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일어나야겠네."
잠에서 깨어났어요. 몇 시인지 봤어요. 만약 신기터미널에서 출발하려면 일어나서 씻고 나갈 준비를 해야 할 때였어요. 아직 신기터미널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한다고 해도 찜질방에서 나가기에는 매우 이른 시각이었어요. 그러나 이왕 사우나 온 김에 목욕 잘 하고 나가려고 하면 씻는 데에 시간이 조금 많이 걸릴 거였어요. 온 김에 목욕도 잘 하고 가는 게 좋으니까요.
정말 일어나기 귀찮다.
일어나서 아랫층 사우나로 가서 씻어야 하는데 일어나기 싫었어요. 더 자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조금 더 누워서 쉬다가 일어나고 싶었어요.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일어나기 귀찮았어요. 2022년 마지막 여행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돌아다니고 즐기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은 더 누워서 느긋하게 시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신기 말고 미로에서 갈까?'
전날 잠들 때까지 일정을 신기터미널에서 시작할지 미로면사무소 정류장에서 시작할지 정하지 못했어요. 신기터미널에서 미로면사무소 정류장까지 거리는 도보로 10.5km였어요. 상당히 큰 차이였어요. 신기 터미널 가는 첫 차는 새벽 5시 50분에 있었고, 미로면사무소 정류장 가는 첫 차는 아침 7시에 있었어요. 버스 출발 시각은 한 시간 10분 차이가 있었어요.
'한 시간 10분 사이에 10.5km 주파? 그건 걸어서 불가능해.'
신기터미널에서 미로면사무소 정류장까지 길이 막힐 리 없었어요. 버스는 매우 빠르게 질주할 거에요. 그러니 10.5km를 버스로 간다면 몇 분 차이 안 날 거였어요. 반면 10.5km를 걸어서 간다면 시간이 꽤 걸릴 거였어요. 아무리 아는 길이고 어려운 길이 전혀 없는 구간이라 해도 10.5km 면 2시간 넘게 걸려요. 태백시에서 버스가 아침 7시에 출발한다고 해도 5시 50분 버스 타고 신기 터미널 가서 신기터미널부터 걸어서 미로면사무소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미로면사무소에 도착할 거였어요.
'마평교까지는 의미없는 구간이잖아.'
신기터미널에서 마평교까지는 운탄고도1330 9길을 걷는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이 구간은 다 제껴도 상관없었어요. 새로울 것도 없고 감흥도 하나도 없을 거였어요. 단지 이 여행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운탄고도1330 9길 결말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에 운탄고도1330 9길을 제 마음대로 바꿔보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운탄고도1330 9길을 걷는 것이었어요.
'부래실비식당 가서 아침 먹고 미로로 가자.'
어디에서 걷기 시작할지 결정했어요. 미로면사무소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하기로 했어요. 무의미한 구간인 데다 시간만 엄청 걸릴 거였어요. 시간 엄청 걸리고 다리와 발에 무리를 줄 거였어요. 미로면사무소에서부터 걷기 시작해도 충분했어요. 나중에 이 길을 다시 걷게 된다면 그때는 운탄고도 8길을 걸을 때 신기터미널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미로면사무소까지 걸어가서 끝내면 되니까요. 미로면사무소까지 걸어갔다가 거기에서 버스 타고 도계로 돌아온 후 도계에서 기차나 버스 타고 태백으로 돌아가서 찜질방에서 1박 하고 다음날 다시 버스 타고 미로 가서 미로에서부터 출발하면 되었어요.
조금 더 누워서 쉬다가 일어났어요. 정말로 씻고 나가야 할 시각이 되었어요. 아랫층 사우나로 내려가서 씻고 성지24시찜질방에서 나왔어요.
성지24시찜질방에서 나왔을 때 시각은 2022년 11월 1일 새벽 5시 29분이었어요.
"밥 먹으러 가야지."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24시간 식당인 부래실비식당은 태백시에 지지난번에 왔을 때 갔었던 곳이었어요. 한 번 가봤기 때문에 길을 알고 있었어요. 황지자유시장 입구로 가서 불 켜져 있는 식당 찾으면 되었어요. 새로운 길로 가고 말고 할 것이 없었어요. 전에 갔던 길을 그대로 걸어갔어요.
조용하고 쌀쌀한 새벽 길을 혼자 걸어갔어요.
연탄재 수거함에는 연탄재가 많이 쌓여 있었어요.
길거리는 새로운 것이 없었어요. 감상할 것도 없었고 특별히 감흥이 느껴지는 것도 없었어요. 사진도 안 찍고 주변도 신경쓰며 보지 않았어요. 황지자유시장을 향해 걸어갔어요.
부래실비식당에 도착했어요. 식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할머니, 육회비빔밥 하나 주세요!"
할머니께 육회비빔밥 한 그릇을 주문했어요.
부래실비식당 메뉴는 위와 같았어요. 육회비빔밥은 12000원이었어요.
부래실비식당 안에는 연탄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었어요. 연탄보일러에서 따뜻한 열기가 뿜어나오고 있었어요.
'오늘은 아무도 없네?'
전에 왔을 때는 새벽에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번에는 식당에 아무도 없었어요. 저 혼자였어요.
조금 기다리자 제가 주문한 육회비빔밥이 나왔어요.
전에 와서 육회비빔밥을 주문했을 때 고추장을 넣지 않고 비벼먹어보고 짭짤한 국물 있으면 딱 맞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때는 시간이 없어서 육회비빔밥을 아무 것도 넣지 않고 비빈 후 맛을 보고 간이 싱거워서 고추장을 넣었어요. 고추장을 넣고 비비는데 그제서야 짭짤한 된장찌개가 나왔어요. 이번에는 지난번에 왔을 때 짭짤한 된장찌개도 같이 나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육회비빔밥에 공깃밥을 넣고 비빈 후 된장찌개가 나오기를 기다렸어요. 된장찌개가 나왔어요. 고추장을 넣지 않고 비빈 육회비빔밥과 짭짤한 된장찌개를 같이 먹었어요. 달고 고소한 육회비빔밥과 짭짤한 된장찌개 조합이 매우 훌륭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두 그릇 먹고 싶었어요. 그러나 육회비빔밥 두 그릇이면 24000원이었어요. 맛있어서 더 먹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참았어요.
"할머니, 여기 육회비빔밥 정말 맛있어요."
"맛있으면 자주 와."
할머니께 육회비빔밥 너무 맛있다고 말씀드리자 할머니께서 맛있으면 자주 오라고 하셨어요. 저도 자주 오고 싶었어요. 여기는 태백이고 제가 사는 곳은 의정부라 자주 올 수 없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할머니, 오늘은 손님 없네요?"
"아니야, 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 많았어."
"예? 그러면 저 오기 전에 다 나간 거에요?"
"응. 밤에 사람들 많이 와서 고기 구워먹고 나갔어."
이날은 손님이 없는데 24시간 열어놓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제가 부래실비식당 도착하기 조금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고 했어요. 손님들이 다 나가고 식당이 비어 있을 때 제가 와서 육회비빔밥을 주문했어요.
다 먹고 계산했어요. 계산하고 나가려고 할 때였어요. 손님들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어요.
'여기 진짜 심야시간에 장사 잘 되나 보다.'
새벽인데 고기 구워먹으러 오는 손님이 있어서 매우 신기했어요. 단순히 새벽이 아니라 거리에도 사람이 없는데 어디에서 찾아왔는지 고기를 구워먹으러 왔어요.
2022년 11월 1일 새벽 6시 9분, 부래실비식당에서 나왔어요.
'내년에 태백 또 오면 여기 또 와야지.'
2022년 부래실비식당 마지막 방문. 불 켜져 있는 부래실비식당을 보며 2023년에 태백시 여행을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 부래실비식당 육회비빔밥을 또 먹기로 다짐했어요.
태백종합버스터미널을 향해 걸어갔어요. 황지연못이 나왔어요.
"지금 몇 도야?"
2022년 11월 1일 새벽 6시 14분 태백시 황지동 기온은 섭씨 영상 3도였어요.
황지연못 황지공원 안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안쪽을 들여다봤어요. 매우 깨끗하고 예뻤어요.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태백종합버스터미널을 향해 걸어갔어요.
터미널 안에 들어가서 버스표를 발권했어요.
"시간 많이 남았네?"
버스 터미널 안에서 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오기로 했어요. 터미널 밖으로 나왔어요.
2022년 마지막으로 보는 태백시 풍경이었어요. 2022년 11월 1일. 태백시 단풍은 절정이었어요. 시뻘건 단풍잎과 샛노란 은행잎이 도처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어요. 태백역 앞 큰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산도 단풍 때문에 알록달록해졌어요.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어요.
"역시 태백이네."
입간판을 보며 웃었어요. 이제 11월이 막 시작되었어요. 터미널에는 도로 위 살얼음 블랙아이스를 조심하라는 입간판이 서 있었어요. 다른 지역은 아직 도로 위 살얼음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어요. 11월이면 늦가을이고, 그 11월도 이제야 1일이었어요. 2022년 10월은 상당히 따스한 편이었어요. 추위와 빙판 걱정하기에는 일러도 너무 이른 시점이었어요. 그러나 태백시는 아니었어요. 태백시는 11월 1일인데 벌써 도로 위 살얼음 주의하라고 하고 있었어요.
승차장으로 나갔어요.
버스에 탑승했어요. 버스 기사님께 미로에서 내린다고 말씀드렸어요. 이번에는 버스 정면 기준 오른쪽 좌석에 앉았어요. 태백시에서 도계로 넘어가는 버스는 버스 정면 기준 오른쪽 좌석에 앉으면 험준한 통리 고개를 매우 잘 감상할 수 있어요. 전에 태백에서 버스 타고 도계로 넘어갈 때는 어느 쪽에 앉아도 상관없었어요. 5시 50분 버스를 타고 갔기 때문에 깜깜해서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 없었어요. 이번에 제가 타고 갈 버스는 아침 7시 버스. 날이 밝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험준한 통리 고개를 잘 볼 수 있는 때였어요. 잘 하면 통리 고개 사진을 몇 장 찍을 수 있을 거였어요.
버스가 출발했어요. 통리역을 지나 통리 고갯길로 들어갔어요.
"이건 진짜 맨정신으로 걸어서 못 넘겠다."
아무리 봐도 통리 고갯길은 차도를 따라 걷는 건 목숨 걸고 해야 할 위험천만한 짓이었어요. 통리 고갯길을 걸어서 넘어가려면 운탄고도1330 7길이 완공되어야 했어요. 운탄고도 7길이 없으면 걸어서 넘어갈 엄두가 안 나는 길이었어요. 너무 험한 데다 지도상 표시된 길을 보면 과거 스위치백 노선을 따라 걸어야 했어요. 과거 스위치백이 완전히 방치된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스위치백 노선은 현재 관광 열차가 운행중이에요. 하이원 추추파크에서 운행하는 관광열차가 다니거든요. 지도상 길이 보인다면 운탄고도 7길을 시도해볼 텐데 통리 고갯길을 산 속으로 넘어가는 길도 문제였고, 스위치백 노선 따라 걸어가는 길도 문제라 다음해에 완공되었다고 하면 그때 가보기로 했어요.
도계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도계 터미널에서 사람들이 버스에 탑승했어요.
"오늘자로 요금 300원 올라서 300원 더 내셔야 해요."
버스 기사 아저씨께서 2022년 11월 1일부로 버스 요금이 300원 인상되었기 때문에 기존 요금에 300원 더 내야 한다고 하셨어요. 사람들이 탑승해서 현금으로 버스 요금을 지불할 때마다 반복해서 말씀하셨어요.
'엄청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버스 요금을 300원 더 내야 한다고 하자 혼란스러워질 거 같았어요. 요금이 인상되어서 300원 더 내라는 거에 따질 리야 없겠지만 100원짜리 동전 3개씩 더 내야 하니까 지폐 내고 동전 거슬러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이러다 보면 동전 부족해져서 거스름돈 마련한다고 다른 손님들에게 혹시 동전 있냐고 물어보며 시간이 지체될 거 같았어요. 500원도 아니고 하필 300원이라 만약 1000원짜리 지폐로 돈을 더 낸다면 700원 거슬러줘야 하니까요.
신기할 정도로 혼란이 없었어요. 버스에 타는 모든 사람들이 100원짜리 동전 3개를 더 꺼내서 기사 아저씨께 건네주었어요. 버스 요금이 300원 인상되어서 동전이 더 많이 왔다갔다해야 하는데 아무 일 없이 지나갔어요.
버스가 다시 출발했어요. 신기 터미널을 지나갔어요. 버스 안내 방송에서 다음 정류장은 미로라고 나왔어요. 미로면사무소 정류장이 나왔어요. 아까 탑승할 때 버스 기사님께 미로에서 내린다고 말씀드렸어요. 버스는 미로면사무소 정류장에서 정차하지 않고 계속 달렸어요.
"기사님, 저 미로에서 내려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사님을 향해 소리쳤어요.
"미로는 정식 정차하는 곳이 아니라 말씀해주셔야 해요!"
기사님께서 미로119지역대 앞에서 버스를 세워주시며 말씀하셨어요. 태백시에서 운탄고도1330 8길을 위해 도계로 갈 때는 도계 터미널에서 버스가 정차하기 때문에 버스가 정차한 후에 일어나도 되요. 그러나 신기 터미널과 미로면사무소에서 내릴 거라면 방송에서 다음 정류장이 신기, 미로라고 나올 때 내릴 거라고 기사분께 알려드려야 해요.
미로119지역대 앞에서 내렸을 때 시각은 2022년 11월 1일 오전 7시 56분이었어요.
가옥에 매달려 있는 감이 건조되어서 곶감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여기 다시 걷네."
지도를 보지 않아도 다 아는 길이었어요.
"이건 왜 자빠져 있지?"
도로 표지판이 밤새 어디 가서 거나하게 드셨는지 동이 트고 아침이 되었는데도 정신 못 차리고 바닥에 자빠져 있었어요.
오십천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어요. 전에 왔을 때보다 단풍이 더 잘 들어서 더욱 아름다워졌어요.
전에 왔을 때보다 더욱 가을다운 풍경이 되었어요.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봄인지 가을인지 분간 안 되는 풍경이었어요. 11월 1일에 와서 보니 드디어 봄인지 가을인지 헷갈리지 않고 확실한 가을 풍경으로 변해 있었어요.
아직은 별 생각 없었어요. 2022년 10월 21일에 걸었던 길을 열하루 지나서 다시 걷고 있었으니 감흥 같은 게 있을 리 없었어요. 고작 열하루만에 다시 온 길에 새로운 것을 느끼고 또 감정적으로 풍부해질 만큼 감성적이고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하지는 않거든요. 열하루 전에 걸었던 길이니 추억을 떠올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어요. 열하루 전에 걸었을 때도 이 길은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느끼기는 했지만 감정적으로 크게 감동받거나 놀라지는 않았어요.
2022년 10월 21일에 이 구간을 걸었을 때는 갈 수록 풍경이 조금씩 밋밋해져서 점점 지루해졌어요. 이날은 이 구간이 본격적으로 재미있는 여행이 시작되는 구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걸어야만 하는 진입로 같은 구간이라 지루했어요. 이 정도 차이가 있었어요.
2022년 11월 1일 오전 8시 21분, 운탄고도1330 9길 마평교 지점에 도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