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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화산재 아니야?"


크라톤으로 가는 길. 바닥에는 고운 회색 모래가 깔려 있었어요. 이 빛깔을 가진 모래는 고향에서 간간이 보던 것이었어요. 순간 이것이 화산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도네시아인 친구가 2010년 므라삐 화산 폭발때 족자카르타 시내 전체가 회색빛이 되어버렸다고 말해주었어요. 말 그대로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족자카르타를 덮쳤다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이것은 눈이 아니니 쌓인 것이 자연적으로 모두 없어질 리도 없었고, 어딘가에는 분명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었어요. 그 흔적이 바로 이 고운 회색 모래가 아닌가 싶었어요.


"어? 박물관에서 한 시간이나 있었잖아!"


카메라로 왕궁 입구를 멀찍이서 찍고 촬영 시각을 확인해보니 10시 반 조금 안 된 시각이었어요. 30분이면 충분히 다 볼 거라는 제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비록 예상보다 30분 더 걸리기는 했지만 '박물관이 의외로 볼 거 많구나' 라는 생각 이상으로 어떤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30분 더 보았다고 해봐야 10시 반. 여기에서 볼 것은 왕궁인 크라톤과 타만 사리, 카우만 모스크가 있었는데, 론니플래닛에 나와 있는 지도를 보니 셋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어요. 길만 잘 찾아간다면 빠르면 12시, 늦어도 1시까지는 다 볼 수 있어 보였어요. 설령 시간이 걸려서 1시에 다 보게 된다 하더라도 여기에서 파쿠알라만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파쿠알라만 크라톤으로 가서 그것을 보고 프람바난 사원으로 가도 충분하겠다는 계산이 섰어요.


'여차하면 파쿠알라만 크라톤은 내일 보지, 뭐.'


지도상으로 보았을 때 파쿠알라만 크라톤은 숙소에서 가까웠어요. 분명히 숙소 근처인데, 아직까지도 어디에 파쿠알라만 크라톤이 있는지 위치를 파악하고 있지 못할 뿐이었어요. 작정하고 찾으려 들었다면 진작에 찾았을 거에요. 그러나 이게 숙소 근처에 있다고 하니까 오히려 그곳의 위치를 미리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파쿠알라만 크라톤 정도라면 내일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와 잠깐 들러도 될 것 같았어요. 아침에 늦잠을 잔다면 오후에 들려도 되구요.



입장료는 7500 루피아였어요.


'왜 7500 루피아만 받지?'


론니플래닛에는 왕궁 입장료가 12500 루피아라고 나와 있었어요. 인도네시아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왕궁 입장료를 내렸나?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먼저 7500 루피아로 깎아주었을 리는 없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돈을 잘못 받은 것도 아니었어요. 돈을 덜 내게 되었으니 좋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어요. 아무리 론니플래닛 정보가 안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안 맞는 경우는 보지 못했어요. 이런 입장료는 오르면 올랐지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무슨 특별 할인 행사라도 하고 있는 건가? 뭔가 상당히 이상했지만 손해본 것은 아니라 일단 넘어갔어요.



꽤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닭장이었어요. 저 정도면 닭들 세계에서는 고급 주택쯤 되지 않을까요?


인도네시아 역사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나타낸 부조도 있었어요.



"여긴 너무 더워서 건물을 다 정자처럼 지어놓은 건가?"



크라톤 본 건물로 갔어요.


keraton in yogyakarta



"여기는 왜 건물 안에 건물을 지어놓았지?"


크라톤 건물 구조는 큰 정자 안에 작은 정자가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어요. 당시 건축 기술이 부족해서 이렇게 지은 건가? 지붕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폭우가 내리면 물이 뚝뚝 떨어졌고,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큰 건물 안에 작은 건물을 만들어놓은 걸까요? 술탄 머리 위로 빗물이 뚝뚝 떨어지면 술탄이 엄청나게 짜증날테고, 그 짜증은 보나마나 아랫사람들에게 내려갈테니까요. 덥고 습한 기후이기 때문에 개방형으로 짓는 것은 이해가 되요. 개방형 가옥구조라 하면 창이 넓고 마루가 넓은 것이 특징. 하지만 이렇게 정자 속에 정자를 짓는 모습은 처음이었어요.


왕궁 건물 한쪽에는 자바섬 전통 모스크 모형이 있었어요. 물론 이때는 이게 자바섬 전통 모스크 양식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어요. 게다가 이런 지붕을 가진 가옥 형태는 자카르타에서 욕야카르타로 오면서, 그리고 욕야카르타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냥 전통 가옥 구조라고만 생각했어요. 얼핏 보면 슬레이트 지붕을 올려놓은 우리나라 옛날 가옥과 비슷한 모양이었어요.



측면에서 보면 정자 같이 생긴 건물 안에 정자 같이 생긴 건물이 들어 있는 것이 매우 잘 보였어요.


'이 건물 뒤에는 무엇이 있지?'



건물 뒤에는 굳게 잠긴 문이 있었어요.










응?


이건 뭐지?


이건 대체 뭐지?


왕궁이라고 해서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볼 거라고는 고작 속에 작은 정자 같은 방이 있는 커다란 정자처럼 생긴 건물 하나 뿐이었어요. 이게 왕궁이라구? 아무리 요그야카르타 술탄의 궁이었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건물이 특이해서 볼만하기는 했지만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았어요. 작정하고 휙 둘러보려고 하면 10분이면 충분한 크기. 아무리 작은 나라 왕이었다고 해도 그렇지, 고작 왕궁이 달랑 이 건물 하나 뿐이라구? 친구 말로는 왕궁이 작지 않다고 했어요. 그러나 친구의 말과 달리 왕궁은 너무나 작았어요. 그냥 큰 집 한 채 수준이었어요. 이건 동네 예배당급 모스크 말고 조금 규모가 있는 모스크 수준이었어요. 건물 크기도 그렇게 크지 않았고, 왕궁이라고 하는 곳의 면적 자체도 넓지 않았어요. 이건 잘 쳐줘야 우리나라 시청 수준이었어요.


족자카르타 왕궁인 Kraton Ngayogyakarta Hadiningrat 은 1755년부터 1756년 사이에 지어졌다고 해요. 이후 1812년 6월 20일 1200명을 끌고 쳐들어온 스탬포드 래플스 Stamford Raffles 에게 크게 파괴되었고, 대부분의 건물은 1921년부터 1939년까지 재위했던 아믕쿠부워노 8세 Hamengkubuwono VIII 가 지은 것이라고 해요. 그리고 2006년에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고 복구된 것이라고 해요. 영국놈에게 파괴당하고 지진에 파괴당했다고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어요. 파괴가 되었다면 건물의 터가 남아 있어야 했어요.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는 건물의 터를 보고 짐작해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것은 면적 자체가 너무 좁았어요.


나 설마 속은 건가? 아까 7500 루피아 달라고 할 때부터 이상했어. 이거 주변은 싹 밀어버리거나 복구중이라고 막아버린 대신에 입장료 할인해준 거 아냐? 내 7500 루피아!


입구쪽에 이 왕궁의 모형이 있었어요.


"내가 본 건 정말 일부분이잖아?"


모형과 실물을 비교해 보았어요. 제가 본 부분은 입구에 해당하는 부분이었어요. 제가 본 굳게 닫혀 있는 철문 너머로 왕궁이 또 있었어요. 모형을 보면 철문 너머로 이것저것 많이 있었어요. 그러나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열어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아예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 자체가 없었어요. 내가 뒤로 넘어가는 길을 못 보고 지나친 건가? 그건 아니었어요. 설마 이게 전부일까 싶어서 왕궁 전체를 담을 따라 쭉 돌아보았거든요. 뒤로 넘어가는 개구멍조차 존재하지 않았어요.


"실례합니다."

"예."

"왕궁 뒤로는 어떻게 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안내소로 가서 철문 뒤로는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직원이 밖으로 나가서 담을 따라 돌아가면 된다고 알려주었어요.


'그럼 그렇지. 왕궁이 이렇게 작을라구.'


밖으로 나와 직원이 알려준대로 담을 따라 걸어갔어요.



담을 따라 걸어가서 직원이 알려준대로 방향을 꺾자 기념품 노점상들이 나왔어요.



"그럼 그렇지!"


아까 갔던 왕궁 입구는 매우 한산했어요. 그러나 여기는 기념품 노점상들이 길 양옆으로 주욱 늘어서 있었어요. 진짜 관광지에 온 기분이 들었어요. 크라톤이 족자카르타에서 상당히 유명한 유적이라 꼭 가보라고 하는 곳 중 하나인데, 기념품 파는 상인들이 입구에 진치고 있지 않을 리가 없었어요. 참고로 족자카르타에서 반드시 보아야한다고 하는 유적 세 개는 족자카르타 시내의 크라톤, 족자카르타 외곽의 프람바난 사원, 그리고 족자카르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보로부두르 사원이에요.


"여기가 진짜 왕궁인가봐!"



"저거 아까 그 문이잖아!"



아까 본 왕궁에서 통곡의 벽처럼 느껴졌던 그 굳게 닫힌 철문이었어요.



"여기는 딱 봐도 규모가 되네."


아까 그곳과 달리 입구에서부터 여기가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오고 있었어요. 당장 입구에 있는 그냥 볼 수 있는 건물이 아까 본 왕궁보다 조금 작은 수준이었어요. 게다가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있었어요.



우즈베키스탄 여행에서 생긴 사진 찍는 습관인 그 나라 유적에 있는 문양을 찍는 행동도 할 수 있었어요.


"이봐요!"

"예?"

"저기 입구가서 표 사요!"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직원이 잡더니 입구로 가서 표를 사서 오라고 지시했어요.



"저 표 구입했는데요?"


가방 주머니에서 아까 왕궁에서 구입한 7500 루피아짜리 표를 보여드렸어요.


"이 표는 저곳 들어갈 때 표이고, 여기는 다른 표가 필요해요."


그래서 매표소로 갔어요.


"한 명이요."

"12500 루피아요."


12500 루피아.

12500 루피아?

12500 루피아!


족자카르타 왕궁 입장료는 12500 루피아였어요. 이것은 론니플래닛에 나와 있는 정보와 일치했어요. 50루피아조차 오르지 않은 그 가격이었어요. 론니플래닛에 입장료가 12500 루피아라고 나와 있었는데 아까 7500 루피아를 낸 이유가 밝혀졌어요. 론니플래닛에서 말한 왕궁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면 내가 아까 간 것은 왜 돈을 굳이 따로 받았던 거지?


돈을 내고 표를 받아들었어요. 표를 가만히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내가 아까 간 곳은 대체 뭐지? 그거 분명히 크라톤이었는데? 이것도 크라톤, 저것도 크라톤. 이것은 12500 루피아 짜리 크라톤, 저것은 7500 루피아 짜리 크라톤. 바가지를 쓰거나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니었어요. 직원에게 적당히 돈을 찔러주고 들어간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표를 구입하고 들어갔어요.



벽 무늬 장식이 놀리네. 모를 수도 있는 거지.


인도네시아 자바섬 전통 악기가 많이 진열되어 있는 건물이 있었어요. 여기에서 사람들이 자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저 공 엄청 크다!"


다른 악기들도 매우 흥미로워 보였지만 저 공보다 신기하게 생긴 것은 없었어요. 저건 쇳덩어리인데 저렇게 크니 무게도 장난 아닐 것이었어요. 우리나라 전통악기인 징 같은 소리가 나지만 그보다 더 저음이었어요. 저걸 힘껏 한 번 쳐보고 싶었어요. 그러면 징보다 더 저음인 소리가 지잉 울릴 텐데요.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저 공의 크기는 일반인의 앉은 키와 맞먹었어요.



조각상을 뒤로하고 계속 돌아다녔어요.





직원들은 간단히 안내도 해주고 관광객들과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있었어요.



재미있는 점은 이 직원들이 요그야카르타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데, 등에 단도를 차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처음 갔던 크라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넓은 곳이었어요.








"저 건물은 뭐지?"



크라톤 내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딱 봐도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생긴 건물이 있었어요. 다른 건물들과 달리 검은색으로 곱게 칠한 건물. 검은 바탕에 금빛 장식이 붙어 있는 건물이었어요. 다른 건물들은 그저 신기하다는 느낌만 들었는데, 이 건물은 매우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게다가 아무렇게나 들어갈 수 없게 유리로 사방이 막혀 있었어요.


인도네시아 왕궁


kraton


"이렇게 굉장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검은색과 금색의 조화. 고급 제품에서 흔히 사용하는 색의 조화였어요. 두개골을 뚫고 뇌를 찔러버릴 것 같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이 검은색과 황금색, 붉은색의 조화는 더더욱 빛나고 있었어요. 햇볕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검은색은 더욱 검게 보였고, 그 새까만 색 속에서 황금색은 반짝이고 있었고, 붉은색은 황금색을 녹여서 들이마시고 있었어요. 천장만 따로 찍고 싶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어요. 세 가지 색깔의 조화는 이 건물 내부를 더욱 화려하게 느끼게 만들고 있었어요.


입을 쩌억 벌리고 천장을 구경하다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여기 꽤 넓구나."



처음 악기가 전시되어 있던 곳으로 돌아왔어요. 처음 본 크라톤과 여기까지 합치면 못해도 경복궁 크기는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왜 여기를 꼭 가보라고 추천하는지 알 것 같았어요. 비록 고층 건물은 없었지만 족자카르타 전통 문화에 대해 이것저것 볼 수 있는 곳이었어요. 더욱이 이 왕궁에서 보는 전통 문화는 현재 족자카르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어서 더욱 재미있었어요.


왕궁부터 보는 게 좋을까, 말리오보로 거리부터 보는 게 좋을까?


스스로 문제를 던져보았어요.


"음..."


박물관부터 보세요.


이것이 제가 내린 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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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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