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람이 있다 (2019)

서울 강북구 미아동 미아3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구역

좀좀이 2019. 5. 2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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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기만 가면 강북구는 끝이다."


길 건너편 삼양역 1번 출구 너머에 허름한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어요. 거기는 달동네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곳이기는 했어요. 경사진 곳을 따라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은 아니었거든요. 경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달동네라고 부를 정도로 경사진 곳은 아니었어요. 판잣집 형태가 남아 있는 오래된 집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 조금 있는 곳이었어요.


"어? 저기 들어가도 되나?"


삼양역


철거인 투쟁 정당하다 생존권 보장하라

내 재산 강탈한 조합은 현 싯가로 보상하라

인허가 남발하는 강북구청 각오하라

살인철거 조장하는 강북구청 박살내자


위 사진에서 보이는 현수막에 적힌 문구들은 위와 같았어요. 그리고 그 현수막 중 하나에 '전철연'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전철연.


전국철거민연합을 줄여서 전철연이라고 해요. 1994년 6월에 결성된 철거민 생존권 투쟁조직이에요. 일반인들이 '전철연'을 접할 일은 거의 없어요. '전철연'이라는 단어를 접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바로 철거 현장에서 경찰과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는 뉴스에요. 전철연이 적혀 있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자 진지하게 고민되었어요. 저기는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일단 밥 먹으면서 생각하자.'


저기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되었어요. 이제 여기에 사진을 찍으러 다시 올 일은 없을 거에요. 강북구 삼양동 달동네는 다 둘러보았거든요. 삼양역에 제가 또 올 일이 있을지 생각해보면 사실 없었어요. 만약 이 동네를 몇 번 갈 일이 있었다면 굳이 카카오맵을 뒤져가며 삼양동에 달동네가 있다는 것을 찾지도 않았을 거에요.


일단 롯데마트에 가서 햄버거를 사서 먹었어요. 먹으며 계속 고민했어요. 저기는 분명히 긴장 바짝 하고 가야 할 곳이 분명했어요. 절대 조용한 동네가 아니었어요. 저 또한 전철연 단어를 접한 것은 오직 뉴스 뿐이었어요. 그 뉴스 속 전철연은 경찰과 거칠고 격한 무력 충돌을 벌이고 있었어요.


'가 보자.'


그래도 가보기로 했어요. 철거 대상지는 많아요. 그런데 왜 저기는 전철연까지 출동했는지 솔직히 궁금했어요.



햄버거를 다 먹고 삼양역 1번 출구로 갔어요.



'선대책 후철거 투쟁 투쟁 투쟁!'이라고 적혀 있는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어요.





노란 스티커가 보였어요.



경고문

이 건물은 재건축 사업으로 인해 미아제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으로 소유권에 대한 권리가 이전된바 범죄예방업체인 (주)엔이티건설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만일 건물내 침입시 형법제 제319조제1항(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물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에 의거 고발조치 함을 명시하오니 이점 유념하여 불상사가 없길 바랍니다.

(주)엔이티건설 현장소장

미아제3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스티커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서울 강북구 미아동 미아3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구역


그때였어요. 전철연 조끼를 입은 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일단 먼저 다가가 인사를 드렸어요. 그리고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인데 이 동네 돌아다니며 사진 찍어도 되냐고 여쭈어보았어요.


"여기는 좀 깨끗한 곳이라 사진 찍을 거 없고, 저 아랫쪽으로 가면 헌 집 많아요."


뉴스에서 보던 전철연은 위험하고 무서운 조직이었어요. 그러나 여기에서 만난 전철연 조끼 입은 분들은 매우 친절했어요. 제가 골목길 돌아다니며 사진 찍는 것이 취미라고 말씀드리자 오히려 여기에서는 어디로 가야 제가 원하는 낡고 허름한 골목길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촬영 포인트까지 알려주셨어요.


미아동


전철연 분들께 고맙다고 인사드린 후 다시 사진을 찍으며 골목길을 걸어다니기 시작했어요.




마음이 영 불편했어요. 재개발 지역으로 설정되면 온갖 이권이 개입해서 엄청나게 복잡해져요. 그리고 분명히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겨요. 일 없이 전철연이 들쑤시고 다니지는 않아요. 분명히 여기에서 보상 문제로 피해본 사람이 많으니 전철연이 출동했겠죠.




재개발 보상 문제는 매우 복잡해요. 특히 이런 동네라면 더욱 복잡할 거에요. 상가까지 끼어있다면 더욱 험해지구요. 상가의 경우, 권리금 문제가 있거든요. 재개발 지역으로 설정되면 권리금은 사실상 싹 다 날아가버려요. 우리나라에서 장사하려고 상가 임대할 때 권리금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 더욱 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에요. 무턱대고 권리금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해서 권리금을 산정하자니 뾰족한 방법이 없구요.



미아3구역


이런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왜 진짜 가난한 사람들이 재개발을 반대하는지 알게 되요. 그들은 보상 받고 나가야 하는데, 새로운 집을 구할 만큼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경우가 극히 드물거든요. 겨우 자기 집 하나 일궈놨는데 재개발이라고 다시 집 없는 상태로 전락하는 거에요. 주민 보상분이 있기는 한데, 이 경우 거의 전부 엄청난 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해요. 이걸 부담할 능력이 안 되어서 다른 동네로 떠나야 하는데, 다른 동네라고 집값이 개집값일 리 없으니 집 없는 상태로 전락하는 거죠. 집이 있고 없고에 따라 생활비와 돈 모이는 속도에서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구요.




여기는 보상에서 어떤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투쟁하시냐고 여쭈어보고 싶었지만 안 물어봤어요. 그걸 물어보면 상당히 머리아픈 일이 생길 것 같았거든요. 저는 부동산 업자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에요. 정부 관계자도 아니구요. 기껏해야 블로그에 사진 올리고 글 쓰는 정도이고, 이게 무슨 인플루언서처럼 아주 유명한 1인미디어 수준도 아니에요. 특별히 직업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구요. 그래서 많이 궁금했지만 안 여쭈어보았어요.




전철연 분들께서 알려주신 곳으로 가자 정말 허름한 골목길이 나왔어요.












전철연 조끼를 입은 분들이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전철연 조끼를 입고 계셔서 볼 때 긴장되기는 했지만, 인사하면 인사 받아주셨어요. 제가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도 않으셨어요. 조끼 빼면 주민들 돌아다니는 평범한 동네와 다를 바 없는 분위기였어요.




강북구 미아동 미아3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구역




계속 사진을 찍으며 동네를 돌아다녔어요.










철거 예정이라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스티커와 끝까지 투쟁하자는 전철연 벽보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어요.



동네는 매우 조용했어요.






소리 없는 투쟁과 충돌이 지배하는 공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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