 투어를 이용하기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어요. 이 투어의 최대 장점은 하루에 후에에 있는 주요 유적지를 싹 돈다는 점이었어요. 유적지가 여기저기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혼자 다니기 상당히 힘들 것 같아서 투어를 이용했는데, 이것은 베트남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아침에 먹은 쌀국수 한 그릇은 3만동. 이 투어는 20만동. 쌀국수 7그릇이면 이 투어를 이용할 수 있었어요.


후에 왕궁 주차장에 도착하자 가이드가 일어나 말했어요.


"입장료는 별도로 36만 5천동이에요. 각자 표를 사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여기에서 한 번에 걷을께요. 그리고 점심 식사 비용은 투어 비용에 포함되어 있지만, 음료수는 각자 사서 드셔야 해요."


그러면 그렇지...


시티투어 20만동은 솔직히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어요. 당장 시타델 입장료만 해도 10만 5천동이었어요. 아침에 먹은 쌀국수 한 그릇이 3만동. 그러므로 점심 식사는 아무리 저렴하다고 해도 3만동 이상 나올 게 분명했어요. 그렇다면 후에 시타델 입장료와 점심식사만 벌써 13만 5천동. 아무리 베트남 인건비가 저렴하다고 해도 한 사람당 6만동 받으려 할 리는 없었어요. 게다가 다른 유적들도 분명 입장료가 따로 있을 것이었구요. 20만동은 딱 교통비 및 점심 밥값, 가이드 고용비였어요.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설명 영어로 잘 듣고, 흥정하고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바로 차 타서 이동하고, 점심 먹는 것을 생각하면 20만동도 괜찮은 가격이었거든요.


입장료 36만 5천동은 외국인 가격이었어요. 베트남인 가족들은 가이드와 무언가를 이야기했어요. 가이드는 베트남인들 돈은 따로 걷었어요.


제 고민은 절정에 달했어요. 당장 36만 5천동을 더 내야 하는데, 후에 성채 입장료가 아무리 단체 요금을 받는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일 것은 분명했어요. 모든 유적을 다 들어갈 필요는 없었어요. 관람 시간 동안 혼자 밖에서 놀아야하는 것은 있었지만, 그런 것이라면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후에 성채는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흐엉강과 주변 풍경을 보는 것도 괜찮았거든요. 게다가 몇몇 관광객은 자신들이 어제 어디를 보았기 때문에 거기는 안 들어가겠다고 하고 있었어요. 가이드는 특정 장소를 안 들어가겠다는 관광객들에게 그 유적 입장료를 제하고 입장료를 받고 있었어요. 가이드는 이 문제로 관광객들과 실랑이를 벌일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왜냐하면 가이드 고용비는 20만동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니까요.


드디어 제가 돈을 낼 차례가 되었어요.


"그냥 들어가자."


전날 후에 시타델에서 찍은 사진 대부분을 망쳤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추억을 되살리기 위한 기록이 필요했어요.


36만 5천동을 낸 후, 버스에서 내렸어요.


"이 깃발 달린 막대가 저에요. 이거 보고 잘 따라오세요."


베트남인 청년 가이드가 손님들 앞에서 끝에 베트남 깃발이 달린 안테나 막대기를 뽑아 들었어요. 가이드의 표정은 너무 비장해 보였어요. 표정만 보면 지금 제가 이 가이드와 관광을 하러 가는 것인지, 베트남군 입대를 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어요. 너무나 진지하고 비장한 표정과 이 상황이 너무 안 어울렸어요. 버벅거리거나 어리버리대는 것이 없는 모습으로 보아 분명히 초짜는 아닌 것 같은데 매우 비장한 표정을 지어서 재미있었어요.



다시 성문을 통과했어요.



이 대포!


전날 찍은 사진 중 엄청나게 흔들린 사진 중 하나가 바로 이 청동 대포 사진이었어요.



"베트남 국기에서 붉은색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를 상징하고, 별의 다섯 모서리는 국가를 구성하는 중요 계급인 노동자, 농민, 지식인, 청년, 군인을 상징해요."


깃발탑 앞에서 가이드는 베트남의 금성홍기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었어요.



가이드를 따라 입구인 오문 Ngọ Môn 으로 걸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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