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생존과 여행의 갈림길 (2019)

[제주도 여행] 생존과 여행의 갈림길 - 29 제주도 제주시 24시간 카페 정복기 1부

좀좀이 2020. 5. 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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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16분.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버스 정류장에서 제주시 3002번 심야버스에 올라탔어요.


"이제 시작이네."


창밖에 보이는 것은 어둠이었어요. 제주도에서는 밤 11시만 되어도 심야시간이라고 할 만 해요. 서울에서는 밤 11시가 무슨 심야시간이냐고 하겠지만 제주도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밤 11시 16분에 버스를 탄다는 것 자체가 제주도에서는 놀라운 변화였어요. 예전엔느 밤 11시 16분이 아니라 밤 10시 16분만 되어도 버스가 실상 끊겼다고 봐야 했거든요.


버스는 동문로타리를 지나 중앙로로 진입했어요. 동문로타리, 중앙로의 야경은 매우 암울한 분위기였어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동문로타리, 중앙로는 심야시간에 우범지역으로 유명한 곳이에요. 탑동을 본거지로 삼고 있는 노숙자들의 활동 지역이거든요. 낮에는 그래도 관광객들 때문에 사람이 조금 있지만 밤이 되니 사람이 아예 없었어요. 여름밤에는 탑동에 사람들이 있지만 탑동 가는 사람들도 동문로타리, 중앙로를 걸어서 지나가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2019년 3월 6일 밤 11시 20분. 제주시청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어요.


제주도 제주시 심야버스


저를 태우고 온 노란색 3002번 버스가 다음 정류장을 향해 떠났어요.


"오늘은 그래도 조용하네."


제주시청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귀가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자정 너머 서울 번화가 분위기와 비슷했어요.


제주도 제주시 제주시청 심야시간 사진


제주시청 심야시간 풍경 사진


딱히 돌아다니며 볼 건 없었어요.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었고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사람들이 많으면 사람 구경하는 재미로 조금 돌아다녔을 거에요. 하지만 사람들도 다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사람 구경할 것도 없었어요.


"카페나 가야겠다."


머뭇거릴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이날 가야 하는 제주시 24시간 카페는 총 세 곳이었어요. 제주시청에서 신제주 너머 한라대학교까지 갔다가 다시 제원사거리로 돌아가야 했어요. 이 모든 것을 도보로 끝내야 했어요. 거리가 가깝지 않았어요. 제주도 특성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투성이이기 때문에 지도상으로 보는 거리보다 체감 거리는 더 멀었어요. 육지에서 24시간 카페 찾아 돌아다닐 때는 길을 찾기 위해 걸리는 시간이 있었어요. 제주시 24시간 카페 찾아다닐 때는 길을 찾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전혀 없었어요. 대신 자연환경적 변수가 존재했어요.


제주시청 24시간 카페인 탐앤탐스 제주시청점으로 갔어요.


탐앤탐스 제주시청점


"여기 뭐 이렇게 잘 꾸며놨지?"


탐앤탐스 제주시청점 안으로 들어가서 조금 놀랐어요. 카페 내부를 매우 잘 꾸며놨어요. 타지역에 있는 탐앤탐스보다 훨씬 더 신경 많이 써서 잘 꾸며놓은 곳이었어요.


'희안하네.'


육지에 있던 것이 제주도로 들어오면 보통 다운그레이드되어서 들어오기 마련이었어요.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죠. 하여간 결과만 놓고 보면 다운그레이드였어요. 그런데 탐앤탐스 제주시청점은 오히려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어요. 고급 카페처럼 꾸며놓았어요.


스마트폰 충전기도 비치되어 있었어요. 이것은 충전이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었어요. 배터리를 최대한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연결해 충전시켰어요. 그리고 탐앤탐스 제주시청점 방문기를 후다닥 쓰기 시작했어요. 24시간 카페를 돌아다닐 때 보통 그 카페 안에서 커피나 음료 하나 주문해서 마시며 거기에서 바로 24시간 카페 방문기 작성을 다 끝내버려요. 그렇지 않으면 쓰는 것이 귀찮아서 계속 뒤로 미뤄버리거든요.


집중해서 열심히 썼어요. 최대한 빠르게 작성해야 했어요. 머뭇거리고 딴짓할 시간이 없었어요. 3월이었기 때문에 어둠은 길었어요. 그렇지만 동선이 길었고 세 곳을 이 어둠 속에서 한 번에 다 끝내야 했어요. 만약 실패한다면 나중에 제주도를 또 와야 했거든요. 오직 제주도에 있는 24시간 카페 정복을 위해 제주도에 또 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제주도 비행기표 가격이 얼마인데요.


글을 다 썼어요. 커피도 한 잔 다 마셨어요.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어요.


제주도 제주시 제주시청 24시간 카페 탐앤탐스 제주시청점


"이제 한라대학교까지 걸어가야 하네."


제주시 야경 사진


택시가 저를 유혹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택시 타고 24시간 카페를 찾아 밤에 돌아다닌다면 제게 아무 의미 없었어요. 걸어서 끝내야 제게 의미있었어요.


카페에서 나온 시각은 2019년 3월 7일 새벽 1시 13분이었어요. 예전 제주도 살 때 제주시청에서 신제주까지 걸어갈 때 보통 1시간 정도 걸렸어요. 한라대학교는 신제주 끄트머리에 있는 곳이니 그보다 훨씬 더 걸릴 거였어요. 게다가 이날은 사진도 찍으면서 갈 거였어요. 사진을 찍으면서 걸으면 시간이 더 걸려요. 게다가 이때는 밤이었어요. 밤에 사진 촬영하며 걸어가면 시간이 매우 많이 걸려요. 가뜩이나 셔터스피드가 느리게 나와서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걸리는 시간이 긴 편인데 여기에 흔들려서 몇 번을 다시 찍어야하는 경우도 꽤 많이 발생하거든요. 낮이라면 1초도 안 되어서 사진 찍고 지나갈 곳을 몇 분씩 머무르게 되는 경우도 꽤 잦아요. 이런 걸 모두 고려했을 때, 예상 도착 시간은 3시 되기 조금 전쯤 될 거 같았어요.


"저기는 무슨 철 지난 크리스마스 장식이야?"


제주도 제주시 버스정류장


버스정류장 혼자 3월의 크리스마스였어요.


광양사거리를 향해 걸어갔어요. 배스킨라빈스31 매장이 나왔어요.


제주도 베스킨라빈스31


"이 매장 맞을 거야."


제가 배스킨라빈스31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본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어요.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였어요. 친구들과 만나 시청에서 놀다가 헤어질 때 베스킨라빈스31 매장에 갔어요. 이때가 처음 베스킨라빈스31 가본 것이었어요. 베스킨라빈스31을 처음 가봤기 때문에 무슨 아이스크림을 골라야할 지 감이 안 왔어요. 배스킨라빈스31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아이스크림은 그때나 지금이나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바닐라, 초콜렛 같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이름을 가진 아이스크림도 있지만 대부분은 휘황찬란해서 이름 보고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아이스크림이 대부분이에요.


무슨 아이스크림을 골라야할 지 몰라서 친구에게 어떤 거 고르는 게 좋냐고 물어봤어요. 친구가 몇 개 설명해 줬어요.


"이건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좋아하는데 싫어하는 사람은 엄청 싫어해."


그 말을 듣고 도전욕구가 불타올라서 바로 주문했어요. 그게 바로 민트 초콜릿칩이었어요.


그리고 10년 넘게 배스킨라빈스31 절대 안 갔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에요. 배스킨라빈스31 민트 초콜릿칩 아이스크림을 먹고 하도 충격받아서 10년 넘게 베스킨라빈스31을 절대 안 갔어요. 베스킨라빈스31에 있는 아이스크림은 전부 민트 초콜릿칩처럼 괴상망측한 맛일 줄 알았거든요. 베스킨라빈스31 아이스크림 좋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 인간들은 혓바닥 미뢰에 무슨 거대한 오류가 담겨 있길래 그런 게 맛있다고 하는 건가 생각했어요. 아주 나중에야, 10년이 아니라 10년 훨씬 넘어서야 베스킨라빈스에 별별 아이스크림이 다 있고 그 중에서도 유독 민트 초콜릿칩이 호불호 극단적으로 갈리는 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주도 제주시 광양사거리


광양사거리를 지나 도남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제주도 여행 사진


휑한 거리를 따라 걸어갔어요. 사람이 없어서 인도는 휑했지만 자동차는 많았어요.


제주도 쓰레기 분리수거


제주도에서는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이 요일에 따라 정해져 있어요.


제주도 분리수거


"사진 진짜 잘 안 찍히네."


손떨림 문제 때문에 일단 어둡게 찍고 나중에 후보정하기로 했어요.


제주도 밤거리


"맞바람 분다!"


갈 길 바쁜데 맞바람이 불었어요. 타지역에서는 바람 좀 강하게 분다고 할 바람이었어요.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이 정도 바람은 그냥 평상시에도 부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바람이었어요. 길이 점점 오르막으로 바뀌어가는데 맞바람까지 부니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더 떨어졌어요.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제 예상 범위 안에 존재하는 것이었어요. 제주도에서 바람 안 불기를 바라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거든요. 제주도 보고 돌, 여자, 바람이 많다고 삼무의 섬이라고 해요. 이 중 돌과 바람은 진짜로 많아요. 여자 많은 것은 잘 모르겠구요.


제주시 도남동


한때 제주우표사가 있던 자리까지 왔어요. 제가 고등학교때 제주도에는 수집우표, 수집용 공중전화카드를 다루는 우표사가 딱 두 곳 있었어요. 하나는 탐라우표사고 하나는 제주우표사였어요. 탐라우표사는 대성학원 맞은편에 있었고, 제주우표사는 도남동에 있다가 관덕정 근처로 이전했어요. 현재 탐라우표사는 없어졌고 제주우표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우표 수집, 공중전화카드 수집 둘 다 망했으니 없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이쪽 근처에는 과거 신성여자고등학교가 있었어요. 신성여자고등학교는 제주시내 인문계 여고 중에서 신제주 사는 여학생들이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여고였어요. 그런데 신성여고가 멀리 산자락으로 이사가면서 신제주 거주 여중생 중 제주시내 인문계 여고에 진학하려면 그나마 가까운 곳이 제주중앙여고가 되었어요.


제주시 신제주에서 여자 중학생의 시내 인문계 고교 진학시 통학 문제는 조금 골치 아픈 문제에요. 신제주 사는 남자 중학생이 시내 인문계 고교로 진학할 때는 제주일고가 있어요. 그러나 신제주에는 여자 인문계 고등학교가 없어요. 과거에는 신성여고가 그나마 가까운 학교였지만, 신성여고가 이전하면서 신제주에서 가장 먼 인문계 여고가 되자 중앙여고가 그나마 가까운 여고가 되었어요. 여중생이 통학거리 따져서 그나마 신제주에서 여자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하려고 하면 남녀공학인 남녕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하구요.


참고로 제주시내 평준화 고교 8곳은 추첨으로 가기 때문에 이들 8개 고교 사이에서 딱히 우열을 가릴 것은 없어요. 제주도에서도 제주시내 평준화 고교를 갔냐만 중요하게 따지지, 그 이상은 잘 안 따져요. 제주시내 평준화 고교 8곳 모두 각 고등학교마다 나름의 자부심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 8개 고교 진학은 결국 추첨운에 의한 진학이거든요. 이런 부분을 잘 모르는 타지역 사람들은 제주시내 평준화 고교 8곳에서 다시 서열화를 시도하려고 하기도 해요. 제주도에서는 시내 인문계 고교를 나왔는지를 중요하게 보지, 어느 인문계 고교를 갔는지는 그렇게 크게 따지지 않는 편이에요. 제주시내 평준화 인문계 고교에 진학할 수 있는 점수만 되면 결국 추첨운이니까요. 이걸 잘 모르는 타지역 사람들은 제주도 사람들끼리 어느 고교 나왔는지 이야기하고 나름대로 선후배 찾는 것 보고 타지역 비평준화 고교 서열을 떠올리며 억지로 서열화해서 보려고 하기도 하더라구요.


단, 제주도에서 제주시내 평준화 인문계 고교를 나왔는지 여부는 상당히 많이 따져요.


참고로 제가 제주도에서 고교 진학할 때는 제주시내 평준화 고교 진학률이 상위 50% 조금 안 되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는 낮아졌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중학교 과정을 제대로 아는 중학생들만 진학할 수 있는 것은 여전해요. 얼추 50%대 수준이라 제주시내 평준화 인문계 고등학교 공교육 질이 유지되고 있어요.


남성마을 입구 버스정류장


새벽 1시 30분, 남성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제주도 동백꽃


동백나무에는 동백이 만발해 있었어요. 이제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어요. 동백꽃도 제주도에서는 흔히 보던 꽃이었는데 서울 와서는 보기 쉽지 않은 꽃이 되었어요.


제주도 제주시 서사라


서사라사거리가 나왔어요. 여기에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면 서사로로 들어가요. 보통 '서사로'보다는 '서사라'라고 많이 불러요.


'왜 저기는 '서사라'라고 부를까?'


'서사라'가 맞는지 '서사로'가 맞는지 고민해본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왜 지명이 '서사라'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사라봉 서쪽이라고 저렇게 붙여놨나?'


가볍게 한번 생각해봤어요. 왜 서사라인지는 저도 몰라요.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서사로도 제주시에서 차 엄청 막히기로 악명 자자한 곳 중 하나였다는 것이에요. 지금이야 제주시 도처에 악명 높은 상습 정체구간이 존재하지만 제가 제주도에서 살 때는 서사라, 인제가 특히 별 다섯 개 붙여야 할 정도로 상습 교통 정체 구간으로 악명 높았어요. 버스를 타고 신제주에서 동문로타리로 가는데 서사라 통해 가는 버스보다 당시 제주도 최대 번화가인 중앙로 지나서 가는 버스가 더 빠르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제주시 사진


진짜 벚꽃인 줄 알고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 찍은 후 다시 들여다보니 벚꽃 조화였어요.


제주시 건천


멀리 한라체육관이 보였어요. 울퉁불퉁 화산암 바닥으로 되어 있는 건천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제주시외버스터미널


제주시외버스터미널까지 왔어요. 여기는 보통 '터미널'이라고 불러요. 제주시에서 '터미널'이라고 하면 다 여기를 뜻해요.


제주도 제주시 시외버스 터미널


그래, 오느라 힘들었다.


제주도 방언


오젠호난 속았져


맞바람 맞으며 걷느라 고생했어요. 실제 걸은 거리보다 1.3배 더 걸은 느낌이었어요.


'속았다'는 말이 저기에서는 수고했다는 말이에요. 제주도 방언이에요. 그러나 저걸 문자 그대로 보고 표준어로 해석해서 속았다고 해석해도 될 거 같았어요. 제주도 와서 겪은 모든 상황이 참 잘 맞았어요. 날씨는 비 오고 미세먼지 자욱했어요. 툭 부딪히기는 한 것이지만 멀쩡히 걸어가고 있는데 렌트카가 뒤에서 와서 저를 들이받았어요. 친구 차 타고 가면 어디를 가든 주차할 곳 찾는 것이 서울보다 더 어려웠어요.


평화의 섬을 상상하고 왔다면 완전 속은 기분이겠지.


오젠호난 속았져. 오느라 수고한 게 아니라 오느라 속았다고 봐도 진실을 말하고 있었어요. 환상의 섬 제주도가 아니라 환장의 섬 제주도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제주도 골동품


길 건너 대각선 맞은편에 한라민속관이 보였어요. 저기는 골동품 가게에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도 있었어요. 30년 넘은 곳이에요. 어렸을 적에는 저기가 박물관 같은 건가 했어요.


제주도 건천


건천이 하나 더 나왔어요. 사진을 찍고 몇 시인지 확인해봤어요. 2019년 3월 7일 새벽 1시 51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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