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커피를 살 때가 되었어요. 인스턴트 커피를 사러 대형 마트에 갈까 동네 마트를 갈까 조금 고민되었어요.
제게는 둘 다 장단점이 있었어요. 대형 마트를 가면 인스턴트 커피 믹스를 매우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요. 어느 정도냐 하면 인스턴트 커피 믹스 180포 한 봉 구입하면 얼추 차비가 빠져요. 여기에 몇 가지 더 구입하면 동네 마트 가는 것보다 훨씬 저렴해요. 반면 대형 마트는 제가 사는 동네 근처에 없기 때문에 경전철이든 전철이든 타고 나가야 하고, 여기는 한 번 가면 많이 사올 수록 이득이에요. 그래야 차비 들인 것보다 더 저렴하게 구입한 것이 되니까요. 여기에 대형마트는 제가 들고 오는 데에 한계가 있다보니 재미로 이것저것 사오기 별로 안 좋아요. 딱 필요한 것만, 그리고 동네 마트보다 압도적으로 저렴한 것만 골라서 들고 와도 백팩에 장바구니를 꽉 채우거든요.
반면 동네 마트의 경우, 대형 마트의 장단점과 거의 정반대의 장단점이 있었어요. 여기는 집과 가까우므로 물건을 많이 사서 들고 온다고 해도 별 부담이 없어요. 게다가 한 번에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장을 보고 돌아와야 할 필요도 없구요. 간단히 조금씩 사도 되요. 차비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동네 마트 가면 호기심이 원래 구입 계획에 없던 다른 물건을 몇 가지 구입해올 수 있어요.
'귀찮은데 동네 마트나 가야지.'
집에 라면도 쌓여 있겠다, 참치도 쌓여 있겠다 굳이 대형 마트를 갈 필요가 없었어요. 참치캔이야 미리 쌓아놓으면 참치캔 가격이 떨어질 리는 없으니 두고두고 먹으면 되긴 해요. 그러나 라면은 유통기한이 있어요. 유통기한이 임박하면 밀가루 쩐내가 슬슬 올라오기 시작해요. 그래서 라면은 무한정 보관할 수 없어요. 라면이 쌓여 있다는 것이 결정적이었어요. 굳이 라면을 또 구입해서 바리바리 들고 올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동네 마트 가서 인스턴트 커피 믹스만 사서 오기로 했어요.
동네 마트로 갔어요. 동네 마트의 좋은 점은 물건들을 낱개로 판매한다는 점. 그래서 호기심이 생긴 것을 부담없이 한 개 집어서 구입해올 수 있어요. 제 흥미를 끌만한 것은 뭐가 있는지 일단 살펴보았어요. 라면도 신제품 나온 것이나 제가 안 먹어본 것이 있나 살펴보았어요. 이왕 마트 온 김에 과자도 사볼까 하고 과자도 둘러보았어요.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3분 카레 코너로 갔어요.
3분카레는 대학교 다닐 때 고시원에서 살면서 진짜 질리게 많이 먹었어요. 고시원에서는 밥과 김치를 무료로 제공해주었어요. 그래서 돈 아끼려고 3분 카레를 엄청나게 많이 먹었어요. 동네 마트에서 3분 카레 할인 행사할 때마다 가서 20개씩 사와서 잔뜩 쌓아놓은 후 3분 카레와 밥, 김치로 버티곤 했어요. 이러면 식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고시원을 벗어난 후, 3분 카레는 진짜 어지간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이건 뭐야? 진짜 초록색이야?"
오뚜기 3분 태국 카레 소스 그린.
포장에 초록색 카레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어요.
나는 초록색 카레를 참 손대지 않지.
초록색 카레가 맛없는 것은 아니에요. 먹으면 맛있어요. 하지만 인도 카레 부페 같은 곳 갔을 때 초록색 카레만큼은 진짜 손이 가지 않아요. 빨간 카레, 노란 카레 다 좋아하는데 초록색 카레는 두뇌 깊은 곳에서부터 '저건 건드리는 거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올라와요. 분명히 먹으면 맛있는 거 아는데도 그래요. 먹어봤고, 맛있게 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록색 카레만 보면 저건 아무리 봐도 풀죽 같아서 손이 안 가요.
오뚜기 3분 카레에 초록색 카레는 제가 진짜 기피하는 조합.
그래서 구입했어요. 기피하는 것이 퓨전되어 있어서요.
오뚜기 3분 카레 소스 그린 포장은 이렇게 생겼어요.
초록색 카레 사진이 인쇄되어 있어요.
뒷면은 이래요.
조리방법은 다음과 같아요.
끓는 물 이용시 3분간 데워서 먹고, 전자레인지 이용시 밥 위에 부은 후 랩이나 덮개를 씌워서 돌려 먹으래요. 그리고 절대 봉지째 전자레인지에 집어넣지 말래요.
제품 특징이라고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어요.
'3분 태국카레소스 그린'은 녹색고추, 레몬그라스, 갈랑갈 등 태국향신료로 만든 그린커리페이스트와 코코넛크림이 어우러진 건더기를 듬뿍 넣은 정통 태국카레소스입니다.
태국 음식이라면 나도 태국 가서 먹어봤지.
남들 다 가는 카오산로드에서는 음식을 먹어본 적 없어요. 거기 자체를 무지 싫어헀거든요. 혹시나가 역시나라 카오산로드를 가보기는 했지만 정말 싫어서 뭐 먹고 즐기고 한 것 없이 그냥 돌아왔어요. 대신 길거리 음식, 허름한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곤 했어요.
한국에서도 태국 식당 가서 먹어본 적이 있어요. 태국 음식의 특징이라면 양이 적고 맛이 한국인 입맛에 기괴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맛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조합으로 만들지 않는 맛들의 조합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솔직히 지금껏 대서양과 접한 모로코부터 우리나라 옆 중국까지 쭉 다녀보면서 한국인 입맛에 가장 이질적인 맛이라면 태국 음식이라 생각해요.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오렌지 주스나 레몬 주스에 캡사이신 타서 먹는 느낌이에요.
오뚜기 3분 태국 카레 소스 그린 한 봉지는 200g이고, 열량은 135kcal 이에요.
오뚜기 3분 태국 카레 소스 그린의 유형은 소스류(살균제품), 레토르트 식품이래요.
원재료는 다음과 같아요.
정제수, 닭고기(국산), 코코넛크림액(인도네시아산 코코넛 크림), 그린 빈수, 타이 그린 커리 페이스트 5.55%(태국산:녹색 고추, 레몬 그라스, 마늘, 셜롯, 정제소금), 죽순채, 백설탕, 혼합제제변성전분, 렉스트린, 엔초비 추출물, 치킨엑기스, 사골엑기스, 청주, 혼합제제변성전분, 백설탕, 덱스트린, 정제소금, 식물성분해단백, 산도조절제, 강황추출액
저걸 끓는 물에 3분 데워서 밥에 뿌려먹으면 되요.
3분 데운 후 그릇에 부었어요.
줄줄줄
"어? 이거 왜 이렇게 묽어?"
완전 국 같았어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걸쭉한 카레가 아니라 '카레국'에 매우 가까운 점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국물이 그릇으로 시원하게 쏟아졌어요.
초록색 똠얌인가...
한국인 입맛을 생각해서인지 맛 자체는 그렇게 마구 강렬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걸 밥에 말아먹으라고 하면 많은 한국인들이 참 싫어할 것 같았어요.
새큼한 맛이 느껴졌어요. 여기에 매콤한 맛이 느껴졌고, 단맛도 조금 느껴졌어요. 달고 시고 매운 조합. 태국 요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조합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조합이구요. 우리나라 식당 음식들 뒤져보면 아예 없지야 않겠죠. 하지만 밥 말아먹을 용도로 만든 음식에 단맛과 신맛을 섞어놓는 경우는 없어요. 식초가 들어간다고, 신김치가 들어간다고 해서 느껴지는 신맛이 아니라, 진짜 과일향 신맛 확 느껴지는 거요. 여기에 추가로 단맛까지요.
태국 음식 중 똠얌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평이 극단적으로 갈려요. 좋아하는 사람은 무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기겁하는 음식이에요. 이 똠얌을 순화된 버전으로 경험해보고 싶다면 오뚜기 3분 태국 카레 소스 그린이 좋을 거에요.
이건 밥 말아먹기에는 너무 이질적인 맛이었어요. 오히려 찌개 대신 떠먹을 것으로 먹는 것이 훨씬 나은 맛이었어요. 적응이 필요한 맛이었거든요. 찌개 대신 떠먹는다면 태국풍 찌개의 맛을 즐기는 셈치고 괜찮게 먹을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밥에 말아 먹는다면 영 아니라고 생각할 확률이 무시 못하게 높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