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2018. 9.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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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3장 15화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의 장례식 행렬은 다행히 별 일 없이 끝났다. 무슨 일이 생길 것처럼 살벌한 분위기였지만 별 거 없었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말이다. 오늘은 1116년 5월 8일. 4월 30일에 장례식 행렬이 있었으니 그로부터 8일째다. 이 도시에서는 누가 죽든 별 거 아닌 거야. 그저 죽었다는 사건이 일어날 때나 조금 시끄러운 거지. 상당히 높은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또 엄청나게 시끄러워질 줄 알았다. 폭동이라도 일어날 줄 알았지. 하지만 아무 것도 없어. 그런 인간이 세상에 존재했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야.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 중 하나가 사라졌다고 해서 밤하늘이 달라보이지 않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지금 날뛰면 공공의 적으로 몰려 모두가 죽이려고 덤벼들테니까. 설령 속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눈치껏 애도하는 척 해야겠지.


 라키사는 여전히 서점 계산대 뒤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그래. 이제 라키사와는 다 끝났어. 희망을 갖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켈라자야가 라키사에게 자기와 아다비아가 나를 나눠갖기로 했다고 말하는 순간 다 끝나버린 거다. 이고가 켈라자야 말이 맞다는 투로 옆에서 거들었다. 라키사는 켈라자야를 보며 활짝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켈라자야가 안으로 들어간 후, 라키사에게 말을 걸자 라키사는 내게 말했다.


 "괜찮아. 세상에는 다양성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나는 너희들의 연애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 나는 나만 좋아하는 남자가 좋아."


 그걸로 끝났다. 애초에 좋아질 가능성이 없었던 거야. 솔직히 나도 지금 저 라키사 모습을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 그 망할 놈의 다양성. 왜 자꾸 거기에 몰두하는 걸까? 그 친구 에르키나의 죽음 때문에? 감비르가 여장을 하고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하면서 라키사도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감비르가 라키사의 정신을 오염시켜놓은 거 아닐까? 어쨌든 라키사는 나날이 학습 모임에 더 열중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열중해갈 수록 더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다. 라키사가 예전으로 돌아가도록 설득하는 것보다 켈라자야가 정상적인 사람의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쉬울 거다. 아다비아가 할 수 있는 정상적인 무언가를 찾는 것이 더 쉬울 거구. 라키사와는 애초에 나와 이어질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서로 노력할 수록 오히려 관계만 더 나빠지잖아.


 켈라자야는 옆에서 계속 신경써주고 도와주면 별 무리없이 계속 좋아지겠지. 아다비아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눈 먼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뭐가 있을까? 그나마 해볼 만한 것이 학식을 쌓아서 학자가 되는 건가? 그런데 그러려면 누군가 옆에서 계속 도와줘야 하잖아. 그걸 내가 할 수 있을까? 당장 어제도 아다비아한테 갔다가 왜 이렇게 멍청하냐는 소리만 잔뜩 듣고 돌아왔는데. 아다비아는 진짜 눈을 다시 뜨게 해주는 게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 그나마 가장 현실성 있는 거 아닐까? 그냥 적당히 공부하는 정도도 아니고 학자? 말도 안 돼. 어느 분야일지는 모르겠지만 학자라면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거잖아. 차라리 눈은 보이는데 걸을 수 없다고 한다면 내가 매일 업고다니기라도 하지. 책이야 자기 혼자 보면 될테니까. 하지만 이건 눈이 안 보이잖아. 당장 책을 혼자 못 보는데 무슨 학자야?


 나를 나눠갖겠다는 말이 나와 사귀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둘이 제정신이라면 참 기분 좋을 말이지만 둘 다 멀쩡하지가 않잖아. 정상인이었다면 그런 말을 할 생각도 하지 못했겠지만 말이야. 나와 사귀겠다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둘 중 하나하고만 사귀어도 엄청나게 부담되는데 둘을 감당하라고? 그게 감당될 리가 없잖아. 여자 두 명과 동시에 사귄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다. 그건 정상적인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동시에 두 여자를 좋아해본 적도 없구. 그런데 정상인도 아니고 다 뭔가 큰 문제가 있는 둘과 동시에? 아니야. 당장 아다비아와 켈라자야가 싸우면 어떻게 해? 게다가 둘을 어떻게 정상인으로 만들어? 그러나 내 뜻은 모두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켈라자야, 아다비아 모두 대놓고 나한테 우리는 사귀는 사이라고 하고 있고, 주변에서 모두 그걸 아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나는 걔네들과 사귀겠다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진짜 걔네 둘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안 보인다. 자기들도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사귀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알겠지. 둘 다 정신이 멀쩡해지면 이 이상한 관계는 어떻게든 정리가 될 거다. 둘이 치고박고 싸우든, 아니면 내가 한 명을 선택하든...그건 그때 되면 해결되겠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둘을 어떻게 정신이 멀쩡해지게 하느냐의 문제지. 특히 아다비아. 켈라자야는 그래도 낫지. 자기를 믿어주기만 하면 좋아하니까. 그런데 아다비아는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다. 갑자기 불같이 화내다가 자기가 이러니 버릴 거냐고 하며 엉엉 울지를 않나, 나중에 자기 버리더라도 좋으니 지금만은 좋은 기억들 만들고 싶다고 하면서 갑자기 마구 화를 내지 않나, 대체 뭘 어째야할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공부를 엄청 안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나한테 성질 버럭버럭 내는 것이 아다비아 기준으로 좋은 기억을 만드는 건가?


 그래도 라키사의 그 다양성 타령보다는 낫잖아. 켈라자야도 아다비아도 내 정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건 맞다. 그래도 어떻게 감당이 되기는 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구. 시간이 지나고 내가 방법을 찾아내고 노력하다보면 꾸준히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라도 가져볼 수 있다. 그렇지만 라키사의 저 다양성 타령은 이해가 되지도 않고, 시간이 흐른다고 좋아질 문제 같지도 않다. 라키사의 다양성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가슴 속에서 '그건 아니야!'라는 절규가 울려퍼진다. 게다가 라키사는 거기에 더욱 몰입해가잖아. 방향을 틀려고 해도 틀 수가 없다. 이미 죽은 에르키나를 소환해내면 라키사가 생각을 바꿀 여지가 있으려나? 아닐 거다. 에르키나의 영혼이 나타나 라키사에게 그건 아니라 외쳐대도 라키사는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야. 감비르가 지금까지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해도 라키사는 생각을 절대 안 바꿀 거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저주술. 일곱 가지 꿈. 4원소설. 입자론. 4단계 아그라. 5단계 아그라.


 결국 이것들이 답인가? '이고 샤카샤그'라는 인간이 쓴 그 책의 내용. 4단계 아그라와 5단계 아그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해낼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마딜인들이 말하는 저주술의 비밀인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이 설마 4단계 아그라와 5단계 아그라를 말하는 건가? 그래서 마딜인 저주술사들이 백날 천날 잠을 자도 그 비밀을 못 밝혀냈던 거야? 아닐 거다. 저주술과 마법은 아예 다른 거라고 하잖아. 둘을 합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바하르의 말이 맞겠지. 그것은 바하르 혼자의 생각이 아니라 저주술사들의 연구 끝에 나온 결론일 테니까.


 저주술 수련을 할 생각은 없다. 저주술을 쓸 수 있게 되는 순간 이 나라에서 벗어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지니까. 이 망할 마딜 땅을 어떻게든 탈출할 거다. 이 생각에는 변함이 전혀 없다. 그래서 더더욱 켈라자야, 아다비아와의 관계가 많이 신경쓰인다. 켈라자야는 확실히 저주술사고, 아다비아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저주술과 분명히 관련이 있을 거다. 이 땅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얘네 둘과의 인연도 끊어내야 한다. 나는 마딜 공화국이 정말 싫다구! 만약 케르무크가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혀낸다면 켈라자야와 아다비아와 엮여 있는 저주술을 완벽히 끊어낼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멀쩡해진 켈라자야, 아다비아와 마딜 공화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서 행복하게 사는 거야.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물론 둘이 싸운다면 내 머리가 터지겠지만 지금 이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게 좋잖아!



 라키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키사를 바라보았다. 라키사는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시계를 바라보았다. 벌써 오후 1시네.


 "집에 가게?"

 "응."


 오늘은 이고가 조금 늦네? 켈라자야는 방에서 계속 자나 보다. 오후 1시인데도 이고는 아직까지 서점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켈라자야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늦네.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건 라키사 뿐인 오전. 라키사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가방을 꾸려서 어깨에 걸쳤다. 켈라자야 깨우고 점심 먹어야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느때처럼 라키사, 켈라자야와 점심 먹어야겠다. 특별한 건 없다. 그저 계속 그래왔으니까 그럴 뿐이다.


 "점심 먹고 가."

 "아니야. 괜찮아."

 "뭐 얼마나 걸린다구."

 "너희끼리 먹어."


 라키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오늘 점심에 약속 있어?"

 "아니."

 "그러면 먹고 가."

 "아니야. 너희들끼리 먹어."

 "뭣하러 너 돈 써서 점심 먹어? 그냥 여기 있는 걸로 먹으면 돈 아끼고 좋은데."

 "별로. 나 챙길 시간에 켈라자야, 아다비아 챙겨."


 그래. 마음대로 해라. 점심 안 먹고 돌아가면 너 손해지, 내 손해냐? 점심거리 어차피 이고가 사다놓는 건데. 물론 나는 돈을 가끔 내기는 한다. 하지만 라키사는 돈 안 낸다. 그러니 라키사는 여기에서 점심을 먹고 가는 것이 이득이지. 안 먹으면 자기 손해다. 왜 저런 행동을 보이는지 안다. 나와 켈라자야가 사귄다는 소리를 듣고 저러는 거지. 아니라고 반박은 못 하겠다. 그렇게 되어버린 거니까. 라키사와는 이제 계속 이렇게 지내야될까? 라키사와 잘 되는 건 그냥 끝난 거라고 단념하는 게 나나 라키사나 둘 다 편하겠지?


 라키사가 서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켈라자야와 아다비아의 외침에 차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둘은 분명히 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한테 뭘 바라는 걸까? 내가 걔네들한테 도움이 될 건 하나도 없을텐데. 걔네들 생각이 뭔지 안다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걔네들이 뭔 꿍꿍이로 나한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다. 솔직히 답이 안 보여. 그렇지만 만약 답을 찾아낼 수 있다면...그것이 기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기쁠 거다. 그렇게 되면 두 명과 동시에 사귀는 이 이상한 관계도 알아서 정리되겠지. 내 도움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받아들였다는 건 비겁한 변명이라는 거 안다. 나, 사실 아다비아, 켈라자야 둘 다 싫지 않잖아. 둘 다 내가 감당할 수 있지 않으니까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거지, 라키사만큼은 아니었지만 좋아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솔직히 라키사보다 걔네 둘이 훨씬 낫지. 멀쩡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일단 둘과는 말이 통하잖아. 말이 이상하게 전해지는 일도 없고, 뭔가 큰 벽이 있다는 것도 딱히 느끼지 못했다. 아다비아는 나보다 항상 앞서나가고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켈라자야는 예측 불가한 애라 다가갈 수가 없었던 거지. 라키사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야. 하지만 그 노력이 지금 완전히 잘못 되었잖아. 게다가 무슨 말 한 마디만 해도 오해의 장벽은 말 한 마디를 이루는 단어 갯수만큼 더 높아지구. 이건 그냥 인연이 아닌 거야. 다가갈 수록 더 멀어지는 관계인데 그나마 지금 거리라도 유지하려면 가만히 있는 게 답이지. 그렇다고 라키사가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다양성'을 같이 옹호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켈라자야가 부시시한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머리는 다 헝클어지고 눈은 아직도 잠이 덜 깨었는지 팅팅 부어 있다. 어젯밤 켈라자야는 밖을 돌아다니지 않고 서점에서 나와 이고와 함께 잤다. 그 밤부터 여태까지 계속 자고 이제야 일어났다. 켈라자야가 이렇게 오래 자는 모습은 또 처음 보네. 켈라자야는 물이 가득 담긴 물통과 대야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둘러말고 나와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잘 잤어?"

 "응."


 켈라자야가 다시 방에서 나왔다.


 "점심 먹자."

 "라키사는?"

 "아까 돌아갔어."

 "점심은?"

 "안 먹고 갔어."

 "너는?"

 "너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아..."


 방으로 들어가서 그릇과 곡물가루, 말린 고기, 과일을 들고 나왔다. 켈라자야는 말없이 그릇에 곡물가루를 퍼넣고 물을 부었다. 그동안 나는 육포를 자르고 과일을 깎았다. 평범한 오후. 여느때와 다를 게 없는 이 순간. 시간이 조금 늦어졌고, 라키사가 없다. 그거 말고는 언제나처럼 똑같은 하루야. 이고가 아직도 안 오고 있지만 별 일 없겠지. 켈라자야를 쳐다보았다. 저 갈색 머리카락이 섞인 머리카락.


 "왜? 뭐 있어?"

 "그냥."

 "라키사는 왜 점심 안 먹고 갔어?"

 "글쎄...그냥 우리끼리 먹으래."

 "응..."

 "됐어. 혼자 먹고 싶은 날도 있겠지."


 곡물가루를 갠 물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런 거 신경써서 뭐하냐? 라키사야 스스로 알아서 잘 하겠지.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한 후 계산대 뒤에 앉았다. 켈라자야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았다. 항상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밤새 도시를 배회하지도 않고 딱히 이상한 반응을 보이지도 않구. 켈라자야는 멍하니 계산대만 바라본다. 라키사가 점심 안 먹고 집으로 돌아간 게 마음에 걸리나? 설마 그러겠어. 거기까지 생각할 거 같지 않은데. 라키사가 나를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그냥 나와 켈라자야가 어쨌든 사귀는 사이니까 우리 둘이 밥 먹는 곳에 자기도 있으면 불편해서 집으로 간 거겠지. 아니면 오늘은 정말 혼자 점심 먹고 싶었거나.


 "너 오늘 공부 안 해?"

 "공부?"

 "너 아다비아한테 뭐 배우잖아. 그거 공부 안 해도 돼?"

 "글쎄..."

 "내가 도와줄까?"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아."


 내가 단호한 어조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자 켈라자야가 빙긋 웃었다.


 "너는 궁금한 거 없어?"

 "궁금한 거?"

 "응. 네가 알고 싶은 거."


 왜 없어? 네가 왜, 그리고 어디를 그렇게 한밤중에 쏘다니는지가 궁금하지.


 "너는 한밤중에 왜 돌아다녀?"

 "나? 그냥."


 역시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는다. 이러고 뭐가 궁금한 거 없냐고 물어봐? 어차피 대답도 안 해 줄 거면서. 과거 이야기 물어봐도 대답 안 해 줄 거고, 왜 밤에 돌아다니냐고 물어봐도 대답 안 해 준다. 그거 말고 켈라자야에게 궁금할 게 뭐가 있지? 아다비아와 왜 친하게 지내냐고 물어봐야 하나? 둘이 잘 지내는 것을 봤다. 그래서 별로 궁금하지 않다. 둘이 잘 지내는 건 사실이니까.


 "너는 정말로 궁금한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너 어차피 대답도 안 해 주잖아."

 "너는 이상한 것만 물어보니까 그렇지!"

 "그러면 뭐가 안 이상한 건데?"

 "이상한 것 빼고 전부."


 이상한 게 뭔지나 알려주고 뭘 물어보라고 하든가. 웃음이 나왔다. 켈라자야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때, 내가 이상해져 있을까, 켈라자야가 정상인이 되어 있을까? 반반일 수도 있겠네. 나는 반쯤 이상해져 있고 켈라자야는 반쯤 정상인이 되어 있구. 확 저주술이나 물어봐볼까? 어떻게 하면 저주술을 쓸 수 있는지 말이야. 진짜 저주술을 쓸 줄 알아야만 아다비아와 켈라자야를 도울 수 있을 거 같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절대 방법이 없겠지. 그래도 저주술은 아니야. 그건 내가 쓸 수도 없는 것이고, 해서도 안 되는 거다. 켈라자야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 너한테 궁금한 거 있어."

 "뭐?"

 "너는 왜 아드라스어 못 해? 아드라스인이잖아."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거 뿐이야?"

 "응."

 "진짜?"

 "응. 집에서도 마딜어로 이야기했어. 왜 부모님께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켈라자야가 가볍게 미소지으며 내 두 눈을 응시한다. 내가 거짓말하는 거 같아? 진짜야. 배운 적이 없으니 못 하지. 집에서 부모님께서 아드라스어를 알려주셨다면 나도 내 이 외모처럼 당연히 아드라스어를 능숙히 구사했을 거다. 그랬다면 오히려 이 땅을 떠나려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다. '마딜어만 알고 아드라스어는 모르는 아드라스인'이라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켈라자야는 이해 못 하겠지. 아니, 이 땅에 있는 사람들 중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거다.



 이고가 서점으로 들어왔다. 이고 뒤를 따라 빨갛고 헐렁한 원피스를 걸친 여자가 들어왔다. 루즈카는 아니고 누구지?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 쟤! 전에 한 번 봤었다. 룬 바사르 암살된 날 루즈카와 서점에 왔던 여자. 쟤는 여기 또 뭐하러 왔지? 뭐가 들었는지 연갈색 커다란 가죽 가방은 빵빵했고, 왼팔에는 책 두 권을 끼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우는 얼굴이 아니네. 별 일 없나보다. 쟤 이름이 호즈라였지? 켈라자야도 호즈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호즈라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우리도 호즈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얘는 호즈라야. 키란 연구소가 문 닫아서 여기랑 루즈카 집 왔다갔다 하면서 일할 거야.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룬 바사르님과 에클레 마스라히님의 연구를 계속 진척시켜나가는 거에요!"

 "그래. 뭐 도움될 일이 있을 리는 없겠지만...쟤는 타슈갈이고, 쟤는 켈라자야야. 타슈갈은 여기 점원이고 켈라자야는...그냥 여기서 지내."

 "반가워요. 저는 호즈라에요."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의 연구를 진척? 보나마나 저주술이겠네. 쟤도 저주술사인가? 그러고보니 내 주변에 저주술사가 왜 이렇게 많은 거 같지? 나 때문에 저주술사들이 꼬이는 건 아닐 거다. 루즈카 때문이겠지. 루즈카가 저주술사라 저주술사들이 몰려오는 건데, 루즈카의 애인이 이고니까 그거 때문에 저주술사들이 여기로 오는 것일 거다. 사고만 안 치면 별 상관없지. 와히디야같은 애만 아니면 괜찮다. 와히디야는 여기 올 엄두를 못 내겠지. 블랑쉬블르한테 망신당했지, 이고한테 혼났지, 켈라자야한테도 망신당했지. 여기 오면 진짜 정신력이 대단한 거다. 아닌가? 정신력이 대단해서 저주술사가 된 건가? 그러면 여기 아무렇지 않게 또 올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설마...어지간하면 여기는 재수 옴 붙는 곳이라 생각해서 올 생각을 안 할 거다.


 "탁자라도 하나 들여놔야 하나."


 이고가 서점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 무슨 작업을 할 지 모르겠지만 저 책과 가방을 보아서는 책상이 필요하기는 할 거다. 여기에서 저런 책을 펼치고 뭘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는 계산대밖에 없다. 얼마나 자주 여기 와서 얼마나 오래 있다가 갈 지는 모르겠지만 일하는 사람도 아닌데 계산대에 앉아 있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 내가 비켜주고 싶어도 나는 지금 근무시간이다. 켈라자야는 계산대에서 비키기는 했지만 거기는 이고 자리구.


 "괜찮아요. 저는 그냥 의자에 앉아서 하면 되요."


 호즈라가 빈 의자로 가서 앉았다. 의자는 언제 여섯 개로 늘어났지? 호즈라는 빈 의자 두 개를 합쳐서 그 위에 책을 펼치고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어 올려놓았다. 루즈카 집에서 오래 있기는 아무래도 불편할 거야. 거기는 아다비아가 있으니까. 키란 연구소에서 해도 될 텐데 왜 루즈카 집과 여기를 오가면서 작업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키란 연구소에서 작업하는 게 여기보다 편하지 않아요?"

 "거기 폐쇄되었어."


 켈라자야가 호즈라에게 물어보자 이고가 대신 대답했다.


 "거기서 사람 죽었잖아."

 "누구?"

 "라짐 마이슈프."

 "언제?"

 "그저께."


 호즈라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건 분명히 외국인 짓일 거에요."

 "외국인?"

 "그래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호즈라, 저주술에 열광하는 건 마딜인 뿐이야."


 이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즈라가 고개를 들어 이고를 바라보았다. 이고는 두 눈을 살짝 크게 뜨고 호즈라를 응시했다. 이고의 표정은 분명했다. 뭘 당연한 걸 나한테 묻고 있어? 호즈라는 그런 이고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루즈카님께서 당신을 왜 사랑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사랑은 저주술로 하는 게 아니니까."


 호즈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미소짓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예 관심없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아예 관심없어."

 "거짓말인 거 알아요. 루즈카님이 하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없다면 그건 연인에게 무관심하단 이야기 아니에요?"

 "루즈카를 좋아한다고 걔 일도 좋아해야할 건 없잖아."


 전에도 이고는 비슷한 말을 했었다. 루즈카를 좋아한다고 해서 루즈카의 일까지 좋아해야할 필요가 있냐고. 틀린 말 아니잖아. 인간이 좋은 거지, 그 인간이 하는 것까지 모두 좋아할 필요는 없으니까. 어째서 루즈카가 이고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이고도 이고 나름대로 루즈카에 대해 신경 많이 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매일 아침 일찍 수레 끌고 시장 가서 루즈카에게 필요한 것을 사서 갖다주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러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저는 믿어요. 이고님도 제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거에요."

 "내가 아는 건 도와줄께. 모르는 거야 어쩔 수 없구."

 "어디까지 아는데요?"

 "뭘?"

 "저주술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보다 네가 훨씬 더 많이 알잖아."

 "하지만 저는 저주술사가 아니에요."

 "나도 아니야."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의 연구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호즈라는 자기 입으로 자신이 저주술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 둘의 연구는 저주술과 관련된 연구가 아니었다는 건가? 키란 연구소는 키란의 업적과 일대기를 연구하는 연구소라고 하니 꼭 저주술사만이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거다. 키란이 모든 것을 저주술로 해결했을 리는 없으니까. 그래도 중심이 되는 건 키란의 저주술에 대한 연구여야 할 거 같은데...


 "어떤 연구 하시는 거에요?"

 "키란의 저주술이요."

 "예? 저주술사가 아닌데 어떻게 키란의 저주술을 연구해요?"

 "룬 바사르님과 에클레 마스라히님께서는 답을 알고 계셨을 거에요."


 이건 무슨 소리야? 저주술을 연구하는데 저주술사가 아니다. 헤엄칠 줄 모르는데 헤엄치는 것에 대해 연구하겠다는 소리와 같은 거잖아. 그게 무슨 책과 서류 잡고 머리 싸맨다고 될 일인가? 그렇게 해서 될 일이었다면 여기 있는 저주술 책 읽으면 누구나 저주술을 쓸 수 있게 되게? 그게 가능하다면 라키사는 벌써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진 저주술사가 되었을 거다. 걔는 심심하다고 저주술 책을 읽곤 했으니까. 나도 몇 문장은 아직도 기억한다. 그런 식이라면 나도 저주술을 쓸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서로 말 편하게 해. 셋 다 동갑이잖아."

 "예."


 호즈라가 우리와 동갑이었구나. 키란 연구소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여서 나보다 나이가 많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동갑이었다니! 내 주변에는 잘난 인간들이 많은 걸까, 아니면 내가 못난 걸까? 진짜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지. 물론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며칠이나 책을 붙잡고 읽으려 들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건 내가 못나서가 아닐 거야. 루즈카가 워낙 굉장하니까 루즈카한테 모이는 사람들도 굉장한 사람들인 거겠지. 그런데 아다비아, 라키사는 루즈카 때문에 여기 온 건 아니잖아? 진짜 공부를 하든가 해야겠다. 그래야 아다비아, 켈라자야에게 먼지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테니까.


 "정확히 어떤 연구야? 저주술사도 아닌데 저주술 연구를 하다니..."

 "그게...키란님의 저주술은 정말 독특하거든."

 "응. 굉장했다고 하잖아."

 "그런 규모의 문제가 아니야. 상당히 특이한 점들이 많아."

 "특이한 점?"


 켈라자야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호즈라를 쳐다보고 있다. 얘야 저주술 이야기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지. 저주술사이지만 자기에게 저주술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라고 하니까. 거짓이 아니라 진심으로. 켈라자야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거다. 어쩌면 호즈라를 매우 한심하게 여기고 있을 수도 있지. 호즈라도 치롤라 같은 건가? 저주술에 대한 맹목적 광신 같은 거. 호즈라가 이고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키란님의 저주술은 단순한 저주술이 아니라는 말이 있어."

 "일곱 가지 꿈의 비밀?"

 "아니."


 호즈라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것을 뛰어넘는 거야."

 "뭐? 말도 안 돼!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힌 사람도 없는데."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뛰어넘는 것? 그 전에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이 뭔지나 알았으면 좋겠다.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혀내면 아다비아가 다시 눈을 뜰 수 있을 거야. 켈라자야도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겠지? 아다비아가 눈을 뜨게 되면 아다비아도 켈라자야를 많이 도와줄 테니까. 그런데 그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이 뭐냐구요. 일곱 가지 꿈은 그냥 전설이야. 존재한 적도 없고, 당연히 앞으로도 존재할 리도 없는 것. 나도 거기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지만 알고 있다.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그런데 그걸 뛰어넘어? 일곱 가지 꿈의 비밀 자체가 세상에 엄연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걸 뛰어넘는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구? 그걸 믿으라는 거야?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심해."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히는 것을 뛰어넘어섰다는 건 너무하잖아. 아무리 키란을 신격화하고 싶다 해도 그건 아니다.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풀어낸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그걸 뛰어넘었다는 건 무슨 수로 알아? 키란의 제자라는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조차 일곱 가지 꿈의 비밀에 대해 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무리 키란을 미화하고 싶다 해도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뛰어넘었다고 하는 건 너무 나갔다. 호즈라는 이고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이고는 말없이 호즈라를 바라보며 눈만 껌뻑였다.


 "일곱 가지 꿈을 뛰어넘었다는 주장도 있고, 저주술이 아니라 마법을 썼다는 주장도 있고, 둘을 합치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주장도 있어."


 진짜 가지가지 하는 곳이었네. 저런 걸로 논쟁을 벌이고 있었던 거야? 셋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마법을 썼다고 하는 게 가장 그럴싸해보인다. 그러나 키란이 마법을 썼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다면 마딜인들이 다 뒤집어지겠지. 눈 까뒤집고 또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치롤라와 와히디야는 죽자 살자 덤벼드는 거 아니야? 바하르는 폭도들 막고 진압하느라 죽으려고 하구. 진짜 가관이겠네.


 "셋 다 말이 안 되지 않아?"

 "하지만 분명히 현실에 존재했던 거니까."

 "그래도 그냥 저주술이었을 뿐이잖아."

 "그러니까 연구하지. 이해가 안 되니까."


 호즈라가 생긋 웃어보였다. 켈라자야는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호즈라를 쳐다보고 있다. 입을 가리고 하품까지 한다. 켈라자야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이야기겠지. 그런 무의미한 것을 연구해서 뭐하나 싶을 거다. 저주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겠지. 키란이 보여줬던 기적들. 그 누구도 그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 보여주지 못했던 저주술이랬다. 나는 왠지 아다비아 말대로 그게 과장된 거라 믿는다.


 "너는 뭐가 정답인 거 같아?"

 "나?"


 호즈라가 계속 밝은 표정을 유지하며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로 궁금하다. 호즈라는 키란의 저주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일곱 가지 꿈을 뛰어넘었다고 믿어. 너는?"

 "나?"


 셋 다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사람들이 부풀리고 없는 이야기를 많이 지어내서 그렇게 된 거 같다. 물론 키란이 에드자를 날려버린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무슨 놈의 전설이 그렇게 여기저기 다 퍼져 있어? 기적도 한둘이어야 믿든가 말든가 하지. 이건 뭐 가는 곳마다 기적을 일으킨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랬다면 마딜 인민 해방전선이 그렇게 고전했을까? 남아드라스군과 셀베티아군이 참전하기 전까지 쇼하이 고개에 처박혀 있었을까? 키란 혼자 다 때려잡고 무찔러서 마딜인들을 해방시켰겠지.


 "셋 다 맞는 거 같아."

 "진짜? 그런다면 정말 너무 굉장할 거 같아!"

 "아마도...그런데 연구소 사람들은 뭘 제일 많이 믿어?"


 호즈라는 다시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룬 바사르님과 에클레 마스라히님께서는 일곱 가지 꿈을 뛰어넘었다고 주장하셨어. 라짐 마이슈프님께서는 마법을 쓴 거라 주장하셨구. 그리고 나즈 레님께서는 둘을 합치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주장하셨어."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 라짐 마이슈프는 살해당했다. 그러면 소거법에 의해 정답은 나즈 레가 주장한 둘을 합치는 방법인가?


 "서로 매우 격하게 다투었어?"


 켈라자야가 침묵을 깨고 질문을 던졌다. 호즈라가 켈라자야를 쳐다보았다. 켈라자야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어서 계속 뚱한 표정 지으며 아무 말 없이 있다가 갑자기 질문을 던지는 거야? 뭔가 촉이 왔나?


 "토론이 격할 때도 있었어."

 "그러면 서로 죽인 거 아니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절대 그럴 분들이 아니야!"


 호즈라가 소리쳤다. 켈라자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즈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호즈라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자기가 일하던 곳에서 세 명이나 죽었으니 충격이 크겠지. 그때 이고가 켈라자야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켈라자야가 이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고가 작은 소리로 나와 켈라자야에게 속삭였다.


 "말 조심해. 쟤가 그 셋 살해 현장 가장 먼저 발견했단 말이야."


 아...진짜 충격이 어마어마했겠다. 그 세 명에 대한 이야기는 호즈라 앞에서 어지간하면 하지 말아야겠다. 사실 그 셋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 호즈라와 그들에 관해 이야기할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켈라자야가 말없이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얘는 갑자기 왜 옆구리는 찌르는 거야? 켈라자야를 바라보았다. 켈라자야는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래, 얘가 문제야. 나야 호즈라한테 룬 바사르, 에클레 마스라히, 라짐 마이슈프와 관련된 이야기를 안 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얘는 그런 노력을 할 리가 없잖아. 오히려 막 어떻게 죽어 있었냐고 물어보는 거 아니야?


 "나는 네가 이해 안 돼."

 "응? 나?"


 켈라자야가 호즈라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호즈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켈라자야를 쳐다보았다. 황당할 거다. 계속 아무 말 없다가 호즈라를 향해 한 말이 이해 안 된다는 말이니까. 켈라자야가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이야기해는지는 짐작이 간다. 켈라자야는 저주술을 귀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 저주술을 저주술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연구하겠다고 하니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겠지.


 "그래. 너."

 "어째서? 왜 그렇게 생각해?"


 호즈라가 켈라자야에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화가 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켈라자야가 어떤 애인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분명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례하게 군다고 노발대발할 테지. 호즈라는 지금 당황해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왜 그렇게 말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아서 저러고 있는 걸까? 켈라자야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딴 건 무가치해."

 "왜? 저주술이 어째서 무가치하다는 거야?"

 "가치없는 거니까. 그딴 건 없어져버려도 상관없어."


 켈라자야의 말에 호즈라는 입을 굳게 다물고 켈라자야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얘네들도 또 엄청 싸우겠네. 그래도 둘은 입으로만 싸우겠지? 호즈라는 저주술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으니 별 일 없을 거다. 설마 둘이 머리 끄댕이 잡고 할퀴고 난리 부리겠어. 호즈라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정말 기분 많이 나쁘겠지. 이 장면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너는 저주술에 대해 얼마나 아니? 저주술 쓸 줄 알아?"

 "응. 알아."

 "뭐?"

 "그래, 나 저주술 쓸 줄 알아. 그게 뭐 특별해?"


 흥분한 호즈라. 너무나 덤덤한 켈라자야. 호즈라는 나와 이고를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켈라자야를 가리켰다.


 "맞아. 걔 저주술 쓸 줄 알아."


 이고의 말에 호즈라는 고개를 켈라자를 향해 홱 돌리더니 아무 말 못하고 두 눈만 껌뻑였다. 켈라자야는 가볍게 숨을 내뱉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켈라자야는 저주술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아예 이해하지 못해. 켈라자야가 정확히 몇 살 때부터 저주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아마 상당히 어렸을 때부터 저주술을 쓸 줄 알았을 거다. 그러니 저주술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심정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지.


 "나 진짜 하나만 물어봐도 돼?"

 "뭐?"

 "너는 저주술 쓸 수 있잖아. 그런데 왜 그걸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무의미하니까. 의미없어. 가치도 없어. 그냥 쓸 줄 아는 거야. 그게 그렇게 좋은 거야? 왜 사람들은 저주술에 열광하는 거야? 진짜 쓰레기만도 못한 건데, 대체 왜?"


 호즈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켈라자야를 향해 걸어간다. 켈라자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이고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둘이 진짜 싸우지는 않겠지? 만약 호즈라가 덤벼든다면 무조건 켈라자야를 막아야 한다. 켈라자야는 싸움 걸어오면 절대 적당히 한다는 걸 모르니까. 켈라자야 머리 속에는 누가 싸움을 걸어오면 무조건 죽인다는 생각 뿐이다. 아무리 그게 아니라 해도 그것만큼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진짜 만일 둘이 한 판 붙으려 한다면 켈라자야를 잡아끌고 방에 집어넣어야 한다. 호즈라가 켈라자야 앞에 섰다.


 "나는 네가 부러워."

 "왜? 저주술 때문에?"

 "맞아. 나는 노력해도 저주술사가 될 수 없었어.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괜찮아. 어쨌든 너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갖고 있잖아. 그래서 부러워."


 호즈라가 켈라자야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나 너한테 부탁 하나만 해도 돼?"


 긍정도 부정도 없는 무의 상태. 켈라자야는 무의 상태에 빠져 호즈라를 말없이 가만히 쳐다본다. 호즈라는 켈라자야에게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침묵이 시계 바늘을 타고 흘러간다. 호즈라 입에서 개같은 소리는 안 나오겠지. 설마 여기에서 갑자기 '죽어버려'라고 외치겠어. 호즈라가 그 정도로 미쳤다면 이고도 이렇게 가만히 서 있지는 않았을 거다. 루즈카를 통해 호즈라가 어떤 애인지 들어본 적이 몇 번 있을 테니까.


 "내 연구를 도와줄 수 있어? 나는 저주술을 몰라. 그래서 한계가 있어. 저주술을 알아야만 풀 수 있는 부분은 네가 도와줄 수 있어?"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네가 원하니까."

 "고마워. 네가 어찌 생각하든 네 저주술은 정말 굉장한 거야. 나한테는 말이야."


 켈라자야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호즈라도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잘 되었네. 호즈라가 앞으로 켈라자야에게 어떤 도움을 요청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상한 것을 도와달라고 하지는 않겠지. 설마 누구를 죽여달라고 하지는 않을 거 아니야. 둘이 미소지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니 둘이 여기에서 싸울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호즈라는 서점 문을 닫을 때까지 서류들과 책을 보며 서점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켈라자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없었다. 그냥 혼자 조용히 머리도 긁적이고 인상도 쓰고 한숨도 푹 쉬고 하면서 그것들과 씨름할 뿐이었다. 저주술을 쓸 줄 모르는데 저주술 연구라...뭔가 웃기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는 모습이 멋있어보였다. 나라면 한다고 될 것이 아니라고 바로 집어던졌을텐데. 켈라자야는 오늘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타슈갈, 너 내일 오전에 책 수거 하나 다녀와라."

 "책 수거? 책 빌려간 사람 있었어?

 "블랑쉬블르 집에 좀 다녀와. 그리고 왜 빌려가는 사람이 없어? 너 없을 때 빌려가니까 모르는 거지."


 이고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내가 모르는 동안 이 서점에서 책을 빌려가는 사람이 있기는 했구나. 그게 하필 블랑쉬블르라니...루즈카가 아다비아 때문에 집에 묶여 있지 않았다면 분명히 이고가 갔겠지. 블랑쉬블르 책 수거는 항상 이고가 갔다 왔으니까. 아침에 느긋하게 잠 좀 많이 자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은 결국 아다비아를 위한 일이니까. 아다비아가 루즈카 집에 없다면 이고가 루즈카 집에 매일 아침에 가야 할 이유도 없잖아.


 "내일 오전 언제쯤 가면 돼?"

 "나 나갈 때부터 언제든 다녀와. 걔 아침 일찍 일어나니까 오전 중 아무 때나 다녀와도 돼."

 "알았어. 아다비아와 루즈카는 어때?"

 "뭐 항상 똑같지. 그래도 미세하게 좋아지고 있으니까...언젠가는 다 좋아지지 않을까?"

 "그런다고 아다비아가 눈을 다시 뜰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거야 모르지. 혹시 알아? 자기가 눈 뜨겠다고 마음먹고 무슨 깨달음을 얻어서 눈 뜰지도."

 "말도 안 돼."

 "그거라도 믿어야지, 뭐 어떻게 해."


 그거라도 믿어야지. 아다비아가 많이 좋아지고 스스로 눈을 뜨고 싶다고 마음을 먹는 거야. 간절히 원해서, 이 세상을 다 뒤엎어버릴 정도로 간절히 원해서 기적이 일어나 아다비아가 눈을 뜬다. 얼굴도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오구. 이게 가능한 소리야? 아다비아가 일곱 가지 꿈을 깨우치고 스스로를 치료해? 이런 가능성이 단 1도 없는 소리에 희망을 걸어야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봐도 너무 어이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병신 같은 짓이지만 어쩌겠어. 이거 외엔 답도 없는데.



 이고가 흔들어 깨웠다. 아침이구나. 오늘 오전에 블랑쉬블르 집으로 책 수거하러 가야 하지?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떠서 화장실로 갔다.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왕 씻는 거 몸도 씻을까? 이따 블랑쉬블르 집 갔다 왔다가 물 길어오면 되니까. 물을 다시 잔뜩 떠서 화장실로 갔다.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고 비누칠을 한 후 물에 적신 수건으로 비눗기를 닦아내었다. 조만간 강가를 가든 목욕탕을 가든 우물가에서 몰래 씻든 시원하게 몸을 씻기 위해 어디든 한 번 다녀와야겠어. 거의 매일 이렇게 몸을 씻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시원하게 물을 끼얹는 것이 기분 좋으니까.


 몸을 씻고 간단히 방을 정리했다. 켈라자야가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켈라자야가 활짝 웃으며 나를 껴안았다. 얘는 아침부터 또 왜 이래? 그래도 기분 좋아하고 있으니까 잘 되었다. 화내고 울고 하는 것보다는 이러는 게 낫잖아. 켈라자야가 나한테 안기다니 솔직히 어리둥절하다. 그래, 어쨌든 지금은 얘의 애인이잖아. 나도 얘를 안아줘야 하나? 아니면 그냥 이렇게 가만히 서 있어야 하나?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야, 둘이 적당히 해라."


 이고가 서점에서 나가며 말했다. 켈라자야는 나를 놔주지 않는다. 밤에 무슨 좋은 일이 있었길래 이래? 그래도 이렇게 여자가 내 품에 달려와 안기는 일이 내 인생에서 벌어지다니! 솔직히 기분 매우 좋다. 나를 죽이려고 매달리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좋아서 매달리는 건데. 라키사가 들어왔다. 그래, 네 오해가 맞았어. 그렇게 생각해. 이제 나도 모르겠다. 너하고 신경전 벌이는 것보다 이렇게 켈라자야와 있는 것이 더 기분 좋으니까. 너는 나를 안 믿어. 얘는 나를 믿어. 켈라자야 말 대로야. 믿어줘야 좋아하든 말든 하지, 믿어주지도 않는 사람을 좋아해봐야 뭐해.


 켈라자야가 나를 놔주고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라키사만 있는 공간. 조금전의 좋았던 기분은 어디 가고 서먹하고 어색한 공기만 천천히, 그리고 묵직하게 흘러간다. 라키사는 말없이 계산대 뒤로 가서 앉았다. 나도 계산대로 갔다. 가고 싶지 않지만 계산대 위에 지금 챙겨야 하는 대출 카드가 있으니까. 이걸 들고 나가야 블랑쉬블르 집으로 가서 책을 반납받아 돌아오지. 대출 카드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제 별 일 없었어?"

 "응."

 "다행이네."

 "진작에 너희 서로 그렇게 좋아하는 사이라고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라키사의 미소. 애써 지어보이는 게 티나서 매우 어색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켈라자야를 싫어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도 너를 좋아한다구! 아직도 내가 왜 이렇게 켈라자야, 아다비아와 동시에 사귀게 된 상황이 되었는지 이해도 안 되고 적응도 안 된다. 적응이 될 수가 없지. 둘과 각각 사귄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둘을 동시에 사귀게 되어버렸다. 내가 원했던 것도 상상했던 것도 아닌데. 될 대로 되라지. 무슨 말을 해도 너는 안 들을 거잖아. 아니, 내가 너한테 할 말 자체가 없다. 너 하나를 위해 켈라자야와 아다비아 둘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으니까. 너는 어차피 내 말을 안 들을 거구. 나도 어떻게든 둘에게서 해방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둘한테 잘 해서 정상으로 돌려놓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니 딱히 할 말이 없다. 너무 늦어버렸어.


 "나 나갔다 올께."

 "어디 가?"

 "블랑쉬블르 집에. 책 수거 다녀와야 해서."

 "알았어."


 라키사와는 이제 딱히 나눌 말도 없다. 길거리로 나왔다. 물을 길어다 놓고 갔다 올까? 아니야, 그건 그냥 이따 하자. 지금 켈라자야 방에서 자고 있는데 그냥 놔둬야지. 거리 공기가 상쾌하다.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블랑쉬블르는 여기에서 멀리 사는 것도 아니면서 왜 꼭 책을 연체하는 거야? 예전 여기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의문이다. 돈이 많으니 그러나보지. 자기가 들고 서점 오기 귀찮고 돈은 많으니 알아서 가져가라는 소리잖아.



 "안녕하세요."

 "차라클라야! 안녕하세요!"


 약간 누르스름한 빛이 도는 하얀 피부에 새까맣고 긴 곱슬머리. 그리고 반짝이는 눈. 차라클라야다. 차라클라야는 낮에도 밤에도 빛나는 것 같다.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이 밝은 표정을 보이고 열심히 살 수 있을까? 많이 만나본 건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위험한 한밤중에도, 무슨 일이 터질 지 모르는 룬 바사르의 장례식 때도 차라클라야는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 내 주변에 저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누구 있을까?


 "이른 아침부터 어디 가세요?"

 "저는 일 때문에 잠깐 나왔어요."

 "일이요?"

 "책 수거하러 가거든요. 차라클라야는 어디 가요?"

 "저도 일하러 가요."

 "오늘은 어디에서 일해요?"

 "에드자 대학교 정문 근처 식당이요. 저 항상 거기에서 일해요."


 정문 근처 식당? 거기 식당 몇 개 있는데 어디지? 정문 근처 식당은 가본 적이 별로 없다. 맨날 교수한테 혼나러 가던 학교였기 때문에 수업 끝나면 학교에서 도망치기 바빴다. 그 근처에서 얼쩡거리다 교수 눈에 띄면 또 혼날 거 같으니까. 정문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곤 했으면 차라클라야를 보다 일찍 만날 수 있었을까? 설마 그러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거기 지금 장사 되기는 할까? 학교 실상 폐교되었는데.


 "차라클라야는 정말 부지런한 거 같아요. 안 힘들어요?"

 "즐거워요. 제 꿈이 빨리 더 가까워지니까요."

 "꼭 꿈 쟁취하기 바래요!"

 "고마워요. 타슈갈도 꼭 원하는 거 움켜쥐기 바래요!"


 차라클라야와 헤어져 다시 걷는다. 날이 참 좋다. 그냥 걷기만 해도 기분이 마구 좋아질 것 같은 햇볕이다. 간간이 들리는 새가 짹짹 지저귀는 소리. 그 새가 지저귀는 소리보다 살짝 조금 간간이 들리는 사람들이 웃는 소리.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 이 아침과 너무나 잘 어울리고 가장 빛나는 차라클라야. 이 아침에 가장 빛나는 존재는 차라클라야구나. 아다비아와 켈라자야도 이 아침에 잘 어울린다면 참 좋을텐데...걔네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이 아침과는 전혀 안 어울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둘 다 시커멓게 어두운 애들인데. 언젠가는 둘 다 이 아침에 어울리게 바뀌겠지.



 블랑쉬블르 집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블랑쉬블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꺼멓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집 안에서 독한 장미향이 살살 밖으로 기어나온다. 블랑쉬블르 뒤로 집 내부가 보였다. 이건 확실히 미친 거 아닌가? 블랑쉬블르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하다. 벽이 모두 새까맣다. 저건 일부러 시꺼멓게 칠해놓은 거다. 집 내부를 하얗게 칠해도 모자랄 판에 바닥이고 벽이고 새까맣게 칠을 해놨다. 책장과 탁자, 의자조차 시꺼멓게 칠해놓았다.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시꺼매보인다. 책장과 탁자 위에 있는 책, 탁자 위에 있는 비어 있는 투명한 꽃병과 서류들만 검은색이 아닌 것 같다.


 "네가 이 아침에 어쩐 일이야? 이 누나 보고 싶어서 왔어?"

 "아니요. 책 반납 때문에 왔어요."

 "아, 책! 연체 그거 꽤 되었을텐데. 잠깐 들어올래? 차 한 잔 마시고 가."


 저 집 안으로는 왠지 들어가면 안 될 거 같다. 온통 시꺼먼 공간. 독한 장미향과 시꺼먼 공간이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외친다. 그런 거 있잖아. 독버섯이 먹을 수 있는 버섯보다 생긴 게 강렬하지. 이건 먹으면 죽는다고 마구 외치는 독버섯 같은 느낌이다. 건들면 인생 아작날 것 같은 그런 본능적인 직감. 하지만 안 들어가자니 또 그렇다. 밖에서는 엄청 화려하고 예쁘게 옷도 잘 입고 다니면서 집은 왜 이 따위야?


 "어서 들어와. 너한테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구."


 블랑쉬블르가 집 안으로 잡아끌어당겼다. 이건 암흑으로 끌려들어가는 거야. 하지만 집안이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다고 차마 말할 수도 없다.


 "안이 시꺼먼 것이 신경쓰여서 그래?"

 "아...뭐 꼭 그런 건 아닌데요."

 "검게 칠하면 더러운 거 잘 안 보이잖아. 청소 자주 안 해도 돼."

 "진짜요?"

 "나는 세상에서 청소가 제일 싫어. 그런 건 맨날 해도 티도 안 나잖아. 그래서 아예 다 새까맣게 칠해버렸어."


 블랑쉬블르를 믿어야하나? 세상에 청소하기 싫어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죄다 시꺼멓게 칠해놓을 수가 있어? 청소를 안 하기 위해 검은색으로 싹 다 발라버렸다고 하지만 왠지 서점 안에 있는 방보다 훨씬 깨끗해보인다. 사실 서점 안에 있는 방 청소는 진짜 어쩌다 한 번 하니까 거기보다 더 더럽기도 어렵겠지. 나도 이고도 켈라자야도 방 청소는 잘 하지 않으니까. 의자에 앉았다. 블랑쉬블르는 탁자 위에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고 몇 뭉텅이씩 쌓여 있는 서류를 대충 치운 후 부엌으로 갔다. 여기도 책이 참 많네. 책이 이렇게 많으면서 별 거 없는 서점에서 무슨 책을 빌리는 거야? 어쨌든 이렇게 잘 살고 집에 책도 많은 것으로 보아 공부 매우 잘 했겠지?


 블랑쉬블르가 컵 두 개를 올려놓은 쟁반을 들고 탁자로 왔다.


 "자, 한 잔 마셔."

 "이거 뭐에요?"

 "이상한 거 아니야. 그냥 차야."


 누르스름한 흙빛 비슷한 색의 투명한 액체. 물에서 구수한 냄새가 난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을 삼키고 나자 혀뿌리에서 혀 앞으로 달콤한 맛이 흘러나온다. 이거 냄새와 맛이 꽤 다른데? 전혀 안 달게 생긴 냄새인데 끝맛이 매우 달콤하다. 향은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향이 있어도 느껴질 리가 없지. 집안에 독한 장미향이 아주 진동하고 있는데. 차가 신기해서 한 모금 다시 홀짝였다. 역시나 한 모금 삼키니 혀뿌리에서 혀 앞으로 달콤한 맛이 살살 퍼져나온다.


 "차 괜찮아?"

 "이거 신기해요."


 블랑쉬블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내가 차 홀짝이는 게 신기한가? 나한테는 이 차가 진짜 신기하다. 블랑쉬블르도 차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차 한 잔 마시고 가는 거야 별 거 없겠지. 설마 블랑쉬블르가 여기에 이상한 것을 탔겠어.


 "타슈갈, 너 켈라자야랑 사귀지?"

 "예?"

 "켈라자야랑 사귀는 거 맞지?"

 "아...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정말 좋겠다! 켈라자야에 아다비아에...둘 다 엄청 뛰어나고 예쁘잖아! 너 정말 전생에 나라 두 개 구한 거 아니야?"

 "무슨 나라를 구해요? 둘 다 생각만 하면 심란한데요."

 "네가 진심으로 많이 아껴주면 둘 다 좋아지지 않을까?"

 "뭐 지금보다야 나아지겠죠."


 블랑쉬블르가 주먹으로 가볍게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건 자기가 얼마나 복 받았는 줄도 모르네."

 "뭐가 복 받은 거에요? 진짜 심란하다니까요."

 "걔네가 뭐 평생 지금 같은 상태겠어? 계속 좋아지겠지."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네요."


 내 말에 블랑쉬블르는 입을 다물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고 느끼겠지. 하나는 정신이 나갔고, 하나는 눈이 안 보여. 그래, 내가 둘을 많이 아껴주고 위해주면 조금은 좋아지겠지.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많이 변할 거 같지는 않다. 켈라자야야 어떻게 생각을 바꿀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아다비아의 눈은? 만약 집 안에 아다비아와 켈라자야 둘만 놔두면 진짜 안심이 될까? 영원히 안심이 안 될 거 같은데...


 블랑쉬블르가 말이 없다. 묵묵히 탁자 위 서류만 쳐다본다. 서류 내용을 같이 쳐다보았다. 아드라스어로 적혀 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매우 갈겨쓴 것 같지만 글자를 하나하나 읽어볼 수는 있다. 이고보다는 글씨를 훨씬 똑바로 예쁘게 잘 쓰네. 이고가 써놓은 것은 예쁘게 썼다고 하는 것조차 하도 갈겨써놔서 읽을 때마다 미간을 찡그려야만 하지. 블랑쉬블르가 아무 말 하지 않으니 불안하네. 이럴 때면 고약한 농담을 건네곤 했는데...내 말이 틀린 소리는 아니니 할 말이 없긴 할 거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블랑쉬블르라면 이 타이밍에서 이렇게 아무 말 없을 리가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자기 스스로 생각해봐도 아다비아와 켈라자야는 더 좋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건가?


 서류에서 알아볼 수 있는 단어가 몇 개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실험'이라는 단어. 그리고 '인간', '정신', '교육'이라는 단어. 쉽게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지만 저것들은 보니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상당히 많이 본 단어들이니까. 조금 더 자세히 읽어보고 싶다. 약간 흥미가 생겼다. 블랑쉬블르가 남아드라스 공화국에서 뭘 하다가 여기로 넘어왔는지 잘 모른다. 지금까지 그것을 물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집에서 느껴지는 독한 장미 향기가 이고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고 내 코에 대고 소리친다. 그러고보니 전에 와히디야를 아주 잘 제압했었지? 그렇게 제압할 줄은 몰랐지만 와히디야를 제압했다는 거 자체가 대단한 거 아닐까? 싸움 좀 해본 거 같기도 하구. 실험, 인간, 정신, 교육...다른 글자도 보기 위해 눈을 찌푸렸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아...아니에요."

 "이거? 이거 별 거 아니야. 그냥 소설이나 하나 써볼까 해서."

 "어떤 소설이요?"

 "글쎄? 정신을 오염시키려는 자들과 맞서 싸우는 영웅들?"

 "그런 건 흔하잖아요."

 "흔해도 재미있게 쓰면 되지."


 블랑쉬블르는 자기 앞에 있던 서류를 뒤집어 옆으로 치웠다.


 "이 소설 완성되면 너한테 보여줘?"

 "예. 왠지 평범하지는 않은 것이 나올 거 같아요."

 "그렇지? 블랑쉬블르가 쓰는데 평범한 것이 나올 리 없잖아. 엄청 대단한 것이 나와야지!"

 "예. 아마 그럴 거에요."


 블랑쉬블르가 활짝 웃는 표정을 지었다. 예, 당연하시겠죠. 당신 정신도 멀쩡하지는 않은데 평범한 걸 쓰고 싶어도 쓸 수 없겠죠. 당신이 평범한 걸 쓰면 그건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일 거에요. 어떤 이야기를 쓸 지 많이 궁금하기는 하다. 정신을 오염시키려는 자들과 맞서 싸우는 영웅들이라...영웅들이 악당의 정강이를 걷어찰 건가? 와히디야한테 했던 것처럼? 진짜 그때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단 말이야. 너무 인상이 강렬했다. 소설에서 영웅이 악당을 그렇게 제압한다고 진짜 쓰지 않을까? 뒤집힌 종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블랑쉬블르가 다시 한 번 숨을 천천히, 그리고 깊이 들이마셨다.


 "타슈갈."

 "예?"


 블랑쉬블르를 쳐다보았다. 블랑쉬블르는 내 두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 켈라자야랑 사귀어보니 어때?"

 "예?"

 "너 켈라자야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여자한테 고백받아 사귀니 어때?"

 "아...얼떨떨해요. 아직도...심란하기도 하구요."

 "왜?"


 켈라자야가 정상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한테 좋다고 할 때마다 기분이 좋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건 그 순간 뿐. 켈라자야가 어디로 어떻게 튈 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단지 나한테 감정의 변화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면 감당할 수 있어. 하지만 얘는 그게 아니잖아. 얘는 말로만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애가 아니야. 진짜로 죽여버리려 든다구. 진짜로 치롤라를 죽여버리려 했단 말이야. 켈라자야는 밤마다 거리를 배회하는데 그때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홱 돌아가 초대형 사고를 치고 사살당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켈라자야다. 요즘 조용한 켈라자야를 볼 때마다 안심이 되는 한편 계속 마음 한 켠에서 불안함도 커져만 가. 이게 초대형 폭발을 하려고 분노를 꾹꾹 쌓아놓고 있는 거 아닌가 해서.


 "그냥요. 뭐...아무래도 큰 사고치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 켈라자야가 이상한 행동한 적 있어?"

 "글쎄요? 밤마다 거리를 돌아다니기는 하는데 뭘 하며 돌아다니는지는 모르겠어요."

 "너한테 밤에 뭐 하는지 이야기 안 해?"

 "예. 안 말해줘요. 그냥 돌아다니기만 한대요."


 블랑쉬블르는 내 대답을 듣더니 눈을 살짝 찡그렸다. 진짜다. 켈라자야와 사귀는 것이 걱정과 불안이 대부분인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얘가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아. 문제는 얘에 대해 아는 게 진짜 없다는 거다. 켈라자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했는지 궁금하다. 켈라자야가 밤에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켈라자야가 어떻게 저주술을 쓸 수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배웠는지 알고 싶다. 켈라자야가 지금까지 내 앞에서 보여준 모습들을 보면 절대 좋은 과정을 통해 습득한 건 아닐 거다. 분명히 아주 나쁜 기억이 담긴 과거일텐데 말을 절대 해주지 않는다. 떠올리기조차 싫어서 말을 안 해주는 건지, 아니면 내게 절대 숨기고 싶어서 말을 안 해주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에 켈라자야에 대한 불안감의 근원이 있는 건 분명하다. 나도 알고 싶다구. 그런데 자기가 말을 해줘야 알지. 이고는 뭔가 조금 알고 있으려나?


 "켈라자야 행동 뭐 이상한 거 없어?"

 "걔요? 걔야 뭐...그냥 다 이상하죠."

 "예를 들면 어떤 거?"


 블랑쉬블르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계속 바라본다. 이런 건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켈라자야한테 직접 물어봐도 되잖아? 켈라자야와 서먹한 사이도 아니고 많이 친한 것 같더만. 켈라자야가 가끔은 블랑쉬블르 집으로 놀러간다고도 했으니까. 켈라자야 이상한 행동이 어디 한둘이야? 지금이야 많이 좋아졌지만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어마어마했지. 멀쩡히 스푼과 포크가 있어도 맨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어대지를 않나...그냥 혼자 짐승처럼 살다 온 것 같았다. '왜 이런 것도 모르지?' 싶었다. 이게 일부러 그러는 건가, 진짜 미쳐서 그러는 건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으니까.


 "글쎄요? 걔는 뭐 다 특이하니까요."

 "타슈갈,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어?"

 "예?"

 "그러니까 아주 구체적인 거. 어떤 거에 대해 거친 반응을 보인다든가 하는 거 있잖아."

 "아...걔는 자기를 믿어주는지를 꼭 확인하려 들어요."

 "그래?"


 블랑쉬블르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지금까지 몰랐어? 켈라자야가 항상 그거 확인하잖아. 맨날 자기 믿어주냐고 물어보고 믿어준다고 하면 갑자기 모든 걸 줄 것처럼 행동하는데. 물론 아무리 진심으로 켈라자야를 믿어줘도 켈라자야가 자기 과거는 안 말해주더라. 켈라자야가 블랑쉬블르를 좋게 생각하는 이유도 블랑쉬블르가 자기를 믿어준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니었어? 당연히 알고 있는 걸 왜 이렇게 놀라는 시늉하는 거야?


 "예. 그건 블랑쉬블르도 알잖아요."

 "아니야. 나 지금까지 몰랐어."

 "켈라자야가 블랑쉬블르한테 자기 믿냐고 자꾸 확인하려 들지 않아요?"

 "응. 나한테는 딱히 그러지 않던데?"

 "그럼 나한테만 그런 거였나..."

 "아마 그럴꺼야. 또 다른 거 없어?"

 "또 다른 거요?"

 "응."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물어보시니까..."


 블랑쉬블르는 잠시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뭐 뻔한 걸 듣고 놀라는 척 하고 있어. 내 대답이 너무 시시해서 실망했나? 내가 뭔가 켈라자야의 굉장한 비밀을 알고 있을 줄 알았나. 지금 내가 왜 켈라자야와 아다비아 - 이 둘과 동시에 사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둘 사이에 어떤 말이 지금껏 오갔기 때문에 걔네가 그런 결정을 내리고 나한테 일방통보를 했는지 알고 싶다. 둘 다 나를 좋아하면 진작에 좋아한다고 하든가! 이게 기뻐해야할 일인지 도망쳐야할 일인지조차 분간이 안 간다.


 "너 와히디야랑도 친하지?"

 "와히디야요?"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진짜 그건 켈라자야보다 더한 애지. 켈라자야가 그냥 미쳤다면 와히디야는 제대로 두 배는 더 미쳤다. 그렇게 미쳐도 단단히 미쳤으니 당신, 블랑쉬블르한테 처맞고 켈라자야한테 시비걸다 이고한테도 책으로 팔 맞았다. 와히디야는 조만간 루즈카한테도 제대로 두들겨맞지 않을까? 전에 치롤라 죽이려고 하던 켈라자야 제압하던 루즈카 모습 떠올려보면 와히디야가 자기한테 덤벼들면 블랑쉬블르 못지 않게 제대로 혼낼 거 같던데. 와히디야는 뭐 오만 잡것이 다 쓰레기고 다 시비를 걸어야하는 대상으로 보이는 거 같다. 특히 켈라자야한테.


 "걔랑 안 친해요."

 "그래? 너랑 잘 아는 사이 아니야?"

 "아니요. 절대로요!"


 와히디야와 내가 친하다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와히디야와는 절대 친하지 않다. 나는 와히디야를 눈꼽만큼도 좋아하지 않고, 그건 와히디야도 마찬가지일 거다. 나를 쓰레기 보듯 하는 인간과 어떻게 친하게 지내? 그게 장난으로 내뱉는 소리라 해도 상당히 기분나쁜 소리인데 걔는 그게 진심이다. 걔가 왜 우리 서점에 자꾸 찾아오는지 자체가 의문이다. 무슨 쓰레기가 바람에 휘날려 여기저기 흩어지지 않았나 확인하러 오는 거 아냐? 걔 말을 들어보면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애를 어떻게 좋아해? 게다가 맨날 켈라자야한테 시비나 걸어대잖아! 켈라자야한테 시비를 걸어댈 때마다 화난다. 켈라자야가 어떤 극단적인 행동을 할 지 몰라서 켈라자야에게 참으라고 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게 켈라자야가 참아야할 상황인가? 와히디야가 남자였다면 주둥이에 주먹을 꽂아넣었을 거다.


 "와히디야는 뭔가 이상한 거 없어?"

 "그거 완전 미친년이에요!"

 "응? 왜?"


 와히디야를 그때 한 번 봐서 나한테 물어보는 건가? 자기도 어이없어서 귀 잡아들고 정강이 차고 발을 구두굽으로 콱 밟아버렸으면서. 그걸 그때 한 번 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천만에. 많이 만난 건 아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그렇게 행동한다. 더 열받는 건 그걸 너무나 당당하고 거리낌없이 한다는 거지. 마치 자기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진심으로 와히디야는 루즈카한테 한 번 제대로 혼나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정신을 조금 차리지 않을까 싶으니까. 자기 저주술에 자신이 있나본데 루즈카한테 진짜 교육을 받으면 정신 번쩍 차리겠지. 루즈카 애인이 아드라스인인 이고니까 와히디야 말이 루즈카 귀에 곱게 들리지는 않을 거구.


 "걔는 뭔 맨날 순수니 어쩌니 하면서 아닌 건 다 쓰레기래요. 그때 봤잖아요."

 "아, 그때? 그때 나한테 장난 너무 심하게 치는 거 아닌가 하고 그런 건데..."

 "그게 아니라 걔는 그게 일상적인 모습이에요!"

 "항상 그래?"

 "걔랑 만나면 항상 그래요."

 "그래? 재미있는 아이네."

 "게다가 켈라자야한테는 시비를 못 걸어서 안달이에요."

 "켈라자야한테?"

 "예!"

 "어떻게?"


 블랑쉬블르는 자세를 고쳐잡고 허리를 똑바로 세워 앉았다. 켈라자야 이야기 때문에 저러는 거야, 와히디야 이야기 때문에 저러는 거야? 켈라자야가 블랑쉬블르한테 찾아와서 와히디야가 자기한테 맨날 시비건다는 소리는 안 했겠지. 그런 이야기를 여기저기 흘리며 다니는 애는 절대 아니니까. 나도 그걸 직접 봐서 아는 거다. 둘이 거리에서 일대일로 만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없을 거 같다. 둘이 거리에서 일대일로 만났다면 보나마나 그 자리에서 마구 싸웠겠지. 당연히 와히디야가 일방적으로 시비걸고 공격해서 말이다.


 "맨날 켈라자야한테 저주술로 싸워보자고 해요. 켈라자야한테 잡종이라고 하구요."

 "진짜? 켈라자야는 가만히 있어?"

 "그게...참기는 해요."

 "참기는 하다니?"

 "제가 켈라자야한테 참으라고 해서요."


 블랑쉬블르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나마 말이 통하고 덜 미친 켈라자야에게 참으라고 하는 수밖에 더 있어? 켈라자야한테 와히디야가 시비걸면 맞서싸우라고 할 수는 없잖아. 갑자기 창밖에서 따스한 바람이 방 안으로 불어들어왔다. 탁자 위에 쌓여 있던 서류들이 흔들렸다. 블랑쉬블르는 급히 손으로 서류가 날아가지 않게 눌렀다. 답답하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싶다. 켈라자야, 아다비아 생각만 하면 숨통이 꽉 막힌다니까. 이렇게 숨통이 막히는 느낌이 드는 건 둘과 어떻게든 잘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겠지? 아무리 암담한 미래라 해도 혹시 모를 기적이 일어나 좋아진다면 좋아질 수 있잖아. 나도 안다. 둘이 싫다면 둘이 나와 동시에 사귀겠다고 선언을 했든 말았든 신경 끄면 된다. 그러면 둘이 알아서 나가떨어지겠지. 무신경함에 질려 헤어지자고 할 거다. 그러나 그러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둘을 좋아하기는 하니까. 둘 다 정상이 아니라 미래가 보나마나 끔찍하니 그렇지. 만약 둘 다 정상이고 나한테 동시에 사귀자고 했다면 너무 좋아 흥분했을 수도 있다.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좋은 건 좋은 거잖아.


 "타슈갈, 나 한 가지만 부탁해도 돼?"

 "예."

 블랑쉬블르가 서류 위에 책을 올려놓고 나를 향해 목소리를 낮게 낮추어 이야기했다. 무슨 부탁? 진짜 이상한 부탁하려고?


 "켈라자야와 와히디야 말이야, 둘이 특별한 거 있으면 나한테 언제든 바로 전해줄 수 있니?"

 "특별한 거요?"

 "이상한 행동이라든가, 특이한 습관이라든가..."

 "왜요?"


 그런 건 자기가 직접 만나가며 파악하면 되잖아. 그걸 왜 나한테 부탁하고 있는 거야?


 "그런 게 있어."

 "그런 게 있으면 블랑쉬블르가 직접 하면 되잖아요."

 "아...진심으로 부탁할께."

 "그런 건 직접 하세요. 직접 둘과 어울리며 관찰하면 되잖아요."


 시꺼먼 방. 따스한 바람. 바르르 떨리는 햇볕. 블랑쉬블르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없이 탁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니까 켈라자야와 와히디야에 대해 특별한 것을 발견하면 자기한테 알려달라고 지금껏 나를 붙들어놓은 거야? 그딴 건 스스로 해도 되잖아. 이래서 이고가 블랑쉬블르 집으로 책 수거 가기 엄청 싫어했던 건가? 블랑쉬블르가 이런 부탁하면서 자꾸 오래 잡아두곤 했다면 나 같아도 진짜 싫겠다.


 "그게...이거 남들에게 절대 말하면 안 돼?"

 "예."


 블랑쉬블르는 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잠시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말없이 컵에 담긴 차를 한 모금 홀짝인다. 뭘 얼마나 중요한 걸 이야기하려고 저러는 거야? 둘 중 하나겠지. 진짜 실없는 소리, 아니면 정말 무서운 소리. 블랑쉬블르는 컵을 내려놓고 아까 뒤집어 놓은 서류를 다시 뒤집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


 "읽을 수 있어?"

 "글쎄요...저 아드라스어 잘 몰라요."

 "알았어. 너 룬 바사르랑 라짐 마이슈프 살해당한 거 알지?"

 "예."


 룬 바사르 살해당해서 루즈카 집에서 아다비아, 켈라자야와 같이 며칠 밤을 같이 보냈지. 그 결과가 둘과 동시에 사귀게 된 거구. 라짐 마이슈프가 살해당하면서 호즈라가 이제부터 우리 서점에 와서 저주술 연구를 한다고 한다. 키란의 비밀을 밝혀내겠다고 하는데 잘 될 지 모르겠다. 둘이 살해당한 건 내 일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니 당연히 알고 있지.


 "여기에서 내가 조사하고 있는 것이 있어. 그런데 그 내용이 꽤 많이 심각해."

 "뭔데요?"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가 인체 실험을 하지 않았나 싶어."

 "인체 실험이요?"

 "쉿!"


 블랑쉬블르가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세워 자기 입에 갖다 대었다. 인체 실험? 인간을 갖고 실험했다고? 어떤 실험? 그딴 짓을 이 땅에서 저지르고 있었다구? 별별 저주술사가 다 존재하고 저주술이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라 하니 사람을 갖고 실험한다 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런 짓을 룬 바사르와 에클레 마스라히가 저질렀다고? 어떤 인체실험을? 그리고 누구에게? 설마 켈라자야와 와히디야한테?


 "나도 아직 잘 몰라. 그래서 계속 조사중인 거구."

 "그러니까 그 대상이 켈라자야와 와히디야라는 건가요?"

 "내 생각에는 왠지 그런 거 같아."

 "왜요?"

 "그냥 이런 쪽에 있다보니 생긴 직감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어. 뭔가 파괴당한..."

 "뭔가 파괴당하다니요?"

 "나도 그걸 모르겠어. 지금 계속 그걸 조사하고 있는데 딱히 자료랄 것도 없구..."

 "설마요."

 "내 추측이 틀린 거라면 좋은 거지. 하여간 부탁 좀 할께. 이고는 이런 거 전혀 안 도와주고 라키사한테 부탁할 수도 없구..."

 "예."


 책과 돈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하지만 왠지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인체 실험. 뭔가 파괴당함. 아닐 거야. 설마 켈라자야가 그런 과거를 겪었으려구. 불행한 과거를 겪은 건 확실해. 그러나 그게 설마 인체 실험이려구. 룬 바사르가 그런 짓을 저질러? 그 사람은 그래도 명색이 키란의 제자잖아. 키란의 제자가 멀쩡한 인간을 잡아다 실험을 했을 리가 없지. 그 사람이 인체 실험을 했다면 저주술 관련 실험일 건데, 그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키란이 뭘 했는지 옆에서 본 것이 많으니 그것만 흉내내도 충분하지 않을까?



 머리가 지끈거린다. 태양은 따스한 햇볕을 쏴내려서 머리를 달궈 두통을 더 심하게 만들고 있다. 거리의 소리들. 사람들의 수근거리고 웃는 소리. 수레 바퀴 굴러가는 소리. 식기를 씻는 소리. 망할 저주술. 와히디야는 모르겠다. 그건 진짜 미쳤으니까. 그렇지만 설마 켈라자야가 그 대상이었을까? 아닐 거야. 이 거리에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가 실험 대상이었겠지. 그 이전에 무슨 실험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험을 했을 거라는 상상 자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야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만약 블랑쉬블르의 말이 맞다면 대체 어떤 실험이었을까? 무언가를 파괴하는 실험. 보나마나 저주술 관련 실험일텐데 뭘 파괴해서 뭘 얻으려 한 걸까? 내가 저주술을 연구해야 하는 건가? 케르무크에게 내 꿈 이야기를 해주고 케르무크가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혀내기로 했지만 케르무크에 의존할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내 주제에 무슨 저주술이야. 그런 건 진짜 특수한 사람들이나 쓸 수 있는 거야.


 "오랜만이다!"


 누가 내게 아는 척을 한다. 자에드다. 진짜 오랜만이네. 쟤는 무슨 기쁜 일 있나? 얼굴 표정이 매우 밝다.


 "안녕."

 "잘 지내지?"

 "응. 너는 무슨 좋은 일 있나봐?"

 "좋은 일이라...그건 아니고 꽤 재미있는 것이 생겨서 말이야."

 "재미있는 거라니?"

 "룬 바사르, 에클레 마스라히, 라짐 마이슈프가 살해당했잖아!"


 이 새끼는 그게 뭐가 또 재미있다는 거야? 그게 할 소리인가? 사람 죽은 게 뭐가 재미있다고 싱글벙글이야? 이놈은 예전에 말을 기분나쁘게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미친놈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이것도 미친 거 아닌가 싶다.


 "그게 재미있는 일이야?"

 "너 모르지? 이거 진짜 재미있는 일이야!"

 "왜? 사람이 죽은 게 뭐가 재미있어? 혹시 네가 죽였어?"

 "아니. 당연히 아니지. 그런데 진짜 굉장하더라니까?"

 "뭐가?"


 사람 죽은 게 뭐가 굉장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장례식 행렬이 굉장했다는 거야, 뭐야? 여기서 기괴하게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사람 죽는 일도 한둘이 아니다. 무슨 죽는 모습을 구경이라도 했다는 거야? 저 이죽거리는 얼굴이 참 싫다. 블랑쉬블르 집에 갔다 와서 재수 옴 붙은 건가? 왜 하필 자에드를 마주쳤고, 그냥 인사만 하고 헤어지면 될 걸 나한테 말을 거는 거야?


 "내가 그쪽과 연관이 있어서 사건 현장을 직접 가서 봤거든."

 "그래서?"

 "와, 진짜 사람을 완전 다 채쳐놨던데?"

 "채쳐놓다니?"

 "룬 바사르 시체 보니까 누가 칼을 엄청 찔러놨더라구. 완전 벌집이던데?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아주 빽빽하게 찔러놨더라. 더 굉장한 건 뼈도 다 뚫어버렸어. 완전 너덜너덜하던데? 바닥에까지 칼자국이 선명히 박혀있더라구."

 "뭐?"


 그날 그 꿈 속에서 본 장면. 100개의 칼이 튀어나와 상대의 몸을 찔렀다. 설마 그 장면이 그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라짐 마이슈프 시체도 멋졌어! 와, 목을 깔끔히 베어내고 시체를 진짜 다 잘게 토막내었다니까? 뼈까지 싹 다 잘라버렸어! 너 알지? 뼈 깔끔하게 절단하는 거 엄청 어려운 거. 그런데 그걸 완전 작은 토막 수준으로 싹 해낸 거야. 어떻게 그렇게 완전 잘게 썰어버릴 수 있지? 인체를 양쪽 대각선으로 싹싹 일직선으로 촘촘히 그어서 토막내었어. 어때? 굉장하지?"

 "그게 말이 돼?"

 "말이 되는 문제가 아니야. 진짜 그랬으니까. 내가 왜 네게 거짓말을 하겠어?"


 그러니까 몸을 양 대각선으로 수십 번 그어서 깔끔히 썰어 토막내었다는 거야? 그게 가능해? 하물며 과일도 그렇게 하기 엄청 어려운데? 썰고 잘린 조각을 다시 억지로 맞춰서 반대편 대각선으로 촘촘히 썰어야 한다는 거잖아. 과일이야 딱딱하고 작으니 그게 되지, 신체를 그렇게 자른다고? 그걸 뼈까지 깔끔히 다? 이건 자에드가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주술사 짓이지.


 "이 도시에 그런 굉장한 저주술사가 있다니 멋지지 않아?"

 "멋지기는 뭐가 멋져? 그딴 새끼는 당장 잡아다 몸을 쫙 찢어버려야 해."

 "혹시 관련된 소식 들으면 알려줘. 그 저주술사랑 한 번 대결해보고 싶다! 진짜 짜릿짜릿할 거 같은데!"

 "예라가 무지 싫어하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예라도 같이 덤벼보자고 할 걸? 상상만 해도 신난다. 그런 멋진 저주술사가 세상에 존재하다니...꼭 직접 만나서 대결해보고 싶어!"

 "그놈이 너를 진짜 죽이려 하면?"

 "그러면 죽든가 죽이든가 둘 중 하나지."


 미친놈. 이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그냥 감이 없는 건가? 사람을 그렇게 죽인 저주술사가 자기와 예의 차리며 대결할 거라 상상하는 건가? 봐주면서 적당히 누구 실력이 더 좋은지 알아보자고? 절대 그러지 않을걸. 만나서 서로 인사하고 나발이고 없이 바로 죽이려 들 거다. 이놈이 얼마나 잘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저주술사한테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닐 거 같은데.



 자에드와 인사를 하고 서점으로 돌아왔다. 라키사가 계산대를 지키고 있다. 켈라자야는 라키사 옆에서 책을 보고 있다. 블랑쉬블르의 말이 떠오른다. 인체 실험. 그 종이에 적혀 있던 단어들 - 실험, 인간, 정신, 교육. 켈라자야는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쪽을 향해 걸어온다. 나도 켈라자야를 향해 걸어갔다. 나와 켈라자야가 서로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가 되었을 때, 팔을 뻗어 켈라자야 머리를 쓰다듬었다. 켈라자야가 내 팔짱을 꼈다.


 라키사는 내가 켈라자야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숙여 뭔가 보기 시작한다. 책 보고 있는 거겠지. 라키사가 저런다고 해서 안타깝거나 하지는 않다. 어차피 라키사와는 이어질 수가 없어. 지금 나한테는 아다비아와 켈라자야가 있잖아. 이 둘에게 충실해야지. 둘이 싫지 않으니까. 아니, 좋아하니까. 그래, 차라리 내가 저주술을 익혀서 둘을 고쳐주는 게 맞지 않을까? 아다비아와 켈라자야에게 그만 헤어지자고 하고 라키사에게 돌아간다? 그럴 수 없어. 아다비아와 켈라자야도 나한테 소중하니까. 둘한테 상처주는 짓은 못하겠다. 둘이 내가 싫다고 떠나가지나 않으면 계속 이 관계는 이어지겠지. 진짜 내가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혀내야 하는 걸까? 그걸 밝혀내면 둘을 고쳐줄 수 있을까? 이 생각 자체가 망상이라는 게 씁쓸하다. 내가 저주술을 수련할 일도 없고, 설령 수련한다 하더라도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혀낼 수도 없을 테니까. 케르무크가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게 열심히 도와주는 게 지금으로써는 최선일 거다. 아다비아와 켈라자야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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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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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비밀댓글입니다

    2018.10.01 23:50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소설도 조금씩 계속 쓰고 있구요. 3장 15화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10.07 05:12 신고 [ ADDR : EDIT/ DEL ]