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19 아르메니아 예레반

좀좀이 2012. 6. 7.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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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는 몇 개국일까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지도를 펼치면 '스탄'으로 끝나는 국가는 총 7개국이에요. 중앙아시아 5개국 + 남아시아 1개국 + 서남아시아 1개국. 론니플래닛 기준이라면 중앙아시아 6개국 + 남아시아 1개국. 어떻게 분류하든 국명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 7개국이에요.


하지만 그것 아시나요?


Հայաստան


아르메니아어로 아르메니아는 '하야스탄'이에요. 즉 '스탄'으로 끝나는 국가는 지도상에는 7개국이지만 실제로는 7개국이 아니라 몇 개 더 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아르메니아에요.


Երեվան


읽으실 수 있나요?


Ереван


이건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키릴 문자를 모른다면 '에페반'이라고 읽을 것이고 키릴 문자를 안다면 '예레반'이라고 읽을 거에요. 위에 써놓은 글자는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을 아르메니아어로 써놓은 거에요.


외국 여행이 힘든 이유 중 99%는 언어 문제 때문에 발생해요. 문제 자체야 언어 때문에 생기지는 않는 경우가 오히려 많죠. 하지만 문제를 진짜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이유는 99%가 언어 문제 때문이에요. 국경에서 문제가 터지든, 돌아다니다 문제가 터지든 어떤 이유로든 발생한 문제를 한국에서처럼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골머리 썩게 만들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드는 근본적 원인은 언어 문제에요. 예를 들어 한국에서 비행기 티켓에 문제가 생겨 탑승 거부 당했다고 해요. 당연히 상대방도 한국인이고 나도 한국인이니 설명하고, 정 안 되면 말다툼을 벌이고 진상짓이라도 벌이겠죠. 하지만 외국에서는 강력히 항의할 언어 능력이 안 되니 스스로 해결하기 매우 어렵죠. 아파도 마찬가지에요. 약국 가서 약을 사든, 병원 가서 진료를 받든 해야 하는데 말이 통해야 정확히 통증을 설명하고 조치를 받죠. 물론 배를 잡으면 배가 아픈 것이고 머리를 감싸쥐면 두통이요, 턱을 쓰다듬으면 치통이기는 한데 만약 배가 콕콕 쑤시듯 아프다면? 또는 정말 피부 중 애매한 부위 - 예를 들어 엉덩이에 뭔가 이상한 것이 났다면? 이때는 약사 앞에서 스트립쇼 할 건가요?


여기는 카프카스. 구 소련 지역. 마음 같아서는 구 '쏘련' 지역이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영어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동네. 조지아도 마찬가지이고 아제르바이잔도 마찬가지이고 아르메니아도 마찬가지에요. 영어면 어디든 다 잘 통한다고 하는데 그건 전적으로 헛소리이자 개소리. 구 소련 지역 중 러시아 및 구 소련의 서부 지역은 못 가 보았지만, 구 소련 지역 중 남부 -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는 확실히 영어가 지지리 안 통해요.


이렇게 영어가 지지리 나라를 돌아다닐 때, 현지어 글자라도 읽고 쓸 수 있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되요. 일단 표지판 보고 길은 찾아다닐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만약 영어를 아는 현지인들을 만나게 된다면 현지어로 써달라고 하면 되구요.


키릴 문자 읽는 법은 원래 알고 있었어요. 러시아어에서는 강세에 따라, 모음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그냥 다 무시하면 그냥 저냥 읽을 수 있었어요. 현지인들은 글자 그대로 읽어도 알아들어요. 제가 현지인들의 러시아어를 못 알아들어서 문제죠. 조지아어 문자도 숙지하고 왔어요. 여기는 글자가 동글동글한데 대문자, 소문자 구분도 없는 착한 문자라서 딱 글자만 외우면 끝. '내일 시험본다'고 자기 최면 걸면 하루면 다 외울 수 있어요.


하지만 아르메니아어 문자는 몇 번의 실패 끝에 겨우 다 외웠어요. 하지만 숙지까지는 오르지 못했어요. 아르메니아어 문자는 대문자, 소문자 구분은 당연히 있고, 대문자와 소문자의 필기체도 엄연히 존재하거든요. 필기체까지 따로 있으면 매우 짜증나요. 왜냐하면 필기체도 외우기는 해야 하니까요. 안 그러면 현지인들이 필기체로 예쁘게 써주어도 읽을 수가 없어요.


조지아에서는 현지어를 이해는 못했지만 술술 읽었어요. 그 덕분에 버스는 사람들에게 물어볼 필요 없이 빨리 빨리 찾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기에서는 아르메니아어 문자가 숙지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 더듬더듬 읽어야 했어요. 하지만 버스들은 제가 다 읽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지 않죠.


아르메니아어로 적힌 간판들을 읽으며 버스 터미널에서 나왔어요. 시간이 애매해서 그런지 아니면 국제선만 노리는 건지 의외로 택시 기사들이 별로 많이 보이지도 않았고, 우리들을 잡지도 않았어요.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 해가며 물어보아서 환전상을 찾았어요. 환전상에서 돈을 조금만 환전하고 우리가 머물기로 한 Envoy Hostel로 가려고 했으나...어떻게 가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우리가 차를 못 타서 쩔쩔매는 것을 보고 갑자기 한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시작하셨어요. 그분은 영어를 하실 줄 아셨어요. 우리가 적어놓은 호스텔 주소를 보자 우리에게 같이 마슈르트카를 타자고 하셨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영어로 마슈르트카 요금이 얼마인지 알려주셨고, 우리와 같이 내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호스텔을 찾아주셨어요. 그분께 정말 고마웠어요. 만약 그분이 아니었다면 밤 늦게까지 호스텔을 찾아 헤매었을 거에요. 호스텔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잘 몰라서 아주머니께서도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찾는데 꽤 고생하셨거든요.


호스텔에서는 7월 16일에 이미 예약이 다 차 있기 때문에 정 이 호스텔에서 7월 20일까지 머물고 싶다면 7월 16일만 다른 곳에서 머물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좋다고 했어요. 호스텔에서는 7월 16일에 원한다면 좋은 홈스테이를 소개시켜줄 수도 있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했어요. 7월 16일 - 딱 하루 다른 호스텔에 가야한다는 것은 그다지 나쁜 조건도 아니었던 것이 우리가 계속 예레반에만 있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레반에서 당일치기가 어려운 곳 중 한 곳을 갔다 오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호스텔에 돈을 지불하는데 마침 호스텔에서 무언가를 수리하러온 사람이 보여서 제가 펜치와 철사 좀 빌릴 수 있냐고 여쭈어 보았어요. 그러자 그 아저씨께서는 왜 펜치와 철사가 필요하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친구의 캐리어 바퀴를 보여주었어요. 캐리어 바퀴가 고장나서 마슈르트카에서 내려 호스텔까지 제가 한 손으로는 제 캐리어를 끌고 다른 손으로는 친구의 고장난 캐리어를 들고 왔어요. 이게 다시는 할 짓이 아니라 어떻게든 바퀴를 제대로 고칠 필요가 있었어요. 최소한 트빌리시에 있는 호스텔에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바퀴가 굴러가야 했어요.


아저씨께서는 못을 가지고 바퀴를 그 자리에서 고정시켜 주셨어요. 굴려보니 잘 굴러갔어요. 정말 친절한 아르메니아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방을 숙소에 놓고 구경도 하고 환전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어요.


누군가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단연코 이것이라고 말할 거에요. 바로 알록 달록 석조 건물이요. 돌을 한 가지 색깔로 통일해서 지은 것이 아니라 일부러 다른 색깔 돌로 건물을 지은 것 같았어요. 저것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돌로 지은 건물들은 다 저렇게 알록달록한 색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모자이크 같아 보였어요.


일단 모스크로 갔어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관계를 생각하면 예레반에 모스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신기하게 다가왔어요. 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르메니아와 이란의 사이는 나쁘지 않아요. 그래서 이란인들이 아르메니아로 놀러 와요. 무슬림에게 무조건 적대적인 나라는 아니라는 것이죠. 아르메니아 입장에서는 이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르메니아에서 다른 나라와 이어지는 방법이 북쪽의 조지아와 남쪽의 이란 밖에 없거든요.

이것은 슈카 시장. 모스크 맞은 편에 있어요.


여기까지는 무언가 확 잡아끄는 특징이 있다고 할 수는 없었어요. 아랍 지역 시장도 이거랑 비슷하게 생겼거든요.

정말 독특한 것은 사진 오른쪽에 있는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막대기들. 이게 견과류 위에 과즙을 발라 말린 거에요. 안에 실이 있기 때문에 먹을 때 실을 잘라가며 먹어야 해요. 과즙은 새콤달콤하고 안에 호두가 들어있어요.


아저씨께서는 우리들에게 이것 저것 먹어보라고 시식을 권하셨어요. 그래서 이것 저것 먹어보다가 과즙을 발라 말린 길다란 막대기가 궁금해서 하나 사고 사진을 찍었어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발 걸기 조심


구 소련 지역에서 이 표지판은 꽤 웃긴 게 많아요. 손으로 대충 그린 것도 있고 이상하게 나온 것들도 있어요. 이건 아이들을 조심하라는 건지 태클을 조심하라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지판. 거리에서 격투기 하는 애들 있다는 건가?

뭔지 알 수 없는 동상.





여기가 바로 예레반의 공화국 광장이에요.


"흐라파락."
"흐라파락?"
"응. 흐라파락."


친구가 '흐라파락'이라고 해서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친구가 '흐라파락'이 아르메니아어로 광장이라고 알려주었어요. Հրապարակ 이라고 써요. 입에 왠지 짝짝 붙는 발음이었어요. 흐라파락.


광장에는 큰 서점이 있었는데 서점 안에 들어가보니 거의 다 러시아어 서적이었어요. 제가 찾던 책은 당연히 없었어요. 공화국 광장까지 보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친구가 침대에 눕더니 바로 잠들었어요. 친구가 너무 피곤해해서 조금 자라고 놔두었어요.


"우리 나가볼까?"


해가 대충 진 것 같아서 친구에게 나가서 산책이나 하자고 했는데 친구가 정말 깊게 자고 있었어요. 친구가 잠결에 나간다고 하기는 했는데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예레반까지 오는 일정이 밤 11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 계속 이동하는 것이었고, 그 이동 시간 중 둘 다 거의 잠을 자지 못했어요. 친구가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 그래서 친구에게 그냥 잠 자라고 한 후 혼자 카메라를 챙겨들고 나왔어요.


어디로 갈 것인가?


말도 안 통하는 이 나라에서, 그리고 슬슬 해가 질 시각이 다가오는데 너무 복잡하게 돌아다니는 것은 썩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푸슈킨 거리를 따라 쭉 걸었어요.

별 생각 없이 푸슈킨 거리를 따라 걷는데 갑자기 번화가가 나타났어요. 무조건 직진만 해서 왔기 때문에 번화가를 한 번 걸어보기로 했어요.



낮에 돌아다닐 때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날이 조금 시원해지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 있었어요. 희안한 것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는데 가게들은 문을 닫았다는 것. 저라면 사람도 없는 뜨거운 백주대낮에 문을 닫고 사람들이 몰려 나오는 저녁 시간에 가게 문을 열 것 같은데 여기는 항상 여는 시각에 문을 열고 항상 닫는 시각에 문을 닫았어요. 웬만한 가게는 다 문을 닫았고, 작은 가게와 기념품 가게 몇 곳만 문을 열어놓았을 뿐이었어요.

번화가를 돌아다니다가 공화국 광장으로 갔어요. 공화국 광장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오며 분수쇼가 펼쳐지고 있었어요.


당연히 분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장난감과 먹을 것을 파는 상인들도 나와 있었어요. 분수쇼는 정말 장관이었어요.


"이거 오늘만 하는 거 아니야?"


친구를 깨워서 여기로 데려올 걸 후회가 되었어요. 조그만 분수 몇 개 춤추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큰 분수를 가지고 하는 쇼라서 주변까지 물이 튀었어요. 사람들은 분수쇼를 구경하며 놀고 있었어요. 관광객들도 많고 아르메니아인들도 많았어요.

시계가 잘못된 것 처럼 보이시나요? 저 시계, 시간 정확히 맞는 시계에요. 바쿠도 그렇고 예레반도 그렇고 해가 정말 늦게 져요. 우리나라보다 남위도인 것도 있고, 시간 기준이 다른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예레반 역시 밤 9시가 되어야 '저녁'이라고 할 만 해요.

공화국 광장의 야경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친구는 계속 자고 있었어요. 저도 빨리 자야 내일 또 돌아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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