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바람은 남서쪽으로 (2014)

바람은 남서쪽으로 - 14 베트남 후에 카이딘 황제릉 lăng khải định

좀좀이 2018. 7. 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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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베트남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


계몽사에서 출판한 학습그림사회. 어렸을 적 제가 가장 좋아했던 책이었어요. 이 책이 저희집에는 없었기 때문에 그 책이 있는 이웃집에서 책을 빌려서 보곤 했어요. 그 중 '동남아시아'권에 수록된 베트남 편을 보면 카이딘 황제릉 사진이 나와요. 하도 오래전에 본 책이라 어떤 그림과 사진들이 있었는지 다 기억하지는 못해요. 그렇지만 '카이딘 황제릉'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어요. 그게 카이딘 황제릉이라는 것은 몰랐지만요.


그러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그것이 바로 카이딘 황제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순간부터 이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바로 '카이딘 황제릉 방문'이 되었어요. 어째서인지는 몰라요. 어렸을 적 그 책에 실린 카이딘 황제릉 사진을 보고 매우 큰 인상을 받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학습그림사회 2권 동남아시아의 베트남편에서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카이딘 황제릉 사진이었어요.


어렸을 적, 학습그림사회를 읽으며 여기 나와 있는 곳을 모두 가보고 싶다고 꿈꾸곤 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내게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았을 때 여행가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혼났다. 여행가는 직업도 아니고 돈 많은 사람들이 여행 많이 다니는 걸 여행가라고 하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장래희망 칸에 '여행가'라고 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도 항상 외국 여행을 가는 꿈을 계속 꾸었고, 결국은 여러 나라를 가보게 되었다.


드디어 카이딘 황제릉 간다!


정말 들떴어요. 어렸을 적부터 꾸어왔던 꿈.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학습그림사회에 대한 기억 중 하나인 베트남 카이딘 황제릉 사진. 바로 그 장소를 가는 것이었어요. 계몽사 학습그림사회에 실린 사진 속 장소를 다 가보고 싶다는 꿈에서 하나가 이루어지는 것이었어요. 그런 설렘을 알고 있는지 차는 신나게 흔들리며 빠르게 달려갔어요. 점점 꿈과 현실이 일치해가는 길이었어요.


차창 밖을 내다보았어요. 베트남의 민가가 보였어요.


베트남 민가


'혹시 저기인가?'


산 위에 기와 지붕이 보였어요. 그 뒤에는 거대한 불상이 서 있었어요.



어렸을 적, 학습그림사회 주인공들이 정말 부러웠어. 아무리 만화 속 캐릭터라 하지만 걔네들은 세계 여기저기 여행하잖아. 로봇 조종이라든가 악당을 무찌른다든가 하는 만화 속 캐릭터는 하나도 안 부러웠어. 그러나 학습그림사회에서 전세계를 여행하는 주인공들은 미치도록 부러웠어. 나는 거지같이 섬에서 18년 갇혀 살아야 했는데 걔네는 전세계를 돌아다니잖아. 나는 세계는 고사하고 TV 속 명동 거리조차 저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조차 없는 세계에 감금되어 있는데! 재미있는 방송 절묘히 자르고 수준 낮은 지방 방송 나오면 얼마나 짜증나는지 모르지? 나중에 실수인지 그게 재방송될 때 그냥 나오면 그 다음 그것 정규방송 시간에 지방 방송 나오는 거 보고 두 배로 열받곤 했어. 남들은 바다 원없이 봐서 좋았겠대. 그래, 바다라면 원없이 봤어. 집에서도 바다가 보였고, 학교에서도 바다가 보였으니까. 그 바다가 진짜 토쏠리게 싫었어. 그 바다 때문에 갇혀 있는 거니까. 지금도 바다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꽉 막히는 거 닮아. 왜냐하면 바다는 나한테 항상 끔찍한 장벽이었고, 절대 넘을 수 없는 감옥의 담벼락 같은 것이었으니까.


참 괴로웠던 유년기의 기억.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다시 떠올랐어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제 인생 최대 축복이었어요. 그것은 이렇게 카이딘 황제릉으로 가는 길 위에서도 전혀 변함이 없었어요. 거기서 탈출했으니까 이렇게 베트남에 와서 어렸을 적 기억 중 상당히 뚜렷히 남아 있는 기억 중 하나인 학습그림사회 2권 동남아시아의 베트남편에 실린 카이딘 황제릉을 보러 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2014년 12월 20일 오후 2시 50분. 차가 멈추어섰어요. 가이드가 차에서 내렸어요. 관광객들 모두 따라 내렸어요.


'내가 제일 먼저 올라갈거야!'


가장 먼저 올라가야 사람들 없는 카이딘 황제릉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요. 계단이 꽤 많았어요. 성큼성큼 뛰어올라갔어요. 가이드가 저를 보고 웃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제가 저와 같이 차를 타고 온 관광객 무리에서 제일 먼저 앞으로 튀어나갈 때 가이드가 저를 보고 웃는 모습을 살짝 보았거든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순간이 코앞이었어요. 남들에게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었어요.


베트남 후에 카이딘 황제릉 입구


"그래, 이 풍경!"


카이딘 황제릉


어렸을 적 학습그림사회에서 보았던 그 사진. 그것이 제 눈 앞에 실제로 펼쳐져 있었어요. 감개무량했어요. 빛바랜 오래된 꿈인 무수히 많은 꿈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꿈인 학습그림사회 속 사진 장소를 다 가보는 것 중 하나가 이루어졌어요.


베트남 후에 카이딘 황제릉


가장 먼저 와서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카이딘 황제릉 앞 석상이 도열해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싶었어요. 그러나 베트남인 커플이 거기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가장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에 딱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사진 찍고 비켜주기를 기다렸어요. 그러나 계속 석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이제 저와 같이 차를 타고 온 관광객들이 하나 둘 위로 올라와 이 장소로 도착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사람이 있는대로 사진을 찍었어요.



'여기는 베트남 사람들한테도 매우 유명한 관광지인가보네.'


카이딘 황제릉은 딱 봐도 정말 특이하고 멋진 장소였어요. 베트남 후에를 돌아다니며 본 건물들과는 매우 달랐거든요. 거무튀튀한 석재로 건설된 이 유적은 상당히 날카롭고 무거운 느낌이 들었어요. 바로 전에 본 민망 황제릉과는 외관상 비슷한 점이 단 하나도 없어보였어요. 비슷한 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입구에 석상이 도열해 있다는 것 정도였어요. 민망 황제릉이 고전적인 동양의 모습과 많이 비슷하다면, 여기는 동양도 서양도 아닌 매우 독특한 모습이었어요.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도 아니었어요. 시커먼 공간이 숲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카이딘 황제는 1885년 10월 8일에 태어나서 1925년 11월 6일에 사망했어요. 응우옌 왕조의 12대 황제로, 재위 기간은 1916년부터 1925년이에요. 왕자 시절 이름은 Nguyễn Phúc Bửu Đảo 라고 해요.


카이딘 황제는 프랑스 정부와 매우 긴밀히 협조한 인물이었고, 재위 말기에는 거의 '프랑스 정부에 고용된 관리' 수준으로 베트남 통치에 영향력이 없었대요. 그러다보니 당시 베트남 대중들에게 매우 인기없는 인물이었다고 해요.


카이딘 황제 역시 역대 베트남 황제들처럼 재위 기간에 자신의 묘소를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이 묘소는 1920년에 시작되어서 1931년에 완공되었어요. 카이딘 황제는 자신의 묘소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30% 인상했다고 해요. 프랑스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기였던데다 왕이 프랑스를 직접 방문했기 때문에 프랑스 건축 양식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해요. 자기 재위 기간에 묘소의 완공은 보지 못했고, 사망 후 완공되자 거기로 이장되었을 거에요.


"어? 사람들 없다!"


제가 사진을 찍으려한 구도에 사람이 없었어요. 재빨리 사진을 찍었어요.





묘소 앞 탑 비슷하게 생긴 건물 안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어요.



이제 다시 계단을 올라가 묘소 안을 둘러볼 차례였어요.



묘소는 '천정궁' Cung Thiên Định - 꿍 티엔 딘이었어요. 꿍 티엔 딘 옆으로는 건물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길이 있었어요.


'일단 길부터 한 번 돌아보고 들어갈까?'


저와 같이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모두 천정궁 안으로 들어가 있었어요. 딱 봐도 안이 매우 복작복작해 보였어요. 그래서 한 걸음 늦게 들어가기로 했어요. 일단 천정궁을 밖에서 한 번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어요.



혹시 뭔가 있을까 해서 길을 걸어보았어요. 사람이 없다는 것 외에는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었어요. 천정궁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 뭐 이렇게 화려해?"



눈이 뱅뱅 돌아갔어요. 밖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또 다른 엄청난 화려함이었어요. 밖에서 본 모습은 시커먼 돌이 만든 형태의 화려함이었어요. 지금 내부에서 보이는 모습은 화려한 색채와 동양의 곡선이 더해져 만드는 화려함이었어요.



사진 속 의자에 앉아 있는 황금빛 동상은 카이딘 황제에요. 다른 베트남 황제들은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가묘와 진짜 매장된 묘가 따로 있다고 해요. 그러나 카이딘 황제릉은 바로 저 동상 아래에 카이딘 황제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고 해요.


베트남 후에 유적 - 카이딘 황제릉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내부를 쭉 둘러보았어요.




영정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카이딘 황제에요.




이것은 카이딘 황제의 입상이에요.


베트남 응우옌 왕조 카이딘 황제


입상 높이는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현재도 베트남 사람들은 키가 작은 편인데, 저 당시에는 아마 지금보다 키가 더 작았을 거에요.




천정궁 밖으로 나왔어요.


천정궁


천정궁 외관에도 한자가 적혀 있었어요.


드디어 꿈 하나가 실현되었어!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꿈. 그 꿈 하나가 이루어졌어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올라가면 학습그림사회를 보았을 때부터, 그리고 최대한 가까이로 오면 베트남 여행을 결정하고 어디를 갈지 계획을 세울 때부터 꿈꾸었던 그 순간이었어요. 그 순간은 제게 왔어요. 비록 날이 흐려서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어요. 실내에서는 감도를 높여서 사진을 찍다보니 사진에 노이즈가 자글자글하게 찍혔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아니, 기뻤어요. 최소한 비가 내리지는 않았거든요. 카이딘 황제릉 앞에 있는 석상들 사진을 찍고 하나씩 천천히 감상할 수 있었거든요. 이 정도면 정말 크게 만족할 수 있었어요.




천정궁에서 내려와 다시 사진을 찍었어요.





이제 카이딘 황제릉을 떠나야할 시간이었어요.



오후 3시 17분. 버스에 올라탔어요. '베트남 여행'이라는 하나의 꿈의 전체 집합은 아직 안 끝났거든요. 혹시 비가 오는 것 아닌가 걱정했지만 비가 안 내려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원하던 것을 보고 사진찍을 수 있어서 매우 기뻤어요. 일기예보에서 비가 내린다고 했지만 카이딘 황제릉을 방문한 2014년 12월 20일에 비가 안 내린 것에 대해 하늘에 매우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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