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람이 있다 (2019)

서울 강북구 삼양동 우이신설선 삼양역 2번 출구 달동네

좀좀이 2019. 5. 29.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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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여기 벽화는 왜 경찰청 마크가 그려져 있지?"


경찰청 마크가 그려진 벽화가 있었어요. 비상하는 독수리는 경찰을 나타내는 것 같았어요.


동네를 계속 돌아다녔어요.



삼양동이라는 이름은 1949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 일대가 서울특별시 성북구로 편입될 당시 이 지역 구장들이 모여서 행정동명으로 정했어요. 삼양동은 미아1동, 미아2동, 미아6동, 미아7동 일대로, 삼각산의 양지바른 남쪽 동네라는 의미로 삼양동이라 명명되었다고 해요.




이렇게 성북구 삼양동으로 존재하다가 1965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삼양1동과 삼양2동이 분동되었어요. 삼양1동은 예전 미아6동과 미아7동이고, 삼양2동은 미아1동과 미아2동이에요.




1970년 5월 18일, 삼양동은 서울특별시 동설치조례개정으로 인해 성북구 미아8동으로 편입되었어요.




1973년 7월 1일에 삼양동은 서울특별시 행정구역개편으로 인해 도봉구 미아8동으로 편입되었어요.




1975년 10월 1일에 삼양동은 서울특별시 행정구역개편으로 도봉구 미아1,2동으로 편입되었어요.




1995년 3월 1일에는 서울특별시 행정구역개편으로 강북구 미아1,2동으로 편입되었어요.




그리고 2008년 6월 30일, 서울특별시 행정구역개편으로 강북구 삼양동으로 통합되었어요.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부터에요. 용산구 후암동, 동대문구 신설동, 성동구 왕십리 등에서 살던 사람들이 재개발 철거로 인해 쫓겨나 이쪽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이들은 사실상 빈손으로 쫓겨났기 때문에 급한대로 합판이나 현장에 남은 자재로 판잣집을 지었다고 해요. 어떤 사람들은 시멘트 패널을 구해 벽을 세우고 천막을 쳤구요. 이때 사람들은 땅을 동굴처럼 ㄴ자로 파낸 후 벽과 기둥을 세우고 집을 올렸다고 해요.




이후 남창동, 양동에서 화재로 집을 잃은 화재민, 장마때 한강이 범람해 집을 잃은 이촌동 수재민들도 이쪽으로 이주해 정착했다고 해요. 이렇게 삼양동 달동네가 형성되었어요.




삼양동은 1970년을 전후로 이 동네 불법 판자촌을 밀어버리기 위해 완장을 찬 철거팀이 나타나 동네 여기저기를 철거하고 행패를 부렸다고 해요. 강제 철거가 이루어지기도 했구요.




이렇게 강북구 삼양동은 사실상 버려진 땅 취급을 받던 동네였어요. 삼양동에서 서쪽으로 쭉 가면 북한산 국립공원이 나오거든요. 땅 자체가 상당히 굴곡진 구릉지이기도 하구요.


그래도 1980년대부터 삼양동이 변화하기 시작했어요. 1980년대에는 2층 벽돌집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서는 외지인들이 땅을 매입해 빌라를 짓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현재는 달동네, 일반주택, 아파트 단지, 신축 건물이 뒤섞인 삼양동이 되었어요.





미용실 간판 글자체가 참 특이했어요.



계속 걸어다녔어요.














특별한 느낌이나 감흥은 없었어요. 그냥 오르막과 내리막 투성이인 동네라는 생각 뿐이었어요. 인상적인 부분은 없었어요. 사실 땅조차 평평했다면 정말 아무 생각 없었을 거에요.



'내가 달동네를 너무 몰아서 많이 다녔나?'


진지하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보이니까 사진을 찍기는 하는데 왜 여기를 돌아다니고 있는지조차 의문이었어요. 사실 기록용으로 사진을 찍을 생각이 없었다면 여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거의 안 찍었을 거에요.


서울 강북구 삼양동 삼양역 2번 출구 달동네


'이제 여기도 끝이구나.'



서울 강북구 삼양동 삼양역 2번 출구 달동네를 빠져나왔어요. 과거에는 여기도 판잣집이 엄청나게 많았을 거에요. 그러나 지금은 별 거 없었어요. 기껏해야 박원순이 옥탑방 체험쇼한다고 여기에서 한 달 머물렀던 것 정도가 유명할 거에요. 달동네를 찾아서 이쪽에 온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거에요. 달동네를 찾아 돌아다닌 곳 중 힘만 들고 재미는 하나도 없는 동네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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