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2018. 6. 4. 10:47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3장 13화


 오늘도 이 도시에서 많은 살인사건이 일어났어.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있어. 모두가 이 모든 것이 저주술 때문이라고 하고 있어. 그렇지만 죽은 사람들 모두 저주술사에게 죽임을 당한 건 아니야. 저주술로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있지만, 그냥 일반적인 살인사건들도 있어.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이 모든 것이 저주술 때문이라고 외치고 있어. 이건 너무 억울해. 저주술사가 모두 살인에 미친 것도 아니고, 이 도시에서 죽어나가는 모두가 저주술에 당한 건 아니잖아.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어. 모두가 저주술사를 칭송하던 때가 바로 어제 같아. 그러나 우리들은 그 어제가 한없이 옛날 일처럼 느껴져. 마딜인 모두를 구원해준 저주술은 어느새 진짜 '저주스러운' 저주술이 되어가고 있어. 어째서 그렇게 흘러가는 걸까? 우리들 가슴이 답답하다. 이 모든 것이 다 저주술 때문은 아닌데. 우리들은 창문을 열었다. 별빛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모처럼 별빛의 아름다움을 만끽해보고 싶어. 이 많은 책과 서류들. 우리들이 오늘밤 밤새도록 보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까. 저주술을 연구한다고 해서 이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 이 상황은 저주술과 무관한 거야. 사람들이 자신들이 겪는 공포 전체를 저주술로 돌리고 있는 걸. 그건 저주술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저주술사들이 아무리 사람들을 많이 도와준다고 해도 모든 공포의 원인을 저주술로 돌리고 싶어하는 것을 어떻게 해볼 수는 없어. 지금 아무리 우리들이 고민한다고 해도 해결될 문제도 아니잖아. 언젠가는 사람들이 깨닫겠지. 저주술은 그렇게 흉악하고 나쁜 게 아니라고. 나쁜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러나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어. 저주술 자체의 잘못이 아니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지. 사람들은 저주술을 너무 신비롭고 굉장한 것으로 상상해. 그들 모두 원한다면 저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데.


 어둠이 내리깔린 거리. 우리들은 걷는다. 심장이 조여온다. 거리에서 그들을 보았던 날.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그동안 잊어왔던 기억들. 모두의 미움은 왜 항상 우리들을 향했던 걸까? 왜 그 누구도 우리들 말을 믿어주지 않았던 걸까? 언제나 그랬어. 우리들은 모두의 분노를 받아내야만 하는 그릇. 모두가 모든 잘못을 우리들 탓으로 돌렸어. 우리들 잘못이 아니었다고, 우리들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아무리 외쳐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어. 그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운명인 줄 알았다. 2주일에 한 번, 어디에선가 아이가 오곤 했다. 모두가 명령했어. 그 아이를 죽여야 한다고. 그 아이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들이 죽을 거라고. 반드시 죽이라고 했다. 그래서 죽였어. 그건 당연한 거야. 그 아이도 우리들을 죽이려 했으니까. 모두가 죽이라고 해서, 그리고 그 아이를 죽이고 나면 언제나 그날 밤 온갖 욕설과 폭력이 돌아왔다. 그렇게밖에 못하냐고. 왜 그렇게 형편없고 재수가 없냐고. 우리들은 대체 그때 무엇을 잘못한 거지? 우리들은 모두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말을 잘 들으면 여기에서 벗어나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했어. 그렇게 여기를 나간 아이들은 단 한 명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 지옥같았을 거야. 꼴도 보기 싫었겠지. 우리들은 아직도 그 얼굴을 잊을 수 없어. 그 남자와 그 여자. 가끔씩 찾아오던 자들. 우리들을 벌레 보듯 보면서 성과가 어떻냐고 그놈에게 물어보곤 했지.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좋다고 했던 적도 있고, 나쁘다고 했던 적도 있었어. 그러나 그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어. 그들이 오고난 후 우리들은 밤새도록 모두에게 두들겨맞아야 했으니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도 소용이 없었어. 우리들이 잘못한 건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무엇을, 왜 잘못했는지 몰라. 그냥 잘못했대. 하루라도 편하게 잘 수 있는 밤을 얻은 아이들이 부러웠어. 꿈 속에서조차 오직 우리들만이 미움을 받고 학대를 당하고 있었으니까.


 우리들은 메달을 꺼냈다. '에르키나, 라키사, 영원한 우정'이라고 적힌 이 문구. 미안해, 에르키나. 이렇게 우리들이 잘못했다고 이야기해도 너에게 전해지지 않겠지? 우리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때가 그리워. 너는 언제나 참 재미있었는데. 밝고 쾌활하고 절대 지지 않으려고 하구. 네가 코피를 터뜨린 남자애들이 꽤 되었잖아. 우리들을 괴롭히는 애를 보면 네가 달려나가서 주먹을 코에 꽂아버리곤 했지. 그런 네 모습 보며 우리들은 항상 멋있다고 생각했어. 이제서야 그때 그 순간들이 후회돼. 네가 그렇게 뛰쳐나갈 때 우리들도 같이 뛰쳐나갈걸. 너에게 보낸 환호. 그건 순수한 의미의 고마움이었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미없는 환호이기도 했다는 걸 이제 알고 있어. 정말로 너를 응원했다면 환호만 하는 것이 아니었어. 같이 뛰쳐나갔어야 했어. 그걸 왜 우리들은 이제야 깨닫게 되었을까? 진작에 깨닫게 되었다면 네가 그렇게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지 않았을텐데. 그런데 그거 알아? 우리들도 너 죽은 후 정말 많이 괴로웠어. 우리들 있잖아, 아직도 그때 그 순간에 대해 끝없이 후회하고 있어. 네가 마지막으로 우리들을 향해 손을 뻗고 도와달라고 했던 그 밤. 1년만 참자는 우리들의 말. 그 말이 네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을까? 네가 겪고 있던 고통을 우리들은 너무 우습게 알고 있었어. 당장이라도 너와 함께 거기를 벗어나야 했어. 네 말대로 말이야. 딱 1년만 참으며 공부해서 에드자로 올라가자는 말. 그건 우리들은 지금 너를 도와줄 마음이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부정하려고 수십 번을 되뇌였지만 아니였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네게 필요한 건 당장 그 상황을 피하는 것이었어. 부모님 지갑에 손을 대어서라도 너부터 일단 올라가서 기다리라고 해야 했어. 우리들이 네 절규에 손을 뻗을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말이야. 에드자로 가서 1년만 버티고 있으라고, 그러면 1년 뒤 우리들도 꼭 에드자로 가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그래야 했어. 미안해. 우리들도 네가 그렇게까지 궁지에 몰려있는 줄 몰랐어. 아니, 알았지만 무서웠어. 너의 손을 잡고 같이 벗어나는 것. 그 뒤에 일어날 알 수 없는 일들. 그건 그때 닥쳐서 생각해도 충분했던 건데. 우리들은 왜 항상 네 도움만 받다가 네가 우리들에게 도와달라고 했을 때 외면했던 걸까? 그건 우리가 네게 도움을 받았을 때 의미없는 환호를 하고 고마움을 표시했기 때문이야.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제 우리들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존재였는지 깨달았어. 그래서 더욱 네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그러나 너는 우리들의 이 말을 듣지 못하겠지?


 밖에 나가야겠어. 우리들은 집에 계속 있으려니 참을 수가 없다. 머리 속이 복잡해. 이 풀리지 않는 문제. 우리들이 아무리 실마리를 잡고 풀어보려 해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잡힐 것 같은데 다가가면 흐릿해진다. 흐릿해져서 아직 실체를 모른다고 멀리 떨어지면 뚜렷해진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이건 단순한 일이 아니야. 사람들은 모두 이 일련의 사건들을 너무 단순하고 파편적으로만 바라봐. 그리고 내린 결론이 저주술사들 소행이고 저주술사들이 못되었다는 거지. 아니야. 이건 몇몇 저주술사들이 미쳐날뛰는 현상으로 볼 수 없어. 어떻게 모든 것이 얽히고 설켜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들의 기억들과 직감이 외친다. 이것들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다. 그보다 더한 무언가가 있는 일이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겠어. 누가 그러는 건지, 목적이 무엇인지 하나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몇몇 개인들의 발광이라 보기에는 너무 어렵다. 전부 자살하고 싶은 거야? 자살병이 이 도시에 돌고 있다고? 그런 말을 누가 믿어? 죽으려면 혼자 죽든가. 분명히 무언가 있어. 이런 일이 연속으로 발생하면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대놓고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저주술에 대한 광적인 집착 아니면 병적인 혐오로 몰아가고 있는 게 번히 보이는걸. 우리들이 여기 와서 지금까지 보고 겪은 것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거대한 몇 개의 움직임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어느 쪽이든 썩 좋지는 않아. 순수한 저주술도, 이곳 바깥에 대한 맹목적 추종도, 그리고 새로 등장한 대체 뭔지 알 수 없는 광기도 다 나빠. 어떤 것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어. 끊임없는 증오와 분노만 야기할 뿐이지. 그 결과가 지금 이것이고. 여기까지는 알겠다. 문제는 그 다음이지. 좋아, 크게 세 개의 세력이 있어. 그 세력끼리 싸워. 그 세력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조직을 만들고 움직이는 걸까? 이런 놈들은 수가 많은 게 아니야. 실제 밝혀내서 보면 기껏해야 열 명 남짓 될까? 그러나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공포를 조장해 그 수가 엄청나게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지. 이런 건 한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니니까. 바퀴벌레 같은 놈들. 이놈들은 머리를 잘라도 계속 움직이고 사고를 일으켜. 다 잡아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끝나지 않아. 어떻게든 새로운 놈을 하나 꼬셔서 또 그 규모를 만들어내고, 그 규모만큼 또 사고를 치니까. 그런데 이놈들을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어. 그게 저주술의 장점이지. 직접 사용하지 않으면 교묘히 숨길 수 있으니까. 쓰기 전에는 자기 입으로 저주술사라고 떠들어대지 않는 이상 저주술사인지 아닌지 분간을 할 수 없단 말이야.


  지금 몇 시일까? 우리들에게 낮과 밤의 경계가 없어진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항상 똑같아. 시커먼 세상. 아무 것도 없어. 그저 새까매. 시간의 흐름은 오직 귀로만 전해진다. 소리가 들릴 때에만 지금 시간이 얼마나 흐르고 있는지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들이 귀를 막으면 시간이 없어져. 1초가 흐른 것인지 1분이 흐른 것인지 구분이 사라지며 암흑 속으로 녹아들어가. 그렇게 한없이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다보면 현실과 망상의 경계도 희미해져. 우리는 우리들이 아닌 것이 되고, 우리들이 아닌 것은 우리가 되어가. 생각과 꿈의 경계도 모호해져. 분명히 현실과 꿈은 여전히 구분이 되고 있는데. 낮도, 밤도 없는 세상. 밥을 먹여줄 때 물어보곤 해. 지금은 몇 시냐고. 대답을 듣고 그제서야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게 돼. 여름이 되면 그때는 귀로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있겠지? 창밖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면 그때가 아마 밤일테니까. 의미없이 흘러가는 시간들. 알아서 흘러간다. 잡아도 흘러가고, 놔줘도 흘러가구. 영원한 어둠만 지속되고 있어. 괜찮아. 이건 우리들이 원했던 거잖아. 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어둠 밖에서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고 있으니까. 보나마나 역겹고 추하고 못볼 꼴을 보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인상을 박박 쓰고 있겠지.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들 얼굴에 토하지 않으면 다행이려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우리들은 그런걸. 이 어둠 밖에 존재하는 공포. 그 공포는 현실. 차라리 이렇게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나아. 우리들은 더 이상 그들을 바라볼 자격이 없어. 자격? 우리들한테 무슨 '자격'씩이나 있어? 우리들도 알아. 이러는 건 현실 도피. 우리가 받아야할 벌을 회피하고 있는 비겁한 행동. 그렇지만 우리들 정말 무서워. 증오가 가득찬 시선을 마주하며 견뎌낼 자신이 없어. 우리들에게 조금이라도 변명거리가 있다면...그렇지만 그 조그만 변명거리조차 없어. 아무리 찾아보아도 우리들을 지탱해줄 사소한 변명거리조차 없는 걸. 그런데 그 증오의 시선을 어떻게 견뎌내야 해? 그것이 우리들이 응당 받아야할 죄의 댓가이지만...차라리 죽여줘. 평생을 그 고통을 견뎌내며 살아갈 자신이 없단 말이야. 정말로 무서워. 이 어둠 밖에서 지금도 모두가 우리들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겠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지만 증오가 가득 담긴 눈으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을 거야. 거짓된 목소리라 해도 좋아. 그게 거짓이라도 그거라도 믿고 싶어. 이 어둠. 절망과 도피처를 동시에 제공하는 모순된 아름다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자 낙원. 노력한다고 벗어날 수 없어. 하지만 괜찮아. 이것은 우리들을 지켜주니까. 이 어둠조차 없다면 우리들은 무너져버릴 거야.


 나가야겠어. 잠도 안 오고 머리 속이 복잡하다. 밤거리 좀 걸으면 우리들 머리 속이 조금 맑아질 거 같다. 이놈은 엄청 잘 자고 있네. 그래, 푹 자라. 너도 많이 힘들텐데. 그래도 안 미치고 잘 버티고 있는 거 보면 신기해. 이런 상황은 쉽게 적응될 수 있는 게 아닌데. 우리들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밤 공기가 시원하다. 우리들이 여기 온 지 벌써 몇 년째지? 꽤 오래되었다. 굳이 세어보려 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신경쓰고 싶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기억이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으니까. 우리들은 기억에 질려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게 언젯적 이야기야? 그런데 아직까지도 우리를 괴롭힌다. 잊혀지지 않아. 계속해서 떠올라. 왜 우리들은 잘못된 선택을 연거푸 한 건지 모르겠다. 다시 돌아가면 그 선택을 피할 수 있을까? 아니야. 우리들은 또 똑같은 선택만 골라서 하겠지. 후회해봐야 소용없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해도 결국 우리는 이 자리로 되돌아올테니까.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들에게는 나쁜 선택과 더 나쁜 선택만 존재했던 거야. 거기에서 우리는 그나마 덜 나쁜 선택을 골라서 했던 거구.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더 끔찍해졌을 거다. 수백 번 시간을 되돌리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곤 했다. 끝이 없는 저 하늘의 밝은 달을 보며 계속 생각해보았지. 결국은 여기로 오게 된 그 선택의 연속이 그나마 낫다는 거였다. 그건 우리들 잘못이 아니야. 지금 우리가 잘못된 거라면 세상이 잘못된 거야. 그렇지만 괴로운 건 괴로운 거다. 아예 선택지를 주지 않는 방법은 없었던 걸까? 그랬다면 더 나빠질 것은 없었을 건데. 그건 시간의 흐름을 멈추면 가능해지려나? 시간의 흐름을 멈출 방법은 없다. 아니, 딱 하나 있다. 그 순간에서 모든 걸 끝내는 거야. 그냥 죽어버리면 시간의 흐름은 멈춰. 하지만 우리들한테는 죽을 용기도, 죽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그러니 그냥 이대로 살아가면 돼. 대체 이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우리들 자신에게 몇 번을 던져야 하는 거야? 과거를 잊을 수 있는 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있다면 우리들 모든 걸 주고서라도 구해서 먹을 거야. 언제까지 과거 때문에 힘들어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다 똑같아. 어떻게 된 게 주변에 멀쩡한 인간이 하나도 없어? 전부 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한다. 우리는 그거에 위안을 삼아야하는 걸까? 모두가 다 힘들어하는 문제니까 우리들끼리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야. 당연히 이 대답도 매일 우리들 자신에게 수없이 던지는 대답. 찐득한 송진처럼 머리에 들러붙은 이 기억을 어떻게 떼어내야 할까? 달빛을 모아 머리에 벅벅 문지르면 혹시 사라질까? 눈을 감았다.



 우리들은 불을 껐다. 별빛이 살금살금 집 안으로 들어온다. 오늘밤은 제발 조용하기를. 아직까지 위에서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 가여운 것. 어쩌다가 저렇게 되어버린 걸까. 이 땅에서 누가 그런 짓을 벌인 걸까? 사람을 잡아먹는 저주술. 우리들은 그런 것을 들어본 적 없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살벌하고 괴로운 시간도 오래 보내보았다. 전쟁이 일상이었으니까. 참수당한 시체, 목이 매달린 시체. 일상이었어.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 우르간 대제국군의 학살과 처형은 지금 우리들 주변에 있는 공기처럼 당연한 일이었어. 너무나 많은 마딜인들이 살해당하던 그때.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던 그 무리조차 사람을 잡아먹는 짓은 하지 않았어. 사람을 잡아먹어야만 될 수 있다는 마법사조차! 우리들의 저주술? 그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어. 인간을 잡아먹는 것이 어떤 이점이 있다고 인간을 잡아먹어? 그것은 정신을 파괴시키는 행위에 불과할 뿐. 저주술은 정신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정신이 파괴되면 저주술도 사용할 수 없어. 그건 너무나 당연한 거야. 정신을 파괴해서 저주술이 얻을 수 있는 이점 따위란 없어. 그건 애초에 말이 안 되니까. 우리들이 일곱 가지 꿈에 집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정신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야. 정신을 온전히 보존해야만 저주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 정신이란 거친 바람 앞 촛불. 그 촛불을 끝까지 잘 유지하는 것이 바로 저주술을 사용하기 위한 비법. 저 불쌍한 아이를 저렇게 비참하게 만든 자의 생각은 대체 뭘까? 단지 괴물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걸까? 아니야. 괴물을 만들어서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은 저주술의 발전과 아무 상관도 없는 거잖아. 마법사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어. 그러나 진짜 그랬을까? 마법사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게 어떤 의미가 있어? 이 땅에는 마법사가 없잖아. 마법사에 대한 증오가 왜 필요해? 전쟁은 아주 예전에 끝났어. 이 땅에서 사람들을 학살하던 마법사들 모두 쫓겨났어. 그들을 더 이상 미워해야 할 필요가 없어. 이유가 뭘까? 저 가여운 것은 왜 그 흉악한 계획의 제물이 되어버렸을까. 불쌍한 것. 육체적 상태는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마음의 상처는 영원히 남을텐데.


 창문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조금 있으면 불을 끄고 잠을 청하려나? 잘 되었네. 괜히 불 꺼진 집에 불을 켤 필요가 없게 되었어. 우리들이 일부러 그들을 찾아 이 집 안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잖아. 걔는 우리들에게 사람을 죽이겠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어.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돼? 그건 약한 소리야. 죽이지 않으면 살 수 없어. 남들이 우리들을 죽이려 하니까. 걔 말을 들으려 노력하기는 했어. 우리들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우리들을 믿어주니까. 처음으로 우리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던 그 행복을 느껴봤다. 그래서 심장이 굳어버리는 고통이 찾아와도 꾹 참았다. 그러나 아니야.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없어. 그들은 행복해하잖아? 우리들은 이렇게 괴로운데. 왜 우리만 괴로워야 해? 그게 당연한 것인줄 알았다. 아니었어. 우리는 미움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야. 이 세상에는 우리들을 믿어주는 사람들도 있어. 그것은 기적.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할 거라 상상해본 적 자체가 없었어. 이런 느낌이구나. 누군가 우리들을 좋아해주고 믿어준다는 느낌. 그 행복한 기적에 적응되어 갈 수록 우리들의 심장은 자꾸 아파와. 혈관이 끊어지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우리들의 과거.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가 않아. 알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이 행복한 기적을 지켜내야만 해. 우리들의 소중한 것을 파괴하려 드는 그자들을 반드시 죽여야 해. 이 시간이, 이 행복한 기적이 이 세상에서 잘못된 것이라도 좋아. 우리의 노력으로 지켜낼 거야. 심장이 다시 아파. 가슴이 조여와. 이 고통에서 벗어날 거야. 떨쳐낼 거야. 참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야. 부셔버려야 해.


 에르키나, 우리들은 그때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중이야. 모든 사람들은 전부 달라.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어. 그건 이상한 것이 아니야. 네가 쾌활하고 지지 않으려 한 거나, 감비르가 여장을 하고 자신이 남자이자 여자라고 하는 것 모두 똑같아. 그건 그저 한 사람의 개성일 뿐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 결국은 다 똑같기 때문에 조그만 차이라도 존재하면 엄청난 비난을 가해. 그리고 너를 궁지로 몰아갔던 것처럼 죽음으로 몰고 가려고 해. 이런다고 네게 잘못한 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거 알아.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뭐라도 할 수 있다면 할 거야. 그게 그나마 반성하는 사람의 자세겠지? 비록 네게는 어찌 되든 별 의미없는 행동이겠지만 말이야. 네가 있었을 때 우리들이 진작에 이렇게 행동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었다면 너는 분명히 죽지 않았을 거야. 다른 애들이 몰려와서 우리들에게 네가 아무 남자들과 놀아다는 헤픈 년 맞냐고 물었을 때...변명인 거 알아. 하지만 우리들도 그 헛소문과 뒷담화의 대상이 될까 무서웠어. 그래서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그냥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던 우리들의 행동. 그게 그렇게 너의 목을 조를 줄은 몰랐어. 매일 밤 우리들 엄청 후회했어. 하지만 이미 죽은 너는 살아돌아오지 않았어. 그래서 결심한 거야. 이제부터는 용기를 내기로. 너 같은 희생자가 또 나오면 안 되니까! 너는 우리들의 이 노력 덕을 볼 수 없어.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분명히 덕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더 좋은 세상이 될 거고. 그때 네 무덤에 찾아가서 말할께. 이제서야 네가 원하던 세상이 찾아왔다고.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는 거 같아. 아직 몇 명 안 되기는 하지만 감비르를 이상하게 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어. 게첸씨는 매일 많은 것을 공부해오셔서 우리들에게 더욱 많고 넓은 세계와 진리에 대해 알려주시고. 사실 우리들 있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아직까지 감비르가 이상하게 보여. 그러나 이것도 노력하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모든 사람들은 전부 다르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오늘도 몇몇 저주술사들이 발광하고 있으려나? 우리들 눈에 띄지 않기를. 나날이 여기 사람들은 나약해져 가고 있어. 우리들은 여기 전쟁때 꽤 참혹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우리들이 여기로 왔을 때, 그렇게까지 참혹했는지 잘 느낄 수 없었다. 우리들이 겪은 세계도 그것 못지 않게 참혹했으니까. 여기저기서 날뛰는 놈들. 그리고 그놈들을 찾아 죽이기. 그것은 옳은 일이었어. 그들은 약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선동해 자신들이 만든 '정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했거든. 그 '정의'라는 것은 바로 자기들이 배불러지는 것. 더 정확히는 '자기들만 배불러지는 것'이었다. 모두가 평등해지고 부자가 될 거라 선동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힘없는 사람들이 더 비참해져갔어. 오로지 자기들만 행복해져갔지. 우리는 그런 역겨운 놈들과 싸웠다. 많은 사람을 죽였어. 그들 모두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었지. 진심으로 그들의 말이 맞다고 믿는 순수한 자들도 있었어. 그러나 그들 역시 벌레만도 못한 쓰레기. 만약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그게 얼마나 허황된 말인지 깨달았을 거야. 남들을 괴롭히고 빼앗는 것이 어떻게 정의가 될 수 있어? 아무리 교묘한 말, 좋은 논리로 포장해도 진실을 가릴 수는 없어. 그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아.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이었으니까. 우리들은 이 세상 모든 존재를 대표해 정의를 위해 그들을 처단한 거야. 우리들이 그런 일을 맡아서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락으로 굴러떨어졌겠지. 웃으면서. 행복한 줄 알고 착각하면서. 진리니 평등이니 떠들어대면서 말이야. 우리들 일이 그런 일이었기 때문에 여기 와서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그 흔적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우리들이 있던 세상과 다를 게 별로 없어보였다. 그런데 평화가 이어지면서 여기 사람들도 하나 둘 나약해져가고 있어. 안 돼. 우리들의 소중한 마딜 공화국. 우리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안식처. 잊고 싶은 과거에서 조금이나마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곳. 여기만큼은 순수하기를. 여기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바깥이 발전한 것도, 행복한 것도 아니야. 다 똑같아.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인걸. 왜 지금까지 잘 지내왔으면서 오히려 더 타락하고 나빠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야? 진보? 발전? 웃기지 마. 여기에서 발광하고 있는 저주술사들 모두 그런 헛된 망상에 휩싸여 날뛰는 거겠지. 그래서 우리들은 참을 수 없어. 멋있어보이는 단어들 내뱉으며 순수한 척, 숭고한 척 하지 마. 역겨우니까. 금화 한 닢에 벌벌 떨어대며 굽실거리는 주제에 진보? 평등? 그냥 솔직히 말해. 남들 것 다 빼앗고 싶다고. 그것을 위해 저주술을 이용하는 거라고. 지금 우리들과 저주술은 상관없어. 우리들과 관련있었던 건 이 땅에 우리들이 들어오기 전 이야기. 그러나 저주술로 얻고 싶은 걸 빼앗으려고 발악하는 모습, 보이면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린다고 해서 문제될 거 없어. 여기라고 자기 신념에 따라 사람을 마구 죽여도 되는 땅은 아니니까. 살인범을 그 자리에서 죽일 뿐이야. 여기 경찰들도 좋아해. 그런 놈들 죽여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던걸. 순수한 마음? 부질없는 거야. 쓸모없는 짓, 무의미한 짓, 나쁜 짓을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줬다고 깨끗해지지 않아. 그런 놈들에게도 필요한 건 오직 죽음 뿐이야.


 우리들은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앉았다. 또 다시 후회가 밀려온다. 우리들은 그때 왜 도망쳤을까? 차라리 그때 죽었어야 했어. 모두가 우리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지. 무서웠어.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직설적으로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알고 있었어. 우리가 거기에서 그때까지 살아남았던 것처럼 다른 자들이 그렇게 살아남을 거라고. 우리들이 제물이 되어야할 차례가 돌아왔던 거야. 그래서 그들 모두 우리들을 보며 말했지. '정말 맛있겠다.' 첫날 먹었던 오감을 만족시키던 식사. 그 식사의 재료가 이제 우리가 될 차례였던 거야. 왜냐하면 우리들도 그랬으니까. 거기에서 우리들 차례를 순순히 받아들였다면 이렇게 괴롭지도 않았겠지? 부질없어. 이제 돌아갈 수도 없잖아. 무서워. 죽더라도 그렇게 죽고 싶지 않아! 칼. 피. 흡수. 분열. 거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차라리 여기에서 다리를 벌릴 거야. 한평생 이렇게 보살핌받으며 살 수 없어. 결국 우리가 비참하고 불쌍하다고 했던 그 사람들처럼 될 거야. 이제 우리 차례야. 그래도 그게 나아. 더 이상 죄를 짓지는 않아도 되잖아? 지금까지 지은 죄만으로도 충분해. 희생? 인내? 새빨간 거짓말이야. 이제 알아. 생존 본능 앞에서는 화려하고 순수한 말 모두 말에 불과하다는 거. 이 저주스러운 인생을 끝내기 위해 거기 돌아가면...제일 추악한 죽음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막상 죽음이 닥쳐오면 우리들은 또 살기 위해 남을 죽이려 들 거야. 그러다 죽임을 당하겠지. 길거리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휩싸여 죽는 게 나아. 그게 그나마 우리들에게 주어진 인간적으로 죽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렇게 죽는 것이 이 더러운 내게 사치라는 것 알지만...그 정도 사치는 누려도 되지 않을까? 그 누구도 그 정도의 사치조차 허락하지 않겠지만, 우리들 또한 우리가 그 사치를 요구할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 알고 있지만...그 정도라면 우리들이 발악하면 쟁취할 수 있을 거야. 억울해. 이렇게 된 거. 우리들은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었는데 왜 우리들한테! 너무 잔인해. 그저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고 싶다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이었어? 거기에 정말 그런 걸 원하는 놈들도 많았잖아. 그런 놈들만 모아갔어도 되었잖아. 왜 우리들한테 손을 뻗었던 거야?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거 자체가 그렇게 잘못된 거야? 우리들은 성공하면 안 돼? 성공을 구걸한 것도 아니잖아. 우리들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했을 뿐이었잖아. 그런데 왜 우리들한테 그런 거야! 그것이 왜 잘못한 건데? 그 노력의 대가가 왜 이딴 것이어야 하는데! 그래, 우리들이 멍청했어. 한 번이라도 생각해봐야 했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는데 왜 우리는 그걸 보지 못했던 걸까? 그 교묘하고 정교한 말,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는데...


 눈을 떴다. 다시 어둠 속에서 희미한 가로등빛에 의존해 걷는다. 걔는 오늘 또 발작 일으키려나? 요즘은 그래도 조용하던데. 걔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와 있는 걸까? 거기서 잘 살고 있었으면서. 그냥 살던대로 살면 될 일이었잖아.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 걔는 왜 아픈 걸까? 기억 때문에 아프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이상하다고 하는데? 그때는 걔가 정말 미웠다. 왜 우리들에게 자꾸 접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우리들이 나쁜놈 아닌가 알아보기 위해 접근한 거겠지? 안 그랬으면 우리들에게 다가올 리가 없었겠지. 그렇게 잘 나고 잘 살던 게 왜 갑자기 우리들 앞에 나타나서 마음이 아프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걔 말을 믿는다. 아팠겠지. 끔찍했을 거야. 하지만 말이야, 우리들이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야. 어떻게 해서 그 이전에 그 고통을 전혀 못 느꼈냐는 거지. 걔가 한 행동이 옳은 행동인지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놈들 때려잡고 죽여댄 건 잘한 짓이야. 그놈들은 가죽을 싹 다 벗겨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었으니까. 그것만큼은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 힘을 얻기 위한 그 과정들. 바보야? 그건 희생이 아니야. 본능에 몸을 맡긴 거잖아. 그것만큼은 옹호해줄 수 없다. 그 부분은 네 편이 되어줄 수 없어. 걔가 발작을 안 일으키니 오히려 불안하다. 걔가 갑자기 뭔가 큰 깨달음을 얻었을 리는 없으니까. 걔의 웃음은 분위기와 상황을 보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말 괴로울 때 튀어나오는 거지. 그런데 요즘 웃지도 않고, 그렇다고 발작을 일으키지도 않고 너무 조용하단 말이야. 우리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걔한테 지금 뭔가 있다. 걔가 발작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도가 되는 게 아니라 커다란 재앙을 일으키기 위해 힘을 모아놓고 있는 것 같아서 차라리 발작을 일으키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우리들, 밖에 나가고 싶어. 하지만 쟤가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니 나갈 수 없다. 이런 날 우리가 별빛을 보며 밖을 돌아다니면 마음이 조금 평화로워질텐데. 우리들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문 밖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시원하구나. 쟤는 계속 발작을 일으키겠지. 앞으로 쟤는 어떻게 될까? 우리들이 언제까지 계속 돌봐줄 수도 없는데. 너무 힘들어. 우리들의 정신도 자꾸 흔들리려고 하는데 쟤 때문에 더욱 힘이 빠져. 아니야. 우리들은 쟤 때문이라도 기운을 내고 정신차려야 해. 우리들이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깨달았던 날이 떠올라. 비록 일곱 가지 모두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 실마리는 알게 되었어. 우리들은 그 비밀의 문을 열어본 사람. 비록 그 비밀이 무엇인지 완벽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어떤 모습인지 흐릿하게나마 알고 있어. 그것을 알아내었던 순간 우리는 그 비밀의 답을 알기 위해 떠나야했어. 우리를 잡아준 그 사람. 그 사람은 우리들에게 원하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 사람과 우리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비밀의 답을 쥐려는 순간 우리들의 손을 움켜쥐고 우리를 잡아끌어내었어. 그는 우리들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어.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물어보지 않았어. 알아. 그는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사람. 왜 그는 우리들이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깨닫게 되려는 순간 우리들을 잡아끌어낸 걸까? 그리고 왜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물어보지 않은 걸까?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는 걸까? 그는 나중에 죽었어. 자신을 희생해 이 도시를 해방하고, 모든 마딜인을 구원하고 세상을 떠났어. 그는 어떻게 그 비밀의 답을 알게 되었던 걸까? 그리고 왜 우리들을 흐름을 거스르며 꺼내준 걸까? 잊을 수 없는 그 충격과 고통. 그때 열린 비밀의 문. 그의 손. 그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우리들의 머리를 떠나지 않아. 온몸으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어. 설마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저 불쌍한 것을 저렇게 파괴시켜버린 걸까? 아닐 거야. 그건 그렇게 해서 밝혀낼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지금 이 세상에서 그 비밀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 그는 그 비밀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그가 그랬을 리가 없어. 그건 우리들이 더 잘 알고 있으니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잖아. 저 가여운 것은 아주 멀리에서 저렇게 당해서 돌아온 것이고. 우리들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저 별빛을 들이마시기 위해. 좋아질 거야. 쟤도 좋아지고, 우리들도 좋아지고, 마딜땅에 있는 모든 것이 좋아질 거야. 지금까지 계속 좋아졌잖아. 아무리 지금이 나빠진 것이라 해도 과거 전쟁이 벌어지던 시절보다는 훨씬 좋은 거야. 그 시절 기억이 흐릿해진 사람도 많고, 그 시절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 그러나 우리들은 기억해. 그 끔찍하던 시절보다는 지금이 훨씬 평화롭고 행복한 시기라는 걸 말이야. 너무 좋아지기만 했기 때문에 일종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거야.


 문고리를 잡았다. 잠겨 있다. 문걸쇠는 끊어진다. 문은 열린다. 열려야 해. 안에는 그놈들이 있으니까. 죽여버릴 거야. 시간은 거슬러올라갈 수 없어. 그러나 그 흐름을 틀어버릴 수는 있어. 이 문고리가 돌아가는 것처럼 시간도 방향을 틀고 행복한 기적이 유지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순간 꼭 대답해줘. 우리가 이 행복한 기적을 누릴 자격이 있냐고. 우리들이 겪은 일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줘. 문을 잡아당겼다. 걸쇠가 끊어졌다. 이런 건 쉽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쉬워. 문틈으로 침침한 빛이 조금씩 우리들을 덮어온다. 이런 빛 아래에서 우리는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곤 했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단지 맞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빌고 또 빌어야만 했어! 웃음이 나와. 우리들이 걔를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 깜깜한 곳에서 걔를 만났다면 단 하룻밤 꿈속에서라도 잠깐 안식을 취할 수 있었을까?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아니야. 그놈들이 결국 그 안식마저 파괴하려 들었을 거야. 우리들에게는 꿈 속의 안식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증오. 분노. 파괴. 우리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것들. 그들은 그것마저 빼앗으려 들었겠지. 당연해. 그래왔으니까. 우리가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을 파괴하려 들 거야. 걔는 우리들에게 행복해지라고 했어. 이것은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거야. 걔 말대로 한동안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어. 고통을 꾹 참아왔어. 그 고통을 참을 수 있었던 건 걔가 우리들에게 주는 행복이 고통보다 컸기 때문. 이 행복만큼은 빼앗길 수 없어. 지켜내야 해. 다시 그 어둠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년이다. 우리들을 바라본다. 눈을 둥그렇게 뜬다. 뻔뻔한 년.

 "너...살아있었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이 죽기를 바랬겠지? 아니. 우리들은 살아 있어. 그 끔찍한 구렁텅이로 돌아온 최초의 인간. 우리들은 누구에요? 우리들은 죽어야만 했던 존재인가요? 누가 그렇게 정한 건가요? 우리는 죽기 싫어요. 한 걸음 한 걸음 그년을 향해 걸어간다. 그년도 우리들을 향해 걸어온다. 의미없어. 네년은 여기서 죽는 거야. 그렇게 되기 위해 왔거든. 너는 대답할 필요 없어. 네년이 우리한테 뭐라고 대답할지 알고 있으니까. 너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환희에 찬 표정으로 우리들을 향해 다가온다. 우리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와서 기쁘지? 아니야. 너는 잘못 알고 있어. 우리들은 살아야해. 반드시! 이 행복한 기적을 지켜낼 거야! 여자가 두 손으로 내 뺨을 어루어만진다.

 "성공했구나! 실패한 줄 알았어."

 여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넌 죽어. 목을 잡아뜯었다. 피가 뿜어져나와 우리들 얼굴을 뒤덮는다. 실패? 응. 너는 실패했어. 손을 그년 가슴팍에 찔러넣었다. 손에 전해지는 뜨겁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뱃가죽을 잡아찢었다. 또 다시 뿜어져나오는 피. 옷이 더러워졌어. 이거 걔가 예쁘다고 한 옷인데. 그래서 일부러 입고 온 옷인데 네년 피로 시뻘개졌잖아! 더러운 피가 흘러내린다. 눈가에 뭍은 피를 닦아내었다. 궁금하지 않아. 우리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볼 필요 없어. 단지 우리들을 미워했을 뿐일 테니까. 우리들의 행복을 빼앗고 파괴하고 싶었을 뿐이잖아!


 아직까지 걔네들은 바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 우리들은 서로 친해지고 싶은데 왜 이렇게 더 가까워지기 어려운 걸까? 단지 우리들 모두 서로 다르다는 것만 받아들이면 될 일인데. 타슈갈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거 같아. 걔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그 무서웠던 상황에서 같이 있어주어서 너무 좋았는데...우리들은 왜 걔가 게첸씨를 그렇게 미워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게첸씨가 타슈갈에게 자신의 아픔을 넋두리하는 일이 조금 있기는 했어. 그렇지만 그 정도는 들어줄 수도 있는 거잖아. 게첸씨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 그런데 타슈갈은 그게 참 싫대. 타슈갈 말을 들어보면 타슈갈 생각도 나름 이해가 가. 그렇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만 인정한다면 그렇게까지 미워할 건 없을텐데...우리들은 둘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 언젠가는 타슈갈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게첸씨와 잘 지내게 되겠지? 감비르와도 잘 지내고 말이야. 그러면 우리들과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가까워질 수 있을텐데. 사실 감비르, 게첸씨 때문에 자꾸 의견이 충돌하거든. 대화를 하다보면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이 우리들 사이에 있는 것을 우리들 모두 느껴. 그리고 그 투명한 벽을 이루는 것 중에 감비르와 게첸씨가 있어. 타슈갈 참 좋은데. 우리들은 걔와 더욱 가까워질 거야. 언젠가는 그 투명한 벽을 깨뜨릴 수 있을 거야. 켈라자야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 좋아졌어. 걔도 감비르와 게첸씨를 매우 싫어해. 걔는 타슈갈 사랑하는 거 같아. 타슈갈도 켈라자야 많이 좋아하는 거 같구. 자꾸 우리들에게 오해라고 하지만 오해는 무슨! 둘이 찰싹 달라붙어서 좋아하는 걸 본 게 몇 번인데. 누가 봐도 한 쌍의 연인이던데! 게다가 타슈갈이 켈라자야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기까지 했어! 그런데 무슨 오해라는 거야? 차라리 시원하게 둘이 사귄다고 말이나 할 것이지.


 깊은 어둠. 우리들의 몸이 으슬으슬해진다. 기분이 안 좋아. 누구야? 우리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고개를 푹 숙인 남자 하나가 우리들을 향해 걸어온다. 지금 우리들 죽이려고 하는 거 맞지? 너 저주술사지? 정신나간 것. 우리들을 네 탐욕의 제물로 삼을 생각이었니? 너는 오늘 정말 재수없구나. 왜 하필 우리들을 고른 거야? 말 없이 두 손을 내뻗는다. 뭐 하려고? 우리들 목이라도 조르게? 그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간다. 점점 조이는 모양을 취한다. 우리들 허리에 압력이 가해온다. 가소로운 것. 고작 이거 가지고 사람들 죽인 거야? 조금 더 대단한 거 없니? 우리들에게 조금 더 굉장한 거 보여줄 생각 없어? 이 정도면 우리들이 충분히 죽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남자가 당황했는지 고개를 들고 우리들을 쳐다본다. 쳐다보면 뭐 달라져? 우리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 봐. 남자는 우리들을 똑바로 응시하며 한 걸음씩 다가온다. 귀찮은 새끼. 오늘밤, 우리들은 이 길을 조용히 걷고 싶었다. 그저 어둠을 들이마시며 머리 속 온갖 잡념들을 새까맣게 물들여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놈이 방해하네? 이를 어째. 우리들은 너를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는데. 너 살려줘봤자 또 다른 사람 죽일 거잖아. 네가 무엇을 원해서 이러는지 몰라. 상관없어. 알고 싶지도 않아. 하나도 안 궁금해. 결국 남을 밟고 위로 올라서고 싶다는 생각이잖아. 그런데 이를 어째. 우리들은 네게 밟힐 생각이 전혀 없는데. 남자의 두 팔이 부르르 떨린다. 해봐. 백날천날 우리들의 몸이 찌부러지는 상상을 한다고 해서 진짜 우리들 몸이 찌부러지나. 이 정도 저주술사라면 우리들이 수도 없이 죽여왔어. 여름밤 어둠 속에서 앵앵거리는 모기 잡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 남자가 주먹을 꽉 쥐더니 무언가를 찢어버리는 듯 두 팔을 쫙 벌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지. 그 정도 저주술에 당할 우리들이 아니라니까? 남자는 당황했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리들을 쳐다본다. 이번에는 어떤 저주술을 사용하려고? 다시 몸을 짜부려트린 후 확 잡아찢는 거 해보게? 그거 또 안 통할텐데. 아까도 안 통한 것이 지금 다시 해본다고 통하겠니? 생각이라는 것을 조금 해보는 게 어때? 우리들의 예상을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남자는 다시 한 번 두 손을 내뻗어 천천히 안으로 모아간다. 이제 압력이 하나도 안 느껴져. 귀찮아. 성가셔. 배열-폭발, 배열-응집. 죽어. 사람 머리통만한 불덩이가 우리들 눈 앞에 나타났다. 불덩이는 남자의 배를 향해 빠르게 날아가 폭발했다. 폭발로 인한 파편들은 우리들 앞 보이지 않는 벽을 두들겼다. 시시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이것들은 왜 이렇게 약한 거야? 그 잘못된 믿음이 약해서일까? 아닐 거야. 그냥 약하고 주제모르는 것 뿐일 거야. 그 둘은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저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우리들의 괴로움은 그 둘이 알고 있는 저주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이 겪고 있는 괴로움을 그 저주술로 해결할 방법은 없겠지. 하지만 최소한 우리들 선에서 그 괴로움이 끝나고 우리들 이후부터는 그 괴로움을 안 겪을 수 있지 않을까?


 죽을 거 같아.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다. 우리들은 이를 꽉 깨물었다. 안 돼. 오늘밤에도 또 소리칠 수는 없어. 우리들 때문에 매일밤 매우 힘들어하는 거 알고 있어. 더 폐를 끼칠 수 없잖아. 정말 참다참다 한계가 오면 그때 소리칠 거야. 아직은 그래도 견딜만해. 두 손으로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다. 목이 막혀와. 차라리 목을 졸라서 죽여줘! 그러면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잖아! 우리들은 침대에 쓰러졌다. 신음소리를 참으려 했지만 자꾸 입 밖으로 새어나온다. 싫어! 괴롭고 죽을 거 같아. 더 끔찍한 건 이러고 죽지 않는다는 걸 안다는 거야! 이 고통에 점점 익숙해져가. 견딜 수 없지만, 죽지는 않는다는 거. 눈물이 나와. 그냥 이게 싫어. 너무 괴로워! 차라리 비명을 지르면 덜 아플텐데. 아니야. 오늘만큼은 쉬게 해줘야 해. 우리들의 존재 자체로 고통받고 있잖아. 우리들의 몸부림 때문에 단 하루도 마음놓고 쉬지 못하고 있는 거 알고 있어. 더 이상 민폐를 끼쳐서는 안 돼. 이 고통은 오직 나만 겪어야해. 하지만 괴롭단 말이야! 손톱으로 양팔을 꽉 움켜쥐었다. 가슴의 고통이 조금이나파 팔로 옮겨가기를! 그러나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가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슴의 고통만 더 격렬하게 느껴질 뿐. 제발 누가 우리들 좀 구해줘요! 숨이 막혀. 숨을 쉬고 싶어! 이 미쳐날뛰는 심장을 진정시켜줘. 그냥 우리들을 죽여주세요. 너무 잔인해요. 언제까지 이 고통에 시달려야 하나요? 우리들이 그렇게 잘못했나요? 우리들만 그랬나요? 모두가 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들만 이렇게 괴로워해야해요! 이럴 거면 차라리 우리들 숨통을 끊어버리시라구요!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따귀를 때려서라도 우리들을 말릴 거야. 그래, 그때의 우리들은 당연히 그 말을 안 듣겠지. 그러면 칼로 찔러서 죽여버릴 거야. 차라리 그게 나아! 날카로운 칼날 위에 올라선 것처럼 생각이 아주 살짝만 흔들려도 이렇게 찾아오는 고통. 다 끝내고 싶어. 하지만 알아. 말만 이렇게 하는 거. 결국 살려달라고 할 거잖아. 더러워! 고통이 조금씩 잦아들어간다. 이번은 잘 버텼어. 다행히 소리치지 않았다. 지금은 조금이나마 계속 휴식을 취하고 있겠지? 고통이 매번 이정도 강도라면 그래도 견딜 수 있을텐데. 하지만 알아. 이건 가벼운 고통이라 참아낼 수 있었던 거. 큰 고통이 참아오면 견딜 수 없어. 그 고통은 분명히 또 올 거야. 그게 너무 두려워.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니까. 언젠가 또 찾아올 거라는 것을 알지만 언제 찾아올지 전혀 알 수 없으니까.


 내일은 모처럼 쉬는 날이다. 오늘 밤은 우리들이 마음껏 술을 마셔도 되는 때. 문제는 같이 술을 마실 놈이 하필 케르무크 밖에 없다는 거지. 이놈이랑 술을 마시면 재미는 있다. 원래 정신나간 놈이니까. 이놈의 뻘짓 열전을 듣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단 말이야. 단지 조금 걱정되는 것이라면 이놈이 술취해서 무슨 사고를 칠 지 모른다는 거다. 가뜩이나 미친 짓만 잘 골라서 하는 놈이 술까지 들어가면 얼마나 더 미칠지 감도 안 잡힌다. 그러나 어쩌겠어. 밤 늦게까지 술을 같이 마실 수 있는 친구라고는 이놈밖에 없는데. 다른 애들은 적당히 마시다 일어나야 한다. 남들 다 쉴 때 우리들도 쉬면 좋을텐데. 이 망할 놈의 동원령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그래도 좋게 생각하자. 이렇게라도 휴일이 있다는 게 어디야? 전에 야간 경계 근무를 설 때에 비하면 아주 천국이다. 그때는 쉬는 날도 없고 매일 밤에 근무를 서야 해서 죽는 줄 알았다. 그때에 비하면 완전 천국이지. 우리는 사실 그때보다 덜 위험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죽어나가는 사람 수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 거 같은데. 그러나 다 덜 위험해졌다고 한다. 우리들이 이상한 건가? 살해당하는 사람 수는 별 차이도 없는데 어디를 봐서 덜 위험해졌다는 거지?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낮에 갑자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사건이 최근에는 없었다는 것 정도? 그런 초대형 사건이 줄어들어서 안전하게 느껴지는 건가? 아니면 그냥 적응되어서 이제는 충격이 덜 하다는 걸까? 확실히 긴장이 많이 풀어진 건 맞다. 당장 우리들만 해도 예전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느끼니까. 우리들 주변에서만 사람이 죽지 않으면 돼. 우리들이 근무할 때 내 구역에서만 안 죽으면 된다. 그때만 아니면 사람이 죽든 말든 우리들 알 바냐? 하루에 한 명 죽는 것도 아니고 몇 명씩 죽어나가는데. 이상할 거 하나도 없다. 어차피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살아. 그냥 우리들만 피해 안 입으면 돼.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들이랑 관계있는 건 아니잖아? 귀찮게 내가 근무시간에 우리들 구역에서만 안 죽으면 되지. 동원령 끝나면 더 좋고. 사람 죽어나가는 숫자로 봐서는 한동안 동원령이 계속 지속될 것 같다는 게 문제지. 우리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근무시간에 살짝살짝 간식 먹는 수준이 아니라 쯔라 씹어대는 놈들도 많이 보이니까. 그거라도 씹어야지. 그거 씹으면 몸에 힘이 나는 거 같다고 하던데. 우리들은 아직 쯔라에는 손대지 않았다. 그거까지 하면 왠지 완전 약물에 의존하는 거 같잖아. 하지만 케르무크 이놈은 분명히 쯔라도 엄청 씹어댈 거다. 우리들 앞에서만 안 씹는 거겠지. 이놈은 쯔라보다 더한 것을 한다고 해도 그러려니 할 거다. 독버섯 우린 물을 마시고 헬렐레거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놈이지. 이런 놈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게 종종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저주술사라 해도 저렇게 정신줄 놓고 살면 죽을 수 있는데.


 모처럼 바하르가 다음날 휴일이니 우리들에게 술을 같이 마시자고 불렀다. 뭘 얼마나 마시자고 이 밤중에 우리들을 찾아온 거야? 우리야 좋지. 자기가 산다는데, 공짜로 술 얻어마실 좋은 기회다. 이왕이면 비싼 술 사주지. 그러나 기대하지 않는다. 이놈 주머니 사정도 그렇게까지 좋을리 없는 거 뻔히 아니까. 게다가 돈이 있으면 이놈이 우리들한테 돈 쓰겠어? 당연히 자기 여자친구인 치롤라한테 돈을 쓰겠지. 비싸든 싸든 공짜라는데 주는대로 고맙다고 하고 마셔야지. 술을 떡이 되도록 마시고 집에 돌아가도 상관없겠지? 술 취하면 저주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데. 거리에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저주술사라고 안 죽는 게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희생당한 사람들 중에 저주술사도 여럿이라고 한다. 우리들보다 훨씬 강한 저주술사도 수두룩한데...여기서 미쳐날뛰는 놈이 우리보다 실력이 뒤떨어지는 저주술사라는 법은 없다. 우리들보다 훨씬 실력이 저주술사도 분명히 있단 말이야. 그러니 여태도록 죽은 사람은 많은데 죽인 사람은 하나도 없지. 그날 그 할머니 시체를 보고 그게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냐. 아무리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이 저주술이라지만 그렇게 사람 쉽게 잡아죽일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당연히 저항하니까. 물론 실력 좋은 저주술사야 사람을 죽일 수 있지. 그러나 사람을 죽인다는 건 저주술사라 해도 힘든 일이야. 일단 사람을 죽인다는 것 자체가 배설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한 번 저지른 후에는 양심의 가책이 없어서 쉽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한 번이 일단 엄청 힘들다구. 우리들도 사람을 죽여본 적은 없다. 솔직히 개, 고양이만 해도 함부로 못 죽이겠던데. 그 양심의 가책을 뛰어넘었다는 것이 일단 대단한 거고, 거기다 저항을 이겨내고 순식간에 깔끔히 죽였다는 게 대단한 거다. 살아야겠다는 본능이 만들어내는 힘을 가볍게 밟아부셨다는 건데. 생존을 위한 발악은 생각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힘이 아냐. 자신의 모든 것을 힘으로 바꿔버리는 거라구. 이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물에 빠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짓누르고 짓밟는 힘. 그 힘을 한 번이라도 겪어보면 생존을 위한 발악이 얼마나 강력한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돼. 그걸 가볍게 부셔버렸다는 거야. 그런 놈과 우리들이 붙어서 이길 수 있을까? 맨정신에 붙어도 어려울 거다. 그런데 술 취한 상태에서 붙는다면? 술에 취한 건 정신이 흐려졌다는 거야. 오히려 힘이 약해진 거지. 자기를 제어할 힘을 잃어버려서 술 취해 날뛰는 거니까. 우리들이 술 취한 상태에서 그 할머니를 죽인 놈과 붙으면 우리가 무조건 질 거야. 우리가 멀쩡한 상태에서 생존을 위한 발악까지 끌어내도 솔직히 이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타나지만 말아라. 기분좋게 술 얻어먹는 날인데.


 우리들의 친구, 그놈은 저승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멍청한 놈. 그러면 누가 자기를 멋지게 생각해줄 줄 알았나. 응, 결국 개죽음이야. 그놈 집안은 풍비박산났을 거야. '폭도의 수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대신 처형당한 거니까. 우리들 같아도 눈이 뒤집히기는 했을 거다. 자기 가족이 잡아먹혔다고 했으니까. 성공하러 가서 잡아먹혔으니 더 돌아버릴 것 같았겠지. 그래도 그건 아니었어. 누가 봐도 뻔히 사람들 속여서 자기들 배나 채우려는 더러운 새끼들이었는데. 그러면서 꼴에 저주술? 진짜 웃겼다. 자기들끼리 위대한 저주술사네 어쩌네 하는 꼴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꼬라지가 아니었다. 발자국 소리 하나에도 다 깨져버리는 저주술, 애들 앞에서 공 돌리는 묘기 부리는 데에도 못 써먹겠다. 그놈은 그 새끼들에게 속은 거야. 그 새끼들이 과연 그놈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단 한 번이라도 가진 적이 있었을까? 천만에! 속으로 병신 호구 새끼 잘 잡았다고 생각하며 낄낄거렸을 거다. 원래 자기네가 죽어야 하는데 대신 죽어줬다고 이게 웬 횡재냐 했겠지. 그런 운동하는 새끼들이 다 그렇지. 우리들이 그렇게 뜯어말렸지만 자기 선택이니 저승에서도 자기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고 있지는 않겠지. 그래서 더 혐오스러워. 자유, 평등, 진리. 이따위 말 씨부리는 놈들을 볼 때마다 죽여버리고 싶다. 차라리 솔직하게 남들 짓밟고 올라가서 최고가 되고, 남들 피빨아먹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당당히 말하는 놈들이 더 깨끗해. 자유, 평등, 진리를 씨부리는 놈들 치고 제대로 된 놈이 없지. 다 머리가 병신이야. 아니면 사기꾼이거나. 죽은 놈만 불쌍하지. 불쌍한 새끼. 우리들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한없이 기쁜 마음으로 그새끼가 불 타 죽을 화형대 장작 쌓는 것을 도와주었다. 어쨌든 그래서 우리들은 요즘 여기가 더 싫다. 그딴 말을 내뱉는 놈들이 너무 많단 말이야. 우리들이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가면서 머리가 돌이 되어가나봐. 제발 뭔지 한 번만 생각을 해보라고. 희안한 건 지금 안에서 쿨쿨 자고 있는 놈 주변에 그런 쓰레기들이 자꾸 꼬인단 말이야. 그놈은 쓰레기가 아닌데 왜 쓰레기들이 걔 주변에 자꾸 꼬이는 걸까? 걔한테는 쓰레기를 잡아당기는 힘이 있는 건가. 때 되면 또 조용해지겠지. 지금은 전염병이 돌고 있는 거야. 죽을 놈 다 죽으면 알아서 또 잠잠해질 거다. 그때까지 잘 버티는 게 중요할 뿐. 하나는 결국 희생당했지만 나머지는 아직 괜찮다. 하나가 위태위태하기는 하지만...걔는 솔직히 어찌 될 지 모르겠다. 스스로 미치겠다고 작정하면 방법없다.



 우리들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눈이 어둠에 적응되어 안이 아까보다 잘 보인다. 의자를 들어 창가로 가져다놓고 의자에 앉았다. 모든 게 좋아지겠지? 당연히 좋아질 거야.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으니까.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 나약해져서 그래.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의 고통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야. 우리들은 아직도 그 고통을 생생히 기억해. 우리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 우리들은 원래 그때 죽어야 했던 사람. 그분의 제자가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해. 저주술의 발전을 위한 실험들. 사람들에게 무해한 가벼운 실험들이라 했지만 직감적으로 느꼈다. 어떤 가벼운 실험이라도 사람들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실험이란 없어. 그 실험을 당한 사람은 분명히 마음에 상처를 받을 거야. 우리들은 그 실험이 어떤 실험인지 정확히 몰라. 그가 우리들에게 정확히 어떤 실험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건 웬만해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정신과 마음은 함부로 건드는 게 아니야. 만에 하나 정신과 마음에 상처가 생긴다면 그건 영원히 지워지지 않아. 저 불쌍한 것도 정말 걱정되는 건 바로 그거 때문이구. 그래도 그분의 제자이니 별 일 없겠지? 저 가여운 것이 저렇게 된 것과 그분의 제자가 수행하고 있다는 실험과는 관련이 없을 거야. 저주술사니까. 최소한의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저주술사잖아. 그분의 제자가 뭔지 모를 실험을 진행하는 목적은 저주술을 발전시켜 모든 사람이 더욱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 그분의 제자 말에 의하면 실험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했어. 모두가 더욱 행복해지고 있다고 했어. 우리들이 그분의 제자가 수행하는 실험에 간접적으로 약간 도움을 주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야. 모두가 더 행복해지는 일이라 하니까. 그리고 진짜로 행복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잖아. 그분의 실험이 성공해서 어서 이 혼란한 상황이 끝났으면!


 "여보!"

 그놈이다. 네놈의 소중한 그이였니? 이년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우리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었던 거야? 우리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그새끼 얼굴이 일그러진다. 우리들을 노려본다. 어떡하려구? 이리 와. 조금이라도 더. 그래야 우리들이 한 발이라도 덜 움직이고 너를 죽이지! 그새끼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우리들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기억나니? 네게 제발 살려달라고 빌던 우리들 모습. 너는 우리들 얼굴을 발로 있는 힘껏 걷어찼지. 잊을 거 같아? 아마 잊었겠지. 네놈한테 우리는 벌레만도 못한 존재였을테니까.

 "이 개새끼가 은혜도 몰라봐?"

 "은혜? 뭐가?"

 두 팔이 저리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진다. 공기가 뭉쳐 우리를 묶고 있어. 저주술 좀 쓸 줄 안다 이거지? 앞으로 달려나가 저놈을 죽여야 하는데 몸이 안 움직인다. 무겁다. 주변이 무거워. 커다란 손이 우리 몸을 꽉 쥐고 있어. 그새끼가 천천히 우리들을 향해 걸어온다. 목이 조여와. 숨 쉬기 점점 어려워져. 괜찮아. 이런 고통, 수도 없이 많이 겪어봤어. 심장이 멎어버리는 고통보다는 훨씬 나아. 어디 한 번 해 봐! 그새끼가 계단에서 내려왔다. 이대로 우리들을 죽일 수 있을 거 같아? 다시는 우리들이 걔를 보지 못할 거 같아? 아니.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영원히 매일 걔 얼굴을 볼 거야.

 "얼추 성공은 했지만 결과가 더럽군."

 그새끼가 우리를 향해 천천히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긴다. 움직일 수가 없어. 이대로 있으면 죽어. 우리는 죽지 않아! 있는 힘껏 이 압박에서 저항한다. 하지만 저항할 수록 더욱 옥죄어온다.

 "소용없어. 넌 죽어버려야 해. 내 아내를 죽였으니까."

 웃기지 마. 죽는 건 너야. 우리들은 이 구속에서 해방된다. 간신히 오른팔을 굽혀 손을 품 속에 집어넣었다. 저 새끼는 한심하다는 듯 우리를 쳐다본다. 부질없는 저항, 해봐야 소용없다는 거지? 아니야. 고작 이따위.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 너는 죽는다. 우리들은 살아야하니까! 걔를 다시 봐야하니까!

 "허튼 짓 하지 마."

 온몸을 던져 그새끼를 향해 달려들었다. 보이지 않는 벽. 칼이 벽을 뚫지 못한다. 누가 뒤로 잡아당긴다. 누구긴 누구야? 저새끼의 저주술이지.

 "그 정도 실력으로는 어림없다."

 웃기지 마! 죽여버릴 거야! 너는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이 벽, 깨부순다. 이 새끼는 오른손을 들어 천천히 주먹을 쥐는 모습을 보여준다. 목이 조인다. 숨 쉬기 어려워. 피가 쏠려. 눈이 튀어나올 거 같아. 괴로워! 죽을 거 같아! 이 새끼 죽여버릴 거야! 숨을 쉴 거야! 우리는 살아야 해! 칼 100자루! 이 새끼를 관통하는 칼 100자루!

 팍!

 터지는 소리. 가볍다. 풀렸어. 구속에서 자유로워진 우리들의 몸이 이새끼를 향해 날아간다. 우리들 손에 쥔 칼이 이놈 가슴에 박힌다. 100자루의 칼이 이 새끼 몸을 관통한다. 튀어오르는 피. 이 새끼 몸은 관통하는 무수히 많은 칼에 의해 뒤로 자빠진다. 왜 우리를 파괴했어? 칼을 거꾸로 쥐었다. 다시 한 번 칼 100자루! 그새끼 가슴에 칼을 박아넣는다. 하늘 높이에서 벼락처럼 떨어져내리는 칼 100자루가 그 새끼 몸을 관통한다. 바닥에 꽂힌다. 있는 힘껏 칼을 잡아뽑았다. 또 다시 피가 옷을 더럽힌다.


 우리들은 메달을 다시 집어넣었다. 창문을 열었다. 키란님, 오늘 밤은 제발 아무도 죽지 않고 평화롭게 흘러가게 해주세요. 당신이 원하는 세상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죠? 모든 마딜인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세상을 꿈꾸셨던 거죠? 오늘 학습 모임에서 당신 이야기가 나왔어요. 여러 사례와 이야기들을 모아서 함께 분석해 보았어요. 그 결과 당신은 모든 사람은 전부 다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어요. 당신은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셨던 거죠? 우리들은 맞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말씀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그것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이 도시는 매우 혼란스러워요. 매일밤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있어요.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어요. 당신이 여기로 돌아와서 이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들은 알고 있어요. 이것은 살아있는 자의 숙제. 우리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 문제는 우리들 스스로 해결해내야만 해요. 우리들은 이 문제가 너무나 무겁고 감당이 안 된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해요. 하지만 그때마다 당신이 짊어지셨던 고통을 떠올리며 힘을 내곤 해요. 그렇게 힘을 내어 노력하다보면 기다렸던 순간이 다가오겠죠? 모든 사람은 전부 다르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올 때까지 노력할께요. 그렇게 하면 당신도, 에르키나도 저승에서 이 세상을 보며 조금이나마 미소를 지을까요?


 우리들은 미친 저주술사놈 때문에 피곤해졌다. 밤거리를 더 돌아다니고 싶지 않다.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걸어잠갔다. 창문에 두꺼운 판자를 끼우고 다시 시꺼먼 커튼을 쳐서 밖에서 안이 아예 안 보이게 만들었다. 우리는 침실로 들어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안 돼! 기억의 고통이 엄습해온다. 아까 그놈 때문이야! 요즘 많이 잠잠해져서 안도하고 있었는데 다시 심해졌어. 그놈을 죽이면서 다시 살아나버렸잖아! 대답해줘요. 우리들은 잘못한 게 아니죠? 그렇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이 세상에서 당연한 거잖아요. 우리들이 한 행위는 단지 '살아가는 행위' 그 자체 중 한 방법이었을 뿐이죠? 맞죠? 대답해줘요! 제발 그게 죄가 아니라구요. 선한 행위라고 하지 않아도 되요. 그냥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해줘요. 좋아요. 그 행위, 잘못되었어요. 알겠어요. 그러나 우리들은 그 힘을 다수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사용했잖아요.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잖아요. 그러니 어쨌든 결과는 좋았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누군가가 치루었어야 할 희생을 우리가 짊어진 것 뿐 아닌가요? 우리가 아니었다면 누군가 똑같이 그 짓을 해야 했어요. 힘을 얻어야 그 역겨운 무리들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몰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잖아요. 그 역겨운 무리들만이 행복해하는 세상이 아닌 모두가 진정 행복해하는 세상을 원한다면, 누군가는 그 짓을 해서 그 역겨운 무리들을 죽여야만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잘못하지는 않은 거죠? 아니, 비록 힘을 얻은 방법 자체는 잘못되었지만 그 힘을 옳은 일에 사용했으니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구석이 있는 거죠? 모두가 생각하는 그 완벽히 추악한 모습이 아니라구요. 겉은 썩었지만 속은 멀쩡한 과일 같은...그런 게 우리들이죠? 그래요, 우리들은 더러워요. 영원히 깨끗해질 수 없어요. 그러나 모두가 깨끗해지기 위해 더러움을 뒤집어쓴 거라고 해줘요. 제발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우리들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했을 거라구요!


 걔는 지금 천하태평하게 잘 자고 있겠지? 우리들이 이렇게 아픈 건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을 거야. 우리들을 볼 때마다 역겨움을 숨기느라 힘들겠지. 괜찮아. 우리들도 우리가 역겨운 거 알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 언젠가는 지금 이렇게 침대에 누워 괴로움에 발버둥치는 것조차 너무나 좋았던 때로 기억하게 될 거야. 비록 거짓이라는 것 알지만, 지금이라도 조금 더 착각 속에 빠지고 싶어. 이 정도 욕심부리는 건 괜찮지 않을까? 아마 우리가 많이 귀찮을 거야. 어쩌면 차라리 빨리 죽어버리라고 빌고 있을 수도 있겠지. 우리들이 잘못한 거니까 인정해. 진실된 마음을 받아낼 수 없어. 가식적인 모습이라도 감지덕지하며 받아야해. 우리들 주제에 그거라도 고마워해야지. 어차피 우리는 잃을 것도 없잖아? 모든 것을 잃어버렸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이 침대, 이 보살핌 뿐. 그나마도 한시적인 거야. 우리들은 이렇게 욕심부릴 자격이 전혀 없는데...그래도 어떻게 해. 머리로는 우리들에게 그런 자격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건 오직 머리 뿐. 머리를 제외한 우리들 모든 것이 욕심을 부릴 수 있을 때 욕심부리라고 하고 있는걸. 보고싶다. 내일은 올까? 스스로 공부해? 그 말을 믿은 우리들이 바보지. 이 멍청이. 네가 그렇게만 말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한 번은 더 망설였을 거 아니야? 우리들이 이렇게 된 것에는 네 책임도 있어. 네가 솔직히 혼자서는 아직 무리라고 했다면 우리들이 많이 고민했을 거란 말이야. 네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해서 홧김에 선택한 감도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들은 가식이고 거짓이라 해도 받아낼 자격이 있어. 우리들 혼자의 착각이라 해도 좋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추억을 만들 거야. 고통 속에서 한 번은 웃을 수 있는 추억.


 우리들은 케르무크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케르무크는 잔에 술이 채워지자마자 바로 입에 털어넣는다. 공짜라고 아주 막 받아마시는구만. 술잔에 다시 술을 따라주고 술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케르무크가 술병을 집어 우리들 잔에 따라주었다. 오늘 밤은 시간 많으니 천천히 마시자구. 급하게 마시고 여기에서 뻗어버릴 생각이야? 너 여기서 뻗어버리면 우리가 귀찮아지잖아. 우리들이 너네 집까지 너 부축하면서 데려가야 할텐데.

 "요즘은 사람들 좀 덜 죽냐?"

 "덜 죽기는. 똑같지."

 뭘 뻔한 걸 물어보고 있어? 덜 죽으면 우리가 전보다 훨씬 편해졌을 거다. 안부 인사라고 치자. 사람이 덜 죽으면 우리들 일이 편해지니까. 케르무크와 잔을 부딪힌 후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씁쓸한 맛만 느껴진다. 과일즙이라도 조금 섞으면 한결 마실만한데. 아직은 과일이 없지? 날이 풀렸다는 거에 만족하자. 진짜 개 같은 겨울. 사시사철 날이 따뜻하고 먹을 게 풍족하면 얼마나 좋아? 지난 겨울에는 사람 참 많이 죽었어. 우리도 그렇게 많이 죽을 줄 몰랐다. 길거리에서 얼어죽은 놈, 길 가다 강에 빠져 죽은 놈 등등 저주술로 살해당한 사람 말고 추위 때문에 죽은 사람도 여럿이었다. 직접 경험해보니 겨울이 얼마나 끔찍한 계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겨울 좋다는 놈들은 매가 약이야. 그런 놈들은 한겨울에 두들겨패고 홀딱 벗겨서 밖에 세워놔야 해. 이런다고 안 올 겨울은 아니지만.

 "나 얼마전에 타슈갈이랑 도박장 다녀왔어."

 "도박장? 개털되었냐?"

 케르무크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개털은 무슨? 돈 완전 많이 땄어! 그날 타슈갈 뭐 완전 귀신들린 거 같더라. 걔 장난 아니던데? 깡따구 작살이야. 걔 말대로 돈 거는데 쫄려서 죽는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돈 엄청 많이 따고 나오기는 했지만."

 "진짜야? 타슈갈이 그쪽에 소질있어?"

 "설마...그날은 그냥 타슈갈이 끗발 사는 날이었던 거지. 주사위 숫자 맞추는 게 무슨 실력으로 되는 거냐?"

 그날 우리들도 따라갈 걸 그랬나? 거기는 따라가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들이 안 가니까 이놈이 아주 대박터졌구만. 우리도 따라갔으면 한몫 잡아서 나왔을텐데.

 "너 사람 몇 명 죽는 걸로 돈 거는 거 아냐?"

 "알아. 들어봤어."

 "그거 완전 짜고 치는 거 아냐?"

 "짜고 치다니?"

 케르무크, 이놈 뭐라는 거야? 사람 죽는 수를 뭔 수로 짜고 쳐? 그런 건 경찰서 가서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건데. 거짓말해서 속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돈 걸린 거 보고 사람 죽일 수도 있잖아."

 "설마..."

 "혹시 알아? 거기 돈 걸린 거 보고 오늘은 많이 죽일까 덜 죽일까 결정할지."

 "그게 말이 되냐?"

 "아니면 누구 시켜서 하든가..."

 "말도 안 돼. 사람 죽이는 게 그렇게 쉽냐? 여기저기 경찰 쫙 깔렸는데?"

 케르무크가 술을 한 잔 또 삼켰다. 우리들은 케르무크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케르무크는 자신의 잔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사람 죽이는 게 어려운 거는 너도 알잖아. 인간은 그렇게 나약한 존재가 아니야. 게다가 지금 죽어나가는 사람들 보면 저주술에 당한 사람들이 많다고.


 바하르는 우리들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공짜 술인데 아낄 거 있나? 망설일 필요 없다. 우리들은 잔에 술이 채워지자마자 바로 입에 털어넣는다.역시 공짜술은 맛있어. 아주 팍팍 마셔야지. 설마 오늘 죽겠냐? 우리들 목숨이 오늘 죽을 목숨이라면 뭔 짓을 해도 오늘 뒈져요. 우리들은 그저 이 순간에 몸을 맡기면 돼. 한 순간이라도 더 즐거워야 죽을 때 덜 후회할 거 아니야? 바하르가 술잔에 다시 술을 따라주고 술병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우리가 술병을 집어 바하르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어서 또 한 잔 마시고 싶다. 쓸 데 없는 고민은 뒤로 하고 일단 마시자구.

 "요즘은 사람들 좀 덜 죽냐?"

 "덜 죽기는. 똑같지."

 우리들이 바하르에게 요즘 사람들 덜 죽냐고 물어보자 바하르는 한숨을 내쉬며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바로 잔을 들어 내쪽을 향해 내밀었다. 우리는 바하르와 잔을 부딪힌 후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너도 참 불쌍한 인생이다. 그러게 우리들처럼 거기에서 빨리 탈출했었어야지. 거기 이상한 곳이라니까. 거기 있는 놈들 다 정상이 아니었어. 아니, 거기 자체가 이상한 곳이었어. 무슨 동원령이 발생해? 그게 학교야?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 투성이인 곳이었다. 우리들은 그래서 거기에서 뛰쳐나왔다. 이놈은 거기가 좋은 곳이라고 헤헤거리며 있다가 지금 이렇게 되었지. 그래도 무급으로 부려먹는 게 아니라 푼돈이나마 쥐어주니까 괜찮은 건가? 지금 여기는 일자리 못 구해 구걸하고 다니는 놈들 천지니까. 전에 우리들이 돈 딴 거나 자랑해야겠다.

 "나 얼마전에 타슈갈이랑 도박장 다녀왔어."

 "도박장? 개털되었냐?"

 바하르는 '또 한심한 짓 했구만'이라는 뜻이 가득 담긴 말을 내뱉었다. 개털? 그날 우리들이 집을 안 걸었던 것이 한이구만.

 "개털은 무슨? 돈 완전 많이 땄어! 그날 타슈갈 뭐 완전 귀신들린 거 같더라. 걔 장난 아니던데? 깡따구 작살이야. 걔 말대로 돈 거는데 쫄려서 죽는 줄 알았다. 돈 엄청 많이 따고 나오기는 했지만 진짜 지릴 뻔 했어."

 우리들 말에 바하르의 두 눈이 둥그래졌다. 그러게 그날 너도 오지 그랬냐. 우리들도 네 신세 생각해서 한 번만 권하고 말기는 했지만...

 "진짜야? 타슈갈이 그쪽에 소질있어?"

 타슈갈이 거기에 소질 있으면 우리들한테 한 번 더 가자고 하게? 그딴 데에 뭔 얼어죽을 소질이야?

 "설마...그날은 그냥 타슈갈이 끗발 사는 날이었던 거지. 주사위 숫자 맞추는 게 무슨 실력으로 되는 거냐?"

 바하르는 아쉬운지 혀를 가볍게 한 번 찼다. 뭘 뻔한 걸 물어보고 있어. 그거 숫자 맞추는 걸 무슨 실력으로 해? 그게 실력으로 된다면 동네방네 저주술사들 다 거기에 달라붙어있지. 차라리 그게 실력으로 되는 거라면 좋겠다. 그러면 저주술사들이 사람들 죽이러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돈 따러 거기 다 달라붙어 있을 테니까. 진짜 엉뚱한 연구에 목숨 걸 것이 아니라 주사위를 저주술로 조작하는 방법을 연구하자고 건의해야 하는 거 아니야? 자유고 정의고 진리고 나발이고 말이야. 그딴 거 다 살아 있는 사람한테만 필요한 거잖아. 저주술사들이 날뛰며 사람들 죽여대고 있는 게 현실이고. 이거 완전 쩌는 생각인데? 이 도시에 평화를 찾아올 방법 아니야?

 "너 사람 몇 명 죽는 걸로 돈 거는 거 아냐?"

 바하르에게 그날 우리들이 도박장에서 본 장면을 물어보았다.

 "알아. 들어봤어."

 "그거 완전 짜고 치는 거 아냐?"

 "짜고 치다니?"

 충분히 가능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도박에 관련된 누가 돈 걸린 상황을 보고 살인마한테 부탁하는 거야. 오늘은 전날보다 적은 쪽이 우세니까 좀 확실히 많이 죽여주세요. 아니면 오늘은 전날보다 많은 쪽이 우세니까 이 돈 받으시고 오늘 하루 푹 쉬어주세요. 가능하잖아? 그 살인마가 실력 뛰어난 저주술사라면 더더욱 더 말이야.

 "그러니까 돈 걸린 거 보고 사람 죽일 수도 있잖아."

 "설마..."

 바하르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혹시 알아? 거기 돈 걸린 거 보고 오늘은 많이 죽일까 덜 죽일까 결정할지."

 "그게 말이 되냐?"

 "아니면 누구 시켜서 하든가..."

 "말도 안 돼. 사람 죽이는 게 그렇게 쉽냐? 여기저기 경찰 쫙 깔렸는데?"

 우리들은 술을 한 잔 또 삼켰다. 바하르는 우리들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왜 이놈은 여기까지 생각을 못 하지? 이거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물론 우리들이야 못하지. 그렇지만 진짜 굉장한 놈이라면, 그리고 뭔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만 한다면 못할 것도 없잖아? 지금 사람들을 죽이는 놈들은 자기들 목적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거고, 사망자 수에 돈을 거는 놈들 중 많이 죽는 쪽에 거는 놈들은 더 죽기를 바라니까. 둘이 손을 잡으려 한다면 못 잡을 것도 없는데. 오히려 이렇게 하면 살인마는 자기 목적에 맞게 사람도 죽이고 돈도 벌고 완전 꿀 아니야?


 모든 것이 한 덩어리가 되는 어둠. 나도, 너도, 그사람도, 우리들도, 너희들도, 그들도 없는 하나된 상태. 깜깜하다. 익숙한 길이 낯설게 느껴진다. 누가 가로등을 꺼버린 거야? 설마 저주술사가 날뛰기 위해 불을 끈 건 아니겠지? 우리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생각없이 걷다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네. 슬슬 돌아가야겠다. 우리들이 시간을 이렇게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들이 만든 실패작. 그새끼는 당연히 죽었겠지? 우리들 앞에 나타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는데. 그새끼들의 말에 오염될 줄은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우리들은 그런 걸 만들지도 않았을 거다. 상관없어. 걔가 그새끼는 당연히 죽었을 거라고 했다. 살아있을 리가 없지. 굉장한 놈들한테 걸렸는데. 살아있다면 엄청난 골칫덩어리일 거다. 정말로 엄청난 놈으로 진화했다는 이야기니까. 설마 살아있으려구. 살아서 내 앞에 나타난다면 그새끼에게 했던 말을 지켜야 할까? 고민된다. 상태 봐서 적당히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새끼가 살아있다면 분명히 좋은 상태는 아닐 거다. 우리들이 죽여야할 상태겠지. 나는 걔 말을 믿는다. 그건 어지간해서는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분명히 죽었을 거다. 그 정도 실력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만약 우리들 앞에 나타나서 그 새끼들이 지껄였던 혐오스러운 말을 내뱉는다면 진짜 내가 그새끼에게 했던 말을 지킬 거다. 어차피 이루어지지도 않을 일, 괜히 상상해봐야 의미없다. 그새끼는 죽었어. 그런 실패작을 만들었다는 기억이 지금까지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을 뿐. 그때 우리들은 왜 그랬을까? 별 이유 있나. 그게 잘 될 줄 알았으니까 그랬지. 부질없는 가정이다. 그런 치욕스러운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괴롭기는 하지만 다 끝난 일이다. 어차피 그새끼는 내가 아니었어도 결국 그 길을 걸었을 거다. 멍청하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새끼에게 그런 길로 인도할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려보냈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 주변에서 저주술 이야기하는 게 더 싫다. 그럴 때마다 그녀석이 딱 그새끼가 걸었던 길을 걸어갈까 불안하단 말이야. 그녀석과 그새끼는 확실히 달라.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녀석을 그새끼가 걸었던 길로 유인하려는 놈들이 몇 있어. 한결같이 저주술, 자유, 진리, 평등을 이야기하면서. 진짜 물이라도 한 바가지씩 끼얹으며 쫓아내야하나. 예전의 우리들이었다면 하나하나 다 싸우고 쫓아냈을텐데. 그러고보면 우리들도 바뀌었어. 이제는 죽을 거 뻔히 알지만 죽는 길로 가겠다면 그냥 놔둔다. 그게 네놈 인생이지 하면서. 하지만 우리들이 아끼는 사람들만큼은 그럴 수 없어. 그녀석도 우리들이 아끼는 사람들 중 하나. 남들이 죽든 말든 알 바 아니지만, 우리들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만큼은 안 돼. 더러운 짓, 역겨운 짓은 네놈들끼리 하라고! 미친놈 병신짓거리는 너네들끼리 하고 서로 죽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우리들까지 그 혐오스러운 짓에 끌어들이려 하지 마!



 오늘은 조금이라도 깊이 잘 수 있을까? 저 가여운 것이 오늘밤에는 조용하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상태가 좋아진 거겠지? 저 불쌍한 것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단 하룻밤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너무 피곤해. 전쟁 시절에 겪어본 긴장과 불면이야. 그래도 여전히 적응이 안 돼.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괴로워. 우리들은 힘내야 해. 저주술로 만들 아름다운 세상. 모두가 항상 행복해하고 기뻐하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세상. 그때가 되면 저 아이도 발작을 멈추고 그 세상 속에서 행복해하고 기뻐하면 살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참고 견뎌내자. 그분이 우리들을 일곱 가지 비밀의 문 앞에서 잡아끌어내었던 것처럼.


 옷을 더럽힌 피가 증발한다. 옷이 다시 깨끗해졌다. 그년과 그새끼 시체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시원해. 그래, 이거야. 걔 말대로 참으려 했어. 하지만 갈수록 깊어지는 어둠에 심장이 잠식당하는 고통은 걔 말을 듣는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었어. 이렇게 하나씩 다시 해치워가다보면 좋아질 거야. 걔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계속 연장될 거야. 진작에 이렇게 해야 했어. 멈추지 말았어야 했어.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시원하고 좋은데! 너무나 아름다운 밤이야.


 여기는 위험해. 그렇지만 우리들은 여기가 좋아. 우리들의 고향에는 끔찍한 기억이 살아숨쉬고 있으니까. 그 속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우리들은 어떻게든 여기에 정착하도록 노력할 거야. 그리고 여기가 좋아지도록 노력할 거야. 여기가 좋아지면 다른 곳도 조금씩 좋아지겠지? 그렇게 점점 더 이땅 이나라 사람들 모두 좋아지다보면 언젠가 그 끔찍한 기억은 죽어버릴 거야. 그때가 되면 한 번쯤 우리들은 고향으로 가볼 거야. 그 전에는 절대 안 가. 저주술사에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 있을 거야. 끔찍한 기억이 살아숨쉬고 새로운 끔찍한 기억이 끊임없이 창조되고 번식하고 있는 그곳에 돌아갈 수는 없어.


 이 고통. 우리들은 벗어나고 싶다. 언제까지 이렇게 괴로워해야 하지? 아프고 괴로울 수록 웃어. 이 웃음은 진짜 웃음이 아니야. 절규라고! 우리들을 바라보는 그 수많은 눈을 보지 않기 위해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거야. 죄책감의 파도. 다시 한 번 우리들의 마음을 거칠게 때린다. 과거의 우리들에게 돌아가고 싶어. 남들이 죽든 말든 신경쓰지 말라고 말할 거야. 우리들이 사는 게 우선이야! 두 눈을 뜨는 순간 그 고통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닫게 돼! 눈 뜨지 마! 그거 말고도 찾아보면 분명히 길이 있어. 다른 길을 찾아야해.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언제나 똑같이 찾아오는 고통의 파도. 벗어나고 싶어. 우리들 좀 살려줘.


 몇 시나 되었을까? 우리들에게 더 이상 의미없지만 습관처럼 떠오르는 이 생각. 주변이 조용하니 밤일까? 걔는 이 밤에 또 돌아다니고 있겠지? 걔는 아픔을 잊기 위해 밤에 돌아다닌다고 했으니까. 우리들은 언제쯤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멍청이는 우리들이 아픈 걸 전혀 모르고 있을 거야. 자다가 확 다리에 쥐나 나버려라. 너는 그렇게라도 아파봐야해.


 우리들은 이런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피곤해. 이놈, 일곱 가지 꿈의 비밀 연구는 잘 되어가고 있을까? 치롤라가 요즘 같이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연구할 친구 하나 사귀었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걸 밝혀낼 수 있을까? 이놈은 솔직히 놀고 싶은데 혼자 놀면 심심하니까 타슈갈 자꾸 불러내는 거 아니야?

 "일곱 가지 꿈 연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그거? 그냥 그래."

 "그게 쉽게 될 리가 없지."

 우리들은 케르무크가 어떤 대답을 할 지 알고 있었다. 그게 쉽게 밝혀질 거면 개나 새나 다 밝혀내었지. 끊임없이 명상하고 사색에 빠진 저주술사들도 발견해내지 못한 건데 이놈처럼 흥청망청거리면서 그 문제의 답을 얻어낸다고? 말도 안 돼.


 바하르는 이쪽으로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얼굴을 보니 다른 화제가 무엇이 있나 눈동자를 왼쪽 위로 올리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일곱 가지 꿈 연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일곱 가지 꿈의 비밀. 바하르 여자친구도 연구하고 있다고 했었지? 내가 좋은 거 알려주면 걔한테 알려주게?

 "그거? 그냥 그래."

 "그게 쉽게 될 리가 없지."

 바하르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우리들의 연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우리들의 꿈 속에는 그 비밀을 풀어낼 조각들이 숨어 있거든. 너무나 작아서 끝없이 모아야하는 보이지 않는 조각들. 그래도 지금까지 우리는 몇 조각 모았다. 계속 모아가다보면 분명히 밝혀낼 거다. 그러나 완벽히 밝혀내기 전까지는 비밀로 할 거야. 솔직히 지금 우리들은 바하르에게 그게 무엇인지 말해주려 해도 우리들조차 모르기 때문에 말해줄 수도 없다.


 다시 돌아왔다. 저녀석은 진짜 잘 자네. 부럽다. 우리들은 언제쯤 저렇게 아무 걱정 없이 잘 잘 수 있을까? 걔는 언제쯤 속에 쌓인 한이 풀려서 밤에 편히 잘까? 하나는 매일 밤 속에 쌓인 것 때문에 잠을 못 자는데 하나는 아주 잘 잔다. 아무리 봐도 둘이 사귀는 거 같은데...희생당한 걔까지 셋이 하나되어도 왠지 잘 어울릴 거 같아. 서로 상처 보듬어주면서 지내면 괜찮지 않을까? 아까는 정말 답답했었다. 모처럼 밤에 산책하고 돌아오니 가슴이 조금 후련하다. 이 시각, 모두 깊이 잘 자고 있겠지? 꽤 늦은 시각이니까. 이제 날이 풀렸으니 먹거리도 이것저것 시장에 나오겠지. 가격도 조금 낮아졌을 거야. 일단 자자. 일어나서 내일 생각해야지. 내일 딱히 뭔가 일어날 리 없을 거다. 매일 죽는 사람들. 우리들 주변만 조용하면 돼. 우리들한테 피해만 안 오면 된다. 자기들끼리 싸우다 지치면 알아서 조용해질 거고, 그때까지 잘 버텨야 한다. 내일은 나의 소중한 걔가 편히 쉴 수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어제 꽤 일찍 잠들었다. 하지만 밤에 이상한 꿈을 꾸고 잠시 깨어난 후, 잠을 영 제대로 자지 못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꿈이었다. 왜 나는 동시에 여러 명이 되어 여러 일을 벌인 걸까? 내 손에 죽은 남자와 여자. 모르는 사람인데 아직까지도 적개심이 느껴진다. 잘 죽였어. 상관없잖아? 어차피 꿈이었는데. 꿈에서라도 그렇게 속이 한 번 시원해봤으면 되었다. 별 거 없는 꿈이다. 처음 꾸어본 이상한 형태의 꿈이기는 하지만 꿈은 꿈이니까. 의미도 상징도 떠올려볼 건덕지가 없잖아. 그 꿈 때문에 이후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다. 머리가 무겁다. 그래도 일어나야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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