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후에 신시가지 근처의 작은 식당 앞에 멈추어섰어요. 가이드가 차량에 탑승중인 승객들 모두에게 내리라고 했어요. 차에서 내렸어요.


"음식은 부페식이니 가져다 먹으면 되요. 그러나 음료는 투어 비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각자 지불하셔야 해요."


머리 꽤 잘 쓰는데?


밥값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음료값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진짜 머리 잘 굴렸어요. 무릎을 탁 쳤어요. 매우 기발한 발상이었어요. 두 가지 이유로 이런 제도는 참 굉장했어요. 먼저 밥을 먹는데 음료를 안 마실 사람은 없을 거에요. 자기가 생수를 사와서 마시지 않는 한요. 특히 부페식이라면 더더욱 생수와 먹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콜라라도 시켜서 마시죠. 음료를 따로 팔면 식당 입장에서는 음료 가격으로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어요. 두 번째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점심에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기본 음료수 제공 말고 아예 음료수는 별도로 해버리는 것이 더 나았어요.


부페로 차려진 음식들 모두 맛있었어요. 볶음밥은 조금 밍밍했지만 바나나와 같이 먹으니 꽤 맛있었어요.


'이거 음식 부족해지는 거 아니야?'


차려진 음식 양을 보니 왠지 음식이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한 번에 최대한 많이 떠왔어요. 다음 기회 따위는 없을 것 같았어요. 제 예상은 적중했어요. 맛있는 음식은 두 번째 뜨러 갔을 때 다 동이 나 있었어요. 역시 부페는 일단 처음 한 접시에 끝장을 봐야 한다는 제 신념을 유지하기를 참 잘 했어요. 만약 흔히 알려진 부페 많이 먹는 법이라든가 부페 잘 먹는 법 따위에 제 신념을 저버렸다면 맛있는 것을 원하는 만큼 못 먹었을 거에요.


사실 저도 한때 부페를 많이 먹어보려고 그런 말을 따라보기도 했어요. 그러나 다 부질없는 짓이었어요. 뭐 미세하게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요. 그러나 결국 부페에서 만족감이란 '무식하게 많이 먹는 것' 아니라 '원하는 걸 많이 먹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쳤어요. 무슨 속을 처음에 달래느니 조금씩 골고루 조금씩 자주 가져다 먹느니 다 의미없었어요. 그냥 좋아하는 거 배터지게 먹고 나오는 게 제일 돈 안 아깝고 많이 먹는 방법이었어요. 뒤돌아서서 생각해보면 먹는 양에는 별 차이가 없어요. 단지 여러 번 자꾸 갖다 먹으니 빈 접시 수에 착시 효과만 엄청나게 생길 뿐이죠. 그리고 진짜 먹고 싶은 것 배터지게 못 먹어서 남는 후회가 그 빈 접시만큼 쌓이구요.


아주 만족스럽게 점심을 잘 먹은 후 차에 올라탔어요. 차는 후에 여행자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내려주고, 새로운 사람들을 태웠어요.


'이거 오전조, 오후조로 나누어서 구매도 되는 건가?'


새로 탑승한 사람들은 대부분 베트남인들이었어요. 오후 일정은 민 망 황제릉, 카이딘 황제릉, 뜨득 황제릉을 둘러보는 일정이었어요.


'황제릉은 진짜 교통 안 좋은 곳에 있나 보다.'


이런 투어는 외국인들이나 이용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베트남인들이 하나 둘 새롭게 차에 탑승하는 것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 나라 사람들조차 투어를 이용해 둘러볼 정도라면 교통이 얼마나 안 좋은 곳에 위치해 있는 거야? 어느 나라든 대중 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면 현지인들은 투어를 잘 이용하지 않아요. 투어가 훨씬 비싸니까요. 그런데 베트남인들조차 투어를 이용해 둘러본다는 것은 그 황제릉들을 대중 교통으로 둘러보기 나쁘다는 것이었어요.


차는 외곽으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가이드는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영어와 베트남어로 말했어요.



아까 티엔무 사원 갈 때까지와 달리 길이 비포장 도로였어요. 차가 엄청나게 흔들렸어요. 자동차에 장식으로 부착한 용수철 인형처럼 제 목도 정신없이 흔들렸어요. 인간의 의지로 될 일이 아니었어요. 공터에서 놀던 소가 길을 막아섰어요. 소가 비켜줄 때까지 또 기다려야 했어요. 물소를 몇 마리 보았어요. 그러나 빠르게, 그리고 정신없이 흔들리는 차 안이라 사진을 찍지 못했어요.


오후 1시 46분. 민 망 황제릉에 도착했어요. 여기도 베트남인과 외국인 입장료가 달랐어요. 얼마인지는 몰라요. 투어 비용에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 내국인, 외국인 요금 차이 때문에 두 그룹으로 갈라서 따로 입장해야 했어요. 외국인들은 한자로 좌홍문 左紅門 이라고 적힌 문으로 통과해야 했어요.


베트남 후에 민망 황제릉 자홍문


"우와! 석상이다!"


베트남 석상


자홍문을 통과하자 일렬로 도열해 있는 석상이 보였어요.


"코끼리 석상이다!"


베트남 코끼리 석상


코끼리 위에 좌석까지 올라가 있었어요. 돌을 깎아 만든 거라 많이 단순화되었지만 진짜 코끼리랑 많이 비슷했어요.


가이드가 사람들을 모아 민망 황제 공덕비가 있는 주황색 기와에 노란 벽 정자로 사람들을 데려갔어요.



정자로 올라가 입구쪽을 바라보았어요.



가장 바깥쪽에는 코끼리, 그보다 안쪽에는 말, 그리고 그 안쪽에는 문무백관의 석상들이 서 있었어요.


정자 안에는 석비가 있었어요.


베트남 민망 황제 비석


민망 황제는 응우옌 왕조의 2대 왕이에요. 민망 황제는 참파를 복속시키고 서부 산악지대 소수민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황제에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베트남은 중국에 저항하나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소중화'의 역할을 했어요. 동남아시아 다른 민족들은 미개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들을 우수한 '중화 문명'의 길로 계도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어요. 민망 황제는 캄보디아 중부에서 남부에 이르는 오늘날 캄보디아 대부분 및 라오스 중부까지 통치하면서 이런 소중화 사상에 입각한 정책을 펼쳤다고 해요.


가이드가 민망 황제릉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민망 왕릉은 28헥타르이고, 1840년부터 1843년까지 건설했대요. 그리고 석비에 적힌 것은 민망 황제의 업적에 대한 내용이래요. 이 비석은 민망 황제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인 3대 황제 티에우치 황제가 세운 것이래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안쪽으로 걸어들어갔어요.



가이드는 민망 황제릉이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해 주었어요. 재미있는 점은 흐엉강의 물줄기가 왕의 두 다리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점이었어요.


가이드가 20분간 자유 시간을 주었어요. 버스 시간에 절대 늦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민망 황제와 그의 황후의 위폐를 모셔놓은 숭은전으로 갔어요.


민망 왕릉 숭은전


"여기서 진짜 생활했나?"





숭은전은 위폐를 모셔놓은 공간이라 해서 안에 위폐가 있고 향이 폴폴 연기를 내며 타오르고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 제 생각과 아주 크게 빗나간 공간이었어요. 그냥 보면 민망 황제가 여기에서 생활을 했을 것처럼 생긴 공간이었어요. 왕릉이라고 해서 거대한 봉분이 솟아 있는 허허벌판 아닐까 했어요. 그런데 숭은전에 와보니 무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궁궐 같았어요.



베트남도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한자로 崇恩殿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높을 숭, 은혜 은 자를 써놓았어요. 전날 베트남인 친구와 후에 황궁을 갔을 때가 생각났어요. 분명히 베트남 문화의 베트남 유물인데 한자로 적혀 있어서 베트남인 친구는 못 읽고 한국인인 제가 읽고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었어요. 이 현판을 보고 베트남인들은 저기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잘 모르지 않을까 싶었어요. 숭은전은 베트남어로 điện Sùng Ân 이라고 해요. 殿崇恩 이에요.


숭은전에서 나와 그 뒷편으로 갔어요.



연못 너머 보이는 2층 건물은 민 라우 tòa Minh Lâu 라는 건물이에요. 이 건물과 이어지는 다리는 3개 있어요. 왼쪽 다리는 Ta Phu, 가운데 다리는 Trung Dao, 오른쪽 다리는 Huu Bat 에요. 그리고 연못 이름은 hồ Trừng Minh 이에요. 여기에서 hồ 는 호수 호 湖, Minh은 밝을 명 明이에요. 민 라우는 '빛의 정자'라는 뜻이에요. 황제의 마지막 안식 장소에 다다르기 이전에 거치는 임시 장소를 의미한대요.



가운데 다리인 Trung Dao 를 건너 민 라우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라갔어요. 뒤를 돌아다보았어요.



민 러우를 지나 그 너머로 갔어요.




자유 시간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어요. 게다가 사진을 찍을 때 다른 관광객들과 엉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검은 문을 향해 종종 걸음으로 후다닥 걸어갔어요.


"뭐야? 문 닫혀 있잖아?"


검은 문 너머에 무엇이 더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러나 검은 문은 굳게 닫혀 있었어요. 그 너머에 무엇이 더 있는지 없는지 몰라요. 그 너머를 바라볼 틈조차 없었거든요.


아직 민망 황제릉 입구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어요. 끝까지 왔으니 되돌아나가며 하나씩 느긋하게 감상하고 사진도 찍기로 했어요.







다시 숭은전으로 돌아왔어요.



숭은전 안으로 다시 들어갔어요.



아까보다 관광객들이 없었어요. 내부 사진을 다시 한 장 찍었어요. 현판에 적힌 '숭은전'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어요. 베트남어라면 숭은전이 아니라 '전숭은'이라 해야 해요. 베트남은 꾸며주는 말이 뒤에 붙거든요. 실제로 베트남어 설명을 보면 숭은전을 '전숭은'을 한자로 읽은 발음으로 나와요.



'설마 비 내리지는 않겠지?'


하늘이 언제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하늘이었어요. 흐린 하늘 때문에 사진은 계속 우중충하게 찍히고 있었어요. 게다가 실내에서는 사진이 자꾸 흔들려서 찍히고 있었어요.


'하늘에 푸른 기운이 조금만 있다면 사진이 훨씬 더 예쁘게 나올텐데...'


그래도 비가 안 내리고 있는 것 자체에 고마워해야 했어요. 공기가 정말로 습했거든요. 지금 당장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뭐야? 내가 1등이잖아?"


가이드가 말한 약속 시간에 거의 딱 맞추어서 왔어요. 그러나 차에 도착한 사람은 저 뿐이었어요. 그 누구도 차에 도착해 있지 않았어요.


'나도 조금 더 구경하고 느긋하게 올 걸.'


그러나 이미 민망 황제릉에서 빠져나와 버렸어요.



사람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혹시 주변에 물소가 있나 살펴보았어요. 물소는 없었어요. 베트남 와서 분명히 물소를 여러 마리 보았지만 정작 사진은 한 장도 못 찍었어요.


'언젠가는 물소 사진 찍을 수 있겠지.'


사진을 찍으며 풍경을 둘러보고 있었어요. 그때 가이드가 제게 다가왔어요.


"일본인이에요?"

"아니요. 한국인이요."

"당신 일본인 같아요."


가이드의 말에 웃었어요. 베트남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어떤지 모르겠어요. 이 당시만 해도 후에는 한국인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었어요. 사실 동아시아계가 외국 나가면 아부 및 칭찬은 '일본인', 비하 및 욕은 '중국인'이에요. 지금껏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보았지만 처음부터 '한국인'이라고 하는 경우는 다섯 손가락에 꼽에요. 더욱이 동남아시아는 일본이 예전부터 오랫동안 공을 들여 투자해온 지역. 가이드는 나름대로 칭찬이라고 한 말일 거에요. 그래서 그냥 웃었어요.


한참 뒤에야 사람들이 와서 차에 타기 시작했어요.


'어? 저 사람들 뭐지?'


처음 차가 민망 황제릉에 도착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차에 탔어요. 새롭게 차에 탑승한 사람들은 모두 베트남인이었어요. 그냥 다른 동네 가기 위해 차를 얻어탄 사람들이 아니라 관광객들이었어요. 저 사람들은 어디 있다가 여기로 뿅 하고 나타나서 차에 탄 거지? 베트남인들끼리는 어떻게 패키지 조절하고 합치고 하는 게 있나? 가이드가 전혀 문제삼지 않고 그들에게 뭔가 가볍게 설명해주는 것으로 보아 돌발상황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렇게 새롭게 탑승한 베트남인 관광객까지 함께 다음 목적지로 향했어요.


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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